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폴레옹의 시대

nasica 2009. 2. 20. 19:47

 

중동지방에 대한 서양 세력의 침탈은 19세기 초반에서야 시작되었습니다.  18세기 이전에는 오히려 오스만 투르크 제국이 서양을 압박했었지요.  그러다가 오스만이 침체되고, 특히 서양 세력이 동방과 무역하기 위해 중동을 통하지 않고 희망봉을 돌아서 항해하면서부터, 서양과 중동은 상호간에 별다른 교류가 없이 한동안을 조용히 지냈습니다.  그러다 근대화된 서양 세력이 중동을 침략하게 된 것은 1798년, 바로 나폴레옹의 이집트 원정이 그 시발점이 되었습니다.  이 이후로 중동 세력들은 서구의 기술력과 경제력에 영향을 받게 되고, 점차 경제적, 군사적으로 예속의 길을 걷게 됩니다.

 

 

 

(프랑스군에 대항하여 일어난 카이로의 반란... 윽 C발 프랑스놈들 꽤 세네...) 

 

 

결국 나폴레옹을 바라보는 이집트인들의 시각은 별로 좋을 수는 없는데요, 그래도 나폴레옹의 이집트 원정이 가져온 좋은 영향이 있다고 생각하는 이집트 지식인들이 꽤 있다고 합니다.  우리나라가 일제시대를 통해 근대화되었으므로 일본에 고마와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일부 친일파 인사들과는 그 시각이 어떻게 다른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아무튼, 그렇게 나폴레옹의 이집트 침공의 좋은 면을 바라보려는 사람들은 이렇게 말한다고 합니다. 

 

"보나파르트는 대포와 OOO를 가지고 이집트에 왔다.  그러나 대포는 떠났고, OOO는 남았다."

 

 

 

(나중에 러시아 원정길에서 나폴레옹은 러시아의 낙후된 시골을 보고 한마디 합니다. 

"러시아는 이집트만도 못하구나 !") 

 

 

여기서 OOO은 무엇일까요 ?  바로 인쇄기였습니다.  이건 단순히 수사학적인 비유가 아니고, 나폴레옹은 이집트에 진짜 인쇄기를 몇대 싣고 갔습니다.  원래 이집트 원정의 대의 명분 중 하나가, 문명의 요람 이집트에 그 문명을 되돌려주러간다는 것이었는데, 그 주요 수단으로 인쇄기를 택했다는 것은 매우 의미 심장한 일입니다.  다만 아름답지 못한 부분은, 나폴레옹은 프랑스제 외에도, 당시 점령했던 로마 바티칸의 포교성에서 3대의 인쇄기 완제품을 뜯어다 해체하여 이집트로 가져갔다는 것입니다.  문명의 전파 수단 자체를 약탈품으로 채웠다는 것이 그 원정의 결과를 짐작할 수 있게 해줍니다.  결국 나폴레옹은 이집트에서 이것저것 많은 것을 약탈해오는데, 도둑놈이 도둑질을 당한다고, 영국해군에게 그중 다시 많은 것을 털립니다.

 

 

 

(난 아무튼 영국 해군 때문에 뭐 되는 일이 없어 !) 

 

 

이 인쇄기들로 실제로 많은 서적 및 신문이 출간됩니다.  '이집트에서의 10일간'(La Decade Egyptienne)이라는 정기 학술지도 간행되고, '이집트 통신'(Le Courrier de l'Egypte)라는 신문도 발행합니다.  뿐만 아니라, 이집트 현지인들을 위한 많은 포고문은 물론, 특수 활자를 만든 후에는 아랍어 교본이나 '아랍어, 터키어, 페르시아어 알파벳'같은 언어학 서적까지도 출판됩니다. 

 

 

 

(이거 이래뵈도 카이로에서 인쇄한 거임... 프랑스어 하실 줄 아는 용자, 읽어 BoA요) 

 

 

전에 프랑스 대혁명은 결국 세금, 즉 돈 문제 때문에 일어났다고 말씀드렸습니다.  하지만 좀더 생각해보면, 그 전에도 세금이나 돈 문제가 심각했던 시절은 많았습니다.  그러나 그 전에는 폭동은 있었을지언정, 혁명은 없었지요.  그 이유가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  저는 계몽 사상과, 그리고 그 계몽 사상을 대중에게 효과적으로 전달한 인쇄술 덕분이라고 생각합니다.  나폴레옹도 아마 저와 같은 생각을 했기 때문에, 이집트까지 인쇄기를 들고 갔겠지요.

