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상과 통찰

조로아스터 2017. 6. 4. 09:12



이 음산하고 척박한 시대에 시는 과연 구원을 탐구하는 길이 될 수 있을 것인가

인류가 처한 정신적 위기 - 그것을 해결하기 위한 종교나 철학, 또는 명상 수행의 한계는
이미 오래 전에 실증되었다고 본다 - 오늘 날, 그것들이 밥벌이 수단으로 전락한 이상에는

(그 이유를 추상적으로 찾을 것도 없이 지금 잔뜩 미쳐 돌아가는, 세상의 국면이 바로 그 생생한 증거)

인간정신 구원의 주체는 인간외적의 타력이 아닌, 인간 스스로의 자력이어야 하고
그 정신의 향도嚮導 역할은 싫던 좋던,
이제는 달랑 사전적 명칭으로만 남았다고 하더라도 결국 시인들이 맡아야하지 않을까


시인들마저 자신의 시를 불신하는 기괴한 시대라고 하더라도,
인간회복, 그 탐구의 사명을 그 어떤 다른 정신적 존재에게 짐 지우겠는가

다겁多의 생을 통해 세상에 숱하게 지은 빚을 그 누구에게 떠넘기겠는가

이런 末代에 시인이 된 거 자체가 어쩌면 일종의 저주스러운 일이겠지만...



                                                                                                    - 희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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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를 읊은 삶, 칼 구스타프 융을 회상하며
                                                                               전 철


군대라는 음울한 사각지대에서 국어사전을 통째로 암기했다던
젊은 작가 김소진이 며칠 전에 지병으로 세상을 떠났다.

마음이 아팠다.

오늘 아침에는 몇 년전 종로서적 문학 파트를 스쳐 지나가다 우연히 만난
박재삼(1933-1997)의 시들이 햐얗게 떠올랐다. 뼈끝까지 가난하였던 시인 박재삼씨가
별세하였다는 기사가 신문의 하얀 여백에 검은 잉크로 찍혀 있었다.

세인(世人)의 죽음과는 달리 시인(詩人)의 죽음은, 사뭇 잊고 살았던 삶의 근원적 의미를
채근하게 한다. 자명하게만 다가왔던 우리네 삶이 어느 순간 한없이 낯설어진다.

시인의 언어가 자명한 사물을 교란시키듯이, 시인의 죽음은 아무도 물음표를
던지지 않고 그저 그렇게 살아가는 우리의 삶을 교란시킨다.

시인의 죽음은 모든 존재가 엔트로피의 법칙에 의해 와해되는 서글픔이 아니라,
마치 그토록 가고싶어 했던 본향으로의 황홀한 귀환과 같다.
어쩌면 시인에게 있어서 암울한 현실은 언제나 면역 결핍의 영역이다.
오히려 시인의 고향은 삶 저편의 신성한 숲일런지도 모른다.

이런 의미에서 철학자 쉘러는, 순수한 정신은 세계에 침투해 들어가기 어렵다고 말한다.
바로 하늘의 문화가 숨쉬는 시인의 정신에 있어,
오히려 세계는 잔혹한 여정이었을 것이고,
죽음은 오히려 곱게 다가오는 구원의 빛일런지도 모른다.

칼 구스타프 융(Carl Gustav Jung, 1875-1961)도 마찬가지이다.
융은 우리네의 삶의 진정한 의미를 건네 준다.
단지 인간 존재는 육십년의 삶 한줌을 살아가는 서글픈 존재가 아님을 깨닫게 된다.
이런 의미에서 단지 그의 언어는 의학과 심리학의 소독냄새가 엷게 스며들어 있을 뿐,
시인의 시어와 다를 바가 없다.

시인에 있어서 꿈은 현실보다 더 현실적이다.

시인의 꿈이 자명한 현실이듯이, 두말할 나위 없이 융은 꿈 옹호주의자이다.
더 나아가 융은 신화와 전설, 환상과 같은 몽환적 분위기들을 자명한 무게를 지닌
옹근 현실로 인정한다. 이러한 밑그림 위에서 그는 자기(Self)와 자아(ego),
원형(archetype), 집단무의식 (collective uncounsciousness), 그림자(shadow),
아니마(anima), 아니무스(animus), 그리고 개성화(individuation) 라는
새로운 색조들을 가미한다.

