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물의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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릭 설: 오늘의 에세이-선한 베헤모스를 기원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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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 5. 15.


선한 베헤모스를 기원하며

Pray for a Good Behemoth


릭 설(Rick Searle)


2075년에 세계의 정치 질서가 어떤 모습일지 잠깐 상상해보자. 물론, 예측은 바보들이 시간을 보내는 방법이고, 미래의 무언가에 관해 오늘날 상상된 그 무엇도 본질적으로 일종의 희극이 될 것이다. 그런데 또다시, 삼사분기에 접어든 우리의 세기는 여러분이 그것에 관해 생각할 때 사실상 그리 멀리 떨어져 있지 않다. 2075년은 오늘날이 1963년에서 떨어져 있는 만큼 오늘날에서 떨어져 있을 뿐이다. 어떤 연령의 사람들에게는 세월이 그렇게 많이 흐르지 않았음을 보여주는 JFK의 암살에서 우리가 떨어져 있는 만큼의 시간이 2075년까지 남았을 뿐이다.


그래서 괜찮다면, 이런 환상의 도피, 혹은 오히려 지오프 만(Geoff Mann)과 조엘 웨인라이트(Joel Wainwright)의 『기후 리바이어던』이라는 정치적 미래학에 관한 책에서 직접 도출되는 환상의 도피를 해보자.


21세기가 끝날 무렵에 네 가지 지구적 정치 질서 중 하나가 나타날 것인데. 각각의 질서는 예견할 수 있는 미래에 대한 가장 중요한 쟁점이 될 것, 즉 기후변화의 산물이다. 이들 미래 중 첫 번째 판본에서는 가장 강력한 두 나라, 즉 미합중국과 중국이 세계 경제의 자본주의적 기반을 대체하지 않으면서 세계 경제를 체계적으로 탈탄소화하기 위해 모든 국가권력을 사용하고자 하는 동맹을 결성했다.


그 두 나라는 헨리 파렐(Henry Farrell)의 군사력에의 "무기화된 상호의존성"으로부터 입수할 수 있는 모든 도구를 사용하여 완고한 석유 국가들도 화석연료를 포기할 수밖에 없게 만들고, 개발도상국에서 대기 중 이산화탄소 농도를 증가시키는, 숲 같은, 자원의 활용을 강제적으로 금지할 뿐만 아니라 재생에너지를 경제 성장의 유일한 원천으로 확립하기 위한 대규모 사회간접자본 프로그램에 착수한다. 게다가 두 나라는, 무엇보다도 온난화를 견인한 바로 그 화석연료 경제를 반영하는 규모로 지구공학―지구를 냉각하기 위함이든 대기에서 탄소를 흡입하기 위함이든 간에―을 적극적으로 추구한다.


이것은 만과 웨인라이트가 "기후 리바이어던"이라고 부르는 시나리오 중 한 가지일 뿐이다. 그것은 자본주의와 주권을 모두 고수하는 기후변화에 대한 대응책인데, 이것은, 토머스 홉스가 내전은 국가적 주권자, 즉 리바이어던의 창조가 필요하다고 믿은 것과 꼭 마찬가지로, 지구적 위기의 시대에는 지구적 주권자, 즉 세계 제국이 필요할 것임을 뜻한다.


우리가 현재 처한 국면에서 상상하기가 약간 더 어려운 미래는 만과 웨인라이트가 "기후 마오"라고 부른 시나리오일 것이다. 그것은 자본주의를 해체하고, 적어도 세계 경제의 일부를 강제로 탄소에서 벗어나서 지속 가능한 형태들의 에너지로 향하도록 만드는 지구적 혁명 정부다. 기후 마오는 민주적인 것이 아니라 극단적인 형태의 "프롤레타리아 독재'로서 그 체제로의 빠른 전환은 거의 틀림없이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폭력이 필요하다.


만과 웨인라이트는, 우리의 관점에서 바라보면 기후 마오는 매우 있을 법하지 않은 것처럼 보인다는 점을 기꺼이 인정하는데, 왜냐하면 세계의 가장 강력한 두 나라, 미합중국과 중국이 대단히 자본주의적이기 때문이다. 비록 중국은 마오주의의 망토를 그릇되게 걸치고 있고, 올바른 환경이 주어지면 초자본주의적인 지구적 거대 국가로 전환된 중국의 키를 잡고 있을 일단의 혁명 맑스주의 옹호자와 엄격주의자를 포함하고 있을지라도 말이다.


