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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이육(許煜): 인터뷰-천 개의 코스모테크닉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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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 6. 4.


인터뷰: 천 개의 코스모테크닉스

Interview: A Thousand Cosmotechnics


―― 후이육(許煜, Hui Yuk)


후이육은 현대 디지털 기술의 중요한 이론가들 가운데 한 사람으로 떠올랐는데, 베를린에서 항저우까지 학자들과 비전문가 청중을 끌어당긴다. 후이육이 최근에 출판한 두 권의 책 <<디지털 객체들의 존재에 관하여(On the Existence of Digital Objects)>>와 <<중국의 기술에 대한 물음(The Question Concerning Technology in China)>>은 둘 다, 명백히 탈의인화된 컴퓨터 코드의 환경에서든 중국 전통과 유럽 전통을 가로지르는 기술에 대한 우주론적 이해를 통해서든, 기술의 의미와 잠재력을 회복하는 방법들을 추구한다. 규모는 전지구적이지만 문화적 내용과 표상은 파편화된 생명기술적 환경 안에서 인간들이 그런 회복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방식에 대한 물음은 "코스모테크닉스"라는 후이육의 개념에 중요하다. 이 인터뷰에서 후이육은 자기의 배경과 작업, 착상들을 논의하면서 미래의 행성적 정치을 위한 다중의 노선을 제시한다.


지오반니 메네갈(Giovanni Menegalle): 당신의 지적 궤적을 개략적으로 서술하면서 시작할까요? 특히 저는 당신의 작업에서 나타나는 두 가지 중요한 축, 즉 철학과 테크닉스 사이의 관계, 그리고 유럽의 철학적 전통과 중국의 철학적 전통 사이의 관계를 생각하고 있습니다. 오늘날 사상을 가장 크게 변형시킬 가능성이 이런 두 축의 교차점에 놓여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후이육: 저는 먼저 홍콩에서 인공지능에 중점을 두고 컴퓨터공학을 공부한 다음에 유럽에서 철학을 공부하기 시작했습니다. 하이데거의 작업, 특히 하이데거적 인공지능으로 알려져 있는 것이 이런 전환의 열쇠였습니다. 처음에 저는 하이데거에 관한 학위논문을 준비하고 싶었지만, 베르나르 스티글레르(Bernard Stiegler)를 만난 후 2008년에 제 계획을 바꾸었습니다. 스티글레르는 제게 새로운 지평, 즉 기술로 그리고 기술을 통해서 철학을 실천하는 방법을 열어 주었습니다. 그 시절이 혼란과 흥분의 시기이기도 했던 이유는 그런 실천이 끊임없이 융합을 추구하고 개념적 도식들을 재구성하는 창조 행위를 요구해서입니다. 그래서 개념들의 정밀성과 증거의 구체성 사이에서 끊임없이 절충하게 됩니다. 따를 수 있는 관행이 많지 않아서 그런 절충이 독자적으로 한 가지 방법, 작업 방식인 것으로 판명됩니다.


GM: 기술적 변화가 철학을 자기의 종결 불가능성에 노출시켜서 다른 철학적 전통들을 개방하는 데 도움이 됩니까? 어떤 특수한 철학적 전통의 문화적 및 의미론적 한계가 새로운 기술적 현실의 도전을 받을 수 있을 일종의 성찰적 계기가 있습니다. 그러나 다른 철학적 전통들을 가로지르는 영향의 계기, 즉 테크닉스의 바로 그 개방성이 개념적 전환이나 발명의 사례에서 재부각되는 교환도 있을 수 있습니다. 바꿔 물으면, 이런 전환적 마주침에서 관련된 문제는 철학의 바로 그 기술성, 즉 말할 수 있을 철학적 개념들의 조작적 보편성이라고 생각하십니까?


후이육: 저는 당신의 질문을 철학하기의 조건은 무엇일까라는 의문으로 이해합니다. 그리고 특히 오늘날 철학하기의 조건은 무엇일까?


