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주 무섬마을 외나무 다리, 너무 무서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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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 1. 9.

2017년 12월 25일

- (7번 국도 여행 10) 영주 무섬마을 외나무 다리, 너무 무서웠다


전날 영주의 날씨를 확인하니 영하 6도였습니다. 하여 우리는 최대한 단도리를 하여 숙박지를 나섰습니다. 전날 밤에 잠시 들렸던 무섬마을로 가기 위해서며 2박 3일 마지막날 일정을 소화하기 위해서입니다. 숙박지 근처에서 우렁된장국과 청국장찌개로 아침 식사를 했습니다.

우렁된장국은 시원했으며 청국장은 구수했고 밑반찬을 깔끔했습니다. 영주 종로식당은 농협쌀로 밥을 지으며 식재료는 국내산이었습니다. 무엇보다 이른 시간에 밥을 주어 고마웠습니다. 무섬마을로 출발!



경상도를 가로지르는 낙동강 줄기에는 강물이 산에 막혀 물돌이동을 만들어 낸 곳이 여럿 있는데, 물 위에 떠 있는 섬이라 하여 무섬마을이라 불리는 경북 영주시 문수면 수도리도 그 가운데 하나입니다.

무섬 마을은 중요민속문화재 제278호(2013.08.23 지정)로 지정되어 있으며, 경상북도 영주시 문수면 수도리에 있는 물돌이마을입니다.

낙동강의 지류인 내성천과 영주천이 합수되어 태백산과 소백산 줄기를 끼고 마을의 삼면을 감싸듯 휘감아 돌아 마치 섬처럼 육지속의 섬마을로 전통을 고스란히 간직한채 살아가고 있는 마을입니다. 강변에 넓은 백사장이 펼쳐져 있고, 그 건너편으로는 울창한 숲이 있어 경관이 아름다운 이 무섬마을에 사람들이 들어와 살기 시작한 것은 17세기 중반으로 반남박씨인 박수가 처음으로 이곳에 들어와 살기 시작했고, 이후 조선 영조때 그의 증손녀 사위인 예안(성선)김씨인 김대가 이곳에 들어와 살기 시작하면서 지금까지 반남박씨와 예안김씨 두 집안이 집성촌을 이루어 살고 있다고 합니다. 현재 약 48가구에 100여명의 주민이 거주하고 있는데, 가옥중 38동이 전통가옥이고, 16동은 조선시대 후기의 전형적인 사대부 가옥으로 여러 가옥이 민박을 운영하고 있었습니다.

오래전 드라마 추노의 촬영장소이기도 하며 옥중화를 촬영하기도 했고, 시골경찰을 이곳에서 촬영한다는 이야기를 듣기도 했습니다.

마을 안내도를 보면 옛집들 앞으로 내성천이 휘감아 흐르는 그림같은 마을입니다.



마을 헌장과 버스시간표입니다. 마치 과거로 가는 것 같았습니다.


다음 사전에는 영조임금의 증손녀 사위인 김대라고 했는데 무섬마을 안내에는 박수 선생 손자의 사위라고 되어 있습니다. 어느 것이 사실인지 알 수 없지만 무섬은 집성촌이며, 전통마을입니다. 



우리가 전날 만났던 마을 이정표입니다. 벌써 목련 꽃눈이 달렸습니다.



무섬마을의 전통 기와가옥은 'ㅁ'자형으로 경상북도 북부지역의 전형적인 양반집 구조를 띱니다.
대문을 들어서면 안마당을 중심으로 안채와 사랑채, 문간채 등이 사방을 둘러싸듯 배치되어 있어 대문 밖에서는 집안의 생활모습이 보이지 않는데, 무섬마을 전통가옥은 사랑채와 안채로 드나드는 문이 따로 있고, 안채를 사랑채보다 높게 지어 햇볕이 잘 들고 통풍이 잘 되게 하는 것이 특징인데, 유교적 격식을 엄격하게 거주환경에도 적용한 결과라고 합니다. 화장실은 한 칸 따로 있었습니다.

안채와 달리 사랑채는 밖에서 누구나 쉽게 볼 수 있는 공간으로 무섬마을 전통가옥들은 그 집 주인의 신분을 쉽게 구분할 수 있도록 사랑채의 기둥을 차별화하였는데, 같은 양반이라도 벼슬한 사람이 거처하는 집의 사랑채에는 원기둥을, 벼슬을 못한 사람은 각진 기둥을 세웠다고 합니다.

