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BOOK준비

조로아스터 2017. 1. 10. 18:46

책자의 판형과 인쇄시 맞춰줘야하는 종이결을 알려드리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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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전 계열(A형)

 

국배판(A4) - 210x297 - 국전횡목 - 국8절

 

국판(A5) - 148x210 - 국전종목 - 국16절

 

국판 - 152x225 - 국전종목 - 국16절

 

국반판(A6) - 105x148 - 국전횡목 - 국32절

 

34판 94x142 - 국전종목 - 국36절

 

 

4x6전 계열 (B형)

 

타블로이드(B4) - 254x374 - 4x6전 횡목 - 8절

 

46 배판(B5) - 188x257 - 4x6전 종목 - 16절

 

46 판(B6) - 127x188 - 4x6전 횡목 - 32절

 

46반판(B7) - 94x128 - 4x6전 종목 - 64절

 

30절판 - 125x205 - 4x6전 종목 - 30절

 

36절판 - 103x182 - 4x6전 횡목 - 36절

 

12절판 - 251x264 - 4x6전 횡목 - 12절

 

35판 - 112x170 - 4x6전 종목 - 32절

 

크라운판 - 176x248 - 4x6전 횡목 - 18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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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의 판형이 많이 쓰이는 이유는 해당 판형으로 책자를 인쇄시 Loss가 최소화되어

 

효율성이 극대화되기 때문입니다.

 

직접 책을 제작해 보셨을지는 모르겠지만 위의 규격사이즈로 인쇄할때와

 

규격을 벗어난 별도의 규격으로 인쇄할때의 단가차이는 매우 큽니다.

 

비슷한 사이즈인데 100만원이면 만들수 있는 책을 약간의 사이즈 차이로 인하여

 

150만원 혹은 200만원 이상에 만들어야 한다면

 

왠만한 사람들이라면 규격사이즈에 맞춰서 책을 만들겠죠? ^^

 

 

 

이정도면 답변이 되셨을지 모르겠네요.

 

미약한 부분은 다른 지식인분들께서 더 알려주실거라 믿으며...

 

저의 답변은 여기서 줄이겠습니다.

 

 

지금까지 印助人間 이었습니다.

 
 
 

eBOOK준비

조로아스터 2016. 5. 21. 09:24

일본 신도(神道)의 비밀...日王, 한국말로 신라신(神) 모신다.

洪潤基 < 문학박사·한일역사문학연구회장 >

-2002년2월호 신동아-

▼ “일본은 조선의 분국(分國)” ▼

아무튼 538년 이전의 왜왕실에서 불교의 발자취는 전혀 찾아볼 수 없었고,
당시까지는 백제인 왜왕실에서도 신도를 존중해왔다.

엄밀하게 지적한다면, 이 신도는 고조선의 단군 숭배 등 천신(天神)신앙이 그 원류였다고 본다.
구태여 ‘신라신도’라고 분명한 구별을 한 것은 아니다.
집약적으로 표현하자면 단군 후손인 고조선의 신도가 일본의 야요이시대(BC 3년∼AD 3년)에 일본열도로 전파되었던 것이다.

(주:야요이시대 - 일본 최초의 청동기시대.발견된 유골의 유전자 분석으로 (일본 연구소) 연구 결과 한국인이 전해준 것으로 드러남.)

즉 벼농사에서부터 대장간의 철기 생산, 금속공예, 베틀의 직조 등에 이르기까지
고대한국의 온갖 산업문화가 일본으로 유입되면서
자연스럽게 우리의 천신(天神)신앙인 신도(神道-풍류도)도 일본에 스며들게 되었다.
우리 고대문화가 일본문화의 원류라는 사실은 지금까지 일본의 저명한 학자들이 진솔하게 시인해왔다.
이를테면 카큐슈우인대의 오오노 스즈무(大野 晋, 1919∼) 교수는
한반도에서 건너온 사람들이 “왜인에게 금속 사용법을 가르치고, 야금·금공 기술을 전했으며,
염색·피혁제조·베틀 직조·기와 제조·의학·역법·천문학·조불(造佛)·사찰 건축·조탑 등 모든 것을 가르쳤다”(‘日本語の 世界’, 1980)고 밝혔다.
하늘신의 자손들이 지상으로 내려왔다는, 일본의 천손강림 신화도 조선의 건국신화에서 유래했다고 말한다.
“일본의 천손강림 신화가 조선 각국의 건국신화와 현저하게 유사한 것을 보이고 있다.
…한반도 남쪽에서 벼농사를 하고, 그곳에서 금속기를 만들어 생활하고 있던 종족이 천손강림 신화와 금속기 등을 일본으로 가져왔다고 본다.”(앞의 책)

당시 농경을 비롯한 온갖 산업문화를 가지고 건너간 한반도 사람들이,
미개한 일본땅에 정착하면서 그 선주민들을 지배하게 된 것은
너무도 당연하고 자연스러운 일이다.
그러기에 일본의 여러 권위 있는 사학자들은 일본 천황가가 한반도로부터 건너온 사람들이라고 밝히고 있다.

