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해와 관심/경제·법률 상식

물과바람 2015. 9. 3. 14:53

 

 

초등학교 5학년 사회교과서에 나와 있는 IMF원인이 국민 과소비 때문이라고 한다.

누가 이런 그릇된 방법으로 교육을 하는 지는 모르겠지만, 이에 대한 제대로된 원인 분석이 필요로 하여 다음 글을 올립니다.

 

IMF 원인

 

1997년 태국에서 외환위기가 닥쳤을 때에는 외국인투자와 그 문제를 결부짓게 되었습니다.

태국기업들의 기대실적이 나빠진 상황에서 외국인투자자들이 그들이 가지고 있는 채권을 던지고 나가는 것으로부터해서, 그러한 태국기업들이 스스로 안고 있던 외채도 꽤나 되는 상황에서 결제화폐가 부족해진 것이죠.


반면에 한국의 상황은 태국과는 다릅니다. 기본적으로 한국에는 투자시장이 열려있질 않았단 말이죠.


간단하게 태국의 외환위기는 외환의 해외계정문제로 본다는 말입니다. 여기에 부수적으로 태국의 경제 3주체중 태국기업이 지니고 있던 빚을 부수적인 원인으로 끼워넣는 것입니다. 그건 기본적으로 태국의 통상적인 결제용외환수요가 늘어났다는 것을 보여주려고 인용하는 것이긴 하지만, 기본적으로는 외국인채권자들이 그들의 채권을 청산하려는 것부터 봐야되는 것이죠.


반면에 한국의 문제에서 그 것은 국내계정문제 보는 것이죠.

예를 들어서 당시에 한국의 외환보유가 부족해진 원인 중 하나로 제도권에서 꼽는 몇개의 연속된 분기의 무역적자같은 문제는 외환이 부족해진 문제를 국민계정내에서 찾으려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국민계정을 구성하는 경제 3주체인 기업, 정부, 가계를 가지고 논하지 않을 수가 없죠.


제가 여기에 대해서 엄청난 문제가 있다고 여기게 된 것은 대차대조표를 공부하게 되면서입니다.

이 문제에 관해서 여태까지 대한민국은 엄청한 사기질을 당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왜냐구요. 그건 아주 기본적이고 기본적인 실수를 수지상 적자를 면하게 되는 원인에 대해서 결부시키 못했기 때문입니다.


뭐냐구요? 그건 부채는 곧 자산이라는 것이죠.

현금흐름이라는 것은 내가 부채를 만들면 돈은 들어오는 것입니다. 잘 들어보세요. 아니면 실제 빚을 내보시던가요. 이건 상식적인 것입니다.

그렇다면 당대에 기업들이 엄청난 부채율을 지녔습니다. 반면 한편으로는 은행에 결제용 화폐가 없어서 나라는 imf에다가 한국금융시스템내에 결제용 화폐가 없으니까 돈을 줄라고 하는 것이죠.

이것은 자명하게 별개의 일이 아니라 결부된 사실이라는 것입니다.


기업이 현금을 쥐고 있는 만큼, 금융권에는 결제용화폐가 없는 것이죠.


또다른 경제학 이론을 보죠. 통화량은 왜 자꾸 늘어날까요? 이 것에 대한 물론 이론적인 설명이고, 실제 프로세스와는 약간 동떨어져있지만, 베이비시팅 협동조합이야기(이론의 이름자체가 이렇습니다.)라는 이론에 따르면 각 경제주체들은 계절성이라든가 그 외 갖가지 동기에 의해서 저축을 하려들기 때문에 중앙은행은 저축으로 인해서 줄어든 유동성만큼 발권할 수 없다고 되어 있습니다.


여기에 대해서 외환보유고와 결부시킬 수 있는 사실은 물론 한국은행이 달러를 찍어낼수는 없습니다. 요건 당연한 얘기이고, 만약 한나라의 시스템에서 외부요인이 아님에도 갑작스럽게 유동성이 줄어든다면 누군가가 현금을 저축했기 때문이라고 볼 수 밖에 없단 것입니다.

그건 외환이라서 한국은행이 추가로 채워넣을 수 없기 때문에 외환위기로 다가오는 것이죠.


그리고 그와 관련해서 기업의 부채에 원인이 있단 것입니다. 왜냐면 부채는 현금흐름상 양의 흐름이거든요.