융에 의하면, 애초부터 인간은 자신에 대한 지식이 없다는 것이다.
오히려 신화와 전설, 꿈이나 환상이 인간 전체를 드러내는 이미지임을 융은 주목한다.
인간 전체의 중심인 <자기>는 언제나 어두침침하다.
그 수천 해리의 기저에 흐르는 중심인 <자기>를 향해 진지하게 탐구한다는 것은
매우 큰 용기를 필요로 한다. 그러기에 인류는 바로 그 근원에 대한 탐구를
일찌감치 포기해 버렸다고 융은 단언하는 것이다.
지상의 화려한 도시에 영혼이 팔린 우리의 문명은,더 풍요로운 지하의 광맥을
개간하는 작업을 중단해 버린 채 여기에까지 그저 그렇게 밀려왔던 것이다.

양 쪽으로 길다랗게 놓여진 저 포풀러 가로수를 사랑하였던 저 유년시절,
우리 모두는 한여름밤의 아름다운 꿈을 기억한다.
그 아름다움에 숨이 멎은 나머지, 우리는 저 공룡의 도시와 같은 현실로 귀환하기를
애써 발버둥치며 거부한다. 하지만 일상으로의 귀환을 촉구하는 자명종 소리는
단아하게 수놓아진 꿈의 풍경들을 산산히 조각낸다.
어쩔 수 없이, 수면에서 의식의 경계로 진입하는 그 찰나, 우리는 애써 직조한
꿈의 결들을 놓쳐버리고 만다. 단지 온 몸의 땀과 근육의 긴장만 흔적으로
끈적끈적하게 남아있기에, 그 아름다운 꿈을 개꿈이라고, 혹은 악몽이라고 저주하며
침을 뱉어버린다. 마치 아무렇지도 않은 듯 우리는 다시 일상으로 돌아간다.
이미 한 여름밤의 꿈은 바싹 증발해 버린다.

융은 망각의 기능을 상실한 운명의 소유자였다.
그러하기에 꿈의 무덤에 묻혀 있거나 망각의 늪에 고여있는 인간의 다양한 꿈의 조각들을
새로이 깁는다. 왜냐하면 융은 꿈 자체에, 아니면 꿈의 배후에 꿈틀거리는 그 무엇이
있다고 애써 놀라며 직시하였던 것이다. 그것이 융의 매력이다.
융은 꿈에 미미하게 반영된 <자기>의 각양각색의 그림들을 한올 한올 엮어낸다.
그리고 하나의 장중한 그림을 그려낸다.
더 나아가, 그 <자기>의 풍경 - 실로 융에게 있어서 <자기>는 신적인 영역이다 - 은
거부할 수 없는 자명한 현실이고, 오히려 우리의 삶을 온전히 이끄는
중심이라고 강조한다.

물론,우리는 <자기>의 세계를 <자아>의 그물로 온전히 건져낼 수는 없다.
그러나 우리는 <자기>의 세계 위에 이미 서 있다.
그 예표가 바로 불편한 현실에 대한 백색 저항이다.
가난한 대지 앞에 안식을 누릴 수 없는 우리의 마음은 언제나 불안할 뿐이다.
삭막한 대지에 대한 불안은 우리가 근원적으로 <자기>(Self)를 중심에 두고 있기 때문에
아련하게 피어오르는 홍역인 것이다. 그리고 어디론가 끊임없이 나아가려 한다는 것이다.

그것은 이미 싸늘한 대지에 대한 시인의 저항이 신성에 닿아있듯이, 인간의 마음에는
이미 <자기>와 닿아 있음을 말해준다. 이런 의미에서 시인의 노래는 <자기>에서 열리는
목소리이다. 세계에 대한 설명의 한계에 직면할 때에 진정한 시어가 열리듯,
융은 설명 가능한 세계만이 전부가 아님을 말하고 있다.

융은 우리 각자의 生이 매우 소중하다는 점을 강조한다.

모든 인간 심성의 뿌리에는 저 깊은 무의식의 세계, 전체의 세계와 닿아 있다.
그렇다면 각자의 生은 결코 가볍거나 보잘 것 없는 生이 아니다.
오히려 우리의 生은 우주를 닮아 있다.
영원의 세계인 무의식의 현현이 각자의 生인 것이다.
플레로마의 세계에서 클레아투라의 세계로 뛰어든 최초의 사건이 生이다.

