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폴레옹의 시대

nasica 2008. 7. 16. 23:13

 

흔히 군대에서는 병사들을 재우기 전에 이런 명령이 나옵니다.  "익일 오전 5시 기상이다 !" 

 

요즘이야 뭐 별 문제없지요.  장교, 하사관, 일반 병사 모두 시계를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나폴레옹 당시의 병사들은 어땠을까요 ?  병사들이 모두 호주머니 속에 회중 시계(fob watch)라도 가지고 있었을까요 ?

 

 

 

아무리 생각해봐도 그건 아니겠지요.  당시 회중 시계는 신사들에게는 어느 정도 필수품이었습니다.  (영국인들이 시간을 잘 지키려고 노력하는 버릇은 이때부터 생겼나 봅니다.)  특히 장교들에게는 상당히 꼭 필요한 물건이었습니다만, 그렇다고 군대에서 장교들에게 지급되는 물건도 아니었습니다.  하긴 뭐 당시 장교들은 군복까지 모두 자기 돈으로 마련해야 했는데, 하물며 시계야 말할 것도 없지요.

 

하지만 장교들이라고 다 유복한 집안 출신은 아니었습니다.  가난한 홀어머니가 집안 대대로 내려오는 패물과 접시까지 다 팔아서 소위 계급과 중고품 군복, 낡은 칼 한자루를 간신히 마련해준 덕택에 전쟁터에 나올 수 있었던 가난한 소위들이 회중 시계를 가지고 있으리라고 생각하면 곤란하겠지요.  이런 친구들이나, 또는 하사관이 인솔하고 있는 병사들은 대체 시간을 어떻게 알 수 있었을까요 ?

 

당시 병사들은 '시계가 없어서 시간을 모르는 건 군인 자격도 없다' 라고 떠들어댔습니다만, 사실 그건 자신들의 가난을 감추기 위한 큰소리에 불과했습니다.  배꼽 시계가 정확해봐야 얼마나 정확하겠습니까 ?  결국 병사들은 낮에는 해를, 밤에는 별자리를 보고 대략적인 시간을 맞췄습니다.  비가 오거나 구름이 잔뜩 낀 날에는 ?  시계를 가진 장교를 찾아봐야겠지요.

 

사실 당시는 그렇게까지 정확한 시간이 중요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어차피 무전기도, 전화도, e-mail도 없던 시대에, 시간은 대충만 맞추면 되는 것이었습니다.  당시 시계들 중에는 아직 초침이 없는 시계도 많았습니다.  초침이 있는 시계는 꽤 비쌌거든요.  사실, 스프링으로 동작하는, 어느 정도 현대적인 형태의 시계는 15세기 초에 나왔는데, 당시에는 시침만 있었고 분침은 없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사람은 항상 시간에 쫓기는 존재인지, 불과 100년도 안되어, 15세기 후반에 이미 분침이 달린 시계가 개발되었습니다.

 

 

 

육군 장교들은 뭐 사실 분 단위로 시간을 재야 할 만큼 시간의 정확성이 중요하지는 않았습니다.  뭐 공격 개시야 1~2분 늦으면 어떻습니까 ?  어차피 병사들이 발로 걸어가서 공격하는 건데요 뭐.  하지만 분 단위는 커녕 초 단위의 정확성이 중요했던 사람들이 있습니다.  바로 대양을 항해하는 상선들과 군함들이었습니다.  왜 중요했냐고요 ?  인공위성 때문이었습니다. 

 

 

(�미...?  여기서 얘가 왜 나와 ?)

 

나폴레옹 시대에 왠 인공위성이냐고요 ?  ㅎㅎㅎ  당시에는 인공위성이 없었기 때문에 그랬다는 이야기입니다.   인공위성이 없었기 때문에, 당시에는 망망대해에서 선박의 위치를 파악하려면 인공위성 한 가지가 아닌, 다른 물건 두 가지가 필요했습니다. 

 

 

 

첫째는 육분위, 즉 섹스탄트(sextant)입니다.  이건 간단히 말해서 해나 별의 고도를 측정하는 물건인데, 이걸로 배위 위도를 측정할 수 있었습니다.  어떻게 하냐고요 ?  여기서 수학 이야기하면 다들 골치 아프실테고, 고등학교 지구 과학 시간에 어느 정도 나옵니다...만 저는 지금은 까먹었습니다.

 

 

 

둘째는 바로 시계입니다.  이 시계는 크로노미터(chronometer)라고 하는, 당시 기술로서는 상당히 정밀한 종류의 시계였습니다.  크로노미터라고 하는 시계는 대략 오차가, 영국에서 자메이카까지 항해하는 동안, 그러니까 약 1달 정도에 30초 정도 났다고 합니다.  이 시계는 대양을 항해하면서도, 항상 영국 그리니치를 기준으로 시간이 맞춰져 있었습니다.  항해 중에 그 지점에서 해가 중천에 오는 순간, 그 때의 그리니치 기준시를 정확하게 알 수 있으면, 그 지점의 경도를 측정할 수 있었습니다.  불행히도 크로노미터는 육분의에 비해 가격이 꽤 비쌌던 관계로, 당시 영국 군함 1척당 크로노미터는 딱 1개씩만 지급이 되었습니다.  하지만 이게 고장나거나 파손되면 어떻게 합니까 ?  이때도 결국 유전무죄 무전유죄였습니다.  돈많은 함장의 경우, 사비를 털어서 예비 크로노미터를 샀습니다.  그럴 경우 해군성에서는 추가로 2개의 크로노미터를 지급해주었다고 합니다 !  결국 돈많은 함장들보고 사비를 털어 국방력에 보태라는 무언의 압력이었던 것이지요.  그러니까 기난한 함장은 위아래에서 다 싫어했겠지요.  험한 바다로 나가는데, 함장이 가난뱅이라서 크로노미터가 배에 딱 1개 있다면 얼마나 다들 불안해했겠습니까 ?

