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화와 고대사

조로아스터 2018. 3. 22. 21:07
 

복희와 여와 ...                                   

 

복희와 여와는 동아시아 신화에서 중국과 우리 민족을 아우러는 문명을 창조한 신이다. 


사기(史記)를 비롯한 중국의 낡은 역사책에는 삼황오제 후에 하, 은, 주라는 3개의 세습왕조가 교체되었다는 기록이 있다. 여기서는 어디까지가 신화시대이고 어느 때부터가 역사시대인지 그 경계가 아직도 분명치 않다.


그러나 3황 5제는 틀림없이 신화시대일 것이다 3황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설이 있으며 복희, 여와, 신농의 세 사람을 3황으로 삼는 것이 가장 보편적이다.



복희씨


복희씨와 여와

돈황(투르판) 박물관에 복희씨와 여와


국립중앙박물관(복희씨와 여와)


복희는 8괘(卦)를 만들고 글자도 만들었으며 혼인제도를 정하고 그물을 꼬아서 어업을 가르치고 소·양·돼지 등 가축을 길렀고 35줄로 된 '슬'이란 악기를 만들었다. 인류가 자연적으로 습득한 모든 것을 어느 고대 성인이 가르쳤다고 하는 소위 인간주의의 발로라고 생각할 수가 있을 것이다.


여와는 복희의 제도를 고치지 않고 단지 생황이라고 하는 악기를 만들기만 했다는 것이다. 그리고 두 손에 컴퍼스와 자를 가지고 있는 것으로 보아 토지 창조의 신이기도 하다. 복희의 제도를 고치지 않았던 것은 당연하며, 여와와 복희는 부부 신이라고 생각하는 일이 많다.


신농은 우수인신으로 나무를 잘라서 쟁기를 만들고 사람들에게 농경 방법을 가르쳤다. 또한 백가지 나물을 맛보아 의약을 발견하고 시장을 열어서 물물교환 하는 일도 가르쳤다. 일본에서도 신농은 의학의 신이며 또한 노점상인의 수호신이 되어 있다.


중국인은 황제를 민족의 시조로 삼고 있으며 아직도 자기들을 황제의 자손이라고 칭하고 있다. 사기(史記)의 오제본기는 황제로부터 시작된다. 황제 뒤에 전욱 고양제(高陽帝), 곡 고신제(高辛帝), 요제, 순제로 이어진다.


중국인들이 시조로 삼고 있는 황제에 의한 건국 신화의 줄거리는 다음과 같다. 황제는 판천의 들과 탁록의 들에서 치우천황과 큰 싸움을 한 것으로 되어 있다.

(여기서 문제는 치우천황을 이야기를 하자는 것이 아니다. 이해 하길 바란다.)

 

황제는 곰과 호랑이 군대와 힘을 합쳐 요슁(有態) 지방에 통일국가를 건설한다. 황제는 쿤륜산에서 300살까지 살다가 하늘로 올라가 옥황상제가 되었다.



복희씨(伏羲氏) 출생에 관한 신화 1...


중국 서북쪽 수천만 리 되는 곳에 '화서씨(華胥氏)의 나라'라고 하는 나라가 있었다. 어찌나 멀리 있는지 걸어서든 말을 타든 배를 타든 결코 갈 수 없는 곳이다. 다만 마음으로만 갈 수 있는 나라였다. 이곳은 그야말로 극락으로 부를만한 나라였다. 


정부나 통치자도 없고, 백성들도 욕망이나 욕심이 없이 모든 것을 자연에 따르기만 했다. 사람들의 수명이 길었고 아름답고 즐거운 생활을 하고 있었다. 그곳 사람들은 물속에 들어가도 빠질 염려가 없었고, 불 속에 들어가도 타질 않았다. 공중에서도 땅을 딛은 듯이 걸을 수 있었으며, 구름과 안개도 그들의 시선을 가리지 못했다. 인간과 신의 중간쯤 되는 사람들만 사는 반신반인(半神半人)의 나라였다.  

이 낙원에 이름은 없고 그저 '화서씨'라고만 불리는 아름다운 소녀가 있었다. 하루는 그녀가 동쪽에 있는 나무가 우거지고 경치가 아름다운 뇌택(雷澤: 번개신의 집)이라는 호수가에 가서 놀고 있었다. 그녀는 우연히 물가에 찍혀있는 한 거인의 발자국을 보게 되었다. 이상하기도 하고 재미있기도 해서 소녀는 자신 발로 거인의 발자국을 밟아보았다. 그러자 기인한 느낌이 들었다. 그녀는 곧 임신을 하게 된 것이다. 얼마 후 사내아이를 낳게 되었는데 그가 바로 복희
(伏羲)였다.


