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상과 통찰

조로아스터 2017. 12. 20. 08:49

http://v.media.daum.net/v/20171220010213824?rcmd=rn


장편 『오리진』 출간한 댄 브라운
신이 과학의 도전에 살아남을까
독자가 읽는 한쪽 쓰려 열쪽 버려
4년 준비, 미국서 초판만 200만부

’독자가 읽는 한 쪽을 쓰기 위해 열 쪽을 버린다“고 말하는 소설가 댄 브라운. [사진 문학수첩]
오리진
이번에도 ‘불경죄’를 면키 어려울 것 같다. 새 장편소설 『오리진』(1·2권, 문학수첩·사진)을 세상에 내놓은 미국 작가 댄 브라운(53) 얘기다. 새 소설에서 그는 인간의 기원, 앞으로의 운명을 점친다. 호모 사피엔스를 위협하는 복병은 역시 AI, 폐기되는 건 기독교 창조론이다. 인간은 어떻게 생겨났고 앞으로 어떻게 될까. 이런 문제를 과학적으로 따지다 보면 창조론에서 멀어질 수밖에 없다. 예수 결혼설을 꺼냈던 『다빈치 코드』, 반(反)교회 결사체 일루미나티를 그린 『천사와 악마』에 이은 또 하나의 ‘종교에 딴지걸기’다.

그는 정작 소설에서 어떤 얘기를 하고 싶었던 걸까. e메일 질문지를 보내자 그는 음성녹음 답변을 보내왔다. 그를 인터뷰한 건 2009년 『로스트 심벌』을 발표했을 때 미국 보스턴에서 만난 후 8년 만이다.

Q : 새 소설도 성공적인 것 같다. 미국에서 초판만 200만 부를 찍었다고 들었다.

A : “한 번 성공하면 자꾸 기대하게 된다. 하지만 글쓰기에는 어떤 보장도 없다. 집필을 마치고 매우 흥분했었는데 독자들도 비슷하게 느끼는 것 같아 매우 행복하다.”

Q : 이번 소설에서도 종교를 문제 삼았다. 종교에 적대적인가.

A : “나는 아주 복잡한 가정에서 성장했다. 엄마는 교회의 오르간 연주자로 활동한 신실한 분이었고, 아버지는 학교 수학 선생이었다. 과학과 종교의 세계에서 자란 거다. 열 살 무렵부터 종교에 대해 궁금증을 품기 시작했다. 몇몇 종교적 주장에는 심각한 의문까지 품게 됐다. 그런데 과학 속으로 발을 디딜수록 종교와 과학이 결국 같은 질문에 답하고자 한다는 점을 깨닫게 됐다. 과학을 깊게 파고들면서 들었던 궁금증은 점점 종교적인 성격을 띠게 됐다. 종교에 대한 내 궁금증은 종교를 더 잘 이해하기 위한 욕망에서 비롯된 것이지, 지적인 사람은 합리적으로 증명할 수 있는 것만 믿어야 한다는 주장을 펴기 위한 것이 아니다. 내 궁금증은 영적이라기보다는 심리적인 것이다.”

Q : 이전 작품과 새 소설을 비교한다면.

A : “쓰면서 만족스러웠고, 독자들도 마음에 들어 하는 것 같다. 나의 로버트 랭던 시리즈 중 최고가 아닐까 한다.”

Q : 책의 핵심 메시지를 꼽는다면.

A : “과연 신이 과학의 도전에 맞서 살아남을 수 있을까, 하는 문제다. 신이 과학의 도전을 이겨낼 수 있나, 인류는 신을 더 이상 필요로 하지 않는 단계까지 진화할 것인가를 그려보고 싶었다.”

Q : 소설에서 창조론을 문제 삼았다.

A : “성경의 창세기에 나오는 창조론은 우리가 어디서 왔는지를 설명하는 하나의 우화다. 하지만 뭔가 배울 수 있는 도덕적인 이야기이지, 과학적이지는 않다.”
중앙일보 독자들을 향한 메시지다. [사진 문학수첩]

Q : 앞으로 인류의 운명은 어떻게 된다고 보나. 기술의 노예가 되나.

