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 속의 음식 이야기

nasica 2008. 7. 10. 22:48

 

 
페르시아 원정기 (Anabasis), 크세노폰 작 (배경 : BC 401년, 페르시아 유프라테스 강 근처) ---------------


페르시아 대왕의 전령들과 대면한 자리에서, 그리스 용병들의 지도자 클레아르쿠스는 그들이 원하는 바가 무엇인지를 물었다.  그들의 대답은 (전날처럼 항복을 요구하는 것이 아니라) 휴전을 원한다는 것이었다.  또 자신들이 대왕과 그리스 용병들간에 제안과 응답을 전달할 자격을 갖춘 사람들이라고 했다. 


클레아르쿠스의 대답은 다음과 같았다. 


"가서 너희들의 주군에게 이렇게 전하라. 우리 그리스인들은 먼저 전투를 바란다고.  이유는 우리가 아직 아침식사를 못했기 때문이다.  정말 용기있는 자가 아니고서는 그리스인들에게 아침식사를 제공하지도 않고 휴전이라는 말을 입 밖에 내지 않는 법이다."


대왕의 전령들은 그 대답을 가지고 말을 몰아 돌아갔다가, 금방 다시 되돌아왔다.  이는 페르시아 왕 자신, 또는 대왕으로부터 전권을 위임받은 고위급 인사가 바로 근처에 있다는 증거였다.  전령들은 길안내자를 데려왔는데, 휴전이 맺어지면 그 사람이 그리스 용병들을 식량을 구할 수 있는 곳으로 안내해준다고 했다.


... 중략 ...


한참 행군한 끝에, 그리스 용병들은 어떤 마을에 도달했는데, 페르시아인 안내자는 이 마을에서 식량을 구할 수 있을 거라고 했다.  그 마을에는 밀이 아주 많이 저장되어 있었고, 대추야자 열매로 만든 술과, 또 대추야자 열매를 삶은 물로 만든, 약간 신맛이 나는 음료수도 있었다.  대추야자 열매 그 자체로 말하자면, 우리가 그리스에서 보던 것들은 하인들에게나 주는 것에 불과했다.  주인들이 먹기 위해 따로 모아둔 것을 보니, 그 크기와 모양이 정말 커다란 호박(보석)같았다.  어떤 것은 말려서 디저트용으로 보관해두었는데, 엄청나게 달콤해서 포도주 안주로 썩 잘 어울렸지만, 대신 너무 달아서 나중에 두통을 일으키기 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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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 구절은 그리스의 군인이자 역사가, 철학가인 아테네인 크세노폰(Xenophon)이 페르시아의 '반역의 왕자' 키루스에게 고용된 그리스 용병 1만명 중의 하나로서 페르시아 내륙 깊숙히까지 쳐들어갔다가 귀환한 내용을 그린 Anabasis (페르시아 원정기)의 내용 중 한 구절입니다.  이 장면은, 유프라테스강 인근 마을인 쿠낙사에서 벌어진 전투에서 키루스가 죽고, 그의 페르시아 반란군도 뿔뿔히 흩어진 상황에서, 페르시아의 대왕이자 키루스의 형인 아르타크세륵세스와 휴전 협상을 벌이는 부분입니다.


처음에 아르타크세륵세스는 이 '패잔병'들에게 '너희들은 졌으니 무기를 내려놓고 무조건 항복'을 요구하지만, 그리스 용병들은 '우리가 졌다면 왜 우리 무기를 말로 요구하느냐 ?  니들이 이겼다면 와서 가져가라'는 말로 응수합니다. 


말빨이 통하지 않자, 아르타크세륵세스는 '그러지말고 우리 친구 먹자, 그러자면 너희를 믿을 수 있게 그 살벌한 무기는 내려놓지 그러니 ?' 라고 꼬시는데, 이에 대한 그리스 용병들의 대답은 다음과 같았습니다.


"우리가 대왕의 친구라면 무기를 들고 있을 때 더 쓸모있는 친구가 될 것이고, 친구가 아니라면 반드시 무기를 들고있어야겠다."

 

 


그러자 결국 위와 같이 '닥치고 일단 휴전'이라는 조건을 가지고 온 것입니다.  위에서 그리스 용병들의 지도자로 나오는 사람은 클레아르쿠스(Clearchus)라는 노장으로서, 원래 스파르타 출신입니다.  이 사람은 Spatriates라는 오리지널 스파르타 성골 출신은 아니고, 평민 계급이라고 할 수있는 Perioicoi (주변인) 출신입니다.  원래 비잔티움 방면으로 파견되었던 지휘관이었는데, 워낙 전쟁을 사랑하여 키루스 휘하에서 자리를 잡고 그리스 용병들을 끌어 모은 장본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클레아르쿠스 및 그의 그리스 용병들의 운명에 대해서는 이미 아실테니 이쯤에서 생략하고, 여기서는 '그리스인의 아침식사'에 대해서 이야기해보지요.