만과 웨인라이트의 사분면 도식에서는 기후 마오 다음에 기후 베헤모스가 있는데, 내 생각에 이것이 그들의 네 가지 미래 시나리오 중 개연성이 가장 높은 것이다. 베헤모스들이 지배하는 세계에서는 주권이 지구적인 것으로 진전하기보다는 오히려 국가적 규모에서 다시 대두된다. 베헤모스들은 국익으로 인해 기후변화의 함의를 수용하지 못하거나, 혹은 기후변화를 현실로 수용하는데도 최악의 충격을 방지하는 데 필요한 지구적 정치 체제에 자신의 권력을 양도하기를 거부하는 석유국가들일 것이다.


베헤모스들은 다른 강대국들과 조정하는 대신에 을 구축하면서 인간 비용―난민의 홍수와 환경 위기―을 약소국들에 이전하기를 바라고, 그리하여 그릇된 신조나 피부색을 갖추고 있는 것으로 여겨지는 다른 사람들을 희생시키고서 자국민들과 그들의 생활 수준을 보호하고자 한다. 기후변화를 부정하는 트럼프주의적 민족주의는 베헤모스 정치의 일례이지만, 보수파 입장에서는 그런 반환경주의가 영구적일 필요가 없고, 어쩌면 궁극적으로는 기후변화에 대한 공황 상태를 우파의 문화 의제와 인종 의제, 안보 의제를 부채질하는 데 사용하는, 닐스 길먼(Nils Gilman)이 "아보카도 정치"라고 부르는 것으로 대체될 것이다.


그 국면이 가장 나타날 법하지 않은 것은 만과 웨인라이트가 상상한 미래 정치의 마지막이자 가장 희망적인 사분면에서다. 그들이 "기후 X"라고 부르는 것은 맑스주의 정치와 토착 정치를 조합할 민주주의적인 지구적 대중 운동을 수반할 것이다. 그것은 자본주의를 전복하고, 지구적 불평등을 바로잡으며, 인간과 비인간 모두의 이해관계를 포함하는 지속 가능한 경제의 토대를 확립하는 혁명일 것이다.


오늘날 선진 세계의 중간계급 사람의 시각에서 바라보면, 이들 미래 중 어느 것도 그다지 개연적이지 않은 것처럼 보일 것인데, 우리의 정치가 이미 자제력을 잃은 듯 보이더라도 말이다. 그런데 우리의 상상력의 부족은, 먼 미래가 아니라 다음 수십 년에 걸쳐, 기후변화가 우리의 현행 정치 체제와 경제 체제를 얼마나 심대하게 문제삼을지를 정말로 이해해야 한다는 사실에서 비롯되는 것처럼 보인다. 사실상 이들 변화는 우리가 기다려야 하는 것이 아니라, 오늘날 항상 더 빈번하게 발생한다.


우리가 현재의 궤적을 지속한다면 기후변화가 어떤 모습일지에 대하여 여태까지 이루어진 최선의 관측은 『2050 거주불능 지구(The Uninhabitable Earth)』라는 묵시적록 제목의 책에서 데이비드 월러스 웰즈(David Wallace Wells)에 의해 제시된다. 처음에 웰즈는 2017년에 『뉴욕 리뷰 오브 북스』에 투고한 같은 제목의 글이 발표된 후에 주목을 널리 받게 되었다. 기후변화 집단들에서 웰즈는, 수사법이 대체로 우리가 정치적 의지를 갖추기만 한다면 상황을 "바로잡을" 능력을 중심으로 이루어진, 인간이 유발한 온난화의 문제를 해결하는 데 있어서 "잘못된 프레임"을 사람들에게 씌우고 종말을 퍼뜨린다는 이유로 널리 공격받았다.


