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폴레옹의 시대

nasica 2009. 1. 3. 12:19

 

 

 

THE MAURITIUS COMMAND by Patrick O'Brian (배경: 1809년 인도양) ------------

 

"꼭 그런 건 아니라네."  잭이 말했다.  "희망곶은 저 고물 뒤쪽으로 지나갔어.  그걸 못봤다니 안됐네.  자네가 바쁜 사이에 아주 근접한 상태로 지나쳤는데 말이지.  하지만 그 전에 테이블 산은 보지 않았나 ?  내가 전령을 자네에게 보냈었는데 말일세."

 

"그래, 그래, 그 점 아주 고마왔네, 비록 부른 시간이 아주 크리스천답지 않은 (unchristian) 시간이었지만 말일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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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의 대화에서 가장 돋보이는 점은 저 '크리스천답지 않은' 이라는 단어입니다.  한참 잠들어있을 한밤중에 전령으로부터 연락을 받았던 등장인물 스티븐은 이 단어를 마치 '비정상적인' 내지는 '말도 안되는' 이라는 뜻으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즉, 크리스천답다라는 표현은 '이성적이고 정상적이다'라는 표현과 동일시 하고 있는 것이지요.  실제로 당시 사람들은 그런 뜻으로 '크리스천답다'라는 표현을 많이 썼습니다. 

 

사실 한발짝 더 나아가면 크리스천답다는 표현은 그냥 유럽식이라는 표현으로 볼 수도 있습니다.  17~19세기 사람들의 대화에서는 가령 '크리스천다운 옷을 입은' 이라든가 '크리스천 방식으로 일을 처리한다'라든가 심지어 '크리스천답게 커피를 마시겠다'라는 표현을 종종 볼 수 있습니다.   십자군 시절, 이슬람군과 싸워 패배한 기사들은 종종 '상대가 크리스천답게 싸우지 않았다'라고 변명을 하곤 했습니다.  이는 '상대방이 유럽식과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싸워서 당해낼 수가 없었다'라는 뜻이라고 볼 수 있겠습니다.

 

 

 

(우리가 진 것은 이슬람놈들이 비겁하게 이슬람식으로 싸웠기 때문이다 !!???) 

 

하지만 이걸 한번 더 꼬아서 생각하면 '비겁하게 싸웠다'라는 뜻도 내포되어 있습니다.  즉, '크리스천답지 않다'라는 표현은 기독교가 아닌 사람들을 비이성적이고 괴이하며 몰양심적인 것으로 매도하고 있다고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처음 포르투갈 사람들이 인도를 찾아갔을 때, 그들은 자신들이 사실 별 것 아니라는 것을 곧 깨달았습니다.  항해 도중에 배에 태운 아라비아 뱃길 안내원에게 나침반이나 육분의같은 항해 도구들을 자랑스럽게 보여줬더니 코웃음만 치질 않나, 인도 군주에게 선물로 내민 모직물이나 혁대, 검 같은 것들은 인도인들로부터 대놓고 '보잘 것 없다'라는 핀잔을 받아야 했습니다.  오로지 대포만이 그럴싸한 물건이었습니다.  즉, 유럽인들은 그전에도 아시아를 여러차례 휩쓸었던, 문화적으로는 뒤떨어지고 오직 무력만 강한 유목민 취급을 받았습니다. 

 

 

 

(말타고 와서 활을 쏘나, 배타고 와서 대포를 쏘나, 결론은 야만인) 

 

 

하지만 유럽인들은 그래도 정신적으로 또 문화적으로 자신들이 더 우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이유는 간단했습니다.  자신들은 하나님을 믿는데 반해, 아시아인들은 가짜 신을 섬기는 이교도였기 때문이었습니다.  인종적으로 아시아인들을 무시하고 괄시한 것은 어느 정도 아시아의 식민지화가 진행된 다음의 이야기였습니다.  나중에는 다윈의 진화론이 '적자생존'은 자연스러운 것이라는 사상을 유럽인들 머리 속에 주입한 결과, 백인들이 유색인종을 지배하는 것이 당연하다는 생각이 퍼져서, 인종 차별주의가 대세를 이루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적어도 초기에는, 비유럽인들을 멸시하여 부를 때 주로 'heathen' 즉 이교도라는 종교적 차별성을 강조한 이름으로 불렀습니다. 