우리의 生은 불멸의 무한한 세계가 유한한 세계 속으로 뛰어든 사건이다.
더 나아가 우리의 生은 끊임없는 성숙을 지향하는 존재이다.
그 지향이 바로 '개성화'인 것이다.

우리는 융을 통하여 살아있음(生)이 결코 예사스럽지 않음을 발견한다.
이제 생은 환희이고 생명은 경이로움이다.

하늘을 향해 날개를 펄럭거리며 비상하는 저 새를 보자.
새는 날기 위하여 얼마나 지난한 시간 동안 새가 되려는 꿈을 꾸었을까.
인간은 인간이 되고 싶어서 얼마나 긴 계절을 인간의 꿈을 꾸었을까.
인간은 백 년의 삶을 만나기 위하여 백 만년 동안, 그 한 순간만을 꿈꾸어 온 존재이다.
백 만년 겨울잠의 기나긴 제의를 통하여 우리의 삶은 주어진 것이다.

우리 삶의 밑둥에는 백 만년의 지난한 세월을 견뎌온 뿌리가 있다.
그러기에 우리는 지금 단지 백 년을 사는 삶이 아니다.
우리는 백 만년을 몸으로 살아가는 푸른 생명나무이다.

그 생명나무가 가장 찬연한 열매를 맺는 그 순간, 그 절묘한 순간이 바로 지금의 生이다.
그러기에 生은 저 영원의 빛의 드러남이다.
또한 지금의 生은 자신의 고유한 모습을 구현(Individuation)하기 위하여
끊임없이 어디론가 나아간다. 대지 위에 부유하는 시인의 한 줄기 노래처럼 말이다.

시인에 있어서 인류를 구원하는 길은 시(詩)이듯이,
융은 꿈이 인류를 구원하는 유일한 길임을 우리에게 예언한다.

꿈이란 <자기>와 <자아>가 체험하는 두 지대의 합(合)이다.
그렇기 때문에 꿈은 삶을 회복할 수 있게 해주는 중심의 소리이다.
꿈은 삶의 해리를 통합한다. 도스토예프스키가 "아름다움이 이 세상을 구원하리라!"고
고백하였다면, 융은 "꿈이 이 세상을 구원하리라!"고 지금 우리에게 고백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구원은 꿈을 타고 우리에게 건너오기 때문이다.

바로 융은 우리가 여기에서 안주할 수 없음을 깨닫게 한다.
이제 우리는 더디게, 하지만 차근차근 <자기>로 나아간다.
꿈, 신화와 전설, 환상이 끊임없이 피어오르는 아련한 그 자리,
바로 시인의 마을로 우리는 조금씩 가까이 다가간다.




출처 : 천부동(天符洞)
글쓴이 : 안희선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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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상과 통찰

조로아스터 2017. 4. 11. 13:07

[국회in]제윤경 더불어민주당 의원, "봉건적 금융구조가 가계빚 주범, 채권자도 책임 물어야"

[머니투데이 더리더 홍세미 기자] [[국회in]제윤경 더불어민주당 의원, "봉건적 금융구조가 가계빚 주범, 채권자도 책임 물어야"]

▲제윤경 더불어민주당 의원

‘가성비’ 따지는 시대. 가격 대비 성능이라는 뜻인 가성비는 2017년 젊은 세대의 유행어다. 내가 투자한 가격 대비 최대의 효과를 누리겠다는 뜻이다. 10년 전 우리 사회의 트렌드를 주도한 것은 ‘웰빙(well-being)’이다. 가격보다는 질을 따지는 웰빙은 삶의 질 향상을 목표로 한다. ‘질’에 초점을 맞추는 웰빙과 가격을 우선 생각하는 가성비, 우리 사회가 어떻게 변했는지를 알려주는 단면이다.