뇌신(雷神)의 아들로 태어난 복희
(伏羲)는 봄(春)을 다스리는 동방의 상제가 되어 인류에 지대한 공헌을 하게 되었다. 그는 수목의 생장을 주관했는고, 번개가 나무에 떨어지자 불이 일어나는 것을 본 후, 인간에 처음으로 불 사용법을 알려주었다. 이 불로 동물을 익혀 먹게 하자 사람들은 배탈이 나지 않았다. 또 불로 고기를 굽게 하였으므로 사람들은 그를 포희(羲)라고도 불렀다. 그러자 그의 신하 망씨(芒氏)는 그물로 새 잡는 법을 고안 해냈다.


또한 복희는 팔괘(八卦)를 그려 세상 만물을 표시할 수 있게 해주었다. 건(乾 )은 하늘을 대표하고, 곤(坤)은 땅을 대표하며, 감(坎)은 물을, 리(離)는 불을, 간(艮)은 산을, 진(震)은 천둥, 손(巽)은 바람, 태(兌)는 연못을 대표한다. 이때부터 사람들은 세상이 어떻게 생겼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일상에서 발생하는 일들을 기록할 수 있었다고 한다.


복희씨에게는 복비(宓妃)라고 하는 예쁜 딸이 있었는데 어느날 낙수(洛水: 현 낙양에 있는 강)를 건너다가 그만 물에 빠져 죽어 낙수의 여신이 되었다. 



"복희" 인류를 재탄생하다. 2...

어느 날 하늘의 뇌공(雷公)이 노하여 인간 세상에 엄청난 재해를 가져다 주는 비를 뿌렸다. 이때 어느 한 사내가 큰 재앙이 곧 닥치라는 것을 예감하였다. 그는 쇠스랑과 쇠철장을 미리 만들어 놓고 처마 밑에 서서 누군가를 침착하게 기다리고 있었다.

 하늘에 먹구름은 점점 짙어지고 천둥소리가 연이어 들리더니, 번개가 치고 무너져내리는 듯한 큰 우뢰소리가 들려왔다. 곧이어 푸른 얼굴의 뇌공이 손에 도끼를 들고 지붕에서 날아 내려왔다. 뇌공의 눈은 사납게 빛나는 광채를 내뿜고 있었다. 이를 조금도 두려워하지 않은 사내는 재빠르게 쇠스랑을 휘둘러서 단번에 뇌공의 허리를 찔렀다. 그리고 쇠철장 속에 넣어서는 집안으로 가지고 들어갔다. 

사내는 재해를 가져다주는 뇌공을 죽여 젖갈을 담기로 했다. 그래야 더 이상의 재앙이 없기 때문이다. 향료를 구하기 위해 집을 나서면서 아이들에게 뇌공을 잘 지키라 했다. 그리고 절대로 물을 주어서는 안된다고 당부했다. 사내가 떠나자 뇌공은 거짓으로 신음하는 척하며 고통스런 모습을 지어보였다. 아이들이 달려와 왜 신음을 하느냐고 물었다. 뇌공은 목이 마르므로 물 한그릇만 달라고 사정을 했다.

남자아이는 절대 줄 수 없다고 잘라 말했으나, 여자아이는 너무 가여워 물 몇 방울을 뇌공의 입속에 넣어주었다. 그러자 뇌공은 쇠철장을 뚫고 땅이 무너지는 듯한 큰 소리를 내며 하늘로 날아올랐다. 아이들이 놀라자 뇌공은 급히 이빨 하나를 뽑아 아이들에게 주며 말했다. "어서 이것을 땅속에 심어라. 만일에 재난을 당하게 되면 거기서 열린 열매 속에 숨어라." 말을 마치자 뇌공은 우르릉거리는 천둥소리와 함께 하늘로 높이 날아가 버렸다.

집에 돌아온 아빠는 뇌공이 도망친 것을 보고 곧 재난이 닥쳐오리라는 것을 예감했다. 급히 쇠로 된 배 한 척을 만들었다. 아이들도 뇌공이 준 이빨을 땅속에 묻었다. 그러자 새싹이 솟아나더니 쑥쑥 자라나서 단 하루 만에 꽂이 피고 열매를 맺었다. 열매를 따서 반을 가른다음 속을 모두 파내자 두 아이가 누워있을 만한 호리박이 되었다.

바로 그때 날씨가 갑자기 변하더니 스산한 바람이 불기 시작하고 곧 어두운 하늘에서 미친 듯이 비가 쏟아져 내렸다. 땅에는 물이 넘쳐 홍수가 나서 집이고 산이고 모두 물에 잠기었다. 아이들은 호리박 속에 숨었고, 아빠는 자신이 만든 쇠배 속에 올랐다. 


