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주와 생명

조로아스터 2018. 4. 29. 13:09

 

에테르 진동의바다 - 우주의바탕 Matrix


 

나는 우주 전체에 걸쳐 자신의 신호를 전달하는 에너지를 만물 속에 심어 놓았다.사람, 동물, 식물, 바위, 나무, 즉 모든 물체들이 무선송신기처럼 에너지를 내보낸다.

​너 역시 지금 이 순간에도 네 존재의 중심에서부터 사방 팔방으로
에너지를 내보내고 - 발산하고 - 있다.
너 자신인 이 에너지는 물결 모양을 이루며 밖으로 퍼져나간다.
그 에너지는 너를 남겨둔 채 벽을 뚫고 산을 넘고 달을 지나 '영원' 속으로 들어간다.그것은 어떤 일이 있어도 절대 멈추지 않는다.

네가 가졌던 모든 생각들이 이 에너지를 물들인다.
네가 지금껏 뱉아낸 모든 말들이 그 에너지를 모양짓고,
네가 지금껏 행한 모든 행동들이 그 에너지에 영향을 미친다.


그리고 당연히 다른 사람들도 누구나 같은 일을 하고 있다.
그 때문에 너희들 사이의 "허공"인 에테르는 에너지로 채워져 있다.
그것은 너희가 상상할 수 있는 어떤 것보다 더 복잡한 융단 무늬를 그려내는 얽고 얽힌 개개 "진동들"의 '바탕'Matrix이다.


이 직물이 너희가 살아가는 결합된 에너지 영역이다.
그것은 강력하여 너희를 비롯하여 모든 것에 영향을 미친다.


'황금빛'처럼 발산되는 너희의 에너지는 끊임없이 다른 모든 것과 다른 모든 사람과 상호작용한다.그 에너지는 거리가 가까울수록 더 진해지고, 멀어질수록 더 옅어지지만,​그럼에도 너희가 어떤 것과 전혀 연결되지 않는 경우는 없다.


너희와 존재하는 다른 모든 사람, 장소, 물체 사이에는 어떤 지점이 있다
두 에너지가 만나서 훨씬 더 엷지만, 그러나 똑같이 실재하는 제삼의 에너지 단위를 형성하는 지점이.


지구 위의, 그리고 우주 속의 모든 사람과 사물이 전(全)방향으로 에너지를 발산하고 있다.이 에너지는 너희의 가장 강력한 컴퓨터로도 분석할 수 없을 만큼
복잡한 유형으로 교차하면서 다른 모든 에너지들과 섞인다.


이 에너지는 소위 물질이라고 할 수 있는 모든 것 사이를 달려가면서
교차하고 섞이고 얽히면서 물질성을 함께 묶어준다.



이것이 내가 말했던 바탕이다.
너희가 때로는 개인들이 창조하기도 하지만 대개는 대중의식이 만들어낸 신호들,즉 메시지와 의도와 치유를 비롯한 여러 물질 효과들을 서로에게 보내는 것은 이 바탕을 따라서이다.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이 에너지들은 내가 설명했듯이 서로에게 이끌린다.
이것을 '끌어당김의 법칙'the Law of Attraction이라고 한다.
이 법칙에서 '비슷한 것끼리는 서로 끌어당긴다.'


'비슷한 생각은 바탕을 따라서 비슷한 생각을 끌어당긴다.'
그리고 이 비슷한 에너지들이 충분히 많이 "떼를 이루면",
말하자면 그들의 진동이 무거워지면, 그것들은 서서히 속도를 늦추고 그 중 일부는 '물질'이 된다.


생각은 물질 형태를 창조해낸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같은 것을 생각할 때,
그들의 생각이 '현실'이 될 가능성은 훨씬 더 높아진다.



'신과 나눈 이야기' 제2권 142~ 151쪽 ~

 

 

출처 : 홍익정도문화원
글쓴이 : 환공(桓公) 원글보기
메모 :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이웃님! 이제 봄날의 마지막에 와 있는 것 같습니다!
여자는 음의 존재니까 양기가 시작되는 봄을,
남자는 양의 존재니까 음기가 시작되는 가을을 좋아한다고 합니다.
서로 부족한걸 채워줘서 조화가 잘맞으니까요

치맥과 삼겹살소주도 같은 이치로
맥주는 음의 기운이 강한 보리로 만들어 양기가 강한 닭과 어울리고
삼겹살 돼지는 음기가 강해 삶아도 쉽게 익지 않는데 그래서 양기가 강한 소주와
아주 잘 어울리는 술입니다
이런것을 궁합이라고 하는것 같습니다!

