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폴레옹의 시대

nasica 2009. 3. 8. 23:41

인간은 과거를 통해 배웁니다.  그래서 모든 나라의 중요 교과목에는 반드시 역사가 포함되어 있는 것입니다.  게다가  역사는 되풀이된다고 하지요.  실제로 많은 역사가 되풀이되었고, 이는 특히 주식 시장에서 그렇습니다.  최근에 읽은 책 중에 에드워드 챈슬러라는 영국 기자가 쓴 "금융투기의 역사" (국일증권경제연구소 펴냄)에 이런 이야기가 나옵니다.  "인간이라는 동물은 정말 놀랍다. 어떻게 똑같은 덫에 한번도 빼먹지 않고 걸린단 말인가 !"  지금처럼 금융 위기가 현재 진행 중인 상황에서 정말 와닿는 이야기지요.  나폴레옹을 둘러싼 역사에서도 그렇게 배울 점이 많습니다.  특히, 나폴레옹 전쟁과 제2차 세계대전은 정말 놀랍도록 유사한 점이 많습니다.

 

나폴레옹 전쟁이라고 하면 원래 1803년 아미앵 평화조약이 깨지면서부터 1815년 워털루 전투까지의 12년간의 전쟁을 뜻합니다.  사실 이 전쟁은 프랑스 대혁명을 진압하기 위한 1793년 제1차 동맹 (영국, 오스트리아, 프러시아, 스페인 등 주동)서 시작되었으므로, 나폴레옹의 이탈리아 원정이나 이집트 원정까지 포함하면 거의 20년 동안의 전쟁이었습니다.

 

 

(20년 동안 이 짓거리를 한다고 생각해봐...) 

 

생각해보면 유럽은 항상 전쟁 중이었습니다.  하지만 로마제국 멸망 이후, 유럽 전역, 유럽의 전 국민이 전쟁의 소용돌이에 휘말렸던 적은 없었습니다.  가장 치열하고 '악랄'한 전투와 약탈이 벌어졌던 30년 전쟁도, 주무대인 독일을 초토화시켰을 뿐, 프랑스나 스페인, 이탈리아 등지는 직접적인 전쟁 피해에 휘말리지는 않았습니다.  또, 전국민들에 대해 동원령이 선포되지도 않았습니다.

 

하지만 나폴레옹 전쟁은 그 이전의 전쟁들과는 뭔가 다른 모습을 보여주었습니다. 

 

1. 특정 지역이 아니라, 유럽 전역이 전화에 휘말렸습니다.

- 이는 나폴레옹 특유의 발로 뛰는 야구...아니 전투 때문인데, 기차도 자동차도 없는 시대의 전투치고는 정말 짧은 기간에 정말 넓은 지역, 그러니까 서쪽으로는 스페인부터 동쪽으로는 러시아까지, 북쪽으로는 덴마크부터 남쪽으로는 이탈리아까지 유럽 대륙 전체가 전장이 되었습니다.

 

 

 

(1810년, 나폴레옹 하에서의 유럽 지도) 

 

2. 유럽 뿐만이 아니라, 당시 유럽이 영향력을 가지고 있던 전세계에서 전투가 벌어졌습니다.

- 전쟁은 지중해, 대서양은 물론 카리브해와 인도양, 심지어 태평양에서도 벌어졌습니다.  또한 이집트, 시리아, 이오니아 해의 여러 섬 등 유럽에서 가까운 지역 뿐만 아니라, 인도 대륙과 북미 대륙에서도 프랑스와 영국이 여러가지 형태의 대리전을 벌였습니다.

 

 

 

(왜 이 영화의 부제가 "세계 저 반대쪽 편에서"인지 아시겠습니까 ?) 

 

 

3. 최초로 총력전의 개념이 도입되었습니다.

- 프랑스의 경우, 워낙 압도적인 적군을 상대하려다보니 근대 최초로 국민 개병제의 개념을 도입하여 징집제를 실시했습니다.  이로써, 전쟁은 어느 영주 및 그 식솔들만의 이야기가 아닌, 프랑스 전 국민들과 직접적인 관계를 가지는 사건이 되어 버렸습니다.  영국의 경우, 유럽의 군주국들을 부추겨 프랑스와의 전쟁을 계속하게 하기 위해서는 많은 돈이 필요했고, 그를 위해서는 반드시 해외 식민지가 필요했습니다.  프랑스도 이를 잘 알고 있었으므로 영국의 돈줄, 특히 인도와의 통상로를 위협하기 위해 부단한 노력을 기울였습니다.