반남박씨 입향조인 박수가 마을에 들어와 건립한 만죽재(晩竹齎)를 비롯해 총 9개 가옥이 경북문화재자료 및 경북민속자료로 지정되어 있으며, 역사가 100년이 넘는 가옥도 16채나 남아있어 조상들의 자취와 숨결을 그대로 느낄 수 있는 공간입니다.



위의 안내도가 크기에 다시 반으로 잘랐습니다.



(위 안내도에서 찾으세요.)

만죽재 고택입니다.

경북민속자료 제93호 만죽재 고택은 반남 박씨의 무섬마을 입향 시조 종가로 350년의 세월을 담은 무섬마을에서 가장 오래된 가옥입니다.
현 소유자의 11대조인 박수(1641∼1699) 선생이 이 마을에 정착하여 지은 집으로, 안마당을 중심으로 ㄷ자형의 안채와 一자형의 사랑채가 ㅁ자형의 평면구조를 이루고 있으며, 사랑채만 독립된 팔작지붕이며 만죽재의 편액은 석운 박기양의 글씨라고 합니다.



문화재로 지정된 고택에는 이렇게 안내판이 있으며, 양반 가옥의 가옥 입구나 누마루앞에 돌확이 있는데 '확대'라는 이름의 세숫대야가 있습니다. 수도시설을 설치할 수가 없었던 시대에 곳곳에 무릎 높이 이상의 돌에다 둥근 모양과 복숭아 모양의 홈을 파서 물을 담을 수 있게 만든 것인데, 눈과 귀와 입, 손을 씻음으로 추함과 악함을 사하기 위한 상징성으로 둥근 모양은 남성전용, 복숭아 모양은 여성전용이었는데 복숭아는 또 다산을 뜻한다고 하는데, 만죽재 마당 한켠에 있는 돌확도 '확대'지 싶어 찍었습니다.



해우당 고택은 김씨 입향조 김대의 셋째집 손자 영각에 의해 건립되었는데, 경북 민속문화재 92호로 지정되어 있습니다. 해우당은 무섬마을로 들어가는 수도교를 건너자 마자 바로 왼편으로 보이는 가옥입니다. 해우당 고택에 있는 현판은 흥선대원군의 글씨라고 합니다. 안채에는 역시 흥성대원군이 쓴 '대은정'이라는 현판이 보관되어 있습니다.

민속문화재와 민속자료는 안내판이 달랐습니다.




무섬 마을의 전통 가옥들입니다. 대부분 마당이 넓었으며 재현해 놓은 드라마세트장같았습니다.



무섬식당이 있었는데 동절기(2월말)에는 휴업을 한다는 안내가 있었는데, 마을 입구 포장마차에 간단하게 먹을 수 있는 것을 팔기도 했습니다.



마을의 가옥 대부분이 민박을 운영하고 있었는데 한옥민박집입니다. 군불지펴 하룻밤 딩궁딩굴하면 좋을 듯 하지요.



이 집에는 민박객이 많은 듯 했습니다.



전통가옥이지만 난방 연료는 요즘식으로 연탄이나 가스, 기름인 모양인지 연탄이 가득했습니다. 어떤 가옥은 마루 아래에 장작이 그득했고요.



우리네 시골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겨울 풍경입니다. 무청이 말려지고 있으며 처마끝엔 옥수수도 달려 있었으며, 담장 아래에는 맨드라미나 접시꽃 등이 졌다는 걸 알 수 있었는데, 꽃이 피는 계절에 무섬에 가면 지금보더 따사로운 풍경을 만날 듯 합니다.





전통 메주, 된장, 청국장을 판매하는 가옥입니다. 가옥은 현대식이었으며 옆에 장독이 늘어 서 있었습니다.



청퇴정[淸退亭]은 반남 박씨 오헌 박재연을 추모하여 세운 정자라고 합니다. 초가의 화장실이 따로 있습니다.

- 참고 : 반남박씨 오헌고택



어떤 가옥은 아침밥 짓는 연기가 피어 올랐으며 어떤 집은 아직 깊은 밤이기도 했는데, 햇살이 잘 퍼지는 곳에선 마을 어른들이 모여 정담을 나누기도 했습니다.



