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인문화원

조로아스터 2018. 7. 9. 20:50

[손기원 박사 周·人·工 四書三經] *<제108강> (2018.06.04.)

— <周·人·工 四書三經>은 ‘周易과 人性을 工夫하는 四書三經 강좌’를 말한다 —


주역(周易) 계사전(繫辭傳) (제4강)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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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주역(周易) 공부 ☞ 계사전·상 [제10~11장]

 

周易 繫辭傳·上 (제10~11장)


<제10장> ; 역(易)과 성인의 도(道)


[10]-1 易有聖人之道 四焉하니 以言者는 尙其辭하고 以動者는 尙其變하고

           以制器者는 尙其象하고 以卜筮者는 尙其占하나니라.


   주역에 성인(聖人)이 취하는 방법이 네 가지가 있다. (역으로써)  

   말씀을 듣고자 하는 사람은 괘사(卦辭)나 효사(爻辭)를 중시하고,

   행동으로 실천하고자 하는 사람은 변화(變化)의 법칙을 중시하고,

   문물제도와 기물을 만들고자 하는 사람은 상(象)을 중시하고,ㅁ

   서죽(筮竹)으로 점을 쳐서 실천하는 사람은 점(占)치는 기능을 중시한다.


· ‘四焉’에서 ‘~焉’은 종결어조사이며, ‘거기에서’라는 지시적 의미를 지니고 있다.

· ‘以言者’에서 ‘以~’의 목적어는 앞에 나온 ‘易’인데 생략되었다.


* [강 설(講說)] —————

‘『주역』은 무엇을 위한 것인가?’ 공자께서 ‘주역(周易)은 세상 만물의 길[道]을 열어주고 각자의 역할(役割)을 이루게 하며 온 세상의 도(道)를 망라하는 것이다.’라고 했다. 그리고 주역(周易)의 네 가지 효용(效用)에 대해 말씀하셨다. 그것은 곧 사(辭)·변(變)·상(象)·점(占)이다. 주역의 활용은, 성인(聖人)의 말씀을 통하여 말하고[言] 행동하고[行動] 창조하고[制器] 선택하는[卜筮] 일련의 지혜로 요약할 수 있다. 성인의 말씀은 괘사나 효사에 들어 있고, 삶의 행동원리는 역의 변화의 법칙에 있으며, 창조적인 삶의 원리는 상으로 제시하며 다가올 일을 판단하는 원리는 서죽의 점괘로서 단정해 준다. 역의 점괘는 하늘의 뜻이다.


 


사실 세종대왕(世宗大王), 퇴계(退溪), 율곡(栗谷), 이순신(李舜臣), 다산(茶山) 등 선현(先賢)들은 주역을 터득하고 실제의 삶에 활용한『주역』의 대가들이다. 특히 모든 마음의 수양(修養)과 국가 대사나 실제의 생활에서 중요한 의사결정을 할 때에는 주역을 요긴하게 활용하였다. 특히 다산(茶山) 정약용(丁若鏞)은 ‘눈으로 보는 것, 손으로 잡는 것, 입으로 읊조리는 것, 마음으로 생각하는 것, 붓으로 기록하는 것부터 밥을 먹고 … 손가락을 놀리고 배를 문지르는 것에 이르기까지 어느 것도 주역(周易)이 아닌 것이 없었습니다.’(<윤영희에게 보낸 편지>)고 갈파했다. 우리 <동인문화원>의 이기동(李基東) 선생도 ‘주역(周易)은 참되고 진실한 삶의 지혜를 제시한다. 그것은 이웃과 조화되는 삶이며 자연과 조화되는 삶이다.’라고 역설했다. (이기동 지음,『주역강설』(1996, 초판) ‘머리말’ 중에서)


[10]-2 是以君子 將有爲也하며 將有行也에 問焉而以言커든

          其受命也 如嚮하야 无有遠近幽深히 遂知來物하나니

          非天下之至精이면 其孰能與於此리오


   그러므로 군자는 장차 무슨 일을 계획하고 무슨 행동을 하려 할 때에는,

   (점으로) 그것을 물으면 말씀으로써 제시해준다.

   그가 그 명을 받는 것은 마치 메아리가 들리는 것과 같아서

   먼 것이나 가까운 것, 그윽한 것이나 심원한 것을 가리지 않고

   마침내 미래의 일을 알게 된다. 천하에 지극하고 정밀한 사람이 아니면,

   누가 이런 일을 관여할 수 있겠는가.


· ‘將有爲也’는 ‘장차 하고자 하는 바’ 즉 ‘to plan’에 해당하고, ‘將有行也’는 ‘장차 실행하고 자 하는 바’, 즉 ‘to do’에 해당한다.

· ‘問焉而以言’에서 ‘問’은 점(占)을 쳐서 묻는 것이고, ‘以言’ 다음에는 ‘答(답)’ 또는 ‘示(시)’가 있어야 하나, 생략되어 있다.

· ‘其受命也’에서 ‘其’는 앞에 나온 ‘군자(君子)’를 가리킨다. ‘命’은 주역의 점(占)으로 말하는 하늘의 뜻이다.

· ‘如嚮’에서 ‘嚮’(향)은 ‘향(響)’과 통용된다. ‘점에서 말하는 말씀을 따른 것이 메아리가 소리를 따르는 것과 같다’는 뜻이다.


* [강 설(講說)] —————

이 단락은『주역』의 네 가지 효용(效用) 가운데 ‘言’에 대한 내용을 설명하신 부분이다. 군자가 어떤 일을 하거나 무엇을 행하려 할 때, 점을 쳐서 역에게 물으면 역은 구체적인 말로써 분명하게 답변해 준다. 그리고 군자는 그 답변을 주저함 없이 실천에 옮기니 마치 메아리가 소리를 따르는 것과 같다. 그렇게 되면 모든 것이 제대로 진행되지 않는 것이 없다.


주역의 명(命)에 따라 진리를 실천하는 것은 지극히 정밀하고 순수한 사람이 아니면 가능하지 않다. 소인이라면 점괘를 뽑더라도, 자신의 마음에 들지 않거나 욕구를 만족시킬 수 없는 답변이 나오면 따르기를 주저하고, 심지어 무시함으로써 낭패를 당하게 된다.


[10]-3 參伍以變하며 錯綜其數하여 通其變하여 遂成天地之文하며

          極其數하여 遂定天下之象하니 非天下之至變이면 其孰能與於此리오


 각 爻(효)를 이리저리 섞어봄으로써 변화를 만들고,

 그 효[경우]의 수(數)를 섞고 뒤집어 봄으로써 변화에 통달하여 천지의 모든 법칙을 이루며,

 그 경우의 수(數)를 끝까지 추극(推極)하여 천하의 모든 상(象)을 정한다.

 천하의 지극한 변화를 아는 사람이 아니면 누가 이런 일에 참여할 수 있겠는가.


· ‘參伍以變’에서 ‘參’(참)은 ‘헤아리다, 섞이다’, ‘伍’(오)는 ‘섞다, 섞이다’는 뜻이다. ‘參’은 ‘세 가지를 섞는다’는 뜻이고 ‘伍’는 ‘다섯 가지를 섞는다’는 뜻이므로, ‘參伍’는 ‘이리저리 뒤섞어본다’는 뜻이다.(이기동)

· ‘錯綜其數’에서 ‘錯’(착)은 ‘섞다, 섞이다’, ‘綜’(종)은 ‘바디’, 바디는 위아래로 움직이는 것이므로 ‘위아래를 섞는다’, ‘위아래를 뒤집는다’는 뜻을 갖는다. 그러므로 주역에서 ‘綜卦’는 본괘(本卦)를 아래위로 뒤집어보는 괘를 말하고, ‘錯卦’는 본괘(本卦)의 효(爻)를 그 반대의 효로 바꾸어 보는 괘를 말한다.

· ‘極其數’의 ‘極’은 ‘추극(推極)하다, 망라하여 알다. 마스터하다’ 등의 뜻이다.

· ‘遂成天地之文’에서 ‘文’은 ‘(천지 운행의) 원리, 이치’를 뜻한다.


* [강 설(講說)] —————

『주역』의 네 가지 효용(效用) 가운데 ‘變’과 ‘象’에 대한 내용을 설명한 부분이다. 주역의 괘에는 괘사(卦辭)와 효사(爻辭)가 있는데, 그것을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각 괘(卦) 자체가 의미하는 상징성과 내용을 이해하지 않으면 안 된다. 이를 위해서는 각 효(爻)의 상관관계를 이리저리 맞추어 보며 판단해야 한다. 초효와 이효의 관계, 초효와 삼효의 관계, 또는 초효와 이효 및 삼효의 관계, 초효와 이효·삼효·사효와의 관계 등 두루 섞어가면서 살펴야 그 변화과정을 이해할 수가 있다. 이를 ‘參伍以變’(삼오이변)으로 표현했다.


또 각 효를 수(數)대로 바꾸어 보기도 하고 뒤집어 보기도 해야 그 괘가 내포하고 있는 변화를 읽을 수 있다.[사례-『주역강설』p.902] 말하자면 주역이 제시하는 ‘메세지’를 더욱 포괄적으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착괘(錯卦)와 종괘(綜卦)의 관계를 살피는 것이 필요하다. 각 효의 음/양을 바꾸어 헤아리는 것이 착(錯)이요, 상/하를 뒤집어 헤아리는 것이 종(綜)이다. 그 수를 착종한다는 것은 각 효를 몇 개씩 착종하기도 하고 수대로 다 착종하기도 한다는 말이다.


각 효(爻)를 참오(參伍)하고 착종(錯綜)하면 그 괘가 처한 상황의 변화를 읽을 수 있는데, 이를 변화에 달통(達通)한다는 의미에서 ‘通其變’(통기변)이라 한 것이다. 역리(易理)를 이해하면 천지의 운행원리를 이해할 수 있다.


역리(易理)는 태극에서 음양, 사상, 팔괘, 64괘, 384효 등으로 확산된다. 그러므로 384효를 추극하면 64괘를 알 수 있고, 64괘를 추극하면 팔괘를 알 수 있으며, 팔괘를 추극하면 사상을 알 수 있다. 그리고 사상을 추극하면 음양을 알 수 있고 음양을 추극하면 태극을 알 수 있다. 그리하여 태극을 통찰하게 되면 세상 모든 진리의 표상을 알 수 있다.


[10]-4 易은 无思也하며 无爲也하야 寂然不動이라가 感而遂通天下之故하나니

           非天下之至神이면 其孰能與於此리오


 역(易)의 진리는 사려하는 일이 없고, 작위(作爲)하는 일이 없다.

 고요하여서 동요하지 않지만 감응(感應)하면 드디어 천하의 모든 이치(理致)에 통달(通達)한다.

 천하에서 지극히 신묘한 사람이 아니면 누가 이런 일에 참여할 수 있겠는가.


* [강 설(講說)] —————

『주역』의 네 가지 효용(效用) 가운데 ‘占(점)’에 대한 내용을 설명하신 부분이다. 역의 진리(眞理)는 점괘로 나타나고, 점괘는 ‘하늘의 작용’을 대변한다. 하늘의 작용이 의식적인 생각 없이 ‘자연히’ 진행되듯이 역(易)의 진리도 생각이 없다. 또 하늘의 작용이 작위(作爲)함이 없듯이 역의 진리도 작위함이 없다. 따라서 역의 진리에 통달(通達)하여 실천(實踐)하면 하늘과 하나가 되어, 하늘의 작용을 하게 된다.