높게 넘실거리는 파도를 타고 이리저리 표류하게 되었다. 홍수는 갈수록 심해져 물길이 하늘까지 닿았다. 하늘의 문에 이르게 된 사내는 뱃머리에 선채 문을 탕탕 치며 문을 열라고 소리쳤다. 그 소리에 놀란 천신(天神)들은 놀라 급히 수신(水神)에게 물을 빼라고 명을 내렸다.

수신(水神)이 명령대로 행하자 순식간에 비바람이 멈추고 홍수가 끝나 물이 빠지기 시작했다. 갑작스럽게 물이 빠지자 사내와 아이들은 하늘에서 땅에 떨어지게 되었다. 쇠배를 탄 아빠는 급히 떨어지는 바람에 배가 산산조각이 나면서 죽고 말았다. 


그러나 아이들이 탄 호리박은 부드럽게 천천히 떨어지면서 한 군데도 다치지 않았다. 하늘까지 차오르던 홍수가 한바탕 휩쓸고 지나가자 대지 위에 살던 인류는 모두 죽어버렸다. 두 아이만 살아남게 되었으니 유일한 생존자였다. 


그들 둘에게는 본래 이름이 없었으나 호리박 속에 살아남았다고 하여 이름을 복희(伏羲)라 하게 되었다. 복희란 포희(匏羲) 즉 호로(瓠蘆)를 뜻한다. 그래서 남자아이는 복희가, 여자아이는 복희매라 했으니, 바로'호리박 오빠' '호리박 누이'라는 뜻이다. 


비록 대지에서 인류가 사라져버렸으나 이들 남매들은 열심히 일하면 즐겁고 걱정없이 살았다. 시간이 유수같이 흘러 어느덧 그들은 모두 어른이 되었다. 오빠는 동생과 결혼하고 싶었으나 동생은 친형제끼리 결혼할 수 없다며 원치 않았다. 그러나 오빠가 자꾸자꾸 원하니까 동생도 거절만 할 수가 없어서 둘은 결국 결혼하여 부부가 되었다.

 부부가 된지 얼마 되지 않아 동생은 둥근 공처럼 생긴 살덩어리를 하나 낳았다. 기이하다고 생각된 그들은 하늘나라로 가서 천신께 여쭈어 보려고 하였다. 당시에는 하늘과 땅의 거리가 그리 멀지 않아 하늘 사다리를 타고 올라갈 수가 있었다. 중간쯤 올라갔을 때 갑자기 바람이 불면서 살덩어리가 찢어지더니 사방으로 흩어지기 시작했다. 그것들이 땅에 떨어져 모두 사람이 되었다. 나뭇잎에 떨어진 것은 '엽(葉)씨' 성을 갖게 되었고, 나무 위에 떨어진 것은 '목(木)씨' 성을 갖는 등, 살덩어리들이 떨어진 곳의 사물 이름을 성으로 삼게 되었던 것이다. 

이렇게 하여 인류가 다시 생겨나게 되었으며, 복희 부부는 인류를 다시 만든 시조가 되었다. 반고가 인류의 시조가 되었던 것과 비슷해서 복희가 반고일 가능성이 있다는 주장도 있다. **



여와


인간창조의 신. 천지가 개벽한 이래, 산과 냇물 초목, 새와 짐승들 벌레와 물고기까지 생겨났지만, 아직 인류만은 없었다. 그래서 대신 여와는 생각 끝에 몸을 굽혀 땅에서 황토를 파내었다. 그리고 그것을 물과 섞어 둥글게 빚어 인형과 같은 작은 모양을 만들었다. 이것을 땅에 내려놓자 곧 살아 움직였는데 이것이 인간이다. 인간의 체구는 비록 작았지만 신의 모습을 닮았다. 여와는 자신의 창조물에 만족해하며, 계속해서 손으로 물을 섞어 황토를 반죽하여 수없이 많은 남자와 여자를 만들어냈다.


그녀는 인간들을 대지에 가득 차게 하고 싶었지만 대지가 너무 넓어 뜻을 이루기도 전에 지쳐버렸다. 만들다가 싫증이 난 그녀는 인간창조를 좀 더 수월하게 하기 위해서 한 가지 꾀를 생각해냈다. 우선 물렁물렁하게 반죽이 잘 된 흙 속에 거칠게 꼬인 새끼를 집어넣고 그것을 뒤죽박죽이 되도록 잘 휘저은 다음 적당한 때를 보아서 새끼를 획 잡아 당겼다. 그리고 그 새끼 끝에서 뚝뚝 지상에 떨어져 내리는 진흙덩이는 모두 그대로 인간을 만들어 버렸다. 이렇게 귀찮다고 대량생산한 인간은 역시 하나하나 손끝으로 정성들여 만든 인간보다는 자연히 그 작품이 좋지 못했다. 그래서 인간 가운데 부귀한 자와 빈천한 자가 생겨난 이유는 바로 이 때문인 것이다.


