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상과 통찰

조로아스터 2018. 5. 2. 20:36

니체는 일찌기 인간정신의 변형의 연금술을
믿은 실존주의자이며 그 길을 발견한 사람입니다. -suham

니체의 초인사상

by 황승호,생명의 이브,suham,도마복음 해석자들의 모임

인간은 그가 갖고 있는 자유와 함께 진보하였습니다. 또 그 자유와 함게 변형하여 왔고 의식의 진화를 거치고 있는 중입니다. 니체는 본질적인 명이 아닌 실존적인 자유의 구사를 위한 요청을 인류에게 던진 몇 안되는 사람이죠. 많은 사람이 니체의 초인사상을 말하며 우리는 초인을 원한다. 라고 떠듭니다. 오늘날 상상 속에 나오는 영화속의 영웅들은 바로 이러한 일반인들의 초인사상의 실체를 보여줍니다. 니체는 우리가 우리의 자유와 함께 진화 할 것을 알았으며 우리자신이 그러한 초인이 되어야 함을 역설한 사람입니다. 초인은 바깥에 있지 않으며 우리 안쪽에 있슴을 얘기 하였던 것이죠.



니체의 초인 개념은 '자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라는 저서에서
자라투스트라의 세 가지 변용을 통해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인간정신의
첫 번째 변용은 낙타이다.
낙타는 무거운 짐을 최대한 싣고 사막을 걸어간다. 그러나 낙타의 짐은 자신의 것이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낙타는 성실이 짐을 짊어지고 사막을 걸어간다.
마치 현대인이 살아가는 모습과 유사하다. 자신이 왜 그 짐을 짊어져야 하는지
왜 살아야 하는지 모른 채 살아 나간다. 이런 낙타의 모습은 절대자 혹은, 체제의 절대성 앞에서
무거운 짐을 지며 살아가는 인간의 표상이다. 신의 우위 앞에서, 도덕법칙의 숭고함 앞에서,
체제의 절대성에 짓눌려 몸을 굽히고 엎드려 무거운 짐을 스스로 지는 인간상을 보여준다.
절대주의에 매몰되고, 전체주의에 자신의 개성을 말살 당한 전형적인 인간 모습이다.

자라투스트라의 두 번째 인간정신의 변용은 사자이다.
사자는 의욕의 상징이며, 자율의 상징이다. 사자는 자신이 무엇을 해야 할 지 분명히 알고 있으며,
자신의 자유로운 선택에 따라 행동한다. 사자는 자신의 자유를 선언할 수 있는 인간을 표상한다.
그러나 사자로 표상된 인간은 긴장 속의 자율만을 가지고 있을 따름이다. 극도로 긴장되어 있으며,
공격적이고 때로는 방어적이다. 사자인 인간은 언제나 고독 속에서 산다. 자유를 얻었으나 그의
자유는 누리는 자유가 아니라, 방어적 자유일 뿐이다.

궁극적으로 니체가 제시한 3번째 인산정신의 변용은 초인의 모습이며 낙타를 넘어 사자를 극복하고 어린이의 모습을 한 자이다.

어린이는 니체의 세 번째 변용이다. 그는 어린이를 자율적 의지의 표상으로 보았고,
'자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에서 다음과 같이 표현했다.

어린아이는 순진무구함이며
망각이며
새로운 시작이며
하나의 놀이이며
스스로 굴러가는 바퀴이며
최초의 움직임이며
하나의 신선한 긍정이다.
그렇다
창조적 놀이를 위해서는
신선한 긍정이 필요하다
이제 정신은 자신의 의지를 원하고
세계를 잃어버린 자는
스스로 자신의 세계를 획득하는 것이다.

니체가 말한 궁극적 이상으로써의 인간의 모습인 초인은 자기의 세계가 분명한 인간이며,
그 외 다른 것이 필요 없는 그 자체로 완벽한 인간이다. 자신의 놀이 세계에 몰입할 수 있는 인간.
창조적 유희를 즐기는 자. 모든 것으로부터 자유롭게 생각하고 비판할 수 있는 인간. 어떠한 억압과
구속 속에서도 자유로운 정신과 비판 정신을 갖고 있는 인간. 그러나 그런 초인은 한 번에 도달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반드시 낙타의 단계를 거치고 사자의 단계를 경험한 후, 초인의 표상인 어린이의
단계로 들어 올 수 있는 것이다. 성실하게 살아 본 자가 성실이 전부가 아님을 알고,
규범에 충실해 본 자가 규범이 전부가 아님을 안다.

