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폴레옹의 시대

nasica 2009. 2. 24. 21:17

 

 

 

아무런 빽이 없는 주인공 리처드 샤프 대위는 자신이 맡고 있던 경보병 중대의 지휘권을, 대대장인 로포드 중령의 처남에게 빼앗기고, 다시 대대 보급관으로 좌천되어 버린채 코임브라 시로 철수 준비를 하러 들어옵니다.

 

Sharpe's Escape by Bernard Cornwell  (배경 : 1810년 포르투갈) -----------

 

부상병들을 실은 마차가 지나가자, 샤프는 코임브라 시로 수송되어 왔던 막대한 양의 육군 보급품 더미 앞을 지나갔다.  곡물 자루, 소금에 절인 쇠고기 통, 럼주를 담은 술통, 건빵 상자 등이 화물 보트에서 내려져 부두에 산더미처럼 쌓여있었다. 

 

...중략...

 

"좋아."  로포드 중령의 얼굴이 밝아졌다.  "그리고 ?"

 

"문제는 고기입니다, 중령님."  샤프가 대답했다.

 

로포드는 어리둥절하여 샤프를 쳐다보았다.  "고기라니 ?"

 

"럼주통에는 총을 쏘아 구멍을 내면 됩니다."  샤프는 쾌활하게 말했다.  "그리고 곡물과 밀가루는 그냥 강에 풀어넣으면 되지요.  하지만 고기는... 불에 타지도 않습니다."  그는 돌아서서 거대한 고기통들을 쳐다 보았다.   "제게 병사들을 좀 주시면 테르빈유(송진기름)을 찾아내겠습니다.  고기를 테르빈유에 절여버리면, 제아무리 프랑스 개구리놈들이라고 할지라도 그런 고기를 먹으려하지는 않을 겁니다.  아니면 페인트하고 섞어버릴까요 ?"

 

"그건 자네 문제일세."  로포드는 차갑게 말했다.  "그리고 나는 대대 업무를 보살펴야 하고.  내가 기거할 숙소를 찾아보았나 ?"

 

"모퉁이의 술집입니다, 중령님.  분필로 모두 표시해놓았습니다."  샤프가 대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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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10년 웰링턴 장군은 부사코(Bussaco) 고지에서, 포르투갈을 침공하는 마세나 원수의 프랑스군을 격퇴합니다.  하지만 승리 후에도, 어쩐 일인지 그 고지를 포기하고 그대로 후퇴합니다.  바로 능선 아래에 있던 코임브라(Coimbra)시의 포르투갈 주민들은 승전보에 기뻐하던 것도 잠시, 남쪽으로 철수하라는 영국군의 명령에 크게 낙담합니다.

 

당시 웰링턴은 포르투갈군과 영국군 연합 사령관직을 맡아가지고 있었습니다.  웰링턴의 전략은 상당히 대담하면서도 뻔뻔한 것이었습니다.  즉, 수비에 유리한 고지를 포기하고 프랑스군을 수도인 리스본 바로 코 앞까지 유인해들인다는 것입니다.  이 작전을 위해, 웰링턴은 막대한 군자금을 들여 2중의 요새선, 토레스 베드라스 (Torres Vedras) 라인을 구축해놓습니다.  아마 2차대전 직전의 프랑스 마지노선보다 못하지 않았던 모양입니다.  52마일에 걸쳐, 152개의 요새와 543문의 대포를 설치해놓았습니다.  당시의 대규모 전투 하나에 동원되는 대포의 수가 100여문이었던 것에 비하면 정말 대규모였던 것이지요.

 

그러나 웰링턴이 생각하던 진짜 무기는 이 요새선이 아니었습니다.  바로 초토작전이었습니다.  그러니까, 웰링턴은 프랑스군을 포르투갈 깊숙이 끌여들인 후, 토레스 베드라스 요새선 앞에서 묶어놓고, 쫄쫄 굶기겠다는 속셈이었습니다.

 

이 작전은 2가지 점에서 아주 대담하면서도 뻔뻔스러운 것이었습니다.

 

1. 후퇴작전은 언제나 안팎의 비난과 사기저하를 동반하기 마련입니다. 

