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폴레옹의 시대

nasica 2009. 3. 27. 01:06

테크노-스릴러라는 현대판 무협 소설 장르를 창조한 미국 작가 톰 클랜시의 작품 중에, 중국과 러시아의 충돌을 그린 '베어 & 드래곤'이라는 소설이 있습니다.  저 개인적으로는 매우 졸작이라고 생각하는 작품입니다만, 이 소설 중에 군인의 봉급 이야기가 나옵니다.  즉, 러시아군 장군 하나가 몰락한 러시아군의 현실을 개탄하면서, 최소한 하사관의 봉급이 공장 근로자가 받는 봉급 정도는 되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장면이 바로 그것입니다.  

 

이건 변하지 않는 군인 봉급의 척도를 나타내는 부분입니다.  우연인지 필연인지는 몰라도 (아마 필연에 가깝다고 생각됩니다만) 고대 그리스 시대에도, 군인의 봉급은 그와 비슷했기 때문입니다.  당시 수공업자 숙련공의 하루 일당이 1 드라크마 정도였는데, 각종 병종들 중에 가장 가난한 사람들이 하는 병종이었던 삼단노선 노잡이의 일당이 대략 1/2~1/3 드라크마 (2~3 오볼) 정도였습니다.  중장보병의 경우 그보다는 많이 받았을 것이고, 당시 그리스의 수공업자 숙련공의 봉급이 아무래도 요즘 공장 근로자보다야 높았을 테니까, 대략 중장보병 일당 = 오늘날 공장 근로자 일당과 비슷하다고 보는 것이지요. 

 

 

 

(일당 2오볼 짜리 월급쟁이들의 모습...)

 

 

확실한 것은 장교가 아닌 일반 병사들의 봉급은, 동서 고금을 막론하고 낮다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요즘 우리나라 병사들처럼 낮은 경우는 정말 이례적인 것으로 보입니다.  병장의 경우 요즘은 9만원 좀 넘던데요.  제가 군 생활 할 때는 1만 몇천원이었는데, 그때에 비하면 정말 많이 올랐지만 그래도 여전히 과자값 정도라고 할 수 있겠네요.  장교들의 경우는 아무래도 직업이니까, 훨씬 더 많은 것은 당연합니다.  표를 보니 대위 정도되면 140~220만원 사이던데, 실제로는 이런저런 수당을 많이 붙여주므로 그보다는 많이 받는다고 들었습니다.

 

과연 나폴레옹 시대에, 장교들이나 병사들의 봉급은 어느 정도였을까요 ?  또, 영국군은 모병제의 직업군인들로 이루어졌었고, 프랑스군은 징집병들로 이루어졌었는데, 봉급에 차이가 있었을까요 ?  또 세금은 얼마나 냈을까요 ?

 

 

 

(자, 다들 연봉들 까보자구 !) 

 

 

먼저, 영국군 사병의 하루 일당은 아주 쉽게, 1실링(shilling)이었습니다.  그에 비해 프랑스군 사병의 하루 일당은... 당연히 영국돈 실링이 아닌, 프랑스 돈 수(sou)로 받았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일단 양국의 화폐 단위의 차이부터 아셔야 비교가 됩니다.

 

영국의 화폐 단위는 파운드(pound)입니다.  파운드라는 것은 무게 단위인데, 이것이 왜 돈의 단위가 되었을까요 ?  예, 짐작하시는 바와 같습니다.  바로 은 1파운드의 가격이 바로 영국 돈 1파운드의 가치였습니다.  원래 고대 그리스 시절부터, 화폐의 기본 단위는 은화였거든요.  금이 화폐의 기준 가치로 받아들여지기 시작한 것은 훨씬 후대, 거의 17세기 이후의 일입니다.

 

 

 

(이 표시 몰라요 ?  응 ?) 

 

 

그런데 영국 파운드화의 표시는 £ (L)입니다.  왜 L일까요 ?  이는 원래 영국과 프랑스의 관계가 얼마나 깊은가를 보여주는 하나의 예입니다.  이 L은 바로 프랑스어의 livre를 뜻합니다.  Livre라는 말은 프랑스어로 책을 뜻하기도 하지만, 역시 무게의 단위로 영국 파운드와 같은 뜻을 가집니다.  또한, 프랑스의 화폐 단위이기도 했습니다.  역시 은 1파운드의 가치를 가집니다.  사실 프랑스 대혁명 이전까지만 해도, 영국과 화폐 단위는 매우 유사했습니다.  영국에서는 1파운드 = 20실링(shillings), 1실링 = 12펜스(pence)였고, 프랑스에서도 1리브르 = 20수(sous), 1수 = 12 데니에르(deniers) 였으니까요.