니체 초인,낙타 사자 어린이,인간정신의 변용



출처 : 통화재정연구소
글쓴이 : 이칸스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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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상과 통찰

조로아스터 2018. 3. 30. 16:10

문제란 무엇일까? 우리말 문제(問題)는 한자로 물을 問, 제목 題라는 뜻입니다.

사전적 해석은 강아지 지꼬리잡기라는 식입니다. 

사전의 풀이로서는 낱말(個文言)의 살아있는 뜻은 잡을 수 없죠.

글(낱말)을 다루는 이(글꾼)들의 같은 고민이 그런 것이겠지요.

겨울 고드름같은 사전적인 해석을 어떻게 해야 보달보달한 봄풀같이 살아 있는 감각이 되게 할 수 있는가... 그것이 소설 蘇紲(되살아날 소, 고삐 설. 고삐가 무엇이기에 실 사에 인간 세를 더해서 표현을 했을까요? 고삐란 것이 끈으로  十 세 개를 뭉친 것처럼 흩어진 것들을 모으는 기능을 뜻하겠지요 날아 흩어지는 것을 잡아놓는 기능을 고삐라고 하는 것이라고.. )이라는 방식으로 드러내겠지요.


물을 제목이라니..「물을 」 은 뭐며 「제목 」은 뭐죠? 라고 저는 묻게 됩니다.

개체어(낱말)들에 대하여 이런 식으로 물었다가 늘 사악한 사탄 같으니라고 믿음이 없는 것 같으니라 고 호통을 당하곤 했습니다. 가르치는 사람이면 저의 이런 소분화, 개체화한 작은 물음에 답을 할 능력이 있지 않을까...순진하게 생각했던 것이고, 답을 얻지 못하면서 내 스스로 답을 찾아야 하구나 알게 된 것이고

아하..이런 것은 개별적인 유전자에 새겨진 시스템의 특성이구나 인식하게 됩니다.  

저 처럼 드러내놓고 되묻는 사람이 지금도 찾아보기 어렵지만 그저 홀로 그 답을 찾아가는 이들은 늘 있는 법이다는 것은 압니다.


사전을 보는 사람은 사전적인 정의라도 나열하지만 사전적 정의라도 아는 사람은 글을 쓰는 이들이 먹고 살기위한 도구이기에 기본적으로 갖추어야 하는 예의이겠지만 명함에 덧붙이기 학력조항이 빵빵한 사람들도 소분적으로 물으면 자기만의 언어로 정리한 답을 망설입니다.

뭔가 알듯도 한데 풀어 밝힐(설명) 자기만의 지문을 입혀놓은 언어가 없는 것이지요 어휘력없음이라고도 달리 표현을 하나요. 언어감각이 없다는 것이 예수가 말한 죄지요. 자신이 하는 일을 알지 못함의 대상은 말이거든요. 말을 씀하는데 그 말씀이 쓰임의 이치를 알고 해야 하는데 모르고 한다...이게 죄라는 것이라는 것이지요. 죄가 무엇인지 그것을 규명한다고 기도도 많이하고 ..했습니다만 이제 아주 쪼끔은 가름할 수 있습니다.


언어를 사용하면서 언어가 가진 본질적인 감각, 처음의 온도를 알지 못하고 사용하는 것이라고요.

물을 問. 물을은 뜻(내용)이며 문은 그릇입니다. 물을이라는 뜻을 담은 그릇이 問이다는 것이지요.

허면 問이라는 그릇에 담긴 물을이라는 내용이 무엇이였나를 알아내는 것이 중요하지요.

빈그릇으로 상 가득 차려 놓아야 배고픔은 채울 수 없습니다.

문학이라는 것이 빈그릇(문장)으로 상을 차리는 일이라고 됩니다. 상차린 이도 뭔가 부족하고 돈으로 상차림(책)을 산 이도 뭔가 부족하고 목마름의 노예가 된 탄탈로스라고 표현을 하지요.