GM: 제 뜻은, 철학은 정의상 보편성이라는 관념을 향해 정향된다는 것이고 이것이 철학이 테크닉스를 마주칠 때 관련된 문제라는 점입니다. 후설이 말하는 대로, 철학은 '보편적 과업'입니다. 이런 보편성은 규제적 관념으로서 무한히 유예된 채로 있지만 말입니다. 이런 관념은 과학과 기술뿐 아니라 철학에도 필수적인 것인데, 그것들은 모두, 의례적으로 말하자면, 보편적 이해 가능성의 장에 의존합니다. 다른 철학적 전통들 사이의 관계뿐 아니라 철학과 테크닉스 사이의 관계에 대해 생각할 때 이것이 절대적으로 중요한 문제인 듯 보입니다. 예를 들면, 철학을 객관적이고 기술과학적인 "세계상"으로 환원시키는 근대적 실천을 거부하는 하이데거를 살펴 봅시다. "과학은 생각하지 않는다"라고 하이데거는 말합니다. 그런데, 그 후 하이데거에게 사유란 무엇이고 철학에 남아 있는 것은 무엇일까요? 언어와 사유의 기술화에 맞서서 언어로 표현할 수 없고 사유할 수 없는 무언가를 "말하기"라는 신화적-시적 실천이 남게 됩니다. 그리고 이런 실천은 모두 독일어나 고대 그리스어의 문화적, 역사적, 의미론적 규정을 재언명하기를 거칩니다. 저는 이것이 덫이라고 생각하고, 이런 까닭에 저는 당신이 작업하면서 이 문제를 어떻게 조정하는지에 대한 관심이 지대합니다. 아마도 출구는 무한 반복(논리적, 수학적, 기계적, 화학적 등)의 도식들을 구체화하는 것으로서, 당신이 방금 언급했듯이, 철학으로 하여금 테크닉스로 그리고 테크닉스를 통해서 자기의 보편적 지평에 대해 성찰하게 하는 구체화된 사유의 사례로서 기술에 접근하는 것일 것이다. 20세기에 철학은 더 이상 과학과 기술에 "선행하는 것"으로 간주될 수 없고, 오히려 그것들에 개방되어야 한다고 바슐라르(Bachelard)가 말했습니다. 제가 궁금히 여기는 것은, 21세기에 철학이 기술과 마주침으로써 그리고 다른 전통들을 가로지르는 대화를 거침으로써 더 멀리 나아가 자기의 개념들, 합되고 변형되며 재조립될 수 있는 무한 반복의 도식들의 기술성을 직면해야 하는지 여부입니다.


후이육: 당신은 "철학은 정의상 보편성이라는 관념을 향해 정향된다"라고 말했습니다. 당신의 말은 옳지만, 당신은 유럽 전통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보편적인 것에 관하여: 문화들 사이의 대화와 균일한 것, 공통적인 것>>이라는 책에서 프랑수와 줄리앙(Francois Jullien)은 보편성이라는 개념을 재고하여 공통적인 것들에 의거한 다른 정치적 계획을 발달시킬 필요성을 보여주었습니다. 유럽에서는 선험적으로 주어지는, 보편적인 것에 관한 개념이 정치적 계획을 보증하는 것이라는 점은 참입니다. 사실상 이런 보편성은 그것이 선험적인 것이라는 사실에 의해서만 보증됩니다. 그리스인과 로마인들은 말할 필요도 없습니다. 그저 칸트만 살펴보면, "세계시민적 견지에서 본 보편사의 이념"이라는 글에서, 내부적으로 보편적인 역사와 외부적으로 "완전한 국가 구성"이 "자연의 숨은 계획의 완결"입니다. 자연의 목적론은, 칸트가 <<판단력 비판>>의 제2권에서 정교하게 다듬은 반성적 판단과 유사한 것을 통해서만 알려질 수 있는 선험적인 것을 감춥니다. 그렇지만 이런 보편성은 비유럽적 문화들을 대면했을 때 어떤 부정성을 드러냅니다. 그리고 당신이 다른 철학들 사이의 대화에서 기술이 담담하는 역할을 올바르게 서술하고 있다면, 사실상 당신은 "보편적 기술"을 통한 "보편화"의 과정이 존재함을 인정하고 있는 셈입니다. 여기서 당신이 환기하듯이, 철학이 현상테크닉스와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는 이유는 현상이 항상 어떤 장치로 산출되고 우리의 지식이 그런 장치로 매개되기 때문이라는 바슐라르의 주장이 옳다면, "보편적인 것"은 다시 의문시됩니다. 여기서 또 다시 우리는, 지식이 전달되어 보편화될 수 있는 것은 장치를 거쳐서 이루어질 뿐이라는 점도 인식해야 할 것이다. 제가 관심이 있는 것은 바로 보편화의 문제고, 그 문제에 대해서 저는 차이들을 타파하려고 동일한 것에서 시작하는 것이 아니라 동일한 것에 이르려고 차이들에서 시작하자고 제안합니다.


