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장 대룡마을 작은 도서관의 수련은 피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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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 나누기/가본 곳

2019. 7. 23.

7월 7일

울주 나들이 마지막은 부산 기장 장안읍의 대룡마을입니다.

새해 첫 날 다녀온 마을입니다. 농촌과 예술이 결합한 마을로 동네 한 바퀴가 예술 여행이 되는 곳이라기에 선택했었는데 황망하기만 했던 마을로 각인되어 있기에 다시 방문하여 각인된 이미지를 바꾸고 싶었으며, 상상도서관 건물 아래의 수련이 피었는지 궁금하기도 했습니다.

 

대룡 마을의 형성 시기는 확인할 수 없으나, 마을이 속한 오리는 1681년(숙종 7) 기장현 상북면 신리방이 되었고, 1895년(고종 32) 5월 26일 을미개혁 때 기장군 상북면 오동(五洞)이 되었습니다.『경상남도 기장군 가호안』[1904]에는 상북면 대룡동에는 7호가 있고, 이 중 김씨가 4호라고 기록되어 있다고 합니다. 1914년 3월 1일 행정 구역 개편으로 동래군 장안면 오리가 되었으며, 1973년 7월 1일 동래군이 폐지되며 양산군에 병합되어 경상남도 양산군 장안면 오리에 속하였다 1985년 10월 1일 장안면이 장안읍으로 승격되었다가, 1995년 3월 1일 부산광역시에 편입되며 부산광역시 기장군 장안읍 오리 대룡 마을이 되었습니다. 우리 동네만큼 애환이 많은 동네였습니다.

 

대룡(大龍) 마을의 명칭 유래에는 여러 설이 있는데, 첫째는 마을 남쪽의 큰 바위가 용처럼 생겨 대룡암이라고 불렀으며, 이를 따라 붙여진 이름이라는 설, 둘째는 마을 뒤쪽 계곡에서 큰 용이 승천하여 붙여진 이름이라는 설, 셋째는 대룡 마을의 산세를 내룡(來龍)으로 보고, 물이 풍부해 큰 들이 있다 하여 붙여진 풍수와 관련된 명칭이라는 설이 있는데 이 가운데 세 번째 설이 주변 마을 명칭 및 지세와 관련해 가장 설득력을 얻고 있다고 합니다.

 

마을로 접어들자 앙상했던 나무가 초록잎을 입은 것 외에는 변화를 느끼지 못 할 정도로 대룡마을은 그 자리에 그 모습으로 있었습니다.

마을입구에는 작은 점방이 있습니다. 날씨도 덥고하여 점방에서 아이스크림을 샀습니다. 체크카드로 결제를 원하니 연세가 있으신 할아버지께서 능숙하게 결제를 해 주었습니다.

청용반송앞의 참새방앗간이 반송옆으로 이전했습니다.

 

 

굴뚝이 인상적이었던 O2커피점은 문이 열려 있었습니다.

 

 

O2 마당이 보이는 곳에서 인사를 나눈 손님이 커피를 마십니다. 마을을 한 바퀴 돌고 다시 02앞으로 가니 젓가락 장단에 구성진 옛노래가 들렸습니다. 동호회의 모임이 있는 모양이었습니다.

 

 

겨울, 성우학교가 보이던 옛담장이 좋았던 그집에는 능소화가 담장을 넘어 왔습니다. 대문에는 입춘대길이 붙어 있었지만 여름입니다.

 

 

마을 소개가 있으며 상상 작은 도서관과 경노당이 있는 곳으로 가고 싶었지만 귀한 것은 아껴서 나중에 보기로 하고 샛길로 들었습니다.

 

 

남자 한 분이 오래도록 카메라를 만지고 있었습니다. 앞으로 지나가기에 미안하기도 했지만 카메라를 거둘 생각을 않기에 앞으로 지나갔습니다.

 

 

능소화는 옛담장과 잘 어울리는 꽃입니다. 가만히 안을 보노라니 주인이 광에 뭔가를 가지러 가다 눈이 마주쳐 인사를 나누었습니다. 잠시 들어가도 될까요?

 

 

지난 겨울 대룡마을을 방문했었는데 건조했던 풍경이 가슴에 남아 있기에 그 풍경을 지우고 싶어 대룡마을을 방문했다고 했습니다.

잘 했답니다.