사람이 하늘의 작용을 알게 되면, 그 마음은 의식이나 분별이 개입되는 일이 없기 때문에 늘 고요하고 동요됨이 없다. 마음이 동요(動搖)하는 것은 사려, 분별, 의식, 계산 등이 개입되어 ‘욕심(慾心)’이 생겼을 경우이다. 욕심이 생기면 그것을 구하기 위하여 움직이고 마음을 써야 하니 그 동요는 커질 수밖에 없다. 그런데 욕심이 개재되지 않고 ‘순수한 마음의 상태[寂然不動]’에서는 마음에 하늘의 뜻에 감응(感應)하여 세상의 이치를 모두 파악하여 실천할 수 있다.[感而遂通]


❊ [寂然不動感而遂通] ❊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사람은 ‘마음’으로 산다. 사람이 제대로 살고 못사는 것은 모두 자기 마음에 달려 있다. 인간에게 있어 하늘의 뜻과 하나가 되어 통하는 것도 마음이요, 사사로운 마음에 사로잡혀 자신의 의식으로만 살아가는 것도 마음이다. 그러므로 사람이 어떻게 사느냐 하는 것은 모두 자기 ‘마음의 작용’[메카니즘]이다. 참다운 진리의 삶을 사는 사람은, 그 마음이 ‘지극히 깨끗하고 고요하여 어떠한 외물에도 움직이지 않은 상태’를 지닌다. 그것이 바로 적연부동(寂然不動)이다. 그리하여 그 마음이 ‘하늘의 뜻에 감응함으로써 천하의 모든 이치를 통달하는 것’, 이것이 감이수통(感而遂通)이다.


사람의 ‘마음’은 ‘성(性)’과 ‘정(情)’으로 나누어 말할 수 있는데, ‘성(性)’은 사람이 지닌 순수한 본연지성(本然之性)이요, ‘정(情)’은 그것이 겉으로 발현되는 마음이다. 그러므로 ‘적연부동(寂然不動)’은 성(性)에 해당하고 ‘감이수통(感而遂通)’은 정(情)에 해당한다. 예컨대 ‘적연부동’은 지하에서 수맥으로 흐르는 청정한 물이라면, ‘감이수통’은 청정지하수가 옹달샘이나 우물로 솟아나는 물에 해당한다. 원래 물은 청정하나 그것이 지표로 솟아나오면서 다른 ‘이물질’이 섞여 들어가면 오염이 된다. 이 ‘이물질’을 사람의 마음으로 말하면 욕심(慾心)이나 사심(私心)이다. 주역 수풍 정괘(井卦)의 가르침은, 이러한 마음을 수양하는 과정을 상징적인 코드[우물치기]로 제시한 것이다.


적연부동(寂然不動)은 또한『중용(中庸)』제1장에서 말한 온전한 ‘天命之謂性’이다. 그 성(性)을 그대로 보존해 나가는 것이 사람이 나아가야 할 참된 길이다.[率性之謂道] 그런데 하늘의 마음이 그대로 보존된 상태가 ‘미발(未發)’이요 그것이 밖으로 발현되는 것이 ‘이발(已發)’이라고 한다면, 미발(未發)의 마음이 바로 성(性)이라면 이발(已發)은 마음은 정(情)이다. 그러므로 군자는 이 미발(未發)의 성(性)을 온전하게 보존하기 위해서 늘 ‘군자는 보이지 않는 곳에서 경계하고 삼가며 그 들리지 않는 곳에서 두려워하는(戒愼乎其所不睹하고 恐懼乎其所不聞)’ 것이다. 그리고 또 이발(已發)의 상황에서는 ‘숨은 것에서 가장 잘 나타나며 미세한 것에서 가장 잘 드러난다.(莫見乎隱 莫顯乎微)’ 그러므로 성(性)의 청정수가 그대로 발현되어, 맑은 우물물로 솟아나서 참되고 아름다운 삶의 물길로 이어진다면 그것이 바로 ‘率性之謂道’가 아닌가.


군자는 보이지 않는 곳에서 경계하고 삼가며 그 들리지 않는 곳에서 두려워한다. 숨은 것에서 가장 잘 나타나며 미세한 것에서 가장 잘 드러난다. ‘그러므로 군자는 그 홀로 있을 때 삼가고 조심하는 것이다.(愼其獨)’


‘愼其獨’이야말로 군자(君子)가 마음을 지켜나가는 핵심이라 할 수 있다. ‘愼其獨’은 일반적으로 ‘혼자 있을 때 삼간다’고 해석하지만, 기실 ‘자기 혼자만이 아는 마음의 기미(幾微)를 살펴서 늘 신중하여 그 순수함을 보존해 나가는 것’을 말한다. 퇴계(退溪) 선생은 일상 경건한 명상을 통해, ‘신독(愼獨)’을 잠시도 놓지 않았다. 그리하여 ‘寂然不動과 感而遂通’의 경지를 이루어 군자의 덕을 실현하신 것이다.


[10]-5 夫易은 聖人之所以極深而硏幾也니

           唯深也故로 能通天下之志하며 唯幾也故로 能成天下之務하며

           唯神也故로 不疾而速하며 不行而至하나니

           子曰 易有聖人之道四焉者 此之謂也라 右는 第十章이라


  그러므로 역(易)은 성인이 심오함을 다하고 조짐을 연구하는 수단이다.

  ‘심오’하기 때문에 세상의 이치를 통할 수 있고,

  ‘조짐’을 보고 움직이기 때문에 천하의 일을 성취할 수 있다.

   그 작용이 신묘하므로 빨리 가지 않아도 빠르고, 가려고 의도하지 않아도 이를 수 있다.

   공자께서 말씀하신 “『주역』에 네 가지 도(道)가 있다.”고 한 것이 이것이다.


· ‘聖人之所以極深而硏幾也’에서 ‘以’의 목적어는 ‘易’이다. 그러므로 역은 극심하고 연기하는 수단이다.


* [강 설(講說)] —————

『주역』은 진리(眞理)에 도달하는 길을 제시하고 있기 때문에, 성인(聖人)이 되는 것을 목표로 하는 사람에게는 가장 중요한 경전이다. 역의 이치에 통달하여 그 행동이 마음 깊숙한 곳에 있는 성(性)에서 나온다면 천하의 모든 일에 자연으로 대처할 수 있다. 모든 일은 일어나기 전에 ‘조짐’이 있다. 건물이 무너지기 전에 균열이 가는 조짐이 있다. 이 조짐을 보고 미리 대처하면 엄청난 화를 면할 수 있다. 주역은 그 조짐을 보여준다.


역리(易理)를 알아 하늘의 뜻을 따르는 사람은, 헤아리지 않아도 무심히 일을 이룬다. 동해안의 강(江)에서 부화한 연어는 알래스카 앞 바다에까지 나아가 성장을 한 뒤, 다시 산란을 위해서 원래의 강(江)으로 돌아온다. 하지만 이 연어는 동해안의 강으로 가려는 생각을 가지고 방향을 찾아서 가는 것이 아니다. 단지 무심한 상태에서 때가 되면 헤엄칠 뿐이다. 이 경우 빨리 가려는 의도를 가지고 이리저리 궁리하는 것보다 더 빨리 간다. 또 그 강으로 가야 한다는 의도나 의식 없이 다만 헤엄만 쳤지만 거기에 도착할 수 있다. 역리를 따르는 사람의 삶의 모습이 바로 이와 같다.


<제11장> ; 역(易)의 기능과 성립 과정


[11]-1 子曰 夫易은 何爲者也오? 夫易은 開物成務하여 冒天下之道하나니

           如斯而已者也라 是故로 聖人이 以通天下之志하며 以定天下之業하며

           以斷天下之疑하나니라


   공자께서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역(易)은 무엇을 위한 것인가?

   역(易)은 만물에게 참된 삶의 방식을 열어주고, 역할을 수행할 수 있도록 하며,

   천하의 모든 도리를 망라하는 것이니, 이와 같을 뿐이다.

   이런 까닭에 성인은 주역의 이치로써 천하의 모든 뜻에 통하고,

   천하에 모든 일을 정하며, 천하의 의심스러운 모든 문제를 단정한다.’


· ‘開物成務’에서 ‘物’은 ‘만물’. 여기서는 주로 ‘사람’을 지칭한다. 따라서 ‘開物’이란 ‘사람에게 참다운 삶의 방식을 열어 보여준다’로 해석한다.

· ‘冒天下之道’에서 ‘冒’는 ‘덮다’. 전체를 덮는 것은 전체를 망라하는 것이므로 ‘망라하다’.


* [강 설(講說)] —————

만물은 천지의 변화와 사시(四時)의 변화에 순응하여 자신의 삶을 영위하는 존재들이다. 역(易)의 이치는 천지 변화의 원리와 사시 운행의 원리 등을 담고 있다. 자연의 변화 속에서 참되게 존재하고 생존할 수 있는 방식을 보여주고, 제 역할을 할 수 있도록 가르쳐 준다. 그러므로 역리는 천하 만물의 모든 삶의 이치를 망라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그러므로 성인은, 역의 이치를 통하여 세상의 모든 존재들의 의지를 알 수 있다. 하늘의 작용은 만물을 살리는 작용이고, 모든 생명체는 삶으로 향하는 의지를 가지고 있다. 그래서 인간의 본성과 존재의 삶의 의지를 아는 성인은 세상의 모든 일을 삶의 방향으로 나아가도록 획정하였다. 그리고 획정하기 힘든 의심스러운 문제들에 대해서도 삶의 방향으로 나아가는 것이 바른 것이고, 그 반대의 것을 그른 것으로 결단내렸다.


[11]-2 是故로 蓍之德은 圓而神이요 卦之德은 方以知(智)오

          六爻之義는 易以貢이니 聖人이 以此로 洗心하여 退藏於密하며

          吉凶에 與民同患하여 神以知來코 知以藏往하나니

          其孰能與於此哉리오 古之聰明叡知神武而不殺者夫인저


    그러므로 시초(蓍草)의 특성은 원만하고 신묘하고, 괘의 특성은 방정하고 지혜롭다.

    육효(六爻)의 뜻은 변화의 법칙을 제시하며 사람에게 변화에 대처하는 지혜를 제공해준다.

    성인은 이 괘(卦)와 효(爻)의 내용을 가지고 마음의 욕심(慾心)을 씻어내고,

    가만히 물러나 마음 속 은밀한 곳에 역의 진리(眞理)를 간직한다.

    그러다가 길한 상황이나 흉한 상황에 처하게 되면 백성과 함께 근심한다.

    신묘한 능력으로 미래의 일을 알고 지혜로운 마음으로 과거를 간직한다.

    그 누가 이러한 일에 참여할 수 있겠는가? 옛날에 총명하고 예지가 있으며,

    신묘하고 씩씩하면서도 사람을 함부로 죽이지 않는 자일 것이다.


· ‘易以貢’에서 ‘易’은 ‘역리(易理), 변화의 이치와 방법’

· ‘古之聰明叡知神武而~’에서 ‘叡’(예)는 ‘밝다’, ‘叡知’는 ‘밝은 지혜’. ‘武’는 ‘씩씩하다’


* [강 설(講說)] —————

시초(蓍草)를 통한 점괘(占卦)는 특정한 괘만을 뽑아내는 것이 아니라 점치는 자의 상황에 맞게 다양한 괘를 제시해 주니, 원만(圓滿)하다고 할 수 있고, 또 언제나 상황에 맞는 괘를 정확하게 뽑아주니 신묘(神妙)하다.


일단 나온 점괘(占卦)는 64가지의 변화 유형 중 점치는 자에게 해당하는 것이기 때문에 특정한 괘의 형태를 갖는다. 그래서 ‘방(方)’라고 했다. '방(方)’이란 일정한 방향과 모양이 있는 것을 말한다. 괘는 일정한 유형을 제시하여, 그 당면한 상황의 변화, 그리고 그에 대처하는 방도를 일러준다.


각 효(爻)는 괘의 일정한 변화의 유형 안에서, 일어날 수 있는 다양한 변화의 양상을 설명하여 각각의 상황에 대처하는 방안을 세밀하게 제공한다. 이 괘와 효의 지시에 따르는 것은 진리를 따라 실천하는 것이니, 곧 성인이 되는 길이다. 성인은 역(易)의 이치를 가지고 사심(私心)을 모두 씻어내는 것이다. 역리는 사람의 마음속에서 욕심을 씻어내는 길잡이가 된다.


성인은 모든 사람을 자신처럼 생각하고, 그들의 마음을 자신의 마음처럼 안다. 그래서 백성들의 길흉화복에 대해서도 그들과 함께 걱정하고 즐거워한다. 역의 이치에 통달한 성인은 조짐을 보고 천지의 운행원리를 연역하여 신비스러운 능력으로 미래의 일을 예견하고 그에 대처한다. 그리고 과거의 일 중에서도 현재와 미래에 교훈이 될 만한 것은 잘 기억하여 자료로 삼는다. 이것이 과거의 일을 지혜롭게 간직하는 것이다.