이로 인해 바로 위에 들었던 점, 즉 전세계에서 전투가 벌어지게 되었던 것입니다.

 

이렇게 나폴레옹 전쟁과 그 이전 전쟁의 다른 점을 몇개 늘어놓고 보니까, 제2차 세계대전과 상당히 유사하다는 생각이 들지 않으십니까 ?  제2차 세계대전과 나폴레옹 전쟁과의 유사점을 정리해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1. 기득권 세력 vs. 독재 혁명 세력

 

제1차 세계대전은 사실 고만고만한 욕심꾸러기 깡패들의 패싸움이라고 밖에 설명이 안됩니다.  당시 미국이나 영국이 독일이나 오스만 제국에 비해 도덕적으로 더 우월하다고 볼 수 없었지요.  하지만 제2차 세계대전으로 오면, 정말 독일은 악의 제국이고, 그에 맞서 싸운 영국이나 미국은 정의의 화신처럼 그려집니다. 

 

나폴레옹 전쟁 당시도, 이와 비슷한 분위기가 조성되었습니다.  나폴레옹은 오늘날 대표적인 세계 위인 중의 하나로 떠받들어집니다만, 당대에는, 적국은 물론이고 심지어 프랑스인들로부터도 전쟁광에 독재자로 불렸습니다.  생각해보면 당연합니다.  나폴레옹과 이름을 나란히 하는 세계적인 영웅들, 그러니까 알렉산드로스, 케사르, 징기스칸 등도 모두 당대 적국 사람들에게는 철천지 원수였습니다.     

사실 따지고 보면 히틀러는 합법적인 선거로 선출된 정당한 민주 정권이었고, 나폴레옹은 쿠데타로 정권을 잡은 오리지널 군사 독재 정권이었으니까, 족보를 따져보면 나폴레옹이 히틀러보다 더 욕을 먹어야 합니다.

 

 

 

(쿠데타라는 말이 프랑스어라는 거 처음 알았어 ?  이 짓을 한 건 나지만 그 말을 만들어낸 건 영국놈들이야) 

 

 

사실 히틀러나 나폴레옹이나, 당시 정권을 잡을 수 있었던 것은 시대의 요구에 교묘하게 부합했기 때문입니다.  히틀러 당시 독일은 제1차 세계대전 패전 이후 막대한 배상금으로 인한 압박에다, 세계대공황으로 인한 경제 파탄, 공산주의의 위협으로 인해 극심한 혼란 상태였고, 어떻게든 그를 극복할 누군가를 필요로 했습니다.  히틀러는 반유태주의와, '게르만족의 정당한 권리'를 내세워 이를 실제로 극복했지요.  결국은 파국으로 치닫고 말았지만요. 

 

 

 

(무슨 놈의 한자를 저렇게 많이 썼나... 무슨 권리를 요구한다고 ?) 

 

 

어쨌거나 당시 극심한 경제난과 패배주의에 시달리던 독일을 장악한 히틀러의 파시스트 정권은, 다른 유럽 국가들에게 있어서는 자신들의 기득권을 침탈하는 혁명적 과격 정권이었고, 어떻게 해서든 그 세력의 전파를 틀어막아야 할 대상이었습니다.  나폴레옹도 마찬가지였습니다.  혁명 이후 총재 정부의 혼란과 부패, 고질적인 재정 적자와 아시냐 지폐의 파탄 ( 재정 적자, 아시냐 지폐, 그리고 나폴레옹 http://blog.daum.net/nasica/6862340 참조), 그리고 혁명을 꺾으려는 외국 군주들의 군사적 위협, 게다가 프랑스 국내의 왕당파들의 준동으로 인해 프랑스는 당시 절대절명의 위기였습니다.  나폴레옹은 그 군사적 천재성으로 이 모든 위협을 한번에 해결해주었습니다.

 

 

 

(노골적인 경제적 침탈을 목적으로 한 전쟁, 이탈리아 원정 중 리볼리 전투) 

 

 

문제는 히틀러나 나폴레옹이나, 자국의 문제 해결을 위해 타국의 희생을 강요했다는 것이었습니다. 히틀러가 인근 점령지들, 특히 동유럽 국가들을 잔인하게 수탈했다는 것은 유명한 일이지만, 나폴레옹도 못지 않게 대륙의 유럽 국가들을 세금, 징집 및 전쟁 배상금의 명목으로 수탈했습니다.  특히 당시 프로이센, 러시아, 오스트리아에게 분할 점령되어 국가로서는 소멸 상태였던 폴란드의 경우는, 독립 국가로 재탄생시켜주겠다는 나폴레옹의 낚시에 걸려 '몸도 주고 마음도 주었지만' 결국 철저한 배신을 겪어야 했습니다.