 

 

 

(이 책이 히틀러의 사상에도 영향을 줬다고 ?) 

 

그래서 19세기 초까지만 하더라도, 유럽인들은 자신들과 비유럽인을 구분할 때 백인이라는 말보다는 기독교인인가 아닌가를 따졌습니다.  일단 사실 백인이라는 구분 자체가 좀 애매모호한 것입니다.  가령 스페인 남부 사람들과 북아프리카 모로코인들의 외견상 차이는, 스페인 사람들과 스웨덴 사람들 사이의 차이보다 뭐 꼭 크다고 볼 수는 없습니다.  또 인종 구분이 좀 아리송한 소아시아 쪽의 아르메니아 사람들이나 투르크 사람들과는 더욱 인종으로 구분하기가 곤란했습니다.  (저는 인종에 대한 UN 선언이 참 명언이라고 생각합니다.  "인종간의 차이는 개인 간의 차이보다 더 크지 않다.")  생각해보면 이 시대 유럽인들, 혹은 친유럽파 비유럽인들(가령 아르메니아인들이나 이집트의 콥트교인들)은 거의 예외없이 크리스천이었으므로, 크리스천의 이익이 곧 유럽의 이익인 경우가 많았습니다.  또, 실제로 크리스천은 국적에 상관없이 보호받아야 하는 형제들이다 라는 생각도 실제로 강했습니다.  이는 물론 이슬람과의 오랜 투쟁 결과 생긴 개념이겠지요.  가령, 영국이 19세기 초까지도 북아프리카 쪽에 많았던 백인 노예들을 구출하기 위한 노력을 펼칠 때, 그들은 굳이 '영국인 노예'를 구하려고 했던 것도 아니고, '백인 노예'를 구하려고 했던 것은 더더욱 아니며, '크리스천 노예'들을 구한다는 목표로 일했습니다.    이때의 이야기는 가일즈 밀턴의 '화이트 골드'라는 책에 잘 나와 있습니다.  나름 재미있는 책입니다.  (이미지 사진이 없어서 영문판 사진을 올렸습니다만, 국내에도 한글판 나와있습니다.  저도 도서관에서 한글판 빌려 읽었습니다.)

 

 

 

 

그래서 과연 유럽인들은 기독교 정신으로 아시아인들을 대했을까요 ?  뭐... 별로... 썩... 그렇지는 않았다는 것은 이미 다들 잘 알고 계시리라 봅니다.  사실 모든 종교가 그렇습니다만, 종교는 코에 걸면 코걸이, 귀에 걸면 귀걸이가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개인의 수련에 따른 해탈을 중요시하는 고대 인도 종교인 불교가, 어느덧 우리나라에서는 자식 대학 합격을 기원하는 숭배의 대상으로 부처님을 내세우게 된 것도 저는 비슷한 경우라고 봅니다.  아무튼 기독교도 별로 '크리스천답지 않은' 행동을 많이 했습니다.

 

Sharpe's Triumph by Bernard Cornwell (배경: 1802년 인도) -----------------------

 

"너를 체포하겠다, 샤피 !" 헤익스윌 중사가 으르렁거렸다.  "체포라고 !  군법회의에 회부감이야.  틀림없이 총살형을 받게 될 걸."   헤익스윌은 누런 이빨을 드러내며 웃었다.  "탕탕, 넌 이제 죽었어.  좀 시간이 오래 걸리긴 했지만 말이야, 샤피, 이제 복수를 한 셈이 되는거야.  넌 이제 끝장이야, 끝장이라고.  성경에도 그렇게 씌여있어 !"


