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양 영남루, 많은 현판중 편액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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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 나누기/낙동江과 팸투어·답사

2012. 8. 18.

경남도민일보 주최, 갱상도문화학교 주관, 밀양시 후원 밀양 명소 탐방 밀양 영남루(密陽 嶺南樓)편입니다.

 

조선시대 후기의 대표적인 목조 건축물인 밀양 영남루(密陽 嶺南樓)는 신라 경덕왕(742~765년)때 신라의 5대 명사 중에 하나였던 영남사의 부속 누각에서 유래가 되었습니다. 고려 공민왕 때(1365) 밀양부사 김주(金湊)가 규모를 크게 중수하였으며, 현재의 누각은 조선 헌종 10년 이인재(李寅在)부사가 1844년에 중건했으며, 진주 촉석루, 평양의 부벽루와 더불어 우리나라 3대 누각 중 하나로 손꼽히고 있으며, 보물 제 147호로 지정되어 있습니다.

 

낙동강의 지류인 밀양강변 절벽위에 위치한 영남루는, 화려한 단청과 다양한 문양조각이 한데 어우러져 있으며, 퇴계 이황, 목은 이색, 문익점 선생 등 당대의 명필가들의 시문현판이 즐비한데 그 중에서 1843년 당시 이인재부사의 아들 이증석(11세)과 이현석(7세) 형제가 쓴 영남 제일루(嶺南第一樓)와 영남루(嶺南樓) 현판은 관광객들의 탄성을 자아내게 할 뿐만 아니라 수많은 서예가들로부터 불가사의한 필력으로 지칭되고 있습니다.

 

규모는 앞면 5칸·옆면 4칸이며, 지붕은 옆면에서 볼 때 여덟 팔(八)자 모양을 한 팔작지붕으로 기둥은 높이가 높고 기둥과 기둥 사이를 넓게 잡아 매우 웅장한 분위기를 자아내고 건물 안쪽 윗부분에서 용 조각으로 장식한 건축 부재를 볼 수 있으며, 천장은 뼈대가 그대로 드러나 있는 연등천장입니다.
영남루와 침류각 사이는 월(月)자형의 계단형 통로가 있는 독특한 건물의 배치와 구성을 보여주고 있는 영남루는 밀양강 절벽의 아름다운 경관과 조선시대 후반기 화려하고 뛰어난 건축미가 조화를 이루고 있는 누각입니다.
누(樓)란 건물의 사방을 트고 마루를 높여 지은 집으로 일종의 휴식공간이라 할 수 있습니다.

 

영남루 일원에는 단군을 비롯한 창국 8왕조의 위패를 모신 천진궁(경남도지정유형문화재 제 117호)과 아랑낭자의 전설을 간직한 아랑사당이 있으며, 아랑각으로 내려가는 길 초입에 '밀양 아리랑' 비석이 있습니다.
석화군락과 530여년을 이어온 밀양읍성, 옛 영남사의 부속 암자였던 천년 고찰 무봉사가 있는 영남루는 밀양의 대표적인 관광지입니다.

 

 

영남루의 동쪽에는 능파각(凌波閣), 서쪽에는 침류각(枕流閣)이라는 부속건물이 있는데 영남루로 오르려면 능파각으로 올라 신발장에 신발을 넣고 영남루로 가게 되는데 신발장옆에 '영남루 시문과 현판들여다보기' 안내가 있습니다.

그만큼 영남루에는 많은 시문현판과 현판이 있습니다.

 

 

영남루 정면은 밀양강(남천강) 건너편에서 볼 수 있으며, 영남루의 편액은 정면 이마에 있습니다.

우리가 말하는 영남루 정면은 후면이 되는데, 외부에도 현판이 셋 있는데 교남명루(嶠南名樓), 영남루(嶺南樓) , 강좌웅부(江左雄府)입니다.

교남명루(嶠南名樓)의 교남지방이란 경상남북도를 통털어 부르던 이름으로, 문경 새재 이남의 이름 높은 누각이란 의미로 귤산 이유원(李裕元)이 쓴 글이라고 합니다. 
영남루(嶺南樓)는 송하 조윤형(曺允亨)의 글씨며, 강좌웅부(江左雄府)는 낙동강 좌측의 아름답고 큰 고을이란 뜻으로 귤산 이유원이 쓴 글인데 교남명루와 서체가 같습니다.

