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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로아스터 2018. 7. 9. 20:49

[손기원 박사 周·人·工 四書三經] *<제106강> (2018.05.21.)

— <周·人·工 四書三經>은 ‘周易과 人性을 工夫하는 四書三經 강좌’를 말한다 —


주역(周易) 계사전(繫辭傳) (제2강) -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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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주역(周易) 공부 ☞ 계사전·상 [제5~8장]


周易 繫辭傳·上 (제5장~제7장)


<제5장> ; 음양(陰陽)의 법칙(法則)과 역(易)


[5]-1 一陰一陽之謂 道니 繼之者 善也요 成之者 性也라.

         仁者 見之 謂之仁며 知者 見之 謂之知오 百姓 日用而不知라.

         故로 君子之道 鮮矣니라.


 음(陰)이 되었다가 양(陽)이 되었다가 하는 것을 도(道)라고 한다.

 (陰陽의) 도(道)를 이어받는 것은 선(善)이고, 도(道)를 갖추고 있는 것이 성(性)이다.

 어진 사람을 그것을 보고 어질다고 하고, 지혜로운 사람은 그것을 보고 지혜롭다고 하는데,

 일반 사람들은 매일 매일 도(道)를 쓰면서도 그것이 무엇인지 알지 못한다.

 그러므로 군자의 도가 (잘) 행해지는 일이 드물다.


· ‘一陰一陽’은 한 번 음(陰)이 되고 한 번 양(陽)이 되는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음이 되었다가 양이 되었다가 하는 도(道)의 작용’을 표현한 말이다. [본의] ‘음·양이 번갈아 운행하는 것은 기(氣)이고 그 이치는 이른바 도(道)라는 것이다.(陰陽迭運者氣也 其理則所謂道)’

· ‘仁者 見之’, ‘知者 見之’의 ‘之’는 앞에 나오는 ‘음양의 道’를 가리킨다. ‘謂之仁’은 ‘부드럽고 너그럽다고 말한다.’ ‘謂之知’는 ‘지혜로 삼는다.’ ‘仁’과 ‘知’를 겸비한 사람이 성인이다.


* [강 설(講說)] —————

하늘의 작용은 만물에 생명(生命)을 부여하고 살리는 작용이다. 그 작용은 음(陰)과 양(陽)의 순환으로 나타난다. 사계절의 순환이나 밤과 낮의 교차와 같은 자연현상이 그렇고, 그 속에서 이루어지는 모든 생명작용이나 인간의 삶이 모두 음양의 조화로 이루어진다.


음양(陰陽)의 조화로 생명을 부여하고 살리는 하늘의 작용을 이어받아, 생명이 만들어지고 성숙하는 과정을 선(善)이라 한다. 그리고 성장의 결실을 이루어 그 생명체에 내재하게 된 천도(天道)를 성(性)이라 한다. 예컨대, 씨앗에서 싹이 터서 성장하는 과정을 선(善)이라 한다면, 다 자란 뒤 결실을 하고 그 씨앗에 내재하게 된 상태를 성(性)이라 한다.


천도(天道)가 순환하여 만물이 나고 자라고 결실하는 과정은, 생명에 대한 하늘의 사랑이 충만하기에 가능한 일이다. 빛을 내리고 밤낮을 교차시키며 바람과 비를 내리고 사계절을 순환시키는 것은 모든 만물을 살리기 위한 하늘의 힘이다. 그래서 어진 자는 이러한 현상을 보고 하늘의 사랑[仁]을 느낀다. 또 하늘의 작용은 불가사의할 정도로 지혜롭다. 모든 생명체는 삶을 이어가기 위해 암수가 짝을 이룬다. 모든 식물들은 벌과 나비를 부르기 위해 꽃을 피우고 꿀을 만든다. 식물이 뿜어내는 산소를 동물들이 호흡하고 동물이 뿜어내는 탄소를 식물은 자양으로 삼는다. 생태계의 먹이 피라미드는 그 자체가 하나의 조화로운 삶의 구조를 이룬다. 이 모든 것에 신비로운 이치가 가득하다. 그래서 지혜로운 자는 이것을 보고, 하늘의 지혜를 안다.


인간 또한 이 하늘의 작용을 벗어나서는 하루도 살 수 없다. 인간의 호흡(呼吸)이나 심장의 박동 등이 음양의 작용이고 하늘의 작용이다. 그리고 ‘남’을 ‘나’처럼 여기고 사랑하는 것 또한 하늘이 내린 본성인데, 인간의 욕심 때문에 하늘의 작용[본성]을 제대로 실천하지 못한다. 그래서 ‘그러므로 군자의 도가 (잘) 행해지는 일이 드물다.’고 했다.


[5]-2 顯諸仁하며 藏諸用하야 鼓萬物而不與聖人同憂하나니 盛德大業 至矣哉라


  (陰陽의 도는) 인(仁)을 실천하는 데 드러나고, 작용하는 데 감추어져 있어서,

  만물을 고무(鼓舞)시키지만 성인과 같이 걱정하지 않는다.

  성대한 덕(德)과 위대한 업적이 지극하도다!


· ‘顯諸仁 藏諸用’에서 ‘諸’는 ‘之於’의 관용적(慣用的)인 축약형이다.

· ‘鼓萬物而…’에서 ‘’는 ‘고무하다’, ‘동기를 부여하다’의 뜻이다.


* [강 설(講說)] —————

하늘의 뜻은 만물에 생명을 부여하고 살리는 작용으로 드러난다. 인의 작용이다. 그리고 그 인의 작용은 하늘임 만물을 생성하고 기르는 과정에 내재되어 있다. 예컨대, 무리하여 몸이 상한 사람에게는 쉬면서 몸을 돌보게 하기 위해 아픔[病]을 준다. 이것은 하늘의 인(仁)의 작용이고 그 인(仁)은 아프게 하는 작용 속에 내재되어 있는 것이다.


그러나 하늘의 작용은 만물을 고무(鼓舞)시켜 생명을 충실하게 하지만, 성인처럼 자세하게 걱정하거나 치료해 주지 않는다. 하늘은 인간의 말을 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해서 만물을 사랑하는 뜻이 부족한 것은 아니다. 조금의 착오도 없이 인을 실현하고 있다. 그래서 ‘성대한 덕과 위대한 업적이 지극하다’고 한 것이다.


[5]-3 富有之謂 大業이요 日新之謂盛德이며 生生之謂 易이요

         成象之謂 乾이며 效法之謂 坤이요 極數知來之謂 占이며

         通變之謂 事이고 陰陽不測之謂 神이라. 右는 第五章이라


 (땅이) 넉넉하게 가지는 것을 큰 사업(事業)이라 하고

 (하늘이) 날마다 새로워지는 것을 성대한 덕(德)이라고 한다.

 그리고 살리고 살리는 것을 역(易)이라고 한다.

 상(象)을 이루는 것을 건(乾)이라 하고, 본받는 것을 곤(坤)이라 한다.

 수(數)를 다 헤아려 미래의 일을 아는 것을 점(占)이라 하며

 하늘의 이치에 통달하여 변화시키는 것을 일이라 한다.

 음인지 양인지 헤아릴 수 없는 것을 신(神)이라 한다.


· ‘富有之謂 大業’는 ‘땅’의 작용을 말한 것이다. 땅은 모든 것을 가지고 있다. ‘業’은 ‘역할’.

· ‘日新之謂 盛德’은 ‘하늘’의 성대한 작용을 말한 것이다. 맹자가 『孟子』<盡心·上4>에서 “만물이 모두 나에게 갖추어져 있다.(萬物皆備於我矣)”고 한 것은 하늘의 작용이 우리 사람에게 모두 갖추어져 있음을 말한 것이다. 그것이 바로 성(性)이다.[天命之謂性]

· ‘生生之謂 易’에서 ‘生生’은 ① ‘(만물을) 낳고 또 낳다’ ② ‘(만물을) 살리고 또 살리다’

· ‘成象之謂 乾’은 ‘주역 64괘의 모든 상(象)은 건(乾)에서 나왔다’는 것을 말한 것이다. ‘하늘’은 물론 ‘땅-사람’도 모두 그 근본(根本)은 ‘하늘’이다.

· ‘效法之謂 坤’에서 ‘效法’은 ‘기준[法]을 본받는다[效]’는 뜻인데 땅이 하늘을 본받고, 사람도 하늘의 이치를 본받고[精神] 또 땅의 이치를 본받는다.[肉體] 군자는 하늘과 땅을 본받아 수기(修己)하여 덕업(德業)을 쌓는다.

· ‘極數知來之謂 占’에서 ‘極’은 ‘극진하게 생각하다’, ‘완전히 이해하다’. ‘數’는 ‘경우의 수’를 말한다. ‘來’는 ‘知’의 목적어로 ‘미래(未來)’라는 뜻으로 쓰였다.

· ‘通變之謂 事’에서 ‘通變’은 ‘하늘과 통하여 변화하는 것’을 뜻한다. 즉 내가 하늘의 이치를 통달하여 자신도 변하고 다른 사람도 변화시키는 것을 말한다. 성인(聖人)이 하는 일이다.

· ‘陰陽不測之謂 神’에서 ‘陰陽’은 현상적으로 작용하는 것[形而下者]이지만 그 이전의 상태인 ‘태극(太極)’은 사람의 눈으로 확인할 수 없다.[形而上者] 그래서 신비하고 신기한 것으로 여겨지기도 한다.


맹자(孟子)가 이르기를, ‘순수한 본마음이 하고자 하는 것은 선(善)이라 하고, 선(善)을 자기 속에 지속적으로 지니고 있는 것을 신(信)이라 하고, 선이 몸속에 가득 차는 것을 미(美)라 하고, 가득 차서 빛을 발하는 것을 대(大)라 하고, 대의 상태가 되어서 스스로 탈바꿈하는 것을 성(聖)이라 하고, 성의 상태가 되어서 사람들이 파악할 수 없는 것을 신(神)이라 한다.(聖而不可知之之謂神)’고 하여 신(神)을 ‘不可知之’라고 했다. * [盡心章句·下](제25장)


* [강 설(講說)] —————

하늘의 작용을 인간에게 알려 주는 것이 역(易)이다. 즉 역리(易理)는 하늘의 계시이다. 하늘의 작용은 만물을 살리고 또 살리는 것이다. 죽게 하는 것은 없다. 개체의 죽음은 전체적으로 보면 살리는 과정이다. 마치 가을의 낙엽이, 그 자체만으로 보면 소멸하는 것이지만 나무 전체의 생명에서 보면 살기 위한 과정에서의 현상인 것과 같다.