 

일단 사령관이 자기 목을 보존하려면 무슨 수를 써서라도 후퇴를 해서는 안되는 것이 보통입니다.  또, 후퇴작전에 참여하는 병사들의 사기가 떨어지는 것이 가장 큰 문제였습니다.  더더군다나, 러시아도 아니고, 이탈리아도 아니고, 정말 코딱지만한 포르투갈에서 이런 후퇴작전을 쓴다는 것은 정말 비상식적인 일이었습니다.

 

2. 이런 초토작전은 민간인들의 희생을 강요하는 것이었습니다.

 

초토작전이란 이론상 아주 간단한 것입니다.  즉, 적군이 점령할 지역에서 먹을 것을 모조리 없애버리는 것입니다.  그렇게해서 적군이 쫄쫄 굶도록 만드는 것이지요.  말로는 간단하지만, 이를 실행으로 옮기는 것은 정말 피눈물 나는 것이었습니다.  멀쩡하게 사람이 사는 지역에는 당연히 많은 식량이 있었고, 이 식량을 없앤다는 것은 그 지역 주민들보고 굶어죽으라는 뜻이었습니다.  그럴 수는 없었으므로, 당연히 초토작전과 함께, 주민 소개령이 내려졌습니다.  그러나, 언제 어느 곳이든, 일반 서민들은 자기 동네에서도 먹고 살기가 빠듯한 편인데, 아무 연고도 없는 동네로 아무 대책없이 이동하라는 것은 정말 죽으라는 것에서 크게 모자라지 않는 명령이었습니다. 

 

실제로, 코임브라 시만 하더라도, 전체 주민들의 절반 정도는 소개 명령에 응하지 않았습니다.  그 결과, 남아있던 코임브라 시 주민 2만명 중 약 1천명 정도는, 프랑스군의 점령 초기의 난잡한 군기 속에 살해됩니다.  실제로, 코임브라 시 뿐만 아니라, 온갖 시골 마을들의 주민들은 대개 소개 명령을 거부했습니다.  그러나 영국군은 주민들이 이동하건 말건 눈에 띄는 농작물과 식량 창고, 심지어 빵을 구울 수 있는 오븐 등을 모두 파괴했습니다.  덕분에 이 해 겨울동안 포르투갈 민간인 약 5만명이 목숨을 잃습니다.  대개는 굶주림과 그에 따른 질병으로 인한 사망이었지요.  5만명이라면 당시 포르투갈 전체 인구의 2%로서 정말 막대한 피해였습니다.

 

(아래 사진은 그때 함께 프랑스군에게 약탈당한 코임브라 대학)

 

 

 

 

이런 작전이 효과는 제대로 발휘했을까요 ?  어느 정도 발휘했습니다.  마세나의 프랑스군은, 그해 9월에는 6만5천명이었는데, 그해 겨울 12월에 결국 스페인으로 철수할 때는 4만명만 살아돌아갔습니다.  이중 전투에 의한 사상자는 겨우 4천명 (영국군은 1천명)이었고, 나머지는 모두 굶어죽거나, 그 합병증으로 병에 걸려 죽거나, 굶주림에 못이겨 탈영을 했던 것이지요.

 

하지만 웰링턴의 작전을 완전한 성공이라고 할 수는 없었습니다.  위에서도 보았지만, 주민들의 협조없이는 원래 초토작전은 성공할 수가 없는 것이지요.  프랑스군은 웰링턴의 원래 계획보다 훨씬 오래 포르투갈에서 머물다가 철수했습니다.  결국 프랑스군은 여기저기서 주민들이 감춰두었던 식량을 긁어모았던 것이지요.

 