서민의 삶이 퍽퍽해진 것은 통계가 증명한다. 가계 부채는 약 천 삼백조로 역대 최대치를 기록한다. 정부의 잘못된 정책이 원인이라는 의견이 제기됐다. 제윤경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박근혜 정부 때 펼쳤던 부동산 정책이 결정적이었다고 주장했다. 주택담보인정비율(LTV)과 총부채상환비율(DTI)은 ‘빚내서 집 사라’는 신호였다. 이 정책이 시행되기 전인 2014년 2분기 1,050조원이었던 가계 부채 규모가 지난해 말 1,344조원으로 약 300조원 급증했다고 밝혔다.
제 의원은 ‘책임 대출’을 주장한다. 채무자가 돈을 갚지 못한다면 자본주의 원칙에 따라 채권자에게도 책임을 물어야 한다는 의미다. 제 의원은 우리나라 사회구조는 ‘봉건적’이라고 비판했다. 채권자는 아무런 책임을 지지 않기 때문이다. 제 의원이 원내에 입성한 이유는 ‘봉건적 구조’를 깨기 위해서다. <더리더>는 현재 가계 부채가 얼마나 심각하고 어떤 해결책이 있는지 묻기 위해 지난달 20일 제윤경 의원실을 찾았다.

-‘가성비’ 바람이 불고 있다. 서민 경제는 얼마나 어려워졌나
서민들의 불안이 고조됐다. 10년 사이 부의 양극화가 굉장히 심화됐다. IMF 극복 후 참여정부 들어서서 경제가 다시 제자리로 돌아와야 했는데 오히려 비정규직법이 통과되면서 노동시장이 불안해졌다. MB•박근혜 정부 들어서는 중산층도 불안이 고조됐다. 국가적 위기도 아닌데 중산층이 어려워졌다. 노동자들이 국가 경제 살리겠다고 양보한 측면이 많다. 양보해서 경제 수준이 올라간 게 저소득층으로 돌아가지 않고 소수 재벌과 기득권 부의 확대로 옮겨갔다. 국민 주머니 털어서 소수 주머니 채워주는 꼴이다. 이런 양극화는 자본주의 상징인 미국보다 심하다. 저소득층은 극단적인 생계난에, 중산층은 빚더미에 겨우 현상 유지하는 수준이다. 미래가 불안할 수밖에 없다.

-제 의원은 '우리나라 서민들이 빚 갚기 특히 어렵다'고 말했다. 왜 우리는 빚 갚기 어려운 구조인가
가장 큰 문제는 금융구조다. 우리나라 금융구조는 봉건적이라고 생각한다. 사회계약에서 ‘갑’과 ‘을’은 공동책임이 있다. 그런데 금융권에서는 갑은 아무런 책임이 없다. 공정한 자본주의가 아니다. 채무자가 돈을 갚는 것에 대한 약속을 지키지 못한다면, 채권자에게도 책임이 있는 것이다. 갑과 을이 갈등을 빚으면 채권자는 더 많은 법률적인 시스템을 갖추고 있다. 정보 비대칭이다. 채권자가 채무자보다 더 큰 책임이 있어야 한다. 돈을 빌려주는 과정에서 채무자의 상환 능력을 더욱 꼼꼼하게 따졌는지 봐야한다. 빚을 갚지 못하는 사람에게 20~30년 동안 따라다니면서 받아낸다. 채무 노예화하고 있는 것이다.

-가계 부채가 생길 수밖에 없는 사회 구조적인 이유는 무엇인가
일단은 정부 정책 자체가 ‘빚 권하는 사회’다. 정부는 모든 것을 빚내서 하라고 한다. 빚내서 집 사고, 대학도 학자금 대출로 다니라고 한다. 정부가 절대 하면 안 되는 것 중 하나는 금융정책이라고 생각한다. 위험한 정책을 펼쳤다고 한다. 차기 정부가 끌어안아야 할 부담이다. 보통 수요에 의해서 가격이 결정된다. 우리가 지불할 능력에 따라 가격이 형성돼야 한다는 의미다. 그런데 대출이 너무 빈번하게 일어나니 가격형성이 왜곡됐다. MB•박근혜 정부 때 확 뛴 부동산 가격이 그 증거다. 사람들이 무리해서 대출받아 집을 사니 악순환이 됐다.

