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조어부림이 한눈에 보이는 독일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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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 5. 23.

 

남해 (삼동면 물건리)독일마을을 2년만에 다시 찾았습니다.

2년전에는 물건 방조어부림에서 걸어 독일마을로 갔는데, 이번에는 보물섬 마늘나라에서 출발하였습니다.

2010. 5. 20 ~ 5. 23(4일간)까지 남해에서는 제6회 보물섬 마늘축제가 있으니 마늘축제장에서 가도 되며, 창선대교를 건너 어부림을 구경 한 후 독일마을로 가도 됩니다.

 

(삼동면)봉화 광산에 공급되던 전기덕분에 남해에서 제일 먼저 야간에 전기불을 켠 마을인 삼화마을(장골)에 닿으니, 독일마을 위의 원예예술촌이 보였습니다만, 바로 가는 길이 아직 개통이 되지않았기에 (독일마을도 물건리지만)물건마을로 갔습니다.

 

식물의 이름과 마찬가지로 마을 이름도 지어진 배경이 있기 마련인데, 물건리 본 마을은 마을 생김새가 선비들이 바둑을 두며 놀고 있는 형태이기 때문에 여자가 수건을 쓸 수 없다 해서 물건이라 부른다고 합니다. 모자는 괜찮을까요?^^

그리고 또 하나는 마을 뒷산 모양이 만물 "勿"자 형이며 건(巾)은 산을 크게 보면 병풍처럼 둘러싸인 가운데를 내(川)가 흐르고 있어 그 모양이 수건 "巾"자라하여 물건(勿巾)이라 칭하게 되었다는 설도 있다고 합니다. 
저는 뒤의 물건에 무게를 더 두고 싶습니다. 그만큼 아름다운 마을이기 때문입니다.

 

2년전과는 달리 독일마을의 위에서 아래로 걸었습니다.

마을에서도 느끼며 멀리서도 느끼지만 독일마을은 여전히 동화속의 그림처럼 아름다운 마을입니다.

짙어지는 신록과 붉은 지붕의 어울림이 마치 그림엽서같습니다.

 

 

 

남해군의 새로운 명소로 떠오른 ‘독일마을’은 물건마을 뒷산자락에 30여 채의 독일식 주택이 있는 마을입니다.

여느 시골의 풍경과 다른 독일마을은 60, 70년대 근대화 과정에서 독일에 간호사와 광부로 나가 일하던 교포들의 보금자리입니다.

 

독일마을은 조국 근대화를 위해 파독 근로자로 나갔던 교포들이 여생을 고국에서 보람되게 보내고자 하나둘 정착하는 곳으로 지금은 역사 속의 한 페이지로 묻히고 있지만, 파독 간호사와 광부는 한국 근대화의 견인차 역할을 담당했었습니다.

 

독일마을은 남해군(http://www.namhae.go.kr/)이 1997년 11월 독일 북부 도시인 노드프리슬란트와 자매 결연을 맺으면서 밑그림이 그려졌고, 남해군은 교류 과정에서 독일에 근로자로 나간 교포들이 조국의 향수를 잊지 못한 채 퇴직 후 귀국하여 여생을 보내고 싶어 한다는 사실을 확인했습니다.

교포들은 30여 년이 지났기에 문화나 생활 환경이 이미 독일인처럼 굳어 있어, 귀국해서 각자 고향으로 돌아가기보다는 함께 모여 살면서 몸에 익힌 독일식 생활 양식을 한국에 전파하고 힘을 합쳐서 무엇인가 보람된 일을 하기를 희망했습니다.

 

남해군은 교포들의 이러한 바람을 현실화시키고자, 2000년부터 독일 교포 정착마을 사업을 계획하여, 부지는 2000년 6월에 해안 경관이 아름다운 데다가 ‘물건 방조 어부림’이라 불리는 크고 좋은 숲을 갖춘 상동면 물건리의 약 2만 7000평으로 정했습니다.

 

 독일마을 정착 희망자를 모집하기 위해 독일의 베를린, 마인츠, 본, 함부르크, 카셀 등지에서 네 차례 설명회를 개최했으며, 자격 요건은 독일에 간호사나 광부로 파견 나가 20년 이상 거주한 교포로 한정했습니다. 그렇게 하여 2002년 6월 다섯 가지 유형의 독일식 주택 표준 모델 선정과 함께 150평 안팎의 64필지를 분양했습니다.

 

독일마을 앞으로 펼쳐진 방조어부림의 시원한 바다와 남해안에서 가장 아름다운 해안 드라이브코스인 물미 해안도로와 더불어 독일월드컵과 함께 남해 보물섬의 새로운 관광지로 부상한 독일마을은 드라마 촬영장이기 되기도 했으며, 주말과 휴일에는 많은 외지인들의 여행지가 되기도 합니다. 

 

원예예술촌에서 출발하여 처음 만난 독일마을의 주택 입구입니다.

독일마을의 모든 집은 주인의 취향에 따라 지역명이나 유명인의 이름이 문패역할을 하며, 대부분의 가정들은 민박을 운영합니다.

