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흥 청다리의 사연과 영주 선비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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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 나누기/가본 곳

2018. 8. 31.

8월 15일

소수서원에서 죽계천을 건너면 소수박물관과 영주 선비촌이 있습니다. 입장료는 선비촌 입장시 구입하면 3곳 관람이 가능합니다.

소수박물관은 상설전시실과 기획전시실이 있으며 2층 건물로 유교를 중심으로 한 전통문화유산을 체계적으로 정리하고, 한국 최초의 사액서원인 소수서원을 통해 조선 유학의 전통을 한눈에 체험할 수 있도록 설립된 유교 전문 박물관으로 2004년 개관했습니다.

 

 

 

박물관에 입장하니 죽계천을 건널 때 건넌 징검다리 같은 돌이 세워져 있기에 다가가니 '다리 밑에서 주워왔다'는 말을 탄생시킨 순흥 청다리인 죽계 제월교비가 전시되어 있었습니다.(위 지도에서 위치 확인 가능)

지금은 이런 말을 하면 아동학대죄에 해당하지만, 어렸을 적 한번쯤은 들어봤을 법한 '너는 다리 밑에서 주워 왔다'고 하는 농담의 원조가 영주 순흥 청다리에서 탄생했다고 합니다.

영주문화원(www.yjcc.or.kr/)에서 가지고 온 청다리 이야기입니다.

영주시 순흥에서 북쪽으로 약 1㎞쯤 떨어진 곳에 소수서원이 있다. 이 소수서원을 끼고 죽계수가 흐르고 있으며 순흥에서 부석으로 통하도록 죽계수 위에 놓여진 다리가 있는데 이 다리를 청다리라고 한다.
주세붕(周世鵬)선생이 세운 백운동 서원에는 조정에서 벼슬을 하다가 그만 둔 학자와 청년들이 많이 모여서 학문과 덕을 닦았다. 한편 이곳에는 숲이 우거지고 시냇물이 맑아 주위에서 이 곳의 경치를 따를 만한 곳이 없었다. 그리하여 학자와 청년들은 이 곳이 풍류를 즐기기에 제격이었으므로 때때로 기생을 불러서 풍류를 즐기곤 하였다. 이러한 가운데 서로 놀다가 정이 들어 사생아를 낳기도 했는데 양쪽 모두 이러한 사생아를 기를 형편이 되지 못했다. 그래서 이 사생아들을 죽계수 위에 놓인 청다리 밑에다 버렸다. 당시에 자식이 없고 후손이 귀한 집에서는 이러한 아이를 많이 주워다 길렀다고 하는데 지금도 늙은 할아버지나 할머니들이 어린이들을 달랠 때에 "청다리 밑에서 주워왔다. 너의 어머니는 청다리 밑에서 고운 옷과 맛있는 음식을 해놓고 기다린다"라고 한다. 청다리라는 말도 꽃같이 젊은 기생들과 인연이 깊은 뜻에서 상징한 이름이라고 한다. 지금은 옛날의 이러한 사연을 아는지 모르는지, 죽계수는 청다리 아래로 맑은 소리를 내며 흘러 오가는 사람들의 마음을 한결 가볍게 하고 있다. 소수서원 북쪽편 죽계수 위에 제월교(霽月橋)라는 해묵은 돌비가 있다. 이것의 속명이 청다리이다.

 

 

현대식으로 건설된 죽계제월교(竹溪霽月橋)입니다. 소수서원에서 부석사로 가려면 이 다리를 건너야 하며, 버스정류장의 이름은 '원단촌(청다리)이며 아래로 많은 사연을 안고 죽계수가 흐릅니다.

 

 

소수박물관 2층에서 선비촌으로 통하는 길이 있었기에 우리는 그 길로 선비촌에 입촌했습니다.

 

 

영주 선비촌 전경입니다.(출처 : 선비촌 홈페이지)

붉은 동그라미 부분이 소수박물관이며, 옆의 소나무 사이로 죽계천이 흐릅니다.

 

 

소수박물관에서 영주 선비촌에 입촌했습니다. 주차장 한 켠에 선비촌 설명이 있으며 선비상이 있습니다.