[11]-3 是以明於天之道而察於民之故하여 是興神物하여 以前民用하니

             聖人이 以此齋戒하여 以神明其德夫인저! 


    이 때문에 하늘의 도(道)에 밝고, 백성의 일에 상세하여,

    이에 신물(神物)인 시초(蓍草)를 생기게 해서 백성의 쓸 것에 대비하여

    미리 갖추도록 해야 하는 것이니,

    성인은 이 때문에 재계(齋戒)하여 자기의 능력을 신비하고 밝게 만들기 위하여 계속 노력한다.


* [강 설(講說)] —————

성인은 사심이 없고 역의 진리를 간직하고 있으니, 하늘의 뜻에 밝고 , 만물의 뜻을 상세히안다. 성인은 천지의 마음과 완전히 하나가 된 존재이므로, 그의 일은 자신의 하늘 마음을 확장하여 이제 다른 사람의 삶을 바람직하게 이끄는 일이다.


인류로 하여금 하늘의 뜻에 따라 살도록 인도하는 것이 성인의 유일한 사명이다.


[11]-4 是故로 闔戶를 謂之坤이오 闢戶를 謂之乾이오 一闔一闢을 謂之變이오

往來不窮을 謂之通이오 見을 乃謂之象이오 形을 乃謂之器오

制而用之를 謂之法이오 利用出入하여 民咸用之를 謂之神이라


   이 때문에 문을 닫는 것을 곤(坤)이라 하고, 문을 여는 것을 건(乾)이라 하며,

   닫았다가 열었다가 하는 것을 변(變)이라 하고, 가고 옴이 무궁한 것을 통(通)이라 하며,

   나타난 것을 상(象)이라 하고, 형체로 구체화된 것을 기(氣)라고 한다.

   만들어 쓰는 것을 법(法)이라 하고, 문을 이용하여 나가고 들어가는데

   이는 백성들이 모두 쓰는 것이니 이를 신(神)이라 한다.


· ‘闔戶’(합호)에서 ‘闔’은 ‘닫다’ / ‘闢戶’(벽호)에서 ‘闢’은 ‘열다’

· ‘見’(현)은 ‘나타나다, 드러나다’


* [강 설(講說)] —————

역(易)의 이치(理致)는 모든 사람이 실천해야 하는 도리(道理)이니, 사람들이 드나드는 문(門)에 비유할 수 있다. 문을 열어 바깥으로 통하는 것은 양(陽)에 해당하는 일이니, 건(乾)이요, 문을 닫아 정지시키는 것은 음(陰)의 일에 해당하니, 곤(坤)이다.


문을 닫고 여는 것은, 건(乾)과 곤(坤)의 작용 곧 음양(陰陽)의 작용이다. 음양의 작용에 의하여 천지 만물의 변화가 일어나니 이를 ‘변(變)’이라 하였다. 이렇게 역의 이치는 모든 것에 적용되는 변화의 원리이면서 음양의 작용을 무궁하게 하는 것이니, ‘통(通)’이라 했다.


역리(易理)가 추상적으로 표현된 것을 상(象)이라 하고, 구체적인 형태로 드러난 것을 기(器)라고 한다. 예(禮)는 성인이 역리에 따라 인간이 사회적으로 지켜야 할 절도를 제정한 것이니 기(器)라고 할 수 있다. 또 역리에 따라 사람이 사회적으로 지키고 실천해야 할 규칙을 제정한 것이 법(法)이다. 역리는 모든 사람이 사용해도 그 범위가 무궁하기 때문에, 이를 신통(神通)하다는 의미에서 신(神)이라는 말로 표현했다.


[11]-5 是故로 易有太極하니 是生兩儀하고 兩儀 生四象하고

           四象 生八卦하니 八卦 定吉凶하고 吉凶이 生大業하나니라


    이러한 까닭에 역(易)에는 태극(太極)이 있으니, 이것이 양의가 되고,

    양의는 사상(四象)이 되며, 사상은 팔괘(八卦)가 되니,

    팔괘가 길함과 흉함을 정하고, 길흉은 큰 사업을 생성한다.


* [강 설(講說)] —————

역에서 태극(太極)은 최고 단계의 진리이다. 역리(易理)의 최고의 경지는 우주대자연의 변화 그 자체와 하나 되어 사는 것이다. 이러한 형태로 살아가는 차원이 태극(太極)의 상태이다. 그런데 태극은 실천할 수 있지만 인식할 수는 없다. 인식은 구별이 있어야만 가능하기 때문이다. 결국 역[태극]을 인식하고 실천하는 것은 음양(陰陽)에서 비롯된다.


양의(兩儀)라고 말하는 음양(陰陽)은 태극이 작용하는 두 가지 양상을 말한다. 그런데 천지 만물의 변화와 작용에서 음(陰)과 양(陽), 두 양태만으로 부족하다. 음과 양은 각각 적극적인 경우가 있고 또 각각 소극적인 경우가 있다. 그래서 양의에서 사상(四象)이 나온 것이다. 사상(四象)은 태양(太陽)·소양(소양)·소음(少陰)·태음(太陰)을 말한다.


그러나 사상(四象)만으로 천지만물, 세상만사의 복잡한 변화의 모습을 다 표현할 수 없기 때문에, 다시 세분화한 것이 팔괘(八卦)이다. 그래서 ‘사상이 팔괘가 된다’고 했다. 팔괘를 중첩하여 64괘를 만든 것인 역인데, 여기에서 64괘까지는 언급하지 않았다.


팔괘(八卦)에서는 삶의 과정에서 나타날 수 있는 변화의 유형을 획정하고 대처방안을 제시한다. 그 변화에 잘 대처하면 길(吉)하고 잘 대처하지 못하면 흉(凶)하다. 그래서 ‘팔괘가 길흉을 결정한다’고 한 것이다. 길흉(吉凶)이 결정되면 사람들은 길하게 되는 길을 따르고 흉하게 되는 길을 피해야 한다. 그러면 누구나 위대한 업적을 달성할 수 있다. 그래서 ‘길흉은 대업을 낳는다’고 했다.


『중용(中庸)』제22장에서 말했다. “오직 지극히 정성스러움만이 자기의 성(性)을 다할 수 있다. 자기의 성(性)을 다할 수 있으면 다른 사람의 성(性)을 다할 수 있고, 다른 사람의 성(性)을 다할 수 있으면 사물(事物)의 성(性)을 다할 수 있으며, 사물의 성(性)을 다할 수 있으면 천지(天地)의 화육(化育)을 도울 수 있다. 천지의 화육을 도울 수 있으면, 천지(天地)와 하나가 될 수 있다.”


22-01 唯天下至誠 爲能盡其性 能盡其性則能盡人之性 能盡人之性則能盡物之性

         能盡物之 性則可以贊天地之化育 可以贊天地之化育則可以與天地參矣


지극히 정성(精誠)스러우면 천지(天地)와 ‘하나’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상태가 바로 태극(太極)을 실천하는 상태이다.


[11]-6 是故로 法象 莫大乎天地하고 變通 莫大乎四時하고

           縣象著明 莫大乎日月하고 崇高 莫大乎富貴하고

           備物하며 致用하며 立成器하여 以爲天下利 莫大乎聖人하고

           探賾索隱하며 鉤深致遠하여 以定天下之吉凶하며

           成天下之亹亹者 莫大乎蓍龜하니라


  이렇기 때문에 본보기가 되고 모범(模範)이 되는 것은 하늘과 땅보다도 더 큰 것이 없고,

  변하고 통하는 것은 사계절보다 더 큰 것이 없고,

  모범을 나타내서 드러내고 밝히는 것은 해와 달보다도 더 큰 것이 없으며,

  숭고함은 부귀보다 더 큰 것이 없다.

  인생살이에 필요한 것들을 갖추어 사용할 수 있도록 제공하고,

  천지자연의 형상과 이치를 파악하여 문명의 이기를 만들어

  천하 사람들에게 편리함을 제공한 것은 상인보다 더 큰 것이 없다.

  복잡하고 어지러운 것을 다듬어 풀어내고, 은밀한 것을 들추어내며,

  헤아릴 수 없이 심오한 것을 끄집어내고,

  고원한 것을 이루어내어 세상의 모든 길흉을 단정하며,

  천하의 모든 사람들의 부지런함을 이루는 것은 시초와 거북보다 더 큰 것이 없다.



· ‘縣象著明’(현상저명)에서 ‘縣’은 ‘懸’(현)과 통용. ‘드러내다, 나타나다’

· ‘立成器’에서 ‘立’의 아래에 ‘象’이라는 글자가 생략된 것이다.(이기동)

· ‘成天下之亹亹者’에서 ‘亹亹’(미미)는 ‘부지런히 움직이는 모양’이다.


* [강 설(講說)] —————

사람은 시간적·공간적 변화 속에서 살아간다. 사람이 타고 있는 공간적 변화의 으뜸은 천지(天地)이고, 시간적 변화의 으뜸은 사계절(四季節)이다. 그러므로 태극을 실천하는 완벽한 삶은 천지의 변화와 하나가 되고, 사계절의 변화와 하나 되는 것이다.


천지라는 공간(空間) 속에서, 사계절이라는 시간(時間)의 변화를 이끌고 가는 운행하는 주체는 해와 달이다. 그러므로 해와 달의 운행을 따르는 것은 바로 천지를 본보기로 하고 사계절의 변화에 따르는 것이다. 그래서 해와 달이 천지와 사계절의 변화에 따라 운용하는 모범을 드러내 밝힌다고 했다. 이에 사람이 하늘과 땅의 작용에 따르고, 사계절의 변화에 따라서 살게 되면 아주 참되게 사는 것이다. 이러한 삶을 영위하는 존재는 그 존재가 고귀하고 그 삶이 넉넉하다. 그래서 ‘숭고함은 부귀보다 더 큰 것이 없다’고 한 것이다.


역리와 하나가 된 성인은 천지의 상황과 사계절의 변화 및 일월의 운행의 법칙을 파악하여, 천문 역법(曆法)을 만들어 사람들이 사용할 수 있게 하였다. 그리고 농기구와 가옥 등 문명의 이기(利器)를 만들고 예의와 문자 등 문화(文化)를 창조하여 인간이 편리하고 문화적인 삶을 누리도록 하였다.


[11]-7 是故로 天生神物이어늘 聖人이 則之하며

          天地變化이어늘 聖人이 效之하며

          天垂象하야 見吉凶이어늘 聖人이 象之하며

          河出圖하고 洛出書이어늘 聖人이 則之하니


  이런 까닭에 하늘이 (시초, 거북 등의) 신통한 물건을 만들었으니

  성인은 이것을 본받는다. 하늘이 상을 드리워 길흉을 나타내니

  성인은 이것을 본받는다. 황하에서

  용마의 그림이 나오고 낙수에서 거북이 등에 새긴 신통한 글이 나왔으니

  성인은 이것을 본받는다.


· ‘則之’(칙지)에서 ‘則’은 ‘원칙이나 법칙을 따르는 것’, ‘행동강령이나 법도를 따르는 것’

· ‘效之’(효지)에서 ‘效’는 ‘앞서 가는 사람이나 다른 움직임을 따라 하는 것’

· ‘見吉凶’(현길흉)에서 ‘見’(현)은 ‘나타내다’

· ‘象之’(상지)에서 ‘象’은 ‘흉함을 피하고 길한 방향의 길을 파악하여 실행하는 것’


* [강 설(講說)] —————

운전하는 것에 비유한다면, ‘규정 속도, 교통신호, 주차금지’ 등의 지시사항을 준수하여 법규대로 운전하는 것은 ‘칙(則)’이고, 모범운전사의 반듯한 운전방식을 따르는 것이 ‘효(效)’이며, 위험한 곳에 해골을 그려놓거나 낭떠러지 그림을 그려놓은 표지판이 ‘상(象)’이다.


