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문명개벽중심, 한국

조로아스터 2017. 9. 22. 19:05

《시험받는 수운의 사회적 성격과 두 주문의 완성》
김상일 카톡방-170922

종교적 체험에는 반드시 ‘시험(trial)’이라는 과정이 따른다. 수운의 종교경험에서도 예외는 아니었다. 예수가 광야에서 받은 시험 이야기는 공관복음서에 모두 기록될 만큼 그 비중이 크다.

조기주는 수운의 경신년 체험을 ‘대각 1’과 ‘대각 2’로 나누어 ‘대각 2’에서 수운이 받은 시험의 내용을 다음과 같이 나타냈다. 종교경험에서 시험이 따르는 이유는 다름 아닌 앞에서 말한 깨달음의 세 가지 과정 때문이다(조기주, 1979, 30~33).

그리고 부처가 인간에게 세 가지 다른 모습으로 나타난다는 불교의 삼신설도 인간의 근기에 따라 개인이 시험을 받는 과정과 내용이 다르기 때문에 생긴 것이다.

신학자 라인홀드 니버(Reinhold Niebur, 1892~1971)는 인간이 유혹을 받는 세 가지 교만을, 권력에 대한 교만, 지식에 대한 교만, 거룩함에 대한 교만이라고 했다.

시험과 유혹은 깨달음의 세 과정 가운데 제1차 과정, 제2차 과정, 제3차 과정의 각 과정에서 모두 생길 수도 있으며, 특히 제1차 과정과 제3차 과정을 혼동하는 데서도 생길 수 있다.

득도가 한 과정에서만 생기는 것이 아니라 각 과정에서 생길 수 있기 때문에 각 과정에서 한 과정 자체를 절대시하거나 거기에 집착할 때에 시험은 유혹으로 변해 버린다.

니버가 말하는 ‘거룩함’에 대한 교만은 일종의 종교적 교만에 해당하며, 이것은 권력이나 지식의 교만을 극복했다는 자기 거룩함을 자랑하는 것이기 때문에 가장 의식하기 어려운 교만이다.

칸트는 이러한 교만을 ‘근본악’이라고 까지 했다. 동양 종교가 가장 쉽게 빠질 수 있는 교만이다. 깨달음의 마지막 단계인 제3차 과정에서 더 무서운 시험이 있고 유혹이 따른다는 것을 뜻한다. 오히려 이 마지막 과정이 가장 위험한 과정이라고도 할 수 있다.

그런데 가장 이상적인 종교체험이란 세 과정을 조화‧통일시켜 ‘투명(trans-parent)’해지는 데 있다.

세 과정을 과정별로 전자아‧자아‧초자아라고 할 때에 시험은 심지어 초자아(transperson)에서도 일어날 수 있음을 의미한다.

그래서 시험을 극복하는 방법으로는 초자아 위에 더 높은 차원의 자아를 설정할 것이냐가 문제시된다. 메타노이아의 메타 같은 것 말이다.

그러나 그 때에는 제4의 시험이 있게 마련이다. 여기서 초인격심리학은 이렇게 무한퇴행을 해서는 해결의 실마리가 없다고 보며 세 자아를 관통시켜 동시에 초월시켜야 한다고 본다.

영어의 ‘trans’는 ‘통하게 한다’ 또는 ‘통일시킨다’ 등의 뜻이 있다. 방법은 세 과정과 세 자아가 상호 감시하는 길밖에 없으며, 그러기 위해서는 서로가 서로를 투명하게 들여다보도록 만들어야 한다.

감각과 이성과 영성은 상호 감시 작용을 해야 한다. 감각은 영적 자아가 너무 초월하지 못하도록 밑으로 잡아당겨야 하고, 이성은 감각이 너무 말초신경적이 되지 않도록 위로 끌어올려야 한다. 이성이 감정을 감시해야 하지만 감정도 이성을 감시해야 한다. 여기에 ‘투명인간(transparent person)’이 요청되는 이유가 있다.

‘투명인간’이란 다른 차원의 인간이 아니라 ‘감각(sense)’과 ‘영혼(soul)’이 관통해 있는 인간이다. 그래서 ‘전체적(holistic)’ 인간이 되는 것이다(Nitschke, 1995, 9).

매릴린 퍼거슨은 이를 ‘수정궁인간(aquarian man)’이라고 했다. 마치 어항 속을 어느 방향에서 들여다보아도 투명하듯이 세 자아는 관류하면서도 관통해야 한다는 것이다.

제우는 일상적인 감각과 감정의 세계에서 책임적 존재이다(무층).
제선은 탈속적인 구름 위에 있는 존재이다(선층).
수운은 일상적인 삶에서 떠나 27년 동안 방황한다. 그러나 다시 일상적인 삶으로 되돌아와 ‘수운’이라 칭한다. 가장 낮은 그러나 가장 높은 자아가 수운의 자아이다. 이를 깨달음의 삼과정이라고 한다.

‘상(常)-비상(非常)-상(常)’의 세 과정을 모두 거쳐 수운은 투명인간이 된다. 이러한 세 과정을 거치는 동안 그의 명호와 자는 복술-제선-제우-수운으로 변한다. 그리고 이것은 알감닥박 층의 층변을 시사한다.

그의 종교경험 속에는 전자아-원시종교적 또는 샤머니즘적 요소도 있고(복술), 사회정의 차원의 예언자적-자아의 요소도 있으며(제우), 초월적인 도가적인 요소(제선)도 있다. 그리고 수운은 이 세 자아를 모두 여과시켜 투명하게 만든다.

광야에서 40일 동안 시험받을 때에 악마는 금식 끝에 시장해 있는 예수에게 나타나 “이 돌들에게 빵이 되라고 말해 보라고 했다”.

무층의 복술이 받는 유혹이다. 매슬로우는 다섯 단계의 욕구충족 가운데 식욕‧갈증‧성욕 같은 것을 ‘기본욕구(basic need)’라고 했다. 악마의 유혹은 기본욕구에 대한 유혹이라 할 수 있고, 대부분의 인간들은 이러한 기본욕구의 유혹에서 지고 만다. 기본욕구는 감각차원에서 생기는 시험이라고 할 수 있다.

