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코드(L.P)판 피자와 바꿔 먹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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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 나누기/사람이 있는 풍경

2016. 1. 11.

우리가 이곳으로 이사를 온지 20여년이 되었습니다.

당시 진해에는 피자집이 한 곳 뿐이었을 겁니다. 어쩌면 더 있었을 수도 있지만 우리가 가는 곳은 중앙시장과 주변의 병의원이었기에 그 집만 피자를 파는 줄 알고 있었을 수도 있습니다만.

그 피자집이 얼마전에 엠비씬가 케이비에스에 나왔는데, 레코드(LP)판을 가지고 오면 피자를 준다는 방송이었으며, 몇 천장의 레코드가 벽에 꽉 차 있었습니다.

 

1월 7일 오후, 뒷베란다에서 몇 년전에 정리해둔 레코드판을 꺼내어 거실에 두었더니, 얼라아부지가 "그 집에 가서 파자 바꿔 물라꼬 그라지요"하기에 "어" 했습니다. 더 두면 돈이 될 수 있는데 그걸 꼭 먹어야 하느냐기에 더 둬도 우리 아이들은 관심이 없으며 우리도 더 이상 들을 일이 없으니 하나씩 정리해야 한다고 했습니다.

큰아이가 84년생인데 큰아이보다 더 오랜 된 레코드도 있었으며, 아이들을 키울 때 사진액자 등으로 사용하고도 88서울올림픽 코리아나 레코드 등 그 시절 인기가요가 대부분이었습니다만, 영화음악, 기타연주곡, 플룻연주곡 등 39장의 레코드가 나왔기에 정리를 하여 우선 8장을 종이봉투에 담았습니다.

 

 

레코드판을 정리하다보니 80년 중반 레코드 가격이 2800~5300원이었으며, 당시엔 맨 마지막곡은 대부분 건전가요였는데 요즘 아이들이 듣는다면 이게 뭐꼬 할 정도로 우리는 이상한 시대를 살았습니다.

 

 

박인희 판은 1970년대 판이며, 김현식 판은 미완성 발표앨범이고, 영화 Ghost(1990 제작)는 '사랑과 영혼'이라는 제목으로 상영했었는데 Unchained Melody는 듣고 있어도 듣고 싶었던 음악이었습니다. 양희은, 송창식, 조용필 판도 있네요.

김현식 미완성 앨범의 글입니다.

그는 가고 노래만 남았다.

그러나 그의 음악은 영원히 우리들 가슴속에 남아 언제나 노래할 것이다.

여기에 그가 마지막 순간까지 혼신의 힘으로 최선을 다한 그의 마지막 미완성 앨범이다.

그를 사랑했던 우리의 마음이 영원하기를 바라며 고인의 명복을 빈다.

1990년 12월 31일 (주)동아기획 대표 김영 

 

1월 8일, 전날보다 추웠지만 마음먹었을 때 다녀와야지 싶어 오전 11시 마을버스로 나갔습니다.

이코노 피자는 우리 아이들이 진해에 이사하여 피자가 먹고 싶다고 하여 몇 번 갔던 집으로, 당시엔 생일 등을 맞으면 주인장이 사진을 찍어 주기도 했던 23년쯤 된 피자집으로 중앙시장 입구 버스정류소쪽에 있는데, 아이들이 다 자랐고 언제부턴가 진해에도 피자집이 몇 곳 생겼으며, 우리는 집에서 주문하여 먹었습니다.

 

 

이미 진해 맛집으로 소문난 이코노피자는 입구에 가격과 방송 소개 등이 쓰여 있었으며, 유리문에 '레코드(L.P)판을 가지고 오시면 피자를 드립니다'라고 쓰여 있었습니다.

 

 

계단을 오르니 벽에 오래전의 사진이 붙어 있었는데, 모두 예날 사진들로 주인을 기다리는 사진들입니다.

요즘이야 카메라와 휴대폰이 흔하니 각자 찍지만 예전엔 그렇지 않았기에 주인이 직접찍어 나중에 찾아가곤 했습니다.

 

 

문을 밀치니 한쪽벽을 레코드판이 채웠으며 따로 박스에 있기도 했는데, 사장님이 오후 2시쯤에 오실거라고 하여 레코드판을 맡겨두고 경화시장으로 갔습니다. 3일과 8일이 경화장날이거든요. 하여 오랜만에 경화시장 구경을 갔습니다.

 

 

 

경화시장을 한 바퀴 돌고 점심으로 팥죽을 먹은 후 다시 경화시장을 한 바퀴 더 돌았습니다만, 시장을 보면 짐이 번거로울 것 같아 기장 흙시루에서 만난 이베리스(백설공주) 꽃화분과 표고버섯만 사 다시 버스를 타고 이코노피자로 갔더니 사장님이 문을 열어 주더군요.

김광석의 서른 즈음 레코드판이 돌고 있었습니다.

 

이코노피자는 최광열, 문혜숙 부부가 운영하며, 최광열 사장님은 바리스타 인증서까지 있었으며, 피자는 문혜숙 사장님이 직접 만들었는데, 배달은 근처는  최광열 사장님이 하며 바쁠 땐 따로 배달을 하는 분을 부른다고 합니다.