역(易)은 인간이 이러한 이치를 깨닫고, 충실하게 살 수 있게 하기 위해 존재한다. 본질적으로 개인의 삶은 만물 전체의 삶에 닿아 있고, 하늘의 작용과 이어져 있다. 이러한 원리에 입각하여, 역은 개체적인 삶을 초월하여 전체적 입장에서 삶을 충만하게 하도록 인간을 인도하는 것이다. 이러한 입장에서 서면, 삶만이 영원히 계속될 뿐 죽음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역리를 익혀 삶 속에서 실현한다면, 영생을 얻는다고 할 수 있다.


만물을 생성하는 상(象)을 드리우는 것을 하늘의 작용이고 건(乾)의 작용이며 양(陽)의 일이다. 그리고 드리워진 이미지[象]을 본받아 이를 구체화시키는 것은 땅의 작용이고 곤(坤)의 작용이며 음(陰)의 일이다.


시초(蓍草)의 수(數)를 갈라 앞으로의 일을 예견하는 것은 점(占)의 효능이다. 점을 치거나 역리를 공부하여 하늘의 이치에 통달하여 자신의 삶을 천명에 따른 삶으로 변화시키는 것은 사람이 마땅히 해야 할 ‘일’이다.


하늘의 작용은 음양(陰陽)으로 구체화되지만, 그것은 외부적으로 드러나는 현상일 뿐 천명(天命) 그 자체는 아니다. 음양으로 구별하는 것은 천도(天道)를 이해하기 위한 방편적인 것에 불과하다. 천도는 역리이니 역리 역시 그러하다. 신(神)이란 그 실상을 구체적으로 파악할 수 없는 역리나 천도를 형용하는 표현이다.


<제6장> ; 건곤(乾坤)의 방대함과 역(易)


[6]-1 夫易이 廣矣大矣라 以言乎遠則不禦하고 以言乎邇則靜而正하고

         以言乎天地之間則備矣라


 역(易)의 이치는 넓고 크다. 먼 것에서 말하면 그것을 막아낼 수 없고

 가까운 곳에서 말하면 고요하면서도 바르다.

 하늘과 땅 사이에 있는 것에서 말하면 거기에 모든 것을 다 갖추고 있다.


· ‘以言乎…’에서 ‘以’의 목적어는 앞에 나온 ‘易’이다. ‘역리를 가지고 …’로 해석하면 된다.

· ‘以言乎遠則不禦’에서 ‘禦’(어)는 ‘막다’, ‘不禦’는 ‘막을 수 없다, 끝이 없다, 무한하다’.

· ‘以言乎邇則靜而正’에서 ‘邇’(이)는 ‘작은 것, 미세한 것’이니 ‘깊은 마음 속’도 포함된다.


* [강 설(講說)] —————

역의 이치는 천지의 작용을 상징하기 때문에, 하늘의 작용처럼 크고 땅의 작용처럼 넓다. 그리고 그 괘가 제시하는 이치는 무한한 시간과 공간에 적용되지만, 또한 찰나의 순간이나 극미한 공간에도 적용된다. 그래서 역리를 무한한 공간과 무궁한 시간에 적용하면 중단되거나 막을 수 없다. 또 극미의 시공에 적용하면 소리도 형체도 없는 미세한 세계를 표현하지만 한 치의 오류도 없이 정확하다. 따라서 역리는 천문학에도 적용되지만 미생물학이나 양자역학 등에도 적용될 것이다.


역(易)의 이치는 하늘과 땅 사이에 모든 원리가 포함되어 있기 때문에, 모든 존재자의 삶의 원리가 모두 갖추어져 있다.


[6]-2 夫乾은 其靜也 專하고 其動也 直이라. 是以大 生焉하며

         夫坤은 其靜也 翕하고 其動也 闢이라. 是以廣 生焉하나니

         廣大는 配天地하고 變通은 配四時하고 陰陽之義는 配日月하고

         易簡之善은 配至德하니라. 右는 第六章이라.


 건(乾)은 고요할 때는 한결같고, 움직일 때는 곧다. 그리하여 크게 만물을 낳는다.

 곤(坤)은 고요할 때는 닫히고, 움직일 때는 열린다. 그리하여 넓게 만물을 낳는다.

 광대(廣大)한 것은 하늘과 땅에 짝하고 변하여 통하는 것은 네 계절에 짝하고,

 음(陰)과 양(陽)이 변화하는 법칙은 해와 달에 짝하고,

 쉽고 간략하게 잘 처리하는 것은 지극한 덕(德)에 짝한다.


· ‘其靜也 翕’에서 ‘翕’(합)은 ‘합하다’, 두 문짝을 합하는 것은 닫는 것이므로 ‘닫는다’.


* [강 설(講說)] —————

새로운 생명을 낳고자 하는 건(乾)의 의지는, 언제 어디서나 변함없이 한결같다. 그리고 그 의지가 구체적으로 작용할 때는 곧바로 발휘된다. 그리하여 무수한 만물을 생성한다.


건(乾)의 의지를 받아 실질적으로 만물을 생성하는 곤(坤)의 작용은, 조건에 따라 문을 열어 건의 뜻을 받아들이기도 하고, 닫아서 그 뜻을 차단하기도 한다. 마치 가을에 씨를 뿌려도 겨울에 발아(發芽)하지 않고 가다렸다가 봄에 싹을 틔우는 것과 같다. 그리고 암컷이 때가 아닐 때는 수컷의 접근을 차단했다가, 발정기(發情期)가 되었을 때 받아들이는 것과 같다.


건(乾)과 곤(坤)의 넓고 큰 작용은 하늘과 땅의 작용에 짝이 된다. 그리고 이 작용이 원(元)→형(亨)→이(利)→정(貞)→원(元)… 으로 순환하여 통하는 것은 사계절에 짝이 된다. 또 건(乾)의 양(陽)의 작용과 곤(坤)의 음(陰)의 작용은 해와 달에 짝이 되고, 건곤(乾坤)의 쉽고 간단한 작용은 하늘과 땅의 지극한 덕(德)에 짝이 된다.


[본의(本義)] 건·곤(乾坤)은 각기 동·정(動靜)이 있으니 사덕(四德)에서 보면 정(靜)은 체(體)이고 동(動)은 용(用)이며, 정(靜)은 따로이고 동(動)은 서로 사귄다. 건(乾)은 일(一)이어서 실하므로 질(質)로써 말하며 대(大)라 하였고, 곤(坤)은 이(二)여서 허(虛)하므로 양(量)으로써 말하여 광(廣)이라고 한 것이다. 하늘의 형체가 비록 땅의 밖을 포함하고 있으나 그 기는 항상 땅의 가운데에 행하니, 역이 광대한 까닭은 이 때문이다.


<제7장> ; 역(易)을 실천하는 문(門)


[7]-1 子曰 易 其至矣乎인저. 夫易은 聖人 所以崇德而廣業也니

         知(智)는 崇코 禮卑하니 崇은 效天하고 卑法地하니라.

         天地 設位어든 而易 行乎其中矣니 成性存存이 道義之門이라

         右는 第七章이라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역(易)은 지극하도다!”

    역(易)은 성인이 덕을 높이고 사업을 넓히는 도구이다.

    지혜(智慧)는 높이고 예법(禮法)은 낮추는 것이니,

    높이는 것은 하늘을 본받고 낮추는 것은 땅을 본받는다.

    하늘과 땅이 자리를 베풀어 역(易)의 도(道)가 그 가운데에서 행해지니

    본성(本性)을 이루어 간직하고 간직하는 것이 도의(道義)를 실천하는 문이다.


* [강 설(講說)] —————

천지(天地)는 말이 없다. 만물에 생명을 부여하고 성장시키지만 구체적으로 지시하지는 않는다. 그래서 사람은 천지의 작용으로 나고 그 속에서 존재하면서도 이를 알지 못하고 오히려 욕심에 가려져 온갖 악을 자행하고 고통을 짊어진다. 때문에 성인이 나오시어, 천지의 도를 실천하도록 인간들을 가르치고 악과 고통으로부터 구제하셨는데, 이때 성인이 제시한 천지의 도가 바로 역리이다. 그러므로 역은 인간을 구제하기 위한 도구로 성인이 만드신 것이다. 성인의 모든 뜻과 사업이 이 역에 응축되어 있다.


역의 이치를 아는 것은 참된 지혜요, 이를 실천하는 것은 참된 삶이다. 역을 아는 이치는 하늘을 본받는 것이니, 높고 고상하다. 그러나 역리를 실천하는 것은 구체적으로 행동하는 것이니, 땅의 작용에 해당한다. 땅은 하늘을 높이고 자신을 낮춘다. 역리를 실천할 때의 행동은 자신을 낮추고 남을 높이는 형태로 드러난다. 이것이 바로 예이다.


위에는 하늘이, 아래에는 땅이 자리하고 있고, 그 사이에서 역리가 작용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인간은 하늘로부터 받은 자신의 본성을 보존하고 실천하는 것이 도리이다. 그리고 그것은 역리에 통달하여 실천할 때 가능하다.


 <계 속>

출처 : 동양철학 나눔터 - 동인문화원 강의실
글쓴이 : 백파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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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로아스터 2018. 7. 9. 20:49

[손기원 박사 周·人·工 四書三經] *<제105강> (2018.05.14.)

— <周·人·工 四書三經>은 ‘周易과 人性을 工夫하는 四書三經 강좌’를 말한다 —


주역(周易) 계사전(繫辭傳) (제1강)-(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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周易 繫辭傳·上 (제2장~제4장)


<제2장> ; 주역(周易)의 성립(成立)과 효용(效用)


[2]-1 聖人 設卦하여 觀象繫辭焉하여 而明吉凶하며

         剛柔 相推야 而生變化하니

         是故로 吉凶者는 失得之象也요 悔吝者는 憂虞之象也라.

         變化者 進退之象也요 剛柔者 晝夜之象也요

         六爻之動은 三極之道也라.