 

 


최근에 영화 '300'이 인기를 끌었습니다.  그때 '출발 비디오 여행'이라는 영화소개 프로그램을 보니, 스파르타왕 레오니다스가 죽음을 앞두고 병사들에게 외치는 장면이 패러디되어 나오더군요.  레오니다스가 '아침을 두둑하게 먹어둬라 !  저녁은 지옥에서 먹는다 !'라고 예의 그 누런 이빨을 드러내며 포효하자, 개그맨 나레이터가 뒤어어 외칩니다.


"그럼 점심은 ~~ ????!!!!!!"   (집에서 혼자 TV 보고 있다가 진짜 많이 웃었습니다.)


그런데, 정말 그리스인들이 점심을 먹었을까요 ?  전세계적으로, 인류가 하루에 세끼를 먹게 된 것은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고들 하지 않습니까 ?  우리나라도 마찬가지고요.


사실 그리스인들의 식사 습관에 대해서는 설들이 많습니다.  아침은 먹지 않고 점심 저녁만 먹었다는 설도 어디선가 읽은 것 같고 (그래서 저 위에 클레아르쿠스의 말은 뭐란 말인가 하고 의아하게 생각했던 적도 있었습니다) 반대로 하루 네끼를 먹었다는 설도 있습니다.  보면, 하루 네끼를 먹되, 그 중에서 2끼 정도는 매우 간단한, 간식 정도라고 생각하면 되는 것 같습니다.  영국인들도 하루 네끼를 먹는다고 하지요 ?  영국인들도 aftrenoon tea와 supper는 가볍게 먹는다고 합니다. 


아무튼 그리스인들의 식사는 다음과 같이 4번이라고 하는 것이 정설인 모양입니다.  (저는 그냥 웹에서 본 거니까 틀릴 수도 있습니다.)


akratisma - 아침.  빵에 희석하지 않은 포도주를 적셔먹는 정도


deipnon - 점심. 


dorpestos - 이른 저녁. 


epidorpis - 저녁. 


그런데 이게 복잡해지는 것이, 그리스 시대에도 이런 식사 이름이나 시간이 점점 변했다고 합니다.  그래서 akratisma는 ariston이라고 이름이 바뀌면서 점심을 뜻하게 되었고, deipnon이 저녁으로 자리를 옮겼다고 합니다.  그러니까 레오니다스가 말했던 '아침을 두둑하게'라는 것도, 이게 당최 아침인지 점심인지 좀 모호한 모양입니다.  (왜 그게 모호하지요 ?  아침에 먹으면 아침이고, 점심때 먹으면 점심이지...)


'페르시아 원정기'에서 그리스인들이 아침식사로 먹었던 대추야자는 중동지방의 특산물입니다.  저는 10년전 쯤, 어떤 분이 이스라엘에 출장다녀오면서 선물로 사온 것을 먹어봤습니다.  우리나라 대추에 비해 붉은빛이 적어서 갈색이 나고, 크기는 훨씬 큰데, 달콤한 진액이 껍질 밖으로 막 흘러나올 정도더군요.  그 정도 당도면 정말 술을 만들어도 될 정도였습니다.

 

 


천일야화에서 신밧드가 점심으로 먹다가 씨를 뱉었는데 그 씨에 마신의 아들이 맞아죽었다는 그 열매가 또 이 대추야자입니다.  그냥 먹어도 좋고, 말려먹어도 좋고, 요리를 해먹어도 좋고, 술을 만들어도 되고, 건조한 지역에서도 잘 자라니까 정말 중동지방에서는 없어서는 안될 소중한 식물인 셈입니다.  코스트코에서 이걸 파는 것을 보았습니다만, 10년전 제가 먹어봤던 그 이스라엘제에 비해서는 크기도 좀 작고, 그렇게 달지도 않더군요.  아쉬웠습니다.

 

 

 

결국 우리나라에서 파는 건 크세노폰의 표현을 빌리자면 "하인들이나 먹는 거"군요(엔하위키에 소개된 바로는 "시장에서 별로 안 쳐주는 두바이산"이라고 나오데요).
맨오른쪽 그리스 병사가 들고있는 방패는 치우의 모습과 매우 흡사하근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