영업시간은 오전 9시~ 오후 11시가지면, 주문은 언제나 가능하다고 했습니다.

 

최광열 사장님은 젊은 날 레코드가게 주인이었습니다. 40여 년간 모은 6000여 장의 LP판을 들고 음악다방을 열었지만 음악다방은 사양길이었고, 음악다방이 기울어질 때쯤 피자집으로 전환해 23년째 접어들고 있는데 처음 피자집을 운영할 때엔 레코드판을 창고에 보관했었다고 합니다.

6000여 장의 LP판은 10000여 장으로 늘어났고 시디는 1500여 장인데, 카세트테이프는 취급하지 않지만 공테프를 원하는 이가 있을 시엔 보관중인 공테프를 준다고 했습니다.

 

LP판을 들고오면 피자를 준다고 했는데, 이 일은 6~7년 쯤 되었다고 했습니다.

17살 때 비틀스의 음악을 듣고 노래에 빠진 최광열 사장님은 지금도 아침에 일어나면 음악부터 틀며 잠이 들 때도 음악을 듣는다고 합니다.
'LP를 가져오면 피자를 드린다'는 문구를 넣은 건 평생 삶이 음악과 함께 했기 때문이지, 다른 의미는 없다고 했습니다.

시디와 인터넷의 보급으로 옛날과 달리 가정에서 레코드판을 들을 기회가 많지 않다보니, 버리기에는 아까운 레코드판을 한 사람의 노력으로 모아져 음악을 즐기는 사람들에게 신청곡으로 받아 들려주고 있으며, 고객은 피자를 먹으면서 함께 추억에 젖을 수 있는 공간이 이코노피자입니다.

 

 

 

김광석의 음악을 들으면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주고 받았습니다.

카메라가 여러대 보였으며, 나비 등 곤충이 액자에 있기에 궁금해 하니 자녀분이 곤충관련 일을 한다고 했으며, 카메라는 예전엔 손님들도 찍고 사진을 좀 찍었는데 디지탈 카메라가 보급된 뒤로는 잘 안찍는다고 했습니다.

 

 

 

레코드를 가지고 왔으니 피자 큰걸로 해 주마 하시기에 피자를 즐기진 않지만 사진찍을 욕심에 작은 걸로 달라고 했더니, 주방으로 가셔서 큰걸로 주문을 하시기에 우리는 두 사람뿐이니 정말 작은 걸로 주셔도 된다고 했는데, 사장님께서 그럼 중간걸로 하자고 하였습니다.

 

 

 

피자가 만들어지는 동안 또 이런저런 이야기를 주고 받는데 손님이 오셔서 아래 책자를 주며 구경을 하라고 하더군요.

2002년 월드컵 관련 기사를 빠짐없이 스크랩 한 책자였습니다.

요즘 같으면 인터넷에 접속하여 개인공간을 만들어 링크를 걸어두면 두고두고 볼 수 있는데, 2002년 당시에는 지금처럼 컴퓨터가 많이 보급되지 않았으며, 또 인터넷이 지금처럼 광속이 아니었습니다. 그러다보니 사장님은 신문 기사를 일일이 잘라 스크랩북으로 만들어 두었는데 내 식구가 관련이 없는 이상 이런 일은 쉽지 않은데 대단한 일을 한 듯 했습니다.

 

 

피자가 나왔습니다.

 

 

젊은 손님이 오셨을 때 김광석 판을 내리고 최신곡을 틀었으며, 피자를 들고 일어서려는데 손님이 김광석을 듣고 싶다고 하여 들던 피자를 내리고 김광석의 서른 즈음에를 다시 한 번 더 들었습니다.

그리곤 사장님께 그랬지요. 김광석의 노래는 세대를 초월하나보다고.

 

 

 

서른 즈음에를 들은 후 피자를 들고 시내버스를 타고, 다시 마을버스를 타고 집으로 왔는데 거의 한 시간 정도 걸렸다보니 피자가 식었습니다.

 

 

피자는 즉석에서 먹어야 맛을 제대로 즐길텐데, 식은 피자를 전자렌지에 데웠더니 치즈가 늘어나긴 했지만 즉석에서 먹는 피자보다는 못 했습니다. 피자는 치즈맛인데요. 메뉴를 봐도 무슨 피자인지 모르겠는데 페파로니와 양송이에 제가 좋아하는 새우가 듬뿍 있었으며, 블랙올리브로 장식을 하여 치즈가 뱅 둘러져 있었고 도우까지 말랑했습니다. 피자를 즐기지 않다보니 딱히 이런 맛이다라고 할 수는 없지만 부드럽고 고소했습니다. 새우의 식감은 어떻게 요리를 하든 다 좋아 합니다.

이코노피자를 나올 때 사장님께서 음악 듣고 싶을 때 언제든지 오라고 했는데, 여러분도 레코드판으로 음악을 즐기고 싶을 때는 이코노피자로 가 보셔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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