기나긴 중국의 역사를 특색 짓는 사회계급의 분화와 인구과잉의 현상을 설명하는데 있어 이 얼마나 기발한 인간창조의 설화인가.


인간창조와 함께 여와가 이룩한 대사업은 보천(補天), 즉 천공을 보수하는 사업이다. 어느 날 수신(水神)인 공공(共工)과 화신(化神)인 축융(祝融)이 큰 싸움을 한 끝에 싸움에 진 공공이 너무나 속이 상해서 그만 자기 머리를 부주산 (不周山)에 부딪쳤다. 부주산 꼭대기에는 하늘을 떠받드는 하늘기둥과 대지를 이어 매는 땅 줄이 있었는데 공공이 난폭한 짓을 한 덕분에 하늘기둥이 부러지고 땅 줄이 끊어져서 하늘은 서북으로 땅은 동남으로 기울어져 버렸다.


구멍이 뚫린 하늘로부터는 큰비가 쉴 새 없이 쏟아지고 하천은 대홍수로 범람하여 산림이 서식하고 맹수와 흉조들이 발악을 하며 뛰쳐나와 인간을 마구 잡아먹으려는 등 큰 소동이 벌어졌다. 그것을 본 여와는 급히 강 속에서 오색 돌을 따서 불에 녹여 반죽을 한 다음, 하늘에 뚫린 큰 구멍을 막았다.


그리고 바다 가운데 사는 거대한 거북의 네 발을 잘라 부러진 천주의 대신으로 삼고 또 물가에 난 갈대를 베어 모아서, 그것을 태워 그 재를 쌓아 범람한 강물을 막았다. 맹수와 흉조도 모두 때려잡아 겨우 지상의 평온을 되찾았다. 그러나 천지가 기울어진 것은 완전히 고치지 못했으므로, 지금도 중국 대륙은 서북과 동남으로 기울어진 그대로이며, 홍수가 또한 때때로 사람을 괴롭힌다고 한다. 또 그녀는 인류를 위하여 혼인제도를 만들어 내고, 생황(笙篁)이라는 악기를 만들었다고도 한다.


중국의 천지창조 신화에 등장하는 남신인 복희와 여신인 여와를 주제로 한 그림이다. 아스타나 무덤에서 이와 같은 그림은 주로 천정이나 시신 옆에서 발견된다. 복희와 여와는 상반신은 사람 모습을 하고, 각각 손에는 창조의 상징물인 구부러진 자(曲尺)과 컴퍼스를 들고 있다. 뱀과 같이 생긴 하반신은 서로 꼬여 있어 조화로운 결합을 보여준다. 배경에는 해, 달, 여러 별들이 표현되어 있어 세계 또는 우주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인물의 얼굴이나 손 등을 음영법(陰影法)을 사용한 것이 눈에 띤다. 아스타나에서 발견되는 복희와 여와의 그림은 대체로 비단에 그려져 있으나, 이 작품은 마에 그려져 있어 주목된다. 또한 선명한 색과 균형 잡힌 구도가 돋보인다. 중국의 전통적인 소재가 중앙아시아에 전해져 이 지역 특유의 표현 방식 속으로 재구성된 모습을 잘 보여준다.

 

뱀모양에 하반신은 그들의(중화인) 조상이 "용"을 믿었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우리 조상들은 "봉황"이다. TV 사극에 보면  "삼족오"를 깃을 들고 나오는 것을 많이 보았을 것이다. 바로 우리 조상들이 하늘에서 내려 왔다고(천손사상) 믿기 대문이다. 하늘과 우리가 사는 지상..세상에 연락을 삼족오가 해 줬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민족은 "봉황족"이고 중화인들은 "용족"인 것이다.

 

                                               중국 감숙성 천수 복희 묘의 복희 그림

 

     중국 감숙성 천수 복희 묘의 복희 그림

 

        인두용신인 복희와 여와        창조신 복희와 여와(伏羲女媧圖), 국립중앙박물관

 

 

            

투르판(吐魯番).  아스타나(阿斯塔那).                            복희와 여와

                                                              복희와 여와, 돈황석굴 

 

               

 

                                                                  투르판 아스타나

 

                                                화상전의 복희와 여와, 국립중앙박물관

     복희(일신)와 여와신(월신), 고구려 고분, 지안 5괴분 제5호묘, 6세기

                                                      석관에 새겨진 복희와 여와도  

 

 

 

 

 

 

출처 : "세미신선의 반도원(蟠桃園)의 꿈..
글쓴이 : 세미신선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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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화와 고대사

조로아스터 2018. 2. 17. 23:59

여러분은 이 글을 읽는 순간 아마도 전율과 두려움을 느끼실 줄도 모릅니다. 왜냐하면, 미의 여신인 아프로디테(Aphrodite)와 그의 아들 에로스의 시기와 질투를 받고 바로 험한 세상에 버려질지도 모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저는 아름답고 순수한 영혼의 신부, 프시케(Psyche)의 비밀을 전격 공개합니다. 이 비밀을 공개하는 순간 저는 위험에 처할지도 모릅니다. 에로스가 달려와 그의 화살로 저의 가슴을 쏘아버리려고 할 테니까요.