지적인 허기를 채움하려는 의지가 책을 본다는 것으로 나타나는데 지적인 허기가 생기는 이유가 글을 말로 쓰는 과정에서 알맹이가 빠지고 껍질만 가져와서 쓰기때문입니다.

뭔가 부족함을 설명하는 신화로 탄탈로스를 가져오는데 타야 할 것일 잃어버림,

글을 말로 타면서 글에 담았던 온기를 잃어버림이라고 제가 해석을 합니다.


그릇은 남고 내용은 없는 지금 그릇에 담은 내용물이 무엇인지 복원하는 일이 題입니다.

문제라는 낱말 자체가 답입니다. 따로 정해진 답이 없고 문 問과 제 題를 풀면 문이나 제라는 그릇에 담았던 알맹이를 복원할 수 있습니다. 그릇(器)이라는 것은 정해진 것만을 담는 것이 아니라 그릇 크기 안에 들어가는 것은 다 담을 수 있습니다. 대기만성이라는 말이 있는데 큰 그릇은 모든 것을 담을 수 있다는 말입니다. 물론 큰 그릇은 가를 쳐가면서 그릇의 크기를 키워야 하기에 긴 세월이 걸리는 것도 맞지요.


물을의 물은 물勿(말 물), 物(만물 물), 沕(아득할 물)이고 을은 乙(새 을)입니다.

물을이라는 이 낱말에 보이는 세계를 형성하는 것이 담겨 있습니다.

物이 어떤 길(乙)을 따라 진화하여 (沕) 내 앞에서 멈추었는가(勿) 물을이라는 말은

보이지 않는 빛이 보이는 색이 되는 시공이며 그 시공을 기호로 나타낸 것이 問입니다.

乙을 새 을이라고 한다 해서 조류를 생각하신다면 乙의 한 부분만을 아시는 것이지요.

오리가 물에 동동 떠다니는 윗부분만 보고 을乙과 수 2를 만들었다고 이야기도 하지요.

새를 조류로 생각해서 떠 올린 발상일테지요. 새는 사이를 말합니다.

보이지 않는 흐름을 기호로 나타낸 것이 乙이지요.


태극의 문양에서 가운데 곡선이 乙입니다. 영어로는 S 곡선을 그리는데도

동양은 좌(서)에서 우(동)으로, 서양은 동에서 서로  출발점이 다르죠.

서는 동을 통해 인식하고 동은 서를 통해 인식하는 구조.

동양과 서양의 차이점이 여자와 남자의 차이점이기도 합니다. 동양철학의 출발점은 여자에게 있고 서양철학의 출발점은 남자에서 시작합니다. 동양철학의 출발은 열매(가을)에서 시작하고, 서양철학은 씨앗(봄)에서 출발한다고나 할까요. 열매는 죽음이고 씨앗은 삶이죠. 동과 서가 가운데서 합해지는 것이 間이며 問이고 聞이지요.


동양(좌수)과 서양(우수)이 가운데서 짝하고 마주침으로 입자가 생성되어 점점이 찍히고 수직이 생깁니다. 빛은 입자이며 파동이라는 물리학적인 정보를 몸으로 체험하는 것이 좌우손뼉을 치면 됩니다.

가운데서 생성되는 공명장을 중력(中力)이라 합니다.

성경이야기 중에서 요셉의 두 아들(에브라임[Ephraim ] ‘두 배로 열매를 맺는’, ‘풍성한’, ‘이중의 풍작..

과 므낫세 (Manasseh)


아들의 이름을 형은 ‘므낫세’라 지었고 동생은 ‘에브라임’이라 이름하였다. ‘므낫세’란 형의 이름은 ‘과거청산’을 뜻한다. 그가 겪였던 쓰라리고도 억울했던 “과거의 한(恨)과 아픔을 하나님이 잊을 수 있게 도우셨다”는 뜻이 담긴 이름. 동생의 이름인 ‘에브라임’은 ‘미래번영’. 과거지사는 흐르는 물에 띄워 흘러보내듯이 ‘므낫세’로 청산하지만 “미래는 청청하게 번영을 이루어 나가야 한다”는 뜻에서 붙여진 이름 야곱이 축복할 때 우수를 에브라임에게 좌수를 므닛세에게 올렸다는 이야기 교차. 과거를 청산해야 번영하고 번영하게 되면 결실하게 되고 그것을 또 청산하여야 새로은 번영이 되고...우르보로스의 원리를 설명하는 것이며 야곱이 두 손을 어슷하여 얹고 축복을 하는 기호가 유전자 교차를 나타내는 것이구나..생각을 합니다.