다시 말해서 한국의 외환위기는 기업군에서 외환을 포함한 대량의 현금을 포획했기 때문에 일어난 것입니다.


이를테면 기업가치가 1조인 기업이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 기업이 200프로의 빚을 지면 2조를 땡길수 있고, 1000프로의 부채를 지면 10조를 땡길 수 있죠.

어쨌든 이 기업은 10조를 땡깁니다. 그러한 다음에 10조의 자금을 외환형태로 바꾸어 넣는 것입니다.

그러면 바로 저축이 자금수요를 촉발하는 베이비시팅협동조합이론대로 10조에 해당하는 결제화폐는 일단 금융권에서 부족하게 되는 것이죠.


무슨 말이냐구요. 다시 말해서 외환위기는 우리정부 혹은 가계가 잘못해서 생긴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게다가 당시에 기업에 대한 김대중 정부의 동정적인 태도는 기업이 이정도의 빚을 지고 있으니까 부채를 탕감해줘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다시금 말하지만 부채=현금인거죠. 다시말해서 기업에는 돈이 부족하지 않은 것입니다.

오히려 기업의 부채율만큼이나 현금이 있고, 그러한 기업의 저축증가가 외환보유고의 고갈이 되지 않았는가를 의심해야 될때였단거죠.

그런데 여론은 어떤가하면 기업에 대해서 각종 구제자금수혈및 법정관리를 처방전으로 내놓으니까 기업이 피해자가 된 것입니다. 설마하니 기업이 가해자일것이라고는 상상도 못한거죠.


다시 한번 말하지만 현금의 흐름이라는 것은 기업의 부채율이 높아질때에는 금융권에서 기업으로 돈이 흐르는 것이고, 반면 기업의 부채율이 낮아질때에는 기업에서 금융권으로 부채가 상환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 어떤 경우에도 당시 금융권의 결제화폐고갈이 기업과 연관이 없다는 말은 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리고 태국의 경우에도 한국의 경우에도 또다른 전형적인 비리징후조차 포착되고 있었습니다. 그 것은 회계장부를 조작해서 기업실적을 부풀리는 것이죠. 그렇다면 기업실적을 부풀려서 기업가치를 부풀린다음에 일반적인 부채율 이상의 부채를 기업이 진다? 이 것은 결코 변명할 수 없는 양털깍이 혹은 매점매석을 위한 전초작업인 것이죠.

그리고 당시의 한국외환보유고를 체크하면 당시 우리나라는 300억불 정도의 외환보유고를 상시 준비해두고 있었으나 1997년 7월 시점에서는 30억불정도로 보유고가 크게 떨어져서 외환위기경고를 받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300억불이라고하면 30조정도의 돈인데, 이 돈은 만약 부채율 1000프로를 가정한다면 3조정도의 기업가치를 지닌 특정세력이 맘먹고 외환을 빨아당기면서, 수출입 대금의 결제를 지연시키면 충분히 시장을 위기에 빠뜨릴 수 있을만한 것이었습니다.

특히 이때에는 외국인투자세력이 없기 때문에 더욱 조작이 용이했던 것이죠.

여기에 대해서 imf는 기업비리의 포착과 함께 조작가능한 폐쇄적인 시장에 대한 일반적인 처방책으로써 하나는 기업부채의 청산을 요구했던 것이고, 두번째는 투자시장개방을 요구한 것입니다. 국가경제라는 대마가 소수의 이해관계자에 의해서 놀아나는 것을 막기위해서죠.


그리고 이러한 점을 명심해야 합니다. 당시 김영삼정부는 민주화를 내세운 초대정권으로써 금융실명제는 물론이고, 각종 민주화조치를 단행 기업가들로부터는 원성이 자자했던 정부였다는 것입니다.

김영삼정부 시절의 노동소득분배율또한 66프로 수준으로 70프로수준인 선진국수준에 근접해있었습니다.

김영삼정부 시절에 파업이 극히 적었던 이유중 하나죠.


그러나 김영삼 개인적인 정치적 아킬레스건인 김현철이 비리사건과 결부되면서 또한 정권교체가 겹쳐서 기업들이 조직적으로 외환을 빼돌려서 한국경제를 고의적으로 파탄시킨 것을 막지 못한 것이 imf로 봐야된다는 것이죠.