 성인(聖人)은 괘(卦)를 만들어 상을 살피고 거기에 설명을 붙여서 길(吉)함과 흉(凶)함을 밝혔다.

 굳센 것과 부드러운 것이 서로 밀쳐서 변화(變化)를 낳는다.

 이런 까닭으로 길함과 흉함이라는 것은 잘못된 것과 잘된 것이 상징적으로 표현된 것이고,

 뉘우친다는 것과 곤란해진다는 것은 근심하고 두려워하는 것이 상징적으로 표현된 것이다.

 변화라는 것은 나아가고 물러감이 상징적으로 표현된 것이고,

 굳센 것과 부드러운 것은 나아가고 물러남이 상징으로 표현된 것이다.

 육효(六爻)가 변동하는 것은 천(天)·지(地)·인(人) 삼극이 작용하는 것이다.


* [本義 강설] ①  "是故로 吉凶者는 失得之象也요 悔吝者는 憂虞之象也라"에 대한 해설

·과 悔·吝은 易의 말이요, 得·失과 憂·虞는 일의 變이니, 이치에 맞으면 吉하고 이치를 잃으면 凶하며, 憂와 虞는 비록 凶함에 이르지 않았으나 이미 뉘우침을 이루어 부끄러움을 취할 수 있는 것이다. 吉과 凶은 상대가 되고 悔와 吝은 그 중간에 위치하니 , 悔는 흉함으로부터 吉함으로 나아가는 것이요, 吝은 길함으로부터 凶함으로 향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성인이 爻의 가운데에 이러한 象이 있음을 보면 이러한 말씀을 다신 것이다. 


* [本義 강설② — "變化者 進退之象也요  剛柔者 晝夜之象也요  六爻之動은 三極之道也라"

柔가 변하여 剛에 나아가는 것은 물러감이 지극하여 나아기는 것이요, 剛이 화하여 柔에 나아감은 나아감이 지극하여 물러가는 것이니, 이미 변하여 剛하면 낮이어서 陽이고 이미 변화여 柔하면 밤이어서 陰인 것이다. 六爻는, 初爻와 二爻는 地가 되고 三爻와 四爻는 人이 되고 五爻와 上爻는 天이 된다. 動은 곧 變化이다. 極은 지극함이니, 三極은 天··人의 지극한 이치이니, 三才는 각각 한 太極을 갖고 있는 것이다. 이는 剛·柔가 서로 미루어 變化를 낳고 변화의 極이 다시 剛·柔가 되어 서 한 卦 여섯 爻의 사이에 유행하니, 占치는 자가 만난 바를 통해서 吉·凶의 결단함을 밝힌 것이다.


* [강 설(講說)] —————

주역의 괘(卦)는 대자연의 변화를 상징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그래서 성인(聖人)은 괘를 만들고 난 후, 그 괘(卦)와 효(爻)가 상징하는 의미를 살펴 그 설명을 괘와 효 아래에 붙였다. 그것을 각기 괘사(卦辭) 효사(爻辭)라 한다. 이를 통하여 대자연의 변화에 하나가 되어 순응하도록 인도하고, 그것을 따를 때의 길(吉)함과 따르지 않을 때의 흉(凶)함을 밝혔다.


주역(周易)의 원리는 태극(太極)에서 시작하여 음양(陰陽) - 사상(四象) - 팔괘(八卦) 등으로 분화된다. 태극(太極)은 모든 존재와 변화의 근본 원리이며, 도(道), 진리, 하늘, 부처, 하느님 등 어떻게도 표현할 수 있지만, 그것은 언어 이전의 세계이기 때문에 어떻게 표현해도 그것을 제대로 설명할 수가 없다. 그래서 그것이 밖으로 나타나는 현상인 음·양(陰陽)에서 팔괘(八卦)에 이르는 코드로 설명한 것이다.


그러므로 우주 만물의 존재와 인간의 삶의 모습을 보면 모든 것이 음(陰)과 양(陽)으로 구성되어 지속적으로 변화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주역(周易)』계사전(繫辭傳)에 말했다.  “한 번 음(陰)이 되었다가 한 번 양(陽)이 되었다가 하는 것을 도(道)라고 한다.”


一陰一陽之謂道

        

우주 만물의 존재와 삶은 음양(陰陽)의 요소가 기본을 이룬다. 그리고 그것은 더욱 다양하고 복잡한 양상과 그 변화의 과정으로 나타난다. ‘주역(周易)’은 음양(陰陽)이 분화하여 사상(四象)을 이루고, 사상이 다시 분화하여 팔괘(八卦)라는 여덟 가지 요소를 기반으로 삶의 다양한 양상과 변화와 대처 방안을 구체적으로 제시한다. 보통 사람의 삶은 원만하게 잘 되기도 하고 막혀서 흉하게 되기도 하며, 다시 후회하며 분발하면 풀리게 되어 길흉(吉凶)이 거듭하는 양상을 보인다. 


성자 복희(伏羲) 씨는 우주만물이 음·양(陰陽)으로 되어 있다는데 주목하여 그것을 기호화하여 역(易)의 기초를 만들었다. 주역(周易)은, 우주와 세상의 모든 만물을 음양(陰陽)으로 설명하며 그 변화의 양상을 형상화하여 팔괘(八卦)를 완성하였다. 음양은 다시 사상(四象)으로 세분화하고, 팔괘(八卦)는 그 사상(四象)을 다시 세분화한 것이다. 태양(太陽)에서 다시 양(陽)이 생겨난 것()과 음(陰)이 생겨난 것(☱), 소음(少陰)에서 다시 양(陽)이 생겨난 것(☲)과 음(陰)이 생겨난 것(☳), 소양(少陽)에서 다시 양(陽)이 생겨난 것(☴)과 음(陰)이 생겨난 것(☵), 태음(太陰)에서 양(陽)이 생겨 난 것(☶)과 음(陰)이 생겨 난 것(☷)이 그것이다. 이 여덟 가지 부호를 팔괘(八卦)란 한다. 이것이 주역에서 활용하고 있는 기본적인 태극(太極)의 구체적인 코드이며, 하늘의 코드(CODE)인 팔괘(八卦)를 표로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一乾天

二兌澤

三離火

四震雷

五巽風

六坎水

七艮山

八坤地

 

주(周)나라의 ‘문왕(文王)’이 팔괘를 바탕으로 64괘를 만들고 그 괘상를 살펴 괘사를 붙였으며, ‘주공(周公)’이 각 괘의 있는 전 384개 효의 상을 살펴 효사를 붙인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觀象繫辭]


예컨대 [15] 지산(地山) 겸괘(謙卦)의 괘사 ‘謙 亨 君子有終’은 유일한 양(陽)[九三]이 땅[☷] 아래 자리하고 있으므로 군자의 겸손(謙遜)함을 나타낸 것이다. 그래서 모든 일을 아름답게 마무리한다.


      地山謙

     [15]  謙, 亨, 君子有終.


주역에서 길(吉)함은 자연의 변화를 터득하여 순응할 때 생기는 좋은 결과이고 흉(凶)함은 자연의 변화에 순응하지 못하여 생기는 역경이나 고난이다. 후회하고 한스러워한다는 것은 자연의 변화에 따르지 못할까봐 걱정하고 두려워함을 상징적으로 표현한 말이다. 이렇게 길흉(吉凶)을 밝히는 것은 괘의 상이나 효의 상을 보고 붙인 것이다.


예컨대 [37]풍화(風火) 가인(家人)괘의 육사(六사)는 ‘가정을 부유하게 하니 크게 길하다.(富家 大吉)’이라 했다. 가인(家人)괘의 초효(初爻)에서는 가정의 법도를 이루고, 이효에서는 식구들이 음식을 함께 나눈다. 그리하여 삼효에서는 가정이 안정되고 가풍이 엄숙하게 되니, 사효에서는 경제적으로 아주 넉넉한 가정이 되는 것이다. 그래서 ‘富家 大吉’이라 했다. 이는 길(吉)함의 표상이다.


이와 반대로 [28]택풍(澤風) 대과(大過)괘에서 ‘상육(上六)은 너무 넘어갔으니 이마[頂]를 없애서 흉(凶)하다. 누구를 탓하겠는가.(上六, 過涉滅頂, 凶, 无咎)’ 했다. 대과(大過)괘의 초효(初爻)와 상육(上六)은 집을 떠받치는 네 기둥이다. 그런데 그 자리에 유약한 음효(陰爻)가 왔으므로 집을 제대로 지탱할 수가 없다. 그래서 괘사의 ‘대들보가 휘어지는’[棟撓] 요인이 되는 것이므로 흉(凶)하다고 했다.


 길(吉)함의 예

 흉(凶)함의 예

[37] 風火 家人

 


[37] ‘家人, 利女貞'


[28] 澤風 大過

[28] 大過, 棟撓, 利有攸往, 亨.'   



   ‘上九, 有孚, 威如, 終吉.

  ‘九五, 王假有家, 勿恤, 吉.

  ‘六四, 富家, 大吉.

  ‘九三, 家人嗃嗃 悔厲 吉, 婦子嘻嘻 終吝

  ‘六二, 无攸遂, 在中饋, 貞吉.’

  ‘初九, 閑有家, 悔亡.   


 

 上六, 過涉滅頂, 凶, 无咎.

 ‘九五, 枯楊生華 老婦得其士夫 无咎无譽

 ‘九四, 棟隆, 吉, 有它, 吝.

 ‘九三, 棟橈, 凶.

 ‘九二, 枯楊生稊, 老夫得其女妻, 无不利.

 ‘初六, 藉用白茅, 无咎.



천지만물과 세상만사의 변화란 음(陰)과 양(陽)의 진퇴과정에서 야기된 결과를 말한다. 굳센 것과 부드러운 것은 밤과 낮, 더위와 추위 등의 자연의 변화를 이끄는 두 요소이니, 곧 음과 양이다. 음의 자리와 양의 자리에 오는 효는 그 본래의 위상(位相)에 맞아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후회하거나 곤란해지는 상황에 처한다. 예컨대 [1]중천(中天) 건괘(乾卦)의 ‘상구(上九)는 목에 힘을 주는 용이니 후회가 생기리라.(亢龍有悔)’고 하여 ‘유회(有悔)’를 통하여 그 위상에서 처신을 경계한 것이요, [57]중풍(重風) 손괘(巽卦)의 ‘구삼(九三)은 마지못해 겸손해 하면 한스러워진다(九三 頻巽吝)’고 하여 ‘인(吝)’으로 경계한 것이다.