 

 

 

프시케는 그리스어로 '나비'라는 의미와 '영혼'이라는 의미가 있습니다. 나비는 기나긴 애벌레의 어두운 고난을 겪고 난 후 비로소 아름다운 날개를 파닥이며 밝은 세상으로 나옵니다. 따라서 나비는 영혼불멸의 예시로서 많은 사상가와 문학가들에게 영감을 주었습니다. 예술작품 속에서의 프시케는 나비의 날개를 단 처녀로서 아름답게 묘사되고 있습니다.

 

옛날 어느 나라의 공주로 태어난 프시케는 너무도 아름다웠습니다. 그녀의 소문은 멀리 퍼졌고 많은 사람이 그녀의 아름다움을 칭송하였습니다.

 

미의 여신 아프로디테는 시기와 질투로 그의 아들 에로스에 프시케를 징벌하도록 명했습니다. 그러나 에로스는 그녀의 아름다움에 반해 오히려 사랑에 빠졌습니다. 에로스는 자신의 신분을 감춘 채 프시케와 짧은 시간 동안 사랑을 나누었지만 프시케의 의심으로 곧 헤어지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둘의 사랑은 변하지 않았습니다. 에로스를 잊지 못한 프시케는 아프로디테를 찾아갔습니다. 그러나 아프로디테의 노여움으로 프시케는 많은 시련을 겪었습니다. 아프로디테는 여전히 둘의 결합을 반대하였고 프시케를 시험하기 위해 여러 가지 곤란하고 어려운 문제를 그녀에게 던져 주었습니다. 프시케의 곤경을 보다 못한 에로스는 결국 제우스에게 도움을 요청하였습니다.

 

제우스는 아프로디테를 설득하였고 둘에게 불사의 음료인 '암브로시아(ambrosia)'를 주며 둘의 결합을 축복하였습니다. 이리하여 두 사람 사이에 딸 하나가 태어났는데 그 아이는 바로 기쁨이었습니다.


 
       (음원제공 YouTube : Aphrodite's Child - Spring, Summer, Winter & Fall)

 

 

 

하늘로 올라간 고명한 그녀의 아들 에로스가

저 고되고 긴 방랑을 마친 뒤

넋을 잃고 있는 사랑스러운

프시케를 끌어안고 있다.

이윽고 신들도 쾌히 소원을 받아들여

그녀를 그의 영원한 신부로 만들어 주었다.

그리고 그녀의 아름답고 깨끗한 몸에서는

젊음과 기쁨이라는 복된 쌍둥이가 태어나는 것이다.

그와 같이 제우스는 맹세했기 때문에

- 밀튼(Milton)의 '코머스' 중에서

 

 

페르세포네에게서 받은'신의 미(美)' 상자을 안고 가는 프시케. 옆에는 케르베로스가 보인다.


오늘 밤 우리의 젊은 여주인공은

그 빛을 검은 베일에서 싸지 않았다. _______

어째선가 보라, 그녀가 지상을 걸어다니는 모양을

그것은 에로스의 아내이다,

그가 맞이한 신부이다.

더없이 성스러운 맹세에 의해서

올림포스에서 맺어지고, 그리고 이제

그 눈과 같은 이마에 반짝거리며 달려 있는 장식에 의해

인간들에게도 알려져 있다.

영혼을 의미하는

그 나비야말로, 그 신비의 장식이야말로,

그리고 새하얀 이마에 이처럼 빛나는 빛이야말로

오늘 밤 여기에 프시케가 온 것을 말한다.