동양의 乙과 서양의 S가 이중나선으로 교차하면서 정보의 길이를 담아낸 것이 物입니다. 야곱이 손의 교차 중심에는 이스라엘인 야곱이 있지요 과거를 청산하여 번영한 체험을 가진 살아있는 정보. 



이스라엘 이기는 자(수직, 입자)가 있는 것이지요. 좌우공명이 만든 입자가 발에서 머리까지를 환히 비추는 크기가 되는 것을 영화라고 합니다. 발에서 머리끝(두정)까지빛으로 채움하는 것을 구원, 그리스도의 신성을 회복함이라는 영화지요. 영화단계에 이르면 언어감각이 완전해집니다. 말에 대하여 완전한 것, 의인이 되는 것이지요. 의인이란 언어감각이 살아있는 사람이라는 말입니다.



물을 문이라는 한 글자만 자신이 풀어보려하는 의지가 생긴다면 그것에서 삶의 길과 질과 결과 골이 바뀝니다. 사이 간間과 새乙(사이 을) 사이間이 問과 문 문門자를 두고 가운데 日과 口의 차이로 물을과 사이로 나눠졌지요. 물을 문과 사이 간을 제대로 이해하려면 門을 이해함이 우선이겠지요. 외연의 문으로 아시는 것도 아시는 것이겠지만 몸에서 문을 아는 것이 바로 아는 것(題)입니다. 몸의 문은 7문(七竅)입니다. 대표적으로 드러난 몸의 모습에서 안으로는 눈을, 가로는 귀를  적용할 수 있습니다.

매맴.....하는 듯이 들려 흉내를 내어보고 매미라고 이름하는 것이 問입니다. 맴맴하기위해서 매미가 어떤 과정을 거치고 움직이는지를 알아가는 것이 題입니다. 멍멍이라고 하는 듯해서 멍멍이라 한 것이 問입니다. 멍멍이라고 소리를 내는 멍멍이의 과정을 알아내는 것이 題입니다. 귀뚤귀뚤 하는 듯해서 귀뚤이 라고 따라해보고 이름을 한 것이 問입니다. 귀뚤..이라는 소리를 내기위해서 귀뚤이가 어떻게 행동하는지를 알아내는 것이 題입니다.

말씀이라는 것이 언어감각이라 했습니다. 물에서 나는 소리를 귀가 듣고 눈이 보고 입에서 따라해보는 것이 물을 문입니다. 세종이 훈민정음을 만들때 했던 과정입니다.

세종만 하고 다른 사람은 안하면 세종만 문제를 푼 사람이지 다른 사람은 여전히 무지한 그대로 입니다.

세종이 궁녀들과 발성체계를 풀었으면 동일한 구조를 가진 나도 발성체계를 따라 풀어내면 됩니다 세종의 훈민정음은 세종의 문제풀이였지 지금을 사는 나와 무슨 상관이 있는지 알아야하는 것이지요.

붓다의 사리(가르침)는 붓다의 것이고 예수의 보훈(말씀)은 예수의 것이고 세종의 훈민정음은 세종의 것이지 지금 나에게 어떤 인과(유전자기호)로 연결이 되는지를 알아내어야 하는 것이 문제라는 낱말에 담긴 의미입니다.


저마다 유전자 기호의 길이가 다릅니다. 붓다에서 멈춘 자, 예수에서 멈춘 자, 세종에서 멈춘 자...

저마다 유전자 코드가 다르기 때문에 추구하는 가치와 꿈도 다른 법입니다. 외연에서 가방끈의 길이를 말하고 학력의 중요성을 말하는 이유겠지요. 외연의 가방끈길이가 유전자정보를 해독해서 풀어낸 길이는 아니니 삶을 행복하게 하는 재미나는 이야기길이가 되지 않고 그저 명함에 낱말을 언어놓은 먹물로 끝나지요.