 

 

 

(당시 인쇄기가 가져온 변화는 월드와이드웹(www)이 가져온 변화보다 크면 컸지 작지는 않았습니다) 

 

 

정확한 통계치는 없습니다만, 일반적으로 18세기 초반 프랑스 성인 남성의 대략 25%만이 읽고 쓸 줄 알았습니다.  그러나 프랑스 대혁명이 일어나던 18세기 말엽 즈음 그 비율은 50% (여자의 경우는 25%) 정도로 부쩍 높아집니다.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출판업이 당시 경제의 가장 활발한 분야가 됩니다.  이건 20세기 말의 인터넷 혁명에 해당하는 정보 혁명이었습니다.  기껏해야 성경 정도나 인쇄하던 인쇄소가, 이제는 일반인들을 위한 정기 간행물, 주간지, 소식지 등을 활기차게 찍어내기 시작했고, 이로 인해 과거에는 지식인들의 사상이 몇몇 지식인들끼리 교환되다가 끝났지만, 이제는 일반 대중들에게 '여론'이라는 것을 일으키게 되었습니다.

 

그로 인해 예전에는 왕이나 대신들이 별로 신경쓰지 않았던 '여론'이라는 것이 정치 권력으로 자리잡기 시작합니다.  1770년대 루이 16세의 재무 대신이었던 자크 네케르 ( 나폴레옹 시대의 말, 말, 말 http://blog.daum.net/nasica/6862350 편에 출연했던 스탈 부인의 아버지)가 이런 말을 남길 정도였습니다.

 

 

 

(나폴레옹이 내 딸을 거부했어 ?  그런 십장생 호로병 자식을 봤나...) 

 

 

"여론은 보석도, 근위병도, 군대도 갖고 있지 않지만, 도시, 궁정, 심지어 국왕의 내각에 법령을 만들고 좌지우지하는 보이지 않는 권력을 구성한다."

 

그 이전의 군주들은 이런 말들을 아무렇지도 않게 주워섬겼습니다.

 

루이 15세 - 모든 공공질서는 짐으로부터 나오는 것이다.

루이 16세 - 내 칙령은 합법적이다.  왜냐하면 짐이 그것을 원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이건 불법이다 !  이유는 짐이 이걸 전혀 원하지 않기 때문이다 !  어..어...!) 

 

 

하지만 1789년 프랑스 대혁명 직전에는 이런 군주들의 선언은 그야말로 4가지 없는 망언에 불과하게 되었습니다.  이 모든 것이 18세기 중엽부터의 계몽주의와, 그리고 그 계몽주의 사상이 일반 대중에게 퍼질 수 있도록 오늘날의 웹브라우저 역할을 해준 인쇄술 덕분이었습니다.

 

당연히 당시 왕들은 이런 인쇄물을 단속하고 검열하려고 애를 많이 썼습니다.   이러한 검열 때문에, 당시 신문들에는 정치 뉴스가 거의 없었다고 합니다.  '거의'라고 쓴 것은, 몇몇 어용 신문들이 정부와 국왕의 이익을 대변하는 정치 뉴스를 내보냈기 때문입니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조중동은 항상 존재했습니다.)  당시 계몽 사상가들은 신문 같은 곳에 기고를 한 것이 아니라, 검열관이 주목하지 않는 출판사를 통해 저술을 발표했고, 어용 신문의 '개소리'에 지긋지긋해하던 대중들은 이런 찌라시 출판물을 즐겨 읽었습니다.  말하자면 요즘 블로그나 토론게시판 같은 출판물이었지요.  (정말 당시의 인쇄술은 요즘 HTTP와 비슷한 기술 및 영향력을 가집니다.)