마쓰모토 세이쵸우(松本淸張)씨가‘한일동족설’을 매우 설득력 있게 밝힌 것은 꽤 유명하다.
“도대체 일본인의 원주민은 어디서 왔는지 알 수 없다.
모름지기 인도네시아인이 많다고 생각하는데, 가령 이들 원주민을 ‘야요이인’이라고 치자.
그 원주민들이 살고 있던 곳에, 조선에서 건너온 민족이 있었다.
이것이 이른바 조선의 ‘이즈모(出雲)’ 민족이다.
이 이즈모 민족이 제1차 도래민족으로서 야요이시대 전기 경부터 상당수 건너와서 살고 있었던 것이다.
뒤를 이어 조선에서 천손족(天孫族), 기마(騎馬)민족이라고도 하는 사람들이 계속해서 건너왔다.
또 한가지 극언(極言)한다면, 일본은 조선으로부터 갈라져 나온 조선의 분국(分國)이다.”
(‘東京新聞’, 1972년 4월1일자 조간)

마쓰모토 세이쵸우가 지적한 ‘이즈모’ 민족은 ‘신라’족을 가리키는 것이며,
천손(하늘의 후손)족은 단군신화를 비롯해 고구려신화, 신라신화, 가야신화 등을 가진 우리 민족 전체를 통틀어 가리킨다.
또한 기마민족의 경우도 부여, 고구려, 백제, 신라 등 고대 만주 땅에서 살다가
한반도로 이주한 우리 민족 전체를 일컫는 것이기도 하다.
또 저명한 고고학자 미카미 쓰구오(三上次男)의 연구를 인용해,
토우쿄우대 사학과의 이노우에 미쓰사타(井上光貞) 교수는 다음과 같이 지적하고 있다.
“'야요이'시대에 조성된 북큐우슈우의 ‘고인돌’은 똑같은 시기의 남한에서도 행해졌던 묘제(墓制 - 묘의 형식)인데,
이는 남한에서 발생했던 계급사회의 지배자가 북큐우슈우로 이동했다는 것을 말해주는지도 모른다.
기원전 2세기경의 일이라면 이상할 것이 없다.”(‘日本國家の起源, 1967)

▼ 경상도 말로 제사 지내는 천황가 ▼
아무튼 불교가 전파되기 이전 고대 왜왕실에서 신라 신도 제사를 지켜왔다는 것은 역사 기록에서도 살펴볼 수 있다.
6세기경의 고대 역사기록인 ‘구사기(舊事記)’의 ‘천손본기(天孫本紀)’에는
신라 신도 제사를 담당해온 '모노노베노(物部)' 가문에 대한 상세한 계보가 밝혀져 있다.
그런데 이 제사 때는 놀랍다고나 할까, 아니 당연하다고 할까,
경상도 말인‘신라어’로 강신(降神)의 축문을 외운다.

긴 축문 속에서 계속 반복되는 경상도 말은 다음과 같다.
원문은 물론 한자어인데, ‘아지매 여신(女神)’이 신라로부터 천황가 제사 자리에 오라고 부르는 초혼(招魂)이다.
아지매 오게, 오, 오, 오, 오, 오게
阿知女, 於介, 於, 於, 於, 於, 於介
일본말로 이 축문의 한자어들을 읽을 때에는 경상도 말이 그대로 나타난다.
이 축문의 한자 표기는‘이두(향찰)’식인 것이다.

