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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로아스터 2018. 7. 9. 20:53

[손기원 박사 周·人·工 四書三經] *<제112강> (2018.07.02.)

— <周·人·工 四書三經>은 ‘周易과 人性을 工夫하는 四書三經 강좌’를 말한다 —


주역(周易) 계사전(繫辭傳) (제8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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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주역(周易) 공부 ☞ 계사전·하 [제8장~12장]


周易 繫辭傳·下 (제8장~12장)



<제8장> ; 역(易)의 도(道)


[8]-1 易之爲書也 不可遠이오 爲道也 屢遷이라 變動不居하여 周流六虛하여

        上下 无常하며 剛柔 相易하여 不可爲典要요 唯變所適이니

        其出入以度하여 外內에 使知懼하며 又明於憂患與故라

        无有師保나 如臨父母하니 初率其辭而揆其方컨댄

        旣有典常이어니와 苟非其人이면 道不虛行하나니라. 右는 第八章이라


 역(易)이라고 하는 것[책]은 멀리할 수 없는 것이요 그 도(道)는 항상 옮겨 다닌다.

 변하고 움직여서 한 곳에 머물지 않고 두루 천지사방[六方]에 흐른다.

 상하(上下)가 일정함이 없으며 강유(剛柔)가 서로 교차하여 전형적인 표준을 만들 수가 없고

 오직 변화를 따라갈 뿐이니, 그 출입이 법도로써 하여 안팎으로 (하늘에 대한) 두려움을 알게 하며 또 우환(憂患)과 그 까닭을 밝힌다.

 (나를 인도하는) 스승과 보호자가 없을 때는 부모님이 임(臨)하는 것과 같고,

 처음 그 효사(爻辭)를 따라가서 그 방도를 헤아리다 보면 어느덧 일정한 법칙을 알게 된다.

 진실로 참다운 사람이 아니면 도(道)가 어느 곳에서도 행해지지 않는다.


· ‘屢遷’(누천)에서 ‘’는 ‘자주, 항상’. ‘屢遷’은 ‘항상 옮겨다니다’의 뜻.

· ‘周流六虛’에서 ‘六虛’는 ‘상·하 / 동·서·남·북’ 즉 ‘육방(六方)’을 말한다

· ‘上下’는 ① ‘위와 아래’ ② ‘오르고 내리는 것’

· ‘剛柔 相易’(강유상역)에서 ‘剛柔’는 음양(陰陽)을 가리킨다

· ‘不可爲典要’에서 ‘典要’는 ‘표준이 되는 전형적인 기준’을 뜻한다.

· ‘无有師保’에서 ‘’는 ‘사보(師保)’, ‘’는 ‘태보(太保)’를 말함이니 ‘스승’의 뜻이다.

· ‘初率其辭而揆其方’에서 ‘’(규)는 ‘헤아리다’

· ‘旣有典常’에서 ‘’는 ‘소유하다’, 여기서는 ‘알게 된다’


* [강 설(講說)] —————

역리(易理)는 우환이나 난관을 극복하는 지혜를 제시해 주기 때문에, 태사나 태보와 같은 훌륭한 스승이나 지도자가 있어서 가르쳐 주지 않아도, 역이 늘 나에게 가까이 있으면서 일일이 깨우쳐 주고 가르쳐 주기 때문에 부모(父母)와 같은 것이다. 역은 천지(天地)의 도(道)를 통하여 인간의 삶에서 일어나는 모든 문제를 가르쳐주는 지혜(智慧)를 담고 있다. 부모가 자녀를 사랑하여 가르치는 것이 이와 같다.

 

<제9장> ; 육효(六爻)의 위상과 특성


[9]-1 易之爲書也 原始要終하여 以爲質也하고 六爻相雜은 唯其時物也라

        其初는 難知요 其上은 易知니 本末也라 初辭擬之하고 卒成之終하니라

        若夫雜物와 撰德과 辨是與非는 則非其中爻면 不備하니라

        噫라, 亦要存亡吉凶인댄 則居可知矣어니와

        知者 觀其彖辭하면 則思過半矣리라


 역(易)이라고 하는 것[책]은

 근원(根源)에서 시작하여 긴요한 것에서 끝나니 그것으로써 본질을 삼는다.

 육효(六爻)가 서로 섞여있는 것은 오직 그 시(時)와 물성(物性)에 달려있다.

 그 처음[初爻]은 알기 어렵지만 그 상효(上爻)는 쉽게 알 수 있으니

 (그것이) 본말(本末)의 관계이기 때문이다.

 초효(初爻)의 효사에서 근본을 헤아리고 마침내 상효(上爻)에서 그 말(末)을 이룬다.

 음물과 양물이 섞여있고 덕을 헤아리며 옳고 그름을 가려내려면

 ‘중간의 효’[二爻와 五爻]가 아니면 구비되지 않는다.

 아, 존망과 길흉을 요약하면 역리를 거의 알 수 있다.

 지혜로운 자는 그 단사(彖辭)를 보면 절반 이상을 알 수 있다.


* [강 설(講說)] —————

· ‘原始要終’은 두 가지로 해석이 가능하다. ① ‘근원(根源)에서 시작하여 필요(必要)한 곳에서 끝난다’ ② ‘’은 ‘관찰하다’는 뜻이 있고 ‘’는 ‘탐구하다’는 뜻이 있으므로, ‘처음[初爻]를 관찰하기 시작하여 끝[上爻]에 이르기까지 탐구한다’는 뜻으로 해석한다.(손기원)

그리고 이는 주역(周易) 공부에서 ‘처음 시작은 알기 어렵지만, 공부하고 나면 그 마지막은 쉽게 알 수 있다’는 말로도 이해할 수 있다.

· ‘以爲質也’에서 ‘以~’의 목적어는 ‘原始要終’. 그러므로 ‘原始要終으로써 본질을 삼는다.’

· ‘唯其時物也’에서 ‘’는 ‘상황(狀況)’, ‘’은 ‘물성(物性), 즉 사물의 성질이나 상태’이다.

· ‘其初는 難知요 其上은 易知니’에서 ‘其初’와 ‘其上’은 각각 ‘초효’와 ‘상효’를 가리키는 말.

· ‘初辭擬之’는 '초사의 효사가 그것[역의 본질]'을 헤아린다.‘

· ‘卒成之終’는 마침내 마지막[상효]에서 그것[역의 본질]을 이룬다.‘

· ‘若夫雜物’에서 ‘若夫~’는 어두에 들어가는 상투적인 말이지만, 자전에 보면 ‘至於(~에 이르다)’의 뜻이 있다. ‘雜物’은 ‘양물과 음물이 섞여 있다’ 즉 괘(卦)는 양효와 음효가 섞여서 이루어진 것을 말한다.

· ‘撰德’에서 ‘’(찬)은 ‘선(選)’과 통용된다. 그러므로 ‘덕(德), 즉 특성을 가려내는 것’

· ‘則非其中爻’에서 ‘中爻’는 ① 괘에서 상하괘의 중심을 이루는 ‘이효’와 ‘오효’를 가리키기도 하고 ② 괘의 초효와 상효를 제외한 ‘이효-삼효-사효-오효’를 가리키기도 하며 ③ 괘의 한 가운데 있는 ‘삼효와 사효’만을 지칭하기도 한다. 앞 문장에서 초효와 상효를 말하고 여기에서는 가운데의 효의 기능에 대해서 설명한 것이다.

· ‘亦要存亡吉凶’에서 ‘’는 ① ‘, 요약하다, 핵심을 이해하다’ ② ‘대체로’의 뜻이 있다.


[9]-2 二與四 同功而異位하여 其善이 不同하니 二多譽코 四多懼는 近也일새니

        柔之爲道 不利遠者컨마는 其要无咎는 其用柔中也일새라

        三與五 同功而異位하여 三多凶코 五多功은 貴賤之等也일새니

        其柔는 危코 其剛은 勝耶인저 右는 第九章이라


 이효(二爻)와 사효(四爻)는 역할은 같으나 위상이 다르므로 그 좋은 점이 같지 않다.

 이효(二爻)는 영예로운 일이 많은 반면, 사효(四爻)에는 두려움이 많은데

 그것은 (四爻가 五爻에) 가깝기 때문이다.

 부드러운 것의 도(道)는 멀리 있는 것을 이롭게 않게 여기는 데도

 그것이 대체로 허물이 없는 것은 부드러움을 가지고 가운데 있기 때문이다.

 삼효(三爻)와 오효(五爻)는 기능이 같으나 위상이 다르므로

 삼효(三爻)에는 흉함이 많고, 오효(五爻)에는 공이 많다.

 그것은 귀천의 차등(差等)이 있기 때문이다.

 (三爻나 오효가) 음효(陰爻)일 경우에는 위태롭고

 양효일 경우에는 자기의 역할을 감당할 수 있다.


* [강 설(講說)] —————

이효(二爻)와 사효(四爻)는 음의 자리로서 그 역할은 비슷하다. 두 효 모두 전체를 이끄는 오효(五爻)를 보좌한다는 입장에서 그 역할이 비슷한 것이다. 이효(二爻)는 오효(五爻)의 짝으로서 응하고 사효(四爻)는 오효(五爻)를 최측근에서 보좌한다는 면에서 그렇다. 그러나 그 위상이 다르다.


오효(五爻)는 전체를 이끌어야 하는 위치에 있기 때문에 측근에서 보좌하는 사효(四爻)의 역할도 중요하지만 하층부의 전체를 이끌고 보좌하는 이효(二爻)의 역할을 더 중시한다. 그래서 이효(二爻)가 사효(四爻)보다 명예로움이 많다.


삼효(三爻)와 오효(五爻) 역시 양의 자리에 있으면서, 양의 역할을 한다는 의미에서 서로 비슷하다. 그러나 오효(五爻)는 상층부의 중심에 있으면서 전체를 이끌어야 하는 자리인 반면, 삼효(三爻)는 하층부의 윗자리에 있으면서 개인의 역할을 해야 하는 입장이니 그 위치는 다르다.


<제10장> ; 삼재(三才)와 육효(六爻)


    易之爲書也 廣大悉備하여 有天道焉하며 有人道焉하며 有地道焉하니

    兼三才而兩之라 故로 六이니 六者는 非他也라 三才之道也니

    道有變動이라 故曰爻요 爻有等이라 故曰物이요 物相雜이라 故曰文이요

    文不當이라 故로 吉凶이 生焉하니라. 右는 第十章이라


 역(易)이라고 하는 책은 광대하여 모든 이치를 갖추고 있다.

 거기에는 하늘의 이치가 있고, 사람의 (삶의) 도리가 있으며 땅의 이치가 있다.

 이 세 가지를 겸하여 둘로 포개었기 때문에 여섯이 된다.

 이 여섯 효(爻)는 다름이 아니라 세 이치의 도(道)이다.

 도에는 변화와 움직임이 있으므로 효(爻)라고 한다.

 효에는 물(物)이라고 하는 등차가 있으므로 물(物)이라는 형태로 구체화 된다.

 물(物)은 서로 뒤섞이므로 여러 형태의 모양새가 갖추어진다.

 갖추어진 모양새는 타당한 것도 있지만 타당하지 않는 것도 있다.

 따라서 길흉이 생겨난다.


* [강 설(講說)] —————

· ‘有天道焉’에서 ‘~’은 종결의 어조사이지만 ‘거기에’라는 지시적 의미를 지니고 있다.

· ‘爻有等 故曰物’에서 ‘’은 음물(陰物)과 양물(陽物) 등의 지위, 즉 ‘초효(初爻), 이효(二爻), 삼효(三爻), 사효(四爻), 오효(五爻), 상효(上爻)’의 자리를 말한 것이다.

· ‘物相雜 故曰文’에서 ‘’은 ‘모양새, 무늬, 모양’ 즉 두 가지 무늬 음효(陰爻)와 양효(陽爻).

· ‘文不當’은 ‘(爻가) 항상 타당한 것은 아니다’ 즉 음의 자리에 양이 오고 양의 자리에 음이 오는 경우를 말한다. 음의 자리에 음이 오고 양의 자리에 양이 오는 것을 정(正)이라 하고, 그렇지 않은 것을 부정(不正)이라고 한다. 정(正)/ 부정(不正)에 따라 길흉이 생긴다.


<제11장> ; 역(易)의 도(道)


    易之興也 其當殷之末世, 周之盛德耶인저 當文王與紂之事邪인저

    是故로 其辭 危하여 危者를 使平하고 易者를 使傾하니

    其道 甚大하여 百物을 不廢하나

    懼以終始면 其要 无咎리니 此之謂易之道也라. 右는 第十一章이라


 역(易)이 생겨난 것은 은(殷)의 말세에 해당하는가, 주(周)의 성세에 해당하는가!

 문왕(文王)과 주(紂)에 해당하는가!

 그래서 그 설명하는 말[辭]이 위태로움에 대비하는 형태를 취한다.

 위태롭다고 생각하고 대처하는 자에게는 평안하게 만들고,

 안이하게 대처하는 자에 대해서는 일을 그르치게 한다.

 역(易)의 도(道)는 아주 커서 만물의 삶을 다 충족시키고 폐지하지 않는다.

 두려워하는 마음으로 일관해야 하는 것이니,

 그 요점(要點)은 허물이 없도록 하는 데 있다.

 이렇게 하는 것을 역(易)의 도(道)라고 한다.


* [강 설(講說)] —————

· ‘危者’(위자)는 ‘위태롭게 여기는 자’, 역사적으로 문왕의 경우가 여기에 해당한다.