[2]-1 是故로 君子 所居而安者는 易之序也요 所樂而玩者는 爻之辭也니              

         是故로 君子 居則觀其象而玩其辭하고 動則觀其變而玩其占하나니

         是以自天祐之하야 吉无不利니라. 右는 第二章이라


 이런 까닭으로 군자가 편안하게 거처하면서 살펴야 하는 것은 역에 대한 서술이고,

 즐기면서 완미해야 하는 것은 효사이다. 그러므로 군자가 편안하게 거처할 때는

 ‘상징적으로 표현하는 의미’[象]를 살피고, 그 괘사와 효사를 보며,

 일이 있어 움직일 때는 변하는 것을 살피고 점을 완미한다.

 이런 까닭으로 하늘에서부터 도와서 길하고 이롭지 않음이 없다.


· ‘所居而安者’에서 ‘安’은 ‘按’과 통용. 대부분의 연구서에서는 ‘安’을 ‘편하다’는 뜻으로 해석했으나, 이 부분의 내용은 역리를 파악하은 것에 관한 것이므로, ‘按’(어루만지다)의 의미로 보는 것이 좋다.


* [강 설(講說)] —————

역리(易理)를 파악하는데 가장 좋은 방법은 먼저『주역』64괘의 대강을 순서대로 이해하여 전체의 윤곽을 파악하고 그 다음으로 각 괘의 내용을 효를 중심으로 상세하게 이해하는 것이다. 그래서 64괘로 서술되는 전체의 역리를 살피고, 또 그 괘의 효사를 완미하야 한다.


역리를 이해하려면, 먼저 괘의 상(象, 형태)를 보아 그것이 의미하는 바의 상징성을 파악하고, 그 다음 괘사(卦辭)나 효사(爻辭)를 보고 그 파악한 내용이 옳은 지를 확인해야 한다. 역(易)의 성립순서로 보면, 먼저 태극(太極)이 있었고, 그 태극의 이해를 돕기 위하여 괘(卦)가 생겼으며, 괘를 이해하기 위해 괘사(卦辭)와 효사(爻辭)가 생겼다. 이를 통해 보면 괘는 태극을 다 표현하지 못하고, 괘사나 효사 역시 괘의 내용을 다 표현하지 못한다.


주역(周易)의 이치를 온전히 이해하려면, 태극(太極)을 이해할 목적으로 괘를 읽어야 하고, 괘를 이해할 목적으로 괘사(卦辭)나 효사(爻辭)를 읽어야 한다. 먼저 괘사나 효사를 읽고 거기에 얽매이면 괘의 본질적인 내용을 얻지 못한다.


사람이 역리(易理)에 맞게 대처하기 위해서는, 점(占)을 쳐서 자신이 처한 현재의 상황을 파악하고, 그 점이 지시하는 내용을 따라야 한다. 자연의 실상은 잠시도 쉼도 없이 변화한다. 사람이 그러한 자연의 변화와 함께하기 위해서는 역을 통해 그 변화의 원리를 읽어야 한다. 점을 쳤을 때 노양(老陽)이나 노음(老陰)을 중심으로 읽어야 한다.


역리를 따르는 것은 하늘과 ‘하나’가 되는 것이고, 땅과 ‘하나’가 되는 것이다. 대자연과 하나가 되는 것이므로 이상적인 최선의 삶이 된다. 그래서 ‘하늘에서부터 도와서 길하고 이롭지 않음이 없다’고 한 것이다. 그래서 맹자는 ‘順天者는 存하고 逆天者는 亡한다.’고 했다.


예컨대 [14]화천(火天) 대유(大有)괘의 상구(上九)에서 ‘上九, 自天祐之, 吉无不利’라 했다. ‘상구(上九)는 덕(德)을 갖춘 원로이다. 육오(六五)에게 이념을 제공하는 정신적 지주이다. 육오(六五)가 물질적이 부를 통하여 경제성장을 꾀할 때 상구는 정신적인 덕(德)을 수행하여 강조한다. 상구(上九)가 정신적인 감화력을 발휘하므로 육오(六五)는 상구(上九)를 존경한다. 그래서 상구는 모두가 필요로 하는 존재이다. 모두가 필요로 하는 존재는 하늘이 돕는다.’


<제3장> 주역의 기본 용어(用語)


[3]-1 彖者는 言乎象者也요 爻者는 言乎變者也요

         吉凶者는 言乎其失得也요 悔吝者는 言乎其小疵也요

         无咎者 善補過也니라.


 단(彖)은 상(象)에 대해 말한 것이고 효(爻)는 변화의 과정을 말한 것이다.

 길흉(吉凶)은 잘못된 것과 잘된 것을 말한 것이요,

 후회(後悔)하는 것과 한스럽게[吝] 여기는 것은 조그마한 허물을 말한 것이다.

 허물이 없다는 것은 허물을 잘 보완한 것이다.


* [강 설(講說)] —————

단(彖)이란 괘(卦)가 상징하고 있는 의미를 설명한 글이다. 이를 괘사(卦辭)라고 한다. 효(爻)라고 한 것은 효사(爻辭)를 말한 것이다. 효사는 전체의 괘의 상황 속에서 각 효가 나타내는 변화의 과정을 설명한 것이다. 역(易)에서 변화(變化)의 순서(順序)는 아래의 초효(初爻)에서부터 점차 위로 올라간다. 길흉(吉凶)은 잃고 얻음에 대해 말한 것이고 회인(悔吝)은 작은 하자(瑕疵)에 대해서 말한 것이다.


예컨대 [37]‘풍화(風火) 가인(家人)’괘는 하괘[☲]는 자녀의 밝은 모습이고 상괘[☴]는 유순하고 따뜻한 부모의 분위기이다. 그러므로 집안 분위기가 아주 따뜻하고 행복하다. 그러므로 가인(家人)괘는 ‘행복한 가정(家庭)’의 주역 코드라고 할 수 있다. 가인(家人)괘는 '가정을 바로잡는 지혜'가 담겨 있다. 단에서 괘사 ‘家人, 利女貞’을 두고 설명하기를 ‘가인(家人)은 여자가 안에서 바른 자리에 있고, 남자가 밖에서 바른 자리에 있어, 남녀가 바르게 되는 것이 천지(天地)의 도리(道理)이다.(彖曰, 家人, 女正位乎內, 男正位乎外)’라고 했다.


[37]가인(家人)괘에서, 위의 손괘(巽卦)에서는 유일한 음(陰)인 육사(六四)가 유능하기 때문에 아래의 이괘(離卦)를 관리하고 동시에 구오(九五)를 잘 보좌한다. 또 아래의 이괘(離卦)에서는 유일한 음(陰)인 육이(六二)가 유능하기 때문에 정응(正應)하는 구오(九五)를 잘 보좌한다. 말하자면 구오(九五)를 유능한 육사(六四)와 육이(六二)가 경쟁적으로 잘 보좌하기 때문에 모든 것이 잘 된다. 가정이면 행복한 가정이고 나라라면 살기 좋은 나라이다. 인군(人君)을 보좌하는 훌륭한 현자(賢者)들이 있기 때문이다.


역에서 변화는 아래[初爻]에서 위[上爻]로 올라간다. [1]건괘(乾卦) 초효(初爻)는 ‘潛龍勿用’이라 했다. 건괘(乾卦)의 주역 코드의 핵심은 용(龍)이다. 용(龍)은 인간의 능력을 상징적으로 표현한 말이다. 인간의 능력은 무궁무진하기 때문에 용(龍)으로 상징한다. 초구(初九)는 시간적으로 10대 전후의 어린 시절에 해당되고 공간적으로는 한 집단에서 가장 어린 구성원에 해당한다. 그러므로 용[潛龍]이 몸을 키우고 때를 기다리며 물속에 있다가, 밭에 오르고[九二 見龍在田] 종일건건(終日乾乾) 노력하여[九三], 비로소 못에서 도약[九四 躍淵]하기 시작한다. 그리하여 하늘을 나는 용이 되는 것[飛龍在天]이다. 상구(上九)는 한 생애의 막바지에 이른 원로를 말한다. 상구는 그 처신을 경계하고 있다. 그것이 ‘亢龍有悔’이다.


 [重天乾]


    


乾,元,亨,利,貞

   [乾] ‘用九, 見羣龍无首, 吉.

  [乾] ‘上九, 亢龍有悔.

  [乾] ‘九五, 飛龍在天, 利見大人.

  [乾] ‘九四, 或躍在淵, 无咎.

  [乾] ‘九三, 君子終日乾乾, 夕惕若, 厲无咎.

  [乾] ‘九二, 見龍在田, 利見大人.

  [乾] ‘初九, 潛龍勿用.’                 




[3]-2 是故로 列貴賤者는 存乎位하고 齊小大者는 存乎卦하고

         辨吉凶者 存乎辭하고 憂悔吝者는 存乎介하고 震无咎者는 存乎悔하니

         是故로 卦有小大하야 辭有險易하니 辭也者는 各指其所之니라.

         右는 第三章이라


 이런 까닭으로 귀(貴)한 것과 천(賤)한 것을 나열하는 것은 자리에 있고,

 작고 큰 것을 배열하는 것은 괘에 있으며, 길흉을 판별하는 것은 사(辭)에 있다.

 뉘우치거나 한스럽게 될까 근심하는 것은 갈림길에 끼어있는 데 있고,

 두려워해서 허물이 없는 것은 뉘우침에 있다.

 이런 까닭으로 괘에는 크고 작은 것이 있으며, 사(辭)에는 까다롭고 쉬운 것이 있다.

 사(辭)라고 하는 것은 각각 그 가야 할 곳을 가리킨 것이다.


· ‘齊小大者’에서 ‘’는 ‘가지런하게 하다, 나란히 열을 세우다’의 뜻.

· ‘存乎介’에서 ‘介’는 ‘두 갈림길 사이에 끼어 있는 것’을 말한다.