 

 

 

하지만 분명히 나폴레옹은 세계 위인전에 이름을 올리고, 히틀러는 세계 악인 명단에 이름을 올립니다. 

히틀러가 욕을 먹는 점을 생각해보면, 유태인 학살, 비밀경찰, 게르만 극우 민족주의 등등 매우 많습니다만, 나폴레옹은 사실 그 정도로 욕을 먹을 짓을 하지는 않았습니다.  나폴레옹도 비밀경찰을 운영했고, 언론 검열을 실시했으며, 노골적인 독재권력을 실시했습니다만, 유태인 학살이나 프랑스 민족 제1주의 등은 자행하지 않았지요.  사실 나폴레옹 휘하에는 그의 비전을 숭상하는 많은 독일인과 이탈리아인, 폴란드인들이 복무했었습니다.  나폴레옹의 전쟁 행위에서 전범 행위에 해당하는 것들은 스페인 게릴라 전쟁에서의 잔혹한 민간인 학살 행위와 투르크 군 포로 학살, 그리고 아이티에서의 흑인 학살 등이 있습니다.  결국 전쟁이 모두 끝난 뒤에 셈을 해보면, 히틀러가 저지른 온갖 악행과 나폴레옹의 악행은 비교가 안되지요. 

 

 

 

(고야의 명작... 마드리드 5월 3일의 처형)

 

하지만 그래도 두 사람은 닮은 점이 꽤 많습니다.  나폴레옹은 얼치기 작가적 소양이 있었고, 히틀러는 삼류 화가적 소양이 있었다는 것은 다들 잘 아실 것입니다.  게다가 두 사람 모두 키가 좀 작았다는 점도 동일하네요.  그리고 두 사람 모두 정권 유지를 위해 많은 대중 선동을 펼쳤습니다.  히틀러의 경우는 잘 아실 것이고, 오늘날 우리가 볼 수 있는 많은 나폴레옹을 주제로 한 예술 작품들은 다 그런 목적으로 만들어진 것들입니다.  가령 나폴레옹이 알프스를 넘을 때 아래처럼 멋진 모습으로 넘었겠습니까 ?  실제로는 나폴레옹은 알프스를 넘을 때, 볼 품은 없어도 안정적이고 지구력이 좋은 노새를 타고 넘었다고 합니다.

 

 

 

(으흥...?)

 

 

 

(으흥 !!) 

 

 

 

2. 대륙 세력 vs. 해양 세력

 

나폴레옹이나 히틀러나 영국에 대해서는 애증이 뒤섞인 감정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나폴레옹과 히틀러 모두 사실상 유럽 전역을 제패하고 자신의 지배를 강요할 수 있었지만, 바다를 제패한 영국에 대해서는 그럴 수가 없었습니다.  독일 공군을 동원하여 영국 도시들을 불태웠던 히틀러가  그나마 분풀이라도 제대로 할 수 있었지요.  결국 나폴레옹 전쟁이나 제2차 세계대전이나, 유럽의 입장에서 보았을 때는 대륙 vs. 해양의 세력 대결이었습니다.  그리고 두번 모두 결국 해양 세력의 승리로 끝이 났습니다. 

 

 

 

 

뜻하는 바는 무엇일까요 ?  제 생각에는 결국 전쟁은 총으로 한다기 보다는 돈으로 하는 것이다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사실이 뜻하는 바가 하나 더 있습니다.  왜 바다를 지배하는 자가 돈을 더 많이 가지게 되는 것일까요 ?  결국 당시 부(富)는 유럽 대륙에서 생산해내는 것이 아니라 해외 식민지로부터 수탈하는 것이기 때문이었습니다.  사실 17~18세기 들어 유럽이 세계를 정복하게 된 것은, 유럽이 경제 문화적으로 더 우월했기 때문이 아니라, 단지 무력이 더 강했기 때문일 뿐입니다.  결국 오늘날 유럽이 빛나는 문명을 이룩한 것은, 인도나 동남아시아에서 수탈한 부(富)가 그 배경이 되었던 것입니다.  그러다보니, 해외 식민지에서 자원을 쪽쪽 빨아들일 빨대, 즉 제해권을 가진 쪽이 결국 장기전에서는 승리할 수 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3. 뜬금없이 북아프리카는 왜 ?