· ‘易者 使傾’에서 ‘易者’(이자)는 ‘안이하게 생각하는 자’. 역사적으로 걸왕이나 주왕이 여기에 해당한다. ‘使傾’은 ‘망하게 한다.’ ‘危者 使平 易者 使傾’은『중용』제 17장에 나오는 ‘栽者 培之 傾者 覆之’가 여기에 해당한다. 그 원문은 다음과 같다.


17-01 子曰 舜其大孝也與 德爲聖人 尊爲天子 富有四海之內 宗廟饗之 子孫保之

    02 故大德 必得其位 必得其祿 必得其名 必得其壽

    03 故天之生物 必因其材而篤焉 故栽者 培之 傾者 覆之

    04 詩曰 嘉樂君子 憲憲令德 宜民宜人 受祿于天 保佑命之 自天申之

     05 故大德者 必受命


공자가 말씀하셨다. “순(舜)은 대효(大孝)이시도다. 덕(德)의 측면에서는 성인(聖人)이 되셨고 높은 벼슬의 측면에서는 천자(天子)가 되셨으며 부유함에 있어서는 사해(四海) 안을 다 가지셨다. 종묘에서 그 제사를 지냈고 자신이 이를 보존하였다.” 그러므로 그 덕은 반드시 그 지위를 얻으며 반드시 그 오랜 삶을 얻는다. 그러므로 하늘이 만물을 만드는 것은 반드시 그 재목에 따라서 하되 그것을 다 강화시킨다. 그러므로 가꾸는 것을 북돋아주고 기울어지는 것을 뒤엎어버린다.『시경(詩經)』에 이르기를, “아름답고 즐거운 군자여, 밝고 아름다운 덕(德)이 있도다. 백성들에게 적합하고 관리들에게 적합하여 녹(祿)을 하늘에서 받았도다. 백성들을 도와주고 인도하니 하늘에서 녹(祿)을 거듭 내려주셨도다.” 하였다. 그러므로 큰 덕(德)이 있는 자는 반드시 명(命)을 받는다.


<제12장> ; 역(易)의 역할(役割)과 비전


[12]-1 夫乾은 天下之至健也니 德行이 恒易以知險하고

          夫坤은 天下之至順也니 德行이 恒簡以知阻하나니

          能說諸心하며 能硏諸(侯之)慮하여 定天下之吉凶하며 成天下之亹亹者니


 건(乾)은 천하에서 가장 꿋꿋한 것이니, 건괘(乾卦)의 진리를 실천하는 사람의 덕행은

 항상 평이(平易)하지만 험(險)한 것이 있음을 안다.

 곤(坤)은 천하에서 가장 유순한 것이니 곤괘(坤卦)의 진리를 실천하는 사람의 덕행은

 항상 간편(簡便)하지만 저지당할 때도 있다는 것을 안다.

 그러한 자는 마음속에서 기뻐하고, 생각을 다듬어서

 천하의 모든 길흉(吉凶)을 단정하고 천하의 모든 작용(作用)을 이루는 자이다.


· ‘德行’은 ‘하늘의 뜻을 실행하는 것’

· ‘能說諸心’에서 ‘’는 ‘之於’의 축약 형태. ‘’은 ‘悅’과 통용

· ‘能硏諸(侯之)慮’에서 주자는 ‘侯之’ 두 자를 연문(衍文)으로 보았으나 문맥상 타당하다.

· ‘成天下之亹亹者’에서 ‘’(미)는 ‘힘쓰다, 부지런하다, 노력하다’는 뜻이니, ‘成天下之亹亹者’는 ‘천하가 힘쓰는 것(작용)을 이루다’는 뜻이다.


* [강 설(講說)] —————

하늘의 작용은 매우 굳세면서 일정하기 때문에 누구나 알기 어렵지 않다. 봄이 가면 항상 여름이 오고 여름이 가면 항상 가을이 온다. 하늘의 이러한 작용은 한 번도 어긴 적이 없기 때문에 대처하기가 쉽다. 그러나 그러한 가운데에서도 험하고 어려운 상황이 있다. 폭풍이 불 때도 있고 가뭄이 들 때도 있다.


땅의 작용은 매우 유순하고 정직하다. 하늘의 작용을 묵묵히 받아 따르면서, 인간의 행위에 정직하게 반응한다. 콩 심으면 콩을 키워주고 팥 심으면 팥을 키워준다. 그래서 땅은 일구고 가꾸기가 간편하다. 그러나 그 가운데에도 쉽지 않은 일이 있다.


그러므로 하늘과 땅의 작용을 알고, 인도를 실천할 있는 사람은 역리를 알고 실천함으로써 마음속이 기쁨으로 충만한 자이다. 즉 생각이 역리로 다듬어져서 하늘과 땅의 모든 작용을 파악할 수 있게 된 성인은 모든 것에 원만하게 대처할 수 있다.


[12]-2 是故로 變化云爲에 吉事 有祥이라

          象事하여 知器하며 占事하여 知來하나니

          天地設位에 聖人이 成能하니 人謀鬼謀에 百姓이 與能하나니라

          八卦는 以象告하고 爻彖은 以情言하니 剛柔 雜居而吉凶을 可見矣라


 이런 까닭으로 (올바른 방향으로) 변화하는 것으로 말하고 행동하여

 길사(吉事)에는 상서로움이 있다. 일에 나타나는 형상을 보면 (그에 대처하는)

 기구(器具)를 만들 줄 알고, 일에 대해서 점(占)을 침으로써 앞으로의 대처 방안을 안다.

 천지(天地)가 각각의 자리를 설정하고 성인(聖人)이 천지와 더불어

 바르게 살 수 있는 능력을 갖추었다. 이어 사람에게 의논하고 귀신에게 모의함으로써

 백성들이 참여하여 바르게 살 수 있는 능력 얻을 수 있게 되었다.

 팔괘(八卦)는 형상으로 알려주고, 효사(爻辭)와 단사(彖辭)는 실상을 말해 준다.

 굳센 것과 부드러운 것이 섞여 있어서 길흉을 알 수 있다.


· ‘變化云爲’에서 ‘云爲’는 ‘말하고 행동하는 것’

· ‘變化云爲에 吉事 有祥이라 象事하여 知器하며 占事하여 知來하나니’ ; 공자는 주역의 효용을 사(辭)-언(言) / 변(變)-동(動) /상(象)-기(器) / 점(占)-복서(卜筮)으로 요약했다.

· ‘與能’은 ‘거(擧)’의 의미도 있다. ‘들어올리다, 받들다, 공경하다’

· ‘爻彖 以情言’에서 ‘爻彖’(효단)은 ‘효사(爻辭)와 단사(彖辭)’. ‘’은 ‘실상’

· ‘剛柔’는 음양(陰陽)을 말한다.


* [강 설(講說)] —————

인간을 중심으로 보면, 하늘은 머리 위에 있고, 땅은 발 아래에 있다. 그래서 사람이 똑 바로 서면 하늘과 땅이 제 위치에 자리 잡을 수 있지만, 거꾸로 서 있거나 누워 있으면 하늘과 땅은 제 위치에 있지 못하게 된다.


‘사람이 바로 선다’는 것은 마음이 삶의 주가 되고, 몸이 그 명령을 듣는 상태를 말한다. 그러나 욕심이 가득하게 되면 육체가 욕구하는 물질적 가치만 추구하여 그것을 삶의 목적으로삼는다. 그리하여 몸이 삶의 주가 되고 마음이 그를 위해 봉사하는 모습이 된다. 이것은 거꾸로 된 삶이다. 욕심을 버리고 역리에 따라 사는 것이 바르게 사는 형태가 된다.


역리(易理)를 실천하는 성인(聖人)은 하늘을 머리에 이고 땅을 딛고 선다. ‘성인이 능력을 갖추었다’고 한 것은 ‘똑바로 서서 살 수 있는 능력’을 갖추었다는 것이다. 그러한 까닭에 성인의 출현은 사람들이 바로 설 수 있는 길이 열렸음을 의미한다.


인(人)이라는 말은 원래 동이족을 지칭하는 고유명사였으나, 점차 귀족이라는 의미로 쓰이다가 나중에 사람 일반을 가리키는 명사로 확대되어 쓰이게 되었다. 여기서의 인은 귀족이라는 의미로 이해해야 할 것이다. 귀(鬼)는 원래 음양의 작용을 가리키는 것이니, 여기서는 인간의 순수한 정신 현상으로 이해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사람[귀족]도 성인의 본보기로 역리를 따라서 사는 방법을 꾀하고 순수한 정신을 가진 사람들도 이를 도모하여 일반 백성들도 이를 꾀하여 모두가 참여하여 역리에 따라서 살 수 있게 된 것이다.


[12]-3 變動은 以利言하고 吉凶은 以情遷이라

          是故로 愛惡相攻而吉凶 生하며 遠近이 相取而悔吝이 生하며

          情僞 相感而利害 生하나니

          凡易之情이 近而不相得하면 則凶或害之하며 悔且吝하나니라


 변하고 움직이는 것은 이로움으로써 말하고 실상은 길흉에 따라서 옮겨간다.

 이 때문에 사랑하는 것과 미워하는 것이 서로 부딪혀 길흉이 생기고,

 먼 것과 가까운 것을 서로 번갈아 취하기 때문에 뉘우칠 일이나 곤란한 일이 생기며,

 참과 거짓이 서로 교감하여 이로움과 해로움이 생긴다.

 무릇 역(易)이 깨우쳐 주는 진리가 가까이 있는 데도 보고 터득하지 못하면

 흉하게 되고 혹 그 진리를 해치면 후회하게 되고 곤란해진다.


· ‘愛惡’(애오)에서 ‘’는 음양의 조화를 말한다. 예컨대 오효(五爻)가 양(陽)이고 이효(二爻)가 음(陰)이 경우가 여기에 해당한다. 주역에서 이를 ‘상응(相應)’이라고 한다. ‘’은 그 짝이 같은 음이거나 같은 양일 경우이다. 이를 ‘불응(不應)’이라고 한다.

· ‘遠近’에서 ‘’는 ‘서로 짝이 되는 효(爻)’를 말하고, ‘’은 ‘이웃이 되는 효’를 말한다.

· ‘情僞’에서 ‘’은 양의 자리에 양이 오고 음의 자리에 음이 오는 것을 말하고, ‘’는 음의 자리에 양이 오고 양의 자리에 음이 오는 경우를 말한다.

· ‘近而不相得’에서 ‘’은 ‘보다[看]’의 뜻이 있다.


* [강 설(講說)] —————

삶의 과정에서 나타나는 수많은 변화에 적절하게 대처하고 올바르게 행동할 수 있는 길을 제시하는 것이 역(易)의 이치(理致)이다. 그래서 이러한 길을 제시할 때에는 ‘대인을 보는 것이 이롭다’ 등등 ‘여차여차 하는 것이 이롭다’는 형식으로도 표현했다.


실제로 역(易)의 지시에 따라 이로운 방향으로 실행했는가 못했는가에 대한 결과에 따라서 판단한 것이 길흉이다. 여기서 ‘’이라고 한 것은 역리에 적절히 대처했는가 아닌가의 실상(實相)을 말한 것이다. 그리고 역리에 적절히 대처하는 경우는 모든 것에 대해서 사랑하는 마음으로 표현되고 그렇지 못한 경우는 미워하는 마음으로 표현된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마음만 있으면 흉(凶)함이 없고 미워하는 마음만 있으면 길(吉)함이 없다. 사랑하는 마음과 미워하는 마음이 엇갈리기 때문에 길흉(吉凶)이 생긴다.


진리(眞理)는 항상 가까이에 있다. 도끼를 들고 도끼 자루를 벨 때 그 베는 원리가 가까이에 있는 것과 같다. 자신이 들고 있는 도끼의 자루를 보고 그와 같은 것을 베면 되기 때문이다. 이처럼 가까이 있는 진리를 보고 취하면 문제가 없지만, 진리가 멀고 고원한 데 있는 것으로 여겨 취하려 하면 결국 후회하고 한스럽게 되는 일이 생긴다. 역리를 진실하게 따르면 이롭고 거짓으로 따르면 해롭다.


[12]-4 將叛者는 其辭 慙하고 中心疑者는 其辭 枝하고

          吉人之辭는 寡하고 躁人之辭는 多하고 誣善之人은 其辭 游하고

          失其守者는 其辭 屈하니라. 右는 第十二章이라


      모반(謀叛)하려고 하는 사람은 그 말에 부끄러움이 있고,

      마음속이 의심(疑心)의심스러운 자는 그 말이 산만하다.

      길한 사람의 말수는 적고 조급한 사람은 그 말이 많다.

      착한 사람을 속이려고 하는 사람은 그 말이 왔다갔다하고

      지조를 잃은 사람은 그 말이 비굴하다.


· ‘將叛者는 其辭 慙하고’ ; ‘장차 모반을 하려고 하는 경우의 괘사나 효사는 부끄럽다.’

예컨대 [47] 택수(澤水) 곤괘(困卦)의 괘사나 삼효(三爻)의 효사가 그렇다.


[47] 곤괘(困卦)의 괘사 ; ‘困, 亨, 貞, 大人吉, 无咎, 有言不信.’(곤란한 형국이다. 밝고 바른 마음으로 해야 한다. 대인을 만나야 길하고 허물이 없다. 그러나 말을 해도 신뢰를 받지 못한다.) 그리고 곤괘 육삼(六三)의 효사는 참으로 참담하다. ‘六三, 困于石, 據于蒺蔾, 入于其宮, 不見其妻, 凶.’(육삼(六三)은 돌에 눌려 곤란을 당하고 가시덤불에 앉아 있다.  자기의 집에 들어가도 자기의 부인을 볼 수[면목이] 없으니 흉하다.)