하늘이 황하(黃河)에서 나온 거북의 등에 있는 그림[河圖]과 낙수에서 나온 용마의 등에 있는 그림[洛書]을 통하여, 천지의 운행 법칙을 제시했고, 성인은 그 법칙에 따라 인간의 삶의 도리와 법칙을 만들었다. ——★「하도(河圖)」와「낙서(洛書)」는 <별첨> 내용 참조


[11]-8 易有四象은 所以示也요 繫辭焉은 所以告也요

           定之以吉凶은 所以斷也라. 右는 第十一章이라


    주역에 사상이 있음은 역리를 보여주기 위한 것이고,

    설명하는 말을 붙인 것은 역리를 알려주게 위한 것이다.

    길흉으로써 정한 것은 역리늘 단정하기 위함이다.



* [강 설(講說)] —————

완벽한 삶은 태극을 실천하는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쉽지 않고, 또 인식하기 어렵다. 그래서 사람들이 잘 알 수 있도록 움양, 사상, 팔괘, 육십사괘 등의 부호 등을 통하여 역리를 표현하였다.


그런데 육십사괘 등의 부호를 통해 표현해 놓아도, 사람들은 그 내용을 잘 파악하지 못하였다. 그래서 각각의 괘에 설명하는 글을 붙여 역리를 드러냄으로써, 사람들에게 참된 삶의 길을 제시하였다.


설명을 통하여 역리를 알림으로써 참다운 삶의 방식을 제시했어도, 그 참된 삶의 추구를 용이하게 하지 못하였기 때문에 다시 길흉으로 규정하여 실천을 촉구하게 되었다. 그래야만 역리의 따른 삶을 실천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러한 삶을 실행하지 않는다면 더 이상의 방법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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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역』「계사전」·상(제10장~제11장) <제4강> [끝]


출처 : 동양철학 나눔터 - 동인문화원 강의실
글쓴이 : 백파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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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인문화원

조로아스터 2018. 7. 9. 20:50

[손기원 박사 周·人·工 四書三經] *<제107강> (2018.05.28.)

— <周·人·工 四書三經>은 ‘周易과 人性을 工夫하는 四書三經 강좌’를 말한다 —


주역(周易) 계사전(繫辭傳) (제3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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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주역(周易) 공부 ☞ 계사전·상 [제9장]


周易 繫辭傳·上 (제9장)



<제9장> ; 주역의 수(數)와 점(占)치는 방법


[9]-1 天一 地二 天三 地四 天五 地六 天七 地八 天九 地十이니

        天數는 五이고 地數는 五이니 五位相得하며 而各有合하니

        天數는 二十有五이고 地數는 三十이라. 凡天地之는 五十有五이니

         此 所以成變化하며 而行鬼神也라


하늘은 1이고 땅은 2이다. 하늘은 3이고 땅은 4이다. 하늘은 5이고 땅은 6이다. 하늘은 7이고 땅은 8이다. 하늘은 9이고 땅은 10이다. 하늘 수는 다섯이고 땅 수도 다섯이다. 다섯 자리를 서로 얻었으며 각각 합함이 있으니, 하늘 수의 합은는 25이고, 땅 수의 합은 30이다. 하늘 수와 땅 수가 55이다. 이것이 변화를 이루고 귀신의 작용을 행하는 연유이다.


* [강 설(講說)]————

주역(周易)에서 수는 ‘경우(境遇)의 수(數)’를 말한다. 다시 말하면, 천지자연과 세상만사의 무수한 경우의 수(數)를 말하는 것이다. 모든 수(數)는 일(一)에서 십(十)까지 열 개로 표현된다. 기본 수는 10개뿐이다. 세상의 모든 이치를 수(數)로써 표현한다면, 이 열 개의 수는 천지자연의 모든 변화와 그 원리를 표현하는 기본 도구가 된다.


‘하늘 수’[天數]는 양[−]이니 홀수[奇數]를 가리킨다. ‘땅 수’[地數]는 음[��]으로 짝수[偶水]를 가리킨다. 하늘이 앞서 주도하고 땅이 이를 따르기 때문에, 먼저 시작되는 1, 3, 5, 7, 9는 하늘의 수이고, 따라가는 2, 4, 6, 8, 10은 땅의 수이다.


‘다섯 자리를 서로 얻는다’는 말은, 하도(河圖)와 낙서(洛書)를 참고로 하면, 다섯 수가 각각 자기의 마땅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는 말로 해석할 수 있다. 하도(河圖)에서 1, 2, 3, 4, 5를 오행(五行)의 ‘생수(生數)’라고 하여 [그림] 안에 있고 생수(生數)가 음양과 짝하여 오행의 ‘성수(成數)’를 도출해 내는데, 그 방식은 생수의 중앙(中央)의 수인 5를 각각 더하면 성수(成數)가 되며 [그림]의 밖에 있는 것이다. 토(土)의 생수는 5이고 중앙(中央)에 있으며 주인이 된다. 오행은 모두 중앙의 5인 토(土)를 얻어서 만물을 생산한다. 그러므로 토(土)는 중궁(中宮)에 있으며 태극(太極)이 사방에 이르는 것을 상징한다.



1은 북쪽의 수(水)이고 양기(陽氣)가 처음으로 발생하는 곳이다. 생수 1에 중앙의 5를 더하면 성수 6이 된다. 물이 있으면 반드시 생명이 이루어지나니 천(天) 1이 수(數)를 낳고 지(地) 6이 그것을 이룬다. 이렇게 수(水)에는 이미 양수(陽數) 1이 있을 뿐만 아니라 음수(陰數) 6이 있으니 음양(陰陽)의 기우(奇偶)가 배합하였으니 수(水)가 바로 음양(陰陽)의 두 기(氣)가 교감하여 이루어졌다는 것을 나타낸다.


2는 남쪽의 화(火)이고 음기(陰氣)가 처음으로 일어난 곳이다. 중앙의 5를 더하여 성수 7이 된다. 3은 동쪽의 목(木)이니 해가 뜨는 곳이다. 양기(陽氣)가 점차 증가하고 중앙의 5을 더하면 성수 8이 된다. 4는 서쪽의 금(金)이니 해가 지는 곳이다. 음기가 점차 사라지고 중앙의 5를 더하여 성수 9가 된다. 5은 중앙의 생수이고 중앙의 5를 더하여 성수 10이 된다.


그러므로 ‘합이 있다’는 말은 1과 6, 2와 7, 3과 8, 3와 9, 5와 10이 각각 같은 자리에 있다는 말이다. 기수(奇數)로 대표되는 것은 하늘이니 양(陽)이며, 우수(偶數)로 대표되는 것은 땅이니 음(陰)이다. 오행의 생수(生數)와 성수(成數)를 더하면, 천수(天數)[奇數]는 25이고 지수(地數)[偶數]는 30이니 천지(天地)의 수(數)를 모두 합하면 55이다.


❊ 하도(河圖)와 낙서(洛書)에 대하여


《하도(河圖)》는 복희(伏羲)가 황하(黃河)에서 얻은 그림으로, 이것에 의해 복희는 《역(易)》의 팔괘(八卦)를 만들었다고 하며, 《낙서(洛書)》는 하우(夏禹)가 낙수(洛水)에서 얻은 글로, 이것에 의해 우(禹)는 천하를 다스리는 대법(大法)으로서의 《홍범구주(洪範九疇)》를 만들었다고 한다.


유교의 주요 경전인 『주역(周易)』과는 별개로 북송시대의 역학자 소강절(邵康節)은 《하도 河圖》에서 기인한 것으로 알려진 ‘복희선천팔괘도(伏羲先天八卦圖)’를 제시하였다. 복희선천팔괘도는 ‘복희팔괘방위도’, ‘복희팔괘차서도’, ‘복희64괘방위도’, ‘복희64괘차서도’의 네 가지 괘도(卦圖)로 구성되는데, 복희역이란 《하도(河圖)》및 이를 바탕으로 후대에 등장한 ‘복희선천팔괘도’의 역학 체계를 의미한다.


《하도 河圖》에서는 1부터 10까지의 자연수를 통해 우주의 원리를 도식화하고자 하였다. 1·6, 2·7, 3·8, 4·9, 5·10의 구조로 음양의 조화를 맞춘 수를 배열하여 창조의 원리를 제시한 것이다. ‘복희선천팔괘도’에서는 수(數)에 괘(卦)와 방위(方位)를 결부시켜, 보다 깊고 포괄적인 우주 생성의 체계를 설명하였다. 소옹(邵雍)이 정리한 <복희팔괘/방위도>는 아래와 같다.


          일(一)은 건괘(乾卦)와 남방(南方),         이(二)는 태괘(兌卦)와 동남방(東南方),

          삼(三)은 이괘(離卦)와 동방(東方),         사(四)는 진괘(震卦)와 동북방(東北方),

          오(五)는 손괘(巽卦)와 서남방(西南方),   육(六)은 감괘(坎卦)와 서방(西方),

          칠(七)은 간괘(艮卦)와 서북방(西北方),   팔(八)은 곤괘(坤卦)와 북방(北方)



  수(數)와 방위의 관계를 통해 우주 만물이 생겨나고 변화한 방식과 순서를 설명했던 것이다.


[9]-1 大衍之數 五十이니 其用은 四十有九라 分而爲二하여 以象兩하고

         掛一하여 以象三하고 揲之以四하여 以象四時하고 歸奇於扐하여

         以象閏하나니 五歲에 再閏이라. 故로 再扐而後에 掛하나니라


   대연(大衍  )의 수는 50이지만, (점을 치는 데) 사용하는 것은 49이다.

   이를 나누어 둘로 만들어 하늘과 땅 양의(兩儀)를 상징한다.

   한 손에 한 개를 떼 내어 따로 가짐으로써 하늘, 땅, 인간의 삼재(三才)를 상징한다.

   나머지 시초(蓍草)를 4개씩 덜어내니 이는 4계절을 상징한다.

   4개씩 덜어낸 나머지를 손가락 사이에 끼운 다음, 두 손의 나머지를 내려놓음으로써

  ‘윤달’을 상징한다. 윤달이 대개 5년에 두 차례 있으므로

   그 이치를 상징하여 나머지를 두 번 손가락에 끼운다.


· ‘大衍之數’에서 ‘衍’(연)은 ‘넘치다, 넓히다’

· ‘掛一’에서 ‘掛’(괘)는 ‘걸다, 걸어놓다’

· ‘揲之以四’에서 ‘揲’(설)은 ‘숫자를 손으로 집어서 세다’

· ‘歸奇於扐’에서 ‘扐’(륵)은 ‘손가락 사이’

· <윤달> : 음력 1개월 29.53일 > 1년 354.3일 / 양력 1년 365.2422일, 차이 11일

    19년 7윤법; 평균 2.71249년마다 윤달이 온다.

    2012년 윤3월 / 2014년 윤9월 /  2017년 윤5월 /  2020년 윤4월)


* [강 설(講說)]————

「계사전」제9장은 ‘점(占)을 치는 방법’에 관한 기록이다.『주례(周禮)』「춘관(春官)」서인(筮人)의 기록에 의하면, 점(占)을 치는 방법에는 9가지가 있다고 하는데, 그 구체적인 방법은 전하지 않는다. 여기 <계사전>의 방법만이 유일하게 전해온다. 


‘대연(大衍)의 수(數)’란 수를 크게 넓힌 것을 말한다. 수를 모두 합하면 55가 되는데, 55라 하지 않고 50이라 한 것은 그 대강을 말한 것이다. 중국의 학자 김경방(金景芳)의『주역전해(周易全解)』에 의하면, ‘오십(五十)’은 ‘五十有五의’ 잘못이라고 했다. 『역위(易緯)』「건착도(乾鑿度)」에서는 ‘五十有五’로 되어 있다.


