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화와 고대사

조로아스터 2018. 2. 17. 19:03

신들의 존재가 인간에게 있어 반드시 좋은 것만은 아니었다. 올림푸스의 열두 신만 하더라도 변덕스럽거나 곧잘 성을 내거나 집념이 깊어 때때로 지상에 내려와서 인간생활을 간섭하고 귀찮게 했다. 그 때문에 인간은 무척이나 곤혹스러웠다. 구러나 여기에 다른 신들과는 달리 인간들과 함께 지상에서 살며 인간과 친근했던 신이 있다. 곡물의 여신 테메테르와 술의 신 바카스가 바로 그들이다.

데메테르는 크로노스와 레아의 딸로 바카스보다 연상이다. 곡물은 포도보다도 훨씬 일찍 땅에 심어져 곡물을 심은 밭은 지상에서 인간의 생활이 시작되었을 때부터 이미 있었던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곡물을 익게 하는 거룩한 힘. 그것은 고대인이 여신으로서 받아들인 것은 지극히 자연스런 일이다. 고대엔 남자들은 사냥이나 전쟁에 나가고, 밭일은 여자들이 도맡아 했다. 씨를 뿌리고 곡식을 거두어들이는 일에 대해서는 남신보다도 여신 쪽이 이해가 있고 또 여자들을 도와주는 것이라고 생각되었던 것이다. 피비린내나는 희생을 제물로 받아들이기를 즐기는 남신들과는 달라서, 이 여신들은 겸손한 생활만 하고 있으면 반드시 좋은 수확을 가져다 주는 것이라고 믿었다.

밭은 데메테르의 힘에 의해서 정화되고, 거기서 나는 곡물은 데메테르의 거룩한 곡물이라고 불렀다. 밭뿐만 아니라 탈곡할 때에도 데메테르가 보살피고 있다고 생각했다. 밭도, 작업장도 데메테르가 있는 신전이었다. 여자들이 곡물과 왕겨를 키질하고 까불러서 가려내고 있을 때, 익은 곡식빛을 한 누런 머리칼의 데메테르도 거기 앉아서 겨를 불어 가려내고 있을 것임에 틀림없었다. 탈곡한 낟알이 차츰 산처럼 쌓여간다. 손에 짚다발과 개양귀비를 든 데메테르는 그걸 바라보며 미소 짓고 있을 것임에 확실했다.

데메테르의 제사는 수확기에 행해졌다. 훨씬 옛날엔, 그것은 실로 소박한 감사제였을 것이다. 새로 얻은 곡식으로 빵을 만들고, 인간에게 가장 소중한 이 혜택을 베풀어 준 신에게 감사의 기도를 드리고 모두 함께 나누어 먹는다고 하는 소규모의 감사제였으나 시간이 흐르자, 보다 신비적이고 대규모적인 제전과 의식이 행해지게 되었다.

자세히는 모르나, 아무튼 5년마다 9월에는 큰 제사가 행해져, 그것은 9일 간이나 계속되었다. 이 기간 동안에는 일상적인 일은 멈추고 큰 무리를 지어 행진하거나, 노래하고 춤추면서 희생물을 바치거나 하는 여러 가지 즐거운 행사가 있었다. 그러나 신전의 내부에서 그런 일이 행해지는지는 알 수 없다. 그러한 의식에 참가한 자들은 실로 굳게 침묵을 지켰기 때문에 현재가지 전해져 내려오지 않고 있다.

아테네 주변의 작은 도시 엘레우시스에는 큰 신전이 있는데 이 의식을 엘레우시스의 밀의 라고 불렸다. 그리스와 로마를 통해서 이 의식은 특수한 신앙으로 자리잡았다. 로마의웅변가이자 정치가이며 철학자이기도 한 키케로(기원전 106-43)는 이렇게 말하고 있다.

‘이러한 의식보다 숭고한 것은 없다. 인간의 성격을 부드럽게 하고, 습관을 우아한 것으로 만든다. 사람들은 거칠고 천한 상태에서 보다 참다운 인간성으로 변화된다. 단지 생활을 즐긴다는 것뿐만 아니라 그들에게 희망을 주며 어떻게 죽어야 할 것인가를 가르쳐 주는 것이다.’ 이 의식의 가장 장엄한 순간은 정적 속에서 한 줄기 곡물이 배어지는 순간이었다고 한다. 이 엘레우시스의 신전에 데메테르와 바카스가 어떻게 함께 모셔지게 되었는지는 확실치 않다.

‘심벌즈가 울릴 때, 데메테르와 나란히 긴 머리의 디오니소스는 앉아 있도다.’

시에도 이렇게 씌어 있다.

이 두 신이 함께 모셔진다는 것은 결코 어색하지 않다. 빵을 먹는 것, 술을 마시는 것, 어느 것 하나 일생생활에선 빼놓을 수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포도를 거둬들이는 수확기는 바카스의 제사 때이기도 하여, ‘쾌활한 디오니소스, 포도송이의산에 둘러싸여 빛나는 별이여’하고 노래 불려졌다.

그러나 바카스는 퐤활하기만 한 신은 아니었다. 데메테르도 수확기의 즐거움만을 노래하는 여신은 아니다. 올림푸스에서 이 세상에서 드문 지복의 생활을 보내고 있는 신들과 달라서 이 지상의 두 신은 그들 나름대로 괴로움도 맛보고 있었다. 곡물이 거둬들여져, 잘익은 포도 열매를 모두 수확한 뒤 서리가 내려 들의 푸른 생명이 죽어갈 때, 밭이며 과수원엔 도대체 어떤 변화가 일어나게 될까?

그것은 인간에게 있어서 낮이며 밤이며 계절의 변화이며, 별의 운행과 마찬가지로 알아볼 길 없는 불가사의 한 일이었다. 데메테르와 바카스는 추수 때는 쾌활하나, 겨울 동안은 황량한 대지를 그저 슬프게 쳐다볼 뿐이다.

데메테르는 외동딸인 봄의 처녀 페르세포네를 잃었다. 비탄에 빠진 나머지, 대지에 혜택을 베푸는 것을 그만두었다. 순식간에 대지는 얼어붙은 황무지로 변했다. 페르세포네가 사라졌기 때문에 풍성한 푸름으로 덮이고 활짝 핀 꽃들로 수놓인 대지에는 얼음이 깔리고 생명은 자취를 감추게 되었다.

페르세포네가 납치당하는 순간 그 비명은 산과 들에 메아리치고 바다에 울려퍼졌다. 그 소리는 데메테르에게도 들렸다. 그녀는 딸의 행방을 찾아 돌아다녔으나 그녀에게 사실을 말해 주는 자는 아무도 없었다. 마지막으로 데메테르는 태양에게 찾아갔다. 태양은 모든 것을 그녀에게 말해 주었다. 페르세포네는 사후세계의 왕에게 붙잡혀 지하로 끌려가 버린것이다.

이를 듣고 데메테르의 슬픔은 더욱 더 깊어만 갔다. 그녀는 지금까지 살고 있었던 올림푸스를 떠나 지상으로 주거를 옮긴 후 모습을 숨겼기 때문에 아무도 그녀를 신이라고는 생각지 않았다. 세상을 방랑하며 돌아다니는 동안에 데메테르는 엘레우시스까지 왔다.