A : “지금까지 인간이 개발한 기술 가운데 무기화되지 않은 것은 없었다. AI가 사악한 목적에 사용되지 않으리라고 보는 건 순진한 생각이다. 언젠가 AI가 인간이 더 이상 존재할 필요가 없다는 판단을 내리고, 인간을 사냥하는 날이 오는 건 아닐까. 나는 AI 기술 개발자들이 그런 위험성을 항상 염두에 둬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렇다고 영화 ‘터미네이터’ 식의 미래가 될 것 같지는 않다. AI가 지구를 접수한다면 인간을 사냥하는 로봇을 통해서가 아니라, 수도 공급을 끊거나 인간 지시대로 일하지 않는 방식을 통해서일 것 같다. 컴퓨터들이 인간에 협조하지 않기만 해도 인간은 오래 살지 못한다.”

Q : 당신 소설은 과학의 새로운 연구 성과와 미술·역사·건축 등 인문학 지식을 알기 쉽게 버무린, 대중적인 교양소설 같다.

A : “맞다. 그게 바로 내가 이번 소설에서 시도한 거다. 재미있는 세계, 책장을 넘기는 게 즐거운 스릴러를 쓰고 싶었다. 그러면서도 책 속의 예술과 역사, 건축과 과학 지식에서 뭔가 배울 게 있고, 독자가 지적인 호기심을 느끼게 하고 싶었다. 내 책에 대한 최고의 찬사는 ‘당신 소설을 한 권 읽었다가 당신의 다른 소설 열 권까지 읽게 됐다’ 같은 말이다.”

Q : 2권 뒤편 ‘감사의 말’을 보니 일종의 그룹 프로젝트 아니었나 하는 느낌이 들 정도로 집필에 관련된 사람이 많다.

A : “이런 소설을 쓰려면 많은 사람이 필요한 건 사실이다. 내 소설 쓰기는 언제나 읽기에서 시작한다. 우선 쓰려는 주제에 관해 열심히 읽는다. 최소한 쓰려는 분야에 관해, 올바른 질문을 던질 수 있게 될 때까지 읽는다. 그리고 나서 온갖 전문가들을 만난다. 이번 소설의 경우 미술사가, 큐레이터, 종교학자, 과학자, 그런 사람들을 만났다. 그들과의 토론에서 소설에 써먹을 수 있는 진짜 정보들을 얻는다.”

Q : 소설 속 스페인 국왕과 가톨릭 주교가 동성애 관계임을 암시했는데.

A : “맞다. 대신 두 사람의 교제를 차분하고 존경심 넘치는 것으로 그리려 했다. 그런 설정은 남과 다른 정신구조(성적 지향)를 가진 사람들에 대한 관용이 중요하다는 점을 강조하기 위한 것이다. 이번 소설은 많은 점에서 종교적 관용에 대한 이야기이다. 세상에는 무신론자이면서 박애주의자이고, 타인에 온정적인 사람들이 있다. 무신론자들이 신을 믿는 사람들을 인정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신을 믿는 사람들은 무신론자들을 인정해야 한다. 하나의 종족으로서, 다른 성적 취향을 가진 사람들이 있다는 점도 받아들여야 한다.”

Q : 책 쓰는 데 4년이 걸렸다.

A : “자료 조사에 2년, 쓰는 데 2년이 걸렸다. 바로바로 뭐가 나오지는 않는다. 얘기가 되는, 소설의 윤곽을 반드시 확보하고 나서 소설을 쓰기 시작한다. 또 맨 마지막 장면을 가장 먼저 쓴다. 소설이 어디로 가는지 알기 위해서다. 본격 집필에 들어가면 일주일에 7일, 1년 365일 쓴다. 심지어 크리스마스 날에도 새벽 4시에 책상 앞에 앉아 있었다. 정오 무렵까지 쓰고 나서 오후에는 밖에 나가 몸을 굴리면서 소설 쓰기에서 가급적 멀어지려고 노력한다. 그래야 신선한 상태로 되돌아올 수 있다. 쓰는 데 오랜 시간이 걸리는 이유는 수많은 원고를 버리기 때문이다. 독자가 읽는 한쪽을 쓰기 위해 열 쪽을 버린다.”

Q : 2009년 인터뷰 때 고급차가 아니라 소박한 차를 갖고 있다고 했었는데.