오늘날 대학에서 가장 인기 있는 학과가 돈벌이를 가장 잘 할 수 있는 학과라는 것이 바로 대학이 아직 인간의 기본욕구 충족에 부응하는 차원에 머물고 있다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가?

그리고 이러한 대학의 현실이 바로 오늘날 대학의 한계이기도 하고 우리 인간의 한계라고도 할 수 있다. 이 한계를 극복하지 못하는 한 인간이 초인격을 향해 가는 길은 험난할 것이다. 그러나 그 단계를 딛고 다음 단계를 지향해야 한다는 사실도 망각해서는 안 된다.

수운의 경우에는 악마가 아닌 하날님이 수운을 향해 시험을 건다. 하날님이 제우에게
“네가 지금 세상을 바로잡아 도탄에 빠진 세상을 구제하여 창생들을 건져 너의 뜻을 이루려고 하면 금력과 권력이나 돈이 없으면 불가능할 터이니 너에게 백의제상(白衣帝相)을 주리라”
고 하니,

수운이 대답하기를
“이 세상이 돈과 권력으로 망하게 되어 있는데 어찌 부귀로써 세상을 건지겠습니까? 이것은 사나움으로 사나운 것을 바꾸는 것이라 내 이를 원치 않는다”
라고 했다.

악마는 예수에게 나타나 높은 건물 꼭대기에서 한번 뛰어내리라고 한다. 공명심을 부추기는 시험이다.

하날님은 다시 수운에게 나타나
“네가 부귀를 원치 않는다면 권모술수로써 세상을 건지라”
고 한다. 이에 대하여 수운은
“세상이 권모와 간교로써 망했는데 어찌 다시 작은 꾀로 백성을 속여 일시적 평안을 도모하리요. 내 이를 원치 않는다”
라고 대답했다.

매슬로우의 말을 빌리면 이는 기본욕구 충족에 대한 유혹이다.
매슬로우는 인간의 두 번째 욕구는 어디에 속하려는 ‘소속감(membership)이고, 세 번째 욕구는 남으로부터 ‘인정(recognition)’ 받으려는 욕구라고 했다. 인정을 받고 싶은 데서 공명심이 생긴다.

 하날님은 다시 수운에게 나타나
“그럼 내게 조화의 술법이 있으니 네 이것으로 세상을 건지라”
고 한다. 이번 시험은 전과는 다른 종류의 것으로 매우 종교적인 성격을 지니고 있다. 하날님이 직접 주는 선물을 받으라는 시험이다.

복덕방망이 같이 온갖 재주와 사술을 부리는 기술을 주겠다는 요청이다. 이러한 제안에 대해서 수운은
“이것은 천리를 어기는 일이라 천지간 삼라만상이 모두 다 무위이화의 이치로 나고 자라고 살거늘, 어찌 천리에 어기는 술법으로 세상을 건지리요, 내 이를 원치 않노라”
고 대답한다. 그러면서
“하날님이 또한 그릇된 도로써 나를 가르치니 내 이제부터는 하날님의 명교와 가르침도 듣지 않겠노라”
고 심지어는 하날님과의 결별도 선언한다.

수운의 이 마지막 시험은 종교적 권력이나 기적에 대한 제안도 거부한 것이었다. 니버의 ‘거룩해짐’의 교만을 버리는 것이다. 이 장면은 야곱이 신과 벌리는 격투의 장면이다.

오늘날 종교가 돈과 권력의 유혹에서 모두 지고 말았다. 한국 교회 아무리 번창해도 이미 이 종교는 일제의 권력 앞에 무릎을 꿇은 시험에 진 종교이다. 그 다음부터 결국의 종착역은 돈과 권력일 수 밖에 없는 것은 당연하지 않는가?

여기서 수운이 시험을 이겨내는 논리를 한번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금력으로 타락한 세상을 같은 금력으로는 극복할 수 없다는 논리이다. 만약에 그렇게 될 때에는 악순환에 빠진다는 것이다.

이러한 악순환을 극복하는 방법은 바로 끊음, 즉 ‘단(斷)’의 논리로만 가능하다. 권모술수로 망한 세상은 권모술수로 구할 수 없다는 단의 논리로 수운은 대응한다.

예수가
“칼을 사용하는 자는 칼로 망한다”
고 한 논리와 같다. 칼은 공격의 수단인 동시에 방어수단이기 때문에 주객이 전도되는 데 따라서 얼마든지 그 용도가 뒤집힐 수 있다.

이러한 악순환의 논리를 그대로 사용하는 존재가 하날님이라면 그런 하날님과도 결별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수운은 ‘하날님’이란 존재에 대해서도 그 권위에 회의를 갖는다. 그러면서 ‘천리(天理)’의 중요함을 말한다.

무소불위(無所不爲)의 재주를 부리는 신은 위험하다고 보았다. 전지전능 무소불위의 인격신에 대한 거부라고 할 수 있다. 인격신은 아브라함에게 본 바와 같이 종자가 하늘의 별같이 바다의 모래 같아 질 것이라는 축복이다. 이런 축복을 향해 수운은 사양했다. 오늘의 동학 정신은 여기서 출발해야 한다.  

‘신 죽음의 신학(Death of God Theology)’이 복덕방망이(Deus ex Machina)로서의 신의 죽음을 선포하는 것과도 같다. 절대자로서의 인격신관이 범하는 과오의 일단을 수운이 지적한 것이다.

유대교‧기독교‧이슬람교같이 인격신을 궁극적인 존재로 생각하는 종교는 여기서 한계가 드러난다. ‘무소불위’의 인격신관은 온갖 폭행과 폭력을 자행해 왔으며, 인간이 이런 인격신의 대행자라고 자처할 경우에 종교적 폭력은 극에 달한다.