· ‘震无咎者’에서 ‘震’은 ‘천둥, 벼락, 두려워하다, 떨다’


* [강 설(講說)] —————

괘를 구성하고 있는 효(爻)가 상하(上下)의 6자리에 나열되어 있는 것은 각 효가 처한 자리에 높낮이가 있기 때문이다. 하나의 괘에서 가장 중요한 역할[貴]을 하는 자리는 보통 상층부의 중심(中心)을 이루는 오효(오爻)이고 그 다음은 하층부의 중심을 이루는 이효(이爻)이며, 사효(四爻)와 초효(初爻)는 각각 상·하괘의 아래에 있으므로 천(賤)하다고 한 것이다.


예컨대 [14]‘화천(火天) 대유(大有)’괘의 상구(上九)와 [23]‘산지(山地) 박(剝)’괘의 상효(上爻)는 귀(貴)하다고 이를 만하다.


[14]‘火天 大有

[23]‘山地 剝


 

大有, 元亨


 

剝, 不利有攸往

   · ‘上九, 自天祐之, 吉无不利

   · ‘六五, 厥孚交如, 威如, 吉

   · ‘九四, 匪其彭, 无咎

   · ‘九三, 公用亨于天子, 小人弗克

   · ‘九二, 大車以載, 有攸往, 无咎

   · ‘初九, 无交害, 匪咎, 艱則无咎    

   九, 碩果不食, 君子得輿, 小人剝廬.

  ‘六五, 貫魚以宮人寵, 无不利.

  ‘六四, 剝牀以膚, 凶.

  ‘六三, 剝, 无咎.

  ‘六二, 剝牀以辨, 蔑, 貞凶.

  ‘初六, 剝牀以足, 蔑, 貞凶 


괘의 형상에서 음과 양의 역동적인 관계에서 보면, 음이 양의 진출을 저지하는 것이 있는데, 그 중 많이 저지하는 것과 적게 저지하는 것이 있다. [9]‘풍천(風天) 소축(小畜)’과 [26]‘산천(山川) 대축(大畜)’이 그것이다. 그리고 조금 힘에 지나친 것이 있고, 많이 지나친 것이 있다. [62]‘뇌산(雷산) 소과(소過)’와 [28]‘택풍(澤風) 대과(大過)’로 이름 붙여 나열하였는데, 이는 모두 괘의 형태에서 결정한 것이다.


괘사나 효사에는, 그 괘에서 지시하는 구체적인 마음가짐과 행동 방법을 설명한 뒤, 그것을 따를 때와 따르지 않을 때를 길흉(吉凶)으로 단정한다.


‘후회할 일이 있을까’, ‘곤란한 일이 있을까’ 하고 걱정하는 것은 이럴까 저럴까하는 기로(岐路)에서 마음을 결정하지 못하고 망설일 때 나타나는 현상이다. 예컨대 각 괘에서 삼효(三爻)와 사효(四爻)는 부중(不中)의 자리에서 오효(五爻)와 이효(二爻) 사이에 끼어 있다. 두려워하고 조심하여 잘못이 없게 되는 것은 잘못을 뉘우치는 데서 비롯된다.


그러므로 괘에서는 그 형태에 따라 ‘소과(소過)’, ‘대과(大過)’, ‘소축(小畜)’, ‘대축(大畜)’ 등의 소대(小大)가 있는 경우가 있고, 또 괘사나 효사에는 강력하고 험악하게 말하여 어려운 상황을 극복하도록 인도하기도 하고, 부드럽고 쉽게 말하여 편안하게 대처하도록 인도하는 것도 있다.


예컨대 [29]‘중수(重水) 감(坎)’괘는 험난(險難)한 상황이다. ‘거듭되는 고난[習坎]의 상황이다. 그러나 아무리 어려운 상황이라도 그것을 극복할 수 있다. 그것은 ‘마음의 문제’이다. 괘사(卦辭)에서 말하듯 ‘믿음[信念]이 있어야 하고, 오직 밝은 마음으로 임하면 된다. 행하면 고상함이 있다.(習坎, 有孚, 維心亨, 行有尙)’ 경계하는 괘사가 길다. 그런데 [14]‘화천(火天) 대유(大有)’는 ‘크게 소유하는 상황이다. 그러므로 크고 밝은 마음으로 임하면 된다.(大有 元亨)’고 하고, [34]‘뇌천(雷天) 대장(大壯)’괘는 ‘크게 힘쓰는 상황이다. 이롭게 하고 바르게 해야 한다.(大壯 利貞)’고 했다. 괘사가 간단하고 명료하다. 간이(簡易)의 상황에 해당한다고 할 수 있다.


 [29]‘重水 坎

[14] 火天 大有 

[34] 雷天 大壯 

 

   

   

 習坎, 有孚, 維心亨, 行有尙

大有 元亨

大壯 利貞 


이렇게 괘사(卦辭)나 효사(爻辭)는 각각의 처한 입장에서, 순리대로 나아가야 하는 실천의 방침을 구체적으로 제시한 것이다.


<제4장> 주역이 진리(眞理)인 이유


[4]-1 易이 與天地準이라 故로 能彌綸天地之道하나니

         仰以觀於天文하고 俯以察於地理라

         是故로 知幽明之故하며 原始反終이라.

         故로 知死生之說하며 精氣爲物이오 游魂爲變이라

         是故로 知鬼神之情狀하나니라


 역(易)은 하늘과 땅과 더불어 수준(水準)을 같이 한다. 그러므로 천지의 도(道)를 망라한다.

 위로 우러러 천문을 관찰하고, 아래로 구부려 지리를 살핀다.

 이 때문에 은밀하여 드러나지 않는 세계와 밝게 드러나는 세계의 근원을 안다.

 처음 시작되는 것을 살펴 마치는 이치를 돌이켜 보기 때문에 삶과 죽음에 대한 이야기를 할 수 있다.

 정밀한 기운은 엉기어 물체가 되고, 떠도는 혼(魂)은 변하여 흩어진다.

 이런 까닭에 귀신의 실상을 알 수 있는 것이다.


· ‘與天地準’에서 ‘準’(준)은 ‘수준, 평준’

· ‘能彌綸天地之道’에서 ‘彌’(미)는 ‘두루, 널리’. ‘綸’(륜)은 ‘낚싯줄, 현악기의 줄’. ‘망라하다’.

· ‘仰以觀於天文’에서 ‘天文’은 ‘천체의 운행’

· ‘俯以察於地理’에서 ‘地理’는 ‘땅의 질서, 땅의 이치’

· ‘知幽明之故’에서 ‘幽明’은 ‘어두운 세계와 밝은 세계’, 어두운 세계는 보이지 않는 세계로서 형이상의 세계로 볼 수 있고, 밝은 세계는 가시적인 세계로 형이하의 세계로 볼 수 있다.

· ‘原始反終’은 즉 ‘처음 시작되는 것을 살펴 마치는 이치를 돌이켜 본다’는 말은 종즉유시(終則有始)와 서로 통하는 말이다. 종즉유시(終則有始)는,『주역』은 음(陰)이 다하는 순간에 양(陽)이 시작되고 양(陽)이 다하는 순간에 음(陰)이 시작됨으로써 영원히 진행되는 태극(太極)의 진리를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죽음과 삶이 계속 순환되는 것이다. 만물은 헤아릴 수 없지만 그 근본을 소급하면 결국 태극(太極)으로, 그리고 무극(無極)으로 돌아간다는 것이다. ‘생사(生死)’가 아니라 ‘사생(死生)’이라고 한 것이다.

· ‘精氣爲物’에서 ‘精氣’는 ‘새로운 물체가 될 수 있는 정밀한 기운’, 새의 알이나 물고기알, 식물의 씨 등이 머금고 있는 기운이 정기에 해당한다.

· ‘游魂爲變’에서 ‘魂’은 ‘넋’. 기가 응결되어 물체가 되면 그 물체에는 그 물체를 유지하는 기능을 하는 넋이 깃들게 된다.

· ‘知鬼神之情狀’에서 ‘鬼神’은 ‘모든 존재를 주관하는 기의 작용’. 만물은 양기의 확산작용과 음기의 수축작용을 통하여 존재되고 보존되는데 이 양기의 확산작용을 신이라고 하고 음기의 수축작용을 귀라 한다. 따라서 귀신이란 만물을 유지하고 존재하게 하는 기의 작용이다.


* [강 설(講說)] —————

천지만물의 운행 현상은 음양(陰陽)의 작용으로 표현된다. 그러므로 천지만물이 존재하는 이 세계는, 눈에 보이는 세계도 있고 눈에 보이지 않는 세계도 있다. 즉 형이하(形而下)의 세계도 있고 형이상(形而上)의 세계도 있다. 다시 말하면 물질계[몸]도 있고 정신계[마음]도 있다. 전자를 명(明)의 세계라 한다면 후자를 유(幽)의 세계이다. 역리(易理)는 이 두 세계를 다 망라하고 있으므로, 역리를 아는 사람은 이 두 세계를 다 파악할 수 있다.


유(幽)의 세계와 명(明)의 세계는 별개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로 연결되어 있다. 유(幽)의 세계에 의해 명(明)의 세계가 유지되고, 명의 세계에 의해 유의 세계가 유지된다. 마치 하나의 나무에, 보이지 않는 뿌리 부분이 있고 보이는 줄기와 잎의 부분이 있는 것과 같다. 뿌리에 상처를 입으면 줄기와 잎이 영향을 받고 그 반대의 경우도 마찬가지인 것처럼, 유(幽)의 세계와 명(明)의 세계는 서로 영향을 받는다.


북송 때의 대학자 횡거(橫渠) 장재(張載, ?~1077)는, ‘이 세계가 기(氣)로 가득 차 이루어져 있다’고 했다. 이 기(氣)를 오늘날의 용어로 하면 ‘에너지’라고 표현할 수 있을 것이다. 그에 의하면 기(氣) 중에서 정밀한 것이 응축(凝縮)되어 형체를 갖춘 물질(物質)이 됐다가, 흩어지면 다시 본래의 기(氣)의 상태로 돌아간다는 것이다. 비유컨대, 물이 응고하여 얼음이 되었다가, 녹아 다시 물이 되는 것과 같다.