한국어는 수직과 수평을 둥시에 수용하는 언어구조로 되어 있습니다. 한국어가 가진 언어감각을 따라 올 다른 나라의 언어체계는 없습니다. 한국어가 만들어내는 언어감각을 題해보면 신묘막측, 영묘, 영물이라 합니다. 외연의 만물의 소리들을 다 따옴할 수 있는 언어 몸이니까요. 수직구조인 문을 수평화시키면 ㅁ ㅜ ㄴ,  기운의 총합을 의미하는 ㅁ아득한 곳에서부터 내려온 沕을 나타내는 ㅜ, 그리고 내 앞에서 고정된 정보로 ㄴ 이 되지요. 한국어의 맛을 제대로 알려면 한자, 영어가 피드백 되어야 합니다.  영어가 한국어에서 나간 것이라는 정보도 있듯이 영어를 잘 살펴보면 그 말이 맛습니다. 한자도 사실은 한국어에서 나간 것이지요. 한국어....몸(桓)나라(國)에서 만들어낸 감각(語)체계거든요


물을 問은 내가 보고 듣은 것에 대하여 그것이 정확하게 자연에서 증명하는 것인지를 입으로 발성해보아 확인하는 것이라면 제는 제목 제題 바를 시是에 머리 혈頁이 붙어서 기호로 삼고 있습니다. 문은 보고 들은 것을 입으로 따라해 봄으로 언어감각을 알아내는 일이고 제는 바를 시에 머리혈로 이뤄진 만큼 발품을 팔아 환경을 관찰함으로 생태계의 흐름을 알아내는 것이지요. 문제는 어떤 일이 벌어졌고 거기에 대해 어떻게 이렇게 되었을까....를 되짚어 가려 하는 것이라는 말이지요.

그것은 영어도 마찬가지입니다. problem의 어원은 그리스어 problema로서 내 앞에 던져진 것’ 이란 의미입니다. 어떻게 이것이 내 앞에 던져지게 되었을까의 과정을 되짚어가게 하는 것이지요

일어난 일을 놓고 일어나게 된 원인을 찾아내는 것이 문제입니다. 일어나지 않는 일은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늘 일어난 일을 놓고 그 일을 해석하는 것이 살아가는 일입니다. 일을 만드는 것은 모르면서 사용한 말입니다.

말을 해놓고는 결과로 일이 생기면  도대체 왜 이런 일이...라고 합니다. 자신의 말이 만든 일이라는 것을 알지 못하는 것이 죄입니다.

만물은 소리감각으로 소통을 합니다. 사람은 소리감각을 익히고 그 위에 언어감각을 놓아서 말을 부립니다.

만물보다 인간이 뛰어난 것이 소리위에 언어를 놓을 수 있어서입니다. 말이 얼마나 위험한 것인지 알지 못하고 말값은 말을 사용한 이에게 청구서를 올립니다. 말값을 갚아가는 것이 문제를 푸는 일입니다. 말소리를 녹음하기도 하지만 우주아카샤라고 하는 도서관 진동률에 내 성문이 헤르츠로 기록됩니다 . 지문만큼 성문도 고유하기때문에 아카샤에 헤르츠로 남은 내 성문이 모여서 결을 만듭니다. 그것을 구업, 카르마라고 하거나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하지요.

만물이 공용으로 사용하는 것이 진동률 헤르츠입니다. 문자언어는 인간의 고유한 도구지만 소리라는 헤르츠는 만물의 공통소통체계입니다. 모든 것에 불성이 있다는 뜻이 그 뜻입니다.

말을 소리(진동률, 헤르츠)에 태우면 말값은 반드시 있습니다.  소리는 아무리 해도 빚지는 일이 없지만

말을 하면 그 말이 생성된 어떤 구조를 사용하는 것이기 때문에 말 구조를 이용하는 교통료를 지불해야 한다는 것을 알고 하면 구업을 짓지 않겠지요. 구업이라는 것이 말을 타고 달리는 길값을 내지 않으면 부과되는 벌금이지요.