그리고 어느 샘가에 앉았다. 그녀는 검은 옷을 입고 있어 부잣집 늙은 하녀와 같은 모습이었다.

네 명의 귀여운 소녀들이 물을 길러 와서는, 할머니, 거기서 뭘 하고 계셔요? 하고 다정스레 물었다. 데메테르는 해적에게 붙잡혀 노예로 팔릴 뻔 하다가 다행히 도망쳐 나오긴 하였으나 낮선 곳이라 어찌 할 바를 모르고 있노라고 대답했다. 네 자매는 샘물을 긷고는 집에 돌아가서 곧 그 사실을 어머니에게 말했다. 어머니인 메타네이라는 그 사람을 데리고 오라고 했다. 데메테르가 그 집에 왔을 때, 작은 사내아이를 안고 있었던 메타네이라는 문 쪽에 후광이 비치는 것을 보곤 놀라고 두려워했다.

메타네이라는 데메테르에게 벌꿀술을 권했으나, 데메테르는 그것을 입에 대려 하지 않고 박하가 든 물을 원했다. 박하물은 추수 때 농부들이 즐겨 마시는 것으로 그때 데메테르가 입에 댄 성배는 엘레우시스의 보물로 남아있다.

기운을 차린 데메테르는 갓난 아이를 자신의 따뜻한 가슴에 안았다. 그 아기느 sgus자 겔레오스와 메타네이라 사이에서 태어난 데모푸운이라는 아이였다.

데메테르가 이 집에 머무르며 아이를 돌봐 주게 되었다. 데모푸운은 마치 신의 아들처럼 길러졌다. 데메테르는 암브로시아를 아이의 몸에 바르고 밤에는 난로의 불 속에 아이를 집어넣었다. 이것은 신과 같은 불멸의 생명을 베풀어 주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어머니 메타네이라는 마음이 놓이지 않아 어느 날 밤 몰래 데메테르의 방을 들여다보게 되었다. 마침 데메테르가 아이를 막 불 속에다 집어넣고 있는 참이었다. 깜짝 놀라서 메타네이라는 비명을 질렀다. 방해를 받은 데메테르는 화가나서 아이를 땅으로 집어던졌다.

데메테르는 여신으로 돌아왔다. 형언할 수 없을 만큼 좋은 향기가 감돌고 집 안은 환하게 밝아졌다. 여신이 말했다.

“나는 데메테르이다. 이 도시 가까이에 커다란 신전을 세우도록 하라, 그러면 내 마음도 가라앉으리라.”

사람들은 두려움에 떨었다. 주인 켈레오스는 이 사실을 도시 사람

들에게 전했다. 그 후 사람들은 즐거이 신전을 짓기 시작했다. 이리하여 딸을 찾다 지쳐 버린 데메테르는 이 신전에서 살게 되었다.

그 해에 지상은 심한 기근에 시달리게 되었다. 곡물의 씨는 조금도 싹이 트지 않고 사람들은 모두 굶주림에 시달리게 되었다. 천상에 있는 제우스는 이를 보고 데메테르에게 신들을 사절로 보내 달래어 보았으나, 데메테르는 딸을 찾게 될 때까지는 결코 지상에 수확을 가져다 주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명부의 왕 하데스는 제우스의 아우로 제우스는 페르세포네를 어머니 곁으로 돌려보낼 수밖에 없다고 생각하고 헤르메스를 전령사로 사후세계에 보냈다. 페르세포네는 크게 기뻐했으나, 하데스는 그녀를 손에서 놓고 싶지 않아 여러 가지로 설득했지만 그녀의 고집은 너무 완고했다.

하데스는 그녀를 설득할 수 없다는 것을 알자 결국 석류씨 하나를 페르세포내에게 몰래 먹였다. 이 석류를 먹으면, 그녀는 반드시 자기 곁으로 돌아오리라는 것을 하데스는 알고 있었다. 하데스의 검은 말이 끄는 금빛 마차에 페르세포네를 태워 가지고 헤르메스는 손수 말을 몰아 데메테르의 신전으로 곧장 달렸다. 데메테르는 뛰어나왔고, 페르세포네는 어머니의 품속에 안겼다. 그로부터 모녀가 이런저런 이야기로 꽃을 피우는 동안 데메테르는 석류씨 이야기를 들었다. 데메테르는 또 딸을 잃게 되는 게 아닌가 하고 불안해졌다.

제우스는 다시 전령사를 보냈다. 이번엔 올림푸스 신들 중의 최고 연장자로 제우스 자신의 어머니인 레아였다. 레아는 또 데메테르의 어머니이기도 하다. 레아는 황폐해진 지상에 내리자, 데메테르의 신전 앞에 서서 불렸다.

“내 딸아, 신들이 모이는 올림푸스의 궁전으로 다시 한 번 돌아오도록 해라. 제우스도 널 기다린 지 오래란다.”

그리고 이런 조건을 내걸었다. 1년중 3분의 1을 페르세포네는 명부에 내려가 있고 겨울이 끝날 무렵지상으로 올라와, 그 어머니와 인간들과 함께 지내게 된다. 이 조건을 승낙할 수 있다면, 너만이 가져다 줄 수 있는 생명력을 지상에 다시 불어넣어 줄 수 있겠는가, 하는 것이었다.

데메테르는 단지 4개월일 망정 딸을 지하 명부세계에서 지내게 하고 싶진 않았으나, 이 조건을 어쩔 수 없이 받아들였다. 인간들은 그녀를 좋은 여신이라 칭송하게 되었다. 데메테르는 지상에 황폐를 가져오게 한 것을 차츰 후회하고 있었다.

이리하여 데메테르는 다시 한 번 대지에 생명을 가져다 주었다.

지상은 푸르름에 싸이고, 꽃은 피고, 곡식 이삭은 물결을 이루었으며, 과일은 가지가 휘도록 풍성했다. 데메테르는 자기의 신전을 세운 엘레우시스의 족장들 중에서 트리프톨레무스를 불러, 그를 자기의 대리자로 삼아 씨 뿌리는 방법을 가르쳐 주었다. 또 트리프톨레무스, 켈레오스 기타의 사람들에게 거룩한 의식을 가르쳐 주었다. 그것은 ‘깊은 두려움이 혀를 누르기 때문에 아무도 입에 올릴 수 없는 비의(秘儀)요, 이 비의를 본 이는 좋은 내세를 맞이할 수가 있는 것이다’ 라고 하는 것이었다.

향기로운 엘레우시스의 여왕이여,

대지에 은택을 베푸는 이시여,

오, 데메테르여! 그 우아함을

내게 베푸옵소서.

그리고 또, 그지없이 아름다운 페르세포네여,

사랑스러운 처녀여,

내 그대를 위해 노래를 바치나니.

그러나 데메테르의 슬픔이 사라진 것은 아니었다. 그녀는 해마다 겨울이 가까워 오면 명부로 가는 딸을 전송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페르세포네는 봄과 여름의 빛나는 처녀이다. 그러나 또, 그 가벼운 발소리가 마른 갈색 언덕의 중턱에 들려오는 것만으로도 땅의 소생하고 푸르름은 눈을 뜨기 시작한다. 그리스의 여류시인 사포(기원전 600)는 노래했다.

