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복궁 광화문과 근정전 앞에 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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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 나누기/가본 곳

2015. 12. 31.

- 광화문 세종이야기 전시관 관람하다에 이어 씁니다.

 

조선 왕조 제일의 법궁 경복궁으로 들어가는 광화문입니다.

경복궁은 경복궁은 조선 왕조 제일의 법궁입니다. 북으로 북악산을 기대어 자리 잡았고 정문인 광화문 앞으로는 넓은 육조거리(지금의 세종로)가 펼쳐져, 왕도인 한양(서울) 도시 계획의 중심이기도 합니다. 경복궁은 1395년 태조 이성계가 창건하였고, 1592년 임진 왜란으로 불타 없어졌다가 고종 때인 1867년 중건 되었습니다. 흥선대원군이 주도한 중건된 경복궁은 500여 동의 건물들이 미로같이 빼곡히 들어선 웅장한 모습 이었습니다. 궁궐 안에는 왕과 관리들의 정무 시설, 왕족들의 생활 공간, 휴식을 위한 후원 공간이 조성되었습니다. 또한 왕비의 중궁, 세자의 동궁, 고종이 만든 건청궁 등 궁궐안에 다시 여러 작은 궁들이 복잡하게 모인 곳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일제 강점기에 거의 대부분의 건물들을 철거하여 근정전 등 극히 일부 중심 건물만 남았고, 조선 총독부 청사를 지어 궁궐 자체를 가려버렸습니다. 다행히 1990년부터 본격적인 복원 사업이 추진되어 총독부 건물을 철거하고 흥례문 일원을 복원하였으며, 왕과 왕비의 침전, 동궁, 건청궁, 태원전 일원의 모습을 되찾고 있는데 경복궁을 관람한 당시에도 복궐중이었습니다.

 

광화문은 조선의 법궁에 해당하는 궁궐의 정문으로서 다른 궁궐들의 정문과는 달리 돌로 높은 석축을 쌓고 그 위에 중층구조의 누각을 세워서 마치 성곽의 성문과 같은 격식으로 장대하게 지어졌다고 합니다.
광화문은 중층으로 된 문루를 받치는 기단석축이 세 개의 홍예문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중앙의 홍예문으로는 왕이, 좌우의 홍예문으로는 왕세자와 신하들이 출입하였으며, 또한 문루(門樓)에는 종을 걸어 두어 시각을 알리는데 사용하였다고 합니다.
광화문은 일제강점기에 조선총독부 건물을 지으면서 건춘문 북쪽으로 옮겼다가 한국전쟁 때 폭격을 맞아 문루가 모두 소실되었는데, 그 후 1968년에 경복궁 정문의 위치로 다시 옮겼으나 나무를 사용하지 않고 콘크리트 구조로 복원하는 과정에서 위치 또한 제자리를 찾지 못하였는데 현재의 광화문은 2010년에 원래의 모습으로 제자리를 찾아서 다시 복원한 것이라고 합니다.

 

 

티비와 인터넷으로 보기만 했던 광화문입니다. 임금이 살았던 궁궐로 들어서는 문이다보니 걸음마져 조심스러워졌습니다.

잔디광장옆으로 인도가 있으며 옆엔 역사물길이 있는데, 연도별로 중요한 역사가 기록되어 있고 그 위로 물이 흐르게 되어 있기에 역사물길이라고 하며, 광화문 앞 세종대왕과 이순신 동상이 있는 세종로가 육조거리였는데, 중간중간에 이조 터, 한성부 터 등의 안내가 있었으며 광화문 뒤로 청와대가 약간 보입니다.

 

 

광화문 근처에는 주차장이 없는지 관광버스가 무분별하게 정차되어 있었으며, 이른 시간이었음에도 많은 시민과 외국인이 경복궁을 찾았더군요. 

 

 

다른 각도에서 찍었습니다.

'왕의 큰 덕(德)이 온 나라를 비춘다'는 의미로 광화문(光化門)이라 이름 지었으며, 세 개의 홍예문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중앙의 홍예문으로는 왕이, 좌우의 홍예문으로는 왕세자와 신하들이 출입하였다고 하는데 홍예문에는 수문장이 있었고, 광화문 앞의 양쪽에는 한 쌍의 해태 조각상이 자리잡고 있습니다.

 

 

경복궁 1정문인 광화문을 들어서면 근정전의 정문인 근정문 사이에 중문인 흥례문이 있습니다.

 

 

흥례문(興禮門)은 경복궁의 정문인 광화문과 근정전의 정문인 근정문 사이에 있는 중문으로, 정면 3칸, 측면 2칸의 중층 목조 건물로 원래는 1426년(세종 8년)에 집현전에서 '예(禮)를 널리 편다'는 뜻의 홍례문(弘禮門)으로 이름을 지어올렸는데, 1867년(고종 4년) 경복궁을 중건하면서 청나라 고종 건륭제의 휘 홍력(弘曆)을 피하여 지금의 흥례문(興禮門)으로 이름을 바꾸었다고 하는데, 우리의 조선과 경복궁이 중국 청나라보다 먼저 세워졌음에도 스스로 소국임을 인정하는 꼴입니다.

일제가 조선총독부 건물을 지으면서 1916년 철거되었으나, 문민 정부 때 총독부 건물을 철거한 후 2001년 10월 26일에 다시 흥례문을 복원하였습니다.

흥례문 중앙에서 경복궁 안쪽을 들여다보면 영제교를 지나 근정문, 근정전이 차례로 일자로 서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 흥례문

 

▲ 근정문

 

광화문, 홍례문, 근정문을 지나 드디어 근정전앞에 섰습니다.