-최근 4년간 고금리 대출을 받는 사람 절반 이상이 ‘여성과 청년’이라고 밝혔다. 여성과 청년이 왜 고금리 대출에 손을 댈까
일단 TV에서 나오는 광고 때문이다. 접근하기 쉽다. 3~4년 전부터 대부업 광고는 여성과 청년이 타깃이었다. 청년이 나와 고금리 대출을 받은 다음 데이트를 한다든지, 힘들면 돈 빌려서 택시를 타라든지, 대출 심사 떨어지는데 여성만 무조건 대출 가능하다든지, 사회 초년생이나 여성을 노리고 있다. 이들은 왜 여성과 청년을 타깃으로 잡을까. 이들은 추심에 겁을 잘 먹는다. 즉 상환율이 높다. 그러니 이 둘을 타깃으로 광고한다. 대부업 광고 자체를 금지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산와 대부를 비롯, 대부업체는 대부분 일본계 자금이다
대부업체는 부가기준이 애매해 부가세를 내지 않는다. 법인세야 내겠지만 면세사업자라 세금을 많이 내지 않는다. 우리나라에서 판 깔고 금융업을 하는 사람들이다. 규제를 까다롭게 해야 한다. 국회의원이 되고 난 후 대부업체에 대해 알아봤다. 법은 안중에도 없는 것처럼 회사를 운영한다. 우리나라를 너무 만만하게 보는 것 같다. 말도 안 되는 고금리 사업을 하도록 내버려두는 정부가 이해가 쉽게 가지 않는다.

-제 의원은 기본소득에 대해 이야기한다. 지금 왜 논의해야 한다고 생각하나
우리 사회는 정말 위험하다. 국회의원이 되기 전 저소득층 상담하는 일을 했다. 21세기에 그 정도로 가난하게 살 것이라고 생각 못할 정도였다. 특히 중요한 것은 복지 사각지대다. 복지 사각지대에 놓인 사람들은 국가에게 자신이 가난하다는 ‘증명’을 해야 한다. 그게 쉽지 않다. 기본소득은 근로능력이 있는 사람에게 돈 퍼주는 게 아니다. 우선은 모든 국민에게 주자는 게 아니다. 29세 이하, 65세 이상, 그리고 농어민과 장애인에게 기본소득을 주자는 것이다. 그런 사람들에게 증명 없이 일괄 지급해야 모두가 사회안전망에 대한 믿음이 생기지 않겠나. MB정부 때는 4대강에 24조 원을 쏟았다. 사람 삶이 불안정해서 주는 돈이다. 이렇게 안전망을 만드는 게 국가의 몫이라고 생각한다.

▲제윤경 더불어민주당 의원

-제 의원은 가계 부채 탕감에 대해서도 이야기한다.
▶사실 가계 부채를 탕감하는 것은 세금도 들지 않는다. 은행이나 금융권에서 이미 포기한 채권들을 공기업인 캠코가 10년, 20년 동안 따라다니면서 걷는다. 가난한 사람에게도 계속 추심한다. 그만 한다고 해도 아무도 손해 보지 않는다. 국민건강보험도 마찬가지다. 체납된 사람들은 건강보험 보장도 못 받는다. 보장도 못 받는데 돈을 내라고 한다. 서민은 억울하다. 우편함을 쳐다볼 수도 없다고 한다. 주민등록번호 말소되는 사람도 늘어나고 있다.

-세금 낸 사람들이 상대적으로 억울하다고 느낄 수 있다
빚을 갚지 못하는 사람에게도 계속 갚으라는 것은 봉건적 의식이다. 갚을 능력이 안 되니까 알아서 하라는 건 국가가 할 일이 아니다. 내가 지금 상황이 어려운데도 빚을 계속 갚는다고 하면 끝까지 내몰리는 것이다. 그런 사람에게는 그만 추심해야 한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사람의 삶의 질이다. 또 채무자를 보호하지 않으면 도덕적 해이가 생긴다. 이미 우리 사회가 대출하는 게 당연하고, 갚는 게 불가능한 사회다. 이미 도덕적 해이는 만연하다고 할 수 있다. 이게 악순환 될 수 있다. 빌리고 갚지 않으면 금융권은 어려워진다. 빚을 탕감해주는 것은 좋은 시그널이 될 수도 있다. 혹시라도 나에게 불운이 닥쳐서 빚을 못 갚는 상황이 된다면 나도 저렇게 사회의 도움을 받을 수 있다는 메시지를 줄 수 있다. 실패해도 잔인하지 않는 사회가 돼야 자본주의가 순환된다. 실패를 무릅쓰는 사회여야 창조적인 환경이 만들어진다. 미국의 실리콘밸리에서도 창업 실패 경험이 평균 2.8회라고 한다. 우리나라에서 그랬다면 이미 추심당하고 있다. 어떤 게 더 생산적인지 국가 지도자가, 또 사회가 생각해야 한다.