위의 이두식 축문을 우리나라 말로 읽는다면
‘아지녀 어개, 어, 어, 어, 어, 어개’로 전혀 의미를 파악할 수 없는 말이 된다.
이렇게 천황가의 축문이 경상도 말로 읽힌다는 것은
두말할 나위 없이 천황가의 신도 뿌리가 경상도 말을 사용하는 신라 신도와 맞닿아 있음을 잘 보여주는 대목이라고 하겠다.
그런데 축문에 나오는 ‘아지매(阿知女)’란 무슨 뜻인가.
경상도 방언으로 ‘아주머니’라는 말인데 지금도 경상도 사람들은 아주머니를 아지매라고 표현한다.
오늘날 부인에 대한 존칭어인‘아주머니(아지매)’는 고대 신라에서 신분이 고귀한 여성, 신성한 여성, 즉 ‘여신’을 존칭하던 대명사였다고 본다.
그것을 뒷받침할 만한 또 하나의 증거가 있다.
일본 고대사에서는 ‘여신’이나 귀족 출신의 젊은 여성을 가리키는 말로 ‘오미나(をみな)’라는 여성대명사가 사용됐다.
일본 고대신화에서 태초의 개국신(開國神)인 ‘이자나기노미코트’가
최초의 처녀 여신 ‘이자나미노미코토’에게 ‘여자’라는 말을 쓸 때 ‘오미나’라고 부른 것이 그 최초다.
이 ‘오미나’는 본래 우리나라의 옛말인‘에미나’에서 나온 말이다.
고대 한국에서는‘여자’를‘에미나’로 불렀다.
그 흔적은 함경도며 강원도, 경상도 등 동해권 지방에서 아직도 통용되는‘에미나’라는 말에서도 잘 살펴볼 수 있다.
일본에서는 오늘날 일반 명사로서 ‘온나(おんな, 女)’라는 말을 쓰고 있다.
바로 이 ‘온나’의 어원이 귀족 여성을 칭하는 ‘오미나’라는 것은 일찍부터 저명한 일본어 학자들도 지적하고 있었다.
“오미나(をみな, 女)는 온나(おんな)이며 또한 매(め)라고도 부른다.
여신(女神)을 ‘오미나가미(をみながみ)’로도 부른다.”
[ 오미나 = 여(女) , 가미 = 신(神) ]
(金澤庄三郞, ‘廣辭林’, 1925)

경상도 방언에서는 또한 ‘어머니’를 ‘어매’라고 하는데,
여기서 매(女)는 ‘아지매’의 매와 통한다.
또한 이 매에서 뒷날 어미 모(母) 자를 이루는‘모’의 발음도 나왔다고 본다.

▼ 신라신(園神)과 백제신(韓神) ▼

현재의 일본 천황가에서도 신라신인 ‘소노카미(園神)’와 백제신인 ‘카라카미(韓神)’의 제사를 모시고 있다.
물론 일본 천황가 내부 사항은 일체 공개되지 않고 있어서,
일본의 전문학자들도 근래에는 천황가 제사에 관해 전혀 언급하고 있지 않다.
그러나 분명한 사실은 고대부터 일본의 천황들이 왕궁에서 제사를 모신 최고의 신은
신라신인 원신(園神, そのかみ)과 백제신인 한신(韓神, からかみ)이었다는 점이다.
그 사실은 일본 고대 천황가 문서에 상세하게 밝혀져 있다.

‘엥기시키(延喜式, 연희식)’라는 이 천황가 문서는
서기 905년 다이고천황(897∼930년 재위)의 명에 따라 집필이 시작된 이후 927년에 완성되었다.
장장 23년에 걸쳐 완성된 이 문서는 일본 천황가의 모든 왕실제도와 규범이 50권 분량으로 편찬한 중요한 역사 기록이다.
왕명에 의해서 이것을 작성한 주체는 후지와라노 토키히라(871∼909년) 대신과 그의 아우 후지와라노 타다히라(880∼949년) 대신 형제다.
왕실 귀족가문의 두 형제는 천황의 최측근으로서, 좌대신과 태정대신 등 최고 장관직에 있었던 백제계 인물들이다.
이 ‘연희식’의 제1권 신기(神祇)편에는 서두에 천황궁에서 모시는 사당의 3신이 나온다.
가장 앞에는 신라신을 모신 ‘원신사(園神社, 소노카미노야시로)’가 나오고
두번째로 ‘한신사(韓神社, 카라카미노야시로)’가 등장한다.(사진 1 참조)
또한 이 기록에 잇대어서 살펴보면, 천황들이 모셔온 왕실의 신은 모두 285신에 이른다.
그 순서도 맨 앞에 신라계 신사인 원신사에서 모시는 한 분의 신이 나오고,
뒤이어 백제계 신사인 한신사에서 모시는 두 분의 신이 등장한다.
그 다음으로 신라계의 여러 신들을 모신 신사가 줄을 잇는다.
‘카모신사(賀茂神社)’ ‘마쓰오대사(松尾大社)’ ‘이나리대사(稻荷大社)’ 등이 그것이다.
다음으로는 백제신 네 분을 모신 ‘히라노신사(平野神社)’ 등도 등장한다.
이것은 ‘연희식’ 편찬 당시 천황들이 백제 계열의 왕들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신라신들을 모신 신사와 백제신들을 모신 신사들의 서열에 차이가 있음을 보여준다.