"그런 건 씌여있지 않네, 중사 !"  맥캔들리스 중령은 말 안장에서 휙 돌아서며 외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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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아저씨가 헤익스윌 중사로 나왔는데, 어디서 많이 본 얼굴이시죠 ?  유주얼 서스펙트에서 그 변호사...) 

 

저 위에 등장하는 헤익스윌 중사는 샤프 시리즈 내내 주인공 사프의 철천지 원수로 나오는 캐릭터입니다만, 저 친구의 말버릇 중 하나가 바로 저 '성경에도 그렇게 씌여있어 (Says so in the scriptures)' 라는 것입니다.  터무니없는 짓거리를 하면서도 항상 '성경에도 그렇게 씌여있어'라며 자기 행동을 합리화하지요. 

아시아 및 아프리카를 식민지화했던 유럽인들의 행동도, 저 헤익스윌 중사가 '성경에도 그렇게 씌여있어'라고 중얼거린 것과 크게 다르지 않았습니다. 

 

 

 

 

최근에 도서관에서 빌려 읽은 책 중에 '야만의 역사 (원제 exterminate all the brutes, 스벤 린드크비스트 작)'라는 책이 있습니다.  저는 조셉 콘래드의 '어둠의 심장'이 영화 '현대묵시록'의 원작이라는 건 알고 있었지만, 내용이 그런 내용인지는 몰랐습니다.  사실 아직도 안 읽어보았으니 아직도 그 내용은 모르고 있긴 합니다.  아무튼, 2천년 전 예수께서, 자신의 이름을 따르는 사람들이 나중에 저런 행동을 한다는 걸 아신다면, 정말 저 시대 영국인들이 하던 욕지꺼리대로 'Jesus wept' 하셨을 것 같습니다.

 

멀리서 예를 찾을 필요는 없습니다.  기억들 하시나요 ?  1999년에 옷로비 사건이라고 있었는데요, 워낙 너절한 사건이라서 여기에 그 세부 이야기를 적을 필요는 없습니다.  다만 당시 한국 기독교인들을 한꺼번에 경악하게 한 사건이 벌어집니다.

 

 

 

 

즉, 청문회에서, 상반된 주장을 하는 두 상류층 부인께서, 서로 자기 주장이 맞다고 하며 '자신은 독실한 기독교인으로서 정말 사실만을 이야기하는 것이다'라고 주장을 한 것입니다.  두 귀부인께서 모두 진실을 이야기하는 것일 수가 없으므로, 두 명 중 최소한 한 명은 기독교인의 이름을 걸고 거짓말을 했다는 것인데요... 정말 누가 거짓말을 한 것인지는 기억이 나지 않습니다.  다시 찾아보고 싶지도 않고요.  우리나라에서는 이런 거짓말이 워낙 횡행하고, 또 국민들도 거짓말인줄 뻔히 알면서도 속아주는 것이 예의인 것처럼 되어 있쟎습니까 ?  언제쯤 되어야 우리나라에서도 정치가들이나 사회 지도층 인사들이 정말 '크리스천다운' 정직함을 배우게 될까요 ? 

 

종의 기원은 히틀러에게 만이 아니라 모든 사람에게 어마어마한 영향을 준것같습니다. 코페르니쿠스가 우주의 중심이 지구가 아니라는것을 알려줬다면 다윈은 인간조차 생명의 중심이 아니라는것을 알려줬지요. 뭐 둘다 사람들은 별로 인정하고 싶지 않아서 거부해보려고 발버둥을 쳤지만 발버둥친다고 진실이 변하지는 않으니까요.
이 두가지 중심이동이 세상에 미친 영향은 정말 말로 다 표현할수 없을정도로 대단한것 같습니다. 사상의 중심이 이동해버렸으니까요.
저 헤익스윌 중사님 다른 영화에서는 대부분 지적이고 정감있는 캐릭터로 주로 나오던데 의외군요,(아버지의이름으로, 탄광촌에서 브라스밴드 운영하던 영화 제목이 뭐였더라?)
브래스드 오프 (Brassed Off) 1996 | 감독 : 마크 허만 | 관련인물 : 피트 포스틀스웨이트, 타라 피츠제럴드, 이완 맥그리거

