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양 영남루 단풍과 밀양아리랑(동영상)

댓글 2

마음 나누기/가본 곳

2019. 11. 26.

11월 24일

58번 국도를 타고 밀양시내로 갔습니다. 가는 길에는 김범우묘와 부산대학교 밀양캠퍼스가 있기도 했으며, 밀양역을 지날때 영남루에 갈까 하기에 그러자고 했습니다. 영남루는 몇 번 갔지만 갈때마다 편안한 풍경이 좋으며 늦가을 단풍을 즐기기 위해서입니다.

 

 

배려의 계단을 걸어 영남루에 닿았습니다. 은행잎이 떨어진걸로 봐 단풍은 늦은 듯 했습니다.

 

 

영남루 안내 표지판입니다.

조선시대 후기의 대표적인 목조 건축물인 밀양 영남루(密陽 嶺南樓)는 신라 경덕왕(742~765년)때 신라의 5대 명사 중에 하나였던 영남사의 부속 누각에서 유래가 되었습니다. 고려 공민왕 때(1365) 밀양부사 김주(金湊)가 규모를 크게 중수하였으며, 현재의 누각은 조선 헌종 10년 이인재(李寅在)부사가 1844년에 중건했으며, 진주 촉석루, 평양의 부벽루와 더불어 우리나라 3대 누각 중 하나로 손꼽히고 있으며, 보물 제 147호로 지정되어 있습니다.

 

낙동강의 지류인 밀양강변 절벽위에 위치한 영남루는, 화려한 단청과 다양한 문양조각이 한데 어우러져 있으며, 퇴계 이황, 목은 이색, 문익점 선생 등 당대의 명필가들의 시문현판이 즐비한데 그 중에서 1843년 당시 이인재부사의 아들 이증석(11세)과 이현석(7세) 형제가 쓴 영남 제일루(嶺南第一樓)와 영남루(嶺南樓) 현판은 관광객들의 탄성을 자아내게 할 뿐만 아니라 수많은 서예가들로부터 불가사의한 필력으로 지칭되고 있습니다.

 

규모는 앞면 5칸·옆면 4칸이며, 지붕은 옆면에서 볼 때 여덟 팔(八)자 모양을 한 팔작지붕으로 기둥은 높이가 높고 기둥과 기둥 사이를 넓게 잡아 매우 웅장한 분위기를 자아내고 건물 안쪽 윗부분에서 용 조각으로 장식한 건축 부재를 볼 수 있으며, 천장은 뼈대가 그대로 드러나 있는 연등천장입니다. 영남루와 침류각 사이는 월(月)자형의 계단형 통로가 있는 독특한 건물의 배치와 구성을 보여주고 있는 영남루는 밀양강 절벽의 아름다운 경관과 조선시대 후반기 화려하고 뛰어난 건축미가 조화를 이루고 있는 누각입니다.
누(樓)란 건물의 사방을 트고 마루를 높여 지은 집으로 일종의 휴식공간이라 할 수 있습니다. 밀양 영남루는 현판과 시문이 많기로도 유명합니다.

 

 

영남루가 보이는 화장실앞에 은행나무 단풍이 아직 남아 있었습니다. 영남루에 서면 오래전 만났던 오래된 은행나무가 생각나는데 그 은행나무는 왜 베어졌는지 지금도 궁금합니다. 그래도 이렇게 은행나무 단풍을 만났으니 된 겁니다.

 

 

은행나무는 은행나무목에서 유일하게 살아 있는 대표적인 교목으로 은행나무목의 단일한 과인 은행나무과에 속합니다. 생김새가 피라미드형으로 둥그런 기둥처럼 생긴 줄기에 가지가 많이 달리지 않으며, 키 30m, 지름 2.5m까지 자랍니다.

껍질은 오래된 나무의 경우 회색빛이 돌고 골이 깊게 패어 있으며, 목재는 엷은 색깔이며 가볍고 약하여 경제적 가치는 거의 없다고 합니다. 잎은 부채 모양으로 가운데 있는 V자형의 새김을 중심으로 둘로 나누어져 있고, 여름에는 흐린 회녹색에서 황록색을 띠나 가을에는 황금색으로 바뀌며 늦가을에 떨어지지요. 바람에 의해 수그루의 꽃가루가 암그루의 밑씨에 전해지는데, 밑씨가 수정되면 노란 빛을 띤 살구 모양의 씨로 되는데, 씨는 악취가 나는 노란색의 껍질로 둘러싸여 있습니다.