 

하지만 정부의 검열은 이런 찌라시 출판물도 단속했습니다.  최근 잡혀간 미네르바처럼요.  가령 계몽 사상가의 대표주자인 볼테르의 경우, 여러가지 풍자와 냉소가 가득찬 논평을 자주 냈고, 그 결과 감옥과 추방 생활을 반복해야 했습니다.  나중에는 아예 스위스 국경 근처에 살면서 자기 저술 때문에 '검은 양복 사나이들'이 올 것 같으면 냅다 스위스로 튀기도 했습니다. 

 

 

 

(나 살던 시대에도 DC 정사갤 같은 수구 꼴통들 많았어) 

 

 

나폴레옹이 한시대를 풍미한 영웅인지, 혹은 히틀러와 같은 독재자인지에 대해서는 아직도 논란이 있습니다.  하지만 분명히 당대에는, 적어도 외국에서는, 나폴레옹이 히틀러와 같은 독재자로 인식되었습니다.  이유는 여러가지 있겠습니다만, 가장 큰 이유 중 하나는 바로 비밀경찰과 언론 검열 때문이었습니다. 

 

나폴레옹은 정말 권력이란 것을 잘 아는 사람이었는지 (혹은 전혀 이해를 못했던 사람이었을까요 ?) 이런 말들을 남겼거든요.

 

"리옹에서 성난 노동자들 2천명과 상대하는 것보다는 전장에서 외국군대 2만명과 싸우는 것이 더 쉽다."

"언론을 장악하지 못하면 내 권력은 단 며칠도 지탱하지 못한다."

 

그렇기 때문에 나폴레옹은 프랑스 국내의 언론 및 여론 단속을 철저히 했습니다.  나폴레옹은 푸셰(Joseph Fouche)를 총수로 하는 비밀경찰을 광범위하게 운용하며 국민들의 여론과 주요 인사들의 거동을 면밀히 감찰했고, 특히 각 신문사들의 기사를 일일이 감시하고 참견했습니다.  그 결과, 혁명 초기 거의 1000개에 가깝던 각종 신문사는 겨우 4개로 '언론 통폐합'되었습니다. 

 

 

 

 

(내 이름은 푸셰, 히믈러는 내 후배뻘이야.  다만 난 나폴레옹 멸망 이후에도 잘먹고 잘살았지.) 

 

 

당시 영국인들이 나폴레옹에 대해 도덕적인 우월감을 가질 수 있었던 이유는, 바로 이런 언론의 자유 덕분이 큽니다.  가령 다음 그림에 보이는 만평은 영국 신문에서만 볼 수 있었습니다.  프랑스 신문에서 나폴레옹을 우스꽝스럽게 그렸다가는 푸셔 휘하의 '검은 양복 입은 사람들'에게 끌려가서 '코로 설렁탕을 마시게' 되었거든요.

 

 

 

(영국 신문이니까 나폴레옹을 원숭이로 그린 것은 OK.  그런데 자국 수상인 John Bull을 불독으로 그려 ?) 

 

 

결국 독재자의 말로는 처참하다고, 나폴레옹은 엘바섬과 세인트헬레나에서 초라한 말년을 맞습니다.  나폴레옹은 프랑스를 평생 그리워하며 프랑스 소식에 목말라 했습니다.  그러나 프랑스에서 오는 신문들은 당시 복귀한 부르봉 왕가의 감독을 받고 있었으므로 제대로 된 파리 정세를 알려주지 않아, 나폴레옹은 프랑스 신문보다는 영국 신문을 선호했다고 합니다.  참으로 아이러니한 일이쟎습니까 ?

 