 

건강을 건강할 때 지킨다는 것을 듣지 않으면 병나고 나서는 이미 늦습니다. 병으로 고생하는 이들의 과정을 관찰해서 병을 유발하는 환경이 무엇이였나를 관찰해서 내 살이에서는 병을 유발하는 습관이 있으면 삭제하면서 사는 것이 생명을 사는 공부입니다. 무엇이 무엇을 발생할지 모르면 빚이 있는지 없는지도 모르면 손뼉과 발바닥치기와 아설순치후 모음을 열심히 하면 모르고 진 말빚도 갚고 병이 들게되는 길도 막게 되고 든 병도 나가게 됩니다. 자음에 도로주행료가 붙습니다. 해서 예수 그리스도가 십자가에 달리지요. 자음이거든요

문제라는 것은 알면 문제 자체가 답입니다. 손뼉 많이치고 이치를 딱 맞게 딱딱치고 설음으로 무거운 기운을 털고 순음으로 불어내면 몸은 건강하게 됩니다. 하루 천번 손뼉, 발바닥 양쪽 1000번씩, 아설순치후...훈련하면 병원하고는 상관없이 살게됩니다. 가르쳐 줘도 못하는 것은 생명에 대한 열정이 없어서입니다. 千이라는 한자는 땀날 때까지 라는 뜻입니다.

건강을 지키는 가장 손쉬운 방법인데도 손을 좌우로 내리고 쉬는 것은 잘해도 펼쳤다가 중심에서 공명장을 만드는 일은 안하는 것이 죄인들의 게으럼입니다. 가르쳐 줘도 안합니다. 수억씩 받고 가르쳐 준다면 아마 할려지도 모르지요

돈을 들였으니...아까봐서라도...해서 아무리 귀하고 귀한 비법이라도 돈을 내지 않고 들으면 값을 치루지 않았기에 실천을 하지 않게 되어 있습니다. 불의의 재물로 친구를 사귀라고 합니다. 돈이 가장 소중한 것이기에 돈을 들인만큼 믿음이 생깁니다. 플라시보라는 것...돈의 힘입니다. 돈으로 생명을 사기도 하는 것입니다.

자신의 가치는 자신이 투자한 돈의 크기로 돌아오는 것이 자본주의의 법칙입니다.

자신의 몸값(언어감각)을 제대로 알지 못하는 사람들은 자신을 두르는 것에 투자하여 든 돈만큼의 가치를 스스로 누리려 합니다. 백만원짜리 티를 입으면 자신의 값이 백만원은 됩니다. 자기만 아는 가치죠

남이 보면 만원짜리와 구별의 안되어도.... 명품은 명품으로 자기가치를 만든 그 사람에게만 중요합니다.

남은 못 알아봐도 자기가 자기 멋에 즐거워하는 것이지요. 자기만족을 추구하며 사는 것이듯이요. 건강할 때 건강을 챙기는 비법을 이렇게 가르쳐 줘도 실천하기란 하늘의 별따기지요.해서 줘도 못 먹나....가 되는 것이지요.


2012년 9월 6일 11시 34분에 쓰고 2018년 3월 30일에 다시 손보다





출처 : 천부동(天符洞)
글쓴이 : 청향빛결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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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상과 통찰

조로아스터 2018. 1. 29. 21:51


http://www.dailywrn.com/sub_read.html?uid=8764

장정태 박사의 한국종교학

예언의 사례-수운 최제우과 정역계 김항(일부)


동학의 수운 최제우(水雲 崔濟愚)가 비유로 나타낸데 대해 2세 교주 해월(최시형)에게서 보다 직접적인 표현이 나온다.
 
“우리 도는 삼절운(三絶運)에 창림했으므로 나라와 백성이 다 이삼절운을 면치 못하리라……. 지금은 도를 권하면 다 믿지 않으나 일후에는 사람들이 다 손바닥에 시천주 주문을 써 달라고 할 것이다……. 우리 도는 중국에 가서 포덕할 때가 되어야 포덕천하를 달성하리라”.
 