확실히, 철학적 사상이 이동하고 이전되며 영향을 미치는 방식에 관한 역사적 연구는 항상 수행될 수 있는데, 그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그러나 철학하기는 또 하나의 의미가 있습니다. "휴먼주의"에 대한 편지(1947)에서 하이데거는 "사람들은 더 이상 생각하지 않고, 스스로를 철학으로 채웁니다"라고 말합니다. 여기서 하이데거에게 생각하기가 뜻하는 바는 새로운 역사적 조건에 따라서 생각하려는 시도입니다. 먼저, 기술적 발달이 근대인들의 기술적 무의식과는 대조적으로 기술적 의식을 산출하는 그런 단계에 이르렀다는 사실을 인식해야 할 것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이 같은 기술적 의식은 다른 식으로, 예컨대 포스트휴먼, 트랜스휴먼 등으로 명명되는데, 이 용어들이 서로 매우 다르지만 말입니다. 둘째, 그리스어에 뿌리를 두고 있는 철학은 오늘날 전지구적인 것이 되었지만, 그것이 행하는 것은 정말로 전지구적인 것이 되려고 합니까? 그런 전지구적인 것이 되기가 가능해진 유일한 이유는 기술적 세계화입니다.


저는 비유럽 철학들이 "쓸모없어진 것"이 되었다면 그것은 그저 제국주의 때문이 아니라 더 근본적으로 그 철학들이 기술의 문제를 다룰 수 없으므로 단순한 대립들에 쉽게 빠져버리기 때문이라는 느낌이 듭니다. 비유럽 철학들은 유럽 철학으로 환원될 수 없는데, 그런 "환원"이나 동등성에 대한 탐색, 또는 보편화라고 할 수 있을 것이, 철학자들 사이에서 의식적으로든 아니면 무의식적으로든, 근대성의 기획이었지만 말입니다. 예를 들면, 19세기 말 무렵에 몇몇 중국인 철학자가 에테르라는 개념과 자비 또는 인(仁)이라는 유교적 개념 사이의 동등성을 찾고 있었습니다. 그렇지만 오늘날 새로운 철학적 상황은 창출하지 못하더라도 훨씬 더 멀리 나아가기 위해서는 이런 "비환원성"을 동원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이 두 가지 조건으로 되돌아가서, 여기서 하이데거를 좇으면 그것들은 분리되지 않습니다. 하이데거에게 기술은 서양 형이상학의 산물이어서 형이상학의 끝 또는 충족을 나타냅니다. 하이데거는 데리다와 스티글레르가 주장한 방식으로 토대―비록 하이데거는 사실성이라는 개념을 품고 있었지만―에 의거하여 그리고 당신이 방금 표명한 바에 의거하여 기술을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하이데거는 과학과 기술로 생각하지 않습니다. 당신이 지적했듯이, 하이데거는 "과학은 생각하지 않는다"라고 말합니다. 과학은 계산 가능성으로의 환원을 포함하는 반면에 사유와 시는 미지의 것이나 계산할 수 없는 것을 추구해서입니다. 그리고 당신이 옳게도, 기술이, 그리고 주로 글쓰기가 철학적 체계들 사이에서 이루어지는 대화의 조건과 흔적을 구성합니다. 그렇지만 기술은 조작적으로 보편적인 것이라는 결론으로 너무 빨리 비약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하는 이유는 여전히 다음과 같이 물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기술과 철학의 관계는 서양과 중국에서 동일한가? "블랙 노트북"에서 하이데거가 기술은 보편적인 것이 아니라 국제적인 것이라고 말한 사실은 매우 흥미롭습니다. 기술에 대한 규정에 어떤 '보편성'이 있는 것은 참입니다. 