‘나는 듣노라, 꽃피는 봄 발자국 소리를......’

그것은 페르세포네가 돌아오는 발자국소리를 묘사한 것이다.

그러나 페르세포네는 알고 있다. 과일도 꽃도 잎도, 지상의 모든 아름다운 것은 추위가 시작되면서부터 그녀 자신처럼 죽음의 세계로 끌려가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을.

한 번 명부로 끌려온 이상 그녀는 아무런 괴로움도 모르던 옛날의 처녀는 아니었다. 해마다 봄이면 되돌아온다고는 할망정 그녀는 죽음의 세계에서 나오는 것이다. 그 눈부신 아름다움에도 불구하고 그녀에겐 뭔가 신비로운 두려움 같은 것이 따라다녔다. 고대인은 흔히 말했다. 그 이름을 입에 올려선 안 된다고…….

올림푸스의 신들은 죽음을 모르는, 덧없는 세상의 괴로움을 모르는 신들이다. 그러나 인간들이 괴로워하고 비탕에 잠기고, 죽음을 맞이할 때 생각나는 것은 여신에 대해서인 것이다.

출처 : 야전공병단
글쓴이 : 1115야공단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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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화와 고대사

조로아스터 2018. 1. 30. 22:20

 

인도의 말세론, 칼리 유가와 여신 칼리

 

인도의 말세론, 칼리유가Kali Yuga

인도 힌두교의 우주관에서 얘기하는 시대 구분중 하나로, 유가yuga는 도덕과 육체적 타락을 기준으로 각각

크리타 유가Krta Yuga, 트레타 유가Treta Yuga, 드바파라 유가Dvapara Yuga, 칼리의 네 유가로 나뉘며, 뒤

로 갈수록 그 기간이 짧아집니다.

 

첫 번째 ‘크리타 유가’는 (정법이 네 발로 서 있는) 정법의 시대이며, 정의가 완전히 실현되고 인간의 수명이

4000년이 되는 황금시대로, 172만 8,000년을 지속합니다. ‘트레타 유가’는 정법이 세 발로 서 있는, 도덕과 기

쁨이 줄어든 시기로 129만 6000년, ‘드바파라 유가’는 정법이 두 발로 서 있는, 선과 악이 균형을 이루는 시대

로 86만 4000년 지속합니다.

 

마지막인 ‘칼리유가’는 정법이 외발로 서 있는, 도덕과 행복이 무너진 어두운 시대로 4만 3,200년간 지속합니

다. 현재는 칼리유가에 속한다고 보는데, 이 칼리유가가 끝날 때 세계는 파멸할 것이며 그로부터 새

주기가 다시 시작되어 세계가 재창조된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칼리 유가는 BCE3102년에 시작되었다는 설이 있습니다. 힌두교 경전 <푸라나>에서는 신 크리슈나

로부터 5천 후에 칼리 유가가 끝난다고 합니다. 현재는 제4기 칼리유가가 약 5천 년쯤 지난 시기

에 와 있다고 말합니다.

 

 

칼리 여신

 탐욕스럽고 파괴적인 힌두교 여신.

 겉보기에 서로 어울리지 않는 삶의 여러 모습을 한데 결합하기

 좋아하는 인도인의 심성이 반영된 듯, 칼리는 평소에 차분하고

 평화로운 모습으로 표현되는 데비(최고의 여신)의 난폭하고 무

 서운 측면이다.

 

 칼리는 피로 물든 무시무시한 검은 얼굴을 가진 추악한 마녀로

 서, 이를 드러내고 혀를 쑥 내민 모습으로 묘사된다. 4개의 손은

 각각 칼, 방패, 거인의 잘린 손, 목을 조르는 올가미를 움켜쥐고

 있거나 자신만만하게 쭉 뻗고 있다.

 

 칼리는 해골을 엮어 만든 목걸이와 잘린 손을 엮어 만든 허리띠

 를 알몸에 두르고 있다. 그림과 조각에서 칼리는 흔히 축 늘어져

 누워 있는 남편 시바 신의 몸 위에서 춤을 추는 모습으로 나타난

 다.

 

 콜카타에 있는 유명한 칼리가트를 비롯하여 칼리 신을 모시는

 신전에서는 날마다 염소를 제물로 바친다. 19세기까지 인도에서

 활동했던 광신적 암살자들 및 자객들은 칼리를 숭배해 희생자들

 을 칼리에게 바치는 의식을 거행했다. 칼리는 두르가 여신(역시 데비 여신의 사나운 측면)과 관련을 맺고 있으며,

서로 동일시되는 경우가 많다. <브리태니커>

 

 

종말의 방문자, 칼리 여신

순환의 마지막 시대는 칼리, 즉 죄악의 신이자 피를 머금은 미소를 짓고 있는, 무섭고 검은 피부의 여신에 의해

상징된다. 인도에서는 칼을 가지고 다니는 이 악마적인 신이 인정 많은 여성 살인자이자 환상의 도살자로서 숭

배되고 있다. 수천 년 간의 업보가 쌓인 시대의 종말기에 청구서를 갖고 어머니 칼리가 문을 쿵쿵 두드리게 되

는 때가 최고의 절정이다.

 

현대의 인도 점성술사들에 따르면, 그녀는 1982년에 경고의 종을 울리기 시작했다. 이것은 칼리 여신이 2000

년과 2012년 사이에 문을 차고 내려온다는 것을 의미한다.     <존 호그, 밀레니엄의 대예언, 80쪽>

출처 : 증산도, 참 진리의 세계
글쓴이 : 토장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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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화와 고대사

조로아스터 2018. 1. 19. 16:51

 - 오두의 문화비평 -  (*안나오는 사진은 오른쪽 마우스 눌러 show picture를 클릭할 것)

 

 

 심청(沈淸)이 타고 올라온 것은 연꽃 아닌 가리비 조개  

 

- <심청전>의 심청(沈淸)은 그 이름부터가 '깊고 푸른' 바다의 여신 - 

- 바다에 몸을 던져 신룡(神龍)이 되어 풍랑을 막는 선묘(善妙) 여신과 심청(沈淸) - 

- 가리비 조개를 타고 올라온 심청을 불교식 '연꽃'으로 윤색한 것 -

 

 

ScallopShell.jpg

 

 

들어가는 말: 신룡(神龍)이 된 부석사의 선묘(善妙) 여신과 심청(沈淸)

 

"이 도끼가 네 도끼냐'고 묻는 동화의 연못은 신선이 올라오는 곳이다. 바다에서 심청이가 올라오는 것은 신화적인 신선의 스토리에서 나온 것이다. 연꽃이 바다에서 핀다는 것은 맞지 않는 말이다. <심청전>은 보다 원류적인 신화가 존재했음이 틀림없다. 

 

우리의 전통 문학에는 왜 바다에 대한 이야기가 별로 없을까? 바다의 여신에 대한 기록들은 단지 '용왕님' 정도로 남아 있고 그 여신 자체의 이름이나 전설은 왜 사라졌을까? 바다 속으로 들어간 신이한 이야기를 한 <심청전>은 본래 어떤 신화로 존재한 스토리가 아니었을까?  