(주: 신라인들이 먼저 일본의 왕들이 되고 후에 백제인들이 일본의 왕들이 되어
신라신들이 먼저 나오는 것으로 추정.)

이는 또 천황가 신화(神話)의 신들이 대부분 신라신이었으며,
일본 고대사(‘고사기’‘일본서기’)에 등장하는 신들도 신라신이 주도적이었다는 점과 관계가 깊다.
(신화는 보통 가장 앞선 시대의 인물을 묘사.)
그런데 일본의 '신통보'는 신라신과 백제신의 계보를 한 조상신의 후손신으로 표현하고 있는 점이 흥미롭다.
...어째서 신라신의 자식들 중에 백제신이 들어 있는지는 앞으로의 연구 과제다.

단 여기서 한 가지 지적해둘 것이 있다.
일본 최초의 역사책 ‘고사기’를 쓴 안만려(安萬侶, 야스마로, 723년 사망)는
조정에서 내무장관격인 ‘민부경’으로서, 백제 계열의 조신이었다.

아무튼 한신(韓神)은 일본 천황가 제사에 신라신과 함께 모시는 백제신이거니와,
‘증부리신’은 신라신 원신(園神)을 가리키는 또다른 표현이다.
‘증부리신’은 일본어로 ‘소호리’의 신, 즉 ‘서울’의 신이다.
(주: 서벌(서라벌) -> 서울)
'증부리신'으로도 불리는 원신이 신라신이라는 것은 일본의 권위 있는 사학자들의 통설이며,

쿄우토대 우에다 마사아키(上田正昭, 1927∼) 교수는 다음과 같이 논술했다.
“'증부리신'이라는 것은 소시머리(牛頭 - 소의 머리)와 연관이 있는,
신라(新羅) 연고를 가진 신의 이름이라고 생각해도 좋다.
한신(韓神)은 원신(園神)과 나란히 조정의 왕궁 안에 모신 신으로 존숭(존경 숭앙)되고 있고,
궁정의 진혼제 전야에 제사드리며, 그곳에서 ‘신의 음악(神樂)’도 연주하게 된다.
(주: 이 '신의 음악(神樂)'은 신라 백제에서 건너 간 음악으로 보임.)
그러기에 9세기 중엽에는 이미 존재하고 있었던 ‘카구라우타(神樂歌, 천황가 제사의식 때 축문 악보에 실린 제사 노래)’의 가사에는
‘나 한신은 한(韓)을 뫼셔오노라’고 노래부르는 것이다.”(‘日本神話’, 1970)

한국말로 하는 초혼사

지금도 일본 천황은 토우쿄우의 천황궁 안에서 ‘신상제(新嘗祭)’를 지낸다.
해마다 11월23일 거행되는 천신(天神) 제사다.
역대 일본 천황들은 대신들과 신관을 거느리고 직접 '신상제' 제사를 지내왔다.
이때 어김없이 신라의 아지매(阿知女) 여신을 초혼하며,
“아지매, 오게, 오, 오, 오, 오, 오게”의 축문을 연거푸 외우는 것이다.
이 축문이 담긴 것을 통틀어 신악가(神樂歌)라고 일컫는다.
제사 첫머리에 신라신과 백제신을 모신 신전 앞에서 장작불을 피우고
‘아지매’를 초혼하는 의식인‘아지매노와자(阿知女法)’로 의식을 치르는 것을 가리켜
천황가 제사의 ‘신악(神樂)’이라고 일컫는다.
이때 2명의 대신이 신전 좌우에 서서 엄숙하게 ‘아지매’여신의 초혼사 축문을 차례차례 외친다.
(본방) 아지매 오, 오, 오, 오.
(말방) 오게 아지매 오, 오, 오, 오.
(본방) 오게 오, 오, 오, 오, 오
(말방) 오 오게