수운은 그 무소불위보다 더 궁극적인 것은 ‘무위이화(無爲理化)’의 천리라고 했다. 일단 인격신에 대해 수운이 천리天理와 같은 비인격적인 것으로 이동을 한다. 천리 다음으로의 이동은 ‘지기至氣’이다.

수운은 그의 궁극적인 개념에서 ‘하날님’의 무소불위와 ‘무위이화’ 가운데 어느 것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했는가. 이 점은 수운의 사상을 논할 때 가장 중요한 논쟁거리로 떠오른다.

수운이 21자 주문에서 비인격적인 ‘지기’와 인격적 ‘천주’를 대비시킨 원인이 여기에 있다.

수운은 을묘천서에서 비롯하여 경신년 천사문답에 이르기까지 인격적 존재인 ‘하날님’과 지속적인 대화를 가져왔다. 그러나 그러한 하날님마저도 나중에 그가 발전시킨 ‘지기(至氣)’인 무위이화보다 못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자기에게 시험을 거는 존재를 수운은 회의를 가지기 시작하면서 그런 존재에 대한 초월은 무엇인가 그것을 찾는다. 그는 ‘하날님(天主)’과 ‘지기’ 사이에서 그 우열 그리고 그 선후에 대하여 고민한다.

권력이나 금력에 의한 시험은 불교의 삼신 가운데 화신化身 혹은 응신應身에서 나온다. 붓다의 몸 가운데 바로 화신이 중생들의 기본적인 욕구를 만족시켜 주기 때문이다.

그러나 하날님은 붓다의 보신報身적 존재와 같은 모습으로 나타난다. 보신적 모습에도 회의를 갖는다. 보신이란 역사 속에서 인격체로 나타나는 존재를 두고 하는 말로서 싯다르타 붓다 그리고 예수라는 이름을 갖는 존재들이 이에 해당한다.

수운은 천주에서 인격적 성격을 제거한 그러한 장소가 있다고 보았으며 이를 ‘지기至氣’라고 했다. 불교의 법신法身 같은 존재를 두고 하는 말이다.

기독교도 예수를 ‘그리스도’라고 할 때에 그 궤도가 같다고 할 수 있다. 그리스도는 예수와 ‘신성Godhead'의 사이 존재이다.

그러나 이단으로 몰린 영지주의가 신성 만을 궁극적이라 주장하다 결국 이단시 되고 만다. 불교에서는 법성을 삼신 가운데 한 분으로 긍정하는 것과는 대비가 된다.

수운은 드디어 두 개의 주문을 동시에 말할 수 밖에 없게 되었다. 즉,

시천주조화정영세불망만사지’(본주문)과
‘지기금지원위대강’(강령주문)이 그것이다.

이에 ‘하날님’ 말씀도 듣지 않겠다고 하고 내놓은 이 두 개의 주문에 대하여 다시 하날님의 음성이 다음과 같이 들려 온다.

아름답다. 너의 뜻이여,
가상하다 너의 절개여,
너의 공부가 이미 지극하고,
너의 수련이 이미 도수에 차고,
너의 행실이 이미 원만하니
내 이제 너에게 보국안민하고
포덕천하하여 광제창생하고
지상천국을 건설할
후천 오만 년의 무극대도를 주노라.

“가련하다 가련하다”
로 시작된 수운의 사회적 성격은
27년의 긴 방황 끝에
“기장하다 기장하다”
로 바뀌고 이 음성을 듣고는 순간적으로 갑자기 온몸에 새 기운이 돌며 마음에 새 생각이 일어나 여태껏 공중에서 들리던 하날님 말씀이 수운의 내면적 가슴속에서 우러나온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된다.

밖에 있던 보신적 하날님이 내면적 법신으로 변하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 그래서
“내 마음이 네 마음”
인 지경에 이르러 후대에 나누어 논쟁이 되는
 ‘향벽(向壁)’과 ‘향아(向我)’의 구별이 이 때부터 생기게 된다.

이제부터는 밖에서 그리고 위로부터 들려오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묻고 대답하는” 자기언급적으로 되어 버린다.

스스로 묻고 스스로 대답하여
무궁을 외우고 무궁을 노래하니
천지일월 금수초목 인물이 한가지로
그 노래에 화답하여
억천만의 공간이 눈앞에 있고
억천만 년의 시간이 눈앞에 있어
먼 데도 없고 가까운 데도 없으니,
지나간 시간도 없고,
오는 시간도 없어
백천억 무궁수의 시간과 공간이
한 조각 마음속에 배회함을 느낀다(조기주, 1979, 32).

수운의 사회적 성격은 궁극적으로 보국안민‧포덕천하‧광제창생‧지상천국을 이룩하자는 데 있다. 그 사이에 수많은 마음의 갈등과 시련, 그리고 유혹과 시험 앞에서도 굴하지 않고 지나오게 되었다.

그는 그 후로도 1년 2개월 동안 칩거하면서 거듭 하날님으로부터 직접 들은 음성의 진위를 확인하고 자신과의 대화를 계속한다.

2년 전 용담으로 되돌아온 것이 외면적 자기언급적 행위였다면, 이제 내면적 자기언급을 함으로써 사회적 성격이 성숙해졌다. 이렇게 그의 사회적 성격은 종교적 성격을 떠나서 생각할 수 없다.

수운의 사회적 성격이 성숙해지는 과정에서 볼 때에 그의 사상 가운데 주요 부분인 신관도 변화‧발전하는 모습을 발견하게 된다.

그는 처음에 환청과 환시를 기대했을지도 모른다. 그는 을묘천서 이후 이를 넘어서 인격신과의 직접적인 대화를 한다.

그러나 그는 인격신도 넘어선 비인격적 ‘무위이화’ 또는 ‘지기’에 호소한다. 그러면서 다시 하날님을 찾기도 한다.

그렇다면 그에게 인격과 비인격의 구별은 무의미하며 양자는 상호 재귀적 관계 속에 있다고 할 수 있다. 비인격에서 나와 인격으로, 그리고 다시 비인격이 되고 다시 인격으로 들어간다.