 

<심청전>의 심청(沈淸)은 '효녀'로 윤색된 여신이었을 것이다. '沈淸' 그 이름은 '깊고 푸른' 바다를 의미하는 바다의 여신 이름이기 때문이다. 풍랑을 잠재우기 위하여 희생된 소녀가 아니라 풍랑을 잠재우는 여신 자체가 '沈淸' 바다 자체이다. 비너스 여신이 가리비 조개에서 나오는 것은 심청에게서 연꽃으로 표현된다.

 

바다에 몸을 던진 심청은 자신을 공양미 삼백 석에 사서 바다에 제물로 바치는 뱃사공들을 보호하는 역할을 한다. 동시에 아버지 심봉사의 눈을 뜨게 해준다고 공양미를 받은 화주승을 위한 바다에 투신이기도 하다.

 

바다에 몸을 던지는 처녀를 <심청전>에서는 '제물'이라고만 하고 있지만, 본래는 신룡(神龍)이 되어 바다를 지키는 여신이 되는 것을 의미한다. 그 근거를 필자는 부석사의 선묘(善妙) 신화에서 찾아낼 수 있다.

 

부석사에는 선묘여신상이 모셔져 있고 선묘정(善妙井)이 있다. 그 배경에는 심청이처럼 바다에 몸을 던진 선묘(善妙)라는 처녀 이야기가 있다. 동시에 그녀가 몸을 던지게 한 상대는 승려인 의상대사였으며 바다에 몸을 던진 선묘(善妙)는 서해바다의 신룡(神龍)이 되어 의상대사의 귀국길의 바다 풍랑을 지켰다고 했다. 

 

여기에서 선묘(善妙)는 바다에 몸을 던지고 풍랑을 잠들게 하는 신룡(神龍)이 된 모습으로 나타난다는 면에서 심청(沈淸)이 바다에 몸을 던지고 풍랑을 잠들게 하는 '제물'이 되어 다시 연꽃이 된다는 것은 일치한다.             

                    

바다에 몸을 던진 선묘(善妙) -> 신룡(神龍) - 풍랑으로부터 의상대사 보호

바다에 몸을 던진 심청(沈淸) -> 제물(蓮花) - 풍랑으로부터 뱃사공을 보호

 

조선시대 판소리문학으로 남아 있는 <심청전>의 문학적 심청(沈淸) 스토리 구조는 이렇게 신라시대의 의상대사의 당나라 유학에 따라 나오는 선묘(善妙) 신화에서 그 플랏이 선재하고 있다는 것을 필자는 주장한다.  

 

부석사의 선묘설화에 따르면 선묘는 의상대사가 당나라 유학을 할 때 그곳 바닷가의 여인으로서 의상을 연모하였으나 의상이 받아주지 않자 의상이 떠난 바다에 몸을 던졌다. 바다에 몸을 던진 그녀는 신룡(神龍)이 되어 의상의 귀국길의 바다 풍랑을 호위하였다고 했으며, 신라로 귀국하여 부석사를 창건할 때도 그 신룡은 선묘 여신이 되어 부석사 창건을 방해하는 마귀들을 막아주었다고 전한다. 

 

이 선묘설화는 <심청전>의 신화적인 배경을 보여주는 내용이다. 바다에 몸을 던진 심청이처럼 선묘는 바다에 몸을 던졌다는 것이 먼저 일치한다. 다음으로 선묘는 자신을 바다에 몸을 던지게 한 의상을 도리어 풍랑으로부터 보호한다는 것은 <심청전>에서 심청을 공양미 삼백석에 사서 인당수에 몸을 던지게 하여 풍랑으로부터 뱃사공들을 보호하는 제물이 된다는 것에 일치한다.

 

의상대사를 흠모하여 몸을 바다에 던져 '신룡'이 되어서라도 의상을 따라가며 풍랑으로부터 보호했다는 선묘였다. 이것은 심청에게서도 승려 화주승의 말을 따라 공양미 삼백석을 바치면 아버지 심봉사의 눈을 뜨게 할 수 있다는 말을 믿고 인당수에 몸을 던지는 것과 그대로 일치한다.

 

따라서 <심청전>의 심청(沈淸)은 '연꽃'이 되었다는 표현 이전에 '신룡'이 된 여신 스토리를 배경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으며 그 이름부터가 '깊고 푸른' 바다의 여신 이름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제 심청(沈淸)이라는 본격적인 바다의 여신의 신화적인 배경을 구체적으로 살펴보겠다.


 

 

1. 가리비 조개 타고 올라온 심청(沈淸) 여신

 

태양숭배시대의 신화적인 여신들이 후대의 종교들에 의하여 남성적 지배하에 두어 비하 윤색된 패턴은 '공주' '효녀' '딸' '선녀' '선묘' 등으로 표현되었다. '효녀 심청'은 그러한 변이된 인위적인 칭호라 할 수 있다.

 

<심청전>은 불교적인 용어들이 들어 있지만, 그 무대는 바다의 여신과 관련한 신화적인 플랏을 가지고 있다. 심봉사의 무대가 신선도가적인 도화동(桃花洞)무릉촌(武陵村)이 등장하는것부터가 그렇다.

 

심봉사가 얕은 개천물에 빠졌을 때 지팡이만 휘젓다가 화주승이 구해주는 것은 심청이가 인당수 바다에 빠지는 구조의 예고편이다. 개천물은 인당수(印塘水)연꽃을 타고 올라오는 것의 예고편이다.

 

선암사의 삼인당(三印塘)이 연못인 것처럼 인당수의 인당(印塘)은 '연못 塘'자가 들어가듯 연못에서 유래하고 있다.

 

그런 인당수(印塘水)는 바다로 연결되어 있다고 믿었다. 그래서 인당해(印塘海) 또는 홍콩 등에는 아직도 인주당해(印洲塘海)라는 지명이 있다. 신화에서 인당(印塘)은 바다의 밑바닥을 의미한다.

 

그 바다의 밑바닥에서 가지고 오는 진리 경전을 해인사의 '해인(海印)'이라고 했다.

'해인(海印)'이라는 말은 <화엄경>에서 '海印三昧'라는 말에서 보듯이 "우주(宇宙)의 일체(一切)를 깨달아 아는 '부처의 지혜(智慧)'를 일컫는 말로 사용되기도 한다.

 

그러나 '해인(海印)'은 바다의 인장의 의미 자체가 바다의 신의 허락이라는 의미가 들어 있다. '海印三昧'라는 의미는 소라조개의 의미와 함께 바다의 명상(The Great Ocean of Meditation)에서 유래하고 있다. 그래서 바다의 참선(禪)에서 바닷가의 소라조개처럼 바다에서 홀로 존재하는 의미를 강조하는 것은 '海印三昧'의 근본이 된다.

http://www.earlywomenmasters.net/shobogenzo/k/kaiin_zammai/index.html

 

*구름무늬로만 볼 수 없는 강릉 굴산사지 '운문 '

소라 고등의 나선형과 관련하여 바다의 여신 전통의 파도 문양일 수도 있다.

 

신선이 올라오는 연못에는 쇠도끼만이 다시 건지는 것이 아니듯이 그 속에는 금도끼 은도끼도 들어 있는 불교 이전의 신화를 가진 바다 밑바닥의 신화에서 연유한다.