이 논리와 관련된 문제는 이런 낙관주의가 순전히 신앙에 기반을 두고 있다는 것임을 웰즈는 인식한 것처럼 보인다. 즉, 그 논리는, 기술이 개발될 것이고 우리가 이미 유발한 변화를 되돌릴 수 있는 규모로 전개될 것이라는 믿음(그와 더불어 무엇보다도 우리가 그런 정확한 리셋 버튼을 소유할 것이라는 소박한 전제), 이성도 자애로움도 인간 역사에서 특별히 두드러지지 않는 두 가지 것이었음에도 궁극적으로는 인간 이성과 자애로운 정치가 기후변화를 멈추게 하는 데 필요한 자원을 집결할 것이라는 맹목적 신앙에 기반을 두고 있음을 말이다.


그런데 웰즈가 행하는 유일한 것은 기후변화가 인간의 미래에 대한 확연한 위협―인간의 미래는 없는 것이나 다름없음을 뜻한다―으로 널리 인식된 이래로 세계가 행하고 있던 바로 그것을 계속해서 행한다면 무슨 일이 일어날 것인지 제시하고자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웰즈가 제시하는 악몽은 환상이 아니라, 개연성이 가장 높은 우리 미래의 한 판본이다. 그리고 그것은 악몽이나 다름없다.


향후 수십 년 동안 기후변화는 현대 문명과 역사적으로 전례가 없는 우리의 현행 생활방식이 의존하는 체계가 붕괴할 지경에 이르기까지 압력을 가할 것이다. 식량 체계를 생각하자. 2050년 무렵에 우리는, 기후변화가 곡물 수확을 망침에 따라 50%가 줄어든 식량으로 먹여 살려야 할, 오늘날보다 50%가 더 많은 사람이 거주하는 세계에서 살아갈 수 있을 것이다. 고기와 유제품 생산량이 절반으로 줄어들 것이다. 그리고 우리가 재배할 식량은 영양분이 훨씬 줄어들게 될 것인데, 그 이유는 대기 중 탄소의 축적이 반직관적이게도 세계의 가장 중요한 곡물들의 영양 성분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이기 때문이다.


동일한 시간 틀 안에서 물―너무 많고 너무 적은―이 우리가 알고 있는 대로의 세계를 전환할 것인데, 그리하여 도시들을 전부 옮겨야 할 것이다. 20년도 채 지나기 전에 세계 인터넷 하부구조의 대부분이 해수면 상승으로 인해 침수될 것이다. 상하이, 홍콩, 뭄바이, 콜카타 같은 대도시들은 영구적으로 물에 잠길 것이다. 지구적으로 수천만 명의 사람이 내륙 범람의 영향을 받을 것이다. 세계의 대부분은 거의 영구적인 가뭄 상태를 겪을 것인데, 그리하여 물 부족이 도시 파괴와 국가 간 갈등의 원인이 될 가능성이 점점 더 커지게 된다.


우리가 인류에게 기후의 골드락스 시기였던 것, 즉 홀로세를 벗어나서 인간이 구축한 체계들의 영향으로 견인된 인류세에 진입함에 따라 자연은 심해에서 출현하는 고질라처럼 복수할 것이다. 2070년 무렵에는 아시아의 메가시티들은 항상 더 강력한 폭풍의 영향으로 75조 달러를 잃을 수 있을 것이다. 최근에 캘리포니아를 휩쓴 것과 같은 산불은 60배까지 더 강력해질 수 있을 것이다. 열대성 질환이 북쪽으로 더욱더 멀리 퍼질 것이다.


어떤 지역들에서는 열파로 인해 에어컨이 가동하지 않는 환경에서는 인간이 바깥에서 잠깐만 지내더라도 위험하게 될 것이다. 메카로의 순례는 불가능해질 것이다. 대다수 해양 생명은 질식사할 것이다.


그런 시나리오에서는 참으로 급진적인 정치가 출현할 것이라고 상상하기는 어렵지 않은데, 그 중 대부분은 꽤 끔찍하다. 난민의 홍수로 대담해진 인종주의적이고 이슬람 혐오주의적인 우익 정치, 혹은 산업 사회가 생태 학살로 치닫지 못하게 하려는 시도로서 카친스키적인 테러 행위로 견인된 허무주의적 좌익 정치가 있다.