육삼(六三)은 양의 자리에 음이 왔으므로 부정(不正)이고 중(中)도 아니다. 하층부의 곤란한 상황의 극에 달했다. 그래서 ‘돌에서 곤란(困難)을 겪고 가시덤불 속에서 들어있으니’ 그야말로 설상가상(雪上加霜)이요, ‘엎친 데 덮친 격’이다. 돌은 육삼의 위에 있는 강양의 구사와 구오이고 가시덤불은 하괘인 감괘이다. 그야말로 참담한 곤경(困境)에 있는 상황이다. 스스로 궁핍하고 난관에 처해 있으니 ‘자기의 집에 들어가도 자기의 부인을 볼 수[면목이] 없으니 흉하다’고 한 것이다.


· ‘吉人之辭는 寡하고’(길인의 괘사나 효사는 짧다.) 예컨대 [14] 화천(火天) 대유(大有)괘와 [34] 뇌천(雷天) 대장(大壯)괘가 그것이다.


[14] 화천(火天) 대유(大有)

[34] 뇌천(雷天) 대장(大壯)



大有, 元亨.

大壯, 利貞.



                 [14] ‘大有 元亨’(크게 소유하는 형국이다. 크고 밝은 마음으로 한다)

                 [34] '大壯 利貞'(크게 힘쓰는 상황이다. 이롭게 하고 바르게 해야 한다)

* [14] 화천(火天) 대유(大有)괘의 괘사가 ‘大有 元亨’인데, [34] 뇌천(雷天) 대장(大壯)괘의 괘사는 ‘大壯, 利貞’이다. 주역 64괘 중에서 이 두 괘의 괘사가 가장 짧다. 공통적인 것은 모두 건괘(乾卦)를 하괘로 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크게 소유하는 것[大有]은 (하늘처럼) 크고 밝은 마음[元亨]으로 해야 하고’, ‘크게 힘쓰는 일[大壯]은 (하늘처럼) 이롭게 하고 바르게 해야 하는 것[利貞]’이다. 특히 대장(大壯)의 도(道)는 정정(貞正)함이 이롭다. 크게 장성(長盛)하면서 바름을 얻지 못하면 강하고 사나운 일을 할 뿐이요, 군자(君子)의 도(道)가 장성한 것은 아니다.([傳] 大壯之道는 利於貞正也라 大壯而不得其正이면 强猛之爲耳요 非君子之道壯盛也라) <그림>



· ‘躁人之辭는 多하고’(조급한 상황의 경우의 괘사(효사)는 말이 많다) ; [62] 뇌산(雷山) 소과(小過)괘가 그러하다

 

[62] 소과괘의 괘사 ‘小過, 亨, 利貞, 可小事, 不可大事, 飛鳥遺之音, 不宜上, 宜下, 大吉.

(조금 지나친 [조금 더 힘을 써야 하는] 상황이다. 밝은 마음으로 이롭게 하고 바르게 해야 한다. 작은 일은 괜찮지만 큰일은 불가하다. 날아가는 새가 소리를 남기니 마땅히 올라가지 않고 마땅히 내려와야 한다. 큰 마음으로 하면 길하다.)


‘飛鳥遺之音’은 ‘날고자 하는 새가 (날지 못하고) 소리만 남긴다’는 뜻이니, 소과(小過)괘에서 ‘飛鳥’는 ‘닭’을 의미한다. ‘닭’의 주역코드는 ‘손괘(巽卦, ☴)’이다. ‘닭’은 크게 조류(鳥類)에 해당하지만 실제로 날지 못하는 가금류(家禽類)이다. ‘새’의 주역코드는 감괘(坎卦, ☵)인데 손괘(巽卦)는 감괘(坎卦)에서 한 쪽 날개가 제 기능을 못하는 상(象)이기 때문이다. 소과(小過)괘에서 내호괘(2효-3효-4효)가 손괘(巽卦)이고 외호괘(3효-4효-5효)는 뒤집어진 손괘(巽卦)이다. 그래서 ‘올라가지 않고 마땅히 내려오면 크게 길하다’고 한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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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역(周易) 괘사전(卦辭傳) 상(上) 전12장 / 하(下) 전12장 <끝>

출처 : 동양철학 나눔터 - 동인문화원 강의실
글쓴이 : 백파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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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인문화원

조로아스터 2018. 7. 9. 20:53

[손기원 박사 周·人·工 四書三經] *<제111강> (2018.06.25.)

— <周·人·工 四書三經>은 ‘周易과 人性을 工夫하는 四書三經 강좌’를 말한다 —


주역(周易) 계사전(繫辭傳) (제7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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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주역(周易) 공부 ☞ 계사전·하 [제5장b~7장]


周易 繫辭傳·下 (제5장-②)



[5]-8 子曰 危者는 安其位者也요 亡者는 保其存者也요 亂者는 有其治者也니

           是故로 君[子 安而不忘危하며 存而不忘亡하며 治而不忘亂이라

           是以身安而國家可保也니 易曰 其亡其亡이라아 繫于包桑이라하니라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위태로울 것을 생각하여 대비(對備)하는 자는

     자기의 지위를 안정시킬 수 있고, 멸망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하여 대비하는 자는

     자기의 존재를 보존할 수 있으며, 혼란해질 수 있다고 생각하여 대비하는 자는

     안정된 상태를 유지할 수 있다.

     때문에 군자(君子)는 편안히 거처하면서 위태롭게 될 것을 잊지 않고,

     안정된 상태에 있으면서도 혼란하게 될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잊지 않는다.

     이렇게 함으로써 몸이 편안해지고 국가가 보존될 수 있다.

     역(易)[비괘(否卦) 구오(九五)]에서 말하기를

     ‘(항상 스스로 경계하여) 망할라, 망할라 하고 걱정해야

     빽빽한 뽕나무에 묶어두듯 견고할 수 있다’고 했다.”


·‘ ‘危者’에서 危’(위)는 ‘위험한 것으로 생각하고 대비하는 것’

· ‘亡者’에서 ‘亡’(망)은 ‘망할지 모른다고 생각하고 대비하는 것’

· ‘亂者’에서 ‘亂’(란)은 ‘혼란해질지 모른다고 생각하고 대비하는 것'



* [易曰 其亡其亡이라아 繫于包桑이라] ☞ [12] 비괘(否卦) 구오(九五)의 효사


[12] 비괘(否卦, 天地否)는 그 괘상이 태괘(泰卦, 地天泰)와 착종관계(錯綜關係)이므로 그 함의(含意)도 정반대이다. 태괘가 소통(疏通)이라면 비괘는 불통(不通)이다. 비괘의 외형은 건실하고 화려하지만 속은 허약하고 부실하다. 뿌리는 나약하지만 잎과 줄기가 무성한 식물과 같다. 그리고 자녀는 나약하지만 부모가 강력한 가정과 같다. 이런 가정의 경우, 부모와 자녀가 소통되기 어렵고 자녀가 제대로 성장하기 어렵다. 그래서 이 괘의 이름을 ‘막힘’을 의미하는 ‘비(否)’로 붙였다. ‘否’는 원래의 음이 ‘부’이지만 괘명의 경우 ‘비’로 발음한다.


비(否)는 결국 소인(小人)의 시대이고 난세(亂世)이다. 이를『맹자』에서는 ‘천하무도(天下無道)’라고 했다. 군자(君子)의 시대, 즉 도(道)가 살아있는 시대[治世]에는 작은 덕(德)이 큰 덕의 부림을 받고, 조금 어진 사람이 크게 어진 사람의 부림을 받지만, 소인(小人)의 시대 즉 무도(無道)한 시대[亂世]에는 작은 사람이 큰 사람에게 부림을 받고 힘이 약한 사람이 센 사람에게 부림을 받는다. (小人道長, 君子道消也) 그것이 천하가 무도한 실상이다.


비괘(否卦)는 ‘난세(亂世)의 주역코드’라고 말한다. 태괘(泰卦)가 ‘치세(治世)의 주역 코드’에 대비되는 상황이다. 역사(歷史)는 일치일란(一治一亂)의 곡절로 이어진다. 난세(亂世)의 상황에 대처하는 지혜(智慧)가 무엇인가.


[12]否卦

否之匪人, 不利,

 君子貞, 大往小來.

 上九, 傾否, 先否後喜.

  ‘九五, 休否, 大人吉, 其亡其亡, 繫于苞桑.

  ‘九四, 有命无咎, 疇離祉.

  ‘六三, 包羞.

  ‘六二, 包承, 小人吉, 大人否, 亨.

  ‘初六, 拔茅茹, 以其彙, 貞吉, 亨. 


    구오(九五)는 막힌 상태를 끝내야 한다. 대인(大人)이라야  길하다.

   ‘이러다간 망하지’, ‘이러다간 망하지’ 하고 조심하면

    빽빽이 가지가 돋아난 뽕나무에 묶어둘 수 있다.


뽕나무는 뿌리가 견고하고 줄기와 껍질이 질기다. 따라서 말이나 소의 고삐를 뽕나무 그루터기에 묶어두면 안전하다. 더구나 가지가 총총 뻗은 뽕나무는 고삐가 가지에 걸리기 때문에 미끄러질 염려도 없다. 그러므로 안전하다는 말을 실감나게 표현할 때 옛사람들은 ‘뽕나무에 묶어 둔다’고 했다. 소인의 시대, 군자의 시대가 가는 때이니 굳세게 할 때가 아니다. 그러므로 위기에 처한 지도자는 특히 대인(大人)이어야 한다. 대인이어야 모든 사람과 한마음이 되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 구오는 중정(中正)의 자리에 있으므로 대인의 덕을 갖추고 있다.



[5]-9 子曰 德薄而位尊하며 知(智)小而謀大하며

        力小而任重하면 鮮不及矣나니

        易曰 鼎 折足하여 覆公餗하니 其形이 渥이라 凶이라하니

        言不勝其任也라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덕(德)이 천박하면서도 자리가 높고,

     지혜(智慧)가 작으면서도 도모하는 것이 크며,

     힘이 적으면서 짐이 무거우면 화가 미치지 않음이 드물다.

     역(易)[정괘(鼎卦) 구사(九四)]에 말하기를

    ‘솥의 다리가 부러져 왕공(王公)이 먹을 음식을 엎으면

     그 형벌로 목을 벨 것이니 흉하다’고 했으니 임무를 감당할 수 없음을 말한 것이다.”


* [易曰 鼎 折足하여 覆公餗하니 其形이 渥이라 凶이라정괘(鼎卦) 구사(九四)


[50] 정괘(鼎卦)의 상괘는 이괘(離卦, ☲)이고 하괘는 손괘(巽卦, ☴)다. 괘상의 전체를 두고 보면 꼭 솥[鼎]의 형상이다. 괘의 자질로 보면 이괘는 ‘불’을 상징하고 손괘는 ‘나무’를 상징한다. 그러므로 아래에서 나무를 지펴 불을 때어 밥을 짓는 것이니 바로 솥[鼎]이다.


『본의(本義)』에서 말했다. “정(鼎)은 삶아서 요리하는 기물이다. 괘(卦)의 됨이 아래의 음(陰)은 (솥의) 발이 되고 이효(二爻)·삼효(三爻)·사효(四爻)의 양(陽)은 배가 되며 오효(五爻)의 음(陰)은 귀가 되고 위의 양효(陽爻)는 현(鉉)이 되니 솥의 상(象)이다. 또 손목(巽木)으로 이(離)의 불[火]에 들어가 삶아서 요리하니 솥의 쓰임이다.”



[50] 鼎卦

鼎, 元(吉), 亨

 ‘九, 鼎玉鉉, 大吉, 无不利.

  ‘六五, 鼎黃耳金鉉, 利貞.

  ‘九四, 鼎折足, 覆公餗, 其形渥, 凶.

  ‘九三, 鼎耳革, 其行塞, 雉膏不食, 方雨虧悔, 終吉.

  ‘九二, 鼎有實, 我仇有疾, 不我能卽, 吉.

  ‘初六, 鼎顚趾, 利出否, 得妾以其子, 无咎. 


         구사(九四)는 솥의 발이 부러져 공(公)이 먹을 음식을 엎으면

         그 형벌이 목을 베는 것이니 흉하다.


구사(九四)는 솥 안의 음식을 잔치상(床)에 퍼 나르는 자이다. 그런데 구사(九四)는 음(陰)의 자리에 양(陽)이 와서 부정(不正)이요 또한 중(中)도 아니다. 솥의 발은 초육(初六)인데 초육 역시 부정(不正)이고 부중(不中)이다. 그래서 서로 원만하게 호응(呼應)하지 않는다. 그래서 ‘솥의 발이 부러졌다’고 한 것이다. 솥 다리가 부러지면 상(床) 위에 음식이 엎어지게 된다. 구사(九四)가 차려서 올리는 음식은 존위의 군주가 먹는 음식상이다. 이렇게 불경(不敬)하고 방자(放恣)한 일이 없다. 그래서 ‘그 얼굴이 땀이 나서 흥건히 젖어서 흉하다’고 했다.


* [강 설(講說)] —————

덕(德)이 없는 사람이 높은 지위에 있으면 그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하여 문제를 일으키고, 또 일으킨 문제를 수습하지 못해 화(禍)를 입게 된다. 지혜(智慧)가 얕은 사람이 규모가 큰일을 계획하면 그것을 감당하지 못하여 일을 그르치고 만다. 이는 힘없는 사람이 무거운 짐을 진 것과 같다.