그러나 점괘(占卦)를 뽑을 때는 49개의 시초(蓍草)를 사용한다. 그 까닭은 49개로 네 단계를 세 번 거쳐야 7·8·9·6이라는 수를 얻을 수 있으며, 7·8·9·6을 얻어야 괘(卦)를 이룰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49개만 사용한다면 대연지수를 50으로 하건 55로 하건 크게 문제가 될 것은 없다. 시초 대신 산죽을 사용해도 무방하다. 49개 시초 외에 한 개를 따로 빼놓아, 태극(太極)을 상징하는 것으로 보고, 사용하지 않는다. 남는 시초를 태극을 상징하는 것으로 하기 위해서는 6개인 것보다 한 개인 것인 낫다. 여섯이라는 수는 태극을 상징하기는 적절하기 않기 때문이다. 이런 면에서 보면 , 대연지수를 50으로 하는 것은 의미가 있다.


49개의 시초[산가지]를 두 부분으로 나누는 것은 하늘과 땅, 즉 음(陰)과 양(陽)을 상징한다. 그리고 그 두 부분을 나눈 뒤, 왼쪽에 있는 것에서 하나를 뽑아 새끼손가락 사이에 끼우는 것은 천(天)·지(地)·인(人) 삼재를 상징하는 것이다. ‘괘(掛)’는 ‘건다’는 뜻이므로 손가락 사이에 끼우는 것이 아니라는 주장도 있다. 끼우는 것이라면 뒤에 나오는 ‘륵(扐)’과 구별되지 않는다는 데 근거한다. 따라서 ‘괘일(掛一)]은 책상 위에 걸쳐 놓는다고 해석해야 한다는 것이다. 일리가 있다.


다음으로 왼손에 있는 시초를 4개씩 헤아리고 남는 것을 중지와 약지 사이에 끼우고, 다시 오른 속에 있는 시초를 4개씩 헤아리고 남는 것은 중지와 검지 사이에 끼운다. 4개씩 헤아리는 것은 ‘사계절’을 상징하고, 남는 것을 손가락 사이에 끼우는 것은 ‘윤달’을 상징한다. 윤달은 5년에 두 번씩 있으므로 두 번이 한 단위가 된다. 따라서 손가락 사이에 끼우는 것을 두 번 하는 것이다. 이렇게 하여 손가락 사이에 있는 시초를 한 곳에 놓아두고 나머지 시초를 가지고 똑같은 방법으로 시행하여 또 손가락 사이에 있는 시초를 그 옆에 놓아둔다. 남는 시초를 가지고 또 한 번 시행하여 하나의 효를 얻기 때문에, 도합 18번의 시행으로 괘를 얻는다.  시초점(蓍草占)을 치는 방법  『주역강설』43~47쪽


❊ 주역의 점법 (1) 서법(筮法) — 산가지로 설시(揲蓍)하는 방법


   1. 정갈한 장소에 50개의 산가지와 백지와 필기구를 준비한다.

   2. 마음을 가다듬고 일시와 묻고자 하는 사항을 종이 위에 적는다.

   3. 산가지 50개 가운데 하나를 뽑아 책상 위쪽에 가로로 놓는다.(태극을 상징, 위치 고정)

   4. 나머지 49개(策)의 산가지를 양손으로 쥐고 무심코 둘로 나눈다.(象兩)

     (왼손의 산가지는 하늘을 상징하는 천책(天策)이므로 들고 있고,

     오른손의 산가지는 땅을 상징하는 지책(地策)이므로 오른쪽에 내려놓는다.)

  5. 내려놓은 지책 가운데 하나를 빼서 왼쪽 새끼손가락과 약지 사이에 끼운다.(象三)

  6. 왼손의 천책을 오른손으로 네 개씩 센다.(象四時)

  7. 네 개씩 세고 남는 것(1~4개)을 왼손 약지와 중지 사이에 끼운다.(象閏)

  8. 오른손에 들려있는 산가지는 왼쪽에 내려놓는다.

  9. 오른쪽 바닥에 놓인 지책을 오른손으로 들고 왼손으로 네 개씩 센다.

  10. 네 개식 세고 남는 것(1~4개)을 왼손 중지와 검지 사이에 끼운다.(象再閏)

  11. 왼손에 들려있는 산가지는 오른손으로 잡아 오른쪽에 내려놓는다.

  12. 왼손가락 사이의 산가지를 양손으로 모아 쥐고 태극 위에 건다.(1변)

     (5 혹은 9개가 남은 것을 태극 위 왼편에 걸며, 다른 수가 나오면 오류이므로 다시 한다.)

  13. 바닥에 남은 산가지(44 혹은 40개)를 들고 4~12의 과정을 거친다.(2변)

     (4 혹은 8개가 남은 것을 태극의 중앙에 건다.)

  14. 바닥에 남은 산가지(40 혹은 36 혹은 32개)를 들고 4~12의 과정을 거친다.(3변)

     (4 혹은 8개가 남은 것을 태극의 우측에 건다.)

  15. 이상 한 효, 측 초효(初爻)를 얻었으므로 종이에 아래에서부터 표시한다.


구  분

판별 방법

합수

사상 책수

표시 방법

노양 (老陽)

모두 양(5, 4, 4)

13

36 (4×9)


 

소음 (少陰)

1음 2양

17

32 (4×8)

―  ―

소양 (少陽)

1양 2음

21

28 (4×7)

―――

노음 (老陰)

모두 음(9, 8, 8)

25

24 (4×6)

     ―  ―      


  16. 4~15의 과정을 반복하여 2, 3, 4, 5효와 상효를 얻어 초효 위에 차례로 표시한다.

  17. 괘를 보는 방법 (필자가 활용하고 있는 방법을 소개함)


효 동(爻動)

상황 판단과 의사결정

변효가 없을 때

 해당 괘의 괘사를 위주로 판단

변효가 1개일 때

 본괘와 지괘의 변효 효사를 위주로 판단 (변화 추이 고려)

변효가 2개일 때

 본괘 변효 중 상효를 위주로 하고 하효를 참고하여 판단

변효가 3개일 때

 본괘와 지괘의 괘사를 위주로 판단 (추이 고려)

변효가 4개일 때

 지괘 불변효 중 하효를 위주로 하고 상효를 참고하여 판단

변효가 5개일 때

 지괘와 본괘의 불변효 효사를 위주로 판단 (추이 고려)

6효 전변일 때

 지괘의 괘사를 위주로 판단 (단, 건괘는 용구, 곤괘는 용육으로 판단)

 

★ 지괘(之卦) - 본괘(本卦)의 노양(老陽)을 소음(少陰)으로,

    본괘의 노음(老陰)을 소양(少陽)으로 바꾼 괘를 말한다.

 

   ▶ 주의 사항

   1. 사특한 것, 욕심이 담긴 것은 묻지 말 것

   2. 하나의 사안에 대하여 단 한 번만 물을 것

   3. 획일적인 해석은 금물이며, 상황과 괘의 전체적 흐름을 참고할 것


주역의 점법 (2) ; 척전법(擲錢法)


‘척전법’이란 동전을 던져서 점을 치는 방법을 말한다. 척전법은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다. 한나라 때 ‘화주림법(火珠林法)’이라는 것도 척전법의 일종으로 추측되며, 당나라 때 지어진『의례소』에도 척전법이 소개되었고, 퇴계 선생도 척전법의 내용을 소개한 적이 있다.


  1. 먼저 동전 세 개, 종이, 필기구 등을 준비한다.

  2. 궁금한 ‘문제’를 잘 생각하고 그 답을 구하는 진정한 마음을 갖는다.

  3. 마음을 가다듬고 두 손으로 동전을 잘 흔든 뒤, 바닥에 정성스럽게 던진다.

  4. 놓여진 동전의 ‘앞면[陽]’과 뒷면[陰]의 수(數)에 따라 효(爻)를 얻는다.

      한 번 던지면 다음의 네 가지 경우 중의 하나가 나온다.

 

     ① 동전의 앞면이 모두 위로 놓였으면 노양(老陽)      ←  (양) (양) (양) 

     ② 동전의 앞면이 두 개가 위로 놓였으면 소음(少陰)  ←  (양) (양) (음)

     ③ 동전의 앞면이 한 개가 위로 놓였으면 소양(少陽)  ←  (양) (음) (음)

     ④ 동전의 뒷면이 모두 위로 놓였으면 노음(老陰)      ←  (음) (음) (음)


5, 소음이 나온 경우, 종이 위에 음효 [― ―] 를 긋고, 소양의 경우, 양효[−―]륵 긋는다.

   다만 노양과 노음이 나왔을 때는 소양, 소음과 구별하여 굵은 줄로 표시한다.

6. 이런 방법을 여섯 차례 반복하여 괘를 얻는다. 첫 번째 던져서 얻은 효가 초효이고,

   그 다음 차례 차례 2효, 3효, 4효, 4효, 상효를 얻는다.


* [괘(卦)를 읽는 방법] ☞ 시초점(蓍草占)에서 괘를 읽는 방법과 같다.


[9]-3 乾之策이 二百一十有六이고 坤之策이 百四十有四라

        凡三百有六十이니 當期之日고

        二篇之策이 萬有一千五百二十이니 當萬物之數也니

        是故로 四營而成易고 十有八變而成卦니 八卦而小成야

        引而伸之며 觸類而長之면 天下之能事ㅣ 畢矣리니


건(乾)의 책 수가 216(36책×6)이고, 곤(坤)의 책 수가 144(24책×6)이니 모두 합하면 360이다. 이는 올해의 날 수에 해당한다. 주역 상·하 두 편의 산 가치 수[책수] 11,520(384효 중 양효 192×36+음효 192×24 = 11,520)이니 만물의 수에 해당한다. 그러므로 서죽(筮竹)을 4단계로 운영하여 역(易)을 이루니, 18번 변하여 괘를 이룬다. 8괘가 되면 작은 괘[소성괘]가 이루어진다. 그것을 늘여서 펼치고 각 유형으로 갖다 붙여 늘이면 온 세상에 일어날 수 있는 모든 일이 망라된다. 도가 드러나고 신의 덕을 행하게 되니, 따라서 더불어 교감하며 주고받을 수 있고, 더불어 신을 도울 수 있게 된다. 공자가 말하셨다. “변화의 도를 아는 자는 신이 하는 바를 알 것이다.” [참고]  11,520÷360= 32년, 약 '만날'


· ‘乾之策’에서 ‘策’(책)은 ‘산가지’ 즉 서죽(筮竹)을 말함


* [강 설(講說)] —————

점괘를 뽑을 때는 분(分)·괘(掛)·륵(扐)·귀(歸)의 방법을 세 번 반복하여 하나의 효(爻)를 얻는다. 여섯 개의 효를 얻기 위해서는 이를 18번 반복해야 한다. 세 번 한 뒤 남은 책(策, 산가지)를 제외한 정책(正策)은 36, 32, 28, 24 중의 하나이다. 36은 노양(老陽)인 9가 네 번 들어있는 것이고, 32는 소음인 8이 네 번 들어있는 것이며, 28은 소양인 7이 네 번 들어있는 것이고, 24는 노음인 6이 네 번 들어있는 것이다. 점법에서는 변화를 중시하여, 노양과 노음을 위주로 보기 때문에, 건괘에서는 36의 노양을 취하고 곤괘에서는 24의 노음을 취한다. 그러므로 건괘의 여섯 효는 36이 여섯이니 216이 되고 곤괘의 여섯 효는 24가 여섯이니 144이다. 이를 합하면 모두 360이 되니, 이는 일년의 날수와 일치한다.


주역 전체 64괘 가운데 양효와 음효는 각각 192개이다. 그래서 양의 책 수는 36의 192배인 6,912개이고, 음의 책 수는 24의 192배인 4,068개이다. 이를 합하면 11,520개이다. 이것은 만물의 수에 해당한다. 만(萬)은 ‘모든 것’을 의미하므로 만물(萬物)이란 모든 존재라는 말이 된다. 그러므로 실제로 만물이 11,520개뿐만인 것은 아니지만, 11,520은 ‘모든 것’을 상징하는 수로 보는 것이다.(이상은 日本 集英社, 스즈끼요시지로(鈴木由次郞)『易經』에서 많이 인용하였음 ; 『주역강설』)


‘네 가지로 경영한다’는 것은 시초(蓍草)를 두 부분으로 나누고, 그 중 하나를 걸고, 나머지를 넷씩 세고, 남는 것을 손가락 사이에 끼우는 것을 말한다. 이와 같은 것을 18번 하면 괘(卦) 하나를 이루니 ‘성역(成易)’이라고 했다. ‘성역’은 ‘역을 만들어간다’는 뜻이다.


