똥개 촬영지 용활터널은 세 개의 이름이 더 있으며 두 개의 터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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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 나누기/가본 곳

2018. 11. 27.

11월 18일

밀양시 내일동 용평마을에서 월연정 초입까지의 짧은 거리는 온통 가을이었기에 달리면서 카메라질을 했더니 쓸만한 사진이 없어 아쉽기까지 합니다.

내비의 안내가 목적지에 왔다고 하여 주차후 내리니 터널이 있었으며 터널옆의 언덕으로 오르는 길이 있었고, 그 길 아래를 약간비켜 월연정가는 길이 밀양강을 따라 있었습니다. 우선 터널입구의 사진부터 찍어 두었습니다. 나중에 어떻게 될지 모르니까요.

높이 4M며 그 윗쪽에 터널이름이 있습니다.

 

 

월연수도(月淵隧道).

터널을 隧道라고도 하며 이 터널의 이름은 월연정 아래에 있기에 월연터널인 모양입니다. 이 터널은 1905년에 개통되었으며 월연정은 1520년(중종 15)경으로 추정된다고 하니 월연정이 훨씬 이전에 건축되었습니다.

 

 

입구에 똥개 영화찰영지 안내표지판이 있었습니다. 영화 똥개를 본적이 없다보니 검색을 했습니다. 곽경택 감독이며 감우성 주연으로 2003년 작품으로 밀양을 배경으로 하고 있었는데, 철민(감우성)과 친구들이 조직폭력배와 패싸움을 벌인 곳이 '용활터널'입니다. 지역민은 월연터널을 용활터널로 부른다고 합니다.

그런데 영화촬영지 안내표지판에는 용평(백송)터널이라고 되어 있습니다. 이 터널은 밀양시 내일동 용평과 교동 모리를 연결하는 터널이니 용평터널이며 월연대 아래의 백송이 있어 백송터널이라고도 하나 봅니다. 총길이 130M의 터널에 이름이 네 가지나 됩니다.

 

검색에 검색을 한 결과입니다.

똥개 촬영지 용활터널의 이름이 네 가지인데, 용활은 밀양시 내일동을 말하는데(다음 검색창에 밀양시 용활동을 검색하면 밀양시 내일동이 나옴), 다녀 온 금시당의 안내표지판 주소가 '밀양시 용활동'이었으며, 월연정 주소가 지금은 '용평동 1-2'이지만 이전 주소는 '밀양시 내일(용활)동 1'이었습니다. 즉 용활, 용평터널은 지역명이며, 월연터널은 이태 월연을 뜻하고 백송터널은 월연대 아래의 백송을 뜻하는 듯 합니다.

다음 지도검색에서는 용활, 월연, 백송터널이 검색되지 않고 용평터널로 검색되었는데, 다음은 분명한 이름이 있는데 왜 터널이름에 지역명을 넣었을까요.

밀양시에서 하나로 통일해 주면 좋지 않을까 싶습니다.

 

 

 

월연터널은 1905년 경부선 철도 개통 당시 사용되었던 철도 터널로 1940년 경부선 복선화로 선로가 이설되면서 일반 도로로 이용되고 있다고 합니다. 여기까지 카메라에 담은 후 월연정과 차를 돌려 용호정(龍湖亭)을 확인한후 오연정(鼇淵亭)으로 가기 위해 다시 월연터널쪽으로 갔습니다. 오연정은 월연터널을 지나 교동에 있는데, 월연터널은 밀양시 내일동 용평과 교동 모리를 연결하는 터널입니다. 

 

 

앗, 총길이 130M의 짧은 터널은 두 개였습니다. 터널을 달리는데 하늘이 열렸으며 다시 터널이 이어졌습니다. 하여 터널을 빠져나간 후 차를 세워달라고 했습니다. 주차후 혼자 터널속으로 들어 갔습니다. 폭이 3M며 차량통행이 있으니 조심스러운 걸음이었습니다.

교동 모리에서 터널로 들어 갑니다. 터널 이름은 없었습니다. 워낙 짧은 거리다보니 휘어져도 저쪽끝이 보입니다.

 

 

차도가 아닌 턱위로 걸었습니다. 생각외로 차량통행량이 많았으며 폭이 좁은 터널속이다보니 몸이 절로 움츠려들었습니다.

 

 

하늘이 열리는 곳이 가까워지고 있습니다.

 

 

월연터널은 쌍터널입니다.

 

 

 

열린공간을 올려다보니 잡목이 또 다른 터널을 이루고 있었습니다.

 

 

 

다시 한 번 뒤돌아보고 왔던 길을 걸었습니다. 동굴속처럼 바위가 물에 젖어 있었습니다만 바위는 몇 십년이 지나도 끄덕없이 그 자리에 있는 듯 했습니다.

 

 

 

혹여 이어지는 터널에 이름이 새겨져 있을까 하며 위를 봐도 첫입구외에는 터널이름이 새겨져 있지 않았습니다.

 

 

터널을 돌아서 교동으로 갈때는 마음이 여유로웠습니다. 이미 다 확인하여 더는 확인할게 없을 듯 했으니까요. 그런데 차량 불빛에 드러난 터널 천장이 작은 붉은벽돌이었습니다. 그동안 가본 와인터널 내부와 같았습니다. 일제강점기때 건설된 철로의 터널은 모두 같은 방식으로 건설된 듯 했습니다. 비상구 같은 게 보였습니다.

 

 

비상구인지 뭔지는 알 수 없지만 아치형으로 쌓아 벽면보다 더 들어간 부분이 있었습니다. 한 사람 정도 피할 수 있을 듯 한 공간이었는데, 한 곳에는 숫자가 쓰여 있었습니다.

2016년 8월 진입차량 통제 시스템을 구축했다는 기사가 있었습니다. 숫자는 어쩌면 그때 뭔가를 표시하기 위해 적었을 수도 있겠습니다.
차량 통제 시스템이 구축되기 전 용평터널은 좁은 폭으로 차량통행시 양방향 통행이 사고의 위험과 교통 소통에 어려움이 많아 지역 주민들 등 이용객들의 불편이 초래되고 있었는데, 진입차량 통제 시스템이 구축된 후 터널 반대편에서 진입하는 차량을 신호를 통해 미리 알 수 있어 터널 진입 시 안전하게 이동할 수 있고 교통사고를 사전에 예방할 수 있게 됐다고 합니다. 일반 신호등처럼 위반시 과태료 처분 등 강제성은 없으나 설치된 시스템을 잘 활용하여 안전하게 통행해야 겠습니다.

 

 

진입차량 통제 시스템인 모양입니다.(양 방향)

 

 

다시 터널 천장입니다. 공사 인부는 당연히 우리나라 국민이었겠지요. 벽돌 한 장 한 장에 나라잃은 국민의 설움과 좌절·절망, 땀과 눈물이 배여 있을 것입니다. 진해에는 일제강점기때 건축한 건물중 등록문화재(근대문화유산)가 몇 있습니다. 일제강점기때 건축한 것들이라고 하여 허물어야 한다는 의견이 있는 반면 일제의 잔재라고 하더라도 교훈으로 삼도록 보존해야 한다는 의견이 있는데 저는 후자입니다.

 

 

 

이제 교동입니다. 저 나무가 어떤 나무일까, 어디쯤에 있을까 하며 나무를 응시하여 걸었습니다. 하동이나 통영만큼 궁금한 밀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