A : “『다빈치 코드』가 세상에 나온 지 3년째 되는 해였는데 아주 소박한 자동차를 갖고 있었다. 볼보인데, 아직도 갖고 있다. 나는 자동차 매니어도, 호사를 즐기는 사람도 아니다. 오로지 작업에 집중하려 한다. 하지만 부끄럽게도 지금은 아주 멋진 자동차를 갖고 있다. 이번 소설의 주인공 에드먼드 커시와 같은 차, 검은색 테슬라 SUV 모델 X다. 이 차는 나를 어디든 데려간다. 직접 운전할 필요가 없다. 그저 타기만 어디든 데려다준다. 무척 재미있다.” 신준봉·송한결 기자 inform@joongang.co.kr


 
 
 

사상과 통찰

조로아스터 2017. 9. 26. 10:42

가을의  문턱에~~~
가까운 친구가 보내준 야사 "황진이"이야기"
다들 아는 얘기지만 또 읽어보니 감칠 맛이 있어 여기에 올림니다.
다들 읽어들 보시고 한마디씩 코멘트를 해 주면 고맙겠는데요 ... 우짤까요?

 ♡ 십년공부 나무아미타불 ♡

"청산리 벽계수야 수이감을 자랑 마라 
일도창해 하면 돌아오기 어려우니 
명월이 만공산 한데 쉬어 간들 어떠하리"

위의 시조는 황진이를 대표하는 시조이지요
 
벽계수라는 왕족의 건달이 황진이를 사모하여 접근을 하였는데
황진이 또한 그 사나이를 은근히 꼬실때 지은 시조라고 하지요

벽계수의 본명은 이종숙(李琮淑). 세종대왕의 17번째아들 영해군의 손자이지요
영해군의 아들 길안도정 이의(李義)의 셋째 아들이며 세종대왕의 증손자가 되지요

우리나라 역사에서 가장 유명한 기생이라면 단연 황진이를 꼽지 않을수 없어요
보름달 같이 환한 미모에 꾀꼬리 같은 목소리 ...

황진이가 누각에 앉아 가야금을 뜯으며 노래를 부르면 재잘대던 산새들도
소리를 멈추고 황진이의 노래소리와 가야금의 곡조에 귀를 기울였다고 하지요

황진이의 어머니는 진현금이었는데
진현금이 어느 따듯한 봄날 빨래터에서 빨래를 하는데 지나가던 황진사의 아들이
진현금의 미모에 반해 정을 통하여 낳은 자식이 서녀(庶女)황진이라 하는군요
그녀의 본명은 진. 일명 진랑(眞娘) 기명은 명월이며
조선 중기 개성(송도)의 명기(名妓)로 당대 최고라 했어요

절세미인 황진이는 홀 어머니 슬하에서 자랐지만 양반집 딸 못지 않게 갖가지
교육을 잘받았고 학문과 예의범절에도 뛰어 났다고 하는데
8세 때에 천자문을 통달할 정도로 총기가 있어 10세 때에 벌서 한시(漢詩)를 짓고
고전(古傳)을 읽었지요  기적에 입문 후에는 서화(書畵)와 가야금에도
출중한 기량을 발휘하여 당대의 최고의 명기가 되었어요

기생의 길을 가게 된 이유는 이러하지요 
15세때 그 동네에서 황진이를 연모하던 한 청년이 있었는데 속마음을 고백하지 못하고
짝사랑으로 속앓이를 하다가 그만 상사병이 들어서 사경을 헤메고 있을때
그 청년의 어미가 황진이의 어미를 찾아와 단 한번만 이라도 만나게 해주면
자식을 살릴수가 있을 것이라고 하소연 하였지만 극히 섭섭하게도 냉정히 거절을 당하였고
그 청년은 못내 한을품고 세상을 뜨고 말았어요

이 사실을 까맣게 모르고 있던 황진이는 어느날 집에서 글을 읽고 있는데
그 집앞을 지나가던 상여가 문앞에서 한발짝도 움직이지 않고
뗑그랑 ~뗑 뗑그랑 ~뗑 상여의 종소리만 요란하게 울리고 있었지요
그래서 사실을 알아본즉 자신를 짝사랑하다 죽은 청년이 한이 맺혀 못가는것을 알고 
황진이는 소복으로 옷을 갈아 입고 밖으로 나아가 자신의 치마를 벗어서 관을 덮어 주고
아주 슬프고 애절하게 곡을 해주니 그제서야 상여가 움직였다고 하는군요