이후에는 군사정권시절부터 재벌들의 비호세력이었던 검찰이나 정보부, 경제정책계열인사들이 중 경제관료들이 위기탈출을 빌미로 관료제내에서 대거 득세하면서, 정치권에서 기업을 감찰하기가 어려워진 것이 김대중 정권시절부터의 현상이었고, 이 후 한국경제는 과실없는 성장, 기업들만 다 가져가는 현상이라고 하는 경제현상을 겪으면서 여기까지 오게 된 것입니다.

그동안 노동소득분배율은 59프로대로 50프로대까지 떨어졌죠.

97년 이후에 기업들의 일반적인 부패또한 늘었습니다. 지금은 러시아, 중국에 이은 해외자금도피 전세계 3위국이죠.

그리고 전혀 연관성이 없을 것 같지만, 러시아또한 해외자금도피가 시작된 그 회계연도로부터 imf사태를 맞았단 말이죠.


근거자료를 싣는다면,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309082246225&code=940702

제목은 20대 기업 노동소득분배율 50프로에 못미쳐라는 경향신문기사입니다.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309082245395&code=940702

도 있네요. 그외에는 노동소득분배율로 검색해보면 다 나오는 사실들입니다.

참고로, 어저께 기사인

http://media.daum.net/economic/newsview?newsid=20140326183108129 에서 새롭게 집계된 통계의 R&D투자가 자산으로 처리되면서 늘어난 국민소득은 자본소득에 해당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새롭게 집계된 방식을 따르자면 한국의 노동소득분배율은 좀 더 떨어지겠죠.

여기서 김대중 정권은 사실은 그 기업가들 죄다 잡아족쳐서 그 카르텔이 얼마나 크던간에 사실 이 종자들은 총살을 시키던지 사형을 시켜도 마득잖은 것이어야하지만, 경기가 하강하는 상황때문에 손을 쓸 수가 없죠. 게다가 정착 검찰과 경제관료들은 죄다 대기업에 넘어간 상태죠.

 

당시의 상황을 좀 더 디테일하게 보죠. 당시 법정관리 대상이던, 한보라던가 해태, 만도 이런 기업들은 실제로는 빚만 잔뜩지고 있었고 돈이 없었습니다. 이 것부터가 진정한 의심의 대상이라는 것이죠.

여기에 대해서 관료들의 결론은 그러한 기업들의 현금고갈에 대해서 과잉및 중복투자를 원인으로 제시합니다.

그러나 국민계정을 이해하신다면 그 돈은 어딘가에는 있어야 하는 겁니다.

그렇게 보면 바로 한보라던가 진로등에 대해서 채권그룹들이 한보와 진로가 은행시스템으로부터 융통해온 돈을 쥐고 있지 않았는가 혹은 한보와 진로의 주거래기업들 중 하나에 선후순위채비리 혹은 과다계상의 형태로 그 돈들이 빼돌려졌을 거라고 그 거부터 봐야한다는 것이죠.

아마도 그 돈들 중 일부는 외환형태였을테구요.


제가 가지고 있는 상식으로는 빚쟁이 기업들의 기업사채의 우선청산형태로 그 돈들은 죄다 비밀리에 빼돌려졌습니다.

좀 더 쉽게 말하면 한보회장이 한보명의로 이건희라던가 정씨일가에게 빚을 집니다. 혹은 이씨나 정씨가 한보의 기업사채를 쥐고 있는 겁니다. 그러면 로비를 통해서 은행시스템에서 돈을 빌려와서, 그 사채를 현금화시켜주는 겁니다. 결과적으로 돈은 이씨일가나 정씨일가의 계좌에 입금되는 것이고, 한보회사에는 막대한 부채만 남는 것이죠.

여기서 일부자금은 정치권으로 흘러들어가죠. 그렇게해서 포집된 돈으로 그들기준 통칭 잃어버린 10년을 버티고, 그러고도 2007년의 대선레이스를 치른거죠.

그 때 기여하신 할배들이 정무직 일선에 배치되는 것이구요.


사실 새삼스러운 것인데, 이원집정부제가 아닌 대통령중심제에서 대통령직은 그에 얽힌 이권이 워낙 커서 전쟁을 일으키거나(=미국), 대규모의 국방프로젝트를 통해서(=미국, 한국) 혹은 대규모의 토목사업을 통해서 나라가 휘청거려도 좋을 정치자금조성의 동기가 있는 것으로 보편적으로 인식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97년 대선을 앞두고 97년에 외환위기가 터진 것 또한 결코 까마귀날자 배떨어진 격이 아니죠.


