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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선비의 사진 이야기

효자 도시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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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수강산 답사

2020. 7. 6.

■ 하늘이 뽑은 도시복 효행

임금이 전국에 명을 내려 충신(忠臣), 효자(孝子), 열녀(烈女)를 추천(推薦)하라 하였다.
전국에서 고을 원들이 충신, 효자, 열녀들의 행적을 적어 올리니 궁궐(宮闕)에 효행록들이 산더미처럼 쌓였다.
이를 본 임금이 조선에 충신 효자 열녀들이 이렇게 많으면 나라가 이 모양일 수 있느냐며 거짓이니 모두 태워버리라고 명을 내렸다고 한다. 신하(臣下)가 불을 붙이니 기록들이 타는데 어디서 바람이 불어와 3편(篇)의 기록만 하늘로 솟구쳐 건져내고는 다른 모든 기록(記錄)들은 태워 버리고 말았다. 즉 하늘이 그들의 효행(孝行)을 인정해 준 것이었다.
그 3편의 기록 중 하나가 이 도효자의 효행록으로서 그 행적이 <명심보감> 속편(續篇)에 기록되었다.

 

도시복 선생의 생가는 예천군 상리면 용두리 야목마을에 살았다고 하는데요. 선생의 호는 야계로, 생가는 처음에는 일자(一)형 초가집이었다고 해요. 1882년 선생의 효심에 탄복한 어사 이도재의 정려 표창 상신 후 지금의 '□'자형으로 증축했다고 전해지고 있어요.

호랑이 등을 타고 여름에 얻어온 홍시 이야기

 

음력(陰曆) 5월에 어머니가 병이 들어 음식은 먹지 못하고 때아닌 홍시가 먹고 싶다고 하였다. 효성이 남다른 그는 행여나 하고 감나무가 있는 곳마다 며칠을 돌아다니면서 홍시를 찾아 헤매었지만 음력 5월에 홍시가 있을리 만무하였다.

하루는 날이 저물도록 홍시를 찾아 감나무가 많은 은풍마을까지 가서 숲을 헤매다가 헛탕을 치고 어둑어둑하여 집으로 힘없이 돌아오는데 집채 만한 호랑이 한 마리가 길을 가로막고 있는 것이 아닌가. 깜짝 놀라 도망가려 하였으나 여러 번 앞길을 가로막으며 긴 꼬리로 제 등을 툭툭치면서 타라는 시늉을 보냈다.
자기를 해치려는 뜻이 없는 것을 알고 용기를 내어 엉겁결에 호랑이 등에 올라타고 말았다. 도효자를 태운 호랑이는 어둡고 험한 산길을 수 백 리를 나는 듯이 달리더니 드디어 산속 어느 집 뜰에 내려놓았다. 밤중이지만 염치 불구하고 주인을 찾아 인사를 나누고 하룻밤 쉬어 가기를 청하였다.
주인이 쾌히 승낙하여 잠을 잤더니 얼마 안되어 제삿밥을 차려 오는데 음식상에 홍시가 있는 것이 아닌가.

그는 너무나 기쁜 나머지 주인에게 어머니께 드릴 홍시를 구하고 있는 자신의 사정을 얘기하고 제철이 아닌 홍시의 내력(來歷)을 물으니, 주인은 돌아가신 아버지가 살아 계실 때 홍시를 몹시 즐겼기에 아버지의 제사에 쓰려고 해마다 가을이면 홍시 200개씩 골라 토굴 속에 저장(貯藏)하였지만 해마다 이맘쯤이면 홍시가 대부분 상하고 씀직한 것은 일곱 여덟 개 밖에 안되더니 올해는 웬일인지 쉰 개(50개)나 상하지 않아서 이상하게 생각하고 있던 중이라면서 이 모두가 그대의 효성에 하늘이 감동하여 된 것이니 어머니에게 갖다 드리라면서 홍시 스무 개(20개)를 내주었다.

주인에게 감사 인사를 올리고 문밖에 나오니 호랑이가 아직도 엎드려 기다리고 있는지라 호랑이를 타고 집에 돌아오니 여기저기서 새벽닭이 울고 있었다.

하늘이 낸 효자는 산짐승까지도 감화시켰고, 호랑이가 몇 백 리나 되는 강릉(江陵)의 김씨(金氏)집에 홍시가 있는 것까지 알고 자기 등에 태워 데려갔다 왔다.