 

나폴레옹 전쟁과 제2차 세계대전은 정말 특이한 공통점을 가집니다.  바로 북아프리카 작전입니다.  두 전쟁 모두 유럽 국가끼리의 전쟁이었는데 정말 어이없게도 북아프리카 지역이 전화에 휘말렸던 것입니다.  왜 두 전쟁 모두 북아프리카를 그 시나리오에 포함시키게 되었을까요 ?  위에서 말한 점, 즉 대륙 vs. 해양의 대결이라는 점과 상관 있습니다.

 

먼저 제2차 세계대전의 경우를 보지요.  독일이 리비아와 이집트에서 작전을 펼쳤던 것은 우연과 필연이 합쳐진 것이었습니다.  이탈리아의 낭만주의 독재자인 무솔리니가, 고대 로마 제국의 영광을 재현하겠다는 망상으로, 별 이유도 없이 영국령 이집트를 침공했다가 오히려 역공을 당해서 본전도 못찾았던 것이 독일을 끌어들이게 된 직접적인 이유였습니다.   하지만 근본적인 이유는, 역시 약간 망상이긴 했습니다만, 히틀러의 나름대로 원대한 전략 때문이었습니다.  즉, 한정된 자원 밖에 없던 유럽 대륙을 제패해봐야, 결국 영국의 물량전에 휘말릴 수 밖에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던 히틀러는, 이집트와 시리아를 거쳐 신생 터키 공화국을 압박하여 추축국 동맹에 끌어들이고, 더 나아가 남쪽으로부터 북진하여 아제르바이잔 바쿠의 유전지대를 점령한다는 꿈을 꾸게 되었던 것입니다.

 

나폴레옹의 이집트 원정은 왜 시작되었을까요 ?  이것도 놀랄 만큼 히틀러의 망상과 비슷한 점이 있습니다. 표면적 대의명분은 오스만 투르크의 압제로부터 이집트 민중을 해방시킨다든지, 문명의 발상지 이집트로 문명을 되돌려준다든지 하는 터무니없는 것들이었습니다.  이는 나폴레옹 개인의 야욕과 프랑스 총재 정부의 무모함이 합쳐진 결과이기는 했습니다만, 대신 당시 프랑스인들의 낭만주의와 창의성을 보여주는 대목이기도 합니다.  역시 독일보다는 프랑스인들이 문화적으로는 더...  ( 나폴레옹이 이집트에 가져간 두가지, 대포와 OOO ? http://blog.daum.net/nasica/6862354 참조)

 

 

 

(근데 우린 여기 왜 온거야 ? 좀 뜬금 없쟎냐 ?)

 

 

나폴레옹이 이집트를 침공한 현실적인 (사실 그다지 현실적이지 못합니다만) 이유는 히틀러와 비슷했습니다.  즉, 영국의 돈줄이었던 인도로 가는 길을 닦겠다는, 오히려 히틀러보다도 더 황당하고, 문명의 발상지 이집트에 문명을 되돌려준다는 표면적 대의명분보다도 더 어이없는 계획이었지요.  사실 나폴레옹은 소년 시절 읽었던 알렉산드로스 대왕처럼, 이집트와 시리아를 거쳐 메소포타미아를 관통하고 페르시아를 정복한 뒤, 인도까지 도달하여 불멸의 영광을 이루고 싶었다고 합니다.  나폴레옹같은 대인물이 그런 황당한 계획을 세웠을 것 같지 않지만, 사실 나폴레옹은 젊은 시절부터 상당히 오버질을 많이 하는 경향이 있었기 때문에, 정말 그랬을 가능성이 아주 많습니다.

 

하지만 히틀러나 나폴레옹이나, 결국 영국의 육해군에 의해 그 꿈이 철저히 깨지게 됩니다.  히틀러는 이집트의 엘 알라메인에서, 나폴레옹은 시리아의 생 장 다르크(아크레)에서 영국군에 의해 저지되었습니다.  히틀러나 나폴레옹 모두 제대로 힘을 쓸 수 없었던 이유가 바로 영국의 로열 네이비였다는 것은 굳이 말씀드리지 않아도 다 아실 것입니다.

 

 

 

(롬멜이고 뭐고, 독일군 제리놈들 이번에 다 망했어요 ㅋㅋㅋ) 

 

 

 

 (저 생 장 다르크 요새 속에는 영국군 뿐만 아니라 내 사관학교 시절 원수 펠리포도 있단 말이다 !!!)

