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천 삼강주막과 삼강나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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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 1. 18.


2017년 12월 25일

- (7번 국도 여행 14) 예천 삼강주막과 삼강나루


7번 국도 여행 마지막 코스입니다.

무리를 했습니다.

안동에서 낙동강을 만난 후 느듯없이 예천의 삼강나루로 가자고 했습니다.

삼강나루는 경북 예천군 풍양면 삼강리에 있는 낙동강변의 나루입니다. 삼강은 안동에서 흘러오는 낙동강과 봉화군 선달·옥석산에서 발원하는 내성천, 충북 죽원산에서 시작하는 금천이 한데 몸을 섞는 곳을 말합니다. 그러나 삼강나루보다 삼강주막과 주모가 더 유명한 나루터입니다. 지금은 나루터도 주막도 옛모습을 잃었지만 여행객들은 입소문으로 이어이어 삼강주막과 삼강나루를 찾습니다.

삼강주막이 있던 자리에는 여러 채의 옛집이 새로 지어졌는데, 삼강주막 복원 및 주변 정비계획에 따라 지어졌으며 주변은 공사중이기도 했습니다. 삼강주막은 회화나무 아래에 있습니다.



새단장을 한 삼강주막(경상북도 민속자료 제134호)입니다.

삼강주막은 삼강나루의 나들이객에게 허기를 면하게 해주고 보부상들의 숙식처로, 때론 시인묵객들의 유상처로 이용된 건물입니다. 1900년 경에 지은 이 주막은 규모는 작지만 그 기능에 충실한 집약적 평면구성의 특징을 보여주고 있어 건축역사 자료로서 희소가치가 클 뿐만 아니라 옛 시대상을 읽을 수 있는 지역의 역사와 문화적 의의를 간직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유구한 역사와 함께한 유옥연 주모할머니가 지난 2006년 세상을 떠나면서 그대로 방치되고 있다가 2007년도에 1억 5천만 원의 예산으로 옛모습 그대로 복원되어 새로운 주모와 함께 나들이객들을 맞고 있습니다.

 




벽에는 현판이 걸려 있었습니다.

삼강주막 민속자료 134호

문패도, 번지수도 없는 주막이었던 이곳에 민속 자료 134호로 지정 받으며 생긴 주소는 경북 예천군 풍양면 삼강리166-1번지입니다.


삼강주막의 유명한 외상장부입니다. 글을 모르는 할머니는 벽에, 잔술은 짧게 주전자술 표시는 길게, 변제는 가로줄을 부지깽이로 그어  표시해 놓은 암호같은 장부입니다. 세월도 가고 주모도 갔지만, 외상장부가 남아 주막의 역사를 생생하게 전해 줍니다.




뱃사공과 보부상의 허기를 채우기 위해 국밥을 말던 부엌입니다.

방 두개에 마루, 다락이 있으며, 부엌은 문이 4개나 있는데, 삼강주막이 민속자료로 지정된 데에는 부엌이 큰 몫을 했다고 합니다. 둘이 들어가 움직이면 좁다고 느낄 정도로 협소한 부엌에 문이 자그마치 네개나 있는데, 혼자서 모든 일을 처리해야 하는 할머니가 어떤 방향으로든 움직이기 편하게 설계된 것입니다.

"주모 술 한잔 주소"하는 소리가 들릴 듯 했습니다.



주막에서 나루터로 가는 언덕에는 들돌이 있습니다.

들돌은 일반적으로 농촌의 청년이 장성하여 농부로 인정받는 의례에서 생긴 것으로, 나루터와 주막을 중심으로 상권이 형성되었던 때라 그만큼 많은 인력이 필요하게 되었고, 들돌을 들 수 있는 정도에 따라 몸값이 책정되었다고 합니다. 보는 것만으로도 그 무게가 엄청나게 느껴졌습니다.





삼강나루로 갑니다.

지율 스님 낙동강 사진전을 할 때, 박창희 기자의 '나루를 찾아서'를 읽을 때 가장 가보고 싶었던 나루가 삼강나루였습니다.

이곳은 예로부터 낙동강 하류에서 배로 실어온 각종 화물과 공물이 수레나 소와 말에 옮겨져 문경새재를 넘어 서울로 운송됐던 수륙교통의 요충지였습니다. 나루 주변은 낙동강을 오르내리는 배들이 부려놓는 농산물의 집산지였고, 대구와 서울을 잇는 군사도로도 건설돼 있어 1960년대까지 몰려드는 유동인구로 늘 북적였다고 합니다. 그러나 지금은 나룻배도 사공도 없고 강물만 유유히 흐릅니다.






다시 주막터입니다. 새로운 삼강주막이 영업을 하고 있습니다. 막걸리, 배추전, 잔치국수, 소고기 국밥 등으로 요기를 할 수 있으며, 식음료도 판매를 합니다.

따스한 날에는 체험거리도 종종 있다고 합니다.





삼강주막으로 들어가거나 나오는 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