[5]-10 子曰 知幾 其神乎인저!

          君子 上交不諂하며 下交不瀆하나니 其知幾乎인저!

          幾者는 動之微니 吉[凶]之先見(현)者也니

          君子 見幾而作하여 不俟終日이니

          易曰 介于石이라 不終日이니 貞코 吉하다하니

          介如石焉커니 寧用終日이리오. 斷可識矣로다.

          君子 知微知彰知柔知剛하나니 萬夫之望이라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기미(幾微)를 아는 것이 신묘한 것이다.

    군자는 윗사람과 사귀더라도 아첨하지 않고, 아랫사람과 사귀더라도 모독하지 아니하니,

    기미(幾微)를 아는 것이다. 기미란 움직임이 은미한 것이고, 길[흉]이 먼저 나타난 것이다.

    군자(君子)는 기미를 보고 일을 처리하니 종일을 기다리지 않는다.

    역(易)[예괘(豫卦) 육이(육二)]에서 말하기를,

   ‘돌에 끼어 있으니 종일 기다리지는 않아야 하는 것이니,

    참고 견디면서 잘 분별하면 길하다’고 했다.

    끼어 있는 것이 돌과 같으니 어찌 하루를 기다리겠는가? 단행해야 함을 알 수 있다.

    군자(君子)는 은미한 징조를 알고 드러난 모습도 알며, 부드러운 것도 알고 굳센 것도 안다.

    그러므로 모든 사람이 우러러본다.”

 

* [易曰 介于石이라 不終日이니 貞코 吉하다] —  [16] 예괘(豫卦) 육이(六二)의 효사


[16] 예괘(豫卦)는 진(震, ☳)이 위에 있고 곤(坤, ☷)이 아래에 있어서 순하게 동하는 상(象)이니, 동(動)하면서 화순(和順)하기 때문에 즐거운 것이다. 구사(九四)는 동(動)의 주체가 되어, 상하의 여러 음(陰)이 응하고 곤(坤)이 또 순함으로써 받드니, 이는 동함에 상하가 순하게 응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조화롭고 기쁜 뜻’을 이룬다. 그래서 ‘예(豫)’라 한 것이다.


현재의 상황은 순조롭지 않다. 하층부가 모두 빈약한 음(陰)들이며, 정책의 결정권자[六五]도 음(陰)이다. 그리하여 전체적으로 매우 침체되어 있다. 이런 상황에서 구사(九四)가 움직임[動]의 주체가 되어야 한다. 구사(九四)가 ‘동기(動機)를 부여(賦與)’하면 상하의 음(陰)들이 함께 응하고 곤(坤)이 또한 순함으로써 받들게 된다.



[16] 豫卦

   豫, 利建侯 行師


 · ‘上六, 冥豫成, 有渝无咎.

 · ‘六五, 貞疾, 恒不死.

 · ‘九四, 由豫, 大有得, 勿疑, 朋盍簪.

 · ‘六三, 盱豫悔, 遲有悔.

 · ‘六二, 介于石, 不終日, 貞吉.

 · ‘初六, 鳴豫, 凶.


    육이(六二)는 돌에 끼어있다. 종일토록 그러지 않고 바르게 하면 길할 것이다.


『주역강설』에서 말했다. “육이(六二)는 하층부의 중심으로 중정(中正)의 자리에 있다. 괘의 상(象)을 보면 현재 실권자는 육오(六五)지만 능력자인 구사(九四)의 시대가 도래한다. 그러므로 육오(六五)와 구사(九四)에게 동시에 관심을 받고 있는 육이(六二)는 육오(六五)의 명령을 우선 들으면서 구사(九四)의 존재를 살피지 않을 수 없다. 그래서 운신이 자유스럽지 못하다. 이를 가리켜 ‘돌에 끼어 있다’고 했다.”


육이(六二)는 새 시대를 맞이해야 하는 주인공이다. 육오(六五)와 구사(九四)의 틈에 끼어 종일토록 가만히 있으면 안 된다. 기회를 보아 구사(九四)가 성장할 수 있는 길을 제공해야 한다. 그러나 이런 일은 공개적으로 하면 육오(六五)에게 배척을 당하므로 조짐[幾微]을 보고 은밀하게 추진해야 한다. 예컨대 육오(六五)가 궁예라면 구사(九四)는 왕건이다. 신하 최응은 두 사람 사이에 끼어 있다가 결정적인 순간에 왕건을 위해 큰 역할를 한다. 최응이 처한 상황이 바로 예괘의 육이(六二)이다.


* [강 설(講說)] —————

일이 벌어진 후에 대책을 준비하면 이미 때가 늦어지고 만다. 무너진 집을 고치는 것은 불가능한 것과 같다. 미리 그 일의 징조(徵兆)를 보고 차근히 대비(對備)해야 한다. 역(易)의 이치를 알아 변화(變化)에 대처하는 능력을 갖추면, 기미(幾微)를 보고 그 일의 과정을 예측(豫測)하고 대처할 수 있게 될 것이다.



[5]-11 子曰 顔氏之子 其殆庶幾乎인저!

          有不善이면 未嘗不知하며 知之면 未嘗復(부)行也하나니

          易曰 不遠復이라 无祗悔 元吉이라하니라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안회(顔回)는 아마도 (역리에 실천에) 거의 가까웠던 것 같다.

     올바르지 않은 것이 있으면 알지 않은 적이 없었고,

     알았으면 다시 저지르지 않은 적이 없었고, 알았으면 다시 저지르지 않았다.

     역(易)[복괘(復卦) 초구(初九)]에서 말하기를,

    ‘멀리 가지 않고 돌아오면 후회하는 일에 이르지 않을 것이니 크게 길하다’고 하였다.”


* [易曰 不遠復이라 无祗悔 元吉이라] — [24] 복괘(復卦) 초구(初九)의 효사


[24] 복괘(復卦)의 상괘는 곤괘(坤卦, ☷)이고 하괘는 진괘(震卦, ☳)이다. 이 괘에서 가장 눈에 띄는 것은 유일한 양(陽)인 초구(初九)이다. 초구(初九)는 이 괘 전체의 생명이다. 만일 초구가 제 역할을 못한다면 전체의 생명은 없어지고 만다. 가을에 떨어진 열매에서 봄에 새싹이 돋아나는 것과 같다. 새싹이 자라 다시 가지를 뻗고 열매를 맺기 위해서는 작년에 떨어진 낙엽이 모두 썩어서 자양이 되어야 한다. 그래야만 이 씨앗이 부활하여 생명을 이어갈 수 있다. 그래서 이 괘의 이름을 ‘부활시켜야 한다’는 의미로 ‘복(復)’이라 붙였다.


[24] 復卦

   復, 亨. 出入无疾,

朋來无咎,

  反復其道, 七日來復. 利有攸往.

 上六, 迷復, 凶, 有災眚. 用行師, 終有大敗,

          以其國, 君凶, 至于十年不克征

  '六五, 敦復, 无悔

  ‘六四, 中行獨復.

  ‘六三, 頻復, 厲无咎.

  ‘六二, 休復, 吉.

初九, 不遠復, 无祗悔, 元吉.


       초구(初九)는 멀리 가지 않고 회복하게 되니 후회에 이르지 않으니 크게 길하다.


초구(初九)는 부활(復活)하는 상황에서 생명(生命) 그 자체이다. 그것도 양(陽)의 자리에서 시작하는 굳센 생명력이다. 그래서 ‘머지않아 곧 회복된다’고 한 것이다. 비록 여린 생명이 다시 잉태되고 있지만 그 생명력(生命力)이 굳센 것이니, 크게 길한 것이다.


『주역강설』에서 말한다. 초구(初九)는 추운 겨울을 지내고 초봄을 맞이하려는 순간이고, 오랜 혼란의 시기가 종말을 고하고 새로운 질서의 시대가 도래 하려는 찰나이다. 역사는 사계절이 순환하듯 그렇게 순환한다. 일정 기간의 혼란을 겪고 나면 안정된 시기를 맞이하고, 안정이 지속되면 다시 혼란에 빠진다. 말하자면 일치일란(一治一亂)이 반복하여 진행되는 것이다. 그러나 역사적으로 볼 때, ① 혼란의 방향으로 너무 멀리 가버려서 돌아오지 못하고 멸망해 버리는 역사도 있고, ② 혼란의 방향으로 한참 나아간 뒤에 돌아오는 역사도 있으며, ③ 약간 갔다가 금방 되돌아오는 역사도 있다. ③의 경우와 같이, 멀리 가지 않고 돌아오는 경우는 최선의 방향에 가까운 순탄한 역사이므로 크게 길(吉)한 것이다.


이러한 역사의 방향을 창출하기 위해서는 국가의 경우라면 국민의 정치적 수준이 높아야 하고, 개인의 경우라면 인격과 교양을 갖추어야 한다. 그래서 수신(修身)의 과정이 필요한 것이다. 공자(孔子)는 그 수신(修身)의 전형적인 예로 안자(顔子)를 들기를 주저하지 않았다. 공자는 안자의 수신(修身)을 ‘不遷怒 不貳過’로 표현했다.『논어(論語)』<옹야편>에 나온다.


* [강 설(講說)] —————

안회(顔回)는 공자의 수제자이다. 30세에 요절(夭折)하여 공자를 애통하게 했던 인물이다. 공자는 그가 거의 자기의 수준의 경지에 오를 수 있는 자질(資質)과 덕(德)을 갖추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요절하여 그 도의 완성을 보지 못했다고 슬퍼했다. 그가 죽자 공자는 ‘하늘이 나를 버리시는구나!’ 하며 통곡(痛哭)을 했는데, 이를 본 제자들이 ‘선생님께서 통곡을 하셨습니다.’라고 하자, 공자는 “내가 이 사람을 위해서가 아니라면 누구를 위하여 통곡하겠느냐” 하면서 더욱 슬퍼했다.


『논어』에 의하면, 안회(顔回)는 아주 가난하게 살면서도 열심히 공부하며 도(道)를 즐겼으며 성나는 일이 있어도 다른 사람에게는 그 화를 전가하지 않았고, 한 번 범한 실수나 과오는 되풀이 하지 않았다고 한다. 얼마나 자기성찰과 수양이 철저했던 사람인가를 볼 수 있는 대목이다. 잘못을 저지르지 않는 것보다 반성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 잘못을 한 번도 저지르지 않는 사람은 없기 때문이다.

 

[5]-12 天地 絪縕에 萬物이 化醇하고 男女 構精에 萬物이 化生하나니

          易曰 三人行앤 則損一人코 一人行앤 則得其友라하니 言致一也라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하늘의 기운과 땅의 기운이 교감하고 쌓여

      만물이 응결하고 암컷과 수컷이 교합하여 만물이 생겨난다.

     역(易)[손괘(巽卦) 육삼(六三)]에서 말하기를,   ‘세 사람이 가면 한 사람을 잃고,

     한 사람이 가면 그 벗을 얻는다’고 했으니, 한결같은 마음을 이루는 것을 말한다.”


· ‘天地 絪縕’(천지온인)에서 ‘絪’(인)은 ‘기운, 천지의 기운’, ‘縕’(온)은 ‘쌓다’

· ‘萬物 化醇’에서 ‘醇’(순)은 ‘진한 술, 순일하다’


* [易曰 三人行앤 則損一人코 一人行앤 則得其友라] - [41] 손괘(損卦) 육삼(六三)


주역 [41] 손괘(損卦)의 상괘는 간괘(艮卦, ☶)이고, 하괘는 태괘(兌卦, ☱)이다. 여기 손괘(損卦)의 근본은 지천(地天) 태괘(泰卦)이다. 태괘(泰卦)는 위의 땅[坤, ☷]은 아래로 내려오는 속성이 있고, 아래의 하늘[乾, ☰]은 위로 올라가는 속성으로 말미암아 상·하가 서로 만나서 교합(交合)하는 양상이다. 그래서 태괘(泰卦)의 괘상을 보면, 소인(小人)의 시대가 가고 군자(君子)의 시대로 오는 상황이다. 그런데 태괘(泰卦)의 상괘는 곤(坤)으로 ‘물질문명’을 상징하고 하괘인 건(乾)은 ‘정신문화’를 상징한다.


‘손(損)’은 비우는 상황이다. 비우는 것은 자신의 것을 덜어서 다른 것을 유익(有益)하게 하는 것이다. 욕심(慾心)을 비워서 덕(德)을 쌓는 일이다. 비우는 상황에서 우선 믿음을 가져야 하고 두 번째는 큰마음으로 하면 길하고 세 번째는 바르게 할 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 일단 마음먹었으면 과감하게 실행에 옮겨야 한다. 그러면 이롭다. 욕심을 비워서 덕(德)을 쌓는 일은 소박한 마음으로 정성(精誠)을 다해야 한다. ‘두 개의 대그릇으로도 제사를 지낼 수 있다.’는 것은 지극히 소박한 제사이다. 그러나 마음을 비우고 정성을 다하면 된다.


[41] 損卦

 損, 有孚, 元吉, 无咎, 可貞, 利有攸往.

 曷之用 二簋可用享

 上九, 弗損益之, 无咎, 貞吉, 有攸往, 得臣无家.

  ‘六四, 損其疾, 使遄有喜, 无咎.

  ‘六四, 損其疾, 使遄有喜, 无咎.

  ‘六三, 三人行, 則損一人, 一人行, 則得其友.

  ‘九二, 利貞, 征凶, 弗損益之.