역의 64괘는 팔괘(八卦)를 중첩하여 만든 것이다. ‘팔괘를 끌어당겨 펼쳐서 만든다’는 의미에서 ‘引而伸之(인의신지)’라 했고, 팔괘의 종류를 각각 이어서 상·하로 길게 만든다는 의미에서 ‘觸類而長之(촉류이장지)’라 했다. 두 가지 모두 팔괘를 중첩하여 64괘를 만드는 과정을 설명한 것이다. 64괘가 완성되면 세상의 모든 일의 실천원리가 갖추어진다.


[9]-4 顯道하고 神德行이라 是故로 可與酬酢이며 可與祐神矣니

        子曰 知變化之道者 其知神之所爲乎인저! 右는 第九章이라


 (주역 64괘는) 도(道)를 드러내주고 덕행(德行)을 신비롭게 제시해 준다.

 그러므로 참여하여 응대할 수 있고, 참여하여 신(神)을 찬미하고 도울 수 있다.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변화의 도(道)를 아는 자는 신(神)의 작용을 알 것이다.”


· ‘可與酬酢’(가여수작)에서 ‘酬’은 ‘술잔을 받다’, ‘酢’은 ‘술잔을 주다’, 그러므로 ‘酬酢’은 술잔을 주고 받는다는 뜻인데, 여기서는 ‘서로 응대하다’는 의미로 쓰였다.


* [강 설(講說)] —————

도(道)는 사람이 마땅히 가야하는 객관적인 길이고, 덕(德)은 그 길을 행할 수 있는 실천능력이다. 도가 없으면 덕이 있어도 진리를 실천할 수 없고, 덕이 없으면 도가 있어도 진리가 실현될 수 없다. 역은 객관적인 도를 제시해 줌과 동시에 그 도를 실천할 수 있는 구체적인 실천원리와 방도를 제시해 주기 때문에 ‘도를 드러내주고 덕행을 신비롭게 제시해 준다’고 했다. 덕이 도를 실천할 수 있는 능력이라면, 덕행은 도를 실천하는 구체적인 행동방식이다.


사람이라면 누구나 주역을 읽고 그 이치를 깨우쳐, 진리를 인식할 수 있고 실천할 수 있다. 진리를 실천하는 것은 세상의 일에 참여하여 제대로 응대하는 것이고, 하늘의 뜻에 참여하여 그것을 따르고 돕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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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역 계사전 상 제9장 <제3강> — <끝>

출처 : 동양철학 나눔터 - 동인문화원 강의실
글쓴이 : 백파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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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인문화원

조로아스터 2018. 7. 9. 20:50

[손기원 박사 周·人·工 四書三經] *<제106강> (2018.05.21.)

— <周·人·工 四書三經>은 ‘周易과 人性을 工夫하는 四書三經 강좌’를 말한다 —


주역(周易) 계사전(繫辭傳) (제2강) -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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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주역(周易) 공부 ☞ 계사전·상 [제5~8장]


周易 繫辭傳·上 (제8장)


<제8장> ; 괘(卦)·효(爻)의 설정 기준과 사례


[8]-1 聖人이 有以見天下之賾하야 而擬諸其形容하며

         象其物宜라 是故謂之象이고

         聖人이 有以見天下之動하여 而觀其會通하여 以行其典禮하며

         繫辭焉하여 以斷其吉凶이라 是故謂之爻이니


 성인이 역리로써 세상의 만사만물 가운데에 깊이 감추어져 있는 도리를 알고,

 그 형용되는 모습에서 역리를 잘 견주어 설명하며,

 그 사물이 역리에 마땅하게 되어 있는 모습을 상징적으로 표현한다.

 그런 까닭에 그것을 상이라 한다. 성인은 역리로써 천하의 모든 움직임을 알고,

 그것이 모두 하나로 모여 통하는 것을 살펴, 그 보편적인 전거를 실행하며,

 말을 붙여 그 길하고 흉함을 단정한다. 그런 까닭에 효라고 한다.


· ‘聖人 有以見天下之賾’에서 ‘聖人’은 ‘文王’이다. ‘見’은 ‘ 알다’. ‘賾’(색)은 ‘깊숙하다, 심오하다’.

· ‘而擬諸其形容’에서 ‘擬’(의)는 ‘견주어 헤아리다’. ‘諸’(저)는 ‘之於’의 축약형 표현. ‘其’는 ‘易’을 가리킨다. 예) 말의 주역코드는 진괘이다. 진괘 아래의 양효는 단단한 말발굽이요, 위의 두 음효는 부드럽고 유연한 말의 몸통을 형상화한 것이다.

· ‘聖人 有以見天下之動’에서 ‘以~’의 목적어는 ‘易’이다. ‘以易’는 ‘역을 가지고…’

· ‘而觀其會通’에서 ‘其’는 ‘천하의 모든 움직임’을 지시하는 대명사.

* ‘觀其會通 以行其典禮’는 괘사나 효사를 붙이는 원리를 설명한 말이다. ‘會通’은 ‘어떤 사례를 일반화하는 것’을 말한다. 예컨대 ‘난관(難關)’의 상황을 말할 때 ‘큰 내를 건넌다[涉大川]’고 표현한다. 큰 내를 건너는 것은 어렵고 힘든 일이다. 그래서 주역에서는 ‘난관의 상황’이나 ‘난관을 극복하는 상황’에서는 이 ‘涉大川’을 쓰는 것이다. 이것이 ‘典禮’이다. 모법이 되는 은유적인 표현을 보편적인 코드로 삼은 것을 말한다.


건괘(乾卦) 구이(九二)의 효사가 ‘見龍在田 利見大人’이라고 했다. ‘용(龍)’은 양(陽)을 대표하는 군자(君子)의 코드이다. ‘전(田)’은 삶의 터전이다. 수렵시대는 사냥터이고 농경시대에는 밭이다. ‘대인(大人)’은 덕을 갖추는데 도움을 주는 훌륭한 사람을 말한다. ‘구이(九二)’는 음의 자리에 있으므로 음의 자질을 내포하고 있다. 상(象)에 이르기를, ‘나타난 용이 밭에 있는 경우는 덕을 베풂이 넓다’는 것이고, 문언(文言)에서 공자가 말씀하시기를, ‘용(龍)의 덕을 가지고 알맞은 자리[中]에 있는 자이니, 평소의 말을 미덥게 하고, 평소의 행동을 신중히 하며 비뚤어진 마음을 막고 정성스러운 마음을 보존하며 세상을 좋게 해도 자랑하지 않아서 덕(德)이 넓어져 진리를 얻어야 한다’고 했다. 또, ‘군자는 배워서 (진리를) 갖추고 물어서 변별하며, 너그러움을 가지고 대처하고, 인(仁)을 가지고 행동해야 한다.’고 했다. 아직 때가 아니니 조용히 군덕(君德)을 쌓으라는 것이다, 다분히 음(陰)의 속성을 지니고 있다.


* [강 설(講說)] —————

성인(聖人)은 역(易)의 이치로써 세상 모든 존재와 일에 대한 심오한 도리를 통찰한다. 그리하여 그 이치가 드러나 있는 구체적인 일이나 존재의 모습을 통해서 역리(易理)를 비유적으로 잘 설명한다. 그리고 또 구체적인 사물을 역리에 마땅하게 잘 형상화하기 때문에 그것을 상(象)이라 한다.


성인은 역리를 통하여 세상의 모든 움직임을 알 수 있다. 세상 만물의 운동은 모두 각기 다른 양상을 띠고 있지만, 그것은 모두 도가 바깥으로 드러난 모습이다. 그렇기 때문에 모든 운동은 하나의 원리로 서로 통할 수 있다. 마찬가지로 성인이 실시하는 모든 예법은 각기 다른 복잡한 양상을 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근본적으로는 모두 하나로 통한다.


사람들은 이 의미를 모르고 예법을 각기 다른 구별된 것으로 이해하고 실행함으로써 그 본래의 뜻을 어기고 도를 실천하지 못하고 있다. 그리하여 성인은 그 하나하나의 행동원리를 표현한 괘와 효에 설명을 붙여 실천하도록 하였고 그래도 실행하지 않기 때문에 길흉으로 판단하여 그 실행을 촉구하였다. ‘효(爻)’는 ‘엇갈린다’는 뜻이니 길한 것과 흉한 것이 엇갈린다는 듯을 취한 것이다.


[8]-2 言天下之至賾하되 而不可惡也며 言天下之至動하되 而不可亂也니

         擬之而後 言하고 議之而後 動이니 擬議하여 以成其變化하니라


 (역의 효사는) 천하의 지극히 그윽하고 깊은 곳을 말하되 싫어하지 않아야 하고,

 천하의 모든 움직임을 말하되 어지럽지 않아야 한다.

 견주어 헤아린 다음에 말하고, 따져 본 다음에 움직이니 헤아리고 따져서 그 변화를 이룬다.


· ‘而不可惡也’에서 ‘惡’(오)는 ‘싫어하다’

· ‘擬之而後’에서 ‘擬’(의)는 ‘견주어 헤아리다’


* [강 설(講說)] —————

역은 진리와 삶의 지혜를 전하는 경전이다. 천지의 운행과 변화의 원리를 전하고 있기 때문에 이를 말로 표현하면 복잡하고 혼란스러울 수 있다. 예컨대, 봄에 만물을 살리는 작용인 ‘원(元)’과 겨울에 만물을 죽이는 ‘정(貞)’, 그리고 모든 존재를 사랑하는 ‘인(仁)’과 남을 미워하는 마음이 ‘의(義)’ 등이 천명의 관점에서 보면 동일한 것이고, 역리로 보아도 동일한 것이라고 말하면 혼란이 일어나기 쉽다. 그러므로 상황을 잘 견주어 보고, 헤아려 파악한 뒤에 말하고 잘 따져서 납득이 될 수 있게 된 후에 움직여야 한다. 그래야만 역에서 전하는 모든 변화의 원리가 제대로 성립된다.


* [사례 1] ★ [61] 풍택(風澤) 중부(中孚) 구이(九二)


[8]-3 鳴鶴이 在陰이어늘 其子 和之로다 我有好爵하여 吾與爾靡之라하니

        子曰 君子 居其室하여 出其言 善이면 則千里之外 應之하나니

        況其邇者乎여 居其室하여 出其言 不善이면 則千里之外 違之하나니

        況其邇者乎여 言出乎身하여 加乎民하며 行發乎邇하여 見乎遠하나니

        言行은 君子之樞機니 樞機之發이 榮辱之主也라

        言行은 君子之所以動天地也니 可不愼乎아


“구이(九二)는 우는 학(鶴)이 그늘에 있거늘 그 새끼가 화답한다.

 나에게 좋은 술잔이 있으니 내 그대와 함께 기울일 것이로다.” 하였다.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군자가 자기의 집에 있으면서 말을 하더라도

 그것이 좋은 말이라면 천리 밖에서 응할 것이니 하물며 가까이 있는 자에 있어서랴.

 집에서 말을 하더라도 그것이 좋지 않는 말이라면 천리 밖에서도 어길 것이니

 하물며 가까이 있는 자에 있어서랴.  말은 자기 몸에서 나가서 백성들에게 전해지며,

 행동은 가까운 곳에서 시작하여 먼 데서 결과가 나타난다.

 언행은 군자의 추기(樞機)이니 그 추기를 발하는 것에 영욕이 달려 있다.

 언행은 군자가 천하를 움직이는 수단이니 신중하게 해야 하지 않겠는가.”


* [61]* 중부(中孚)괘와 괘상과 구이(九二)의 효사(爻辭)에 대하여 —————


風澤中孚


  ‘上九, 翰音登于天, 貞凶.

  ‘九五, 有孚攣如, 无咎.

  ‘六四, 月幾望, 馬匹亡, 无咎.

  ‘六三, 得敵, 或鼓或罷, 或泣或歌.

  ‘九二, 鳴鶴在陰, 其子和之, 我有好爵, 吾與爾靡之.