 

               - 무어의 '여름 축제' 중에서


출처 : 달빛산책
글쓴이 : 달빛산책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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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화와 고대사

조로아스터 2018. 2. 17. 19:06

대지의 여신.곡물과 농업기술 관장

대지의 모신. 대지의 생산력 수호신. 엘레우시스의 비의를 가진 여신. 올림포스의 주요 12신중의, 하나로 크로노스와 레아 사이에서 태어난 6남매 가운데의 하나. 남동생인 제우스와 결혼하여 페르세포네를 낳았다. 그리스각지의 데메테르의 이름은 '어머니인 대지'를 뜻한다. 로마인은 그녀를 이탈리아의 곡물의 신인 케레스와 동일시 했다. 그녀는 또 이집트의 이시스, 프리기아의 키벨레, 그녀의 어머니인 레아와도 동일시되었다. 데메테르는 거의 올림포스에 머물지 않고 그 대신 지상, 특히 아티카의 엘레우시스에서 지내기를 좋아했다. 이곳에서 그녀가 창시한 제의는 딸인 페르세포네를 되찾은 일(이 점에 대해서는 나중에 설명한다)을 기념하기 위한것이다. 이 제례는 해마다 가을에 행해지는데, 페르세포네의 실종과 그 재발견 이야기가 음악과 무용을 곁들여 데메테르 비의의 신자들에 의해 상연되었다.

[페르세포네의 결혼] 데메테르의 신화는 그 대부분이 그녀의 딸인 페르세포네의 실종과 관련되어 있다. 페르세포네가 아직 어렸을때, 아버지인 제우스는 데메테르와 아무런 상의도 없이 (상의했더라도 반대했을테니만), 하데스의 요청에 따라 페르세포네를 그와 결혼시키 기로 약속했다(그리스에서는 일족의 재산을 지키기 위해 숙부와 조카가 결혼하는 일이 흔했다). 페르세포네는 데메테르가 가장 좋아하는 고장의 하나인 시칠리아 섬의 기름진 땅 헨나(또는 엔나)근처의 숲에서 꽃을 꺽고 있었다. 소꼽친구인 그 고장 소녀들(또는 오케아노스의 딸들)과 같이 있었다. 제우스는 꽃이 만발한 나무 그늘의 작은 골짜기에 아름다운 수선화 한 송이를 꽃피게했다. 친구들과 약간 떨어져있던 페르세포네가 그 꽃을 발견하고 꺾었다. 그 순간 땅이 갈라지면서 암청색 준마가 끄는 전차를 탄 하데스가 나타났다. 그리고 페르세포네를 납치하여 지하에 있는 그의 나라로 데려갔다. 페르세포네는 비명을 지르며 도움을 청했으나 아무도 구해주지 않았다. 하데스의 나라에 도착한 후에도 그녀는 계속 슬픔에 잠겨 음식에는 손도 대려고 하지 않았다. 데메테르는 딸이 없어진 것을 알고 즉시 찾아나섰다. 일설에 의하면 그녀는 유괴되어가는 딸의 비명을 들었다고 한다. 데메테르는 횃불을 들고 9일동안 밤낮 없이 물 한 방울도 마시지 않고 찾아다녔다. 그 결과 데메테르는 헤카테를 만나게 되었다. 그는 엔나 근처의 동굴에 살고 있었는데, 페르세포네가 하데스에게 유괴당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헤카테는 데메테르를 모든것을 모든것을 다 알고 있는 태양신인 헬리오스에게 데려가, 그가 본 것을 데메테르에게 가르쳐주도록 부탁했다. 헬리오스는 자초지종을 모두 그녀에게 말해주었다. 그러면서 제우스와 형제인 하데스는 페르세포네의 남편감으로 아주 적격자이며, 훌륭하고 광대한 왕국을 가지고 있다는 말을 덧붙였다. 오비디우스에 따르면, 강의 님프인 아레투사가 지하를 통해 그리스에서 시칠리아로 가는 도중 하데스의 왕국에서 페르세포네를 보았다고 한다. 데메테르는 딸이 유괴되었다는 것을 알자 광란 상태에 빠졌다. 그리하여 대지에, 특히 그녀의 사랑을 받았는데도 불구하고 그 신뢰를 배신한 시칠리아의 땅에 한발과 기근의 재앙을 내렸다. 그녀는 올림포스에서 내려와 지상을 방황했다. 아르카디아를 지날때 오빠인 포세이돈이 그녀를 보고 범행을 하려했다. 데메테르는 암말로 변신하여 그에게서 도망가려 했다. 그러나 말의 신이기도 한 포세이돈도 재빨리 수말로 변하여 자기 뜻을 이루었다. 이 결합으로 인해 데메테르는 신마인 아레이온과 여신인 데스포이나('여주인'을 뜻하는 이 말은 데메테르가 말의 머리를 가진 여자의 모습으로 숭배되던 아르카디아 이외의 곳에서는 이야기되는 일이 없다) 를 낳았다. 그후 데메테르는 동굴에 몸을 숨겼다. 그러나 판신이 그녀를 발견하고 제우스에게 보고했다. 제우스가 운명의 여신 모이라들을 보내 그녀를 설득하는 바람에 데메테르도 결국은 딸과 하데스의 결혼을 인정했다.