이 말은 하날님(천주)이 지기가 되고 지기가 다시 하날님이 되는 과정이 되먹임한다고 볼 수 있다.

 
 
 

지구문명개벽중심, 한국

조로아스터 2017. 9. 22. 13:26

단군신화라는 용어에 더이상 반론이 없으므로 이제부터 신화라고 부르겠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단군신화를 신화라 부르는 것조차도 아주 못마땅하게 여기고 있다. 아마 이 단군신화의 내용을 신화적으로 볼 것이 아니라 역사적인 사실로 보아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그래서 단군사화檀君史話나, 단군실화檀君實話로 불러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런 주장도 일면 타당성이 있다. 그러나 세계의 모든 국조신화가 그러하듯이, 단군신화 역시 우리의 국조인 단군의 신성성神聖性을 천명하는 동시에 한민족의 신성성을 밝히는 것을 그 중심적 주제로 삼고 있다. 그러므로 이 이야기가 실제 역사적 사실을 압축하여 기록한 것임에도 불구하고, 그 표현 방식은 신화적일 수밖에 없다.
《역사의 연구》로 유명한 역사학자 아놀드 토인비는 신화적 방법이 결코 경험주의에 위배되지 않는다고 말한다. 그는 신화를 ‘보편적 진리를 이해하고 표현하는 직관적 형식’이라고 설명하고, 나아가 ‘달리 표현할 길이 없는 역사적 진실을 전달하는 데 필요하고도 불가피한 형식’이라고까지 말한 바 있다.
의심할 여지없이 단군신화는 역사적 사실을 신화적으로 기록한 것이다. 곰이 사람이 되는 것은 아무리 과학이 발전한다 하더라도 불가능한 일이다. 이런 점들로 보아 단군신화는 어디까지나 신화적 표현으로 보아야 한다. 단군신화가 역사적 사실이라고 하더라도 그렇다. 어느 민족이나 그 시조를 신격화시키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중국이 삼황오제三皇五帝를 신격화시키고, 일본이 천조대신天照大神을 신격화시키듯이 말이다. 따라서 나는 단군왕검이 실존實存했던 우리 민족의 실제 시조임에는 분명하나 이미 신격화된 존재라고 본다. 그런 면에서 보면, 오히려 현재의 단군신화라는 이름이 더 옳은 것이 아닐까 한다.


이제 오늘은 단군신화의 구조에 대해서 알아보기로 합니다. 우리나라에서 나라를 세운 시조들의 탄생신화에는 두 가지 유형이 있다. 하나는 건국시조가 하늘로부터 강림하는 천강天降신화 유형이요, 다른 하나는 건국시조가 알을 깨고 나오는 난생卵生신화 유형이다. 종교학자 이은봉 교수가 말한 대로, 이런 신화 유형은 바로 우주가 어떻게 생겨났는가 하는 기원에 대한 당시 사람들의 생각을 반영하고 있다.
즉 천강신화는 우주의 근원을 알 수 없는 아득한 때로부터 어떤 전능한 신이나 창조자가 존재하여 이 세계를 창조했다고 바라보는 것이고, 난생신화는 그 창조자를 전제하지 않고 이 세계는 하나의 알 같은 씨앗이나 혼돈으로부터 차츰차츰 진화하여 지금의 우주가 되었다는 것이다. 전자는 신이 우주를 창조했다는 주장이요 후자는 우주가 진화되어왔다는 주장으로, 소위 말하는 창조론과 진화론과 맥을 같이한다.
이를 김상일 교수는 얼이 알이 되는 퇴화와, 알이 얼이 되는 진화로 설명하기도 한다. 얼이 알이 되는 것은 하늘에서 하강하므로 퇴화요, 알이 얼이 되는 것은 땅에서 알로 깨어나 왕이 되므로 진화라는 것이다. 이러한 퇴화와 진화는 생生과 성成이 되어 우주에서 조화를 이루며 역동적으로 작용한다.
이러한 두 유형의 신화는 세계에도 보편적으로 널려 있다. 아마도 이 세상이 만들어진 기원에 대한 근본적인 견해 차이에서 비롯하였을 것이다. 아마 영원히 좁혀지지 않을 간극일지도 모른다.


지난 번에 이원재교수께서 단군시화가 아니라 환웅단군신화라는 말씀을 하셨는데, 단군신화라면 모두들 단군왕검에 관한 이야기로만 생각한다. 제목만 보면 그렇게 오해하기 딱 알맞다. 그러나 사실은 그렇지 않다. 단군신화를 꼼꼼히 뜯어 읽어보면, 우리는 이 이야기가 하나의 이야기만이 아님을 알 수 있다. 이 신화 속에는 두 개의 이야기가 하나로 합쳐져 있음을 발견할 수 있다.
전반부의 이야기는 환웅천왕에 관한 것이다. 환웅이 환국桓國으로부터 그를 따르는 무리 3천과 함께 태백산 지역으로 내려와 신시국을 건설하고, 천왕이 되어 3정승과 함께 홍익인간의 이념으로 인간세상의 모든 일을 이치로 다스린 이야기이다. 이렇게 건국신화의 주인공이 하늘에서 내려오는 신화를 보통 천강신화天降神話라고 한다.
후반부의 이야기는 단군왕검에 관한 것이다. 단군은 환웅천왕과 곰녀 사이에서 태어나 조선을 건국하고 아버지 환웅천왕처럼 홍익인간의 이념으로 세상을 다스리다가 나중에는 산으로 들어가 산신이 되었다는 이야기이다. 이렇게 건국신화의 주인공이 땅에서 태어나 왕이 되는 신화는 일반적으로 난생신화卵生神話의 한 유형으로 볼 수 있다.
 바로 여기서 우리는 단군시화만이 가진 특이한 점을 발견할 수 있다. 그것은 천강신화와 난생신화가 하나의 이야기로 구성되어 있는 점이다. 앞에서 이야기한 대로 세계의 건국신화를 유형별로 크게 나누면 천강신화와 난생신화라고 했다. 대부분 다른 나라 건국신화들은 천강신화이거나 혹은 난생신화인데 반하여, 우리의 단군신화는 천강신화와 난생신화가 하나로 융합되어 있다. 이 두 신화는 서로 정반대의 유형이다. 하나는 하늘에서 땅으로 내려와 왕이 되고, 하나는 땅에서 태어나 왕이 된다. 이런 정반대의 신화유형을 하나로 묶은 것은 우리 민족이 일찍부터 뫼비우스적인 사고방식을 가지고 있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즉 단군신화는 하늘에서 내려오고, 땅에서 태어나 왕이 되어 끝내는 산신이 되어 하늘로 올라가는 ‘하늘땅 오르내리기’ 구조이다. 뫼비우스 고리란 것도 겉으로 가다 보면 속이 되고 속으로 가다 보면 겉이 되는 것으로, 결국 서로 정반대인 겉과 속이 하나라는 논리구조이다. 우리의 단군신화에서는 뫼비우스 고리처럼 하늘과 땅이, 신과 사람이 하나로 통한다. 서양수학에서 뫼비우스 고리를 발견한 것은 지금으로부터 한 150년 전 일인데, 우리는 무려 4천5백 년 전의 단군신화 속에서 뫼비우스 고리의 구조를 발견할 수 있다.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설중환 카톡방 170922  <쉬어가기 : 엽전과 핫바지>