 

4. 러시아, 러시아, 러시아

 

히틀러를 패배시킨 것은 아이젠하워의 노르망디 상륙 작전이었을까요, 피로 떡칠을 한 소련과의 동부 전선이었을까요 ?  나폴레옹을 결국 무너뜨린 것은 웰링턴 공작의 스페인 반도 전쟁이었을까요, 추위와 굶주림의 악몽으로 가득찬 모스크바 원정이었을까요 ?

정답은 이미 다 아실 것입니다.  영미 위주의 역사 교육과 영화, TV 드라마 속에서 성장한 우리들은 어릴 때는 모두 전자라고 생각했지만, 결국 정답은 두 경우 모두 후자라는 것을 이제는 아실 것입니다.

 

히틀러나 나폴레옹이나 왜 러시아에게 패배할 수 밖에 없었는가는 그냥 간단히 설명이 가능할 것 같습니다.  영어에 딱 잘 어울리는 숙어가 있지요. 'Bite more than you can chew' (씹을 수 있는 것보다 더 크게 베어물다) 입니다.

 

 

 

(와... 러시아가 넓기는 넓다) 

 

 

사실 가장 이해하기가 어려운 부분은, 왜 히틀러나 나폴레옹이나, 씹기에는 너무 컸던 러시아에 쳐들어갔느냐 하는 것입니다.  둘 다 여러가지 이유가 있었습니다.  히틀러의 경우, 정권의 태생적 속성상, 어차피 파시스트 정권과 공산주의 정권 사이에 평화란 있을 수 없는 것으므로, 좀더 유리한 상황에서 전쟁을 시작하는 것이 더 나았을 것입니다.  나폴레옹의 경우는 좀더 현실적이고 직접적인 이유가 있었습니다.  영국의 목을 조르기 위해 내린 대륙 봉쇄령을 러시아가 어기고 있어서, 동부 유럽으로부터 영국산 상품이 쏟아져 들어오고 있었으므로, 그대로 갔다가는 어차피 영국과의 경제 전쟁에서 말라죽을 것이 뻔했기 때문입니다.  흔히 나폴레옹은 그 주체할 수 없는 전쟁에 대한 갈증 때문에, 러시아로 쳐들어갔다고들 합니다.  (심지어 당시 나폴레옹을 직접 수행했던 수하 장성들도 감히 나폴레옹 면전에서 그렇게 투덜거렸습니다.)  하지만 나폴레옹도 나름대로 평화주의자였습니다.  다만 장기판에서의 상황을 한 수 더 내다볼 줄 알았기에, 러시아를 침공할 수 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어떤 역사가들은 나폴레옹이 치른 대부분의 전투는 방어적 성격이었을 뿐, 한번도 순수한 침략의 목적으로 일으킨 전쟁은 없었다고까지 분석하더군요.  (Franseschi 장군과 Weider라는 역사가가 쓴 "The Wars Against Napoleon"이라는 책에서 그렇게 주장합니다.  사놓기만 하고, 아직 못읽었습니다.  나중에 읽는 대로 정리해서 올리지요.)  

 

나폴레옹도 히틀러도, 여름철 러시아의 진흙탕 바다와, 겨울철 러시아의 눈보라에 혼쭐이 난 이야기를 하면 사족이겠으므로 여기서 생략하시지요.  다만, 히틀러가 러시아에 쳐들어간 이유 중 하나가, '나폴레옹도 성공하지 못한 일을 내가 해내겠다'라는 개인적인 허영심도 있지 않았을까 하는 의문이 들기는 합니다. 

 

 

 

(아 망했어요 망했어) 

 

 

이렇게 비교를 해보면, 정말 닮은 점이 많지요 ?  적어도 히틀러는 나폴레옹 전기를 읽었을 테니까, 나폴레옹의 패망 이유도 잘 알고 있었을텐데, 그와 비슷한 길을 걷다가 비참한 최후를 맞은 것이 의아하기도 합니다.  알면서도 당한다라는 말이 이럴 때 쓰이는 것일까요 ? 