 

고대 인도인들은 시바신(또는 데바신)이 바다의 밑 바닥으로부터 소라고둥에 진리를 담아 가져온다고 믿었다(Shiva rescuing the stolen Sacred Chank that carries "the Truth" from bottom of the sea). 심청이 인당수에 빠져 용왕을 만나 다시 연꽃을 타고 솟아 올라온다는 그 '연꽃 안의 심청'은 '소라고둥 안의 진리'의 윤색이라 할 수 있다. 힌두교의 락스미(lakshmi) 여신은 연꽃 안에서 나오는 것도 이러한 배경에 연결되어 있다.

 

*고대 인도인들은 시바신(또는 데바신)이 바다의 바닥으로부터 진리를 가져온다고 믿었다.
Shiva rescuing the stolen Sacred Chank that carries "the Truth" from
bottom of the sea. (Soapstone carving from India)
Yoshimoto Collection
  

*힌두교의 연꽃에서 나오는 락스미 여신. Lakshmi. Lotus Goddess

http://people.tribe.net/heatherlsalmon/blog/a1967c4b-fad5-4b32-a771-4624e03b44b4

 

 

*The Birrh of Venus in Scallop Shell

 

 

연꽃 안의 심청은 '해인(海印)'을 가져가도록 바다의 여신이 허락해주는 것으로 바다 밑바닥의 여신이 나중에 진리의 뜻을 가진 '해인(海印)'으로 표현되었을 것이다.

 
고대 인도 신화에서 데바(devas) 신이 샹카아수라(Shankhaasura)를 물리치기 위하여 바다 밑바닥으로 들어가서 비쉬뉴신에게 힘을 빌어 물고기로 변한(fish incarnation) 마트샤 아바타아라(Matsya Avataara)이 되어 다시 바다 위로 올라오는 것은 바다 속에서도 숨을 쉬는 심청이와 같은 것이다.
 
신화적으로 심청이가 들어 있는 '연꽃'은 바다의 여신의 배 속에서 타고 나오는 모태와 같은 것이다. 어머니의 배와 바다의 배는 그래서 같은 신화적인 의미를 가진 우리말이다. 그 여신의 바다 속에서 연꽃처럼 소라고둥처럼 모태 속에서 태어나는 것은 여신의 음부를 빠져나오는 것이다.
 
그것이 비너스 여신의 가리비 조개의 성적 이미지가 아니겠는가. 고대 모계혈통의 신화에서 소라고둥은 여신이 태어나는 태이며 가리비 조개는 그 여신의 성모 바다의 여신의 성적 심볼이다. 그래서 많은 원시 종교에서 조개는 바다의 상징이며 신화적인 심볼이다.

 

바둑돌은 본래 바닷가의 검은 색의 조약돌과 흰 색의 조개껍질을 의미했다. 바둑이라는 개의 이름은 그러한 바둑돌의 흑백을 닮았다는데서 붙여진 이름이다. 바둑이란 바둑패 즉 흰 조개껍질과 검은 조약돌의 바둑판 위에서의 일전이었다. 조개가 바다라면 조약돌은 육지로서 두 존재는 고대 인류에게 있어서 중요한 상징과 신화적인 의미를 가졌다. 판소리 <별주부전>에서 토끼와 거북의 대화와도 같은 것이 바둑판 위의 조개껍질과 조약돌의 지혜대결이라 할만하다.  

 

금(金)이 귀금속이자 화폐로 사용되기 전에는 조개(貝)가 그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금으로 신상과 신전을 장식하기 이전에는 조개껍질로 신화와 신전을 장식했다. 그만큼 조개(貝)는 금(金)의 선배였으며 더 오래된 귀중품이었다. 

 

오랫동안 조개(seashell)를 사용한 인류의 장식과 부적 의미를 가졌던 것은 무려 110,000년 전의 유물이 발굴되고 있는데서도 알 수 있다. 조개무덤이라는 패총(貝塚) 또는 패허(貝墟) 유적은 우리나라 전역은 물론 전세계적으로 발견된다.

 

패총(貝塚, kitchen midden)은 아메리카 인디안들에게도 존재했다. 브라질의 대서양 연안에 조개무지(sanvaki)는 바닷가의 쓰레기 더미가 아닌 신비한 바다의 조개에 대한 숭배의식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조개는 단순한 숭배가 아니라 신이 태어나는 곳으로, 그 신의 소리를 내는 악기로 표현되었다. 소라고둥의 소리는 우주의 소리인 나중에 옴마니반메훔으로 표현된 옴(Om) 사운드의 원천이었다는 것은 소라고둥의 신화들에서 나온다.  

 

풀피리는 민간 피리라면 뿔피리는 궁중이나 종교적 제의에서 사용되었다. 우리나라에 남아 있는 전통 악기들 중에도 뿔피리가 있다. 그것이 나각(螺角)이다.

나각(螺角)은 황제의 행차 때에 불었던 제의적 의미가 있었던 대취타(大吹打) 악기이다. 특히 황제가 붕어(崩御)했을 때도 나각(螺角)을 불었다는 것은 바다의 소라고등이 가지는 오랜 신화시대로부터 내려오는 제의적 의미가 있었기 때문이다. 

 

우리의 전통 문화에서 바다에 대한 이야기가 사라진 것은 바다의 여신숭배를 배격하기 위한 후대의 종교들의 윤색과정이 있었기 때문이다. 불교 문화에서 습합 전이 윤색된 연꽃 이미지는 불교 이전 태양신과 바다의 여신 신화시대에서는 진주와 자개를 만드는 가리비 조개 또는 전복 조개였을 수 있다. <심청전>의 심청(沈淸)은 그 이름만이 심해 바다의 여신임을 드러내고 있는 것이 아니라 여타의 많은 내용들이 바다의 여신 숭배의 잔재로 남아 있는 고전으로 볼 수 있다.

  

연꽃을 타고 올라온 심청은 가리비 조개를 타고 올라온 비너스 여신과 같은 신화적인 패턴을 지닌다. 심청이 여신이었기 때문에 후대의 종교들이 '효녀'로 윤색하여 하등화시킨 스토리가 심봉사의 '딸', 용왕의 은혜를 입는 물에 빠진 사람, 황제를 만나 은혜르 입는 '왕후' 등으로 차등화되어 나타낸 것이다.
 
많은 경우 고대 여신들을 격하시킨 후대의 종교들의 윤색의 잔재로 여신들의 위치가 '공주', '효녀'로 설화 속에 남아 있다. 신선도가적인 대지지모의 여신 전통은 우리의 오랜 풍수도가사상에서 명당의 용맥을 여신의 몸으로 보고 그 명당의 혈(穴)자리를 그 성적인 심볼로 보는 것은 아직도 남아 있다. 직녀는 날개옷을 입고 날아올라 간 하늘을 견우는 두레박을 타야 올라가는 것으로 묘사되는 것이 신화시대의 '여존남비'의 구조이다. 
 
도화동(桃花洞)과 무릉(武陵)이 무대인 심청전은 이미 불교 이전의 배경을 보여준다. '심청(沈淸)'이 '깊고 푸른 바다'의 여신이라면 그 아버지 심학규는 심(沈)이오 이름 '학규(鶴奎)' 또한 신선도의 학(鶴)과 별자리(奎)로 표현되어 있다. 불교 이전의 신화적인 스토리에서 비롯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심청전>의 심청이 우리나라 고전에서 유일한 바다 신화의 여주인공이다.
 