  ‘初九, 虞吉, 有它不燕.


중부괘의 상괘는 손괘(巽卦, ☴)이고 하괘는 태괘(兌卦, ☱)이다. 상층부는 순조롭고 하층부는 기뻐한다. 기쁨은 에너지원이고 활력소이다. 또 상층부의 실권자인 구오(九五)와 하층부의 실력자인 구이(九二) 사이에, (효의 가운데가 뚫려 있는) 부드러운 음(陰)[三爻-四爻]들이 있기 때문에 둘을 가로 막는 칸막이가 없다. 가운데 길이 열려 있다. 그래서 상층부와 하층부가 믿고 상통(相通)한다. 그래서 이 괘의 이름을 ‘한마음이 되어 상통한다’는 의미에서 ‘중부(中孚)’라고 붙였다.

· ‘鳴鶴在陰’에서 ‘鳴’(명)의 주역코드는 진괘(震卦, ☳)이다. 중부괘의 내호괘[2효-3효-4효]가 진괘이다. 여기서는 구이(九二)가 짝인 구오(九五)를 향하여 믿음의 울림을 주는 것이다.

· ‘鳴鶴在陰’에서 ‘陰’(음)은 ‘음(蔭)’과 통용, ‘그늘’로 해석하지만, ‘在陰’은 구이(九二)가 ① ‘陰[六三]의 아래에 있다’고 해석하기도 하고 ② ‘음(陰)의 자리에 있다’고 해석한다.

· ‘鳴鶴在陰’에서 ‘鶴(학)’은 중부괘(中孚卦)가 학(鶴)의 형상을 하고 있다. 가운데 두 개의 음효(陰爻)는 학(鶴)의 다리이고 아래 위 각각 두 개씩의 양효(陽爻)는 학(鶴)의 긴 날개이 형상으로 볼 수 있기 때문이다.

· ‘其子和之’에서 ‘子’는 ‘구오’이다. ‘구이’와 ‘구오’는 서로 속마음으로부터 원하는 것이다

· ‘我有好爵’에서 ‘爵’(작)은 ‘爵(작)’과 통용, ‘술잔’,『역전』에서는 ‘벼슬[爵]’로 해석했다.

· ‘吾與爾靡之’에서 ‘靡’(미)는 ‘쓰러지다, 기울이다’, 요즘으로 말하면 잔(盞)을 부딪히며 ‘건배(乾杯)’하는 것이다. ‘爵’[잔]의 주역코드는 태괘(兌卦, ☱)인데, 중부괘(中孚卦)에서 하괘는 태괘(兌卦, ☱)이고, 상괘는 뒤집힌 잔[☴]이 되어 하괘를 향하는 태괘가 되어, ‘나와 그대가 잔을 마주 기울이는’ 상(象)이 된 것이다.

· ‘君子之樞機’에서 ‘樞’(추)는 ‘문짝과 문의 틀을 연결하는 지도리’이고 ‘機’(기)는 문을 닿을 때 문을 정지시키는 나무틀. ‘樞機’(추기)는 문을 여닫을 때 핵심적인 역할을 하는 것이므로 ‘핵심적인 역할을 하는 것’이라는 의미가 되었다.

· ‘榮辱之主也’에서 ‘主’는 ‘주관(主管)하다’는 뜻. ‘之’는 도치를 나타내는 역할을 한다.


* [강 설(講說)] —————

군자는 천도(天道)를 터득하여 실천하려는 자이다. 그리고 군자가 터득한 천도(天道)는 언행(言行)을 통해서 외적으로 표현된다. 군자(君子)가 말로 표현하고 몸으로 행하는 것의 내용은 만물을 살리고 기르는 사랑[한마음], 즉 ‘하늘의 뜻’이다. 사람과 만물이 서로 호응하고 신뢰를 지니게 된다. 중부(中孚)괘는 그것을 상(象)으로 표현하고 구이(九二)의 효사(爻辭)가 그것을 ‘명학(鳴鶴)’이라는 은유적인 코드로 표현한 것이다. 오묘하다!


* [사례 2] ★ [13] 천화(天火) 동인(同人)괘  구오(九五)


[8]-4 同人이 先號咷而後笑라하니 子曰 君子之道 或出或處或黙或語나

         二人同心하니 其利斷金이요 同心之言이 其臭如蘭이로다


 (同人卦의 九五에) “구오(九五)는 남과 하나가 되어야 한다.

 먼저 호통치고 울부짖지만 나중에 웃음을 짓는다.”고 했다.

 공자께서도 말씀하셨다. “군자의 도리른 나가기도 하고 머물기도 하며 침묵하기도 하고

 말하기도 하지만 두 사람이 마음을 같이 하면 그 날카로움을 쇠를 끊을 수 있고,

 마음을 같이 하는 사람은 그 향기가 난초와 같다”


天火同人


  · ‘上九, 同人于郊, 无悔

  · ‘九五, 同人, 先號咷, 而後笑, 大師克相遇

  · ‘九四, 乘其墉, 弗克攻, 吉

  · ‘九三, 伏戎于莽, 升其高陵, 三歲不興

  · ‘六二, 同人于宗, 吝

  · ‘初九, 同人于門, 无咎


· ‘先號咷’에서 ‘號咷’(호도)는 ‘울부짖다, 호통치다’의 뜻이다. ‘咷’(도)는 ‘울다’

호통치는 주역 코드는 태괘이다. 구오를 호통을 치는 대상은 구삼이다. 구이와의 소통을 가로 막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구삼을 향하여 호통을 치면 구삼이 무기력하여 부드러운 음효의 성격을 지닌다. 그렇게 되면 구오를 기준으로 하여 거꾸로 된 태괘가 되는 것이다.

· ‘或出或處或黙或語’는 불교에서 말하는 ‘言黙動靜’을 말한다.


* [강 설(講說)] ————

· 동인(同人)괘는 강력한 구오(九五)와 능력 있는 육이(六二)가 서로 상응하여 ‘한마음’이 되는 가장 조화롭고 아름다운 상태를 이룬다. 따라서 이 괘의 이름을 ‘동인(同人)’으로 붙였다.


구오(九五)가 육이(六二)와 상응하여 한마음을 이루고자 하나 구삼(九三)이나 구사(九四)가 중간에서 가로막고 있다. 그래서 강력한 힘을 가진 구오(九五)가 이들을 먼저 호통 쳐서 길을 열어야 한다. 그러면 웃을 수 있다. 그래도 듣지 않으면 강력한 군대를 동원하여 길을 열어야 한다. 그리하여 육이와 서로 만날 수 있다. 호통[號咷]의 주역 코드는 손괘(巽卦, ☴)이다. 이 괘의 내호괘(內互卦)가 손괘이다. 미소[웃음]의 주역 코드는 진괘(震卦, ☳)이다. 이 괘의 외호괘(外互卦)는 건괘(乾卦, ☰)인데, 구오(九五)가 호통을 쳐서 구삼(九三)과 구사(九四)를 유화(宥和)시켜 음유(陰柔)의 자질을 발현하게 하면, 구오(九五)를 기준으로 거꾸로 된 진괘(震卦, ☶)가 되는 것이다.


* [사례 3] ★ [28] 택풍(澤風) 대과(大過)괘의 초육(初六)


[8]-5 初六은 藉用白茅니 无咎라니 子曰 苟錯諸地라도 而可矣어늘

        藉之用茅하니 何咎之有리오 愼之至也라

        夫茅之爲物이 薄而用은 可重也니 愼斯術也하여 以往이면 其无所失矣리라


 (大過괘의) 초육에서 “제물(祭物)을 까는 데 하얀 띠풀을 쓰면 허물이 없다.”고 했다.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제물은 그냥 땅에 놓아도 좋다.

 그런데 그 밑에 띠풀을 사용하는 데 무슨 허물이 있겠는가. 삼가는 마음이 지극한 것이다.

 띠는 하잘 것 없는 것이지만 사용하기에 중요할 것이 될 수도 있다.

 이러한 마음가짐으로 삼가며 나아가면 실패가 없을 것이다.”


澤風大過


  ‘上六, 過涉滅頂, 凶, 无咎.

  ‘九五, 枯楊生華, 老婦得其士夫, 无咎无譽.

  ‘九四, 棟隆, 吉, 有它, 吝.

  ‘九三, 棟橈, 凶.

  ‘九二, 枯楊生稊, 老夫得其女妻, 无不利.

  ‘初六, 藉用白茅, 无咎.


· ‘藉用白茅’(자용백모)에서 ‘藉’(자)는 ‘깔개, 자리’. ‘茅’(모)는 ‘띠, 풀’. ‘白茅’는 제사에서 돗자리 대신에 까는 ‘하얀 띠풀’이다.


* [강 설(講說)] ————

[28] 대과(大過)의 괘사는 ‘크게 지나친 상황이다. 대들보가 휘니, 적극적으로 대처하는 바가 있어야 이롭다. 밝은 마음으로 해야 한다.(大過, 棟撓, 利有攸往, 亨.)’이다.


초육(初六)은 문제 상황의 초기 단계이다. 집의 구조로 말하면 기둥이 허약한 것에 해당한다. 집이 무너지는 전체의 상황으로 보면 초육(初六)은 양의 자리에 음(陰)이 왔으므로 허약한 기둥이다. 정성껏 살피고 잘 대비해야 한다. ‘백모(白茅)’는 ‘마음이 깨끗한 상태’를 주역 코드로 은유한 말이다. 마음이 깨끗하다는 말은 순수한 마음으로 정성을 다한다는 것이다. 초기의 상황에서 정성을 기울지 않으면 안 된다. 백(白)의 주역 코드는 태괘(兌卦, ☱)이다. 태(兌)는 서방(西方)이고 서방은 흰색이다.

대과(大過)는 난국이 시작되는 상황이다. 이럴 때에는 상황을 냉정하게 인식하고 작은 정성이라고 지극하게 해야 한다. 제사를 지낼 때 '하얀 띠풀'을 바닥에 깔고 제사(祭祀)를 올리는 것은 아주 소박하지만 순수한 정성이다. 정성이 지극하면 허물이 없는 것이다.


* [사례 4] ★ [15] 지산(地山) 겸괘(謙卦)의 구삼(九三)


[8]-6 勞謙이니 君子有終이니 吉이라하니 子曰 勞而不伐하며

      有功而不德이 厚之至也니 語以其功下人者也라 德言盛이요 禮言恭이니

      謙也者는 致恭하여 以存其位者也라


 (謙卦의 九三에서) “겸손(謙遜)함을 애써 실천해야 하는 상황이니

 군자(君子)라야 마침이 있어서 길하리라”고 했다.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고생하고도 자랑하지 않고, 공이 있어도 자기의 덕택이라고 하지 않으니,

 후덕(厚德)함의 극치이다. 이것은 공이 있으면서도 남에게 낮추는 사람을 말한 것이다.

 덕(德)이 있는 말은 성대하고 바른 말은 공손하다.

 겸손이란 공손함을 다함으로써 그 지위를 보존하는 것이다.”


地山 謙


  · 初六, 謙謙君子, 用涉大川, 吉.

  · 六五, 不富, 以其鄰利用侵伐, 无不利.

  · 六四, 无不利, 撝謙.

  · 九三, 勞謙, 君子有終, 吉.

  · 六二, 鳴謙, 貞吉.

  · 初六, 謙謙君子, 用涉大川, 吉.


* [강 설(講說)] ————

지산(地山) 겸괘(謙卦)의 괘사를 보면, ‘[15謙] 겸손(謙遜)해야 하는 상황이다. 밝은 마음으로 임해야 한다. 군자라야 잘 마칠 수 있다.(謙, 亨, 君子有終)’고 했다. 괘의 상을 보면 높은 산(山)이 땅보다 아래에 있으니 겸손하고, 굳세고 유일한 양효인 구삼(九三)이 음(陰)들의 아래에 거하고 있는 상황이니 겸손(謙遜)한 것이다.


