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성옥 정창기 세상

박승호의한눈세상 2020. 3. 30. 01:20

월출산(月出山) 80X50cm

 

눈발이 풀풀 날리고 있습니다. 겨울 같지 않은 겨울이라고 연일 입에 오르내리는 겨울인데 그래도 겨울이라며 찰나처럼 쏟아져 녹기를 반복해도 눈은 눈입니다.

 

그 눈 속을 걸어 월출산 앞산에 올라와 월출산을 바라보며 앉아 넓은 들에 홀로 우뚝 솟아 있는 장엄함을 위로하는 양 술 한잔 따라놓고 한참을 바라보며 있습니다.

 

아득한 어느 시절이었던가. 청춘이 흩어져 방황하며 떠돌던 어느 해 깊은 봄, 겨우 얻은 일자리도 팽개치고 온다 간다 말도 남기지 않은 채 옮겨진 걸음이 어찌어찌하다 보니 월출산 앞에 갔고 날이 저물어 산자락에 기대어 하룻저녁을 보냈습니다.

 

기억은 흥건히 고여 있는 흑백사진같은 그리움입니다. 생은 별의 인연을 만나지 못해 멈추어 있고 산사에서 몇 끼를 때운 내 몸은 또 길 위에 있었습니다. 그 발걸음을 옮겨 해인사를 돌아 동래를 걷고 경주를 디디며 포항을 만지고 울진 불영계곡을 타고 올라가다 지쳐 어느 늙은 소나무 아래 앉아있을 때 그림자같은 촌부가 말없이 건네주고 간 보리주먹밥으로 흐르는 눈물에 생의 뜻을 물었습니다. 그런 인연으로 습관처럼 남도 땅을 헤매기 수십여 년, 마음이 허전하고 서글플 때면 지금도 강진으로 해남으로 다시 월출산 앞산에 앉아 시름을 닦아내다 옵니다.

 

살아보니 사는 것이 참 별것 없는데 왜 삶은 늘 가시밭길만 같았던지. 젊어 이름 석 자 크게 쓸 양 온몸이 바쁘던 나날이 참 헐겁게 보이는 겨울 아침입니다. 살아보니 살아 있는 나날이 축복이었습니다.

 

 

환절기에 모두 건강 잘 챙기며 지내시기를

광교산 아래 정창기

 

 

위 내용은 월간 난세계 2020년 3월호에 게재된 내용입니다.

 

사업자 정보 표시
| | | 사업자 등록번호 : -- | TEL : -- | 사이버몰의 이용약관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