심청이 인당수에 빠져 용왕을 만나 다시 연꽃을 타고 솟아 올라와서 황제를 만난다는 설정은 신화적인 프레임을 가지고 있다. 고대 인도의 시바(Shiva) 신은 소라고둥으로 바다 밑바다의 진리(truth)를 담아 올린다고 표현된다는 그 진리는 신화시대에 모든 소원을 들어주는 바당의 여신이 나중에 문자시대의 경전화된 표현일 것이다. 

 

비너스 여신이 가리비 조개에서 나오는 것과 소라고둥으로 진리(truth)를 퍼담아 온다는 것은 소라고둥이 내는 소리(Om)을 의미하는 것이다. 신화시대의 진리는 복음이나 관음이 그렇듯이 소리(音)이다. 소리의 음(音)은 소라고둥의 소리 즉 바다의 여신의 소리인 옴(Om)에서 나온 것이며, 

 

고대 인도 중동의 어머니를 표현하는 '옴마 - 엄마'는 바다의 여신이 내는 소라고둥의 소리에서 비롯했을 것이다. 제왕들이 붕어하면 불었던 소라고둥은 바다의 여신 '옴마'를 부르는 소리 '옴'을 내는 소리였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심청전>의 심청은 바다의 풍랑을 잠재우기 위하여 뱃사공들의 소원을 이루어주는 여인으로 등장한다. 그러나 연꽃을 타고 바다에서 올라오는 심청(沈淸)은 바다의 여신이다. 그것은 소라고둥을 타고 올라오는 시바신, 물고기 신으로 둔갑하여 바다 위로 올라오는 데바신이 '깊고 푸른 바다의 심청(沈淸) 여신'의 신화 이야기가 그 원류였을 것이다. 불교 이전의 심청의 스토리는 분명 가리비 조개를 타고 바다에서 올라온 비너스 여신 스토리와 그 신화적인 맥을 같이한다고 볼 수 있다.

 

연꽃에 여자가 앉아 있다는 것은 불교적이지 않다. <심청전>에서 연꽃에 앉아 바다에서 올라온 심청의 자리에 불교가 들어온 뒤에 불상이 앉기 시작한 것이다. 본래 심청이 앉은 것도 연꽃이 아닌 가리비 조개였을 것이라는 것은 여러가지 측면에서 추정할 수 잇는 신화적인 방증들이 많이 있다. 불상이 앉는 좌대인 연화대는 본래 가리비 조개였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불교 문화에 남아 있는 바다 신화와 관련한 잔재들은 특히 조개에 대한 전통들이 남아 있는 것에서도 알 수 있다. 특히 불상의 헤어스타일은 물론, 그 광배 문양, 사리탑의 운문 등을 보면 그대로 소라고둥의 나선형 문양의 잔재를 볼 수 있다.

 

 

2. 불두에 남아 있는 조개 문화

 

흔히 육계(肉髻 = 無見頂相)로 표현되는 불상의 상투인 나발(螺髮)은 그것이 나선형의 소라를 닮도록 했다는 특징을 가진다. 이러한 불상의 머리스타일인 나발(螺髮)은 '나계' 또는 '파상발'이라고도 하는데, 불교에서도 '불두의 머리는 소라모양의 곱슬머리 형태'라고 표현하는 것은 일반적이다.

 

 소라머리 즉 나발(螺髮)은 불상의 초기 형태 발생지인 간다라 불상에서부터 나타나는 것으로 보아 불교 이전의 바다의 여신 숭배시대의 잔재로 볼 수 있다. 이러한 모양은 불상의 '三十二相'에 기술된 붓다의 신체적 특징들이 인도에서 전통적으로 내려오는 대인상(大人相: 뛰어난 인간의 신체적 특징)에 관한 전승을 따르고 있기 때문이다.

 

대인이란 그 시대의 신화적인 신선 등의 인물을 의미한다. 나선형의 소라고둥의 문양은 불상의 나발 상투만이 아니라 그 광배문양에서도 보이며, 고대 와당 문양에서도 소라문양의 나선형을 볼 수 있다.

 

경남 의령에서 출토된 6세기의 연가칠년명 금동여래입상(延嘉七年銘金銅如來立像)의 광배에서 그리고 평양에서 출토된 금동광배(金銅光背) 등의 불상의 광배 문양에서도 나선형 소라문양은 나타난다. 초기 간다라 불상의 광배에 가리비 조개 문양을 알아채는 사람들은 드물다.

 

  

 
*마두라 붓다의 나발(螺髮)
머리에는 소라고둥 나발 곱슬머리이며
가리비 조개 문양이 광배에 새겨져 있다.
Mathuran Snail Shell Curls
The naturalistic hairstyle persisted on Gandharan images,
 whereas Mathura began representing the Buddha with 'snail shell' curls turning to the right.
 
*붓다의 소라 머리 나발(螺髮)
 

nabalshell.jpg

 *붓다의 나발(螺髮)의 원형이라 할 비단고둥 (Umbonium Shells)

 
 
*진주 비단(緋緞)고둥) Pearl Umbonium Shells
 
 
*달라이라마가 거주하는 인도의 다람살라의 불상 뒤의 광배 문양
오른쪽으로 돌아가는 나선형 소라문양이다.
 
 
*나선형의 광배 문양
평양에서 발굴된 영강칠년명 금동광배(永康七年銘 金銅光背)
  
 
*백제시대 운문 와당. 국립 부여박불관.
운문의 정체는 구름에서만 찾을 수 없다.
고대 신화시대의 바다의 소라문양이자 파도의 문양으로 볼 수도 있어야 한다.
 
이처럼 불교 문화에서 광배나 불탑이나 부도 사리탑 등에서 보이는 문양들을 단순히 구름무늬(雲紋) 또는 불꽃(焰光) 문양으로 볼 수 없는 것은 붓다의 '소라머리'에서 그 이전 신화시대의 바다의 여신과 관련한 소라문양과 파도 문양을 함께 보아야 할 것이기 때문이다. 많은 경우 신화적으로 구름무늬는 파도무늬로도 보아야 한다는 것이 필자의 생각이다.
 
 
3. 불탑에 남아 있는 운문(雲紋)들은 나문(螺紋), 파문(派紋)일수도
 
사리탑인 부도에 모셔진 '사리'가 진주조개의 가리비 '진주사리'를 모신 신화적 연관성을 생각해본다면, 특히 우리나라의 고대 석조부도에 새겨진 '구름문양'이라고 생각되어 온 운문(雲紋)들은 오히려 소라문양의 나문(螺紋) 또는 파문(派紋)일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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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닷가인 강릉 굴산사지의 석조 문양.
특히 '소라문양'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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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굴산사지 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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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굴산사지 부도 구체부분의 나선형 문양
입체로 된 나서형 문양은 구름문양보다 소라고둥과 유사하게 보인다.
 
*고달사원종대사혜진탑비귀부및이수(高達寺元宗大師慧眞塔碑龜趺및螭首)
나선형 문양들이 구름보다 바다의 소라 등의 어패류의 문양에 가깝다.
거북 자체가 바다 이미지를 가진다.
 