 

자, 정리하면 위도를 알려면 육분의, 경도를 알려면 시계가 필요한 것입니다.  이렇게 해서 당시 기술로도, 불과 1~2km의 오차 범위 내에서 정확한 선박의 위치를 파악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결국 두 방법 모두 태양이 있어야 가능했습니다.  따라서 폭풍우가 며칠동안 계속되면, 선박의 위치를 알 방법이 없어지는 것이지요.  하지만 말입니다, 뭐 여기서 다시 나오는 것이, 때는 18세기 말 ~ 19세기 초였고, 레이더도 없고 미사일도 없었으므로, 며칠동안 자기 위치를 정확히 모른다고 해서 큰 일이 나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나폴레옹 시대의 GPS는 이런 날 작동 불능...)

 

자, 당시의 군인이나 선원들은 그렇다고 치고요, 당시 유럽의 서민들은 어떻게 시간을 맞췄을까요 ?  시골에서 소를 치고 밀 농사를 짓는 농부들은 정확한 시간 같은 것은 필요없었습니다.  따라서 패스.  하지만 19세기 중반 즈음 가면서, 산업화가 진행되자, 문제가 심각해졌습니다.  이제 서민들은 목가적인 농장으로 일하러 가는 것이 아니라, 정확한 출근 시간을 지켜야 하는 공장으로 일하러 가야 했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회중 시계는 고사하고 벽 시계도 서민들에게는 지나친 사치품이었습니다.  그래서 결국 어떻게 출근 시간을 맞췄냐고요 ?  여기엔 좀 슬픈 기록이 있습니다.

 

 

 

19세기 중반, 영국 의회의 어떤 위원회에서, 당시 공장에서 일하던 어떤 10대 초반의 소녀를 증인으로 인터뷰를 했습니다.  그 기록 중에, 바로 그런 내용이 나옵니다.  어떻게 출근 시간을 맞췄느냐고 물으니까, 그 소녀는 어머니가 별을 보고 대략적인 시간을 짐작해서 깨워주었다고 대답합니다.  공장에 지각하면 돈을 제대로 못받기 때문에 새벽 일찍부터 공장 문 앞에서 기다렸다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소녀가 덧붙이기를, 비가 내리는 날은 어머니가 시간을 잘못 맞췄기 때문에 가끔씩은 비내리는 추운 새벽 2시간이나 일찍 공장에 도착해서 벌벌 떨며 공장문이 열리기를 기다리기도 했다고 합니다.  결국 그 인터뷰 기록은 가혹한 노동 조건에 대해 차마 말을 잇지 못하고 소녀가 목이 메이는 것으로 끝이 납니다...

흐음... 85년생인디. 저희 중고딩땐 육분의 사용방법을 배우진 않았습니다. 교육과정이 달라서 그런게겠죠?
그나저나 마지막 문단은 안습이군요...
지금의 우리들이 얼마나 문명의 혜택을 받고 살고 있는지 뼈저리게 느끼게 해 줍니다.
오늘날의 우리들도... 뭐 사실 그렇게 문명의 혜택이 고맙지만은 않아요. 일요일 새벽 4시에 휴대폰 전화받고 고객사로 뛰어가 보신 경험 있으시면 느끼실 겁니다...
마지막 공장에서 일하는 소녀 이야기는 마음이 아프네요... 정말 쥐꼬리도 안되는 돈 받고 제대로 된 식사도 못하면서 일했을텐데 말이죠...
가혹함은 항상 산업화와 더불어 등장하는군요. 시계와 함께 시간에 쫓기면서 사는 현대인이나 저 불쌍한 소녀의 이야기나...많은 것을 생각하게 하는 글이었습니다. 재미있게 잘 읽었어요.
저 시대의 아동 노동자의 가혹한 노동시간과 강도는 가혹하다라는 말로 표현한다면....... 무시무시하다는 말정도가 그나마 순화된 표현이라고 봅니다.

뭐... 커피를 마시는 사람이라면 그 커피들중 한잔은 아동 노동자의 가혹한 노동력의 액기스가 녹아 있는 음료라는 걸 알아둘 필요는 있겠죠. 아 물론 2008년 현재의 얘기입니다.

19세기 영국와 지금의 차이점은 내국인을 내국인이 빨아먹는 것에서 외국인을 빨아먹는 걸로 바뀌었지만요. 뭐 국내가 아니라 해외에서 빨아 먹으니 티가 덜날 뿐이죠. 근친상간에서 그냥 강간으로 바뀌었다고 할까요.
크로노미터의 개발에 관한 이야기는 '경도'라는 책에 자세히 나와 있더군요. 존 해리슨이란 사람이 크로노미터를 열심히 만들어 가면 영국 정부에서 수없이 각하하는 내용이 대부분을 차지하던 책이었습니다.
마린 크로노미터의 탄생에 관한 글이네요.
현재까지도 크로노미터라는 단어는 쓰이고 있습니다.
스위스에서는 일정 시간 내의 오차를 보이는 시계에 대해
C.O.S.C (Contrôle Officiel Suisse des Chronomètres)
크로노미터 인증을 부여하고 있습니다.
롤렉스 등이 많이 인증을 받고 있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