[대지의 모신] 그러나 이보다 더 널리 알려진 데메테르의 이야기는, 그녀에 관한 가장 오랜 전승인 호메로스 풍의 찬가 제2의 <데메테르의 찬가>에 기록되어 있다. 이 시에 따르면, 데메테르는 인간의 모습을 하고 지상을 헤메다가, 그녀를 친절히 대해주는 사람에게는 농업의 지혜를 주고, 불친절하게 대하는 자에게는 벌을 내렸다고 한다. 아티카의 미스메집에 왔을때 데메테르는 키케온(보릿가루를 박하와 섞어서 끊인 일종의 죽. 이 음식은 그후 엘레우시스 비의에는 불가결한 것이 되었다)을 대접받았다. 그러나 미스메의 아들 아스칼라보스가, 너무 게걸스럽게 먹는다고 그녀를 조롱했기 때문에 데메테르는 먹다 남은 것을 그의 얼굴에 끼얹었다. 이리하여 그는 아스칼라보스라는, 반점이 있는 도마뱀의 일종이 되었다. 데메테르는 엘레우시스에 도착하여 슬픔에 잠긴 노파의 모습을 하고 우물가에서 쉬고 있었다. 마침 이때 그 고장 왕인 켈레오스의 딸들이 물을 길러 우물에 왔다가 데메테르를 가엾게 여겨, 자기들과 함께 집으로 돌아가 왕에게 음식과 거처를 부탁해보라고 권했다. 왕비 메타네이라는 데메테르를 도소라는 이름의 크레타 여자라 여겨 친절하게 대했다. 처음에 데메테르는 거기에 머무를 것을 거절했으나, 노예 소녀인 이암베의 재담이 마음에 들어 머무르기로 했다. 또 상중이라는 핑계로 포도주를 마시지 않았으나 키케온 한 잔은 마셨다. 데메테르는 일가의 친절에 감동하여 이집을 위해 일하겠다고 제의했다. 이에 메타네이라는, 그녀를 태어난 지 얼마 안된 아들인 데모폰의 유모로 삼았다. 데모폰은 빠리 성장했다. 이것은 데메테르가 그를 불사신으로 만들기 위해 낮에는 그의 몸에 신들의 음식이자 향유로도 사용하고 있는 암브로시아를 발라주고, 밤에는 그의 몸에 불사가 아닌 부분을 태우기 위해 그를 불속에 넣곤 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하녀의 하나인 프락시테아가 이 사실을 여주인에게 일러바쳤다. 메타네이라는 그것을 직접 목격하고 무서운 나머지 비명을 질렀다. 데메테르는 방해가 생긴 것을 알고, 아기를 마루바닥에 던졌다. 그런 뒤 여신은 자기 정체를 밝히고 켈레오스왕에게 명하여 자신을 모시는 새로운 비밀의식, 즉 엘레우시스의 비의를 집행하는 방법을 가르쳐주었다.