 
4. 가리비 조개에 숨어 있는 플라밍고 '각설이 타령'
 
조개에 대한 신화적인 의식은 인디안들의 구리가면에서 눈부분이나 이빨 부분은 조개의 자개를 사용하였다는 것에서도 알 수 있다. 인디안들은 가리비 조개껍질로 용기로 사용하는 이상 약사발로 사용할 때 그 종교적인 신비한 숭배의식이 포함되어 있었다.  

  

 

Used by the Native Northwest American Indians

as a natural vessel for cleansing, offerings and prayers.

 

고대 신라의 '신국의 도'에 영향을 입은 일본에서는 신도와 불교가 함께 공존해 온 종교적 환경에서 신화시대의 문화들을 많이 남기고 있다. 가리비는 일본어로 호라가이(ほらがい 法螺貝) 또는 호라카히(ほらのかひ 梵貝)라고 한다. 우리말의 '조개'의 '개'가 일본어에서 '가이' 또는 '카히'로 남아 있는 것은 그 '조개'라는 말의 '개' 발음을 그렇게 '카히(貝)' 또는 '가이(貝)'로 표현한 것으로 생각된다.

 

그렇게 보면 우리말의 '조가비'의 '조'는 접두어이고 '조가비'의 '가비'가 '貝'였으며 일본어에서'카히' 또는 '가이'로 발음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가리비가 호라카이(ほらのかひ 梵貝)가 일본의 <和漢三才圖會>에서는 신제(神祭) 또는 불단에서 사용하는 불기(佛噐)라고 정의하고  있다.
 

*가리비 조개 위의 비너스 여신 일본 토오쿄오

 APHRODITE FOUNTAIN IN TOKYO

 
범패(梵貝)로 표현된 '가리비'는 '산스크리트의 조개'라는 의미에서도 종교적인 표현이며 '가리비'가 '가비'와 유사한 발음이 나는 것에서 모든 우주의 조가비(梵貝)의 대표적인 '가비'로 인식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조개 패(貝)자에는 아래에 '八' 자 모양은 소라고둥의 두 뿔이 나온 이미지이기도 하지만, '가리비 조개'의 경우 기왓골과 같은 가리비 등골서 옆으로 뻗은 날개 부분이 합쳐진 형상(目 + 八)으로 보이기도 한다. 팔작지붕이 가리비 신화에서 유래했다는 내용은 필자의 앞선 글에서 주장한 바 있다. 
 

 

 

 

Chase Yarbrough - Venus on the Halfshell. Dallas Art Center

 

 

가리비 조개는 또 다른 한자로는 범립패(帆立貝)인데, 바다의 돛의 의미를 주고 있으며 다른 표현으로는 해선(海扇) 또는 해선합(海扇蛤)이라 하여 바다 부채로 표현되고 있다. 돛과 부채 이 모두가 바다의 신화에서 가리비 조개가 중요한 신의 도구라는 의미가 들어 있는 것이다.

   

특히 가리비 조개는 바다의 의미를 가진 뜻으로 서양 역사에서는 오랜 역사동안 세례의 상징으로 남아져 왔다. 초기 기독교의 그림들 가운데는 세례요한의 예수에 대한 세례 장면에서 가리비 조개껍질로 요르단 강물을 끼얹는 장면이 나온다. 

 

Baptismal Shell: The scallop shell has been used for centuries as a symbol of baptism.

Some ancient pictures actually show John the Baptist pouring water on the head of Jesus with a shell as he baptized him in the River Jordan. Thus a shell may be used to administer the sacrament of baptism. http://www.englishmartyrspreston.org.uk/vessels.htm 

 

각설이 타령에서 밥그릇을 때리며 춤을 추는 것은 오랜 역사를 가졌을 것이다. 그 밥그릇은 토기를 만들기 이전에는 조개껍질이었을 것이라는 것을 플라밍고 댄스의 딱딱이에서 볼 수 있다.

꽃을 타고 뭍으로 올라온 심청이가 춤을 춘다면 플라밍고 댄스를 추었을까? 스페인의 원시 주민들이었던 안달루시아인들로부터 내려온다는 플라밍고 댄스(Flamenco Dance)에서 손에 잡고 반주를 맞추는 딱딱이는 가리비 조개껍질 한 쌍이 그 원래의 모습이다. 플라밍고 댄스는 터어키 및 아랍인들에게서 기원한 것으로 보인다. 플라밍고의 어원인 'flemenc'라는 말이 "Gypsy"라는 말과 동의어로 풀이하고 있다.  

 
혹여 짚시들이 가리비 조개를 두드리는 춤은 밥을 얻어먹은 걸식 행각의 '각설이 음악'에서 나온 것은 아닐까? 각설이들은 걸식을 하면서 밥그릇을 두두렸던 것은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다.
 
가리비 조개는 원시인들에게 '밥그릇'이었을 것이고 그것이 '바리때'라는 그릇 이름의 원형인 '바리'가 '가리비' 조개와 연관이 있어 보이기 때문이다. 토기와 목기가 만들어지기 이전 조개는 원시인류의 가장 요긴한 그릇이었다. '바리떼'는 분명 조개껍질 그릇에서 유래한 말일 것이다.  
 
바리데기 공주 신화의 '바리데기'는 바리떼를 들고 다니며 걸식을 하는 거지가 된 바리데기 공주를 의미하며 그 이름이 바리떼의 파생적 명사인 '바리떼기'에서 '바리데기'가 되었을 수 있다고 생각된다. 조개나 소라고둥을 불면서 플라밍고 '각설이 춤'을 추던 짚시들이 이러한 문화를 광범위한 지역으로 퍼트렸을 수 있다.  
 
플라밍고 댄스는 가리비 조개 안에서 탄생한 비너스 여신을 흉내낸 춤을 연상하게 한다. 그 의상은 소라의 화려한 살 색갈과 그 몸체가 가리비 조개껍질 밖으로 나오는 모습으로 보이기에 알맞다.
 
 
 
*집시 댄스인 플라밍고 댄스(Flamenco Dance)
딱딱이는 '가리비 소라껍질' 한쌍으로
각설이들의 '바리떼' 두드리기와 신화적인 그 기원이 같은 뿌리가 아닐까.
 

*'각설이 춤'과 같은 짚시들의 플라밍고 댄스의 딱딱이의 기원이 된 가리비 조개

pecten maximus, Great Scallop

 

 

5. 서양 기독교의 가리비 조개 세례 그릇과 사찰의 감로수 물두멍. 
 
로마의 여신 비너스 즉 그리이스의 아프로디테 여신이 가리비 조개 안에서 태어나는 과정은 서양의 많은 그림들에 남아 있다. 그 가리비 조개는 성모상에도 등장하며, 기독교 세례문화의 세례 용기로 아직도 남아 있다.
 
서양 건축문화에서 비너스는 대단히 상징적인 미학의 중심에 있다. 비너스의 여신이 단순히 고대의 가리비 조개 안에서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서양기독교의 가리비 조개 세례 전통은 오늘날 서양인들의  건축에서 벽장식에 자주 등장하는 가리비 조개 워터 폰트(water font)에도 남아 있으며 서양의 정원 파운틴 건축에 적용되고 있다.
 

*가리비 조개에서 태어나는 비너스 여신 4세기 로마

Venus on a halfshell. From the Esquiline Treasure,

Rome. Ca. 379-382 A.D. (London: British Museum).