사실상, 세계 경제를 탈탄소화하는 데 필요할 변화의 순전한 규모를 참작하면, 기후 변화를 해결할 수 있는 모든 정치는 오늘날의 관점에서 급진적이어야 할 것이다. 웰즈가 서술하는 대로,


"요구되는 기술적 전환의 규모는 실리콘 밸리에서 출현한 모든 성취를 왜소하게 만드는데, 사실상 전기와 전자통신, 그리고 심지어 1만 년 전 농업의 발명를 비롯하여 인간 역사에서 여태까지 이루어진 모든 기술 혁명을 왜소하게 만든다. 그것은 정의상 그것들을 왜소하게 만드는데, 왜냐하면 그것이 그것들을 모두 포함하기 때문이다. 모든 기술이 근본적으로 대체되어야 하는 이유는 모든 기술이 산소호흡기처럼 탄소를 흡입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우리의 현행 화석연료 기반 경제의 탄소 중립 경제로의 전면적인 대체와 관련된 문제는 기술적 해결책(수송과 전기 같은 분야에서는 해결책들이 풍부하고 점점 더 저렴해지고 있다)과 관련되어 있기보다는 정치 위기 및 경제 위기―경제의 전 부문에서 대단히 많은 사람을 쫓아낼 필요성―와 관련되어 있고, 전 국가들 내부의 물질적 복지의 기초와 관련되어 있다.


최근에 환경과학자 바츨라프 스밀(Vaclav Smil)이 웰즈와 가진 인터뷰에서 우리 입지의 어려움을 이렇게 서술한다.


"저는 당신에게 이렇게 말할 것입니다. 우리 경제에서 고통스럽게, 대규모로 집중되지 않는다면 결코 해결될 수 없습니다. 지엽적으로는 해결될 수 없습니다. 대규모의 지구적 영향을 미치려면 매우 큰 규모로 이루어져야 합니다. 그리고 중국에서, 인도에서 이루어져야 하고, 궁극적으로는 부유한 국가들에서만 이루어지면 안됩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문제의 규모입니다. 우리에게는 알려진 해결책이 많이 있고, 상황을 바로잡기 위한 기술적 수단이 많이 있고, 우리는 꽤 발명적이며, 우리는 여전히 더 좋은 것을 더 많이 고안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것들을 적시에 그리고 필요한 규모로 활용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물, 가스, 석유, 탄소 배출 등에 대한 이런 지구적 필요를 감소시키려면, 십억의 십억 톤을 고려해야 합니다. 석탄을 제거하고 싶다고 해봅시다. 현재 우리는 70억 톤 이상의 석탄을 채굴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석탄 소비를 절반으로 줄이고 싶다면, 40억 톤 가량의 석탄을 감축해야 합니다. 40억 톤 이상의 석유가 채굴되고 있습니다. 석유를 제거하고 천연가스로 대체하고 싶습니까? 훌륭하고 멋지지만, 20억 톤 이상의 석유를 제거해야 합니다.


이것들은 지구적으로 10억 톤 규모의 전환입니다. (A) 이들 전환은 하루 밤 사이에 이루어질 수 없습니다. (B) 이들 전환은 거대한 경제적 영향으로 인해 고통스러울 것입니다. (C) 우리가 할 수 있는 것, 중국인들이 할 수 있는 것을 인도인들은 할 수 없습니다. 몇 달 전에 인도인들이 발표한 새로운 논문에 따르면, "석탄은 2047년까지 우리의 넘버 원 연료일 것이다.""


더욱이, 이런 비관주의는 화석연료 채굴에 거의 전적으로 의존하는 경제를 갖춘 많은 국가―러시아와 사우디아라비아, 이란 같은 매우 취약한 국가들―안에서 무슨 일이 일어날지 고려조차 하지 않는다. 더 부유한 경제 중 정확히 어느 국가가 캐나다의 타르 샌즈가 폐쇄될 때 발생하는 재정 결손을 메꿀 책임을 지거나, 혹은 미합중국을 세계의 선도적인 석유 수출국으로 별안간 전환한 프래킹 산업을 주도적으로 해체할 것인가?


만과 웨인라이트의 정치적 예측이 비개연적인 것에서 언뜻 보기에 불가피한 것으로 이행하는 것은 바로 이 전환, 즉 나는 필요하다고 굳게 믿고 있는 전환의 순전한 규모를 파악하려고 정말로 시도할 때이다. 그런데 내가 도박꾼이라면, 슬프게도 나는 내가 가진 돈 전부를 베헤모스에 걸어야 할 것이다.