이 집은 큰농사를 짓는지 마늘과 양파가 많이 걸려 있었으며, 밀짚모자도 여러개가 걸려 있었고 어른을 모시는지 하얀고무신도 있었습니다. 주인이 푸근했습니다.

 

 

아름다운 집을 나와 마을 골목길을 걸었습니다. 우리네 사는 곳은 거의 다 비슷합니다. 텃밭이 있으며 요즘은 귀한 암소도 만났습니다.

 

 

드디어 대룡 상상 작은 도서관입니다.

진하를 떠날 때 그랬지요. 상상 작은 도서관의 수련이 피었을까 하고요.

 

 

수련이 피었습니다. 반가웠습니다.

수련은 반영이 아름답기에 건너편으로 가서 구부려 반영된 모습을 찍었습니다. 눈부셨습니다.

 

 

 

상상 작은 도서관안으로 들어가면 커피점 '야야'와 경노당이 있습니다. 셀프커피점은 전에처럼 밖에서만 바라 봤습니다. 남자분이 있긴 있었지만 누구도 말을 걸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이 집 안팎에는 다육이 많은데 용도가 무엇인지 궁금하긴 했습니다.

 

 

왜 정리를 하지 않을까?

저연스러운 걸 좋아 하긴 하지만 하루쯤 짬을 내어 잡초를 뽑고 정리를 해 주고 싶었습니다.

 

 

경노당에는 할머니들이 7명 이상 계십니다.

 

 

경노당을 지나 마을 뒷쪽으로 가면 이정표가 있으며 배밭이 있습니다. 그런데 배나무가 병이 든듯 했습니다.

열매를 봉지에 싸지 않았으며 잎에 반점이 있었습니다.

 

 

아트 인 오리와 무인카페로 가는 길입니다. 역시 밭이 정리되지 않고 버려져 있었습니다. 어쩌면 밭의 주인이 노인이라 이게 최선일 수도 있겠지만 제 눈에는 버려진 듯 보였습니다.

 

 

아트 인 오리와 무인카페에 도착했습니다. 홑왕원추리가 반겨주었으며 무인카페는 문이 열려 있었습니다.

 

 

창문도 열려 있었습니다. 가끔 사람들이 지나다녔지만 무인카페에 다 들리지는 않았습니다.

 

 

겨울과는 달리 무인카페는 정리가 되어 있었습니다. 새봄맞이 단장이라도 한 듯 했습니다. 난로는 꺼져 있었습니다.

마을 주민들이 채소나 곡식을 한 켠에 가져다 두어 팔기도 했는데, 대신 성우학교 학생들의 작품이 있었습니다.

채소철인데 마을 주민들이 연세가 많아 농사를 포기한 걸까?

 

 

오리공작소입니다.

오리공작소의 바깥에는 이런저런 물품들이 전시되어 있었습니다. 판매용으로 외부에서 들여 온 상품도 있으며 오리공작소에서 제작한 상품도 있답니다.

 

 

오리공작소 앞에는 호두나무가 있었는데 호두나무 아래를 보니 맞은편에서 젊은 여자가 전화 통화중이었는데 옆에 채소가 보였습니다.

 

 

무인카페의 채소가 여기로 왔습니다. 마을 주민들의 농작물이 아니라 전화를 하는 여자분의 어머니께서 지은 농산물이라고 했습니다.

수고스럽게 봉지봉지 담아 한 봉지에 2,000원이었습니다. 옆에는 추억의 불량과자 쫀드기와 가스버너가 있었습니다.

 

 

빈손으로 왔다가 빈손으로 오리공작소를 나섭니다.

 

 

가끔 티비에서 대룡마을이 소개될때 작가나 음악을 하는 이들의 생활이 나왔는데, 어쩌면 그중 한 집일 수도 있는 집으로 개인사유지라 출입을 금한다고 했습니다. 이 마을에서 가장 현대식 집이며 가꾸어진 집이었습니다.

 

 

이 골목 저 골목을 다니다보니 아이와 어른도 만날 수 있었으며, 문패를 보니 그렇지 않은 가구도 있었지만 대부분 자기문패였습니다.

마을에서 공동으로 맞춘 듯 하지요?

 

 

 

마을을 돌고 다시 마을 입구로 왔습니다. 아이스크림을 또 사서 먹으며 잠시 쉬었습니다. 나름 식물을 심어 마을 가꾸기를 한 듯 한데 식물이 약했습니다. 사람이나 식물이나 꾸준히 돌봐야 제 몫을 합니다.

대룡마을은 그대로 대룡마을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