한국인들이 가장 듣기 싫어하는 소리 중 하나가 엽전과 핫바지가 아닐까 한다. 이는 아마도 일본인들이 한국인을 비하하고 멸시하는 데 이 말을 사용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나는 오히려 이 말이 한국인의 특성을 가장 잘 표현한 것이라고 본다.
일본인들이 한국을 강점한 후, 가장 이상하게 여긴 것이 무엇이었을까. 아마도 그들로서는 엽전과 핫바지의 모습이 잘 이해되지 않았을 것이다. 엽전과 핫바지는 앞뒤가 서로 같기 때문이다.
조선시대의 상평통보는 앞뒤의 글자 모양이 서로 같다. 이처럼 핫바지도 앞뒤가 서로 같아 어느 쪽으로 입더라도 별 탈이 없다. 엽전이나 핫바지에 뫼비우스 띠의 원리를 적용하여 만들었기 때문이다. 이런 뫼비우스 문화를 이해할 수 있는 전통이 없었던 일본인들로서는 그게 야만스럽게 보였다. 그래서 한국인을 천시한답시고 엽전이니 핫바지니 하며 놀려댔던 것이다. 이는 당시 일본인들이 서양의 이원론에만 익숙하여 오히려 일원론적인 우리 문화의 진면목에 무지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것은 한국인의 가장 위대한 문화유산 중의 하나이다. 앞에서도 이야기했듯이 단군신화 역시 뫼비우스 고리로 연결되어 있으니, 천강신화와 난생신화가 엽전이나 핫바지의 앞뒤처럼 서로 표리를 이루며 하나의 신화로 구성되어 있다. 천강신화가 앞면이라면 난생신화는 뒷면이다.
이 두 신화는 서로 정반대의 유형이다. 천강신화는 하늘에서 신이 인간으로 내려오는 것이고, 난생신화는 땅에서 인간으로 태어나 끝내는 하늘의 신이 되는 이야기이다. 서로 기름과 물이다. 그러나 우리는 이를 한 덩어리로 만들어버렸다. 비빔밥이다. 앞뒤를 같이 만든 엽전과 핫바지의 뫼비우스적 사고방식이 이런 신화를 낳았던 것이다.
이렇게 우리 ‘한’ 민족은 모든 것을 하나로 통합해버리는 특성을 지니고 있다. 극과 극은 서로 통한다고 보는 것이다. 그러므로 단군신화에서도, 하늘과 땅이, 신과 사람이 서로 음과 양으로, 음양의 교호작용에 의해 하나의 세계를 이루고 있다. 사람과 신이 서로 오가는 것이다. 신이 사람이 되고, 사람이 신이 된다.
인내천人乃天이다. 한국인의 길은 신의 길을 가다 보면 어느새 인간의 길이 되고, 인간의 길을 따라 걷다 보면 어느새 신의 길이 된다. 마치 뫼비우스 고리처럼 엽전이나 핫바지의 앞이 뒤가 되고, 뒤가 앞이 될 수 있는 것처럼 말이다.


전남대 이채언 명예교수님의 글입니다...