이 기(氣)가 엉겨 만물이 생겨나는 것을 살펴보면, 그것이 흩어져서 돌아가는 과정도 알 수 있다. 전자를 ‘태어나는 것[生]’이라 하고, 후자를 ‘죽는 것[死]’이라고 하니, 처음에 태어나는 이치를 알면 죽는 이치도 알 수 있다. 그래서 ‘처음을 살펴 마침을 돌이켜보면 죽음과 삶의 이치를 알 수 있다.’고 했다. 사람이 죽으면 기운이 흩어져 혼(魂)은 하늘로 올라가고 백(魄)은 흩어져 땅으로 돌아간다는 인식도 여기에 연유한 것이다.


응축외어 정밀해진 기(氣)가 물체를 이루는 것을, 역(易)에서는 ‘정밀한 기(氣)가 물이 된다’고 했고, 흩어지는 것을 ‘떠도는 넋이 변해간다’고 표현했다. ‘넋’이란 응결되어 형성된 물체를 유지하는 기운(氣運)이다. 이 기운이 그 물체에 더 이상 작용하지 못하며 떠나는 것을 ‘유혼(游魂)’이라고 표현했다. 혼(魂)이란 그 혼이 들어있는 물체를 유지하는 넋을 말한다.


기(氣)가 응축되어 물체가 되는 것은 기의 수축작용이니, 귀(鬼)라 할 수 있고, 물체가 확산되어 흩어지는 것은 기가 확산되는 작용이니 신(神)이라 할 수 있다. 따라서 기(氣)가 엉겼다가 흩어졌다가 하는 과정을 아는 것이 귀신(鬼神)의 실상을 아는 것이다.


[4]-2 與天地相似라 故로 不違하나니 知(智)周乎萬物而道濟天下라.

         故로 不過하며 旁行而不流하야 樂天知命이라.

         故로 不憂하며 安土하야 敦乎仁이라

         故로 能愛하나니라


 (易이) 천지와 더불어 비슷하기 때문에 어긋나지 않는다.

 지혜가 만물에 두루 미치고 도(道)가 천하를 구제하기 때문에 허물이 생기지 않는다.

 두루 행하지만 한 곳으로 빠지는 일이 없으며 하늘의 일을 즐거워하고

 천명(天命)을 알기 때문에 근심하지 않는다.

 처한 곳에서 편안히 있으면서 인(仁)에 돈독하기 때문에 능히 만물을 사랑할 수 있다.


· ‘旁行而不流’에서 ‘旁’(방)은 ‘두루, 널리, 방방곡곡’


* [강 설(講說)] —————

역(易)의 이치는 하늘의 운행과 땅의 작용을 상징적(象徵的)으로 형상화한 것이기 때문에, 역(易)은 천지(天地)와 비슷하다. 천지(天地)의 작용이 한 치의 오차도 없듯이 역리(易理)에는 어긋남이 없다. 역(易)의 이치에서 얻은 지혜는 만물의 이치를 두루 다 통찰할 수 있고, 그 이치에 의거하여 따르면 천하의 모든 문제를 감당하여 해결할 수 있기 때문에 역리에는 허물이 생기지 않는다.


역(易)의 이치는 천지만물을 아우르지만 어느 한 곳만을 강조하여 그에 치중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역리를 따르는 것은 하늘의 뜻을 따르는 것이고 천명(天命)을 실천하는 것이다. 즉 천명을 알고 즐거워하는 것이다. 천명을 실천하면 근심이 없다. 사적인 요구가 있다면, 그 욕구를 달성하기 위해 수고하고 근심하며 때러 고통을 느끼기도 한다. 그러나 천명(天命)을 따르는 것은 사심(私心)이 없는 것이니, 걱정할 일이 없다.


‘토(土)’는 지기(地氣)가 있는 곳이다. 천명(天命)을 따르면 걱정도 고통도 없다. 있는 그 자리가 바로 낙원(樂園)이다. 그래서 ‘토(土)에서 편안하다’고 했다.


천명(天命)을 실천한다는 것은 ‘나’와 ‘남’ 즉 주체와 대상 간의 구별이 없는 것이기 이것이 ‘인(仁)에 돈독하게 되는 것’이다. 인(仁)에 돈독해지면, 주체와 대상 간의 구별이 없으니, 남을 나처럼 사랑하게 된다. 이것이 ‘가장 높은 수준의 사랑’이다.


[4]-3 範圍天地之化而不過하며 曲成萬物而不遺하며 通乎晝夜之道而知라.

         故로 神无方而易无體하니라. 右는 第四章이라


 천지 변화의 범위(範圍)를 정하되 잘못되지 아니하며,

 구석구석 만물을 이루되 빠뜨리지 아니하며, 낮과 밤의 작용에 통달하여 다 알기 때문에

 역(易)의 신비(神秘)한 대응책은 일정한 방소(方所)가 없고 역(易)은 일정한 주체(主體)가 없다.


· ‘神无方而易无體’에서 ‘神’은 역리의 헤아리기 어려운 면을 일컫는 말이다.


* [강 설(講說)] —————

천지의 변화(變化)는 일정한 시점을 잘라서 구분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작년과 올해와 내년이 따로 떨어져 있는 것이 아니고 봄·여름·가을·겨울이 떨어져 있는 것이 아니다. 구분하여 고정화하지 않은 것은 인식할 수 없고, 인식할 수 없는 것은 실천할 수 없다. 그렇기 때문에 천지의 변화와 자연의 변화를 인식하고 그에 대처하기 위해서는 그것을 ‘구분’할 필요가 있다. 그래서 역에서 하늘의 작용을 음과 양, 땅의 작용을 강과 유 등으로 구분 짓는다.


나아가 하늘의 작용을 원(元)·형(亨)·이(利)·정(貞) 등으로 구분 짓고, 사계절을 봄·여름·가을·겨울 등으로 구분 짓는다. 이것을 ‘천지 변화의 범위(範圍)를 짓는 일’이라고 표현했다.


일단 구분 짓고 나면, 그것을 인식할 수 있고 대처할 수 있다. 그러나 본래 구분이 없는 것을 구분 짓다 보면 다소 폐단은 발생하게 마련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역(易)은 이러한 폐단이 없을 정도로 치밀하다. 그러므로 역리를 공부하는 데 있어, 팔괘(八卦)로 이해하기보다는 사상(四象)으로 이해하고, 사상보다는 음양(陰陽)으로 이해하고, 음양보다는 태극(太極)으로 이해하도록 노력해야 할 것이다.

역(易)은 만물의 이치를 두루두루 다 포괄하여 ‘64괘’로 형상화하여 하나도 빠뜨린 적이 없으니 이를 통찰하면 만물의 이치를 다 알 수 있고, 모든 일에 지혜롭게 대처할 수 있다.


역(易)의 이치의 궁극적인 것은 태극(太極)이다. 태극은 음(陰)과 양(陽), 유(幽)와 명(明), 생(生)과 사(死) 등 모든 양면적 세계를 다 포괄하고 있다. 따라서 역리에서 제시하는 신비한 가르침은 한 부분에만 적용되는 것이 아니라 모든 것에 다 적용할 수 있다. 그래서 ‘일정한 방소(方所)가 없다’고 했다. 그러므로 역이라는 것은 양면적 세계 중 어느 한 쪽의 입장을 취하는 것이 아니다. 즉 몸두는 곳이 없다. 그래서 ‘역은 주체(主體)가 없다’고 한 것이다.


<계사전> (제1강) ————— <끝>


출처 : 동양철학 나눔터 - 동인문화원 강의실
글쓴이 : 백파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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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로아스터 2017. 12. 21. 20:42

[손기원 박사의 周·人·工 四書三經] *—<제72강> (2017.07.24)

— <周·人·工 四書三經>은 ‘周易과 人性을 工夫하는 四書三經 강좌’를 말한다 —


주역(周易) (제13강) — [4] ; 완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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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공부> [61]風澤中孚 [62]雷山小過 [63]水火旣濟 [64]火水未濟


오늘의 주역(周易) 읽기  [64]화수 미제(火水未濟)



[64] 미제괘 (火水 未濟卦)


<未濟卦 第六十四>—— 이 괘의 상괘는 리괘(離卦, ☲)이고 하괘는 감괘(坎卦, ☵)이다. 이 괘는, 모든 양(陽)이 음(陰)의 자리에 있고 모든 음(陰)이 양(陽)의 자리에 있다. 제자리에 있는 효(爻)는 하나도 없다. 그러므로 앞의 기제(旣濟)괘와 비교해 보면 그 상황이 반대임을 알 수 있다. 그래서 기제(旣濟)괘가 ‘모두 해결되었음’을 의미한다면, 이 괘는 ‘하나도 해결된 것이 없음’을 의미한다. 그래서 괘의 이름을 ‘미제(未濟)’라고 한 것이다. 사람으로 말하면, 사회적으로 자리를 잡지 못하고 있는 사람이 여기에 해당하며, 이른바 ‘미생(未生)’이다.


모두가 해결(解決)되었다는 것은, 관점을 달리해 보면 하나도 해결되지 않은 것이다. 고등학교를 졸업했다는 것은 고등학교의 입장에서 보면 다 이룬 것이지만, 대학이라는 관점에서 보면 하나도 이룬 것이 없다.


『주역(周易)』에서 ‘미제(未濟)’로 마감한 것은, 끝남이 바로 새로운 시작을 잉태하여 영원히 진행하는 진리의 양상을 상징적으로 표현하기 위한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마지막 순간에『주역』은 음(陰)이 다하는 순간에 양(陽)이 시작되고 양(陽)이 다하는 순간에 음(陰)이 시작됨으로써 영원히 진행되는 태극의 진리를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 [64] 미제괘(未濟卦)는 [63] 기제괘(旣濟卦)와 착괘(錯卦)이면서 종괘(綜卦)이다.『주역(周易)』64괘에서 또 이와 같은 경우는 [11] 태괘(泰卦)와 [12] 비괘(否卦)가 또한 그러하다.