  ‘初九, 已事遄往, 无咎, 酌損之. 


    육삼(六三)은 세 사람이 가면 한 사람을 덜고, 한 사람이 가면 그 벗을 얻는다.


[주역강설]▶ 육삼(六三)은 하층부 태괘(兌卦, ☱)의 가장 윗자리에 있다. 아래의 두 양(陽)이 따르니 현재에 만족하고 기뻐한다. 그러나 육삼(六三)은 원래 양의 자리에 음(陰)‘이 왔으므로 부정(不正)이고 또 부중(不中)이다. 그러므로 육삼(六三)은 작은 만족에 안주하지 않고 대의를 위해 자기 욕심(慾心)을 덜어내야 한다. 육삼(六三)이 자기를 따르는 구이(九二)와 초구(初九)를 함께 어울리게 되면 결국 삼각관계가 되어 갈등이 생긴다. 정리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안 된다. 그래서 ‘세 사람이 가면 한 사람을 덜어야 한다’고 한 것이다.


* [강 설(講說)] —————

만물이 화순한다는 것은 만물의 기(氣)가 응결하는 것이다. 기가 응결하면 생명이 이루어진다. 기는 구체적인 음양의 교합에 의해서 실재적인 존재를 형성한다. 이를 ‘만물 화생’이라고 한다. ‘순(醇)’은 술의 원액에 해당하는 것이기 때문에 생명 현상의 근원인 기운이 응결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5]-13 子曰 君子 安其身而後에야 動하며 易其心而後에야 語하며

           定其交而後에야 求하나니 君子 修此三者故로 全也하나니

           危以動하면 則民不與也코 懼以語하면 則民不應也코

           无交而求하면 則民不與也하나니 莫之與하면 則傷之者 至矣나니

           易曰 莫益之라 或擊之리니 立心勿恒이니 凶이라하니라.

           右는 第五章이라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군자(君子)는 몸이 편안해진 뒤에 움직이고,

       마음을 다스린 뒤에 말하며, 사귐이 확고하게 한 뒤에 남에게 요구한다.

       군자는 이 세 가지를 닦아서 완수하기 때문에 온전하다.

       자기 몸이 위태로운 상태에서 움직이면 백성들이 함께 하지 않으며,

       마음에 두려움이 있으면서 말을 하면 백성들이 호응하지 않으며,

       사귐이 확고하지 않은 상태에서 요구하면 백성들이 도와주지 않는다.

       도와주는 사람이 없으면 해치는 자가 이른다.

       역(易)[익괘(益卦) 상구(上九)]에서 말하기를

      ‘도와주는 사람이 없다. 어떤 사람이 공격해 올 것이니,

       마음을 세우되 항상됨을 잃으면 흉하다’고 했다.


· ‘易其心而後’에서 ‘易’(이)는 ‘다스리다’의뜻


* [易曰 莫益之라 或擊之리니 立心勿恒이니 凶이라] [42] 익괘(益卦) 상구(上九)


주역<益卦 第四十二> ; 이 괘의 상괘는 바람이 순조롭게 부는 손괘(巽卦, ☴)이고 하괘는 움직이는 성격이 강한 진괘(震卦, ☳)이다. 특히 상층부의 능력 있는 육사(六四)가 하층부의 개혁주도자인 초구(初九)와 상응(相應)한다. 육사(六四)는 음(陰)이기 때문에 아래로 내려오고 싶어 하고 강양(剛陽)인 초구(初九)는 위로 올라가고 싶어 하기 때문에 자연히 조화(調和)를 이룬다. 초구(初九)와 육사(六四)가 조화를 이루면, 초구(初九)의 힘은 전체의 발전을 위한 에너지로 변한다. 그렇게 되면 전체적으로 큰 이익(利益)이 생긴다. 그래서 이 괘의 이름을 ‘익(益)’이라 한 것이다.


익(益)은 더함이다. 상괘 초효[九四]의 양(陽)을 덜어서 하괘 초효[初六]의 음(陰)에 더해주었으니, 상괘(上卦)로부터 하괘(下卦)로 내려왔다. 그래서 익(益)이라 한 것이다. 구오(九五)와 육이(六二)가 모두 중정(中正)을 덕을 지니고 있으니 유익함이 있다.


[42] 益卦

益, 利有攸往,

利涉大川.


  上九, 莫益之, 或擊之, 立心勿恒, 凶.

  ‘九五, 有孚惠心, 勿問元吉, 有孚惠我德.

  ‘六四, 中行告公從, 利用爲依遷國.

  ‘六三, 益之用凶事, 无咎, 有孚中行, 告公用圭.

  ‘六二, 或益之十朋之龜, 弗克違, 永貞吉, 王用享于帝, 吉.

  ‘初九, 利用爲大作, 元吉, 无咎. 


      상구(上九)는 유익하게 하지 말아 보아라! (그렇게 하면) 혹 공격을 받을 수 있으니

      마음을 세우되 항심(恒心)을 잃으면 흉(凶)하다.


상구(上九)는 도우는 상황에서 부중(불中) 부정(不正)으로 실권도 없고 능력이 쇠퇴한 원로이다. 그렇다고 역시 부중(不中)·부정(不正)인 육삼(六三)의 도움을 기대하기도 어렵다. 그래서 ‘이제 누구를 도울 것도 없다.’하고 체념하고 전체를 외면하기가 쉽다. 그러면 안 된다. 그렇게 되면 모든 구성원들이 그를 외면하거나 비난을 하게 된다. 그래서 ‘어떤 공격(攻擊)을 받을 수 있다’고 한 것이다. 상구(上九)는 내적으로 손순의 덕을 쌓은 원로이다. 모든 구성원들을 도우는 일은 일단 마음을 세웠으면 한결 같은 마음으로 끝까지 계속되어야 한다. 그래서 ‘마음을 세우되 항심(恒心)을 잃으면 흉(凶)하다’고 한 것이다.


돕고 유익하게 하는 익괘(益卦)에서 초구(初九)가 홍익(弘益)의 밑그림[계획]을 그렸다면, 상구(上九)에서는 그 계획을 끝까지 실천하여 유종(有終)의 미(美)를 거두어 한다. 그리하면 ‘홍익인간(弘益人間)’의 세계가 구현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처음 세운 뜻[立志]을 한결같이 하지 않으면[勿恒] 흉하다’고 한 것이다.


* [강 설(講說)] —————

자연은 언제나 편안하고 안정적이다. 설사 번개와 천둥으로 요동하고 바람으로 가격하는 것도 생명을 깨우고 살게 하려는 작용이니, 길게 보면 편안하고 안정됨을 추구하는 것이다. 사람들은 누구나 편안함과 안정을 추구하기 때문에 위태로운 사람을 가까이 하지 않고, 불안한 사람의 말을 믿지 않는다.


인간관계에 있어서도 서로 일체감이 조성되어 피차의 입장을 편견없이 공감할 수 있어야, 요구하고 부탁하는 것이 자연스럽다. 그렇지 않은 상태에서 무언가를 요구하고 부탁하면 편안하지 않다. 성사되기 어렵다.



<제6장> ; 주역의 바탕이 되는 건곤(乾坤)



[6]-1 子曰 乾坤은 其易之門邪인저.

        乾은 陽物也요 坤은 陰物也니 陰陽이 合德하여 而剛柔가 有體라.

        以體天地之撰하며 以通神明之德하니 其稱名也 雜而不越하나

        於稽其類엔 其衰世之意耶인저.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건(乾)과 곤(坤)을 역의 문(門)인가?"

      건(乾)은 양물(양物)이고 곤(坤)은 음물(陰物)이다.

      음과 양이 덕을 합해서 굳센 것과 부드러운 것이 일정한 성격을 갖는다.

      그럼으로써 하늘과 땅의 일을 재현하고, 그럼으로써 신명(神明)의 덕(德)에 통달한다.

      괘(卦)의 명칭이 잡다하지만 건곤(乾坤)의 작용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그 유형을 살펴보건대, 그것은 아마도 쇠퇴하는 시대를 의미하는 것일 것이다.


· ‘以體天地之撰’에서 ‘撰’(찬)은 ‘짓다, 품다, 만들다’의 뜻


* [강 설(講說)] —————

건괘(乾卦)와 곤괘(坤卦)은 모든 괘의 전형이다. 이 두 괘를 바탕으로 나머지 모든 괘가 형성된다. 그래서 건(乾)과 곤(坤)을 역의 문(門)이라고 했다.


괘가 성립하면 음(陰)과 양(陽)이 서로 어울려 굳세게 행동하는 것과 부드럽게 행동하는 것 등 괘의 성격이 정해진다. 예컨대 양과 양이 합하여 태양(太陽)이 되어 매우 굳세게 행동해야 하지만, 양과 음이 어울리면 소양(少陽)이나 소음(少陰)이 되어 약간 세계 또는 약간 부드럽게 행동해야 한다. 또 음과 음이 어울리면 아주 부드럽게 행동해야 한다.


이렇게 행동지침이 정립되고 나면, 천지의 일을 따라 실천할 수 있고, 그럼으로써 천지의 일을 체현할 수 있고 신명의 덕에 통할 수 있다.


괘의 명칭(名稱)은 다양하게 예순 네 가지나 되지만, 그 내용은 모두 건곤(乾坤)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그리고 그 유형(類型)을 면밀히 살펴보면, 대체로 조심하고 걱정해야 하는 것이 압도적으로 많은데, 이는 복잡하고 어지러운 시대를 반영하고 만들어진 것임을 의미한다고 보여진다.


[6]-2 夫易은 彰往而察來하며 而微顯[微顯而]闡幽하며

         開而當名하며 辨物하며 正言하며 斷辭하니 則備矣라.

         其稱名也 小하나 其取類也 大하며 其旨 遠하며 其辭 文하며

         其言 曲而中하며 其事 肆而隱하니

         因貳하여 以濟民行하여 以明失得之報니라.

         右는 第六章이라.


     대저 역(易)은 지나간 것을 분명히 알고 올 것을 살피며,

     은미(隱微)한 것을 드러내고 숨어 있는 이치를 밝히며,

     만물의 이치를 열어서 마땅하게 이름을 붙이며, 만물이 처한 상황을 잘 분별하며,

     말을 바르게 하고 사(辭)를 단행하니 모든 것이 완비되어 있다.

     이름을 일컫는 것은 작은 일이지만 진리의 유형을 취하는 것은 크다.

     그 의미는 심원하고 그 사(辭)는 세련되다. 그 말은 상세하면서도 이치에 맞고,

     그 일을 많이 벌려놓았으면서도 은밀하다.

     의심스러운 것으로 인하여 백성들에게 행동방침을 알려준다.

     그리하여 행동의 잘잘못에 따라서 주어지는 보답에 대해서 밝힌다.


· ‘而微顯闡幽’(비현탄유)에서 ‘微顯’은 ‘은미한 것을 드러낸다.’ 문법적으로 ‘顯微’이다.


* [강 설(講說)] —————

역(易)은 변화의 원리를 상징적(象徵的)으로 표현한 것으로, 지나간 것의 변화(變化)의 원리를 살피고, 미래(未來)에 있을 변화의 내용을 살핌으로써 변화의 법칙을 설명한다.


변화를 예측·통찰하기 위해서는 그 변화의 기미(幾微)를 잘 살펴야 한다. 즉 인식하고 감지하기 힘든 은미한 것 속에서 앞으로 진행될 변화의 원리를 찾아야 하는 것이다. 역에서는 그것을 찾아내어 이름을 마땅하게 붙인 것이고, 각 효에 적용되는 이름을 마땅하게 붙였다. 초구에서는 잠룡(潛龍)이라 하고 구이에서는 견룡(見龍)이라 한 것은 각각의 상황을 분별한 것이다. 각각의 괘와 효의 내용을 바르게 말로 표현했으며, ‘길하다’, ‘흉하다’ 등으로 분명하게 단정했다. 그리하여 하늘과 땅과 만물의 이치를 갖추고 실천의 원리까지 갖추었다.


의심스럽다는 것은 ‘어떻게 해야 할지 확신하지 못하여 판단을 세우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역에서는 이러한 경우에도 그 처한 상황의 성격을 알려주고 대안을 제시해 준다. 그리고 취한 행동의 결과에 따라 주어지는 득실에 대해서도 밝혀준다. ‘이(利)/ 불리(不利)’, ‘길(吉)/ 흉(凶)’ 등이 그것이다.




<제7장> 우환(憂患)을 극복(克服)하는 9가지 지혜


[7]-1 易之興也 其於中古乎인저? 作易者 其有憂患乎인저?

    

     역(易)이 생겨난 것은 중고(中古)의 때인가?

     역을 만든 사람은 우환(憂患) 의식을 가지고 있었는가?


* [강 설(講說)] —————

역(易)은 복잡하고 어려운 상황을 극복하기 위하여 천지만물의 원리를 제시한 것이다. 그러므로 중고(中古)의 시대 즉 은(殷)나라 말기에서 주(周)나라 초기에 이르는 혼란기에 주로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된다. 혼란한 세상에서는 그 난국(亂局)을 극복하기 위해 다양한 처방이 많게 마련이다. 역(易)이 그 대표적인 것이다.


[7]-2 是故로 履는 德之基也요 謙은 德之柄也요

        復은 德之本也요 恒은 德之固也요

        損은 德之修也요 益은 德之裕也요

        困은 德之辨也요  井은 德之地也요 巽은 德之制也라.