........목하 진행 중인 북미대결이 북미 양국 사람은 물론 주변의 모든 나라 사람들에게 만족스런 결말이 초래되기를 기원하며 제가 쓴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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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국은 북미대결을 어떻게 마무리 지어야 할까?
이 채 언 (전남대학교 경제학부 명예교수)
ICBM을 개발하고 거기에 바로 장착해서 당장 써먹을 수 있는 수소폭탄 탄두까지 완성한 북조선과 미국과의 대결이 막바지로 치닫고 있다. 이 대결이 어떤 경로를 통해 어떤 결말을 가져올지 세계인은 숨죽여가며 지켜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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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미국의 대응에 관한 남한의 지배적 예측은 주한미군철수와 북미평화협정에 그치고 있다. 북과 군사적으로 대결하면 두 나라의 공멸을 가져오므로 북이 요구하는 대로 ‘대북 적대정책을 포기하는 것’ 이외에는 달리 방법이 없다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북미평화협정은 바로 ‘대북 적대정책의 포기’를 나타내는 것이라고 해석한다. 북이 미국에 대해 요구해온 ‘대북 적대정책의 포기’를 남한 언론이 주한미군철수와 북미평화협정을 의미한다고 대중들을 세뇌시켜 온 탓에 한국의 많은 사람들은 미국이 주한미군을 철수하고 북미평화협정만 하면 북에서 대북 적대정책을 포기하는 것으로 간주한다고 잘못 알고 있다. 또 ‘북의 체제를 인정’하거나 ‘북의 체제존속을 보장’하는 것이 바로 ‘대북 적대정책의 포기’라고도 착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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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제를 인정하는’ 것이면 북미수교만으로도 충분할 것이다. 하지만 수교는 해도 그 나라에 대한 적대정책은 끝까지 포기하지 않을 수 있다. 냉전시대에 미국은 표면적으로는 소련과 수교도 하고 평화공존도 약속했지만 소련에 대한 적대정책은 끝까지 버린 적이 없었다. ‘북에 대한 적대정책의 포기’는 ‘북미수교’나 ‘북미평화협정’ 이상으로 더 진전된 요구이다. 남한 언론에서 내세우는 ‘북의 체제존속을 보장’하는 조건도 사실은 북의 요구가 아니다. 북의 체제존속을 감히 누가 보장하느니 마느니 한단 말인가? 북의 체제존속은 북의 인민들이나 할 수 있고 그럴 권리를 가졌다. 제3자에 불과한 미국이 북의 체제존속을 보장한다는 것은 그야말로 주제넘은 짓이고 실제로 그럴 능력도 자격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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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한 언론은 마치 북의 체제가 언제 어떻게 붕괴할지 모르는 불안감 때문에 북에서 핵무기와 미사일을 개발하고 있다는 식으로 거짓보도를 일삼았기에 사람들은 마치 미국이 북미수교를 안 하고 있어서 북에서 핵과 미사일을 개발하는 줄로만 알고 있다. 거짓보도를 하는 언론 저네들도 선배들이 예전부터 해온 거짓보도를 그대로 믿고 자란 후배들이라서 그것을 진실인 양 그대로 받아들이는 바람에 지금 남한사회 전체가 사실은 실제의 북한과는 전혀 다른 허위의 북한을 사실인 양 인식하고 있다. 가장 앞서 있다는 문정인 대통령특보도 북미가 서로 “한미합동군사훈련의 중단과 동시에 핵개발과 미사일개발의 중단”을 교환하면 문제가 풀릴 것으로 믿고 있다. 한미합동군사훈련의 중단은 북에서 2-3년 전에나 제시한 요구이기 때문에 이미 그 시효는 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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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북에서는 미국이 ‘대북 적대정책을 포기해야’ 핵과 미사일의 개발을 중단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이는 무엇을 의미하는가? 북의 체제를 인정하고 북의 체제에 위협을 주지 않는 것은 물론이고 북의 생존방식, 북의 생존철학에 대해까지도 시비를 걸지 말아야 적대정책을 포기하는 것으로 간주될 수 있다. 지금 과거의 미소관계와는 전혀 차원이 다른 북미관계를 요구하고 있는 것이다. 당시 미소 두 나라는 국교도 맺고 서로 평화공존도 하면서 상대방체제에 대해 전혀 위협도 가하지 않았다. 그렇지만 민간차원에서는 선전선동수단을 총동원해서 언론과 학문의 자유를 빙자하여 상대방체제를 비방하고 상대방의 생활방식이나 사상과 철학에 대해 문학·예술적으로나 학문적 및 이데올로기적으로 끈질기게 상호 비판하는 냉전관계였다. 북에서는 앞으로 그따위 짓은 결코 용납할 수 없다는 입장이기에 북미수교로만 끝날 문제가 아니다. 미국과의 관계정상화에만 그치는 것이 아니라 북의 ‘전략적 지위 인정에 따른 미국의 대북 적대정책의 폐기’를 요구한다. 한 마디로 북은 미국보다 우위에 선 패권국으로 대접받아야 한다는 것이다. 이런 대접은 한바탕 북과의 전쟁으로 미국이 만신창이가 되지 않는 한 미국으로서는 받아들이기 어렵다. 마치 전국에서 싸움질을 제일 잘 한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전국의 대장노릇을 하겠다는 것과 같기 때문이다. 그런 논리는 깡패세계에나 통하는 것이지 문명된 인류사회에서는 통하기 어렵다. 북에 대해 여태까지 자기들이 묘사해온 그림 그대로 경제생활에서나 과학기술에서 세계적 수준은커녕 아프리카의 어느 빈국수준이라고만 알았는데 어느 날 갑자기 군사력이 최고수준에 이르렀다고 그것 하나만으로 미국인들이 대장으로 떠받든다면 무슨 낮도깨비 같은 짓이냐고 모두들 수긍하기 어려워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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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물의 세계에서는 기존 위계질서에 도전할 새로운 강자가 출현하면 기존의 질서를 지키기 위해 기존의 강자가 스스로 몸을 던져 새 강자의 출현을 온 몸으로 막는다. 인간세계에서도 동물의 세계와 마찬가지로 그럴 경우에는 반드시 전쟁을 하게 된다는 것이 정치학에서는 ‘투키디데스의 함정’이다. 이제는 그러나 인류 역사상 초유의 이변이 일어났다. 적어도 2017년부터는 그런 식의 패권전쟁이 인간세계에서는 더 이상 일어나지 않게 되었다. 자칫하면 미국을 지도상에서 아예 지워져버릴 수도 있다는 새로 출현한 강자의 다짐이 어쩌면 정말 실현될지 모를 개연성이 있다고 기존의 패권국가인 미국이 스스로 인정하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그동안 누려온 자기들의 패권을 미국이 순순히 북에게 넘겨줄리 만무하다. 어떻게 하면 패권이 북에게 넘어가지 않도록 막을 것인가? 미국이 선택할 길은 두 가지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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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는 상대방에게 군사적 충돌까지는 아니더라도 그에 못지않은 피해를 입힐 경제적 외교적 고립화를 다그치는 것이다. 