이어서 신물(新物) 잡기 제사가 이어지면서 신악의 본축문인 한신(韓神)을 외우고,
악기를 연주하고, 신관이 근엄하게 춤을 춘다.
한신의 축문은 다음과 같다.
“미시마 무명 어깨에 걸치고, 나 한신도 한(韓)을 뫼셔오노라.
한(韓)을 뫼셔, 한(韓)을 뫼셔 오노라.
팔엽반을랑 손에다 쥐어잡고, 나 한신도 한을 뫼셔오노라.
한을 뫼셔, 한을 뫼셔 오노라.
(본방) 오게 아지매 오, 오, 오, 오
(말방) 오게.”
여기서 한신(韓神)은 당연히 백제신이며, 한(韓)은 한반도의 신을 뜻한다.
또 이 경우 한韓은 여신인 아지매를 가리키기도 하는데,
단군의 어머니인 웅녀신(熊女神)을 그 옛날 신라어(경상도 말)로 ‘아지매’로 호칭한 게 아닌가 싶다.
이는 ‘일본서기’의 스이닝(垂仁, 3세기경)천황 당시의 역사 기사에서
“신라왕자 천일창(天日槍)이 곰신단(熊神籬, 쿠마노 히모로기)을 가지고 신라로부터 일본으로 건너왔다”고 하는 기사에서 유추해볼 수 있는데,
에도시대(1607∼1867년)의 저명한 고증학자 토우테이칸(藤貞幹, 1732∼1797년)은 곰신단에 대해 이렇게 지적하고 있다.
“곰신단(쿠마노 히모로기)의 히모로기(ひもろぎ)는 신라어다.”(‘衝口發’)
즉 ‘히모로기’는 제사 모시는 신단이라는 신라어(경상도 말)라고 한다.
오늘날 이 말은 그 자취를 알 길이 없다.
그러나 신라의 천일창 왕자가 ‘곰의 신단’을 모시고, 왜왕실로 건너왔다고 하는 것은,
당시 '스이닝천황'에게 단군의 어머니신인 웅녀신에 대한 제사를 모시도록 하기 위해서였다고 본다.
그 이유는 스이닝천황과 그의 부왕인 스진(崇信, 2세기경)천황이 신라인이었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서는 필자의 저서 ‘일본문화사’(서문당, 1999)에 상세히 기록돼 있다.
스진천황은 재위 당시 신라신인 대국주신(大國主神, 大物主神으로도 부름)을 나라(奈良) 땅 미와산(三輪山)에 신당을 차리고 제사지냈던 것이 밝혀졌다.
현재도 대국주신은 나라의 미와산 오오미와신사(大神神社)에서 모시고 있다는 것을 밝혀 둔다.(사진 2 참조)
그렇다면 일본 천황가 제사 축문의 ‘한신’과 ‘한’에 대해서, 일본의 전문학자들은 어떻게 풀이하고 있을까.
우스다 징고로우(臼田甚五郞) 교수는 신악가에 관해 다음과 같이 진솔하게 지적하고 있다.
“한(韓)을 뫼셔온다는 제사 양식은 한국식(韓風)이다.
신 내리기의 신물(神物)잡기에서 연상되는 것은,
신성한 무녀(巫女, 일반적인 무당이 아니라 고대 왕실의 왕녀 등을 가리킴-필자 주)가 신(神)을 향응하는 이미지다.
이 신악가의 위치에서 고찰한다면,
신의 잔치도 신주(神酒)를 권하는 단계에 들어가면,
터주신(地主神)인 한신(韓神)이 새로이 찾아오는 신인 천황(天皇) 및 천황가(天皇家)에 대해서 귀순 접대하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고 상정된다.”
(주: 먼저 일본으로 건너가 왕이 된 한국인들이
새로 건너온 한국인들을 맞이하는 일로 추정.
일본이 통일 된 것은 나중의 일이니
오래도록 한국에서 건너간 둘 이상의 왕가들이 있었던 것으로 추정.)
(‘神樂歌’, 1992)