이러한 일이 있은후 황진이는 자기를 연모하는 남정네들이 많은 것을 알고
그들에게 죽음을 몰아다 줄수는 없는 일이라고 생각을 하고 기생이 될것을 결심하게
되었는데 그래서 자신의 자유분방한 성격대로 기적(妓籍)에 이름을 올리고
그 당시 수도였던 개경의 많은 선비와 학자들과 정을 통하고 교제를 하였든 것이지요

황진이와 가깝게 교제한 사람은 많으나
대표적인 인물이 벽계수(碧溪水)와 지족암에서 30년을 수도한 지족선사(知足禪師)였어요
그리고 화담 서경덕(徐敬德) 이었지요
황진이는 벽계수를 넘어트린 여세를 몰아 이번에는 지족선사를 찾아 갔어요

황진이가 지족선사에게 넙죽 절하며 제자로서 수도하기를 청하였으나
선사는 여자를 가까이 하고 싶지 않다고 일언지하에 거절을 하였지요
황진이는 하는수 없이 그냥 돌아올수 밖에 없었어요
허지만 그냥 물러설 황진이가 아니지요
두번째 찾을때는 꾀를 내어 변복을 하였지요
황진이는 소복단장 청춘과부의 복색을 하고 지족암을 다시 찾아 갔어요
그리고는 죽은 남편을 위하여 백일불공을 드리러 왔다고 거짓말을 하였지요
 
황진이는 지족선사가 있는 바로 옆방에 거처를 정하고 매일밤 축원문을 지어서
아주 청아한 목청으로 천사와 같이 불공축원을 하였어요
처음에는 아랑곳 아니 하던 선사는
매일 낮이면 농익은 여인의 소복한 아름다운 자태에 눈이 어두워지고
밤이면 그 아름다운 목소리에 마음이 흔들리기 시작 하였지요
은은한 불빛에 비추이는 농익은 여인의 실루엣과 
밤만되면 님그리워 잠못이루는 애끓는 여인의 몸부림에
지족선사는 어찌할수 없이 욕망이 솟구쳐 무너지고 말았어요

황진이의 능란한 그 수법에 결국 지족선사를 파계시키고 말았지요
20년을 수도하고 10년을 공부한 지족선사 ...
그래서 그 때부터 우리의 속담에 “십년공부 나무아미 타불”이란 말이
나오게 되었다 하지요 "십년공부 나무아미 타블 ..................... "

세상 남자들은 황진이가 앞에 나타나면 모두가 넋을 잃을정도로
그 아름다운 자태와 미모에 반해서 오금을 못폈는데
오직 한사람  서경덕만은 꼬장꼬장한 성격으로
한밤중 단둘이 동침을 하면서도 사나이 지조를 지켰다 하지요

화담 서경덕(徐敬德)(1489~1546)은 대학자 였어요
그는 당시 과거에 급제하고도 부패한 조정에 염증을느껴 벼슬을 마다하고
일생을 학문 정진에만 힘썼던 은둔거사이자  대학자 였지요
집은 극히 가난하여 며칠동안 굶주려도 태연자약하였으며 오로지 도학에만 전념하며
제자들의 학문이 일취월장 하는것을 뽈때면 매우 기뻐했다고 하는군요
평생을 산속에 은거하며 살았으며 세상에 대한 뜻이 없는 것처럼 보이는듯 했지만
정치가 도를 넘게 타락하거나 정도에 어긋나면  개탄을 금치 못하고 
임금께 상소를 올려 잘못된 정치를 비판하곤 하였지요

이 서경덕이 바로 송도 부근의 성거산(聖居山)에 은둔하고 있을 때였지요
자연히 그의 인물됨이 인근 개성에 자자하게 소문이 났고 그 소문을 황진이도 들었어요
벽계수를  무너뜨린 기세를 몰아 황진이는 서경덕에게도 도전을 하기로 마음 먹었지요
그래서 기생으로서 많은 선비들에게 썼던 수법을 그대로 서경덕에게도 쓰기로 했어요

어느날  하루종일 장마비가 쏫아지던 날이었어요
속이 훤히 들여다 보이는 하얀 속치마 저고리만 입고
우산도 없이 장마비를 흠뻑맞은 상태로 서경덕을 찾았어요
비에 젖은 하얀 비단 속옷은 알몸에 밀착되어 가뜩이나 요염한 기녀의 몸을 한층
돋보이게 만들었지요
그런 차림으로 계속 비를 맞으며 서경덕이 은거하고 있던 초당으로 들어갔어요
물론 서경덕이 혼자 기거하는  집이었지요