역사를 공부하는 이유는 과거의 교훈을 통해 현재의 잘못된 점을 고치고, 미래로 나아가는 올바른 길을 찾기 위함이라고 합죠. 쉽게 이야기해 시행착오를 줄이자는 것이죠.
나폴레옹이야 어쩔 수 없었다고 해도 히틀러의 경우, 나폴레옹이라는 사례가 있었습니다.
(* 사실 나폴레옹도 나름대로 보급문제를 걱정해 이때 최초로 통조림이 개발되었다고 하죠.)
실제 히틀러와 독일군 장교들은 나름대로 나폴레옹 사례의 반복을 피하고자 많은 공부를 했고, 무엇보다 보급상의 문제점을 해결하고자 어느정도 노력을 기울였다고 합니다.
그때 얻어진 잘못된 답은 히틀러와 독일군부 모두 새로운 문명의 이기인 철도와 자동차, 비행기를 통한 보급능력을 상당히 과신하고 있었다는 점입니다.
그러나 문제많은 동맹국(?)인 이탈리아의 사고 짓으로 인해 무척이나 부족했던 보급트럭의 약 절반이 북아프리카로 보내져야만 했고, 러시아와 독일의 철도 궤도폭이 서로 달라 곧바로 보급에 사용할 수 없었다는 점이 큰 악영향을 미칩니다.
또한, 근래 역사 전문가 중 일부는 처음부터 보급문제를 고려한다면 독일군은 패배할 수밖에는 없었던 전쟁을 시작한 것이라고 결론내리는 이도 많습니다.
그나마 나폴레옹과 히틀러하고의 차이는, 나폴레옹은 단 한 번의 겨울만으로 가진 것을 모두 잃었지만, 문명의 이기인 철도와 자동차라는 신기술에 의존한 히틀러의 경우에는 나름대로 3년 동안 방어전투를 지속하면서 자신의 몰락을 늦출 수 있었습니다.
이외에도 나폴레옹을 패배시킨 것은 자연지형과 기후였지만, 현대의 히틀러를 몰락시킨 것은 러시아의 자연지형과 함께, 러시아인들의 피와 미국의 막대한 물량이라는 기술적 요소에서 일부 차이를 보이고 있습니다. (러시아는 대독전쟁으로 군인만 2,000만을 잃었다고 합니다. ㅠ.ㅠ)
하지만 무엇보다 나폴레옹과 히틀러 모두 상대를 우습게 보고, 자신의 능력을 높게 본 과대망상증을 일부 가지고 있었고, 이것 때문에 망했다는 점에서는 완전히 동일한 것 같습니다. ^^
누가 그랬는지 기억이 가물가물하지만, '사람이 원래 바보라는 점을 이해하지 못하고 역사공부를 시작하면 곧바로 모순점에 도달한다' 라는 이야기가 기억납니다.
nasica님 사람은 원래 바보랍니다. ^.^




당시 러시아군은 갖고 있던 거의 모든 기관차를 소개하고, 후송이 불가능한 경우엔 철저하게 파괴해 버렸기 때문에... 독일은 러시아에서 보급에 쓸 기관차를 거의 구할 구가 없었습니다.

그 때 러시아군의 인해전술은, 2차 세계대전사에 길이길이 남는 일본의 반자이(만세) 공격과 맞먹는 엽기 수준이었는데... 에너미 엣 더 게이트 보면 한 예가 잘 나오죠.

영화보면 2인 1조로 한 명은 총, 다른 한 명은 탄창 들고 "우라~(만세에~)" 하고 소리치며 잘 짜여진 화망속에 미친 돌격을 강요하는 수준이었으니.. 당연 사망자 양산은 필연입니다. 하긴 일본 군부도 그 정신나간 짓을 병사들에게 강요해 소련 혼자 삽질하진 않은 셈이라 외롭진 않겠군요,

당시 일본군을 상대한 미군들의 증언에 따르면, 화망 다 갖추고 중화기들 왕창 배치해 놨는데, 거기다 전술도 없이 텐노헤이카 반자이이~ (천황폐하 만세에~) 하고 외치며, 생각없이 달려오는 일본군의 바보짓에 황당 그 자체였다고 합니다.
나중에 이 댓글을 읽을 분들을 위해 쓸게요.
일단 소련군의 우라 돌격은 스탈린이 군부에 영향력을 행사 하 - 고 노쇠화한 장성을 교체하 - 기 위해 벌였던 대숙청으로 인해 엄청난 숫자의 장교들이 쓸려나가고 그 자리를 아직 덜 여문 사과 같은 초보 장교들이 대체함으로써 그 씨앗이 만들어졌고, 또 독소전 초기 연이은 패배로 인해 낮아질대로 낮아진 사기를 어떻게든 끌어올리겠다고 군 내에 정치위원(NKVD)을 둠으로써 완성되었답니다.