예를 들면, 앙드레 르루아-구랑(Andre Leroi-Gourhan)이 인간화 과정에는 기억의 외부화와 기관 기능들의 해방이 수반된다고 말할 때 그러하거나, 또는 당신이 말했듯이, 자연 법칙들과 수학적 공리들의 경우에 그러하지만, 이것은 아직 충분하지 않습니다. 이 같은 물음에 대해 칸트적 이율배반을 제시할 수 있습니다. 1) 르루아-구랑이 규정하는 대로 기억의 외부화와 기관 기능들의 해방으로 기술이 이해되는 한, 기술은 인류학적으로 보편적입니다. 2) 기술이 인류학적으로 보편적이지 않는 것은 기술이 특수한 우주론들에 의해 조건지워지거나 제약되어서입니다. 칸트적 이율배반의 정신은 어떤 논제의 절대성을 상대화하는 것이어서 그것을 틀렸다고 비난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이 충분하지 않다고 보여주는 것입니다. 제가 최근에 출판한 책 <<중국의 기술에 대한 물음>>에는 이런 이율배반이 중국의 기술 사상에 대한 역사적 연구를 통해서 전개됩니다. 그 책에서 저는, 기(器, 그릇을 뜻함)와 도(道) 사이에 맺어진 관계의 역사적 움직임을 좇음으로써 테크네라는 그리스적 관념으로도 설명될 수 없고 근대 기술로도 설명될 수 없는 중국의 코스모테크닉스를 구상하는 것이 가능하다고 제안합니다.


GM: 같은 책에서 당신은 인류세는 지질학적 시간과 인간적 시간의 구별짓기가 붕괴된 상황을 알린다고 주장합니다. 이런 국면에서 다원적인 코스모테크닉스라는 관념이 어떻게 개입합니까?


후이육: 저는 인류세를 근대화 과정의 근저에 놓여 있는 산업화와 그것의 기술적 세계화로 초래된 격심한 동시화와 증폭으로 이해합니다. 인류세가 나타나서 많은 저자들이 근대성의 위기, 종결로 서술하는데, 브뤼노 라투르는 생태적 변이로 서술하고 베르나르 스티글레르는 엔프로피세(Entropocene)로 서술합니다. 라투르와 그의 동료들은 "근대성을 재설정하기"에 대해 이야기했고 그런 기획을 유럽 바깥의 다른 문화들에 확대할 작정입니다. 비유럽적 사상과 깊이 있는 대화를 나누지 않는다면 그런 위기를 해소할 수 없다는 라투르의 주장은 옳습니다. 저는 근대성이란 16세기와 17세기에 유럽에서 일어난 방법론적이고 인식론적인 단절이라고 이해합니다. 이런 지식 형식은 식민화의 결과로서 그리고 나중에 "세계화" 과정을 거쳐 세계화되었습니다. 이런 근대화 과정의 방향을 다시 설정하고 싶다면, 포르투갈인 사회학자 보아벤투라 데 소사 산토스(Boaventura de Sousa Santos)가 "지식 살해"라고 서술하는, 근대성에서 물려받은 인식론의 보편화 과정으로 강화된 이 같은 "경향"을 중지해야 할 것입니다. 필립프 데스콜라(Philippe Descola), 에두아르도 비베이로스 데 카스트로(Eduardo Viveiros de Castro) 등과 같은 인류학자들은 지금까지 비유럽 문화들에서 나타난 다수의 우주론과 다양한 자연을 재확인함으로써 다자연주의에 대해 이야기했으며, 칸트에게 자연이 "항구적 평화의 보증자"라면 다자연주의라는 개념은 새로운 코스모폴리틱스를 제시합니다. 그렇지만 자연에의 귀환은 충분하지 않습니다. 좌파 지식인이라면 토착적 존재론을 지지해야 하는 것이 현재 유행하는 듯 보입니다. 그러나 그것 역시 위험하지는 않지만 모험적인 것인 이유는 그것이 원민족주의와 원파시즘의 생식선이기 때문입니다. 제게 코스모테크닉스의 "재발견"은 "고향 방문"의 태도가 아니라―결코 아니다―모든 문화가 나름의 코스모테크닉스 역사를 전개할 필요가 있다는 제안입니다. <<중국의 기술에 대한 물음>>이란 책은 그런 활동입니다.