그런데 어쩌다 보니까 전통적으로 야권(군사정권당시야권은 당시 신한국당)표밭이던 경상도 남부지역에서 대규모의 이반심리가 표출되어서 이인제를 들어올리는 얄궂은 상황이 전개되었고, 그럼으로써 신한국당계열은 대규모의 정치자금을 결집시키고도 김대중에게 선거에서 패하는 상황이 일어난 것입니다.

혹은 이율배반적 관계이던 재계와 정계의 관계상 당시 집권여당이 승리하면, 보나마나 자신들도 해쳐먹을 때는 언제고 나중에는 뒤통수 칠 우려가 있으니까, 재계쪽에는 순조롭게 치고 빠지기 위해서 한편으로는 여당의 정치자금조성을 도우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야당후보가 집권하도록 수를 썼다고도 할 수 있죠.

실지로도 지금도 그렇지만 당시 여당, 지금의 새누리-한나라 계열은 삼성의 자금줄로도 어쩔 수 없는 검찰이나 안보라인이나 경제관료진에 대한 영향력을 지니고 있으니까 기업입장에서는 쉬 다룰 수는 없는 상대인 것입니다. 예나 지금이나요.

그런 순전히 정치공학적인 일련의 사건을 두고 사실 어떤 사건에서 어떤 편이었을 뿐인데, 서로 좌파니 우파니 하면서 국민들을 분열시키고, 사건의 본질은 영원히 베일속에 묻으려 하는 것이죠.

 

출처 : http://bbs1.agora.media.daum.net/gaia/do/debate/read?bbsId=D115&articleId=2678109

 

 

당시 상황

 

우연히 정규재 한국경제신문 논설실장이 쓴 실록 외환대란을 읽게 되었다. 이 책은 IMF사태를 다시 생각해보게 해주었다. 학교를 다닐 때 IMF가 일어났고,우리 집을 비롯한 많은 가정이 어려움을 겪었다. 그래서 대다수 국민들이 IMF사태의 참혹함은 알고 있다. 하지만 그 이유는 생각해본 적이 없다. 그저 외환보유고가 줄어들어서, 동남아 국가의 경제가 좋지 않아서 IMF가 일어났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하지만 책을 읽고나서, IMF는 좀더 내밀한 역학관계에 의해서 일어났다는 것을 알게되었다. 많은 분들이 원인을 알았으면 하는 마음에서 글을 쓰게 되었다. 책의 내용과 듣고 보았던 내용을 더해서 간단하게 상황과 원인을 짚어보려고 한다. 그리고 IMF 사태 발생과정에서 일어난 뒷얘기들을 소개하고자 한다.

(어떻게 98년도 말에 이정도의 책을 쓸 수 있었는지가 사뭇 궁금해진다. 아무튼 많은 분들이 이 책을 읽어봤으면 하는 바람이다.)

 

외환위기 당시 우리나라의 상황

 

1. 구조개혁에의 집착

90년대 재무관료들은 한국 재정 전반의 구조개혁에 집착했다. 97년 당시에는 외환위기를 막아야 할 재경원과 한국은행은 한은개정법을 둘러싸고 끝없는 다툼을 하고 있었다. 외환보유고가 점점 줄어드는 상황에서도 소위 한국의 그랜드 디자인을 설계해서 잘 발표하면 급한 위기는 지나갈 것이라고 생각했다. 큰 그림은 잘 봤을지라도 작은 둑이 터져나가고 있고, 이것부터 막아야한다는 것에는 관심이 적었다. 미국 CIA는 97년 9월에 이미 한국의 외환위기 가능성을 높게 점쳤지만, 우리나라 재경원은 계속 구조개혁에만 메달렸다.

 

2. 경제흐름에 대한 이해부족

재무관료들과 경제전문가들은 경제이론에는 도사였다. 그러나 신식 금융과 환율의 변동에는 감각이 무뎠다. 사실 IMF의 가장 큰 원인은 환율과 금리의 움직임이었기 때문에, 우리나라는 의도적으로 눈을 감은상태에서 검을 휘두르고 있는 것이었다. 물가에 지나친 관심을 두었었기 때문에, 금리를 조정하기를 무서워했다. 홍콩이 콜금리를 100%이상으로 올려서 외환공격을 막은 것과는 대조적이었다. 당시 관료들은 한국은 덩치가 큰 국가이기 때문에, 태국과 같은 동남아의 외환사태는 일어날 수 없다고 생각했다.