중국과 일본에서는 옛날부터 절의 뜰에 심어왔으나 지금은 곰팡이와 벌레에 강하고 아름다운 관상수로서 세계 여러 곳에서 귀중하게 쓰고 있으며 밭농사를 하는 경우 은행잎을 퇴비로 쓰기도 합니다. 대부분의 겉씨식물과는 달리 도심의 탁한 대기 속에서도 살 수 있기에 가로수로 심습니다.

 

 

 

 

늦가을 영남루를 찾은 나들이객들은 대부분 이 은행나무를 배경으로 기념사진을 찍었습니다. 하여 은행나무 주변에서 서성거려야 했습니다.

 

 

영남루에 올랐습니다. 기차가 몇 번이나 지나갔습니다. 아래로 밀양강이 흐릅니다.

근래에 오래전 드라마 '형제의 강'을 시청했는데 어제가 마지막회였습니다. 밀양강변 어디즘에 준식이가 경작하는 밭이 지금도 있을 수 있겠지요. 둘째 아들 준식이는 어릴때부터 '밀양 아리랑'을 자주 불렀으며 남매가 어우러져 부르기도 했습니다.

어린 준식이가 부른 밀양 아리랑은 힘찼었는데 성인 준식이가 부르는 밀양 아리랑은 힘이 없었습니다. 어른이 되어 삶이 고달프다는 걸 알았기 때문일 겁니다. 그래도 그는 언제나 긍정적이었습니다. 영남루에서 내려오는데 밀양 아리랑이 들렸습니다. 아랑각으로 내려가는쪽에 밀양 아리랑 노래비가 있으며 버튼을 누르면 노래가 나옵니다.

 

 

언제 세워졌는지 느린우체통이 밀양 아리랑 노래비 맞은편에 있었습니다.

 

 

날좀보소 날좀보소 날~좀보소

동지 섣달 꽃본듯이 날좀보소

아리아리랑 스리스리랑 아라리가 났네

아리랑 고~개로 날 넘겨주소

 

정든님이 오시는데 인사를 못해

행주치마 입에 물고 입만 벙긋

아리 아리랑 스리스리랑 아라리가 났네

아리랑 고개로 날~넘겨주소

 

 

밀양 아리랑 동영상입니다. 용량이 컸기에 지금은 중단된 팟인코더를 겨우 찾아 다운로드를 받아 컴퓨터 바탕에 깐 후 인코딩을 했습니다.

밀양 아리랑이나 기타 다른 아리랑도 각자의 인생에 따라 개사하여 부르는데 이 노래도 개사하였습니다만 노래비에는 원래의 가사가 있습니다.

옆에는 밀양 주요 관광지가 있습니다.

 

 

밀양 아리랑 노래비와 박시춘 옛집 사이에 계단이 있습니다. 그동안 영남루에 여러 번 다녔는데 이 길은 오랜만입니다. 계단위 숲속에는 사명대사 유정의 동상이 있는데 올라갔더니 단풍나무가 아름답게 물이 들어 있었습니다.

사명대사는 조선 중기의 고승인 유정(惟政, 1544∼1610)을 말하며, 풍천 임씨로 속명은 응규(應奎), 자는 이환(離幻), 호는 사명당(四溟堂)으로 경상남도 밀양 출신입니다.

 

 

사명대사 동상으로 가는 길에는 연리지와 함께 고운 단풍을 만날 수 있는데, 이 단풍은 진해 양어장의 단풍과 같은 종 같았습니다. 단풍잎이 작으며 색이 아주 곱습니다.

 

 

 

 

 

사명대사 동상이며, 사명대사에 대한 기록이 잘 되어 있었습니다.

 

 

 

동상으로 오를때의 길이 아닌 옆길로 내려 왔는데 이곳도 단풍이 곱게 물이 들어 있었습니다. 단풍을 올려다보면 하늘에서 별이 떨어지는 듯 합니다. 주변 숲에도 단풍나무가 많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