GM: 당신이 저술한 두 저서의 제목들은 질베르 시몽동(Gilbert Simondon)이 1958년에 출판한 <<기술적 객체들의 존재 양식에 관하여>>라는 책과 더불어 하이데거가 1954년에 출판한 <<기술에 대한 물음>>이라는 글과 관련이 있습니다. 두 텍스트는 모두 매우 특정한 정치적 및 이데올로기적 맥락―냉전, 사이버네틱스 기술의 발흥, 전후 유럽의 테크노크라시―에 대한 반응이었습니다. 당신의 저작에서는 그들의 사유가 어떻게 전개됩니까?


후이육: 이 텍스트들은 역사적으로 맥락화함으로써 읽어야 한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시몽동과 하이데거는 둘 다 새로운 통신 기술이 빠르게 발달함을 목격했습니다. 하이데거는 라디오, 텔레비전, 전보, 원자폭탄 등에 대해 흔히 말하고, 기술적 객체들에 대한 시몽동의 박사학위 부논문은 예를 들면, 다이오드, 트리오드, 테트로드, 펜토드, 트랜스덕트처럼 통신에 사용되는 전자 기기의 보기들로 가득 차 있습니다. 하이데거와 시몽동은 둘 다 테크닉스에 새로운 역할을 부여하고 싶어합니다. 시몽동은 문화와 테크닉스를 조화시키기에 대해 말하고 이런 새로운 기술적 객체들에게 철학적 잠재력이 있다고 생각하는 반면에, 하이데거의 경우에 이런 기술적 객체들은 거리를 단축한다고 주장하지만 가장 가까이 있는 것을 보지 못하게 우리 눈을 멀게 하여서 그는 근대 기술과 형이상학 사이의 평행 역사를 재구성합니다. 시몽동은 사이버네틱스에 고무되어서 문화/테크닉스 적대를 극복할 수 있게 할 훨씬 더 급진적인 것, 이를테면, 보편적 사이버네틱스를 발달시키고 싶어했습니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하이데거가 사이버네틱스에 대해 비판적이었던 이유는, 그가 주장하여 널리 알려진 대로, 그에게는 사이버네틱스의 시작이 형이상학의 끝이기 때문입니다. 이런 까닭에 하이데거는 모든 형태의 계산적 사상을 넘어서는 새로운 사유를 제안할 수밖에 없습니다. 시몽동과 하이데거의 이런 대립은 제 작업에 매우 중요하며, 제가 그런 대립을 헤치고 그들 사이에 대화를 창출하려고 노력하는 것은 명백히 어떤 공명이 있어서입니다. 우리는 또한 그들을 우리의 현재 기술적 조건에 입각하여, 즉 디지털적인 것에 입각하여 과도기적 인물들로 간주하면서 그들의 작업에 새로운 의미를 부여해야 합니다. 디지털 객체들에 관한 책에서 저는 기술적 객체들에 대한 시몽동의 분석을 디지털 객체들에 확대하여 그 분석에 더 사변적인 차원을 추가하고 디지털 및 기술적 객체들의 개체화를 살펴볼 것을 제안하는데, 이것은 기호와 세계에 대한 하이데거의 분석에서 매우 많은 것을 끌어냅니다. 코스모테크닉스에 관한 책에서는 이 개념 자체가 <<기술적 객체들의 존재 양식에 관하여>>의 제3부에서 후속적으로 발달된 것인데, 그곳에서 시몽동은 애초의 마법적 단계가 테크닉스와 종교로 이분화된 다음에 그것을 넘어 각각 이론적 단계와 실천적 단계로 이분화되는 것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저는 <<기술에 대한 물음>>으로 나중에 출판된 하이데거의 유명한 1949년 강연과 교섭하려고 코스모테크닉스라는 개념을 사용합니다.