 

3. 한보, 기아부도

우리나라 기업들은 순환보증과 대출을 통해 문어발식으로 돈을 당겨쓰고 있었다. 자본금 2천억의 한보그룹은 수조원의 돈을 끌어당겨 쓰고 있었다. 결국 둑이 터졌다. 당시의 청와대의 이석채 경제수석은 이제 한국에도 시장경제 논리가 필요하다며 한보사태와 관련된 지원은 없다고 밝혔으나, 이것이 국가 신용에는 악영향을 미쳤다. 97년도에는 기아그룹이 10조원의 빚을 지고 부도를 맞았으며, 사채시장은 냉각되어 갔다.

 

4. 정치의 문제

사실 구조개혁이 정치권과 손발을 잘맞춰서 빨리 진행시켰다면 환란의 가능성은 줄어들었을 것이다. 국회에는 경제법안이 계류중이였지만 한나라당과 국민회의는 극한 대립을 이어나가고 있었다. 97년 12월에는 대선이 있었기 때문에, 남의 불행은 나의 기쁨이기도 했다.

 

외환위기 당시 일본과 국제시장의 상황

 

1. 플라자 합의

미국은 80년대 엄청난 경상수지 적자에 허덕이고 있었다. 적자의 원인은 일본의 환율이었다. 일본의 경제규모와 기술역량에 비해 환율은 Peg되어 지나치게 낮았고, 일본 물품은 미국에서 싼 값에 무지막지하게 팔려나가고 있었다. 이에 80년도 후반에 미국 플라자 호텔에서 미국과 일본을 포함한 경제대국들은 일본의 엔화를 강제로 평가절상하기로 합의한다.

2. 미국의 신 경제(New Economy)

미국에서는 이전에 듣지도 보지도 못한 경제상황이 연출되고 있었다. 물가는 낮아지고 있었으며, 이와 동시에 실업도 낮아지고 있었다. 필립스 이론에 따르면 이것은 일어날 수 없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신경제의 원인은 기술의 발전이었다. 기술의 발전이 폭발적이었기 때문에, 금리를 인상해서 물가를 낮춰도 경제는 성장하고 실업은 낮아지는 상황이었던 것이다. 80~90년도의 가혹한 기업 구조조정에 따른 체질개선도 한 이유였다.

3. IMF 당시 일본 환율의 움직임

플라자 합의에 따라 일본 엔화는 급격한 평가절상을 겪게된다. 일본의 수출은 둔화되었고, 디플레이션의 조짐이 보이기 시작했다. 하지만 미국에서는 신 경제가 일어나고 있었다. 미국 재무라인은 금리를 인상해서 환율을 절상시키고, 물가를 잡아나가기 시작했다. 이런 미국의 정책으로 인해 일본 환율은 95년부터 다시 절하되기 시작했다.

4. 소로스를 비롯한 투기자본의 동남아 환시장 공격

소로스를 비롯한 투기자본들은 이미 영국을 공격해 항복선언을 받아냈었다. 이 검은 돈을 가진 무리들은 비교적 펀더멘탈이 취약한 동남아의 환시장을 공격하기 시작했다. 방법은 비교적 간단했다. 동남아의 화폐를 빌려서 팔고 달러를 사는 방식이었다. 태국,인도네시아, 홍콩 등이 공격을 받았다. 주식시장은 폭락했고, 기업들은 도산하기 시작했다.

5. 자기자본비율(BIS Ratio)

전 FRB의장 폴 볼커는 일본 금융기관들의 문어발 확장을 견제하기 위해서(?) 자기자본비율을 규정하고 국제 은행들이 이 비율을 지킬것을 권고했다. 과도한 위험자산을 보유하면 불이익이 주어졌기 때문에, 자금을 회수하여 안전자산에 투자할 동인이 생긴 것이다.

