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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세기의 관념들: 프로트과학(Protscien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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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 3. 25.

 

1. 아래의 글은 <<TPM: The Philosophers' Magazine>>에서 기획한 <21세기의 관념들(Ideas of the century)> 가운데 15번째 관념 "프로트과학(Protscience)"에 대한  스티브 풀러(Steve Fuller)의 기고문을 번역한 것이다.

 

2. 스티브 풀러는 현재 영국 워익 대학교(University of Warwick)의 사회학 교수이다. 현재 한국어로 번역되어 출판된 그의 책은 <<지식인>>(임재서 옮김, 사이언스북스, 2007)과 <<쿤/포퍼 논쟁>>(나현영 옮김, 생각의나무, 2007)이 있다.

 

 

 

21세기의 관념들: 프로트과학 (15/50)

 

스티브 풀러

 

과학의 권위 이양에 관하여

 

지난 십 년 동안 가장 중요한 지적 발전은 내가 "프로트과학(Protscience)"라고 부르는 것의 등장인데, 프로트과학는 "프로테스탄트 과학(Protestant science)"을 줄인 말이다. 내게 이것은 이른바 지적설계론과 뉴에이지 의학, 위키피디아가 병행하여 등장한 데에서 나타나는 명백한 패턴을 의미한다. 오늘날 16세기와 17세기 유럽의 프로테스탄트 종교개혁은 하나의 중요한 에피소드로서 가르치지만 기독교의 역사에 한정된다. 그렇지만 사실상 그것은 로마교회로부터 종교적 권위을 이양함으로써 서양에서 지식 생산을 민주화하고자 한 최초의 일치된 노력을 특징짓는다. 이제 우리는 과학의 권위 이양으로 구성되는 두 번째 그런 시기에 들어서고 있는데, 그래서 프로트과학이다.

 

인쇄술은 사람들이 스스로 무엇을 믿을 지 결정하고, 그래서 더 이상 지역 성직자를 그냥 따르지 않는 데 필요한 인지적 자원을 획득하는 데 편리하고 유리한 매체로서 프로테스탄티즘의 첫 번째 등장에 중요했다. 실제로 성경 그 자체로 시작하여 서적들이 쉽게 회람할 수 있게 한 휴대용 형식과 지역 언어로 출판되었을 때 출판업은 큰 사업이 되었다. 이런 경향은 계몽시대 동안 가속화되었으며, 일반적으로 서양 문화의 포괄적인 자유화에 기여한 것으로 여겨진다.

 

지난 25년 동안 컴퓨터 기반 정보기술 덕분에 웹 검색에서 사회적 네트워킹 사이트까지 지역 출판의 새물결이 가능해졌다. 그것이 사회에서의 인식적 권위의 분배에 미친 영향은 명백하지만 그것의 장기적 결과는 불분명하다. 그렇지만 한 가지는 분명한데, 즉 프로테스탄티즘의 첫 번째 등장에서 의견과 정당성에 대한 주장의 다양성을 처리하기 위한 오랜 제도적 해결책들-세속 국가와 과학적 방법-이 직접 "정당성의 위기"를 겪고 있다.

 

이런 오랜 해결책들은 원래 성경 메시지에 대한 서로 다르고 흔히 경쟁하는 해석, 그것의 응용과 확장 사이의 잠재적으로 폭력적인 논쟁을 해결하기 위해 고안되었다. 이런 측면에서 정기적인 선거와 통제된 실험은 비슷한 기능을 수행했다. 게다가 19세기와 20세기에 국가가 시민을 보호할 뿐 아니라 시민의 복지를 향상시키게 됨에 따라 과학은 점점 더 국가의 작동에 연루되었고 그것에 의해 정의되었다. 따라서 이제 과학 엘리트는 세속 국가의 고위 성직자이며 결국 공공 정책에 강하게 영향을 끼칠 수 있는 보건과 환경과 관련된 충고의 원천이다.

 

프로트과학은 그런 밀접한 국가-과학 유대에 이의를 제기하는데, 특히 지배할 사람들에 책임을 지지 않아도 되는 기관에서 과학적 권위의 힘이 행사되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여기서 관련 기관들은 자신들의 권위에 대한 자동적인 존중을 기대하면서 동시에 삶이 규제될 사람들의 관점들을 주변화하거나 무시하는 국립 과학아카데미와 학술 저널들이다. 프로트과학은, 예를 들면 병원에서 의사가 환자를 고쳐야 할 필요가 있는 기계라기보다는 구매할 필요가 있는 고객과 같이 취급하도록 인식적 권력의 균형을 재조정하는 것을 목표로 삼는다.

 

확실히 프로트과학자들은 자기 자신들의 삶 속에서 과학의 통합적인 역할을 확신한다. 바로 그 때문에 그들은 그런 통합이 어떻게 일어나는지 결정하는 데 적극적인 역할을 맡아야 한다고 고집한다. 따라서 그들은 대안적인, 흔히 인터넷에 기반을 둔 원천에서 나오는 의견들을 취하고 그들 자신의 경험과 배경 믿음으로 모든 과학 연구의 불확실한 점들을 보충한다. 그러나 아마 가장 중요한 것은, 프로트과학자들이 자신들이 내린 결정의 결과를 주로 감당하는 사람들이기 때문에 그들은 과학적 문제들을 스스로 결정할 자신들의 권리를 옹호한다는 점이다. 결과적으로 이것은, 독특한 설명 원리들과 생활 관습에 비추어 그것들에 특이한 의견을 제시하면서 대다수의 수용된 과학적 사실과 이론을 유지하는, 과학에 대한 선택하여 혼합하는 접근법을 낳는다.

 

흥미롭게도, 교황의 권위를 따르기를 거부한 점 때문에 최초의 프로테스탄트들이 가톨릭 교도들에 의해 "무신론자"로 악마화되었듯이 오늘날의 프로트과학자들은 "반과학적"이라고 비난받는다. 그렇지만 두 경우 모두에서 관련된 사람들은 일반적으로 교육을 잘 받았으며 자신들의 믿음에 대한 이유와 증거를 제공할 필요을 전적으로 존중한다. 그래서, 놀랍지 않게도, 프로트과학자들은 스스로 공언한 인식적 기준에 따라 살지 못하는 기성 권위자들의 위선을 중시한다. 과학 사기에 관한 어떤 보도도 프로트과학 제분기용 곡식이며 탐구 기획 전체가 부패하기 전에 지식의 문제을 독자적으로 고려할 또 다른 이유이다.

 

프로테스탄트 종교개혁은, 막스 베버(Max Weber)가 서양 정신의 "탈주술화"로 서술한 것으로 유명한 유럽의 세속화에 이르는 길의 첫 번째 걸음이었다. 이 과정에 대한 프로트과학의 관계는 애매한데, 그것은 과학의 권위를 탈주술화하기도 하고 과학 그 자체를 삶을 형성하는 지식 형식으로 재주술화하기도 하기 때문이다. 최소한 프로트과학은, 제시하는 주장들에 대해 보편적인 범위를 요구하려는 어떤 형식의 지식도 그것의 신봉자에게 보편적인 호소력을 지녀야만 한다는 생각을 매우 진지하게 여긴다.

 

더 읽을 책

스티브 풀러, <<삶의 기예로서의 과학(Science: The Art of Living)>>(Acumen, 2010)

 

번역: 김효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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