나와도 기운이 왠지 맞는 사람이 있고 왠지 부담되는 사람이 있고요
삶속에서의 궁합을 지혜롭게 잘 맞춰 살아야 행복을 얻게 되는것 같습니다!
언제나 지혜로운 선택을 하셔서 행복을 더 크게 누리시기 바랍니다!
좋은 댓글 감사합니다.

 
 
 

우주와 생명

조로아스터 2018. 4. 29. 13:09

 

 

노화는 의식의 그림자

진아, 변하지않는 이 현실을 경험하면 변화는 우리의 지배 아래에 들어온다

 

 

 



우리는 모든 변화를 초월한 변하지 않는 현실 속에 살고 있다. 이 현실을 경험하면 변화는 우리의 지배 아래에 들어온다.



지금 당신이 주장할 수 있는 유일한 생리학은 시간에 근거한 것이다. 그러나 시간이 의식에 종속된 것이라는 사실은 당신이 전혀 다른 형태의 기능 - 불사의 생리학 - 을 보유할 수 있음을 시사한다. 그것은 곧 불변성의 경험을 의미할 것이다. 불변성은 변화의 결과로서는 생길 수가 없다.
그것은 시간에 속박된 의식으로부터 시간을 초월한 의식으로의 전환을 요구한다.

이러한 전환에는 여러 가지 단계가 있다. 예컨대 당신이 극도로 시간에 쫓기면서 일하고 있다고 하자. 그런 압박감에 대한 신체의 반응이 언제나 일률적인 것은 아니다. 어떤 사람은 압박감을 창조성과 에너지의 원천으로 이용하여 성공하고, 어떤 사람은 그에 떠밀려서 적극적인 동기를 상실하고 중압감을 느껴 스트레스를 보상할 만한 만족을 얻어내지 못한다.

창조적으로 반응하는 사람은 시간의 압박에 휘말리지 않는 법을 알고 있다. 그로부터 스트레스와 구속감을 느끼는 사람들과는 달리 그는 최소한 부분적으로나마 그것을 초월하는 것이다. 스트레스를 느끼는 사람에게는 시간이 너무나 압도적으로 자신을 덮쳐 온다. 그는 내부의 시계가 째깍거리는 소리에서 벗어날 수가 없다.

그리고 그의 몸은 그러한 마음의 상태를 반영하지 않을 수가 없다. 우리의 몸 세포는 끊임없이, 온갖 미묘한 방법으로, 시간에 대한 우리의 인식에 자신을 맞추어 나간다. 생리학자라면, 우리가 수백만의 얽히고설킨 심신상관적 사건들로 이루어진 일련의 과정의 연쇄 속에 끌려 다닌다고 혹은 갇혀 있다고 말할 것이다.

시간에 얽매인 과정들을 재정돈할 수 있는 어떤 상태에 도달할 수가 있다는 사실을 깨닫는 것은 매우 중차대한 문제이다.
간단한 비유가 이 점을 밝혀 줄 수 있다.
당신의 신체를 뇌와 모든 세포 사이를 왕복하는 신호들의 출력물로 생각하라.
보내지는 신호의 종류를 정하는 신경계는 신체의 소프트웨어 역할을 한다. 온갖 종류의 호르몬과 신경전달물질과 기타 전령 분자(messenger molecule)들을 이 소프트웨어가 처리하는 입력물이다.
이 모든 것이 당신의 몸을 구성하는 눈에 보이는 프로그램이다.
그런데 프로그래머는 어디에 있는 것일까?
그는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그는 어디엔가 있는 것일 틀림없다. 심신상관 체계 속에서는 매초마다 수천 개의 결정이 내려지고 생명의 요구에 부응하게 하는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선택이 내려진다.