GM: 디지털적인 것에 집중하게 되면 당신이 서술하려고 시도하고 있는 기술적 관계의 형식이 주체적 매개가 없는 순전히 논리적인 관계로 환원될 위험이 있습니까? 펠릭스 가타리의 작업을 계승하는 마우리치오 랏자라또(Maurizio Lazzarato)는 오늘날 인간 생활의 알고리즘적이고 상업적인 하부구조를 점점 더 구성하는 무의식적인 사이버네틱스 과정들의 기체를 서술하려고 "비기표적 기호학(asignifying semiotics)"를 언급합니다. 시몽동이 요구하는 대로, 우리는 이런 비기표적 과정들을 직면할 때 우리의 기술성을 어떻게 재활성화할까요? 이런 체계들의 내재적 논리로 재편입되기를 회피할 집단적 개체화의 어떤 형식들이 출현할 수 있을까요?


YH: 저는 주체성과 테크노-로고스를 대립시켜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고, 오히려 테크노-로고스가 투쟁의 조건인 동시에 극복되어야 할 것이라고 이해할 필요가 있습니다. 주체성과 "비기표적 기호학"의 대립은 마르크스가 제시한 산 노동과 죽은 노동, 즉 고정자본의 대립에 대한 징후적 독법입니다. 그러나 이런 대립이 우리를 너무 멀리 데리고 가지 않는 것은 바로 고정자본의 형식들이 변하고 있어서입니다. 예를 들면, 그것들은 스마트 도시, 스마트 홈, 스마트 기기에서 현시되듯이 공장에서 벗어나서  "환경적인 것"이 되고 있으므로 노동, 생산, 소비에 대한 새로운 시각에서 그것들에 접근할 필요가 있습니다. 이 상황은 가타리가 고안한 "비기표적 기호학"이라는 개념보다 훨씬 더 정교한 개념을 요구할 것입니다. 당신도 알다시피, 가타리가 "비기표적"인 것에 대해 이야기할 때 그는 바로 하이퍼텍스트를 가리킵니다. <<카오스모제>>에서 가타리는 기표가 자기의 독재를 상실하게 되는 "비기표적 표현 실체들의 초선형성"을 언급합니다. "하이퍼텍스트의 정보적 행들은 어떤 역동적인 다형성을 복구하여 결코 선형적이지 않고 게다가 공간화된 집합들의 논리를 벗어나는 경향이 있는 지시대상 세계들과 직접 접촉하면서 작동할 수 있다." 저는 20세기 말 무렵에 이론가들이 기술의 존재론적 위엄과 해방적 잠재력을 옹호하려고 기술의 초월론적인 것들을 열렬히 찾았다는 느낌을 갖습니다. 반면에 21세기의 처음 십 년 동안 디지털 가속이 일어난 후에 사람들은 알고리즘적 통치성에 압도당하고 기술적 비관주의에 정복당했습니다. 그렇지만 전장은 바뀌었고 새로운 전략들이 전개되어야 하는데, 그것들은 우리가 이런 기술을 구체적으로 그리고 역사적으로 이해할 때에만 드러날 수 있습니다.


