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물의 풍경

자연과 문화 그리고 과학기술의 교차로에서 바라보는 사물/대상의 풍경

롤랜드 보어: 학자 유형학-'과학자'

댓글 0

카테고리 없음

2012. 1. 7.

 

- 아래의 글은 롤랜드 보어(Roland Boer)가 자신의 블로그에 올리고 있는 "학자 유형학(typology of scholars)"에서 두 번째 유형인 '과학자' 항목을 옮긴 것이다.

 

―――――――――――――――

 

학자 유형학: '과학자(Scientist)'

 

여러분은 이런 상황을 경험했을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지만, 만약 하지 않았다면, 틀림없이 만나게 될 것이다. 머리가 백발인(일반적으로 유럽인이지만 결코 항상 그렇지는 않는) 교수가 여러분에게 여러분이 무엇을 하고 있는지 물으려고 작정한다. 여러분은 여러분을 열광시키고 흥분시킨 연구에 관해 언급하고, 그것을 듣고 그는 윙크하며 말한다. "당신이 너무 "이념화"되어 "과학적"이기를 망각하지만 않는다면".

 

번역하면, 이것이 일반적으로 '학술적'이고, 또는 심지어, 믿거나 말거나, '객관적'이다. 이 경우에, 여러분은 하나의 주제에 대해 너무 열정적으로 몰두할 수 없으며 그것에 적당히 거리를 두는데, 이것은 여러분이 도대체 왜 어떤 주제에 관심을 갖는지 궁금하게 만드는 입장이다. 그것은 자신이 연구 대상인 사람들과 분리된 관찰자라는 허구를 유지해야 하는 심리학자나 인류학자일 것이다. 이것은 흔히 너무나 열정적이고 열광적이어서 충분히 '학술적'이지 않고, 하필이면, 너무나 '주관적'인 사람들을 경시하는 것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

 

또 하나의 사례는 서방에 의한 동독의 침공과 점령에서 비롯된다. 새로운 점령군의 호의적인 행위 가운데 하나는 대학인들을 모두 해고한 다음에 그들의 이전 일자리에 다시 지원하게 하는 것이었다. '이념적'인 사람으로 간주된 사람들, 즉, 공산주의에 조금이라도 공감하거나 심지어 공산주의를 공공연히 비난하지 않은 사람들은 갑자기 실업자가 되었다. 물론, '학술적'인, '과학적'인 학자들은 결코 이념적이지 않다.

 

또한 여러분은, '종교적 소신'에 반대하는 것이 여러분이 할 수 있는 가장 혁신적인 일이라고 느끼는 몇몇 종교학자들과 성경학자들 사이에서도 이런 이상한 입장을 발견한다. 그 다음에 종교가 모든 악의 원인의 되는 가장 조잡한(그리고 관념론적인) 구분―도킨스 및 최근에 사망한 히친스와 같은 부류들과 공유하는 입장―이 이루어진다. 그래서 종교에 반대하는 것이 아방가르드가 된다. 그렇다, 아마도 17세기라면 말이다.

 

번역: 김효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