오늘도 잼있는 글 잘봤습니다.
누구도 말년엔 독방에서 '오마이뉴스'만 보면서 지내셨음 좋겠네염 ^^"
독재자들은 항상 군대,비밀경찰,어용언론의 3종세트를 선호하는군요. ㅋㅋㅋ 우리나라에서도 슬슬 이 3종세트가 완성 되는 가는 중....... ㅠ_ㅠ
홍위병들 이용해 여론조작하는건 노빠들 전매특허였자나 나폴레옹한테 배운거야??
요즘 이명박 대통령 각하의 뻘짓이 너무 인상적이어서 우리가 잊었다 뿐이지, 노무현도 조중동을 통제하기 위해 많은 애를 썼습니다. 다만 비밀 경찰을 통한 통제는 하지 않았지요. 모르지요 뭐 또. 우리가 모르는 사이에 정말 '비밀' 경찰을 통해서 했는지도. 그건 다 좋은데... 너 왜 반말하니 ?
반말 왜 하셨어요?ㅋㅋ
조중동이라고 쓰고 어용언론이라고 읽는군요 ㅋㅋㅋㅋ 씁슬하네요
언제나 잘보고 있습니다.!!!
*저도 블로그 개설했다능!!! 왕림해주십사한다능
http://blog.naver.com/discipulus12
언론의 발전과 민주주의의 발전은 공생하는 특징이 있습니다. 어느 한쪽도 앞서거니 뒷서거니를 할 수 없지요. 올바른 국민이, 올바른 언론과 지도자를 만들고, 올바론 지도자와 언론은 위기 때 그 가치를 발휘하게 됩니다.
사실 영국을 봐도 1차 세계대전 당시만 해도 언론에 문제가 많았다고 합니다. 그때만 해도 전쟁참전을 영웅시 하고, 전장이 아직까지 낭만과 영웅심이 살아있는 그런 곳이라는 식으로 홍보와 광고를 많이 했다고 하네요.
물론 징집률을 높이기 위함이었는데, 당연히 전쟁터에서 지옥을 보고 온 병사들 입장에서는 돌아버리는 내용이었지요. 그래서 1차 세계대전 이후, 어느나라 처럼 정부와 언론에 대한 불신감이 엄청나게 팽배했고, 그 후 영국정부와 언론 모두 반성을 많이 했습니다.
덕분에 1920년대 부터 되도록 진실된 발표를 하기 시작했고, 실제 2차 세계대전이 되면, 전쟁 초반 영국이 프랑스 전선에서 패배했다는 것, 우리는 혼자 싸워야한다는 것을 하나도 숨기지 않고 보도했습니다.
영국정부는 이들 보도로 인해 군대에 대한 지원률이나, 국민적 혼란이 나타날까 상당히 두려워하기도 했지만 그 결과는 반대였다고 합니다.
군대에 대한 지원률이 급증함은 물론, 나이 70먹은 노친네까지 징집관에게 자신 좀 써주라고 악을 쓰는 등등 국가에 대한 충성도는 훨씬 높았다고 합니다. 그래서 우리 불독 영감은 국민의 지지를 통하여 심한 물자 배급정책을 강요함은 물론, 노인들에게는 텃밭을 일구게 하고, 여성들을 무기공장에 보내는 등등, 당시 나치 독일로서는 생각지도 못할, 거의 스탈린에 버금가는 희생을 국민에게 강요했지만 이에 대한 소요나 불만는 거의 없었습니다.
이와 비교해 독재국가였던 나치 독일은 나폴레옹식의 강력한 언론통제 정책을 강행함은 물론, 심지어는 같은 군대내에서도 정보통제가 심했습니다.
그 업보는 그대로 돌아왔습니다. 1943년 독일은 수세의 입장으로 몰리기 시작했음에도, 독일의 산업생산은 여전히 군용보다는 민간생산량에 집중되어 있었고, 거짓 정보를 남발하던 독일 나치정부는 민중이 자신들의 적으로 돌아설 것을 우려해, 거짓정보에 반하는 민간경제의 전시전환을 재빨리 수행할 수 없었습니다.
덕분에 전장터에서는 병사들이 제대로 된 무기가 없어 고전하고, 구소련의 전차생산량이 독일의 10배 가까이 되었는데도, 독일정부가 전시생산 경제로 돌아선 것은 1944년, 독일의 패배가 분명해지던 시기였습니다. 당연히 그 대가로 나치 독일은 보다 빨리 붕괴하게 됩니다.