근정전(勤政殿 국보 제223호)은 경복궁의 정전(正殿)으로 왕이 신하들의 조하(朝賀:조회의식)를 받거나 공식적인 대례(大禮) 또는 사신을 맞이하던 곳입니다. 정전인 근정전은 궁궐 내에서도 가장 규모가 크고 격식을 갖춘 건물로 면적도 가장 넓게 차지하고 있는데, 중층으로 된 근정전 건물은 2단의 높은 월대(月臺) 위에 자리하고 있으며 전면에는 중요행사를 치룰 수 있는 넓은마당이 있고, 그 둘레를 행각이 감싸고 있습니다.

이씨도 아니고 조선과 아무런 연관이 없습니다만 근정전 앞에 서니 울컥했는데 그 이유는 지금도 모르겠습니다. 

 

 

도심 속에 존재하고 있는 궁의 가치는 언제나 그 자리에 있어서 우리는 크게 관심을 가지지 않았습니다만, 언젠가 1박 2일 '경복궁 7대 숨은그림찾기'에서 유홍종 교수의 동행으로 경복궁을 아마 다시 보기 시작했으리라 생각합니다. 저도 당시 아주 인상깊게 봤는데 조선의 궁궐에 가보고 싶다는 생각이 그때 들었지 싶습니다.

 

근정전의 바닥은 얇은 돌(박석)을 설치했는데 그 아름다움을 체험하려면 폭우가 쏟아지는 날 와서 보면 알 수 있다는 말씀은 박석이 단순한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배수마저 자연스럽게 할 수 있도록 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하여 박석위를 조심스레 걸으며 살피기도 했습니다.

 

 

근정전 의례거행시 신료들이 품계에 따라 도열하던 표석인 품계석 사이에 박석에 박힌 고리가 있는데, 사신을 맞이할 때나 행사때 천막을 고정하는 시설이라고 했음이 떠올라 세월의 흐름에 닳은 박석위의 차일고리를 들어봤으며, 박석과 차일고리가 있는 사진속의 이미지는 이해를 돕고자 문화재청(http://www.royalpalace.go.kr:8080/)에서 가져 왔습니다.

사진으로 봐도 알수 있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많은 시민이 경복궁을 찾았기에 관계자가 아니었음에도 뿌듯했습니다.

 

 

유홍종 교수님이 알려준 또 하나는 드므입니다.

드므는 '넓적하게 생긴 독'이라는 순우리말로 궁궐에서는 월대와 마당에 드므를 설치하여 방화수를 채웠는데, 화마가 어느 집에 불을 내야겠다고 생각하면 그 집으로 내려오게 되는데, 그때 화마가 드므에 비친 자신의 얼굴을 보고 놀라 스스로 달아나게 해달라는 의미가 담겨있는 것이라고 합니다.

경복궁의 드므는 무쇠로 만들어져 있었습니다.

 

 

근정전은 이층으로 된 월대가 있고 그 중앙으로 임금의 가마가 지나가는 답도가 있는데 답도 가운데에는 봉황무늬가 새겨진 소맷돌이 있으며, 소맷돌주변에는 당초문이 정결하며 좌우로 해태가 새겨져 있고 그 양쪽으로 계단이 있습니다. 

 

 

 

기단인 월대의 귀퉁이나 계단 주위 난간 기둥에도 사방신(청룡, 백호, 현무, 주작:빨간공작)과 12지신상을 간결하지만 재치있게 조각해 놓았습니다.

 

 

근정전의 단청과 문살입니다. 문화재 보수나 단청작업 등은 지정인이 한다고 들었는데 빈틈없이 꼭 같은 무늬가 반복되며, 문이 큰만큼 문살이 깊었고 세월이 느껴졌습니다.

 

 

근정전 최고의 자리인 정전입니다.

정전의 안쪽은 바닥에 전돌을 깔고, 2층까지 높게 트이도록 하였으며, 북쪽 가운데에 임금의 어좌가 설치되었는데 어좌 뒤에는 왕권을 상징하는 해와 달, 다섯 봉우리의 산이 그려진 '일월오봉도'를 놓았고 천장에는 칠조룡을 조각하여 장식하였습니다.


* 어좌와 일월오악도 - 해와 달, 다섯 산봉우리, 붉은 소나무, 폭포가 그려져 있는 이 그림은 왕권의 상징으로 왕의 초상이 있는 어진 주변이나 왕이 있는 자리에 펼쳐 놓았다고 한다.

 

 

 경복궁 관람을 마치고 광화문쪽으로 나오는데 수문장 교대식이 있었습니다.

감히 근처에 가지 못 했습니다.

조선시대 수문장은 경복궁의 정문인 광화문, 사대문인 흥인지문, 숭례문 등 도성과 궁궐의 문을 지키는 책임자였습니다.

을미년 마지막 날입니다. 한 해동안 모두 수고하셨습니다. 
 ㅇ 수문장 교대의식 : 10시, 13시, 15시 / 1일 3회 / 소요시간 20분
 ㅇ 광화문 파수의식 : 11시, 14시, 16시 / 1일 3회 / 소요시간 10분
 ㅇ 수문군 공개 훈련(협생문 밖) : 12시35분(15분간) / 14시 35분(15분간)
 ㅇ 문의 : 한국문화재재단 문화진흥팀(☎02-3210-1645~1646)

 

* 기록은 문화재청(http://www.royalpalace.go.kr:8080/) 위키백과(https://ko.wikipedia.org/wiki/%EA%B2%BD%EB%B3%B5%EA%B6%81)를 참고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