'알프스 하우스'가 돌일마을에 입주한 날이 나타나 있으며, 2층집입니다.

'알프스 하우스' 주인인 신병윤 씨께서 산책중이었기에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신병윤 씨(63)는 독일에서 광부로 20여년 생활을 했으며, 1989년에 귀국하여 수원에서 생활을 하다가 독일마을에 입주를 했답니다.

독일마을 주민들은 독일  정부로 부터 지급되는 연금과 민박 운영으로 생활을 하는데, 독일마을의 대부분의 가정은 민박 요금은 비슷하다고 합니다.

 

독일에서 광부로 생활할 때의 이야기를 들려달라고 하니, 고생은 했지만 당시 우리나라처럼 일이 힘들거나 하지 않았으며, 독일은 사회보장제도가 잘 되어 있기에 외국인이라고 차별대접을 받지않고 독일인과 같은 대접을 받았다고 했습니다.

 

다문화가정의 증가와 외국인 근로자가 많은 우리나라의 사회보장제도가 외국을 국적으로 둔 이들에게 어느 정도의 만족도를 주는지 우리 정부와 기업들이 돌아봐야 할 부분같았습니다.

 

 

2년전 독일마을을 방문했을 때 겔베하우스의 할머니에게 대접을 받으며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할머니는 독일에서 간호사를 했으며, 이제 우리나라에 정착한지 이제 6년째가 됩니다.

 

겔베하우스 할머니와의 대화가 생각이 나서 신병윤 씨에게 독일마을의 사정을 여쭈니 2년전의 겔베하우스 할머니의 대답과 같았습니다.

여전히 상점이 없기에 생필품 구입과 의료시설을 이용하려면 남해읍이나 이웃 도시로 가야한답니다.

 

신병윤 씨에게 건강하시라는 인사를 드리고 독일마을을 걸었습니다.

붉은 뾰족지붕이 아니면 우리의 시골과 다르지않는 독일마을입니다.

 

 

독일마을에서 바라보는 천연기념물 제150호인 물건 방조어부림과 물건마을입니다.

 

물건 방조어부림(勿巾防潮魚付林)은 남해 12경중 10경으로 바닷가를 따라 초승달 모양으로 길이 1,500m, 너비 약 30m로  부락민들의 공동소유로 되어 있습니다.

나무의 높이는 대체로 10∼15m이며 상층목이 약 2,000그루로 이곳에는 팽나무, 상수리나무, 느티나무, 이팝나무, 푸조나무 등 낙엽수와 상록수인 후박나무 등 수종만도 100여 종류에 달해 마치 나무전시장을 방불케 하며, 빼곡하게 들어선 1만여그루 나무는 깊은 산중의 느낌을 자아냅니다.

 

숲 속에 서 있는 이팝나무의 노거목은 서낭당나무로 되어있고, 음력 10월 15일에는 제사를 올려 마을의 평안을 빌고 있습니다.

물건리는 방조어부림을 경계로 등대가 있는 포구와 논밭이 있는 물건마을로 나뉘어지며, 독일마을에서는 물건마을과 방조어부림, 그리고 포구를 한꺼번에 펼쳐 볼 수 있습니다.

 

 

현재 독일마을은 30가구중 국제결혼을 한 가구가 6~7가구며, 입주가 뜸하다보니 빈터가 더러 있는데, 광주에서 여행을 온 여자분이 쑥을 뜯고 있었습니다.

원예예술촌과 독일마을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며 독일마을에 민박이 가능하다고 하니, 독일마을에서 하루 묵은 후 원예예술촌을 방문하고 싶다고 했습니다.

쑥을 많이 뜯어 가셨는지 모르겠습니다.^^

 

 

다투어 봄꽃이 피며, 저녁 시간이 가까워오니 정원에서의 식사를 준비하는 가정도 있었습니다.

 

 

 

각 가정에는 뜰의 한켠을 텃밭으로 하며, 역시 우리의 시골마냥 여러가지 쌈채소와 계절채소가 자라고 있습니다.

할아버지께서 고추모종을 꼭꼭 눌러 심고 있는 모습이 평화롭고 평온해 보여 오래 바라보았습니다.

행복은 멀리 있는 큰 무엇이 아닌 모양입니다.

 

 

독일마을 입구에는 마을 안내도와 독일기와 우리나라 태극기가 함께 펄럭이며, 기념사진을 찍는 관광객들이 비킬기미가 없었기에 관광객들과 함께 찍었습니다.

 

 

아래의 풍경은 물건 방조어부림쪽에서 본 독일마을입니다.

남해는 섬 전체가 관광지니 독일마을 방문 후 원예예술촌과 물미해안도로를 따라 남해의 아름다움을 한껏 느껴보시기 바랍니다. 

 

* 독일 마을 : http://germanvillage.net/

 

 

 이 글은 경상남도 홍보블로그 따옥따옥(http://blog.naver.com/gnfeel)에 실린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