국민들이 믿을 수 있는 정부와 언론이 오랜동안 신뢰를 쌓아둔 이후, 어려운 시기가 되어 국민들에게 참여와 희생을 요구하게 되면 아무리 가혹하다고 해도 국민들의 지지와 참여를 모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K국가의 L정부, JJD언론처럼 거짓된 발표를 남발하고, 언론통제와 조작 등의 엉뚱한 짓만 계속하게 되면 당연히 국민과 시장은 이를 불신하게 되고, 이기주의와 사제기가 팽배하게 됩니다.
이렇게 국가경제의 기본 신용이 흔들리면, 당연히 외국의 투기자본이 옳거니 하고 들어와 환율장난을 시행하게 됩니다. 또한 국가의 소속원들인 교사들도 자신의 영위만을 위하여 거짓된 통계를 작성해 국가정책을 코미디로 만드는 일이 생겨나기도 하지요.
많은 사람들이 이야기합니다. 경제만 좋아진다면 좀 사기성이 있는 지도자가 뽑혀도 괜찮다고요. 또한, 자신들에게 듣기 좋은 이야기만을 해주는 언론이면 충분하다고요. 과연 그럴까요?
민주주, 정직, 신용, 올바른 언론이 중요한 것은 다름이 아니라 국민자신의 이익이 심각히 침해받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민주주의는 거창한 것이 아니라 국민들 모두를 합리적인 이기주의자로 만드는 것이라는 말도 있다고 하네요.


조끔 정치적인 느낌도 있습니다만, 이왕 언론이란 내용이 나왔으나 보충자료로 보시길 바랍니다. 그리고 여기서 언급한 특정 집단은 현실과 아무 관계도 없음을 미리 공지합니다. ㅋㅋㅋ
참고로 필자는 자본주의와 돈을 사랑하는 사람입니다. 조중동도 집에서 보고 있으니 비판은 자제해 주세요. ^.^ㅋㅋ









독일이 1944년에야 전시생산으로 돌아섰다는 것은 전설에 불과한 주장입니다. 채승병님의 블로그에서 그 주장의 허황됨을 증명하는 글을 읽으실 수 있을 겁니다. blog.periskop.info 로 한번 가보시지요.
좀 옛날 책을 근거로 해서 오류가 있었던 듯 합니다. 그래도 신기하네요. 미국친구들과 영국 친구들이 만든 전시 보고서가 지금에서야 수정이 되다니요. 저도 공부를 많이 해야할 듯 합니다.
그런데 freadcage님은 제글의 본질은 어떻게 파악했나 궁금합니다. 메일 주소가 있음에도 굳이 댓글을 붙인 것을 보면 조중동 계통의 분이라서 하는 딴지가 아닐까 쪼금은 의문스럽네요. 제발 좀 참아주십시오. 본 사이트는 정치논쟁 사이트가 아닙니당. 전 조용히 살고 싶어용. ㅠ.ㅠ
freadcage님에게
아~ 지송합니다. 지인들에게 전화를 해보니 freadcage님이 관련업계의 전문가라고 하시더군요. 제가 오해를 한 듯 합니다. 요새 이상한 문장 꼬기가 많아서 조금은 날카로워져 있었는듯.
많은 논란이 있지만 독일의 전시생산이 44년에 완전히 전환되었다는 기존의 주장에는 문제가 많다고 하는군요. 역사학자 친구들이 자신들 체제의 우월성을 강조하고자 많이 사용하는 바람에 오류가 생기게 되었다는 후문도 들었습니다.
freadcage님에게 다시금 사과를 드리며, 이왕 말이 나왔으나 짧으나마 독일 전시 경제체제의 변환에 관한 글을 간략히 정리해서 올려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오류를 수정하는 것이 공부가 아니겠습니까?
제 아이디는 rgm-84d@hanmail.net 입니다.
참, Nasica님. 본 사이트의 글의 수정과 삭제는 어떻게 하나요? 글을 쓸때 미리 입력시킨 비밀번호를 입력시켜도 조작이 안되네요. 작동법을 좀 가르쳐 주십시오. 오해가 확산되고 있습니다. ㅜ.ㅜ
뭐 오해랄 것까지야... 근데 어쩌지요 ? 저도 수정 방법은 모릅니다. 삭제는 할 수 있을 것 같은데... 원하시면 해드릴께요.
저.. 전문가라니요? 제가요? 터무니없는 과찬입니다. 저는 그저 여기서 본 글을 저기서 말하고, 저기서 본 글을 여기서 말하는 눈팅족에 불과합니다. 제가 메일을 쓰지 않은 것은 독일의 전시 경제에 대한 제대로 된 사실을 모두가 볼 수 있도록 하기 위함이었지, 그 외 다른 뜻은 없습니다. 애초에 님의 리플 대부분을 옳다고 생각했고, 단지 독일의 전시 경제에 대한 오류를 지나칠 수 없어서 지적한 것 뿐입니다. 애초에 저도 채승병님의 블로그에서 보고 알게 된 사실이니, 제가 그런 부분을 정리한다던가 하는 일은 어렵습니다. 채승병님께 부탁하시는 게 낫죠.
그런데 혁명전기의 저 찌라시들 대부분이 저질 종이에 인쇄된 타블로이드 들이었지요.