하이퍼텍스트는 오늘날 "비기표적 기호학"을 서술하는 데 충분하지 않습니다. 디지털 객체들에 관한 책에서 저는 GML에서 HTML까지, 1.0에서 5.0까지, XML/XHTML까지 그리고 웹 존재론에까지 이르는 이 역사를 분석했고, 이 역사가 자크 엘륄(Jacques Ellul)이 개괄한 대로 기술적 체계의 구체화에 어떻게 해당하는지 분석했습니다. 저는 또한 논변적 관계 및 실존적 관계에 의거하여 디지털 객체들의 존재를 분석하고자 하는데, 실존적 관계는 디지털 객체들의 세계―하이데거적 의미에서의 세계―에 대한 물음을 개방합니다. 논리는 논변적 관계에 속한다고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디지털 객체는 한낱 논변적 관계에 불과한 것으로 환원될 수는 없지만, 논변적 관계가 없다면 아무것도 아닙니다. 그런 까닭에 저는 프레게에 맞서 후설을 동원하여 두 가지 논리 형식, 즉 내포적 논리와 외연적 논리를 구별함으로써 정치적 결과를 전개했는데, 일차 논리의 기초가 되는 프레게의 형식논리를 좇는다면 시몽동의 의미에서, 즉 후설의 주요 관심사인 주체성의 견지에서 조작에 대해 이야기할 수 없다는 것이 참이기 때문입니다. <<뜻과 지시체>>라는 유명한 논문에서 프레게는, 파악과 판단은 "심적 사건이어서 우리는 그것에 신경쓸 필요가 없다. 우리는 사유를 파악할 수 있고 그것의 진실성을 인식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 충분하다. 이것이 어떻게 일어날까라는 의문은 다른 문제다."라고 적었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디지털 객체의 형식화가 많은 과학 및 기술 연구자가 지금까지 주장했듯이 분류에 대한 물음에 불과한 것이 아니라 진정한 철학적 논쟁거리가 됨을 알 수 있습니다.


저는 디지털 객체에 대한 관계적 분석이 집단적 개체화에 대한 새로운 분석을 우리에게 개방할 수 있을 것이라고 희망합니다. 집단적 개체화는 지배적인 산업적 모형들에 맞서 싸우기 위해 "비기표적 기호학"으로 작업함으로써만 이루어질 수 있습니다. 이 작업이 2012년과 2013년 사이에 베르나르 스티글레르의 연구 및 혁신 연구소 안에서 제가 컴퓨터과학자 해리 할핀(Harry Halpin)과 함께 수행한 기획이었습니다. "집단적 개체화"라는 용어는 시몽동에서 비롯되고, 시몽동에게 개체화는 항상 심리적 개체화인 동시에 집단적 개체화입니다. <<다중>>이라는 책에서 빠올로 비르노(Paulo Virno)가 말하는 것, 즉 집단적 개체화는 "이차 개체화"라는 주장은 꽤 문제적인 논제입니다. 시몽동이 개체화는 심리적 개체화인 동시에 집단적 개체화라고 강조해야 한다면, 그 이유는 그가 이차 개체화, 즉 집단적 개체화로 이행되는 일차 개체화가 있음을 거부하고 싶어서입니다. 시몽동의 개체화 개념은 야코브 모레노(Jacob Moreno)가 정초한 사회측정학뿐 아니라 쿠르트 레빈(Kurt Lewin)이 발달시킨 "집단 역학"에 의해 매우 많이 고무되었고, 여기서 우리는 모레노의 사회측정학이 페이스북이 본보기인 오늘날 사회적 연결망의 기초임을 인식해야 합니다. 사회적 연결망은, 개체는 사회적 원자―일차적인 것―이고 집단은 그런 원자의 집합체, 즉 이차적인 것이라는 관념에 근본적으로 의거하고 있습니다.


최근에 저는 개체 대신에 집단에 의거한 사회적 연결망에 대한 개념적 틀에 관해 몇몇 컴퓨터과학자와 함께 연구를 계속 진행했습니다. 예를 들면, 추천 체계가 있습니다. 우리는 죽은 노동과 산 노동 사이에 나타나는 대립을 넘어서야 하고, 투쟁의 문제를 휴먼주의적 비판으로 환원시키는, 죽은 노동을 산 노동의 산물로 포섭하는 것도 넘어서야 합니다. 오히려 기계와 벌이는 투쟁과 기계를 넘어서는 투쟁을 구상할 필요가 있다고 저는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