▼ 스진천황과 한일동족설 ▼
일본의 고대왕실은 말할 것도 없고 현대에 이르기까지도 천황가의 조상신 제사는 철저하게 지켜져 내려오고 있다.
고대로부터 일본왕실의 제1차 주권(主權)은 제사권(祭司權)이고, 제2차 주권은 정사권(政司權)이다.
앞에서 이미 간략하게 밝혔거니와, 스진천황은 신라신 대국주신을 제사지내게 됨으로써,
신도 국가의 기틀을 세우고 비로소 반석 같은 정사(支配)의 터전을 이루었다.
그런 견지에서, 오오사카교육대 사학과의 토리고에 켄사브로우(鳥越憲三郞) 교수가 다음처럼 주장한 것은 공감할 만하다.
“지금까지의 역사학에서 빠져 있었던 큰 문제는 씨족이나 부족의 수호신,
즉 그들이 받들어 제사지내는 신사(神社)의 제신(祭神)과 그것에 관련되는 종교 관념이다.
이는 고대사에서뿐만이 아니라, 중세사·근세사에서도 똑같이 말할 수 있다.
특히 고대에서는 그 사회를 움직이는 인자(因子)가 바로 ‘종교관념’이었다.
그 종교관념을 내버려두고 고대사회를 규명하려는 것은 절대로 불가능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神神の中の古代豪族’, 1974)
이와 같은 주장을 실증하는 대표적인 사례가 앞에서 살펴본 신도와 불교의 종교전쟁이다.
그렇다면 백제불교가 들어오기 이전인 2세기경 일본에 유입된 신라신도는 어떻게 종교관념으로 착근되었을까.
여기에는 신라 출신으로 왜의 지배자가 된 스진천황의 활약을 빼놓을 수 없다.
이 스진천황에 대해 토우쿄우대 에카미 나미오(江上波夫, 1906∼) 교수는
“스진천황은 고구려계 기마민족의 후손으로 남하하여 가야지방에 살고 있던 사람으로, 일본 최초의 정복왕이다”
(‘기마민족국가론’, 1948)고 내세운 바 있다.
일본 패전 직후인 1948년 5월에 발표한 그의 주장은 소위 ‘임나일본부설’을 그 배후에 깔고 있는 학설이다.
필자는 스진천황이 고구려계 가야 출신의 일본 정복왕이 아닌, 신라 출신의 일본 정복왕으로 보고 있다.
스진천황은 신라신인 대국주신(대물주신)을 나라(柰良) 땅 미와산에 모시고
일본고대 역사상 최초로 제사권을 발동한 사제왕(司祭王)이기도 하다.
필자는 또 신라인 집단인 이즈모(出雲)족 출신의 스진천황이 처음으로 그가 다스리던 국가를 한국말로 ‘나라(奈良)’라고 하여 이두식 표기를 했던 것으로 추찰한다.
이는 필자만의 주장은 아니다.
이미 1900년에 역사지리학자인 요시다 토우고(吉田東伍, 1864∼1918년) 박사는
“나라(奈良)는 이 고장을 점거하고 지배하던 이즈모족이 ‘국가’라는 뜻으로 지은 명칭”(‘大日本地名辭書’, 1900)이라고 밝혔다.
그는 ‘나라’라는 한글까지 사전에다 직접 쓰면서, 한국어의 발자취를 입증한 바 있다.
또한 일본 고어학자인 마쓰오카 시즈오(松罔靜雄) 교수도 ‘일본고어사전’(日本古語大辭典, 1937)에서 역시 똑같은 사실을 밝혔다.

일본 역사에서의 날조는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근래의 각종 역사교과서 왜곡뿐만이 아니라 구석기 유물마저 날조함으로써 세계적인 망신을 당하고 있다.
이와 같은 일본인의 날조 역사 이면에는 한국에 대한 콤플렉스가 작용하고 있다.

참고로 왜왕실에 ‘천황호(天皇號)’가 등장한 것은 668년경이다.
(백제가 문을 닫은 후에야 비로소 '천황'이라는 용어를 사용하기 시작.
일본이 당시에 백제의 제후국(아래나라) 였다는 또 하나의 근거.)
712년에 최초의 일본 역사책 ‘고사기’가 등장할 때에
고대의 모든 왜왕의 왕호도 천황으로 일제히 통일시켜 표기한 것임도 밝혀둔다.
(이는 일본의 또 하나의 역사 왜곡.)

다시 본론으로 돌아가 실질적으로 일본의 제1대 천황인 '스진천황'은 제사권과 정사권을 확립하는 한편,
일본의 선주민족을 신라의 산업문화권에 안주시키기에 이른 것이다.
즉 선진 신라의 벼농사와 농기구·칼 등을 제작하는 철기산업,
스에키(須惠器, 쇠처럼 단단한 그릇이라는 쇠그릇으로 ‘쇠기’라는 고대 신라어에서 생겨난 명칭-필자 주)라고 하여
흙을 구워서 만드는 도기산업, 베틀에 의한 직조산업 등 선진문화산업은
당시 미개한 일본 선주민들로 하여금 '이즈모민족(한국에서 건너간 사람들)'의 신도(神道)신앙에 만족스럽게 순응토록 작용하였던 것이다.
이런 흔적들은 일본 옛 문헌들에서도 곧잘 발견할 수 있다.
이를테면 ‘대장간’을 한자어로 ‘카라카누치(韓鍛治)’라고 하거나,
땅을 파는‘삽’을 한국 삽이라는 의미의‘카라사비(韓)’로 표현하거나
재기를 ‘카라스키(韓鋤)’로 부르는 데서 고대 한국의 문물이 건너갔음을 알 수 있다

아! 그렇군요 몰랐읍니다 우리와 관련이 어렴풋이 있을거라고 짐작만했지 어런 심오한 사실이 담긴지 몰랐어요!

