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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 / 이성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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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관련/- 읽고 싶은 시

2020. 3. 30.




 

- 이성부


기다리지 않아도 오고
기다림마저 잃었을 때에도 너는 온다

어디 뻘밭 구석이거나
썩은 물웅덩이 같은 데를 기웃거리다가


한눈 좀 팔고 싸움도 한판 하고,
지쳐 나자빠져 있다가
다급한 사연 듣고 달려간 바람이
흔들어 깨우면
눈 부비며 너는 더디게 온다

더디게 더디게 마침내 올 것이 온다
너를 보면 눈부셔
일어나 맞이할 수가 없다.
입을 열어 외치지만 소리는 굳어
나는 아무것도 미리 알릴 수가 없다

가까스로 두 팔을 벌려 껴안아 보는
, 먼 데서 이기고 돌아온 사람아

 

            - 시집 우리들의 양식(1974)

 

 

이해와 감상

 

 이 작품은 겨울이 지나면 봄이 오듯, 부조리한 시대가 가고 새 시대가 올 것이라는 신념을 봄을 통해 형상화하고 있다.

 

 화자인 로 의인화하여, ‘가 오지 않은 상황에서 봄이 오기를 간절히 바라면서 언젠가는 봄이 올 것이라는 신념과 확신에 찬 의지적 태도를 보이고 있다. 따라서, 신념에 찬 어조의 단정적 표현을 통해 화자의 확고한 믿음을 강조하고 있다.

 

 ‘은 계절 순환의 섭리로 겨울이 끝나면 자연스럽게 오는 것이지만, ‘은 생명의 소생이라는 희망적인 이미지를 지닌다. 따라서 이 시에서 반드시 도래할 희망인 것이다.

 

 1~2행에서 화자는 우리의 의지와는 관계없이 봄은 온다고 말함으로써, 자연 섭리의 당위성을 드러내고 있다.

 

 3~10행에서는 봄이 좀처럼 올 것 같아 보이지 않지만, 결국에는 오고 말 것이라는 화자의 신념이 드러나 있다. 이 시의 은 그리 쉽게 오지않고, 뻘밭 구석과 썩은 물웅덩이를 기웃거리고, 한눈을 팔며 싸움도 한판 벌이는 등 거치지만, ‘마침내라는 부사와 올 것이 온다는 등의 신념에 찬 어조로 올 것이라 단언한다. 여기서 빨밭’, ‘썩은 웅덩이절망적 상황을 가리키며, ‘바람다급한 사연을 전달하는 매개체인 셈이다.

 

 그리고 11~16행은 마침내 도래한 봄을 맞이하는 감격과 기쁨을 표현한 것이다. ‘너를 보면 눈부셔는 봄이 오리라는 확신이 봄이 왔을 때의 감격과 환희로 바뀌는 기점이 되는 행으로 감격을 기정사실화하는 구실을 해준다. 그 뒤에는 무어라 말할 수도, 어찌할 바를 찾지 못할 정도의 기쁨과 감격이 있을 뿐이다. 마지막 행의 , 먼 데서 이기고 돌아온 사람아라는 표현 속에는 온갖 고난과 시련을 참고, 이기고 돌아온 자에게 향한 예찬적인 태도가 담겨 있다.


 그러면 이 시에서 화자가 로 의인화하며 그토록 기다리던 은 무엇을 상징하는가 궁금해 진다. 이것은 시인이 살았던 시대 상황이나 그가 평소 다루었던 작품 경향으로 미루어 보면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이 시는 4·19 혁명으로 시작된 민주화의 실천이 5·16 군사 정변으로 시련을 겪고 유신 독재 체제의 억압이 진행된 시기에 창작되었다. 유신 독재의 그늘이 짙게 드리워진 한국 사회는 봄은커녕 여전히 추운 겨울과 같은 상황이었다. 하지만 시인은 절대적인 자연의 섭리에 따라 반드시 이 오는 것처럼 현실도 그렇게 바라보고 있다. , 지금은 비록 겨울과 같이 춥고 힘든 시대이지만 민주주의와 자유가 물결치는 시대 역시 자연의 섭리와 같이 반드시 올 것이라는 시인의 기대감이 이 시에 강하게 부각되어 있다.


 그러므로 이 시는 겨울이 지나면 반드시 봄이 오듯, 시대의 아픔과 절망이 사라지고 자유민주가 실현된 새로운 세계가 펼쳐지리라는 강한 신념을 노래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작자 이성부(李盛夫, 1942~2012)

 

 시인. 전남 광주 출생. 1962현대문학<소모(消耗)의 밤>, <열차> 등이 추천되어 등단하였다. 개성 있는 남도적 향토색과 저항적 현실 인식을 바탕으로 현실 참여적인 내용을 다루면서도 서정성을 느낄 수 있는 작품을 썼다. 시집으로 이성부 시집(1969), 우리들의 양식(1974), 야간 산행(1996)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