① 착괘(錯卦)

어떤 괘와 그 괘의 각 효의 음양(陰陽)을 반대로 했을 때 만들어지는 두 괘의 관계를 착괘(錯卦)라 한다. 건괘(乾卦)와 곤괘(坤卦), 몽괘(蒙卦)와 혁괘(革卦) 등이 그것이다. 착괘끼리는 그 뜻이 반대가 되는 경우가 많다. 예컨대 몽괘(蒙卦)에서는 아랫사람이 윗사람을 봉양(奉養)하지만 혁괘(革卦)에서는 아랫사람이 윗사람에 대하여 혁명(革命)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어떤 괘의 성격이 이해되지 않을 때는 그 괘의 착괘(錯卦)의 성격을 먼저 이해한 다음 그 반대의 뜻으로 읽으면 이해가 되는 경우가 있다.


② 종괘(綜卦)

어떤 괘와 그 괘를 뒤집어 놓았을 때, 그 두 괘의 관계를 종괘(綜卦)라 한다. 종괘(綜卦)끼리는 그 뜻이 대체로 반대가 된다. 손괘(損卦)와 익괘(益卦), 태괘(泰卦)와 비괘(否卦) 등이 그 예이다. 태괘(泰卦)와 비괘(否卦), 기제괘(旣濟卦)와 미제괘(未濟卦) 등과 같이 착괘이면서 동시에 종괘가 되는 경우도 있다.『주역(周易)』에서 괘의 순서는 대체로 종괘(綜卦)끼리 짝으로 배열하고 있다.


③ 착괘(錯卦)이면서 종괘(綜卦)인 경우 ——*


[11] 태괘(泰卦)

[12] 비괘(否卦)

[63] 기제괘(旣濟卦)

[64] 미제괘(未濟卦)

   

[地天泰]

[天地否]

 

[水火旣濟]

[火水未濟]



* [화수미제(火水未濟)의 괘사(卦辭)] ————



    未濟, 亨, 小狐汔濟, 濡其尾, 无攸利.


[64未濟] 아무 것도 해결되지 않은 형국이다. 밝은 마음으로 임해야 한다.

              작은 여우가 거의 다 건너가서 꼬리를 적시니 이로울 바가 없다. / * ‘’(흘) ; ‘거의’


* [강 설(講說)] ————

미제(未濟)는, 일이 이루어지지 못한 상황이다. 물[☵]과 불[☲]이 사귀지 못하여 서로 쓰임이 되지 못한다. 그리고 괘의 모든 효가 모두 제자리를 잃었기 때문에 미제라 한 것이다.[본의(本義)] 모든 양(梁)이 음(陰)의 자리에 있고 모든 음(陰)이 양(陽)의 자리에 있어 바른 자리에 있는 효가 없다. 그러므로 미제괘에 처한 사람은 사리를 잘 분별하여 밝은 마음으로 하지 않으면 안 된다. 자칫 제 분수를 잃고 어려운 상황에 빠질 수 있기 때문이다.


여우는 물을 다 건넌 지점에서라도 꼬리가 젖으면, 앞이 깊다고 생각하여 건너기를 포기하고 원점으로 되돌아간다. 늙은 여우는 꾀가 많고 의심이 많아 깊은 듯한 물은 아에 건너지 않을 것이므로, 여기서는 ‘작은 여우[小狐]’를 예로 들었다. 여우에 견준 것은, 어떤 일이 거의 다 완성되었다 하더라도 다른 입장에서 보면 제대로 된 것이 하나도 없어서 새로 시작하는 것이 미제의 상황이다. 그러므로 미제의 상황에서는 가만히 있지 말고 새로운 돌파구를 찾아야 한다. 처음부터 새로 시작해야 함을 강조하는 것이다.


☆… 손기원 선생은, ‘濡其尾, 无攸利’에서 ‘여우가 꼬리를 적시는 것은 중도에서 포기한다’는 뜻이니 ‘중도에서 포기하면 이로운 바가 없다’고 해석했다. 그래서 미제괘는 ‘끝까지 최선을 다하라’는 메시지를 담고 있다는 것이다.


* [화수미제(火水未濟)의 단전(彖傳)] ————


[64未濟] 彖曰,“未濟, 亨”, 柔得中也.

          “小狐汔濟”, 未出中也,“濡其尾, 无攸利”, 不續終也.

            雖不當位, 剛柔應也.


단(彖)에서 말했다. “미제(未濟)의 상황에서 밝은 마음으로 임해야 하는 것은 부드러운 것이 중심(中心)의 자리를 얻었기 때문이다. 작은 여우가 거의 다 건넜다는 것은 아직 속에서 벗어나지 않은 것이다. 꼬리를 적시면 이로울 바가 없는 것은 마지막까지 이어지지 않기 때문이다. 비록 자리가 마땅하지 않으나 굳센 것과 부드러운 것이 응한다.”


* [강 설(講說)] ————

‘미제(未濟)의 상황에서 밝은 마음으로 임해야 하는 것’은 부드러운 육오(六五)가 중심에 있기 때문이다. ‘작은 여우가 거의 다 건넜다’고 표현한 것은 아직 완전하게 건너지 않았음을 의미한다. 완전히 건넜다면 되돌아올 필요가 없다. ‘꼬리를 적시면 이로울 바가 없는 것은’ 끝까지 가지 못하고, 중단해야 하기 때문이다.


☆… 미제(未濟)는 모든 효(爻)가 제자리에 있지는 않지만, 각 효(爻)의 관계(關係)에서 보면 서로 음(陰)과 양(陽)이 짝이 되어 친하다. 그래서 ‘비록 자리가 마땅하지 않으나 굳센 것과 부드러운 것이 응(應)한다’고 했다.


* [화수미제(火水未濟)의 상전(象傳)] ————


[64未濟] 象曰, 火在水上, 未濟, 君子以愼辨物居方.


상에서 말했다. “불이 물 위에 있는 것이 미제이니, 군자는 이 괘의 이치를 살펴, 신중하게 만물을 분별하여 제자리에 거주하게 한다.” / * ‘’ ; ‘제대로 된 장소’ 즉 ‘제자리’


* [강 설(講說)] ————

모든 것이 바른 자리에 있지 않아 문제가 될 때에는, 하나하나 파악하여 모두 바른 자리에 위치하도록 옮겨 놓으면 문제는 해결될 수 있다. 그러므로 군자는 상황을 보고 모든 것을 분별하여 제자리에 위치하도록 처리한다.


* [화수미제(火水未濟)의 효사(爻辭)] ————



上九, 有孚于飮酒, 无咎, 濡其首, 有孚失是.

 ‘六五, 貞吉, 无悔, 君子之光, 有孚吉.

 ‘九四, 貞吉, 悔亡, 震用伐鬼方, 三年有賞于大國.

 ‘六三, 未濟, 征凶, 利涉大川.

 ‘九二, 曳其輪, 貞吉.

 ‘初六, 濡其尾, 吝.


* [화수미제(火水未濟) 초육(初六)의 효사] ——


[64未濟] 初六, 濡其尾, 吝.

             象曰,“濡其尾”亦不知極也.


초육(初六)은 그 꼬리를 적시니 한스러워진다. 상에서 말했다. “그 꼬리를 적시고 돌아나와야 하는 것은 또한 끝을 알 수 없기 때문이다.” / * ‘’ ; ‘끝’


* [강 설(講說)] ————

『역전』에서 말했다. “초육(初六)은 유약한 음(陰)으로서 아래에 있고, 험난한 곳[☵]에 처하여 구사(九四)와 응한다. 험난한 곳에 처하면 거처가 편안히 여기지 못하는데 응(應)이 있으면 뜻이 위로 올라가려 한다. 그러나 자신이 이미 유약한 음(陰)이고 구사(九四)가 중정의 재질이 아니니 구원하여 구제하지 못한다. 짐승이 물을 건너갈 적에는 반드시 꼬리를 드는데 꼬리가 젖으면 건너가지 못한다. ‘꼬리를 적셨다’는 것은 건너가지 못함을 말한 것이다. 재주와 힘을 헤아리지 않고 나아가서 끝내 건너가지 못하면 부끄러워진다.”


☆… 자신의 재주와 힘을 헤아리지 않고 나아가서 ‘꼬리를 적시는 데 이르는 것’ 즉 중도(中途)에서 포기(抛棄)하는 것은 무지(無知)의 소치이다.


* [화수미제(火水未濟) 구이(九二)의 효사] ——


[64未濟] 九二, 曳其輪, 貞吉.

             象曰, 九二貞吉, 中以行正也.


구이(九二)는 그 수레바퀴를 끌되 바르게 하면 길하다. 상에서 말했다. “구이가 바르게 하면 길한 것은 중심에서 바른 것을 행하기 때문이다.”


* [강 설(講說)] ————

구이(九二)는 하층부의 중심적인 존재이지만, 하층부[坎卦]의 상황에서 초육(初六)과 육삼(六三)이 계속 대항하기 때문에 일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한다. 구이(九二)의 입장을 이해해 주는 것은 구사(九四)와 육오(六五)이지만 지금은 상부의 도움을 기대하기 어렵다. 기본적으로 상층부는 하층부에 관심이 없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구이(九二)가 할 수 있는 최선책은 너그러운 아량으로 현실을 용납하며 묵묵히 자신의 일을 해 나가는 것이다. 그래서 ‘수레바퀴를 끌되 바르게 하면 길하다’고 한 것이다. ‘수레바퀴를 끄는 것’은 자신의 일을 하는 것이고, ‘바르게 한다’는 것은 초육(初六)과 육삼(六三) 등의 싸움에 휘말리지 않고 정도(正道)로 나아가는 것을 말한다.


* [화수미제(火水未濟) 육삼(六三)의 효사] ——


[64未濟] 六三, 未濟, 征凶, 利涉大川.

             象曰,“未濟征凶”位不當也.


육삼(六三)은 해결되지 않은 상태에서 적극적으로 따지고 싸우면 흉하니 큰 내를 건너는 것이 이롭다. 상에서 말했다. “해결되지 않은 상태에서 적극적으로 따지고 싸우면 흉한 것은 자리가 마땅하지 않기 때문이다.”


* [강 설(講說)] ————

육삼(六三)은 불만이 많다. 그러므로 초육(初六)과 편을 이루어 구이(九二)에 대항하기 쉽지만 그렇게 되면 끝없는 싸움에 휘말릴 것이다. 그래서 ‘적극적으로 따지고 싸우면 흉하다’고 했다. 시야를 넓혀 상층부를 보면, 모두가 화목하고 서로 양보하는 아름다운 세계가 전개되고 있다. 밝은 마음으로 그들의 세계에 진입하면 그 조화의 분위기에 동화되어 자연히 싸우지 않게 되고 이전투구의 상황도 해결될 것이다. 그래서 ‘큰 내를 건너는 것이 이롭다’고 했다. 육삼(六三)이 음(陰)으로서 양(陽)의 자리에 있으니 ‘자리가 마땅하지 않은 것이다.’