경북의 경주 양동마을, 안동 하회마을, 영주 무섬마을이 전통마을이며, 영주 선비촌은 유교문화 발상의 중심지로서 옛 선비정신을 계승하고, 선현들의 학문 탐구와 전통생활 모습의 재현을 통하여 관광자원화하고, 우리 전통적 고유사상과 생활상의 체험 교육장으로 활용하고자 2004년 개관했는데, 영주 관내 여러 마을에 흩어졌던 기와집과 초가집 등의 고택을 복원시킨 전통체험마을입니다.
선비촌에서는 관광객들이 숙박할 수 있도록 개방돼 있으며 농사일을 체험하고 전통복식을 입어보고, 예절과 선비정신, 서당, 다례교육 등을 체험할 수 있을뿐만 아니라 윷놀이와 제기차기, 장작패기, 지게지기, 새끼꼬기 등의 전통문화도 체험이 가능합니다.

 

 

주요규모로는 와가 7가구, 초가 5가구, 누각 1동, 정사 2동, 정려각 2동, 성황당 1동, 곳집 1동, 원두막 1동, 저자거리가 있으며 여러 드라마가 촬영되기도 했습니다.

 

 

선비촌 저잣거리에는 여러 음식점이 있었기에 점심시간을 넘겨 배가 고플 것 같아 묵이라고 먹을까 하니, 조금 있으면 밥 먹을건데 그때 많이 먹지요 했기에 소수서원을 거쳐 선비촌으로 다시 왔습니다. 저잣거리에는 뜨라네, 인삼주막, 종가집, 수랏간 등에서 식사가 가능하며, 마을기업 분식점에서 라면과 칼국수 등을 먹을 수 있으며, 아이스크림을 파는 매점이 있었기에 시원하도록 아이스크림을 하나씩 물었습니다.

 

 

체험공간인데 날씨가 워낙 더웠기에 무얼 하거나 할 형편이 되지 않아 그저 관람만 했습니다.

 

 

당나귀가 끄는 꽃마차를 타고 선비촌을 관람(1인 5,000원)할 수도 있나 본데 더운 날씨에 파라솔 아래의 나귀가 고통스러워 하고 있었으며, 나무 그늘에서 할아버지께서 새끼를 감고 있었는데 할아버지의 등 뒤에는 대형선풍기가 쉼없이 돌았습니다.

 

 

 

농경시대에 볏짚으로 꼬아 만든 줄인 새끼는 두루 사용되었지만 요즘은 현대식 노끈이 다양하게 나오기에 새끼는 전통마을에서나 볼 수 있습니다. 새끼를 꼬는 기계가 있으며 새끼 타래가 초가 처마 아래에 쌓여 있기도 했습니다.

 

 

선비촌 안내도입니다. 선비촌 홈페이지에서 가지고 왔습니다.

만죽재와 해우당 고택, 김뢰진 가옥은 지난해 겨울 무섬을 방문했을 때 본적이 있는데, 선비촌에 복원해 두었기에 선비촌 복원가옥은 어떤지 궁금했습니다.

 

 

김상진 가옥의 소재지는 부천면 소천리라고 합니다. 전통적인 양반가로 담장에 기댄 불두화 비슷한 나무수국이 인상적이었으며, 양반가답게 장독대에 독도 많았습니다.

 

 

 

 

김상진 가옥 뒤 해우당 고택 입구에는 신랑신부 포토존이 있었으며 대문밖에는 백일홍이 만발했습니다.

해우당 고택은 김씨 입향조 김대의 셋째집 손자 영각에 의해 건립되었는데, 경북 민속문화재 92호로 지정되어 있습니다. 해우당은 무섬마을로 들어가는 수도교를 건너자 마자 바로 왼편으로 보이는 ㅁ자 가옥으로 해우당 고택에 있는 현판은 흥선대원군의 글씨라고 합니다. 선비촌의 해우당 고택은 복원된 가옥입니다.

 

 

 

ㅁ자 구조인 가옥에 들어서니 사이로 하늘이 보입니다.

 

 

 

15일 해질무렵 방문한 무섬마을의 해우당 고택입니다.

 

 

영주 선비촌에서는 한옥 숙박체험이 가능합니다. 하여 저희도 선비촌에서 하루 묵을까하며 검색을 하다보니 입실 시간이 늦었으며 퇴실 시간은 빠른 시간이었기에 무섬마을에서 하루 묵기로 예약했습니다.