-국회의원이 돼보니 어떤가, 시민단체 있을 때와 다른 점이 있다면.
시민단체에 있을 때는 정말 힘들었다. 아무리 이야기해도 법안 자체를 국회의원들이 받지 않았다. 국회의원이 되고 난 뒤에는 자료요청도 수월하고, 고급 데이터를 받아볼 수 있다. 우리가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채권자에게 갑이 될 수 있는 것 아닌가. 서민 괴롭히는 사람에게는 갑질 해서 정의를 찾고 싶다.

-심리학과를 졸업했는데 경제전문가가 됐다. 정치에 입문한 계기가 있다면
사실 나에게 경제통이라고 하는 것은 조금 부담스럽다. 남들처럼 경제학을 전공하지도 않았다. 그렇지만 누구보다 서민 곁에 있었다고 자부한다. 경제전문가까지는 아니지만 ‘가계전문가’라고 할 수 있겠다. 서민이 어떤 어려움이 있고, 실질적으로 개선하기 위해서는 어떤 법안이 만들어져야 하는지 실무에서 배웠다고 해야 할까. 재무설계 회사에서 저는 상담방법론을 설계했다. 결과를 가지고 보통 서민경제가 어떤 재무구조인지 들여다봤다. 해결책을 만들어 나가는 과정에서 공부하다 보니까 현장 속의 사람들에게 경제를 배운 것이다. 국회의원이 되고난 뒤 법안 발의 할 때 그런 실무적인 경험이 도움된 것 같다.

-정계에 입문한 계기는 어떻게 되나.
20대 총선을 앞두고 영입 제안이 왔을 때는 거절했었다. 한 달도 안 되서 다시 비례대표로 신청했다. 내가 부족해서 거절한 자리인데, 생각해보니 우리나라 문제 중 심각한 것은 가계 부채 문제다. 상당히 많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이 문제 해법을 현장에서 찾고 그 분야만 집중적으로 고민해왔던 사람에 대한 수요가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이재명 성남 시장이 주빌리은행장이다. 나에게 국회에 들어가서 제도적으로 바꿨으면 좋겠다고 이야기했다. 현장 경험을 갖고 있는 사람이 아니면 주장하는 바를 제도화하는데 어렵다. 밖에서는 한계가 있으니 직접 했으면 좋겠다고 해서 비례대표를 신청하게 됐다. 사실 안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번호를 후순위로 예상했다.

-20대 국회에게 바라는 게 있다면 무엇인가.
시스템이 바뀌었으면 좋겠다. 행정부의 권한이 너무 많다. 국회에서 법을 발의하면 행정부에서 심사하는데, 그러면 입법권이 행정부에게 있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국회의원 위에 전문위원이 있다'는 말까지 돈다. 파견된 행정부 소속 전문위원이 국회의원이 발의한 법안 소견서를 잘못 써주면 소위에서 논의 자체가 되지 않는다. 국회의원이 전문위원 눈치 보는 것도 있다. 또 법안 소위는 표결로 이뤄지는 게 아니고 대부분 만장일치다. 서로 민감한 법안은 논의도 하지 않는다. 시스템 때문에 입법 성과가 낮을 수밖에 없다. 국회에 들어오기 전에는 몰랐다. 법안 발의 후 논의가 안 되니 세금 낭비하는 구조라는 생각도 든다.

▲제윤경 더불어민주당 의원

제윤경 더불어민주당 의원
1971년 7월 25일 출생
한겨레이앤씨 재무컨설팅 사업본부 본부장
에셋비 교육본부장
에듀머니 대표이사
희망살림 상임이사
주빌리은행 상임이사
제20대 국회의원 (비례대표/더불어민주당)

▶본 기사는 입법국정전문지 더리더(the Leader) 4월호에 실린 기사입니다.
홍세미 기자semi4094@mt.co.kr

홍세미 기자

 
 
 

사상과 통찰

조로아스터 2017. 1. 14. 19:07

3계라 함은 <욕계 .색계 .무색계>를 가르키는 말


    1.욕계는 6욕천(지옥. 아귀. 축생. 아수라. 인간 .천상)에 사는 세계.