그 내용들은 한마디로 '앗 세상에 이런일이' 수준의 황당무계한 소리거나 포르노들이었습니다.

물론 포르노(야설)쪽이 압도적으로 많았지요. 사드 백작같은 경우가 그 대표적인 예입니다.
(지금 말초적인 야설들과 비교하자면 훨씬 문학적이죠. 할리퀸 로맨스정도?)

한마디로 포르노가 혁명을 일으키는데 한몫했다는 소리입니다.^^
인터넷도 야동혁명을 일으켰으니 역시 인간의 본능은 같다는 소리죠
후훗 예나 지금이나 사람은 변하지 않는군요.
케이트 윈슬릿 주연 영화 <퀼스>에서 나폴레옹이 사드 후작의 작품이 유통되는 걸 막으라고 하는 장면이... 0ㅅ0
우와 이블러그를 오늘에서야 알다니..너무 감사합니다~~
우와 이블러그를 오늘에서야 알다니..너무 감사합니다~~
퍼가요~
'여론'이라는것이 결국 '민심의 반영'
(즉, 국가의 인구중 절대다수를 차지하는 구성원들의 정보의 공유와 그에따른 집단적인 반응)이기에,
그것이 효과적으로 모이고 가시적으로 드러나는것이 인쇄기술의 발달과 출판물량의 폭발로 가능해지면서 권력의 한축으로 자리잡은 것이지요.

중국왕조와 조선에서도 절대적인 기반산업인 농사에 지장있을만한 재해가 생기면 '과인이 부덕하여~'하면서 알아서 기잖습니까.(눈가리고 아웅인 꼴이라도)

농민 몇십명이 도적떼에 죽는등의 국지적이고 1회성의 사건등은 지방관아에서도 대응가능한 사건인데, 그것은 정보의 전파가 용이하지 않았기 때문이기도 하죠.

그런데 전국적인 천재지변이 발생하면 백성들은 '우리지역에서만 일어난 것인가?''아니 영남과 호남,충청의 3남 곡창에서 전부 다 일어났다.'같은 소문이 금방퍼지게 됩니다.

이는 강건너 불구경할수있는것은 자기발등에 불똥이 떨어지지 않았을때만 가능하기 때문입니다만.

아무튼, 정보의 전파속도가 빠를수밖에 없는 사안에는 전제군주인 임금도 함부로 무시할수 없다는 증명에 다름아닙니다.

한글을 양반들이 그렇게 배척하고 한자를 진서,진짜 문자로 숭상할수밖에 없던 이유가 바로 그것이니까요.

기득권자들이 쓰는 문자와 민중이 모국어로 쓰고있는 문자가 같아지면 그만큼 민중이 그들의 작당에 참견하고 감시하고 기득권층에 끼는것이 용이해지며, 자신들의 뜻과 의지를 모으기도 수월해져서 결국 기득권층에 반항하고 실력행사하기 편해지기 때문입니다.

중세 교회에서도 똑같은일이 있었죠. 성서는 라틴어로만 기록해야한다고 정해져있던것을 영어로 번역해 출간한 학자가 파문조치당하고 화형당하는.

신도들로부터 교회의 행태에 꼬투리를 잡기 쉽게 상황이 변하는것을 방지하고자 한것입니다.
결국 막을수없게 되고 카톨릭은 개신교가 떨어져나가는것을 허락하게 됩니다만,
이것도 세속의 권력에 따라 굳어지게 됩니다.