편액과 현판의 서체를 통하여 당시의 서예나 전각 기술 등도 알 수 있습니다.

 

 

 

2층 마루의 현판들입니다.

'강성여화(江城如畵)', 강과 밀양읍성이 한데 어울리니 그림과 같다고 했습니다.

 

 

현창관(顯敞觀), 영남루에 오르니 넓고 높은 세상이 바라다 보인다는 의미며, 용금루(湧金樓)는 높은 절벽에 우뚝 솟아있는 아름다운 누각이라는 뜻입니다.

촉석루와 마찬가지로 영남루도 지역의 좋은 사랑방 구실을 하는데 많은 시민들이 더위를 피해 영남루를 찾아 자유로운 몸짓을 하고 있습니다.

 

 

아버지가 짓고 아들이 썼다는 유명한 현판입니다.

1844년 이 건물을 중수할 당시 이인재 부사의 첫째 아들과 둘째 아들인 이증석(11세), 이현석(7세) 형제가 쓴 영남제일루와 영남루의 현판입니다. 이 현판의 글씨는 지금도 보는이로 하여금 감탄하게 합니다.

 

 

 현판외에 퇴계 이황, 목은 이색, 문익점 선생 등 당대의 명필가들의 시문현판이 즐비한 영남루입니다.

그럼 영남루 진짜 현판인 편액은 어느것이며, 어디에 있을까요.

 

 

영남루 편액은 사진처럼 밀양강위에 있으며, 성파 하동주(聖坡 河東州, 1879~1944) 선생의 글씨입니다. 

 

 

 

현판과 편액은 어떻게 다를까?

진해탐방시간에 홍성철 교수님이 현장에서 말씀해 주셨지만, 여러 곳에서 편액을 현판으로 읽기에 검색후 민속학자인 정정헌 교수님에게 메일로 질문을 했으며, 다시 만났을 때 재확인했고 동석한 한자 교수님의 설명이 곁들여지기도 했는데 현판과 편액의 차이입니다.

 

우리의 옛 건축물들에는 대부분 건물의 이름, 성격, 품위를 나타내는 편액(扁額)이 걸려있습니다. 현판은 해당 건축물의 기능이나 성격 등을 담고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일반적으로 현판(懸板)이란 용어가 자주 사용되고 있지만, 실제로 현판보다는 편액(扁額)이 정확하게 건축물의 의미를 담고 있는 말입니다. 현판은 '글씨를 쓴 널빤지(板)를 걸었다(懸)'는 단순한 뜻이며, 편액은 '건물의 문 위 이마 부분에 써 놓은 글씨'라는 뜻입니다.

편(扁)은 호(戶)와 책(冊)이 합쳐진 글자로 '문 위에 써 놓은 글'을 뜻하고 액(額)은 이마라는 뜻이니, 한 건물에 현판은 여럿 있을 수 있지만 편액은 입구의 한가운데 하나가 있습니다.

함안무기연당의 경우 각 방마다 편액이 있었는데, 전체건물에 하나가 있을 수 있지만, 무기연당처럼 부속건물마다 편액이 있을 수 있습니다.

 

함안의 무기연당입니다.

연못주위에 화환정과 풍욕류인데 각 편액이 있습니다.

 

 

무기연당의 화환정(何換亭)이며, 추녀쪽이 아닌 마루위(방문위)에 편액이 있는 게 특이합니다.

 

 

함안의 악양루를 설명할 때 영남루만큼은 아니지만 많은 현판이 있다고 했는데, 편액은 함안천 위에 있는 하나며, 세로로 쓴것은 주련이라고 합니다.

 

 

다시 영남루입니다.

영남루에서 월(月)자형의 계단형 통로로 갈 수 있는 침류각입니다.

영남루 역시 능파각, 영남루, 침류각이라는 따로의 편액이 있습니다.
 

 

- 밀양시 문화관광 http://tour.miryang.go.kr/ma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