어쩌면 기후 X가 될 것―대규모의 지구적 시위와 점점 더 활동주의적인 청년의 형태로의 미래 그림자가 가시화됨에 따라 기후 좌파가 과거 어느 때보다도 정치적으로 최선의 입지에 있다는 사실에도 불구하고 나는 이렇게 말한다.


지구를 구하자는 이런 합창의 고조는 불평등에 대한 매우 실재적이고 정당한 반란과 교차하는데, 그리하여 그 두 대의는 혼란스럽게 되었다. 여러 명의 악당보다 한 명의 악당을 갖는 것이 언제나 가장 쉽고, 따라서 이런 이유로 인해 현재 좌파 사이에는 기후변화와 관련하여 지구적 경제를 지배하고 그 부를 집중하는 20여 개의 다국적 기업을 비난하는 것이 관례처럼 되었다. 그런데 이런 분석은, 근본적으로 참이기는 하지만, 중간 계급 생활의 물건이 획득되는 것은 이들 존재자를 통해서만 이루어질 뿐이라는 사실을 교묘하게 숨긴다. 이들 기업을 사회화하거나 중과세하는 것은 우리를 경제적 정의의 방향으로 이행하면서 우리의 탄소 기반 경제에서 벗어나는 전환의 비용을 치르는 데 도움이 될 것임이 확실하지만, 환경 위기와 그 정치적 제약을 견인하는 근본적인 쟁점―대량 소비를 뒷받침할 필요성과 심지어, 그리고 어쩌면 특별하게도, 중간 계급 사회가 지금에서야 뿌리를 내리고 있는 지역들에서도, 그런 소비가 박탈당하지 않게 두는 사람들의 전적으로 이해할 만한 본능을 우선적으로 다루지는 못한다.


우익 운동에서 길먼의 "아보카도 정치"보다 개연성이 더 높은 북극성이라고 내가 생각하는 것은 바로 소비의 현행 수준 혹은 기대 수준의 상실에 대한 공황 상태에 기반을 두고 있는 중간 계급이다. 길먼은, 우파가 기후변화의 무시무시한 현실의 노골적인 부정에서 전면적인 수용으로 이행함으로써 이 변화를 사용하여 우파가 오랫동안 견지한, 이민을 제한하고 안보 국가를 훨씬 더 강화하려는 정책 의제를 정당화할 것이라고 두려워한다.


대다수 우파가, 적어도 미합중국에서는, 화석연료 이익집단에서 자금을 조달한다는 사실을 참작하면, 이런 일이 어떻게 일어날 수 있을지 이해하기 어렵다. 그리고 이전에는 미합중국 정치에서 올바르게도 배체되었던 잠재적인 외국인 혐오증을 동원한 트럼프가 2016년 선거에서 했던 것과 달리, 다수의 인구가 우익 문화 정치와 녹색 환경 관심이 동조되기만 하면 동원되기를 기다리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는 않는다.


오히려 우파는, 불평등과 국가의 악덕으로 분쇄당하지 않을까 두려워하는 중간 계급 생활양식 옹호자로서 현시할 만큼 포퓰리스트인 것처럼 보일 수 있었다. 이것은 프랑스의 황색 조끼 시위 같은 대중 시위에서 배울 수 있는 교훈인데, 황색 조끼 시위는 환경을 보호할 목적으로 중간 계급 소비에 반대하는 국가의 조치에 의해 촉발되었다.


길먼이 우익 정치와 녹색 정치의 일종의 합병은 나치즘이 일종의 원환경주의를 과시했다는 점에서 역사적 전례가 없지 않다고 주장할 때, 그는 확실히 옳다. 하지만 이 주장이 빠뜨리는 것은 나치즘이 오히려 일종의 맬서스주의적 소비주의였다는 사실이다. 본질적으로 히틀러는 레벤스라움(Lebensraum)을 생활 공간이자 "생활 양식"으로 재구상함으로써 경쟁국 인민을 굶어죽게 하는 것이 독일 소비자가 미합중국 소비자와 동일한 생활 수준을 누릴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라면 그렇게 할 권리가 있다고 주장했다.