전통한옥 체험 수련관입니다. 식구들이 저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무섬 전통한옥 체험 수련관은 전통한옥 건물로 영주무섬마을의 역사와 문화를 한눈에 살펴볼 수 있는 향토전시관이다.
지상 1층 규모로 내부 전시실은 총 5개의 테마로 구성되어 있으며, 무섬마을 형성의 역사와 배경, 무섬마을 사람들의 생활과 문화, 그리고 마을이 정착할 수 있는 바탕이 되었던 자연환경에 대한 특수성까지 무섬마을의 모든 것을 일목요연하게 체계화하여 담고 있습니다.



둑너머는 내성천이 흐르며 둑에는 나무시비가 있었습니다. 아침 해가 퍼지고 있습니다.




마을 둑을 넘어 외나무 다리로 갑니다. 외나무 다리는 한국의 아름다운 길 100선에 선정된 '마을과 뭍이 이어지는 길'이기도 하며 드라마 촬영장소이기도 합니다.



무섬마을 외나무 다리는 두 개인데 아래 다리는 이용을 않는 듯 했으며 위 다리에는 이른 시간임에도 여행객들이 다리를 건너고 있었습니다. 우리도 그렇지만 다들 부지런하세요.



흔히 이야기하는 무섬 외나무 다리입니다.

현재의 외나무 다리는 지난 350여년간 마을과 뭍을 이어준 유일한 통로로 길이는 약 150m라고 합니다. 1979년 현대적 교량(수도교)이 설치되면서 사라지게 된 이 다리는 마을 주민과 출향민들이 힘을 모아 예전 모습으로 재현시켜 놓았다고 합니다.

30년 전만 해도 마을 사람들은 나무를 이어 다리를 놓고 내성천을 건너 뭍의 밭으로 일하러 갔으며, 장마가 지면 다리는 불어난 물에 휩쓸려 떠내려갔고, 마을사람들은 해마다 다리를 다시 놓았다고 합니다.

책보를 메고 학교 가는 아이, 장가가는 새신랑, 꽃가마 타고 시집오는 새색시, 황천길로 가는 상여도 어김없이 이 외나무다리를 건넜는데, 외나무다리는 지난 350여 년간 무섬마을을 이어준 유일한 통로로 애환 어린 추억의 역사를 지녔는데 지금은 여행객을 붙잡는 다리이기도 합니다.



우리 식구들이 외나무 다리를 건넙니다.



무섬 외나무 다리입니다.

길이는 150m, 폭은 약 30cm로 통나무를 반으로 갈라 나무와 나무를 연결하여 만든 다리입니다.

폭이 좁아 긴 장대에 의지한채 건너야 하는 외나무 다리는 해마다 새로 다리를 만들었는데, 장마철이면 불어난 강물에 다리가 떠내려 가기 때문이었다고 합니다. 수도교의 건설로 사라졌던 외나무 다리는 최근 옛모습 그대로 복원되어 매년 10월에 '외나무다리 축제'를 만들어가는 중심이 되고 있습니다. 원래 외나무 다리는 3개가 만들어 졌었다고 한하는데요, 농사지으러 가는 다리, 장보러 가는 다리, 학동들이 학교 가는 다리였다고 합니다. 지금은 농사지으로 가는 다리만이 전통을 이어가고 있다고 합니다.



외나무 다리는 폭이 30cm정도다 보니 성인 한 사람이 겨우 걸어 건널 수 있을 정도입니다. 하여 다리 중간에 너른 곳이 있는데 이는 마주오는 사람을 피할 수 있는 공간 같았습니다.



외나무 다리를 건너서 찍은 마을 둑이 보이는 풍경입니다.

이 사진은 올케가 다리를 건너서 찍어 카톡으로 보내준 사진입니다.



노란 옷을 입은 이가 전데요, 외나무 다리에 올라서니 속이 울러거려 도저히 걸을 수 없어 외나무 다리는 그림의 떡이 되었기에 올케에게 마주하는 풍경을 부탁했습니다. 무섬은 무서움의 준말이기도 한데, 무섬마을은 외나무 다리 때문에 무서움을 타서 무섬마을이 된 것 같습니다.



식구들이 외나무 다리를 건넜다가 돌아 오는 사이 둑위로 올라 우리가 건너 왔던 수도교까지 걸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