조용히 글을 읽고 있던 서경덕은 뜻밖의 절세미인을 보자
반갑게 맞으면서 '뉘신지는 모르나 어찌 이 비를 다 맞았노!!! ...' 하며
비에 젖은 몸을 말려야 한다며 아예 황진이의 옷을 홀딱 벗겨 버렸지요
알몸이 되다싶게 옷을 벗기고 직접 물기를 닦아주는 서경덕을 보고 오히려 쾌재를 불렀어요
황진이는 아름다운 전나의 몸을 요염한 자세로 요리조리 취하며 서경덕을 유혹했지요
그러면서 황진이는 "저도 x달린 사내 인것을" 하며 은근히 접근해 오기를 기대하고 있었어요
아니나 다를까?
황진이의 몸에서 물기를 다 닦아낸 서경덕은 마른 이부자리를 펴는것이 아닌가?
'그럼 그렇지 ... '
황진이는 알몸의 몸으로 이부자리에 누우면서 더욱더 요염한 자세로 교태를 부렸지요
남은 한장의 속속곳마져 벗어 던지고 실오라기 하나 없는 알몸으로
몸을 뒤채는듯 전라(全裸)의 농익은 육체를 보여주어도
서경덕은 눈도 깜짝 안하며 오히려 이불을 덥어주며  몸을 말리라고 하면서
그리고는 다시 꼿꼿한 자세로 앉아 글읽기를 계속했지요

시간이 지나 날은 어두워지고 이윽고 밤은 깊었지요
그런데도 서경덕은 책만 읽고 있었어요
황진이는 화도 났지만 오기가 발동했지요
그래서 이불을 걷어 치우고 벌거벗은 몸으로
요염한 자세를 취하며  아양을 떨기 시작 했어요
그랬더니 삼경쯤 되자 이윽고 서경덕이 옷을 벗고 황진이 옆에  누웠어요
'올치~ 이제사 사내의 본색을 드러내는구먼 ...' 하면서 좋아 했지요
그러나 그녀의 기대와는 달리 옆에 눕자마자 이내 가볍게 코까지 골면서
편안하게 꿈나라로 가버리는 것이 아닌가?
아침에 황진이가 눈을 떴을때 서경덕은 벌써 일어나 아침밥까지 차려 놓고 있었어요

허허 ~ 아뿔사 ~ 듣던대로 정말 대단한 위인이구나 ~~
황진이는 대충 말린옷을 입고는 부끄러워서라도 빨리 그곳을 벗어나고 싶었지요
그리고 며칠 후  황진이는 성거산을 다시 찾았어요
그때와는 달리 요조숙녀처럼 정장을 제대로 차려입고 음식을 장만하여 서경덕을 찾아지요
역시 글을 읽고 있던 서경덕이 이번에도 반갑게 맞았고
방안에 들어선 황진이는 서경덕에게 큰절을 올리며 제자로 삼아달라는 뜻을 밝혔어요
빙그레 웃는 서경덕.
그 뒤엔 사제지간으로 황진이가 평생을 흠모하며 지냈다  하는군요

여자치고는 뜻이 크고 기개가 높아 사내 대장부에 못지 않았던 황진이
황진이는 서경덕의 큰 기개  앞에서 두 손을 들고 말았지요
그리고 서경덕에게 “선생님은 개성의 3절이십니다.”하고 찬탄을 하니
서경덕은 “무엇이 삼절인고?”하고 되물었어요
그 첫째가 서경덕, 둘째는 황진이, 그리고 세째는 개성의 박연폭포”라고 하였다 하네요
서경덕이 죽고 난 후 황진이는 서경덕의 발걸음이 닿았던 곳을 두루 찾아다녔으며
황진이가 죽을때 까지 그를 흠모했다 하는군요

가을 ..책 읽는 계절
우리나라 야사(野史)등을 한번 쯤 읽어 보심은 어떨지요?
< 받은 글 중에서.🍒 >

 
 
 

사상과 통찰

조로아스터 2017. 7. 7. 14:54

(서울=연합뉴스) 박수윤 기자 = 신학생인 도윤(백서빈 분)과 일곱 명의 친구들이 동굴에 모인다.