그 민주적 변양태가 "소비자 공화국"으로 불린 대중 정치와 소비 사이의 거의 50년이 된 이런 연계를 단절하는 것은 장기적인 과정인 것처럼 보이는데, 요컨대 우리가 명백히 더는 감당할 수 없는 그런 종류의 인내심을 요구한다. 그리고 나는, 이런 고르디우스의 매듭를 풀 방법은 알지 못하지만, 그것이 우리의 주요 문제임을 거의 확신한다.


우리가 경험하고 있는 것은 지질학적 힘이 정치적 힘보다 더 빨리 작동하고 있는 정상적인 시간 규모의 기묘한 반전인데, 요컨대 인간 체계는 불활성적이고 고착된 것처럼 보이는 반면에 영구적으로 고형인 것처럼 보이는 지구는 우리가 감지할 수 있는 속도로 붕괴한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 자신의 관성을 헛되이 무시하기보다는 인정함으로써 통찰을 얻을 수 있을 것인데, 이것은 우리가 지금까지 나타나지 않은 정치적 형식―좋든 나쁘든―을 창출함으로써 전례가 없는 난제를 마주할 개연성은 없고, 오히려 오늘날과는 다른 방식으로 정치적 제도와 국제적 체계에 여전히 매달리는 한편으로 웰즈가 서술하는 모든 공포로 마주할 개연성이 높음을 뜻한다.


지구정치적 측면에서 그것은, 사악하든 자비롭든 간에 어떤 형태의 지구적 제국보다 다극적 국가 세계, 즉 베헤모스들의 세계를 뜻한다. 그것은 어떤 이유로 인해 만과 웨인라이트가 더 자비스러운 가능성을 생략하는 운명이다. 우리는 변호할 수 없는 것을 변호하고 심지어 경제에서의 탄소 범위를 확대하고자 시도하는 일에 사로잡힌 트럼프주의적 베헤모스들을 더 많이 보게 될 것이다. 그리고 유럽에서는 베헤모스들이 길먼이 예측한 그런 종류의 아보카도 정치로 견인되는 사태가 나타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적어도 우리는 또한 "선한 베헤모스들"이 출현하는 사태를 목격할 것이라고 바랄 수 있다.


선한 베헤모스는 대다수의 국내 및 국제 의제가 환경적 관심사에 의해 견인될 정도로 충분히 녹색인 정치를 펼치는 국가일 것이다. 그것은 자신의 모든 주권적 권력을 기후변화와 그와 관련된 환경 위기에 대응하는 데 사용하는 국가(그리고 성공한다면 궁극적으로는 뜻이 맞는 국가들의 동맹)일 것이다. 그것은 기후를 파괴하는 기업 이익에 맞서는 외국 시민들의 법률 전쟁과 풀뿌리 토착 환경 운동을 돕는 데 자신의 영향력을 지구적으로 확대할 것이다. 그것은 탄소의 대체 물질을 만들어내는 국제 연구에 자금을 지원하고, 기후변화에 대한 자국의 복원탄력성에 투자할뿐더러 다른 국가들의 복원탄력성에 조건부로 투자하며, 탄소발자국에 기반을 두고서 자신의 무역을 조직한다. 그것은 무엇보다도 세계에 탈탄소화된 중간 계급 사회가 어떤 모습일지에 대한 모형을 제공하고자 할 것인데, 요컨대 도처에서 그 사회의 실행 가능성을 중간 계급에게 설득시킬 희망을 갖고서 말이다.


다시 말해서, 그런 국가가 지금까지 현존하지 않았다면 기후 변화로 인해 우리는 그것을 부득이 발명해야 할 것이다. 오로지 그런 국가를 통해서만 집단적 우선 사항이 구속력이 있는 정책과 법률로 전환될 수 있을 따름이다. 하나의 세계 국가는 나타나지 않을 것이지만, 우리의 현행 지구정치적 세계와 꼭 마찬가지로 규모가 중요하다. 지구정치의 현실을 고려하면, 그런 선한 베헤모스가 더 크고 더 강력할수록 그 영향력은 더욱더 지구적일 것이다. 선한 베헤모스들이 도래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기후변화의 위기를 벗어날 기회가 거의 없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