 

결론

1. 일본 엔화의 급격한 평가절상 흐름 속에서 한국 기업들은 앉아서 엄청난 이익을 누리고 있었다. 자신들의 이익이 어디서 오는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투자에만 집중했다. 노동유연화를 통한 체질개선에는 관심이 없었다. 자금을 계속 차입해서 몸집을 키우는데에만 관심이 있었고, 결국 지나친 부채비율로 인해 여러 기업이 도산을 당하면서 자금 조달은 힘들어졌으며 환란의 P파의 진동이 울리기 시작했다.

2. 관료들은 개혁에만 집중했으며, 97년 말에 환율에 손을 대기 시작했으나, 이미 늦은 상황이었다. 정치권은 무한 대립중이었으며, 재경원과 한국은행은 한은개정법을 두고 서로를 불신했다. 만약에 위기상황이 오면 미국이나 일본으로부터 돈을 차입하면 된다고 생각했지만, 강대국들은 자금지원보다는 이 기회에 한국의 옷을 벗겨 시장을 전면개방하고 무역조건을 개선하기를 원하고 있었다.

3. 일본의 금리는 낮았기 때문에, 일본의 금융기관들은 비교적 안전하다고 생각되는 아시아 국가에 자금을 흥청망청 빌려주었다. 빌려주는 금리는 자기 국가의 금리보다 조금 높으면 그것에 만족했다. 이는 한국을 비롯한 아시아 전체의 버블을 불러일으켰다. 한국의 종금사와 금융기관들은 무차별적으로 돈을 빌려 동남아에 투자했다. 하지만 소로스를 비롯한 통화 투기꾼들의 공격을 받고나서 동남아 국가들의 증시는 급락하고, 투자했던 동남아 금융기관들은 도산했다. 이에 국내 금융기관들은 큰 타격을 받게 되었다. 결국 정부는 금융기관의 부도를 막는데 엄청난 달러를 쏟아부었다.

4. 더군다나 96년 바젤위원회는 강화된 BIS 비율에 대해서 합의했으며, 일본의 환율은 평가절하 되기 시작했다. 일본과 세계 각국의 금융기관들은 더 이상 판을 키울수가 없어졌다. 위험자산을 많이 보유하게 되면 국제시장으로부터 도태되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우리나라에 빌려줬던 돈과 투자했던 자산을 팔아 자금을 일본 국내로 회수하면서 몸을 움츠리기 시작했다. 이것은 어떻게 해서라도 외화를 보유해서 위기의 금융기관을 돕고, 환율을 방어해야 하는 우리나라에는 치명타였다.

뒷얘기들

1. 강만수 전 기재부 장관은 당시 재경원 고위 관료 중 금융에 가장 밝은 사람이었다. 그는 96년 관세청장 시절에 경상수지(Current balance) 자료를 보고 환율을 조정해야 한다고 주장했으나, 청와대 보고전에 묵살되었다. 이후에도 강만수 장관은 IMF 사태를 막기 위해 노력했으나, 소용이 없었다. 그의 권한은 작았고, 이미 늦은 상태였다. 아마 미래를 기약하며 울분을 삭혔을 것이다. 이런 그의 경험이 이명박 정부 시절에 많은 사람의 반대에도 환율 조정을 실시한 배경일 것이다.

2. 캉드쉬 전 IMF 총재는 채권시장의 개방을 주장하였다. 하지만 재경원 관료들은 처음에 반대하였다. 그러자 캉드쉬는 웃으면서 이미 한국의 채권시장은 개방되었다고 하였다. 외국인들은 이미 선물시장을 통해 무위험 차익거래를 하고 있는데, 당신네들의 채권시장은 이미 개방된 것이나 다름없다는 것이었다. 결국 채권시장은 전면 개방되었다.

3. 로버트 루빈 전 골드만삭스 회장은 IMF 당시 미 재무부 장관이었다. 그는 골드만삭스 회장 시절에 한국을 방문했다. 루빈은 당연히 재경원 장관과 만날 줄 알았지만 그는 국장급과도 만나지 못했다. 내가 골드만삭스 회장인데 이런 푸대접이 어디있는가, 무슨 나라가 이런가 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운명적이게도 이런 그가 미국 재무부의 수장이 되었고, 그의 임기에 한국은 IMF 사태를 겪는다.

4. 로빈의 미국 재무부는 IMF 사태를 통해 확실히 한국의 체질을 개선하고 버릇을 고쳐주기를 원했으나, 미국 안보라인은 북한과의 대치국면을 걱정하여, 한국의 조속한 경제위기 해결을 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