      다섯 가지 욕락이 존재하며, 윤회하는 세계

      괴로움이 바다처럼 끝이 없기 때문에 고해라고 하죠.

      탐욕이 많아 정신이 흐리고 거칠며 물질에 속박되어
      가장 어리석은 중생이 사는 세계.

      그중 인간으로 태어난 것만해도 어렵다.

      인신난득(人身難得)이라 하여, 사람 몸 받기가 결코 쉽지 않다는 거

      (그래서 금생에 이 몸 닦지 않으면, 다시 어느 생을 기다려 닦을 것인가 하는 말이 있음) 
     
      6욕천 천상에는 천신의 형태로 산다. 욕락을 누린다. 욕계중 가장 높은 곳

      욕계의 6욕천에는 4왕천 도리천(33천) 야마천 도솔천 화락천 타화자재천이 있다고 함


   2. 색계는 욕계보다 위에 있는 세계.


      선정에 의해 욕망은 제거 되었지만 육신과 같은 물질이 아직 남아 있어
      완전히 자유롭지 못한 세계.
      물질의 지배를 아직 완전히 벗어나지 못한 중생들이 산다.
      비교적 밝은 세계. 빛깔과 형체를 가지고 산다.
      남녀의 구별이 없고 몸에 걸치는 옷 같은 건 저절로 생겨나며
      빛을 먹고 빛으로 언어를 삼는다.

      천인이 거주하는 곳. 윤회한다.

      무색계와 같이 완전히 정신적인 것은 되지 못함.(18천이 있다.견해는 여러가지)


     초선천---범중천 범보천 대범천 (3천)

      2선천----소광천 무량광천 광음천 (3천)

      3선천----소정천 무량정천 변정천 (3천)

      4선천----무운천 복생천 광과천 무상천 무번천 무열천 선견천 선현천 색구경천 (9천)

      4선정에 들면 행복과 괴로움을 버리고 기쁨과 슬픔이 소멸. 捨念(사념)청정에 들어 마음 평온.


  3.무색계는 색계보다 위에 있다.


    물질세계 초월함.
    4무색정을 닦은 사람이 태어나는 천계.
    모두 남성상(像)을 취하지만, 물리적 생식기 따위는 없다.
    물질을 여의고 욕망과 형상도 없이 정신적으로만 이루어져 사는 세계.
    깨끗한 중생이 사는 세계.
    육신의 굴레마저도 완전히 뛰어넘어 자유자재한 세계.

    탐욕과 성냄이 떨어져 물질의 영향을 받지 않지만
    아직 나라는 생각(아상 我相)을 완전히 버리지 못해
    정신적으로 걸림이 남아있는 세계.

    형색은 없고 수 상 행 식 4온만 있다.윤회한다. 4무색천이 있다.

       1.공무변처천 -----공이 무변하다는 이치를 알고 태어나는 천계.공의 진리가 무변하다.

                         몸도 우주도 공함을 관찰. 마음이 허공과 같이 끝이 없는 것을 체험.

       2. 식무변처천 ----식의 세계가 무량무변함을 깨달음.의식도 느낌도 텅비어 소멸하게 됨.

                         식이 3세에 걸쳐 끝이 없다고 본다.

       3. 무소유처천-----아무 것도 없다는 경지에 들어감.
 
                         본래 얻을 바가 없음을 성취. 모든 것이 텅비어서 얻고 구하는 것이 없다.
                         한 생각도 걸림이 없음.공심을 져버리지 않음.

       4.비상비비상처천---생각도 아니고 생각 아닌 것도 아닌 경계.

                          항상 여여함.미세한 번뇌까지도 정화함.
                          멸진정:수(느낌) 상(생각) 식(의식)의 작용이 없어짐.


    욕계보다 색계나 무색계는 정심(선정3매)에 들어가 흩어지지 않는 마음의 경지임.

    욕계보다 우위에 있다. 천인으로 태어남.

    그러나 이 무색계가 최종의 단계는 아님


    3계를 벗어 나려면 일체 마음의 미혹에서 벗어나야 한다.

    깨달음을 얻어 해탈해야 한다.그래야 다시 태어나지 않는다.- 이른바, 부처의 경지

    3계는 윤회의 과정에 있는 고해라는 점에서 동일하다는 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