현도에 대한 물음에 “산이 다 검게 변하고 길에 다 비단을 펼 때로 만국과 교역할 때이다” 같은 동학계이면서 방계의 입장을 취하는 수운교는 최출룡자 이상룡에 의해 창교된 종단으로 무라야마 지쥰(村山智順)은 이상룡과 관련 불국사 승려출신이며 양산 통도사에 들어가 4년간 경문을 배우고 지리산 대원암(大圓庵) 및 금강산 유점사에서 수행한 것으로 주장하는데 대해 수운교 측에서는 교주는 불국사 승려인 이상룡이 아니라, 수운교의 교주는 이상룡이라는 가명으로 은둔할 수 밖에 없었던 최제우 수운 천사 이며 그 근거로 1886년(甲子) 3월 10일 서상학의 무고로 인해 천사(수운교에서는 최제우와 관련 천사로 부르고 있다).
 
좌도난정이란 죄명으로 대구 장대에서 참형을 당할 즈음에 하나님의 무궁한 조화가 일어났다. 그 참형은 허신(虛身) 참형이었다. 이것을 갑자수난(甲子受難)이라고 한다. 조선 정부로부터 대구 감영에서 참형을 당한 것은 수운 최제우가 아니라 그의 신통력으로 만든 신체(身體)이며 몸을 피한 후 진신(眞身)은 금강산 비로봉 도솔암으로 들어가 천일기도를 마치고 성(姓)을 이최(李崔) 두 자성으로 고쳤으며, 당호(堂號)를 출룡자(出龍子)로 바꾸어 노승과 처사와 걸인모습으로 방방곡곡 유행하며 수도정진하며 지내다. 1923년 서울에서 수운교를 개교한 것으로 보고 있다.
 
그는 유성의 금병산 숲 속에 있는데, 교주 출룡자(이상룡)는 교단 앞 논밭을 가리키며 “저기에 배가 뜰 것이다” 고 했는데 수십 년이 지나 우연일치 인지 이곳에 선박연구소가 들어서면서 인공호수에 많은 모형배가 떠다니고 있다. 조선독립과 관련「1943년 5월 오무호(吳武鎬)가 총독을 축출하고 총독부에 수운교 간판을 현판하니 일본 천황이 항복하더라」는 예언하고 있다. 이 사건으로 오무호 외 8명이 1년 2개월간의 옥고를 치르고 나왔다고 주장하고 있다.
 
“국문(國文)이 세계 공통어가 된다”
 
남학은 동학과 같이, 한말에 발생한 신흥종교의 하나이다. 한말 동학이 발생함에 잇달아 수많은 종교단체들이 신생되었다. 이 가운데에 충남 논산군 양촌면에서 正易 金恒(號 一夫)을 교주로 조직된 단체다. “서학은 동학에 망하고, 동학은 남학에 망하고, 남학은 북학에 망하고, 북학은 중학에 망한다. 즉 서학은 기독교요, 동학은 천도교요, 소위 남학은 영가무도교(詠歌舞蹈敎) 혹은 대종교(大倧敎)”라고도 한다.
 

▲ 김항이 완성한 정역.     ©

 
김항은 1826년 충청남도 연산에서 태어났으며 호는 일부(一夫)이다. 이운규에게 『서전(書傳)』을 사사받았으며 그가 체계화시킨 정역사상은 19세기 후반 동학사상과 함께 한민족의 주체사상을 이었다. 이때부터 발생한 대부분의 신종교들이 동학과 정역에 의해 천명된 후천개벽 사상에 바탕을 두었다.
 
정역은 일부에 의해 완성된 제 3의 역이요. 후천역이다. 그는 후천선계의 운도(運度)는 360일로 정각이 되기 때문에 후천에서는 四時, 晝夜, 寒暑의 차가 없게 되며 인간도 빈부귀천의 차이가 없게 된다.는 주장이다. 김항은 꿈에 공부자(孔夫子)의 영상(影像)이 나타나 자신에게 “내가 일찍이 하고자 하였으나 이루지 못한 것은 그대가 이루었으니 이런 장할 데가 없다!”라는 경험을 겪고나서 대역서(大易序)를 저술하게 되었다. 그는 1890년대에 기차를 금화도(金火道) 비행기를 풍륜차(風輪車)라 하면서 「우리나라 한글이 전용어가 되어 한글만 알아도 재상이 되며 언문 통천(統天)을 하리라」예시한다. 우리글에 대한 각별한 애정은 수운에게도 보이고 있다. “앞으로 국문(國文)이 세계 공통어가 된다”는 것이다. (삼국유사문화원장·동국대 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