    그래서

    리괘(履卦)는 덕을 실천하는 기본이 되고, 겸괘(謙卦)는 덕을 실천하는 손잡이이며,

    복괘(復卦)는 덕을 튼튼하게 하는 것이고, 항괘(恒卦)는 덕을 견고하게 하는 것이다.

    손괘(損卦)는 덕을 닦는 것이고 익괘(益卦)는 덕을 넉넉하게 하는 것이다.

    곤괘(困卦)는 덕을 분별하는 것이고, 정괘(井卦)는 덕을 다지는 것이며

    손괘(巽卦)는 덕을 제어하는 방법이다.


[7]-3 履는 和而至하고 謙은 尊而光하고 復은 小而辨於物하고

        恒은 雜而不厭하고 損은 先難而後易하고 益은 長裕而不設하고

        困은 窮而通하고 井은 居其所而遷하고 巽은 稱而隱하니라


    리괘(履卦)의 지시를 따르면 조화롭게 되어 진리에 이르고,

    겸괘(謙卦)의 지시를 실천하면 존귀해져서 빛나게 된다.

    복괘(復卦)의 지시를 실천하면 작은 일이라도 하더라도 다른 것과 구별되고,

    항괘(恒卦)의 지시를 실천하면 복잡해져도 염증이 나지 않는다.

    손괘(損卦)의 지시를 실천하면 처음은 어렵지만 나중에는 쉽고,

    익괘(益卦)의 지시를 실천하면 오래동안 넉넉하여 꾸미지 않는다.

    곤괘(困卦)의 지시를 실천하면 곤궁하다가도 통하고,

    정괘(井卦)의 지시를 실천하면 자기 자리에 가만히 있으면서 모두를 좋은 방향으로 옮기며,

    손괘(巽卦)의 지시를 실천하면 자기의 역할을 잘 하지만 외부로 드러나지는 않는다.


[7]-4 履以和行코 謙以制禮코 復以自知코 恒以一德코 損以遠害코

         益以興利코 困以寡怨코 井以辨義코 巽以行權하니라.

         右는 第七章이라


    리괘(履卦)로써 조화롭게 행동하고, 겸괘(謙卦)로써 예를 제정한다.

    복괘(復卦)로써 자신을 알고, 항괘(恒卦)로써 덕을 한결같이 한다.

    손괘(損卦)로써 해로움을 멀리하고. 익괘(益卦)로써 이로움을 일으킨다.

    곤괘(困卦)로써 원망 받을 일을 줄이고, 정괘(井卦)로써 의로움을 변별하며,

    손괘(巽卦)로써 권도(權道)를 행한다.


* [강 설(講說)] —————

『주역(周易)』<계사전·하> (제7장)에서는 ‘우환(憂患)이 생겼을 때 대처하는 아홉 가지 지혜’에 대해서 언급하고 있다. 그 9가지 지혜가 바로 이(履), 겸(謙), 복(復), 항(恒), 손(損), 익(益), 곤(困), 정(井), 손(巽) 등의 괘에 담겨 있다. 예컨대, 이(履)는 ‘덕을 실천하는 기본이 되는 것(履 德之基也)’이라 하고 그 지혜로 풀기를 ‘이괘(履卦)의 실천은 조화를 이루어 지극하다(履 和而至)’고 했으며, 그리고 또 ‘이괘(履卦)로써 조화롭게 행동하라(履以和行)’고 하고 있다. 그러므로 이괘는 단순히 ‘이행하라’는 것이 아니라 ‘조화롭게 이행하라’는 뜻으로 해석해야 한다. 그 조화(調和)의 지극함은 범의 꼬리를 밟더라도 사람을 물지 않는 상태이니, ‘조심조심’ 이행하여 완전한 조화를 이루기 위해서 ‘밝은 마음’으로 임해야 한다는 것이다.『맹자(孟子)』의 <고자장구·상>(제8장)에서 공자는 ‘조심(操心)’에 대해서 말씀하신다.


 

   08-02 雖存乎人者 豈無仁義之心哉 其所以放其良心者

            亦猶斧斤之於木也 旦旦而伐之 可以爲美乎

            其日夜之所息 平旦之氣 其好惡與人相近也者 幾希

            則其旦晝之所爲 有梏亡之矣 梏之反覆 則其夜氣不足以存

            夜氣不足以存 則其違禽獸不遠矣

            人見其禽獸也 而以爲未嘗有才焉者 是豈人之情也哉

        03 故苟得其養 無物不長 苟失其養 無物不消

        04 孔子曰 操則存 舍則亡 出入無時 莫知其鄕 惟心之謂與

 

(맹자께서 말씀하셨다.) “비록 사람에게 있는 것인들 어찌 어질고 의로운 마음이 없겠는가마는 그 양심을 놓아버리는 것이 또한 도끼가 나무에게 아침마다 가서 베는 것과 같으니, 그러고서도 아름답게 될 수 있겠는가? 그 낮과 밤이 양심을 불어나게 하는 것과 새벽에 기운에 있어서도, 그 좋아하고 미워하는 것이 다른 사람과 서로 비슷한 것(여기서는 양심 또는 본마음을 뜻함)이 거의 드문데, 그 아침과 낮에 하는 소행이 이를 꽁꽁 묶어 없애버리니 꽁꽁 묶어서 없애는 것을 반복하면 야기(夜氣)도 양심(良心)을 보전할 수가 없다. 야기(夜氣)가 보존할 수 없으면 금수(禽獸)와 다름이 멀지 않다.


사람들은 그 금수(禽獸) 같은 모습만 보고서 일찍이 좋은 재질(才質)이 있지 않았다고 생각하는 것이니, 이것이 어찌 사람의 본래의 모습이겠는가? 그러므로 진실로 기르는 기회를 얻으면 자라지 않는 것이 없고, 진실로 그 기르는 기회를 잃으면 소멸하지 않는 것이 없다. 공자께서 말씀하시기를,붙잡으면 보존되고 놓아두면 없어지며, 나가고 들어오는 것에 일정한 때가 없어서 그 방향을 알 수 없는 것은 오직 마음을 두고 말하는 것이다’ 하셨다.”



❊ 주역에서 우환(憂患)을 극복(克服)하는 아홉 가지 지혜(智慧)


 우환 극복의

괘상(卦象) 

덕(德)의 갈래 

덕(德)의 지혜 

덕(德)의 실천 

[10] 天澤 履


 

  

德之基 

和而至 

履以和行 

 

[15] 地山 謙


 

 

德之柄 

尊而光

謙以制體 

 [24] 地雷 復


 

德之本 

小而辨於物

 復以自知


[32] 雷風 恒

 


 


德之固 

雜而不厭

恒以一德

 

[41] 山澤 損

 

 

德之修

先雜而后易

損以遠害

 

[42] 風雷 益

 

 

 德之裕

長裕而不設

益以興利

 

[47] 澤水 困


 


德之辨 

窮而通

困以寡怨

 

[48] 水風 井

 

  

 

 德之地

居其所而遷

井以辨義 

 

[57] 重風 巽


 

德之制

 稱而隱

 巽以行權


   <끝>

출처 : 동양철학 나눔터 - 동인문화원 강의실
글쓴이 : 백파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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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인문화원

조로아스터 2018. 7. 9. 20:53

[손기원 박사 周·人·工 四書三經] *<제110강> (2018.06.18.)

— <周·人·工 四書三經>은 ‘周易과 人性을 工夫하는 四書三經 강좌’를 말한다 —


주역(周易) 계사전(繫辭傳) (제6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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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주역(周易) 공부 ☞ 계사전·하 [제3~5장]


周易 繫辭傳·下 (제3~5장a)




* [주역(周易)의 공부와 마음의 수양(修養)]▶ [지혜롭고 참다운 삶의 길]


성현(聖賢)은 역(易)을 통하여 우리에게 지혜롭고 행복한 삶의 길을 열어주었다. 그러므로 우리는 참다운 삶을 살기 위하여, 무엇보다 우선 주역(周易)에 대한 이치(理致)를 공부하고, 아울러 그 주역을 바탕으로 마음을 수양(修養)하는 일에 정성을 다하여야 한다. 퇴계(退溪) 선생은, 주역의 내용을 궁구하여 삶의 이치(理致)를 터득하고, 마음 수양(修養)의 중심을 경(敬)으로 삼아 현자의 삶을 사셨다. ‘경(敬)은 심신의 모든 것을 치료하는 약’이라고 하셨다.


예컨대 주역 [48] 수풍(水風) 정괘(井卦)는 ‘우물치기’를 통하여 참다운 인격을 수양하는 과정을 보여준다. 퇴계 선생은 도산서당의 마당에 우물을 파서 그 이름을 ‘열정(冽井)’이라고 하여, 마음 수양(修養)의 표상으로 삼았다. [25] 천뢰(天雷) 무망(无妄)괘는 하늘을 두려워하며 망령되지 않도록 가르친다. 그리고 [2] 중지(重地) 곤괘(坤卦)에서는 사람이 지녀야 할 참다운 마음가짐과 그것을 실천하는 요목을 구체적으로 적시해 주고 있다. 특히 곤괘(坤卦) 이효(二爻)에서 ‘六二, 直方大, 不習无不利.’라고 한 것이 그것이다. ‘한마음으로 정직(正直)하게 판단해야 하고, 방정(方正)하면서도 대담(大膽)하게 행동해야 한다.’ 그렇게 되면 굳이 법도나 예절에 구애됨이 없이 상황에 맞고 바르게 처신하는 것이다. 시중(時中)의 처신은 이롭지 않음이 없는 것이다. 그것은 바로 ‘地道光也’ 즉 ‘땅의 도리가 빛나는 것’이다.


그리고 또 곤괘(坤卦) 이효(二爻)의 문언(文言)에서 말했다. “직(直)은 (마음을) 바르게 하는 것이고, 방(方)은 (행동을) 의롭게 하는 것이다. 군자가 경(敬)으로써 안을 곧게 하고 의(義)로써 밖을 방정하게 하면 경(敬)과 의(義)가 확립되어 덕(德)이 외롭지 않게 된다.(君子 敬以直內, 義以方外. 敬義立而德不孤.)”고 하였다.


마음을 기르는 일은 주로 명상(瞑想)을 통해 이루어진다. 주역 계사전(繫辭傳)에서 말한 ‘寂然不動 感而遂通’이 바로 마음의 수양을 통해 하늘의 뜻을 알고 살아가는 지혜를 설파한 것이다. 사람이 어떻게 사느냐 하는 것은 모두 자기 ‘마음의 작용’이다. 참다운 진리를 추구하는 사람은, ‘명상’을 통해, 그 마음이 ‘지극히 깨끗하고 고요하여 어떠한 외물에도 움직이지 않은 상태’를 이른다. 그것이 바로 적연부동(寂然不動)이다. 그리하여 그 마음이 ‘하늘의 뜻에 감응함으로써 천하의 모든 이치를 통달하는 것’이다. 감이수통(感而遂通)이다.


<제3장> ; 역(易)의 체계



   [3]-1 是故로 易者는 象也니 象也者는 像也요 彖者는 材也니라

            爻也者는 效天下之動者也니 是故로 吉凶이 生而悔吝이 著也니라

            右는 第三章이라.


 이 때문에 ‘역(易)은 이치를 본뜨는 것’이니 본뜬다는 것은 형상(形象)을 취하는 것이다.

 단(彖)이란 재질이다. 효(爻)라는 것은 천하의 모든 행동원리를 본받는 것이다.

 이 때문에 길(吉)한 것과 흉(凶)한 것이 생기고 후회할 일과 한스러운 일이 드러난다.


· ‘易者 象也’ ; ‘주역(周易)은 상(象)이다. 이는 주역을 정의한 유일한 문장인데, 주역을 딱 한 마디로 ‘상(象)’이라 한 것이다. 상(象)은 형상(形象)이다. 일반적으로 상(象)을 ‘Image’ 혹은 ‘Symbol’으로 옮기는데, 주역의 괘가 담고 있는 특유의 표현 양식인 ‘Code’인 것이다. 여기에서 ‘상(象)’이란 바로 주역의 괘(卦)의 상(象)이요, 효(爻)의 상(象)이다.’


· ‘彖者 材也’에서 ‘彖’(단)은 ‘결단(決斷)하다, 단정(斷定)지어 말하다’는 뜻이다. 괘(卦)의 상(象)을 보고 그 설명을 가한 것이다. . 그래서 괘사(卦辭)를 단사(彖辭)라고 한다. ‘材’는 ‘괘의 재질이나 본질적인 특성’을 말한다. 근세의 역학자 고형(高亨)은 ‘材’를 ‘재(裁)’라고 풀었는데, ‘재단(裁斷)하다’는 뜻이다.


· ‘상(象)’은 ‘상(像)’과 같은 것이고 ‘괘(卦)’는 ‘걸다[掛]’에서 온 말이고, ‘효(爻)’는 ‘본받다[효(效)]’에서 온 말이다.


* [강 설(講說)] ——————

‘동(動)’은 사람이 살아가는 행동원리를 말한다. 주역의 효(爻)는 사람이 살아가는 천하의 행동 원리를 본받아 코드와 효사로 표현한 것이다. 그러므로 행동원리에 마땅하게 행동하면 길하고, 그렇지 못하면 흉하다.