 
서양에서 도사(Saits)는 가리비 조개를 가지고 다니는 모습으로 그려졌다. 그것은 동아시아에서 도사(瓠公)가 조롱박을 차고다니는 것과 같은 이미지다. 가리비 조개에서 여신이 나오듯이 조롱박은 단순히 마실 물을 담는 그릇이 아닌 그 안에서 신선이 나와서 소원을 들어준다는 신화적인 상징이다. <흥부전>에서 박 안에서 사람이 나온다는 것은 서양 신화에서는 가리비 조개 안에서 비너스 여신이 나오는 것과 같은 것이다.  
 
 
*조롱박과 가리비 조개가 함께 묘사된 스페인 샌티아고의 순례 '방랑도사'
 
서양의 가리비 조개 워터폰트를 보면 우리의 전통 복조리를 걸어둔 이미지를 볼 수 있다. 물에서 복조리로 걸러내는 쌀은 진주조개를 걸러내는 가리비 조개 이미지를 보여준다.  
 

*기독교의 세례 조각상이 들어 있는 가리비 조개 형상으로 만든 워터폰트(HOLY WATER FONT) 

 

Young Angel Holding a Scallop Shell

 

*서양 건축의 정면 중앙에 주로 새겨지는 가리비 조개(Scallop shell) 

 

  

*가리비 조개로 만든 새 물받이

 Scallop Shell Bird Bath

가리비 조개 물두멍 위쪽에 소라고둥이 새겨져 있기도 하다.

  

필자는 이미 감로수 문화가 고대 여신숭배사상의 동굴 샘물에서 기원한다는 것을 최근 글에서 주장한 바 있다. 다음 글에서 논하겠지만 이러한 감로수는 서양에서는 세례문화로 발전했다. 동양의 사찰들에는 감로수라는 이름으로 석조 물두멍이 있다. 

 

그 샘물 감로수는 신화시대의 대지지모 여신의 바위 동굴 암호(巖戶) 그로토(grotto)와 연관이 있다. 관음보살상은 샘물이 나오는 동굴을 배경으로 표현된다. 석굴암은 오랜 고신라의 여신 숭배의 사당이었을 것이라는 필자의 주장은 석굴암 석굴 안에서 흘러나오는 그 샘물에서 비롯된다.

 

기독교는 물론 이슬람, 불교 및 힌두교 등 세계 고등종교들이 물로 세례를 하거나 성수를 뿌리거나 물을 생명수 또는 감로수로 받아마시는 의식은 고대 신화시대의 암호에 거하는 대지지모 숭배의 잔재라 할 수 있다. 특히 관음상이 그렇듯이 비너스 여신 탄생이 가리비 조개와 함께 묘사되듯이 바다의 여신과 관련하여 세례의식 또느 감로수 문화는 가리비 조개에 연결되어 있다.

 

오늘날 사찰에서 볼 수 있는 관음상이 물을 주는듯 감로수 석조가 물줄기를 내보내는 그 석조 모양은 연꽃으로 만들거나 용 또는 거북 문양으로 만드는 것의 원천적인 모습은 가리비 조개와 여신의 모습으로 볼 수 있다.       

  

*가리비 조개 스타일의 세례용 그릇(scalloped bowl)

스페인 샌티아고 성당. 

 

*불교 사찰의 감로수

대야의 기원은 가리비 세레물통이었을까?


각화사 감로수 2005년...


각화사 감로수 2007년엔 이렇게 달라지고...

사진출처: http://www.kagopa.com/bbs/board.php?bo_table=diary&wr_id=2404

 

*백담사의 감로수

비너스 여신이과 가리비 조개 형상을 닮아 있다.

 

*팔작지붕을 닮은 가리비 조개(Pecten jacobaeus)

우리의 전통 팔작지붕의 신화적 배경이 가리비 조개에 연결되어 있다는 내용은

필자의 앞선 글에서 볼 수 있다.

   

동양의 불교에서는 사찰의 '감로수' 물두멍들의 모양이 가리비와 관련한 조각들이 존재했는지는 아직은 알려져 있지 않다. 그러나 앞서 보여준대로 간다라 불상에서 가리비 조개가 불상 뒤의 광배에 그려져 있다는 것은 분명 무시할 수 없는 가리비 조개 문화를 가지고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거북이나 용 등의 문화의 영향을 받은 사찰의 감로수 샘물 물두멍들은 어딘가 커다란 가리비 조개 모양을 하고 있다는 것은 연화대 문양이 큰 가리비 조개(Great Scallop Shell)을 닮아 있다는 점은 분명한 사실이다. 따라서 불상이 앉는 연화대는 심청이 앉았던 바다의 연꽃이며 그 여신 심청을 남성화시킨 모습이 연화대에 앉은 불교의 불상으로 표현된 것이라 할 수 있다.

 

*연꽃 속의 여성인 심청은 가리비 조개 안의 비너스 여신 이미지를 가진다.

 

*바다 연꽃의 힌두교의 락쉬미 여신 (Lotus Goddess)

 

따라서 연꽃과 가리비는 신화적으로 교차된 상징으로 같은 원류를 가지고 있는 바다의 여신의 상징이라 할 수 있다. 심청이가 인당수에서 빠져 다시 올라온 곳은 연꽃과 비너스가 솟아나온 곳은 가리비 조개, 이 둘의 관계는 바다와 내륙 연못문화의 차이라고 생각한다. 오히려 심청의 인당수가 연못이 아닌 바다였는데 연꽃이 등장하는 것은 모순이다. 그것은 오히려 바다 무대로 볼 때 가리비 조개여야 한다. 심청은 우리민족의 '비너스' 여신이었다고 할 수 있다.

 

관음보살 특히 수월관음상이 바다를 배경하고 선 자세로 표현되는 것은 비너스 여신이 가리비 조개 안에 선 모습과 거의 일치하는 모습으로 가리비 조개 안에 서 있는 바다의 여신을 보여주고 있다.   

 

*바다의 연꽃과 수월관음의 모습은

비너스 여신의 선 자세 스타일로 그려진다. 

 

 

*가리비 조개에서 나오는 비너스 여신

 

simchung.jpg 

 

*연꽃에서 다시 살아나오는 심청

바다에는 연꽃이 아닌 가리비 조개였던 것을 불교화하여 연꽃으로 윤색했을 것이다.


이렇게 볼 때 <심청전>은 오랜 바다의 여신 신화를 배경한 스토리를 불교적으로 재구성했다고 생각된다. 풍랑을 잠재울 수 있는 것은 제물이 아니라 여신이었을 것이며, 바다에는 연꽃이 없다. 가리비 조개를 불교화하여 연꽃으로 윤색했을 것이다.

 

원시종교 시대의 바다 여신 숭배와 조개들의 상징은 기독교와 불교 문화에서 많이 남아 있다. 특히 세례는 가리비 조개와 소라고둥에 연관하며 경주의 포석정은 전복진주조개 신화가 연결되어 있다는 내용ㅇ르 다음 글에서 다음 글에서 다루게 될 것이다. 

 

- 계속 -  

 

(06/05/09 오두)

 

 

 

 

 

 

 

 

 

출처 : 오두막 위에 서린 무지개
글쓴이 : 오두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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