문자는 개인간 정보를 포함,전달하기 위한 신호체계이고 이 '암호'와 '전달통로'로써의 출판,인쇄술과 인터넷이 개방되어 버렸습니다. 기득권자에게 있어서는 전쟁터에서의 암호체계와 무전 주파수가 들통나버린격이죠.

여기에 대항해서 기득권자가 내놓을수 있는 대책은 뭘까요?

예, 역정보와 노이즈, 의미없는 신호들의 무차별 전송입니다.

현 언론들의 카더라통신, 아니면말고식의 배짱대응, 나 전문가요 나서는 미덥지않은 전문가.
책을읽어야 한다고 하지만 어느것이 양서인지 알아볼수없을 정도로 범람하는 인쇄물.
어찌보면 한국 언론들의 '언론불신자초'는 말그대로 일부러 자초하는것입니다.

한국에서 메이저언론이랍시고 꺼떡대는 신문사들이 재벌들의 다른가면이란것은 거의 대부분이 알고있는 사실이고
'자본'의 존재는 인류역사 이래로 무엇보다 큰힘을 발휘했습니다. 욕심은 둘째치고 목구멍이 포도청인건 진리니까요.

결국 사회의 진짜 여론을 형성하게되는 수단은 발견되는대로 자본과 권력의 앞잡이가 될수밖에 없었죠.
키보드워리어와 악플, 알바와 정보의 홍수로 대표되는 인터넷은 말할것도 없습니다.

그리고 이후의 수순은 뭘까요?

다른 장벽을 또 만드는겁니다.

드라마같은 컨텐츠에서부터 '사회주류'에 끼기위한 자격요건, 서민인 사람들에게는 하나하나가 문턱이 천정부지로 높아져간다는 생각, 안해보셨습니까?

결국 서책, 한자, 유교경전, 라틴어성서, 의사들의 알아보기 어려운 진단서,한글로 씌여있어도 문외한은 이해하기 어려운 법전, 토익,토플,SAT,어학연수,외국유학,로스쿨,명품,SKY에서부터 아이비리그.

'나하고 넌 노는물이 달라. 끼고싶으면 올라와 보던지? 가랑이 찢어져도 나는 모르고.'
라는 뉘앙스가 안 느껴지십니까?

신문과 잡지등의 간행물이 발행되면서부터 본격적인 여론이 형성되었다고 보지만 그것은 2백년정도가 조금 안된지금
벌써 변질되었고, 공짜로 취재하고 찍어내는것이 아닌 이상은 그렇게 될수밖에 없습니다..

기본적으로 기득권자들은 민중들의 머리꼭대기에 올라가 있다고 믿고 실제로도 그정도의 재력이나 기득권을 쥐고있기 때문에, 진실과 거짓을 섞어 내놓으면 누구를 규탄해야하는지, 언론을 믿을수있는지,발표된 지표와 통계치가 정확한지에 대해 고민하다 때를 놓치거나 놀아나거나입니다.

이제 또 한가지의 매체가 등장했습니다. 유비쿼터스라는 한단어로 대표되는 SNS입니다.

이것은 극단적으로 말하면 '병렬집단의식'이라고까지 말할수 있겠지만, 제가 볼땐 이것역시 길어야 수십년, 짧으면 수년안에 여론형성의 진위여부에서 의심해야만 할 단계가 오리라 봅니다.

옛어른들이 양서를 많이 읽고 사색과 토론을 자주 하라고 권하는 말에는 틀림이 없습니다.
자칭 진보들도 많이 심합니다. http://doujinshis.egloos.com/2031905 이 글에 공감할 수 밖에 없더군요.
특히 통진당에서 뭔 일이 일어났는지, 임수경이가, 아니 "임수경 국회의원 나리"가 탈북자에게 뭔 소리를 했는가를 생각하면... 우리나라에는 제2, 제3의 나폴레옹들이 우글우글하며 그들이 결국 번갈아 정권을 잡을 뿐이라고 봅니다.
sns마저도 여론조작 및 선동에 이용될 수 있는 세상이라면... 정말 두려운 세상이 되겠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