 

선비촌 숙박체험 안내입니다.(선비촌 홈페이지에 이용금액과 묵을 방 안내 있음. http://www.sunbichon.net/home/bbs/content.php?co_id=stay&pageNum=1&subNum=1)

* 한    옥 : 김상진 가옥, 해우당 고택, 인동장씨 종택, 두암 고택, 김문기가, 만죽재, 김세기가.
* 강학당 : 강학당 이용금액 : 20만원이며, 고택이 아닌 선비촌으로 문의해야 합니다.
* 단체숙박은 선비촌 관리사무소 (054-638-6444)로 문의 하면 됩니다.


- 입실 및 퇴실 시간
* 입실 : 유료관람  종료시간(동절기 17시, 춘추절기 18시, 하절기 19시)
* 퇴실 : 입실 다음날 오전 10시 이전까지

 

 

숙박체험 가옥의 방에는 아래처럼 00방으로 되어 있으며, 관람객이 있을 시 문을 잠그고 외출을 해야 합니다.

 

 

댓돌위에는 고무신이 있으며 선비촌이라고 쓰여 있는데 성의가 부족한 듯 한 글씨체며 짝이 맞지 않지만, 전구에 씌워진 전등갓바구니는 소품으로 만족스러웠습니다.

 

해우당 고택의 장독대와 손자방입니다.

손자방에는 자기 수양을 위해 어릴때부터 교육을 중시하였던 선비의 모습을 재현했습니다. 선비들은 우선 자신의 몸과 마음을 갈고 닦아 학문을 힘쓰며 일상의 생활윤리를 실천하는 일, 곧 수신(修身)을 중요시했는데, 김상진家, 해우당고택, 강학당 '수신제가(修身齊家) 공간이며, 두암고택, 인동장씨종가는 사회에 진출하여 이름을 드높인다는 뜻의 입신양명(立身揚名) 공간입니다. 옛 선비들에게 과거시험을 통한 관료의 길은 수신제가(修身齊家)후 치국평천하(治國平天下), 즉 나라를 다스리고 천하를 얻는 일이었는데, 입신양명의 공간에서는 중앙관직에 진출하여 다양한 활동을 하였던 영주 선비의 모습을 살펴 볼 수 있도록 하였습니다.

 

영주 선비촌은 선비들의 정신을 1. 수신제가(修身齊家), 2. 입신양명(立身揚名), 3. 거무구안(居無求安), 4. 우도불우빈(憂道不憂貧)의 정신(공간)으로 구분하여 그들 삶의 도구나 자세에서도 그 정신을 였볼 수 있게 조성되었다고 합니다.

 

 

 

이 소박하며 아름다운 가옥은 누구네 가옥일까 하며 보니 화장실이었습니다. 마당 한 켠에 나무수국이 가득 피어 있었거든요.

 

 


김세기, 김회진, 장휘덕, 김구영, 김규진, 두암고택 가람집은 우도불우빈(憂道不憂貧) 공간으로 우도불우빈이란 가난함 속에서도 바른 삶을 중히 여긴다는 뜻입니다.
비록 살림살이가 어렵더라도 잘사는 일에 욕심이 나서 선비의 도를 벗어나지 않았으며 곤궁함으로 인해 가볍게 스스로의 품격을 잃지 않는다는, 우도불우빈의 공간에서는 간난을 부끄러워 하지 않고 청빈한 삶을 살았던 선비들의 모습을 느낄 수 있도록 했습니다.

김구영가와 두암고택 가람집의 장독대와 전통 냉장고입니다.

두암고택 가람집은 두암고택에 딸려 있던 하인과 노비가 기거하던 집으로 하배집으로 불리기도 했습니다. 대가집에는 이런 가람집을 두고 하나의 가옥 무리를 이루는 경우가 많았다고 하는데, 두암고택 가람집은 일자형 초가로 내부에는 하인들의 생활상을 나타낼 수 있는 가구들을 비치하였는데, 화려할 것 하나 없는 수더분한 가옥에서 하인의 신분으로 많은 꿈을 접고 살아야했던 고단한 그네들의 삶을 엿볼 수 있는데 옛날처럼 신분제도는 없지만 현재 우리네 서민과 비슷한 생활이 아니었을까 생각합니다.

 

 

 

 

두암고택 가람집 담장에는 여름꽃이 덩굴을 이루며 피어 있었고, 옆집 김세기가의 담장밖에도 계절식물이 자리를 했는데, 예나 지금이나 사람 사는 공간의 풍경은 비슷한가 봅니다.

이제 진짜 점심 먹으러 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