 
 
 

eBOOK준비

조로아스터 2016. 5. 21. 08:41


高麗’, ‘高句麗’를 ‘고려’와 ‘고구려’로 읽는 것은 잘못된 것이고 이는 ‘고리’와 ‘고구리’로 읽어야 옳다는 신복룡 교수의 주장에 대해서 ‘고구려’가 맞는다고 주장하는 반박도 만만찮다.

[출처] 번역의 오류, 상식의 오류|작성자 강산



그런데 일본어에서 高句麗는 ‘고-구리’(こうくり)라고 읽는다. 고구려를 세운 민족은 맥족(貊族)으로 일본의 고어에서 맥(貊)은 고마(こま)이기 때문에 고구려를 ‘고마’라고 부르기도 한다.

일본인들은 新羅는 ‘시라기’(しらぎ)라고 발음한다. 신라〈しんら〉, 시라〈しら〉라고 발음하는 것이 일반적이지만 일본에서는 성(城)의 의미를 가진 어미(語尾)를 붙여 시라기〈しらぎ〉라고 부른다고 한다. (Yahoo Japan : 〈しんら〉〈しら〉と発音するのが一般的であるが,日本では城の意味を語尾に付して,〈しらぎ〉と呼びならわしている。)



고구리, 시라기 모두 우리 발음과 유사하고 일본의 일반적인 발음에서 벗어 나지 않는다. 그런데 일본어에서 백제(百濟)는 ‘하쿠자이’ 또는 ‘빠쿠사이’라고 부르지 않고 전혀 생소한 ‘쿠다라’

(구다라, くだら)라고 한다. Yahoo Japan에서 검색해 보면 고구려와 신라는 고대조선의 3국 시대 왕국 중 하나라고 설명하는데 반해 그 3국 중 하나인 백제에 대해서는 비슷한 설명이 빠져 있음을 발견하게 된다. 우리 말로 백제가 없다는 뜻의 일본 말 ‘쿠다라나이’(くだらない)의 의미는 소용없다. 쓸모가 없다. 시시하다 의 뜻이라고 한다. 왜 그런지 이를 설명한 글이 있다.





http://cafe.naver.com/keummun.cafe?iframe_url=/ArticleRead.nhn?articleid=131



요약하면



'구다라', '쿠다라'는 우리 말인 '큰 나라''라는 것이다.



다음은 그 내용의 일부



일본의 역사서인 일본서기는 7세기까지는 거의 대부분의 기사를 백제로 시작해서 백제로 끝나는 기묘한 역사책이다. 일본국내의 역사를 다룬 책속에 대부분을 백제에 대해 말하고 있다면 무슨 뜻일까?



물론 후대의 사가(史家)들의 가필에 의해 백제가 조공을 바쳤다느니 노예를 보냈다느니 왕자를 인질로 보냈다느니... <임나일본부의 조>를 바치고 속국이였다느니 하는 위조된 사실을 슬쩍 끼워넣기는 했지만 워낙 철저하게 변조를 하지 못해서 여기저기 그런 흔적들이 역시 많이 남아있는 것이다.



7세기라는 표현의 중차대한 점은 바로 660년 백제 무왕의 뒤를 이은 의자왕 재위 20년만에 마침내 사비성이 함락되고 백제는 31왕 678년 만에 멸망하였다. 백제가 멸망한 AD 660을 기준으로 말하고 있는 것이다.



백제가 멸망하자 일본의 여자왕으로 <제명>-사이메이는 백제의 부흥을 돕기 위해 일본 남부로 황거를 옮기고 병력을 동원하여 대거 백제로 보낸다 그러나 천운이 따르지 않아 백제는 멸망하였다.



이 때 일본서기는 뭐라고 사서에 기록하였는가?



"이제 백제의 이름이 오늘에 다하였으니 이제 앞으로 조상의 묘는 어떻게 찾을 것이며..." 라고 마치 자기나라가 망한 듯 비통하게 장 탄식을 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대규모의 변화를 꾀한다. 율령을 반포하고 체제를 정비하고 성곽을 쌓고 그리고 국호를 <일본>으로 개명하고 새로운 나라 <일본>을 만들어 간다. 야마도의 나라, 왜에서 일본으로..



그리고 백제의 이름이 끊김으로 백제가 없으면 아무런 소용이 없다는 자탄조의 말들이 생겨 난것이다.



<구다라>는 어떻게 나온것일까?