■ 엄동설한에 잉어 잡은 도효자

어느 날 아버지께서 엄동설한(嚴冬雪寒)에 잉어를 먹고 싶다고 하였다. 도효자가 살고 있는 산골 도랑이나 실개천에는 잉어가 서식하지 않지만 그는 싫어하는 기색없이 얼음 속으로 물이 흐르는 개울을 따라 은풍골(現 下里面 愚谷里) 냇물에 다다르니 얼음에 구멍이 뚫려 있고 거기에서 잉어가 도효자 앞으로 뛰어 나오는 것이 아닌가? 이 잉어를 아버지에게 드렸드니 매우 기뻐하셨다

■ 한겨울에 수박을
어머니가 음력 섣달에 병이 나서 때 아닌 수박을 먹고 싶다고 하였다. 추운 겨울에 수박이 있을리 만무하였으나 효성이 남다른 도씨는 지난 여름에 수박을 심었던 밭을 헤매고 다녔지만 수박이라곤 구경조차 할 수 없었다.
며칠을 이렇게 수박을 찾아 헤매던 어느 날, 그 날도 역시 종일 돌아다니다가 마침내 안동군(現 安東市 豊山邑)에 이르렀다. 수박과 참외로 이름난 풍산들이었지만 수박은커녕 푸른색을 띈 것은 자취를 감추고 낙동강(洛東江)에서 몰아치는 찬바람만 귀를 에이고 지나갈 뿐이었다. 실망한 그는 우연히 한쪽을 건너다 바라보니 다 찌그러진 원두막 한 채가 모질게 몰아치는 강바람을 못이겨 바람이 불어올 때마다 일렁이고 있었다. 행여나 하고 피곤한 다리를 절룩거리며 원두막에 와서 걸터 앉으니 넝쿨을 거두어 올려 놓은 곳에 수박이 한 개 달려있지 않는가?
깜짝 놀란 그는 자신의 눈을 의심하면서 다시 자세히 살펴보니 틀림없는 수박이었다. 껑충껑충 춤을 추면서 수박을 안고 집으로 돌아와서 어머니에게 드렸음은 물을 것도 없다.

■ 배추밭 도리깨 타작

어느 해 한여름 날, 도효자는 마당에서 도리깨로 보리타작을 하고 있었다. 어머니께서 나오시더니 텃밭에 있는 배추밭을 도리깨로 타작을 하라는 것이었다. 풋풋하게 자라는 배추를 타작하라니 기가 막힐 노릇이었다.
그러나 워낙 효성이 지극한 그는 어머니의 명(命)을 거역하는 법이 없었으니 도리깨로 막 속이 차려는 배추밭을 모두 타작하고 말았다.
동네 사람들은 혀를 찬 것은 물론이었다. 그러나 이게 웬 일인가 다음날 일어나 보니 난장판이 됐던 배추밭에는 속이 꽉 찬 배추로 가득 차 있는 것이 아닌가.

 

■ 호랑이와 시묘살이 3년

아버지가 병환(病患)으로 돌아가시니 그는 피눈물을 흘리며 슬퍼하였다고 한다. 3년 시묘(侍墓)를 하는데 호랑이가 나타나 함께 시묘를 하였으며 양식을 구해와 굶주리지 않게 하였다 한다.

그러던 어느 날 시묘살이하던 어두운 밤에 낯선 아리따운 여인이 나타나 하루를 쉬어가게 해달라 사정하므로 당시의 사회 통념상(通念上) 같이 있을 수 없는지라 동네까지 안내하여 주니 뒤따르던 여인이 홀연히 사라져 보이지 않아 이상하게 생각하며 돌아오니 호랑이가 여막 앞을 가로막으며 못 들어가게 하였다. 이에 도효자는 여막을 비우고 여인을 안내한 잘못을 묘 앞에 절하고 비니 호랑이가 비켜 주었다.

밤마다 나타나던 호랑이가 어느 날 보이지 않아 사방으로 찾아보니 중성골(현 문경시 동로면)에 사람이 파놓은 함정에 빠져 있어 이를 구(求)하니 다른 사람들은 잡아서 약(藥)에 써야 한다며 돌려 달라 하므로 도효자는 “내 호랑이이니 절대 안된다.”고 하면서 데리고 와서 상처를 치료하여 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