* [화수미제(火水未濟) 구사(九四)의 효사] ——


[64未濟] 九四, 貞吉, 悔亡, 震用伐鬼方, 三年有賞于大國.

             象曰,“貞吉悔亡”志行也.


구사(九四)은 바르게 하면 길하여 후회할 일이 없다. 떨쳐 일어나 귀방(鬼方)을 정벌하면 3년에 대국(大國)에서 상(賞)이 있을 것이다. 상에서 말했다. “바르게 하면 길하여 후회할 일이 없는 것은 뜻이 행해지기 때문이다.” / * ‘’(진)은 ‘떨쳐 일어나다’ * ‘’은 ‘以’와 통용


* [강 설(講說)] ————

구사(九四)는 양이므로 실력은 있지만 음이 지닌 치밀성이 부족하다. 그래서 이전투구하고 있는 하층부의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고 있다. 자신의 역할을 제대로 못하고 있는 것이다. 그것 때문에 최고실력자인 구오(九五)에게 인정받지 못하고 하층부의 존중도 받지 못하여 진퇴양난에 빠지기 쉽다.


이럴 때 구사(九四)가 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은 우선 스스로 바르게 사는 것이고, 둘째로 지금의 자리에 가만있지 말고, 떨쳐 일어나 자신의 실력을 발휘할 수 있는 곳으로 옮겨가는 것이다. 큰 나라에 가서 공(功)을 세우는 것은 눈에 보이는 성과를 올리는 것이다. 그래서 ‘떨쳐 일어니 은나라와 같은 큰 나라에 가서 귀방(鬼方)을 정벌하여 공을 세우면 3년 만에 큰 상을 받을 수 있다’고 했다. ‘3년’은 상당히 긴 시간을 말한다.


☆… 천하를 구제(救濟)하는 도(道)는 마땅히 바르게 함이 이와 같아야 하니, 구사(九四)가 음의 자리에 있으므로 이를 경계한 것이다.


* [화수미제(火水未濟) 육오(六五)의 효사] ——


[64未濟] 六五, 貞吉, 无悔, 君子之光, 有孚吉.

             象曰,“君子之光”其暉吉也.


육오(六五)는 잘 분별하여 바르게 하면 길하여 후회함이 없을 것이다. 군자에게 빛이 나니 한마음의 상태를 유지하면 길할 것이다. 상에서 말했다. “군자에게 빛이 난다는 것은 그 빛이 길한 것이기 때문이다.”


· ‘君子之光’은 ‘光於君子’가 도치된 문장이다. ‘군자에게서 광채가 난다’

· ‘其暉吉也’에서 ‘’(휘)는 ‘빛, 광채(光彩)’


* [강 설(講說)] ————

『역전』에서 말했다. “육오(六五)는 문명(文明, ☲)의 주체로 강(剛)[陽의 자리]에 거하여 강(剛)[九二]에 응하며 그 처함이 중(中)을 얻어서 마음을 비워 양(陽)[九四]이 보필해 주고 있다. 비록 부드러운 음(陰)으로 존위(尊位)에 있으면서, 지극히 바르게 하고 지극히 선하게 하니 부족함이 없다. 이미 곧고 바름을 얻었기 때문에 길하여 뉘우침이 없는 것이다.… 육오(六五)는 문명의 주체이기 때문에 그 빛남을 말한 것이다. 군자(君子)의 덕(德)과 빛이 성하고 공(功)이 실제로 이와 걸맞는 것은 건실함이 있는 것이다.”


☆… 육오(六五)는 군자의 덕(德)으로 사리를 분별하여 바르게 하면, 그 덕의 감화력(感化力)으로 하층부의 이전투구가 저절로 해결될 것이다. 군자(君子)는 늘 남과 한마음을 유지한다. 한마음은 남을 자기처럼 생각하는 마음이다. 그러면 ‘군자에게서 빛이 나고’ 또 ‘한마음의 상태를 유지하면 길할 것이다’라고 했다.


* [화수미제(火水未濟) 상구(上九)의 효사] ——


[64未濟] 上九, 有孚于飮酒, 无咎, 濡其首, 有孚失是.

             象曰,“飮酒濡首”亦不知節也.


상구(上九)는 술을 마시는 일에서도 한마음을 유지하면 허물이 없지만, 그 머리를 적시면 한마음을 가지더라도 옳음을 잃을 것이다. 상에서 말했다. “술을 마시며 머리를 적시는 것은 또한 절도를 모르는 것이다.”


* [강 설(講說)] ————

『역전』에서 말했다. “상구(上九)는 강(剛)으로서 위에 있으니 강함이 지극하고 밝음의 위에 거하였으니 밝음이 지극하다. 강함이 지극하면서도 밝으면, 조급하지 않고 결단을 하게 되니 밝으면 사리(事理)를 밝힐 수 있고 강하면 의리(義理)를 결단할 수 있다. 미제(未濟)의 극에 거하여 구제(救濟)할 수 있는 지위(地位)를 얻지 않으면 구제할 수 있는 이치(理致)가 없으니, 마땅히 하늘을 즐거워하고 천명을 따를 뿐이다. 그러므로 다만 미제(未濟)의 극이 되니, ‘지성(至誠)으로 의(義)와 명(命)을 편안히 여기고’[한마음] 스스로 즐거워하면 허물이 없을 것이다.


‘술을 마신다’는 것은 스스로 즐거워하는 것이다. 그 처함을 즐거워하지 않으면 분하고 조급하여 운확(隕穫, 곤궁)할 것이니 흉하고 허물에 들어갈 것이다. 만약 방종하여 즐거움을 따라 즐기고 제 멋대로 하여 예(禮)를 지나쳐서 ‘머리를 적시는 상황’에 이르듯 한다면 이 또한 처함을 편안히 여기는 것이 아니다. ‘有孚’는 ‘한마음을 지니는 것’이요 ‘失是’는 ‘그 마땅함을 잃는 것’이다. 이와 같으면 한마음[有孚]을 잃어버리는 것이 된다. 사람이 환난(患難)에 처하여 어찌할 방도가 없음을 알고서 뜻을 방탕(放蕩)하게 하고 돌아오지 않는 자는 어찌 의(義)와 명(命)을 편안하게 여기겠는가.“


[易傳] 九以剛在上하니 剛之極也요 居明之上하니 明之極也라 剛極而能明이면 則不爲躁而爲決이니 明能燭理요 剛能斷義라 居未濟之極하여 非得濟之位면 无可濟之理니 則當樂天順命而已라

未濟則无極而自濟之理라 故止爲未濟之極이니 至誠安於義命而自樂이면 則可无咎라

飮酒는 自樂也니 不樂其處면 則忿躁隕穫이니 入于凶咎矣요 若從樂而耽肆過禮하여 至濡其首면 亦非能安其處也라 有孚는 自信于中也요 失是는 失其宜也니 如是則於有孚爲失也라 人之處患難에 知其无可奈何而放意不反者는 豈安於義命者哉리오


☆… 상구(上九)는 하층부에 대해 가장 무심한 경향이 있다. 이미 은퇴할 시기이므로 술을 마시며 소일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술이나 마시며 풀어져서는 안 된다. 현재의 상황은 하층부의 이전투구로 인하여 매우 어렵다. 인생(人生)에 있어 끝이란 없다. 끝나는 순간에 새로운 일이 기다리고 있다. 그 새로운 일을 찾아서 다시 시작해야 한다. 상구(上九)는 자기가 할 일이 끝났다고 해서 술을 마시면 자신뿐 아니라 전체의 상황이 위태롭게 된다. 그러므로 술은 절제하여 적당히 마셔야 한다.


『본의(本義)』에서 이르기를, “술을 마셔 머리를 적시는 것은 절제(節制)할 줄 모름이 심한 것이다.”라고 했다. 그래서 ‘술을 마시는 일에서도 한마음을 유지하면 허물이 없다’고 했다. 그러나 아무리 한마음을 유지한다 하더라도 객관적인 예와 절도가 있어야 한다. 제 마음만 믿고 혼자서 술에 빠져 흥청거리게 되면 전체의 상황이 아주 어렵게 된다. 그래서 ‘그 머리를 적시면 한마음을 가지더라도 옳음을 잃을 것이다’라고 했다. ‘머리를 적신다’는 것은 혼자서 지나치게 행동하여, 마치 여우가 너무 깊은 곳에 들어가 오도가도 못하는 것처럼 진퇴양난에 빠지는 것을 말한다.


☆… 『주역(周易)』에서 ‘미제(未濟)’로 마감한 것은, 끝남이 바로 새로운 시작을 잉태하여 영원히 진행하는 진리(眞理)의 양상을 상징적으로 표현하기 위한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종즉유시(終則有始),『주역』은 음(陰)이 다하는 순간에 양(陽)이 시작되고 양(陽)이 다하는 순간에 음(陰)이 시작됨으로써 영원히 진행되는 태극(太極)의 진리를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이기동 선생이 말한다. “인생(人生)은 시작하는 것보다 마치는 것이 더 어렵다. 죽으면 끝이라는 생각을 하기 때문에 그러하다. 그러나 인생은 죽음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다. 끝나는 것은 육체적 존재에 한한다. 삶의 본질인 한마음의 세계에서는 생사가 따로 없다. ‘한마음’은 우주이고 하늘이다. 이 한마음의 입장에서 살도록 지혜(智慧)를 주고 유도하는 것이『주역(周易)』이다. 따라서『주역』의 지혜로 산다는 것은 ‘하늘’처럼 사는 것이다.『주역』의 가르침에 따른다면, 시작할 때 제대로 할 수 있고 마칠 때 제대로 마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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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周易』(제13강) * ——<>

<오늘의 공부> [61]風澤中孚  [62]雷山小過  [63]水火旣濟  [64]火水未濟


 <기초 주역 강의> 대미(大尾)!

출처 : 동양철학 나눔터 - 동인문화원 강의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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