이 영화 말씀하시는거죠? ^^
오히려 다윈 선생은 추종자들 중 하나가 인종차별적 논리에 진화론이 사용되는 것을 자랑스럽게 알려주자 "자네와 나의 자식을 죽일 생각인가!"라고 버럭 화를 냈다죠.
좋은 글이군요...
하지만 19세기 초반까지도 영국에서 백인인가 아닌가를 넘어서서 기독교인지 아닌지를 따졌다는데는 좀 동의 할 수가 없네요. 종교개혁 전 중세의 유럽인은 자신들을 부를 때 프랑스인 이나, 잉글랜드인라 부르지 않고, 집합적으로 'Christendom'이라는 단어를 썼습니다. 한 예로, 십자군 전쟁은 당시 사상으로 봐서는 마찬가지로 잉글랜드,프랑스와 신성로마제국 연합군이 이집트가 싸운 전쟁이 아닌 Christendom과 이집트가 싸운 전쟁으로 일컬어지곤 했습니다. 종교를 통한 유럽동포주의라고나 할까요..

하지만 종교개혁 이후로 가톨릭을 버린 나라들 (네덜란드, 영국, 스위스 등등)은 16세기의 종교개혁 이후에 스스로를 부를 때 Christendom이 아닌 '영국인'이나 '스위스인' '네덜란드인'이라고 불렀습니다. 종교개혁이 가톨릭신앙을 통한 유럽동포주의를 무너뜨린거죠. (참고로 민족주의는 이때 발생)

19세기 초반이면 프랑스 혁명밑 과학혁명의 여파로 신앙을 중심으로 한 동포주의의 몰락의 정점을 걷고있었을텐데 백인인가를 넘어서서 기독교인인지 아닌지를 따졌다니, 뭔가 좀 이상하지 않습니까?
요즘 우리나라도 영호남 지역감정 심각하지만, 일본이나 미국 상대할 땐 하나로 뭉치쟎습니까 ? 비슷하게 생각하시면 될 것 같습니다.
음.. 그렇게도 볼 수 있겠군요ㅎ
퍼클건이었나.. 기독교도와 싸울때는 자비로운(....) 원형탄을 쏘고 이교도와 싸울때는 치명적인 사각탄을 쏘는 개념 옹골찬 총의 설계도가 영국에서 나온 적이 있죠.... 근데 언제적에 나온 거였는지 기억이 안나네요.
우리나라 "사회지도층 인사"들이 정신차릴 날이라.... 아마 천지가 개벽하는 날이 아닐까 싶습니다.
저도 예전에 잭 파란스가 호스팅하던 TV 쇼 '믿거나말거나' 시간에서 그 총알 본 적 있습니다.
정치관이 좀 상이한걸 느끼지만 님의 풍부한 지식을 엿보다보면 그 정치관이 님에 있어서는 훌륭한 내적당위를 가지고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한마디로, 반한다는 얘깁니다 ㅎㅎ)
가끔 댓글에 감정이 상하시는 일 있더라도 계속 좋은 글 연재해주시기 바랍니다.
저는 예전에, 식당이 훌륭하다고하신 회사에 다니고 있습니다. 식당 음식에 투덜대는 회사동료들에게 님의 말을 전하곤하죠. ^^
오, 감사합니다.
언제나 글 잘읽고 있습니다. 새해 복 많이받으세요
새해에도 건강하세요.
저 옷로비년들은 울고짜고 성경에 손을 대고 쌩난리를 쳤지만, 정작 진실을 말한 사람은 울지도 않고 차분하게 증언하던 정일순이었다는군요. 역시, 여자의 눈물은 절대 믿는 게 아니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