<제4장> ; 음양(陰陽)과 상수(象數)


주역(周易)에 대한 공부는 크게 두 가지의 경향으로 분류한다. 그 하나가 ‘상수역(象數易)’이요, 또 하나는 ‘의리역(義理易)’이다. ‘상수역’은 한(漢)나라 때 성행한 것으로 주역의 상(象)과 수(數)를 중시한다. ‘의리역’은 위·진(魏晉)시대의 왕필(王弼)이 특히 주창한 역학이다. 주역의 상(象)보다는 역에 담긴 뜻, 이치(理致), 취지 등을 중시하여 살핀다. 다시 말하면 괘사, 단사, 대상전, 효사, 소상전 등의 말씀을 깊이 있게 따지고 해석한다. 그러나 왕필은 ‘뜻을 얻었으면 상을 잊어버려라.(得義忘象)’라고 했다. 이로 보아, 그도 역(易)의 의리(義理)를 터득하기 위한 공부는 ‘상(象)’을 통해서 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 왕필(王弼, 226~249)은 중국 위(魏)나라의 학자. 하안(何晏)과 함께 위·진(魏晉)의 현학(玄學)의 시조로 일컬어진다. 의(義)와 이(理)의 분석적·사변적 학풍을 창설하여 중국 중세의 관념론체계에 영향을 끼쳤다. 왕필의 자는 보사(輔嗣)이고. 산둥성[山東省] 출생이다.


왕필(王弼)은 풍부한 재능을 타고난 데에다 유복한 학문적 환경에서 자랐기 때문에 일찍 학계에서 두각을 나타냈다. 관료인 하안(何晏) 등에 그 학식을 인정받아 젊은 나이에 상서랑(尙書郞)에 등용되었고, 하안과 함께 위·진(魏晉)의 현학(玄學: 老莊學)의 시조로 일컬어진다.

 

한(漢)나라의 상수(象數: 卦에 나타나는 형상과 변화)나 참위설(讖緯說: 예언학의 일종)을 물리치고 의(義)와 이(理)의 분석적·사변적(思辨的) 학풍을 창설하여 중국 중세의 관념론체계에 영향을 끼쳤다. 체용일원(體用一源), 즉 ‘무(無)’를 본체로 하고 ‘무위(無爲)’를 그 작용으로 하는 본체론(本體論)을 전개하여 인지(人知)나 상대세계(相對世界)를 무한정으로 보는 노자(老子)의 〈무위자연(無爲自然)〉에 귀일함으로써 현실의 모순을 해결하려고 하였다. 저서인《노자주(老子註)》《주역주(周易註)》는 육조시대(六朝時代)와 수(隋)·당(唐)에서 성행하였으며, 현존한다.


 [4]-1 陽卦는 多陰하고 陰卦는 多陽하니

         其故는 何也오? 陽卦는 奇이고 陰卦는 耦일새라

         其德行은 何也오? 陽은 一君而二民이니 君子之道也요

         陰은 二君而一民이니 小人之道也라 右는 第四章이라


     양괘(陽卦)에는 음(陰)이 많고 음괘(陰卦)에는 양(陽)이 많다.

     그 까닭은 무엇인가? 양(陽)은 홀수이고 음(陰)은 짝수이기 때문이다.

     음괘(陰卦)와 양괘(陽卦)의 마땅한 행위는 무엇인가?

     양괘는 임금이 하나이고 백성이 둘이니 군자(君子)의 도(道)이다.

     음괘에는 임금이 둘이고 백성이 하나이므로 소인(小人)의 도(道)이다.


* []는 ‘우(偶)’와 통용. 偶는 偶數 즉 짝수이다.


* [강 설(講說)] ——————

팔괘(八卦)에서 양괘(陽卦)란 건(乾), 진(震), 감(坎), 간(艮)이다. 이 중 건괘를 제외한 나머지 괘는 양이 하나이고 음이 둘이다. 음괘(陰卦)는 곤(坤), 태(兌), 이(離), 손(巽)인데, 곤괘를 제외한 나머니 괘는 양이 둘이고 음이 하나이다. 그러므로 ‘양괘는 음(陰)이 많고 음괘에는 양(陽)이 많다’고 한 것이다. 양의 수는 홀수[奇數]이고, 음의 수는 짝수[偶數]이다. 그래서 양효가 하나인 괘가 양괘(陽卦)이고 양효가 둘인 괘는 음괘(陰卦)이다. *[도표] 참조


八卦

乾卦

兌卦

離卦

震卦

巽卦

坎卦

艮卦

坤卦

自然

一乾天

二兌澤

三離火

四震雷

五巽風

六坎水

七艮山

八坤地

卦象

陰陽

양괘

음괘

음괘

양괘

음괘

양괘

음괘

음괘

家族

부(父)

소녀

중녀

장남

장녀

중남

소남

모(母)


양(陽)을 임금으로 보고, 음(陰)을 백성으로 본다면 양괘(陽卦)는 하나의 임금에 백성이 둘이니 정상이지만, 음괘(陰卦)는 두 임금에 한 백성이니 비정상이다. 그래서 양괘는 군자(君子)의 도(道)이고 음괘는 소인(小人)의 도(道)이다.


그러나 이런 식의 의미 부여는 다소 양(陽)을 높이고 음(陰)을 억제한다는 ‘억음부양(抑陰扶陽)’이 사상이 개입한 것으로 보인다. 일반적으로 어떤 집단에 남자 둘에 여자가 한 사람 있으면 여자가 주도권을 잡게 되고, 여자 둘에 남자가 한 사람이면 남자가 주도권을 잡게 된다. 따라서 양이 많은 괘는 음(陰)을 중심으로 살피고 음이 많은 괘는 양(陽)을 중심으로 살펴야 한다고 설명하는 것이 합당할 듯하다. 양괘늘 군자의 도라 하고 음괘를 소인의 도라고 한 것은, 임금을 양이라 규정하고 백성을 음이라 규정하는 음양론을 도식적으로 적용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 (이기동)


<제5장> ; 사례(事例)로 보는 역(易)의 진리


[5]-1 易曰 憧憧往來면 朋從爾思라하니 子曰 天下 何思何慮리오?

         天下 同歸而殊塗하며 一致而百慮니 天下 何思何慮리오?


  역(易)[咸卦 九四]에 말하기를

 ‘그리워하는 마음으로 왕래하면 벗이 너의 생각을 따를 것이다.’라고 했다.

  공자(孔子)는 이것을 해석하여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천하 만물은 그 삶에 있어서 무엇을 생각하며 무엇을 헤아리겠는가?

  천하 만물은 같은 목적으로 나아가지만 길은 다르고, 삶으로 가는 것은 일치하지만

  생각은 다양하니, 천하 만물이 그 삶에 있어서 무엇을 생각하고 무엇을 근심하겠는가?”


* [憧憧往來면 朋從爾思라] — [31] 택산 함괘(咸卦)  구사(九四)의 효사


☞ 그 원문(原文)은 이렇다. ‘[31咸] 九四, 貞吉, 悔亡, 憧憧往來, 朋從爾思.’ 풀이하면 ‘구사(九四)는 바르게 하면 길하여 후회할 일이 없을 것이다. 그리워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왕래하면 벗이 너의 생각을 따를 것이다.’이다. 함괘(咸卦)는 소녀(상괘)와 소남(하괘)의 남녀(男女)가 서로 마음이 맞아 감응(感應)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괘사에서 ‘밝은 마음으로 서로 상대방에게 이롭게 하고 바르게 대한다’고 했다.


[31] 澤山 咸

 

咸, 亨, 利貞, 取女吉

  上六, 咸其輔頰舌.

  ‘九五, 咸其脢, 无悔.’

  ‘九四, 貞吉, 悔亡, 憧憧往來, 朋從爾思.

  ‘九三, 咸其股, 執其隨, 往吝.

  ‘六二, 咸其腓, 凶, 居吉.

  ‘初六, 咸其拇.


[31] 함괘(咸卦) 상층부의 구사(九四)는 양(陽)이기 때문에 하층부의 초육(初六)과 육이(六二)가 그를 잘 따른다. 바로 여기에서 구사(九四)가 잘 분별해야 할 점이 있다. 구사(九四)가 짝할 대상은 초육(初六)이다. 그런데 예쁘고 성숙한 육이(六二)에게 매료되기 쉽다. 그러나 육이(六二)의 짝은 존위의 구오(九五)이다. 설사 육이(六二)에게 마음이 끌린다 하더라도 마음을 바르게 해야 한다. 그리고 초육(初六)에게 구애(求愛)를 해야 한다. 그래서 ‘바르게 하면 길하여 후회할 일이 없을 것’이라고 했다. 초육(初六)이 아직 어리기 때문에 정성을 들여 지속적으로 구애해야 한다. 그렇게 하면 초육(初六)도 마음과 몸이 성숙하면서 응해 올 것이다. 그래서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왕래하면 벗이 너의 생각을 따를 것’라고 했다. 그런데 초육(初六)은 아직 성숙하지 않았다. 그래서 ‘아직 빛나거나 크지 않았다’고 했다.


* [강 설(講說)] ——————

천하의 모든 존재는 ‘삶’의 방향을 향해 나아가고 있다. 이 ‘생명의 원리’는 모든 존재의 공통적인 원리이다. 그러나 그 ‘삶’을 영위하는 방식과 길은 각기 다르고, ‘삶’을 추구하는 과정에서 나타나는 생각도 역시 다르다. 여러 갈래의 강물이 모이고 흘러 ‘바다’로 나아가듯이 우리 사람은 각기 나름의 삶의 방식으로 살아가지만 결국 모두 ‘하늘’을 지향하는 것이다.


[5]-2 日往則月來하고 月往則日來하여 日月이 相推而明生焉하며

         寒往則暑來하고 暑往則寒來하여 寒暑 相推而歲成焉하니

         往者는 屈也요 來者는 信也니 屈信이 相感而利生焉하니라


 해가 가면 달이 오고, 달이 가면 해가 와서, 해와 달이 서로 밀고 가서 밝음이 생긴다.

 추위가 가면 더위가 오고 더위가 가면 추위가 와서, 추위와 더위가 서로 밀고 가서

 한해가 이루어진다. 가는 것은 굽히는 것이고 오는 것은 펴는 것이니,

 굽히고 펴는 것이 서로 교감하여 이로움이 생긴다.


· ‘來者 信也’에서 ‘信’은 ‘신(伸)’과 통용된다. ‘펴다’


* [강 설(講說)] ——————

해와 달이 순환하고 춘하추동이 바뀌지 않으면 만물은 생명을 온전히 유지할 수가 없다. 대자연의 모든 변화는 만물이 삶에 이로운 방향으로 진행되고 있는 것이다.


[5]-3 尺蠖之屈은 以求信也요 龍蛇之蟄은 以存身也요

         精義入神은 以致用也요 利用安身은 以崇德也니

         過此以往은 未之或知也니 窮神知化 德之盛也라


 ‘자벌레’가 굽히는 것은 펼 것을 구하기 때문이다.

 용과 뱀이 움츠리는 것은 자기 몸을 보존하기 위해서이다.

 의리(義理)에 정밀하고 신묘한 경지에 들어가는 것은 쓰임을 다 발휘하기 위해서이다.

 이롭게 쓰고 몸을 편안하게 하는 것은 덕망(德望)을 높이기 위해서이다.

 이러한 차원을 넘어가게 되면 인식할 수 없다.

 정신을 다하여 성인의 차원으로 승화되는 세계를 아는 것은 덕(德)이 성대한 것이다.


· ‘尺蠖之屈 以求信也’에서 ‘尺蠖’(척확)은 ‘자벌레’. ‘信’은 ‘신(伸)’과 통용, ‘펴다’

· ‘龍蛇之蟄’에서 ‘蟄’(칩)은 ‘숨다, 칩거하다, 겨울잠을 자는 벌레’

· ‘未之或知也’에서 ‘或’은 ‘유(有)’로 통한다. ‘未之或知也’는 ‘모르긴 몰라도’ 정도로 해석.

· ‘窮神知化’에서 ‘窮神’(궁신)은 ‘정신을 다하는 것’, ‘진심(盡心)’과 같은 뜻이다.


* [강 설(講說)] ——————

자벌레는 몸을 구부려야 펼 수 있고 뱀은 겨울에 숨어 잠을 자야만 생명을 보존할 수 있다. 마찬가지로 인간이 자신의 역할을 다하기 위해서는 의리에 정밀해야 하고, 신묘한 경지에 들어가야 한다. 그리고 덕을 높이기 위해서는, 몸을 편안한 상태로 유지해야 한다.


소인들은 몸이 편안하면 안일에 빠져 타락하기 쉽지만, 군자는 편안할수록 수신에 정진하여 인격을 향상할 수 있다. 그래서 덕을 높이기 위하여 몸을 편안하게 보존해야 한다고 했다. 수양을 통한 인격의 함양에서 가장 높은 차원의 경지는 인간의 유형적(類型的) 한계를 뛰어 넘어 성인의 경지에 진입하는 것이다.


[5]-4 易曰 困于石하며 據于蒺藜라 入于其宮이라도 不見其妻니 凶이라하니

        子曰 非所困而困焉하니 名必辱하고 非所據而據焉하니 身必危하리니

        旣辱且危하야 死期將至어니 妻其可得見邪아


  역(易)[困卦 六三]에서 말하기를 ‘돌에 눌려 곤란을 당하고 가시덤불 깔고 앉아있다.

  자기의 집에 들어가 자기의 아내를 볼 수 없으면 흉(凶)한 것이다.’라고 했다.

  공자(孔子)는 이를 해설하여 말씀하셨다.

 “곤경을 당할 곳이 아니면서 곤경(困境)을 당하면 이름이 반드시 욕될 것이고,

   앉아야 할 곳이 아닌데 앉으면 몸은 반드시 위태롭다.

  이미 욕되고 위태로우면 죽을날이 곧 다가올 것이니 아내를 어찌 볼 수 있겠는가.”