이들 정치위원은 그 유명한 흙색 장교복을 입고 파파샤 (따발총이라고 하죠?) 를 들고 후퇴하는 병사들을 쓸어버렸다고 하는데, 정말 그랬는지는 잘 모르겠고, 하여튼 그런 자들의 존재로 인해 소련군 병사들로서는 말 그대로 돌격하다 죽든 도망치다 죽든 비슷한 결과였다고 하네요. 이것 때문에 소련군이 천만 단위의 희생자를 냈는데, 결국 전쟁에선 이겼지만 그 희생은 여전히 러시아에 큰 상처로 남았다고 해요. 주로 인구에 말이죠.

자세한 통계자료를 못 봤지만, 향간에 떠도는 소문으로는 러시아의 성비는 거의 1:1에 가깝다고 하네요. 자연적으로는 남아가 조금 더 많이 태어나게 되어있는데도 말이죠. 남자가 (소련군은 '평등'에 기반한 공산주의 군대여서 여군도 많았습니다만) 엄청나게 죽는 바람에 말예요.
북아프리카,러시아,영국.....이렇게 보니깐 2차대전과 나폴레옹전쟁은 미국이라는 요소를 빼면 다를것도 없네?
결국 영국이라는 재벌에게 농락당한 프랑스또는 독일이란 중소기업이 그나마 만만해 보이는 러시아라는 또다른 중소기업을 먹으려다 그의 저항에 부딪히고 재벌의 뒷치기에 당한 거군요...
합법적인 민주정권의 폭주.. 그 결과는 결국 선출한 국민이 책임져야하지요 왠지 씁슬합니다.
어렸을때 보던 유사과학(오컬트/심령과학) 기사에서 나폴레옹-히틀러가 벌인 주요 사건들이 꼭 130년인가(??) 몇년인가 차이난다고 주장한것이 있더군요. 그래서 더 재미나게 본 포스팅이었습니다.

(여담으로 링컨과 케네디가 100년이라는 시간차이로 대응된다는 주장도 함께 있었죠..)
산마르코와 베네치아를 돌려줘;ㅅ;!! 더러운 보나파르트;ㅅ;!!! 으흑흑
베네치아도 지들이 침 좀 뱉고 다닐때는 깡패짓에 노략질에 오만 삽질을 다해서 그닥 동정은 안간다능.....

베니스!! 나의 비잔틴을 돌려줘... 응?
설마 즈질 갤러리에서 활동하는 다스XXX님이랑 동일인물은 아니겠지요?!

비잔티움 제국(이게 맞는 표기법이라고 함)도 그에 만만치 않게.. 나의 반달왕국을 돌려........?!
나폴레옹이나 히틀러 둘 다 변변치 못했던 출신 성분이나 컴플렉스를 발판으로 딛고 권력을 쟁취했던 입지전적인 인물들이라는 공통점도 있죠. 개인으로서의 입장에서는 그 컴플렉스가 결국은 독재정치에 대한 열망을 불태우게 된 원인이었다고 보기도 하죠.
생각하고 보니... 이건 최근에 어떤 분 하고도 연관되네요.;;