구삼(九三)은 전체에서 유일한 양(陽)이다. 그런데 구삼(九三)은 대단한 실력을 가졌으면서도 아래쪽에 거하여 자신은 낮춘 상태이다. 그래서 노겸(老謙)이라 했다. 노겸은 두 가지로 해석한다. ① ‘힘써 겸손하다’ ② ‘노고를 다하고 나서도 (자신을 드러내지 않고) 겸손하다’ 그러므로 노겸의 군자는 하늘과 사람의 도리를 다하여 유종(有終)의 덕(德)을 실행할 수 있다. 그래서 바른 것[貞]이다. 구삼(九三)은 겸괘(謙卦)의 중심을 이루는 주효(主爻)이므로. 효사인 ‘君子有終’을 겸괘의 괘사(卦辭)로 내세운 것이다. 그러므로 ‘늘 정성을 다하여 겸손한 사람[老謙君子]’에게는 모든 사람들이 그를 따르고 복종하기 마련이다. ‘만민(萬民)’의 주역 코드는 곤괘(坤卦, ☷)이다. 여기서는 구삼(九三)의 상하에 있는 모든 음효(陰爻)들이다.


* [사례 5] ★ [01] 중천(重天) 건괘(乾卦)의 상구(上九)


[8]-7 亢龍 有悔라하니 子曰 貴而无位하며 高而无民하며

         賢人이 在下位而无輔ㅣ라 是以動而有悔也ㅣ니라


 (乾卦 上九에서) ‘고자세를 취하는 용이면 후회함이 있다’고 했다.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존귀하나 지위가 없고 지위가 높아도 (따르는) 백성이 없다.

 현인이 자기보다 아래 있으나 보필함이 없다. 이러하므로 움직이면 후회함이 있다.”


重天 乾


    ‘用九, 見羣龍无首, 吉

   上九, 亢龍有悔

   ‘九五, 飛龍在天, 利見大人

   ‘九四, 或躍在淵, 无咎

   ‘九三, 君子終日乾乾, 夕惕若, 厲无咎

   ‘九二, 見龍在田, 利見大人

   ‘初九, 潛龍勿用


* ‘亢龍有悔’에서 ‘亢’(항) ; ‘높다’, ‘목’의 뜻. ‘고자세를 취하여 목에 힘을 주다’로 해석한다.


* [강 설(講說)] ————

‘고자세로 목에 힘을 주는 용(龍)이 후회함이 있다’는 것은 노쇠한 자신과 주위의 상황이 모두 극(極)에 달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상구(上九)에 있는 사람은 겸허(謙虛)한 자세로 참고 견디면서 조용히 기다려야 한다. 달이 차면 기울고 꽃이 피어도 시든다. 이처럼 사람도 한창 때의 세력이 오래가지 않는다. 자기의 인생이 기울어졌을 때를 인식하기 못하고 계속 목에 힘을 주고 있으면 결국 모두에게 무시당하고 버림받게 되어 낭패를 당한다


상구(上九)는 인생에 있어서는 60세를 지난 시기에 해당한다. 회사에서는 명예회장이나 고문, 학교에서는 은퇴한 교수나 교장이 이에 해당한다. 이 경우 명예나 서열은 가장 높지만 실권(實權)은 없다. 따라서 과거에 자기를 받들고 따르던 사람들이 전처럼 따르지 않아 섭섭하고 외로워지기 쉽다. 이럴 때 그 섭섭함을 참지 못하고 찾아오는 사람에게 서운한 감정을 드러내거나 원망은 하면 그나마 찾아오던 사람들도 아주 외면하게 된다. 그렇게 되면 한없이 외롭게 되어 후회할 일만 남는다. 이것이『주역(周易)』의 가르침이다.


* [사례 6] ★ [60] 수택(水澤) 절괘(節卦)의 초구(初九)


[8]-8 不出戶庭이면 无咎라하니 子曰 亂之所生也 則言語 以爲階니

         君不密則失臣하며 臣不密則失身하며 幾事 不密則害成하나니

         是以君子 愼密而不出也하나니라


([60] 節卦의 初九에서) ‘문이나 뜰을 벗어나지 않으면 허물이 없다.’고 했다.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어지러움이 생기는 것은 말이 통로가 되기 때문이다. 임금이 주도면밀하지 못하면 신하를 잃게 되고 신하가 주도면밀하지 못하면 제 몸을 잃게 된다. 기미가 보이는 일에 주도면밀하지 못하면 해로움이 생긴다. 그러므로 군자(君子)는 신중하고 면밀하여 말을 함부로 내뱉지 않는다.”


水澤


  上六, 苦節, 貞凶, 悔亡.

  ‘九五, 甘節, 吉, 往有尙.

  ‘六四, 安節, 亨.

  ‘六三, 不節若, 則嗟若, 无咎.

  ‘九二, 不出門庭, 凶.

  ‘初九, 不出戶庭, 无咎.


· ‘亂之所生也 則言語 以爲階니’에서 ‘’의 주역코드는 감괘(坎卦, ☵)이고, ‘言語’의 주역코드는 태괘(兌卦, ☱)이다. 공자의 말씀은 절괘(節卦)의 상하괘의 상(象)을 보고 한 것이다.

· ‘君不密則失臣’에서 ‘不密’은 ‘면밀하게 말하지 않으면’, 즉 ‘함부로 말하면’의 뜻이다

· ‘言語 以爲階’에서 ‘以~’의 목적어는 앞에 나온 ‘言語’인데 생략되었다. ‘’는 ‘시작 단계’

· ‘幾事’(기사)는 ‘어떤 기미가 보이는 일’

· ‘愼密而不出也’에서 ‘不出’은 ‘不出戶庭’이다.


* [강 설(講說)] ————

[60] 절괘(節卦)의 괘사에서 ‘절제해야 하는 상황이다. 밝은 마음으로 해야 한다. 절제하는 것을 고통스럽게 여기면 바르게 할 수가 없다.(節, 亨, 苦節, 不可貞)’고 했다. 공자의 말씀으로 정리하면 말은, 늘 신중히 해야 하고 상황에 맞게 해야 한다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말은 해야 할 상황이면 말하고 하지 않아야 할 때는 하지 않는 것이 절도(節度)이다.


초구(初九)는 절도(節度)의 생활을 시작하는 단계이다. 대나무의 생장과정으로 보면 첫 번째 맺어지는 마디에 해당한다. 그처럼 초구(初九)는 아직 어리다. 규율과 법도를 아직 모른다. 사람이 사회생활을 제대로 하려면 규율과 법도를 익혀 준수해야 한다. 그래야 밖으로 나가 제대로 활동을 할 수 있고 인간관계도 제대로 맺을 수 있다. 따라서 그것들을 익힐 때까지 집 밖에 나가지 않는 것이 좋다. 강양의 초구는 앞으로 나아고자 한다. 그러나 초구의 나아감을 가로막는 것이 구이(九二)나 육삼(六三)이다. 이들은 모두 부정(不正)의 자리에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문이나 뜰을 벗어나지 않아야 하는 것은 통하고 막히는 것을 알아야 한다’고 한 것이다.


초구(初九)는 어떤 단체에 처음 들어간 사람이나 낯선 나라에 처음 간 사람 등도 이에 해당한다. 거기서 꼭 해야 할 일이 있을 때에는 잘 아는 사람에게 겸손하게 물어서 하는 것이 좋다. 공자(孔子)는 태묘의 제사에 참여했을 때 물어서 했고, 맹자(孟子)는 “외국에 들어갈 때에는 먼저 그 나라의 법에 대해서 공부한 뒤에 들어가야 한다.”고 했다.


* [사례 7] ★ [40] 뇌수(雷水) 해괘(解卦)의 육삼(六三)


[8]-9 子曰 作易者 其知盜乎인저! 易曰 負且乘이라 致寇至라하니

         負也者는 小人之事也요 乘也者는 君子之器也니 小人而乘君子之器라

         盜 思奪之矣며 上을 慢코 下 暴라 盜 思伐之矣니

         慢藏 誨盜며 冶容 誨淫이니 易曰 負且乘致寇至라하니 盜之招也라

         右는 第八章이라.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주역』을 지은이는 도둑의 생리를 살필 줄 아는가 보다.”

 역(解卦의 六三에서) “등에 짊어지고 또 올라타고 있으니 도둑을 오게 만든다.”고 했다.

 짐을 등에 지는 것은 신분이 천한 사람이 하는 일이다.

 수레는 신분이 높은 사람이 타는 기구이다.  그런데 신분이 천한 사람이면서

 신분이 높은 사람이 타는 수레를 타면 도둑이 빼앗을 마음을 먹는다.

 윗사람이 태만하고 아랫사람이 난폭하면 도둑은 칠 마음을 먹는다.

 감추는 일에 태만하면 도둑을 부르고, 얼굴을 현란하게 화장하면 음탕한 사람을 부른다.

 주역에서 “등에 짊어지고 있으면서 또한 올라타 고 있으니 도둑을 오게 만든다.”고 하였으니

 도둑을 불러들이는 것이다.


雷水


  ‘上六, 公用射隼于高墉之上, 獲之, 无不利.

  ‘六五, 君子維有解, 吉, 有孚于小人.

  ‘九四, 解而拇, 朋至斯孚.’

  ‘六三, 負且乘, 致寇至, 貞吝.’

  ‘九二, 田獲三狐, 得黃失, 貞吉.

  ‘初六, 无咎.



· ‘負且乘’(부차승)에서 ‘負’는 상괘[震卦, ☳]를 말하고, ‘乘’은 하괘[坎卦, ☵]를 가리킨다.

· ‘ 慢藏 誨盜’에서 ‘’는 ‘(도적을) 깨우치다’, ‘도적을 깨우친다’는 말은 ‘도적으로 하여금 훔치러 오도록 께우친다’는 말이다.

· ‘冶容 誨淫’에서 ‘’(야)는 ‘꾸미다, 장식하다’. ‘’(음)은 ‘음탕한 사람’

· ‘盜之招也’에서 ‘’는 도치된 글자 가운데 들어가는 글자. ‘’와 ‘’가 도치되었다.


* [강 설(講說)] ————

[40] 해괘(解卦)괘의 상괘는 ‘역동적인 움직임’을 뜻하는 진괘(震卦, ☳)이고, 하괘는 험난한 상황을 뜻하는 감괘(坎卦, ☵)이다. 아래는 어렵고 험난한 상황인데 위에서 힘차게 활동하여 문제를 해결하는 상황이다. 그래서 ‘해괘(解卦)’라고 했다. 해결되는 상황에서 걸림돌에 해당하는 것이 육삼(六三)이다. 육삼(六三)은 무거운 산(山)을 지고 있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상층부의 ‘4효-5효-상육’을 뒤집어보면 간괘(艮卦, ☶)가 되어 ‘산(山)’이 되는 것이다. 그런데 여기에서 최종적으로 문제를 해결하는 사람은, 유일한 정위(正位)인 상육이다.


육삼(六三)은 중(中)이 아니면서 양의 자리에 음(陰)이 왔으므로 그 자리가 부정(不正)하다. 그래서 그 자질이 소인에 해당한다. 해결하는 상황에서 육삼(六三)은 ‘해결(解決)’의 결림돌’이 되는 자이다.

육삼(六三)은 문제의 해결사인 구사(九四)에게 눌려서 불만이 있고 또 아래의 구이(九二)와 대치하여 아래·위로 적(賊)을 두고 있는 상황이다. 그것이 ‘무거운 것을 등에 지고 딱딱한 수레를 타고 있는’ 형국이다. 육삼(六三)이 궁지에 몰리면 짝인 ‘상효(上爻)’의 도움을 받을 수 있다. 그런데 상효가 양효(陽爻)이고 능력이 있을 때는 구하러 오겠지만, 음효(陰爻)이고 능력이 없으면 오히려 친근감을 이용해서 ‘(물건을) 훔치러 올 것이다.’ 이 경우는 후자에 해당한다. 이 모든 것이 육삼(六三) 자신의 부덕(不德)함 때문이다. 그러므로 바르게 해도 부끄럽다. ‘또 누구를 탓하겠는가?’ 결국 ‘육삼(六三) 자기 탓’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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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계사전 상<제2강> (제5장~제8장) <끝>

출처 : 동양철학 나눔터 - 동인문화원 강의실
글쓴이 : 백파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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