7세기 이전에는 일본열도는 주지의 사실인 것처럼 정복 기마 왕조 백제의 식민속국으로 복속하였으며 백제에는 <日宮部>라는 행정조직이 있어 일본 왕실을 관리했던것으로 여겨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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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는 백제의 왕자나 호족이 일본으로 건너가 일본을 관활 통치햇을 것이다. 백제는 <담로>제도가 있어 왕실의 가제종친들에게 영토 정복후 지역을 나눠어서 통치하게 하는 제도를 가지고 있었다. 이는 몽고, 나중의 원나라가 중앙아시아 일대를 점령하고 --칸이라는 수십개의 나라를 만들어 왕자들이 분할 통치하다 끝내는 모두 독립된 국가로 발전한 것과 같은 것이다. 현재 회교도의 나라인 무슨무슨칸이라는 이름의 나라는 모두 몽골의 후예의 지배하에 있던 것이다.--->>





즉 일본으로 보면 백제는 <큰 나라>인 것이다.

지금도 우리는 명절때 큰집으로 차례를 지내러갈 때 단순히 <큰 집>에 가자는 말 한 마디로 그것이 어디을 의미하는지 특별히 지역이나 지명을 말하지 않아도 서로 충분히 알고 있는 것이다.



실제로 공식명칭은 이지만 그냥 큰 집에 간다고 하면 모든 식구들이 자연스레 XXX 동의 큰 집을 가는 것으로 알고 이해가 된 것이다.



일본에게는 백제는 큰 나라였다. 바로 직활 통치를 하는 상국이였다.

따라서 백제는 언제나 모든 사람이 <큰 나라>라는 이름으로 그렇게 불리우고 다 알아 그렇게 잘 들었던 것이다.



일본은 문자의 정비를 하며 모음계를 현재와 같은 (아,이,우,에,오)로 모두 5개로 줄여버려 음가에 큰 혼란이 후대에 생겨나고 우리말에서 쓰고 있는 받침도 쓸수가 없게 되어 ----

이런 과정에 후대에 언어에 음운변화가 생기면서 <큰 나라>가 점차로 음운변화를 거쳐 <구다라>라고 발음하는 현상이 생긴 것이라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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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와 관련된 또 다른 글. < 백제 -‘구드래’와 ‘구다라’ >



http://www.munhwa.com/news/view.html?no=2007092701033422159002



백제의 일본식 발음은 ‘하쿠사이’다. 일본 우에다 마사하키 교수는 구다라는 ‘큰 나라’라는 뜻으로 해석한다. ‘구’의 어원을 보면 우리말 큰, 크다에서 어간 ‘크’만 떼서 표기한 것이고 ‘크(그)’가 원순모음화 현상으로 ‘쿠(구)’가 됐다는 것이다.

그러면 ‘다라’는 무슨 말인가. 전문가들은 보통 나라(國)로 해석한다. ‘다라’는 일어에서 토지, 들, 평야를 뜻한다. 삼국시대에도 다라(多羅)가 국명 또는 땅이름으로 쓰인 기록이 나온다. 일본서기 무열기 3년(501년)에 오다라(意多郞)가 죽었다는 말도 나온다. 열도출신 동성대왕이 암살당하자 은유적으로 표현한 말이다. 옛날 구다라는 큰나라(백제), 오다라(일본)는 작은 나라를 뜻했다.

지난 20일 옛 백제의 왕도였던 부여 구드래 선착장에서 황포돛배 2척이 진수됐다. 과거 백제는 구드래 나루터를 통해 외국과 많은 문물교류를 했다. 구드래 나루터를 통해 선진문물을 받아들였던 일본인에게 있어 ‘백제’는 곧 ‘구드래’였다. 그리고 일본에서 ‘구드래’는 ‘구다라’로 발음됐다.

당시 백제는 해상왕국이었다. 백제인들의 활동범위는 동남아시아와 인도까지였다. 백제 금동향로에는 코끼리와 악어, 앵무새 등이 조각돼 있다. 백제는 신라와 전쟁을 하면서 페르시아 직물인 ‘답등’을 일본에 선물하기도 했다. 당시 일본인들은 백제 배를 ‘구다라선’이라 불렀다. 통일신라시대 장보고의 해상왕국 건설도 구다라선 건조기술이 있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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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제와 일본, 우리는 어쩌면 일본인들보다 우리의 역사에 대해 더 모르는 것 같다.

[출처] '백제', '고구려', '신라'의 일본어 읽기 - 구다라, 고구리, 시라기|작성자 강산


출처 : 영어어원연구
글쓴이 : 나비우스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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