만일 내가 인도에서 길을 걷다가 코브라를 보고 겁에 질려서 뒤로 물러섰다면, 이 사건을 제어하는 눈에 보이는 장치는 내가 보인 근육의 반응일 것이다. 그것은 나의 신경계가 보낸 화학적 신호에 의해 일어난 것이다. 빨라진 심장박동수와 가빠진 호흡은 뇌하수체에서 보내진 특별한 화학물질(부신피질 자극 호르몬)에 반응하여 부신피질에서 분비된 아드레날린이 촉발시킨 것이다.

나의 겁에 질린 반응과 관련된 분자 차원의 작용을 생화학자가 낱낱이 추적할 수 있다고 해도, 그는 여전히 그렇게 반응하기로 결정을 내린 눈에 보이지 않는 결정자를 발견해 내지는 못할 것이다. 아무리 짧은 순간적 반응을 한다고 할지라도 마음도 없이 몸이 혼자 놀라 물러서지는 않기 때문이다. 전혀 다른 프로그램을 지니고 있는 사람이라면 전혀 다른 반응을 보일 것이다. 땅꾼이라면 흥미롭다는 듯 허리를 구부릴 것이고 힌두교 신자라면 시바 신의 형상을 발견하고 경외감에 무릎을 꿇을 것이다.

사실은 ‘그 어떤’ 가능한 반응 - 공포, 흥분, 신경질적 반응, 마비, 무감각, 호기심, 기쁨 등등 - 도 다 일어날 수가 있다. 보이지 않는 프로그래머는 눈에 보이는 신체기관을 프로그램할(어떤 유형의 행동을 하라고 지시할) 수 있는 무한한 방법을 가지고 있다. 내가 뱀과 마주치는 순간, 나의 모든 기초 생리기능들 - 호흡, 소화, 대사, 배설, 인식, 사고작용 - 은 코브라가 나에게 지고 있는 ‘의미’에 영향을 받은 것이다.

올더스 힉슬리(Aldous Huxley)의 다음 말 속에는 진리가 담겨 있다.

“경험이란 당신에게 일어나는 어떤 것이 아니라 당신에게 일어나는 것에 대한 당신의 반응이다.”

당신은 이 의미란 것을 어디에서 발견할 수 있는가? 빠르고 손쉬운 대답은 대뇌 속에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 신체 기관은 다른 모든 기관들과 마찬가지로 끊임없는 변화 속에 있다. 순간마다 뇌 속의 수 십 억의 원자들은 철새처럼 들락거린다. 대뇌는 일평생 단 한 번도 동일한 패턴을 보이는 법이 없는 전기파로 회오리친다. 뇌의 기본적인 화학작용은 점심식사에 색다른 음식이 들어왔거나 갑작스럽게 기분이 흔들리면 변이될 수 있다.


그러나 뱀에 대한 나의 기억은 변화라는 큰 바다 속에 녹아 없어지지 않는다. 나의 기억은, 그 기억 위에 서서 말없이 나의 삶을 지켜보며 나의 경험을 참고하여 언제든지 새로운 선택을 할 수 있는 가능성을 즐기는 프로그래머가 언제든지 사용할 수 있는 상태로 존재한다.

이 점에 있어서는 프로그래머는 단지 선택하는 의식일 뿐이다.
그것은 변화에 압도되지 않고 다만 음미한다. 그러므로 시간에 얽매이는, 일상적 인과의 세계에서 생기는 한계에 제약받지 않는다.

뱀을 무서워하는 ‘나’는 과거 언젠가 그 두려움을 학습했다. 나의 모든 반응은 시간에 얽매인 자아와 그것이 지닌 성향의 요체이다. 1,000분의 1초도 안 되는 시간 속에서 프로그램되어 있던 공포가 일련의 신체적 신호의 연쇄를 일으켜서 그와 같은 반응을 만들어 낸 것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에게는 다른 ‘나’는 드러나지 않는다. 왜냐하면 우리는 과거에 의해 한정되지 않은 의식을 가지고 말없이 지켜보는 결정자(decision maker)에 의해 자신의 정체성을 발견하는 방법을 배우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는 어떤 미묘한 경로로, 우리 내부에 있는 어떤 것이 우리가 갓난아이적 이래로, 설사 변한 것이 있다고 해도 크게 변한 것이 없음을 다들 느끼고 있다.