하나님은 먹지 말라고 할 선악과를 왜 창조했나, 행복을 왜 현재가 아닌 천국에서 찾아야 하나. 도발적인 질문들이 쏟아진다.

"죽어서 천국 가는 게 신앙생활의 최종 목적이라면, 빨리 믿고 그 믿음이 사라지기 전에 얼른 죽어야 하는 거 아냐?"(은호·최이선 분)

"아담이 죄를 지었는데 왜 내가 죄가 있고,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혔는데 왜 내 죄가 없어지는거야?"(주성·오경원 분)

예수가 갈릴리 호숫가에 모여든 사람들에게 한 설교 '산상수훈'(山上垂訓)처럼, 도윤은 막힘없이 해답을 던지며 이렇게 말한다. "내가 천국을 보여줄까?"

영화 '산상수훈'은 비구니 스님이 만든 기독교 영화다. 지난 6월 말 세계 4대 국제영화제 중 하나인 러시아 모스크바 국제영화제의 비경쟁부문인 '스펙트럼' 부문에 초청됐다.

감독 대해스님(58·본명 유영의)은 '아시아영화진흥기구'(NETPAC)상 한국 측 심사위원으로도 참여했다.

124분의 러닝타임 내내 신학생들은 팽팽한 토론으로 예수의 본질을 추적한다. 어두운 밀실에서 배우들이 치고받는 대사만으로 이야기를 끌고 나간다는 점에서 영화 '맨 프롬 어스'를 연상시킨다.

최근 귀국한 대해스님은 6일 서울 종로구 인사동에서 주연배우 백서빈(33)과 기자간담회를 하고 불제자가 기독교 영화를 만든 이유를 설명했다.

"변하지 않는 본질을 담은 게 성경, 불경과 같은 '경(經)'입니다. 뿌리로 내려가면 본질은 모두 같습니다. 변치 않는 진리를 영화로 만들면 '영화경'이지요. 영화라면 어린이부터 노인들까지 이해하기 쉬울 테고, 세상은 아름다워지겠지요."

스님은 "인간의 내면에 하나님이 있는 건데, 오늘날은 '전지전능한 하나님'이라고 인간과 분리해 뚝 떼어내 버린다. 그러니까 왜 하나님이 전지전능하다면 엉망진창인 세상을 고치지 않느냐는 의문이 생긴다"며 "영화를 통해 의문을 풀고 본질을 회복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이어 "사람들은 스님이 계속 수행만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수행만 하면 누가 진리를 가르치느냐. 부처님도 깨달음을 얻은 뒤 49년 동안 설(說)을 하셨다"고 강조했다.

주연을 맡은 백서빈은 배우 백윤식(70)의 둘째 아들이다. 재능 기부로 이 영화에 참여한 그는 아버지가 2003년 영화 '지구를 지켜라'로 모스크바국제영화제에 초청된 데 이어 나란히 레드카펫을 밟았다.

백서빈은 "15일간 한두 시간밖에 못 자면서 촬영했는데, 주 무대였던 동굴은 들어서는 순간 아늑함이 느껴지는 신기한 공간이었다"며 "감독님이 롱테이크를 좋아하셔서 연극 하듯 호흡을 쭉 이어갔다"고 말했다.

또한, '한 번의 믿음으로 영원히 천국과 지옥이 나뉜다면 인생이 한 판의 도박 아닐까'라는 대사가 인상적이었다면서 "사람들이 천국에 가고 싶어서 회개하고도 또 죄를 짓지 않느냐. 아등바등하는 동안 현실에서는 행복을 못 찾는 게 아닌지 생각하는 계기가 됐다"고 덧붙였다.

대해스님의 필모그래피는 촘촘하다.

2007년 5분짜리 첫 단편영화 '색즉시공 공즉시색'을 시작으로 91편의 중·단편영화를 만들어 불교 매체와 포털 사이트를 통해 대중에게 소개했다.

'산상수훈'이 정식 개봉된다면, 극장 스크린에 걸리는 스님의 첫 번째 영화가 된다.

그는 "4대 성인에 대한 영화를 구상했었다"며 "소크라테스와 예수에 대한 영화는 만들었으니, 앞으로는 부처님과 공자의 이야기를 담아낼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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