· ‘困于石’은 돌에 끼어 곤란한 상황. 곤괘에서 구사(九四)가 돌로 육삼(六三)을 누르고 있다.

· ‘據于蒺藜’(거우질려)에서 ‘據’는 ‘거(居)’와 통용. ‘蒺藜’(질려)는 ‘가시덤불’, 하괘의 감괘(坎卦)가 가시덤불에 해당한다.


★ [曰 困于石하며 據于蒺藜라 入于其宮이라도 不見其妻니 凶이라] — [47] 困卦 六四


☞ 곤괘(困卦) 상괘는 ‘연못’을 상징하는 태괘(兌卦, ☱)이고 하괘는 ‘물’을 상징하는 감괘(坎卦, ☵)이다. 위에 있는 연못의 물이 흘러 아래로 내려가는 상황이므로 연못에 물이 없으므로 곤란한 상황이 된 것이다. 상층부는 연못에 물이 없으니 곤란한 상황이고 하층부는 수렁에 빠져있는 험난한 상황이다. 하층부의 어려움을 해결해야 할 구사(九四)는 강력하지 못하기 때문에 그 역할을 못한다. 그래서 전체적으로 아주 곤란(困難)하다.


[47] 澤水 困


困, 亨, 貞,

大人吉, 无咎,

有言不信

 ‘上六, 困于葛藟, 于臲卼, 曰動悔有悔, 征吉.

  ‘九五, 劓刖, 困于赤紱, 乃徐有說, 利用祭祀

  ‘九四, 來徐徐, 困于金車, 吝, 有終.

  ‘六三, 困于石, 據于蒺蔾, 入于其宮, 不見其妻, 凶.

  ‘九二, 困于酒食, 朱紱方來, 利用享祀, 征凶, 无咎.

  ‘初六, 臀困于株木, 入于幽谷, 三歲不覿. 


특히 곤괘(困卦) 육삼(六三)은 양의 자리에 음이 왔으므로 부정(不正)이고 중(中)도 아니다. 그리고 유약한 음(陰)으로 강양인 구이와 구사 사이에 끼어 있다. 하층부의 곤란한 상황의 극에 달했다. 그래서 ‘돌에서 곤란(困難)을 겪고 가시덤불 속에서 들어있으니’ 그야말로 설상가상(雪上加霜)에요, ‘엎친 데 덮친 격’이다. 참담한 곤경(困境)에 있는 상황이다. 스스로 궁핍하고 난관에 처해 있으니 ‘ 자기의 집에 들어가도 자기의 부인을 볼 수[면목이] 없으니 흉하다’고 한 것이다. 맹자(孟子)는 “어진 마음을 확충하여 기르면 세상을 평화롭게 보존할 수 있지만, 자기의 이익을 극도로 추구하면 처자도 보존할 수 없다.”고 했는데, 바로 困卦 육삼(六三)의 상황이다.


* [강 설(講說)] ——————

군자는 평소 심신(心身)을 늘 편안하게 하고 덕(德)을 쌓는 일을 업(業)으로 삼는다. 곤괘의 육삼에서 ‘돌에 눌려 곤란을 당하고 가시덤불 깔고 앉아있다’고 하는 것은 덕과 능력을 갖추고 있지 않은 사람이 욕심을 앞세워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상황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곤괘(困卦) 육삼(六三)의 효사에서는 재덕(才德)을 갖추고 있지 않으면서 지나치게 욕심을 부리면 스스로 ‘가시방석’에 앉는 꼴이 된다. 그리고 무엇보다 가장 가까운 처자조차도 등을 돌리고 만다. 그래서 ‘집에 들어가도 아내를 볼 수 없을 정도로 흉하다’고 했다. 이에 대하여 공자는 그렇게 되면 죽을 날이 가까워질 것이니, 처자를 보고 안 보고를 따질 겨를조차 없을 것이라고 극언하며 그 심각성을 강조하고 있다.


[5]-5 易曰 公用射隼于高墉之上하야 獲之니 无不利라하니

        子曰 隼者는 禽也요 弓矢者는 器也요 射之者는 人也니

        君子 藏器於身하여 待時而動이면 何不利之有리오

        動而不括이라 是以出而有獲k하나니 語成器而動者也라


 역(易)[해괘(解卦) 상육(上六)]에서 말하기를

 ‘왕공(王公)이 높은 언덕 위에서 송골매를 쏘아서 잡으면 이롭지 아니함이 없다’고 했다.

 공자가 해설하여 말씀하셨다. “매는 새이다. 활과 화살은 기구이다.

 쏘는 것은 사람이다. 군자는 기구를 몸에 지녔다가 때를 기다려 행동하니

 어떻게 이롭지 않음이 있겠는가. 움직이더라도 방해를 받지 않는다.

 그 때문에 밖으로 나가서 수확을 얻을 수 있다.

 이것은 기물을 먼저 구비하고 난 뒤에 움직이는 것을 말한다.


· 公用射隼于高墉之上’에서 ‘公’은 ‘왕공(王公)’. ‘射’(석)은 ‘쏘아서 잡다’. ‘隼’(준)은 ‘송골매’

‘高墉’(고용)은 ‘높은 언덕’을 뜻한다.


★ [易曰 公用射隼于高墉之上하야 獲之니 无不利라] — [40] 해괘(解卦) 상육(上六)의 효사


☞ 주역 [40] 해괘(解卦)괘의 상괘는 ‘역동적인 움직임’을 뜻하는 진괘(震卦, ☳)이고, 하괘는 험난한 상황을 뜻하는 감괘(坎卦, ☵)이다. 아래는 어렵고 험난한 상황인데 위에서 힘차게 활동하여 문제를 해결하는 상황이다. 그래서 ‘해괘(解卦)’라고 했다. 해결되는 상황에서 걸림돌에 해당하는 것이 육삼(六三)이다. 육삼(六三)은 무거운 산(山)을 지고 있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상층부의 ‘4효-5효-상육’을 뒤집어보면 간괘(艮卦, ☶)가 되어 ‘산(山)’이 되는 것이다. 그런데 여기에서 최종적으로 문제를 해결하는 사람은, 유일한 정위(正位)인 상육이다.


[40] 雷水 解

解, 利西南, 无所往, 其來復吉, 有攸往, 夙吉

 ‘六, 公用射隼于高墉之上, 獲之, 无不利.

  ‘六五, 君子維有解, 吉, 有孚于小人.

  ‘九四, 解而拇, 朋至斯孚.’

  ‘六三, 負且乘, 致寇至, 貞吝.’

  ‘九二, 田獲三狐, 得黃失, 貞吉.

  ‘初六, 无咎. 


상육(上六)은 환란을 해결(解決)하는 상황에서 마무리하는 자이다. 상육(上六)은 존위가 아니므로 공(公)이라 했다. 상육(上六)은 전체의 원로로서 육오(六五)를 도와 문제의 근본을 해결하는데 적극적으로 임해야 한다. 그래서 높은 곳에 올라가 전체에 해를 끼치는 장본인을 제거하는 역할을 하는 것이다. 주역에서는 이를 은유적 코드(CODE)로 ‘공(公)의 입장에서 높은 담 위에서 매를 쏘아 맞혀서 잡으면 이롭지 않음이 없다.’고 한 것이다. ‘매’는 해로운 짓을 하는 소인(小人)이다. 여기에서는 해결하는 국면에서 장애물이 되는 ‘육삼(六三)’을 가리킨다. 전체에 해롭게 하는 자를 쏘아서 잡으면 모든 문제가 해결되는 것이니 이롭지 않음이 없다.


‘화살’의 주역 코드는 진괘(震卦, ☳)이다. 해괘(解卦)의 상괘(上卦)가 바로 진괘이다. 괘상을 보면 상육(上六, 公)이 화살을 아래로 조준(照準)하고 있는 모양이다. ‘매’의 주역코드는 감괘(坎卦, ☵)이다. 해괘(解卦)의 내호괘(2-3-4효)가 곧 감괘이다. 감괘(坎卦)의 중심에 육삼(六三)이 있다. 상(象)에서도 이르기를 ‘공(公)으로서 매를 쏜다.[公用射隼]’는 것은 ‘거스르는 자를 제거한다’고 해석했다.


* [강 설(講說)] ——————

자격(資格)과 인격[德]을 갖추고 행동해야 남의 모범이 될 수 있다.


[5]-6 子曰 小人은 不恥不仁하며 不畏不義라

         不見利면 不勸하며 不威면 不懲하나니 小懲而大誡ㅣ 此 小人之福也라

         易曰 屨校하여 滅趾니 无咎라하니 此之謂也라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소인(小人)은 불인(不仁)함을 부끄럽게 여기지 않고,

 불의(不義)를 하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으며, 이익(利益)을 보지 않으면 힘쓰지 않고,

 무서운 상황을 만나지 않으면 혼이 나지 않는다.

 작게 혼이 났는데도 크게 경계하게 된다면 이는 소인(小人)의 복(福)이다.

 역(易)[서합(噬嗑)괘 초구(初九)]에서 말하기를

 ‘발에 족쇄를 채원 발을 쓰지 못하게 되면 허물이 없다’고 한 것은 이것을 말함이다.”


· ‘小懲而大誡’에서 ‘’(징)은 '혼이 나다, 혼이 나서 뉘우치다'. ‘’(계)는 ‘경계하고 삼가다’


★ [易曰 屨校하여 滅趾니 无咎라하니 此之謂也라] — [21] 서합(噬嗑)괘 초구(초九)의 효사


☞ 서(噬)는 ‘씹다, 물어뜯다’, 합(嗑)은 ‘다물다’는 뜻이다. 입속에 물건(갈비와 같은 음식)이 있으면 이것을 물어뜯고 씹어서 삼킨다. 괘상(卦象)으로 보면 초구(初九)가 아래턱이고, 상구(上九)가 위턱인데 그 사이에 부드러운 것들[음식물] 사이에 딱딱한 이물질(異物質)인 구사(九四)가 물려 있다. 구사(九四)는 물어뜯어서 씹을 대상인 것이다. 그래서 괘의 이름을 ‘서합(噬嗑)’이라고 한 것이다. ‘물어뜯어서 씹는다’는 것은 단죄(斷罪)하는 것을 의미한다.


[21] 火雷 噬嗑

 

噬嗑, 亨, 利用獄

·上九, 何校滅耳, 凶.

 · ‘六五, 噬乾肉, 得黃金, 貞厲, 无咎.

 · ‘九四, 噬乾胏, 得金矢, 利艱貞, 吉

 · ‘六三, 噬腊肉, 遇毒, 小吝, 无咎.

 · ‘六二, 噬膚, 滅鼻, 无咎.

 · ‘初九, 屨校滅趾, 无咎. 


* [初九, 屨校 滅趾, 无咎] ; 서합(噬嗑)괘의 초구(初九)는 단죄(斷罪)의 상황에서 초기(初期)에 해당한다. ‘족쇄를 채우고 발을 없애 버려서’라도 초기에 확실하게 단죄(斷罪)해야 한다. 독소와 병폐를 그대로 내버려두면 나중에는 더욱 처치하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 [강 설(講說)] ——————

소인(小人)은 큰일을 당하여 혼이 나지 않으면, 잘 뉘우치지 않는다. 그래서 소인에게 있어서 가장 다행스러운 것은 작게 혼나고 크게 뉘우치는 경우이다. 그러므로 크게 뉘우쳐야 하는 소인에게 작은 정도로 혼날 수 있는 계기가 주어지는 것은 다행한 일이다.


[5]-7 善不積이면 不足以成名이오 惡不積이면 不足以滅身이니

小人이 以小善으로 爲无益而弗爲也하며 以小惡으로 爲无傷而弗去也라

故로 惡積而不可掩이며 罪大而不可解니 易曰 何校하여 滅耳니 凶이라하니라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선행(善行)이 쌓이지 아니하면 아름다운 이름을 이룰 수 없고,

 악행(惡行)이 쌓이지 아니하면 자신을 망치지 않을 수 있다.

 소인(小人)은 조그만 선행(善行)을 무익하다고 생각하여 하지 않고,

 작은 악행(惡行)을 해로울 것이 없다고 생각하여 버리지 않는다.

 그러므로 악행이 쌓이면 숨길 수 없게 되고, 죄가 커지면 벗어날 수 없다.

 역(易)[서합(噬嗑)괘 상구(上九)]에서 말하기를 ‘큰칼을 지고 귀가 덮히면 흉하다’고 했다.”


* [易曰 何校하여 滅耳니 凶이라] — [21]서합(噬嗑)괘 상구(上九)의 효사


☞ 서합(噬嗑)괘 상구(上九)는 육오(六五)를 도와 전체의 방향을 잡아야 하는 위치이다. 이괘(離卦)가 상괘일 때는 육오(六五)가 정신적인 지도를 하기 어려우므로, 상구(上九)가 그 정신적인 지주의 역할을 해야 한다. 그러므로 상구(上九)는 늘 국민의 소리를 듣고 육오(六五)로 하여금 올바른 방향으로 가도록 길을 제시해야 한다. 그런데 섣불리 육오(六五)의 비위에 거슬려 혹 감옥에라도 가서 국민의 소리를 들을 수 없게 되면 그 역할을 할 수 없게 되어 흉하다. 각별히 주의해야 한다. 그래서 ‘큰 칼을 짊어져서 귀를 없애면 흉하다.(何校 滅耳 凶)’고 한 것이다.


출처 : 동양철학 나눔터 - 동인문화원 강의실
글쓴이 : 백파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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