참, 지난 번 꼭 해군 장교로 합격해서 국가의 간성이 되라고 남겨 주셨던 격려의 글 감사합니다. ^^
이번 16일에 진해로 입대하게 되었습니다. 눈팅으로나마 나시카님께서 포스팅하신 글을 즐겨 읽어 왔었는데, 이제 잠시나마 안녕이네요. ㅎㅎ
모쪼록 건필하시고, 계속 좋은 글 많이 남겨주시길 바랍니다.
조선일보 히총통의 사자후 중 "蹂躪된 권리를 요구"
유린 입니다.
좋은자료 스크랩 해갑니다 ^^;;
나폴레옹같은 경우 이미 러시아와는 1810년 이후로 사이가 급격히 안좋았습니다. 그 이유는 나폴레옹황제가 러시아의 해묵은적인 오스만투크르제국과의 은근한 외교질로 러시아의 심기를 불편하게 한것과 바르샤바 공국의 강화도 그 몫을 톡톡히 했지요. 거기다가 혹자는 뒷구멍으로 얘기중이던 알렉산드르1세의 여동생과 나폴레옹의 결혼을 나폴레옹이 오스트리아의 황녀 마리 루이즈와 결혼함으로서 거절해서 차르가 매우 모욕적으로 받아들였다는겁니다. 나폴레옹처럼 군사적으로 그리고 외굑적으로 수완이 대단한 사람이 일부러 이렇게 러시아를 도발했다고는 생각되지 않습니다.(만약 일부러 그랬다면 러시아를 자신의 따까리로 생각하고 있던 거겠죠;;;;;;)나폴레옹이 자주하던말인 "공격받는건 항상 나" 인것처럼 나폴레옹의 이런 유럽전역으로의 원정은 '자위전 선제공격' 면이 강한 전쟁입니다.
독소전도 그것을 시작한 독일(히틀러 뿐만아나리 독일 육군 상층부)쪽에서는 자위적 예방전 성격이 갔했습니다. 영국을 이기는 것이 불가능한 독일 입장에서는 소련을 대륙 후방에 살려두고 영국(그리고 긍국적으로) 미국과의 전쟁에서 이기는 것이 불가능하다고 생가했다는 것이죠. 이는 1차대전이 양면전으로 흘러가면서 결국엔 패배로 이어졌던 기억이 그들에게 많은 부담을 주었기 때문입니다
결국 히틀러도 나폴레옹도 영국(해양세력)을 제압하지 못했기때문에 그나마 쉬워 보이는 상대(그들 입장에서)를 골랐다는 공통점이 있는 것이죠
좋은글 감사합니다 ^^
히틀러, 나폴레옹, 마부스. 이 세사람이 노스트라다무스가 예언한 적그리스도(?)라고 하네요. 이들 세명이 나쁜 사람이라는 데요. 히틀러랑 나폴레옹은 이미 예언이 현실화 된 경우이지만, 마부스는 아직이라고 합니다. 어떤 사람들은 사담 후세인 (sadam 후세인) 사담을 거꾸로 하면 마부스라고 서프라이즈에서 보긴 했습니다. 만약 마부스가 아직 존재한다면 누굴까요ㅠㅠ? 히틀러나 나폴레옹의 공통점을 찾아서 추적하면 마부스를 찾을 수 있을까요,,?
제가알기론 히틀러는 상당한거구에키가큰걸로알고있는데 틀린가요?? 키가작진않았을꺼에요
5개월전 리플에 답글을 다는 것이 좀 웃기는 거 같지만 혹시나 하는 마음에 달아봅니다. 히틀러의 정확한 키는 모릅니다. 이유는 자살로 추정되어지는 히틀러는 1945년 4월 자신의 의학파일을 전부 파기하라는 명령을 내려거든요. 따라서 그의 키는 대부분 그의 측근이나 같이 촬영된 사진물에서 추정으로 파악할 수 뿐이 없습니다. 오치아이 노부히코의 '히틀러와 UFO'라는 책에는 그의 측근들의 증언이 나오는데 그는 '총통의 키는 170cm'라는 증언을 합니다. 이 증언은 히틀러의 전속 파일럿의 증언입니다. 다른 증거로는 무소리니와 함께 찍은 사진입니다. 무소리니의 시체는 남아있었으므로 그에 의거하여 대략적인 그의 키를 추정할 수 있었는데 그 때문에 노부히코는 히틀러의 생존설을 주장하는 책을 내었는데 언급한 책이 그것입니다.
음모설이 맞던 틀리던 히틀러의 키는 대략 170~173cm였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거 같습니다.

- Credens Justitiam
나폴레옹의 러시아 원정이 불가피했음은 잘 설명이 되었는데요.

나치독일의 무모한 소련 공격은 히틀러를 비롯한 나치 수뇌부 일부가 '민족 생존권'이라는 망상적인 비전에 집착했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히틀러는 '열등한' 슬라브족을 '쓸어버리고' '게르만 민족의 생존권역'을 확보한다는, 우리로 치면 고구려 땅을 되찾아야 한다는 것과 같은 망상적인 꿈을 갖고 있었고, 그게 바바로사작전의 가장 근본적인 이유라고까지 하더군요.
흔히 파시즘와 공산주의는 태생적으로 공존할 수 없다고들 합니다만, 따지고 보면 나치나 공산당이나 다 같은 반자본주의 세력으로 제1의 적을 앞에 두고 타협하지 못할 이유는 없습니다. 실제로 영국을 굴복시키지 못한 상태에서의 양면 전쟁이 무모하다는 사실은 독일 지도부 대부분이 인지하고 있었습니다. 심지어 광기의 화신 괴벨스조차도! 하지만 그 전까지 눈부신 성공을 거둔 히총통에 대한 종교적 맹신이 만연하여 아무도 '총통 각하의 결단'을 감히 제지하려 들지 못했던 것이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