북조선이 군사적으로는 어쩌다가 요행히 우수한 핵과 미사일을 갖게 되었다 해도 마약밀매와 위조지폐의 발행이나 일삼는 범죄국가라는 이미지를 미국의 영향력이 미치는 지구촌의 모든 미디어를 총동원해서 널리 선전하여 대북제재에 동참할 패거리를 확장하는 것이다. 현재로는 미국이 유일한 패권국이기 때문에 미국의 지시를 따르는 나라를 대대적으로 끌어 모아 북을 압박하는 식의 외교적 경제적 싸움에서는 미국이 북쪽보다 훨씬 유리한 위치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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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외교적 경제적 고립화전략이 성공하려면 북과 인접한 남한, 중국, 러시아의 협조가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중국과 러시아는 미국의 프로파간다가 전혀 안 먹혀 드는 나라들이다. 이들 나라는 자기나라의 국익에 도움이 된다면 당장 악마와도 손을 잡겠지만 국익에 도움이 안 되면 아예 협조를 않거나 방관 또는 거부할 나라들이다. 그래서 미국은 러시아와 중국의 협조를 강제하기 위해 미국에 비협조적인 중국회사와 중국금융기관을 국제결제네트워크에서 제외시킴으로써 국제금융거래 자체를 아예 못하도록 조치한다는 것이다. 적어도 사기업이라면 국가이익이나 장기적 이익보다는 단기의 사적 이익에 더 민감한 법이므로 미국의 요구에 순순히 복종할 것으로 믿는 것이다. 그러나 이 조치가 실제로 취해지면 미국에게는 돌이킬 수 없는 결정적 패착이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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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 국제간의 금융결제는 SWIFT라는 온라인에서의 국제결제시스템을 이용한다. SWIFT의 컴퓨터서버는 벨기에에 소재하지만 시스템의 관리권과 통제권은 미국 재무장관에게 있다. 한때 미국이 대북제재를 위해 북과 거래하던 BDA은행을 제재할 때에도 BDA를 SWIFT에서 배제하였는데 이때 BDA와 거래하던 당시의 많은 고객들은 그 때문에 엄청난 불편과 고통을 겪어 대부분 BDA를 떠났다. 이번에도 미국은 북한과 관련되는 이전보다 더 많은 숫자의 중국회사와 은행을 SWIFT에서 배제함으로써 그와 유사한 불편과 고통을 수십 배로 증폭시키려 한다. SWIFT이용을 배제당한 중국회사나 은행과 거래하는 고객들도 그들과 거래를 중단하거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과의 거래를 계속하고 싶으면 SWIFT를 대신할 다른 결제시스템을 찾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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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불과 1년 전까지만 하여도 국제금융결제는 SWIFT 하나 밖에 존재하지 않았지만 이제는 SWIFT 없이도 국제거래를 아무 지장 없이 마음껏 할 수 있는 대안의 시스템이 별도로 있다. SWIFT와는 전혀 별개의 독립된 CIPS라는 국제금융결제시스템을 지난 2016년 5월에 중국과 러시아가 손잡고 함께 발족시킨 것이다. CIPS는 중국이 전적으로 책임지고 관리하고 있다. 2014년 3월 우크라이나사태 때 러시아가 크림반도를 무력으로 병합하면서 미국으로부터 대대적인 경제제재를 받게 되자 중국과 러시아가 합작하여 SWIFT를 대신할 별도의 금융결제시스템을 2년에 걸쳐 만든 것이다. 곁들여 국제신용카드 결제시스템도 미국을 경유하지 않고 독자적으로 거래할 수 있도록 조치하였다(예, Union Pay 카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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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결제시스템은 얼마나 많은 이용자들이 이용하는가에 따라 성패가 좌우된다. 원래 비정치성과 안전성 및 편의성이 가장 크게 보장되는 곳에 이용자들이 몰려 규모의 경제를 이루면 바로 그곳이 성공적인 네트워크를 이룬다. 걸핏하면 어떤 정치적 이유로 국제금융거래에서는 가장 큰 손이라고 할 중국과 러시아의 은행들을 결제시스템에서 배제하면 그들과 거래하는 이용자들은 그 결제시스템을 이용하는 데 큰 불편을 느낄 수밖에 없다. 걸핏하면 정치적 이유로 특정 국가를 금융시스템에서 배제할지 모른다는 잠재적 개연성만 있어도 그 결제시스템의 이용가치는 그 자리에서 대폭 축소되는데 SWIFT는 이미 여러 차례 특정국가나 은행을 배제시킨 이력이 있다. 이제는 중국과 거래하는 다른 나라 회사와 은행도 자연스레 SWIFT를 버리고 CIPS를 찾아 떠날 것이다. EU를 탈퇴한 영국의 브렉시트(Brexit)가 영국 스스로를 유럽에서 왕따 시키는 사태를 자초했듯이 미국도 지금 글로벌 금융거래로부터 스스로를 왕따 시키는 아멕시트(Amexit)를 자초하고 있다.(주: Amexit란 용어는 필자가 최초로 고안해서 사용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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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미국이 국제금융거래에서 스스로를 왕따 시키면 어떤 사태가 초래될까? 이미 SCO(아시아판 나토)에 들어있는 브릭스 국가들과 구사회주의 나라들 및 남미의 주요나라들이 달러체제에서 이탈했는데 여기에 유로국가들이 가담하면 SWIFT의 중요성은 더욱 줄어든다. 국제간의 돈의 흐름을 한눈에 파악해왔던 미국이 그때부터는 까막눈이 된다. 그 때문에 초래될 미국의 국제적 영향력의 축소와 미국달러의 폭락은 미국경제를 침몰시킬 수 있고 미국과 운명을 같이해온 나라들의 경제도 동시에 침몰시킬 수 있다. 경제침몰과 함께 사회혼란이 극심해지면 국제사회는 결자해지의 원칙에 따라 북, 중, 러 세 나라가 협의해 미국을 분할하여 신탁통치할 것을 기대할 것이다. 이렇게 되면 미국의 경제적 외교적 압박공세는 얼핏 보기엔 미국에게 절대적으로 유리해 보였지만 종국적으로는 망국에 이르는 지름길이 된다. 미국의 경제침몰도 막고 미국과 운명을 같이하는 우방국의 경제침몰도 동시에 막으면서 북에게는 세계패권을 넘겨주지 않을 방법이 있다면 그것은 무엇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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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패권을 북에게 넘겨주지 않으면서도 북미대결에서 어느 나라도 패하지 않는, 북미가 동시에 비길 수 있는 방법이 미국이 선택할 최선의 길이다. 그 길은 미국이 자진해서 세계패권을 국제사회에 반납하고 아직도 잃지 않고 있는 국제사회에서의 영향력을 십분 발휘하여 ‘세계비핵화’ 및 '글로벌수준에서의 대량살상무기의 폐기'를 미국이 직접 주도해서 추진하는 것이다. 어느 나라도 패권을 누릴 수 없는 평등한 국제질서를 미국이 먼저 솔선해서 만드는 것이다. 이 길만이 북미대결이 북의 승리로만 끝나는 것이 아니라 인류 모두가 승리할 수 있는 인간승리의 유일한 방법이라고 본다.