[불모와 풍요] 데메테르는 신들과의 교제를 피하고 새로운 엘레우시스 신전에서 만 1년을 지냈다. 그동안 대지는 불모의 땅이 되었다.제우스는 만일에 데메테르의 진노를 가라앉히지 못한다면 인간은 모두 죽고 신들도 희생을 당하게 될 것을 걱정했다. 이에 데메테르를 달래는 방법으로 이리스를 엘레우시스로 보내, 그녀에게 올림포스의 집회에 참가하도록 청하게 했다. 그러나 데메테르는 페르세포네가 돌아오지 않는 한 어떠한 말에도 귀를 기울이지 않겠다고 했다. 할 수 없이 제우스는 페르세포네를 데메테르에게 돌려주겠다고 승낙했다. 다만 여기에는 페르세포네가 저승에서 아무것도 먹지 않고 있었어야 한다는 조건이 붙어있었다. 왜냐하면 하데스의 왕구에서 한번이라도 음식을 먹은 자는 영원히 거기 있어야 한다는 규칙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제우스는 헤르메스를 시켜 페르세포네를 데려오게 하고, 하데스도 페르세포네를 보내는데 동의했다. 마침내 페르세포네가 저승에서 떠나게 되었을때, 하데스는 그녀에게 몰래 석류나무 열매를 주었다(오비디우스에 따르면 페르세포네는 하데스의 정원을 걸으면서 석류나무 열매의 껍질을 벗겼다고 한다). 페르세포네가 엘레우시스에 도착하자 데메테르는 그녀에게 저승에서 아무것도 먹지 않았느냐고 물었다. 처음에는 아무것도 먹지 않았다고 대답했으나, 아스칼라포스가 석류나무 열매를 먹는 그녀를 보았다고 단언하는 바람에 페르세포네도 이 사실을 인정하지 않을수 없었다. 그녀는 몇 알 (4알에서 7알까지 여러설이 있다)의 열매를 입에 넣었던 것이다. 이에 제우스는 그녀에게 매년 3분의 1(또는 반년)은 하데스의 왕구에서 그의 아내로 지내야 한다고 명령했다. 이리하여 곡물이 성장하고 익는 동안(가을에 파종하여 초여름에 수확할 때까지)에는 페르세포네가 어머니와 같이 지낼수 있어서 대기도 기름졌다. 그러나 더운 여름에 종자가 항아리속에 저장되어 있을떄는 대지가 말라 불모지가 되었다. 이 신화에 대한 근대의 설에는 그와 정반대되는 것이 있다. 즉 페르세포네는 봄과 여름의 여신이고, 겨울 동안은 하데스에게 갔다가 봄이 되면 다시 돌아온다는 것이다. 한편 제우스는 레아를 데메테르에게 보내, 인간이 불모와 흉작으로 고생하는 일이 없게 해달라고 청했다. 이에 그녀는 풍요와 수확의 혜택을 세상에 내리겠다는 약속을 했다. 그녀는 엘레우시스의 신관직을 에우몰포스에게 맡기고 나서, 트리프톨레모스(데메테르가 불사신으로 만들려고 했던 켈레오스의 아들 데모폰과 동일시 될떄가 있다)에게 명하여 농업기술을 세계의 모든 인간에게 전달하게 했다. 아테네인과 시칠리아인은 저마다 자기들이야말로 곡물의 혜택을 받은 최초의 민족이라고 주장했따. 데메테르는 트리프톨레모스에게 날개 달린 용이 끄는 자기 전차를 주어 쉽게 돌아다니게 했다. 그녀는 또 아티카에 무화과나무를 주었다. 페르세포네를 찾아 여러나라를 방황하고 있을때 그녀를 따뜻히 대해준 아티카의 필로스라는 사내에게 보답하기 위해서였다. 트리프톨레모스가 여행을 끝내고 엘레우시스로 돌아오자 켈레오스는 그를 불충하다 하여 죽이려 했으나, 데메테르가 이를 만류하고 켈레오스의 왕위를 트리프톨레모스에게 이양하도록 명했다. 데메테르는 탄탈로스가 신들을 초대한 연회에서 탄탈로스의 아들인 펠롭스의 시체로 만든 죽을 먹은 유일한 신이었다. 펠롭스가 소생하자 그녀는 자기가 먹은 부분 대신 상아로 만든 어깨를 그에게 주었다. 데메테르는 카드모스와 하르모니아의 결혼식에 참가하여 이아시온을 만났다. 데메테르는 그와 크레네의 휴경지에서 정을 통했다. 이에 제우스는 여신과 관계를 맺은 이아시온의 발칙한 행위를 벌하기 위해 그에게 벼락을 떨어뜨려 죽였다. (일설에 의하면, 한쪽 다리를 부자유스럽게 만들었다). 데메테르는 이아시온과의 사이에서 플루토스('부자')와 필로멜로스('노래를 좋아함')등 두 아들을 낳았다고 한다. 필로멜로스는 가난한 농부로 만족하고 짐마차를 고안했다. 죽은후 그는 데메테르에 의해 밤하늘로 올려져 별자리가 되었다. 그녀는 또한 케르키라 섬의 동굴에 살고 있던 마크리스라는 님프를 사랑하여, 그녀를 위해 티탄신족에서 케르키라섬에 곡물을 심고 수확하는 기술을 가르쳤다. 이리하여 그 섬은 드레파논, 즉, '낫'이라 불리게 되었다. 데메테르는 테살리아에 성스러운 숲을 가지고 있었는데, 에리식톤이라는 사나이가 새로운 식당을 짓기 위해 그 나무를 베려고 했다. 이에 데메테르는 여신관의 모습을 하고 나타나 그 계획을 중지하라고 경고했다. 하지만 그가 계획을 취소하려 하지 않는 것을 본 데메테르는 그에게 절대로 배가 부르지 않는 벌을 내렸다. 이에 그는 아무리 먹어도 공복을 채울수 엇ㅂ어 그만 거지가 되고 말았다(->에리식톤) 그러다가 마지막에는 자기살을 먹고 죽었다. 데메테르는 딸을 찾아 사방으로 헤매었기 때문에 여러지방과 관계를 맺게 되어, 그리스 각지에서 숭배를 받았다. 특히 여자들, 예컨대 아테네의 테스모폴리아 제전 등을 통해 숭배받았다. 테스모폴리아 제전은 테스모폴로스('법을 가져다주는 자') 라는 그녀의 명치에서 유래한 것이다. 참가자는 여자에 국한되고, 그녀들은 자기네의 다산과 아테네의 풍작을 기원했다. 아리스토파네스는 이를 주제로 하여 희극인 <여자들의 제전>을 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