아침에 깨어나면 오랜 세월동안 형성되어 온 온갖 규정들이 자동적으로 자리를 잡기 전의 순수의식이 드러나는 순간이 있다.
그 순간에 우리는 그저 우리 자신이다.
우리는 행복하지도 않고 슬프지도 않으며, 잘난 체하지도 않고 겸손해 하지도 않으며, 늙은 것도 아니고 젊은 것도 아니다.

아침에 깨어날 때 이 ‘나’는 경험이라는 갑옷을 재빨리 걸쳐 입는다. 수초 내로 나는 자신을 상기한다. 예컨대 나는 마흔여섯 살의 의사이며 아내가 있고 두 자녀가 있고 보스턴 근교에 집이 있고 병원까지는 10분 거리에 있다는 등으로, 이러한 자아의 정체성은 변화의 결과이다. 변화를 초월한 ‘나’는 어디서나 일깨워질 수 있다. 할머니의 요리냄새를 맡고 있는 인도 델리 시의 다섯 살배기 아이, 플로리다에서 야자수 나뭇잎을 흔드는 사람 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있는 여든 살 노인네 등으로.

고대 인도의 성현들이 간단히 ‘진아(眞我)’라고 부른 이 변함없는 ‘나’는 경험에 있어서 나의 진정한 기준점이 되어 준다. 다른 모든 기준점은 변화와 쇠퇴와 상실을 피할 수 없다. 다른 모든 ‘나’의 느낌은 상대적 세계가 부과하는 모든 시간에 얽매인 조건, 예컨대 고통 아니면 기쁨, 빈곤 아니면 부요, 행복 아니면 슬픔, 젊음 아니면 늙음과 동일화되어 있다. 일체의식 속에서는 이 세계는 영혼(Spirit) - 곧 의식 - 의 흐름으로 설명된다.

우리의 지상의 목적은 영혼으로서의 진아와 긴밀한 관계를 확립하는 것이다.
우리가 이처럼 긴밀한 관계를 만들어 내는 정도에 따라서 늙지 않는 몸과 시간을 초월한 마음의 경험이 실현될 것이다.


< 마음의 기적 / 디펙초프라>

 

출처 : 홍익정도문화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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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주와 생명

조로아스터 2018. 4. 29. 13:08

 

파동(소리/진동)이 세상을 형상화시킨다

 

 

 

 

 

 

이 세상 모든 것이 "소리"로 만들어져 있다.
우리가 만질 수 있는 딱딱한 모든 물질, 물체 들도 다 "소리의 변형상태"이다.

얼핏 들으면 무슨 말도안되는 소리냐고 되묻겠지만,
과학적으로 따지면, 그리고 종교/철학적으로 따져도 이와같은 사실이 진짜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이 세상 모든 세포, 우리 인간, 동물, 식물, 지구, 우주를 형성하고 있는
가장 작은 원자, 중성자, 아원자, 등과 같은 "입자"들을 살펴보면,
"99%가 빈공간"이며 늘 "흔들리고 있다"는 것을 밝혀냈다.

즉, 고정된 상태의 "빈공간"이 아닌,
"파동되고 있는 상태의 빈공간"인 것이다.
즉 특정한 주파수에 맞게 "파동"하고 있는 셈인 것이다.

우리와 같이 3차원 현실세계 속에 사는 생명체들은,
죄다 3차원 고유의 주파수에 맞게 파동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만약 이런 주파수를 조금만 달리해준다면,
손으로 잡혀지는 물질, 신체, 물체들의 "형태"와 "본질"까지도 죄다 다 바꿀 수 있는 이론이 성립된다.

그리고 바로 이 "우주의 비밀"이
하나님이 그의 "목소리"로 온세상을 만들수 있었던 비밀이고,
예수가 빈 바구니에서 "빵"을 계속 만들 수 있던 비밀이고,
인간이 영혼의 몸으로 "유체이탈"할 수 있는 비밀이기도 하고,
고대의 마술사들이 물건을 없어지고 나타나게 하는 비밀일 수도 있다.

그리고 이렇게 한 때 잊혀졌던 이런 최첨단 신성과학기술이,
이제야 서서히 다시 우리 인류의 자아속으로 스며들고,
되기억되가는 과정을 거치고 있는 것 처럼 보인다.

이렇게 소리가 중요하니....
음악에 대해 다시 한 번 고려해봐야 될 것 같지 않은가?

- Altoego

 

 

 

 

 

출처 : 홍익정도문화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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