 
 
 

지구문명개벽중심, 한국

조로아스터 2017. 9. 18. 18:52

 

추배도 (推背圖)예언!

추배도 예언 60가지 예언중 이미55가지의 예언이 적중하여 이루어지고

아직 5개남은 추배도예언 에 많은 관심이 집중되고 있습니다.

 

추배도 예언  1,400년만에 다시 발간된 금서 추배도(推背圖)

추배도 예언  당나라 태종 이세민 시대에 천문학자 이순풍과 원천강이 함께

그려낸 장차 미래의 길흉화복을 기록한 책입니다.

 

 

 

당나라 황실에서는 추배도 예언

여황제가 탄생할것이라는 추배도 예언 때문에 민심이 동요될 것을 우려해

추배도 예언서을 금서로 지정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여황제가 탄생할것이라는 추배도 예언은 690년 현실이 되어

여황제인 측천무후가 여황제의 자리에 오르게 되어

추배도 예언이적중하게 되었습니다.

 

그후 금서로 지정되었던 추배도 예언서는

1400년이 지난 1990년에 정식으로 출간되게 되었습니다.

 

 

 

추배도 예언 은 금서로 지정되었지만 60가지

 예언중 55가지 예언이 현실이 되어 적중되었기에

 예언을 해석하기 위해 많은 학자들이 관심을 집중시키고 있습니다.

 

 

 

추배도 예언서는 60폭의 그림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그림아래에는 예언의 시구가 적혀있고,

중국 역대 왕조에서발생한 대사에 은유를 담아 적어 있습니다.

 

그중에 45번째 추배도 예언 세계2차대전과 관련된 예언을 하였으며

53번째 추배도 예언 덩샤오핑의 등장으로

추배도 예언서에는 중국인의 생활이 윤택해진다는

예언이 들어있습니다.

 

 

 

그러나..

추배도 예언 60가지중 5가지 예언이 실현되지 않고 남아있다는것이

화제가되고 있습니다.

 

 

 

추배도 예언 56번째!

추배도 예언 3차대전을 의미하고 있으며 태평양을 사이에둔

두나라가 핵전쟁을 벌이며 수많은 사람들이 죽는 것을

예언한 것으로 해석합니다.

 

날아다니는 것이 새가 아니고,물속에 다니는 것이 물고기가 아니다.

전쟁에 병사가 없으며,이것들의 다툼이 마치 게임(놀이)을 하는듯 하다.

바다와 강역 만리에 걸쳐 다만 연기뿐이로구나

위로는 하늘 나라에서 아래로는 저승까지 미칠것이다.

기술로써 희롱하는 것이니,방패와 창이 닿기도전에

재앙이 하늘에 이르도다.

 

 

 

추배도 예언 57번째!
추배도 예언 인류를 구원할 인물이 등장할 것을 예언합니다. 

 

모든것이 극에 달하면 변화가 오는것이고,

독으로 독을푸니 참으로 작은 나라가,

강대한 네 나라를 복종케 한다.

물과불이 싸우는데 하늘의 아들을 보리라.

하늘이 이사람을 보내어 살의를 멈추게 한다.

이 믿을 수 없는 재주를 가진 인물은

오나라(미국)와 월나라(중국)가운데에서 나서,

서양화된 동양 사람으로 모든 전쟁을 멈추게 한다.

 

 

 

추배도 예언 58번째!

추배도 예언 전쟁이 끝나고 평화가 올것을 예언합니다.

 

세계 대전은 끝났다. 네나라는 이에 승복할 것이고,

여섯,일곱 나라가 형제로 칭하게 되리라.

분쟁과 포연은 멈추고 바다는 잔잔해 질것이다.

왕으로 칭하고 황제로 칭하는것도 평화롭게 통제되어

다만 살성은 서북으로 숨을것이니

아직은 모두가 태평가를 부를때는 아닐것이다.

 

 

 

 

 

 

 

추배도 예언 59번째!
추배도 예언 평화가  찾아온뒤 악을 행하지 않는

자만이 구원을 받은 수 있다고 예언은 끝을 맺었고

이는 다른 예언서들과 다르게 지구 세계의 종말과 다르게

평화의 결말을 보여주어 사람들의 관심을 끌고 있습니다.

 

나라의 경계도 없고 정부도 없으며 너도 없고 나도 없으니

천하의 모든 사람들이 일가가 되어

크게 화합하여 모여살게 되리라.

한 사람이 세계의 행복을 위하여 힘을 다하여 그 미래를 결정하니

인종과 민족의 구별이 없으며

동서남북 차별이 없는 세계를 만들것이다.

 

추배도 예언 60번째!

음양은 시작도 끝도 없으며

시작과 끝은 본래 자리로 돌아간다.

이루 헤아릴수 없는 하늘의 수가 이로써 중용을 구하며

세상의 흥망은 자기 맘대로 되는것이 아니다.

수많은 좋은 설법들 다함이 없으나

동방의 지혜를 받들어 따라가 섬김만 못하도다.

(세계 대전의 말세에 이런저런 구세의 방법이 있으나,

한민족을 따라가서 그들의 말을 듣는 것이야말로

살아남는 방법이란 뜻)

 

출처 : 아이린 중립혈맹 태을
글쓴이 : 딸랑탱구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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