초토전술이라... 우리 조상들이 삼국시대때부터 즐겨쓰던 산성에서 버티기도 이런 초토 전술의 일종일 까요? 견벽청야라고도 하던데..
병자호란때 인조가 항복한 게 웰링턴처럼 요새화(남한산성)는 했지만 초토화(식량확보 및 소개)에 실패해서 그렇다던데, 실패와 성공이라는 엄청난 차이가 있긴 하지만 약간 비슷한 예인 것 같군요. ㅎㅎㅎ
초토화 전술은 고대부터 흔히 사용되어진 전술이지만 정말 뒤끝이 좋지않은 전술이란 기록이 많더군요.
적이 굶는 대신, 전후에 농토가 황폐해지고 우물의 사용을 막기위해 매립하거나 독을 푸는 경우도 많았으므로 지역사회가 다시 부활하는데는 2~3년의 시간이 걸렸다고 합니다. 문제는 잉여 농산물이 풍부하지 않던 시대이므로 지역농민의 피해가 이만저만이 아니었다는... ㅠ.ㅠ
그나마 초토화 전술이 차후에 영향을 덜 미치는 곳이 있었는데 바로 초원지대라고 합니다.
러시아는 몽고족 계열의 타타르와 200년간이나 크고 작은 전쟁을 치루었는데, 러시아군이 쳐들어 오면 타타르 인들은 유목민족이었으므로 재빨리 도망간 이후, 듬성듬성 있는 우물들을 메우고 초원에 불을 질러 말이 먹을 풀을 없앴다고 합니다.
이렇게 풀이 적어지면 기병대와 수송부대에 소속된 말들이 점차로 병사가 먹을 곡식을 축내게 되고, 배급량 감소로 굶주린 병사들 사이에는 저항력 약화와 만성 피로로 인한 전염병이 만연해 싸워보기도 전에 부대가 해체되는 경우가 비일비재 했다고 합니다.
이렇게 러시아 친구들이 스스로 붕괴하면, 우리 타타르 친구들은 때를 놓치지 않고 쳐들어와 러시아 친구들을 하늘나라로 보내주었다고. (어디선가 많이 들어본 패턴이죵)
물론 이들 문제에 대응해 러시아군들 역시 말이 먹을 분량까지 포함한 곡물을 수송하려 했지만, 말의 곡물 소모량은 그야말로 장난이 아니어서 한계가 많았습니다. 특히 곡물 수송마차는 쉽사리 공격당할 수 있었고 불에도 잘 타서 타타르 기병대의 보급선 기습공격에 매우 취약했습니다.
타타르 족에 오랫동안 당한 러시아는 나중에 나폴레옹을 상대로 그 동안 당한 뒤풀이를 해, 나폴레옹 군단들은 전투보다는 주로 초토화작전에 따른 굶주림과 이에 따른 전염병의 만연, 탈영 등에 의해 괴멸된 것으로 유명합니다.
러시아가 나폴레옹을 상대로 초토화 작전을 수행한 것은 역시 과거의 경험이 큰 영향을 미쳤을 듯 합니다.
흥미로운 사실은 나폴레옹 후방의 보급선을 교란하는 작전에 가장 큰 활약을 보인 친구들이 바로 타타르 기병대라는 사실입니당. 이 친구들은 정말 병주고 약주는 친구들이네요. ^ ^
참고로 초원에 불이 나면 그 순간에는 풀이 없어지지만, 다음년에는 재가 비료의 역활을 수행하여 보다 풍성한 풀밭을 이루었다고 합니다.
나폴레옹 그 친구도 일년만 버텨보지...ㅋㅋㅋ ^.^

오 댓글도 유익하네요.
러시아가 그렇게 당한 걸 나폴레옹에게 유용하게 써먹었군요. ㅋㅋ
마멜루크들이 일 칸국의 몽골 군대와 싸울 때 청야전술을 사용했지요. 그 덕분에 시리아는 현재의 사막으로...
초토화 전술을 아주 즐겨 썼던 나라가 바로 고구려였습니다. 수나라에서 당나라까지 이어지는 중국 대륙세력과의 전쟁에서 멸망하지 않고 버틸 수 있게 해 줄수 있었던 유일한 방법이었죠. 저도 제대로 공부하기 전까지는 잘 몰랐습니다만...... 고구려 군이 우리 상상처럼 막 무적의 군대라서 우와왕 킹왕짱!!!해서 철기군 돌격!! 이래서 이기는 경우는 없었고 야전에서는 당나라군에게 탈탈 털렸습니다. 그래서 그렇게 엄청난 방어시스템(천리장성)을 구축할 수밖에 없었구요.
어쨌든 청야전술로 이기긴 이겼으니까. 적당히 관계개선을 하면 좋았을 텐데...고구려의 연개소문은 판단미스를 하게 되지요. 아 우리가 존나 세구나. 중국넘들 별거 아니구나.
그 결과는 모두 아시는 대로...

초토화전술이라고 해서 무적의 전술인 것만은 아니지요. 몇 차례의 대규모 침공을 겪은 고구려는 결국 국가적 역량을 크게 소모해버려서 멸망해버리고 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