 

그렇다면 영국군 병사의 일당이 1실링이라고 했으니, 프랑스군 병사의 일당도 1수겠군요 ?  글쎄요, 그렇지가 않았습니다.  1794년 혁명 정부에 의해 개정된 프랑스 군인들의 봉급표를 보면, 일반 사병의 하루 일당은 약 10~13수였습니다.  와 ~ !  영국군에 비해 10배가 넘는군요 !  장교들의 연봉은 더 큰 차이를 냈습니다.  영국군 보병 대위가 받는 일당은 10실링 6펜스였는데, 프랑스군 대위의 일당은 9 리브르였습니다.  약 17배 정도의 차이지요.  왜 직업 군인도 아닌 징집군인 프랑스 군대의 봉급이 영국보다 훨씬 많았을까요 ?

 

 

 

(대위님, 왜 프랑스군 월급이 우리의 10배지요 ? 설명해보시지요...)

 

 

짐작하시다시피, 그건 환율과 상관이 있습니다.  영국이나 프랑스나, 1파운드(453g)의 은을 1파운드/1리브르로 정했던 것은 정말 까마득한 옛날이었습니다.  세월이 흐름에 따라, 자연스럽게 통화 가치는 점점 인플레의 영향을 받았습니다.  특히 영국은 활발한 식민지 무역을 통해 많은 금을 긁어모으면서 금 본위제로 흐르게 되었지요.  이미 16세기 들어, 영국에서 1파운드 무게의 은은 60실링, 즉 영국돈 3파운드의 가치를 가지는 것으로 가치가 상승했습니다.  나중에 1816년에 영국이 정식으로 금본위제를 채택할 때는 1파운드의 은은 영국돈 3.3파운드의 가치를 가지는 것으로 정해졌습니다.

 

 

 

 

(1811년 주조된 40프랑 짜리 나폴레옹 금화.  전체 무게 12.904g, 금 무게 11.614g) 

 

 

이에 비해, 1795년 프랑스 혁명 정부가 프랑(franc)화를 제정할 때, 1프랑의 가치는 4.5g의 은으로 정했습니다.  당시 1리브르는 4.505g의 은이었고요.  그러니까 1816년 가치로 따져보면, 영국돈 1파운드는 은 137.27g에 해당하니까, 영국 1파운드의 가치는 프랑스 1리브르의 약 30배가 약간 넘는 가치를 가집니다.  하지만 이건 약간 불공평합니다.  전쟁이 승전으로 끝난 1816년 당시의 영국 사정과, 이제 막 혁명의 혼란 속에서 화폐 가치가 바닥을 치던 프랑스의 상황을 비교하는 것은 약간 무리가 있겠지요.  (당시의 악명 높은 프랑스 아시냐 지폐에 대해서는 재정 적자, 아시냐 지폐, 그리고 나폴레옹 http://blog.daum.net/nasica/6862340 참조)

실제로 당시의 환율표를 보면, 1 수는 약 0.5 펜스에 해당했습니다.  그러니까 영국돈 1파운드는 프랑스 리브르의 24배 정도의 가치를 가집니다.

 

이렇게 따지고 보니, 위에서 언급된 영불 양군 병사나 장교들의 연봉을 다시 생각하게 됩니다.  저렇게 은의 가치로만 따지자면, 영국군 사병이 오히려 프랑스군 사병보다 약 2배의 일당을 받는 것이 됩니다.  또 장교들은 영국군 장교가 프랑스군 장교보다 약 1.4배 정도 더 많은 일당을 받았던 것입니다. 

 

 

 

(이봐, 환율 때문에 실제로는 영국놈들이 우리보다 오히려 2배나 더 고액 연봉이라더군 ! - 뭥미 !!)

 

이렇게 영불 양군의 일당이 크게 차이가 난 것은, 어떻게 생각하면 당연합니다.  프랑스군은 징집제였던 것에 비해, 영국군은 모병제였으니까요.  게다가 영국군 장교들은 그 계급을 돈주고 산 것이쟎습니까 ?   (영국 장교들의 매관매직 제도에 대해서는 나폴레옹 전쟁 - 왜 영국군이 이겼을까 ?  http://blog.daum.net/nasica/6862323 를 참조) 

 

자, 이렇게 설명이 되어도, 아직 저때 당시 병사들 또는 장교들의 연봉이 얼마 정도였는지 짐작이 안가시지요 ?  21세기를 사는 우리들로서는, 저때 당시 물가에 대해 전혀 감이 없기 때문에 당연합니다.  사실 2백년 전은 고사하고, 20년 전의 100원의 가치가 어느 정도였는지도 가늠하기 어렵지요.

 

특히 브레턴우즈 체제가 무너지면서 돈의 가치는 정말 엉망진창이 되어버렸지만, 금의 가치는 별로 변하지 않는다고 하지요 ?  사실 '다이아몬드는 영원하다'라는 말은 과학적으로 옳지 않습니다. (모 다이아몬드 회사의 로비로 그런 007 영화 제목이 만들어졌다고 들었습니다만...)  다이아몬드는 그냥 탄소 결정체이니까요.  지금 이 순간에도 매우 조금씩이나마 다이아몬드는 약간씩 탄소로 변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억만년이 지나면... 그렇지만 억만년이 지나도 정말 금은 영원합니다.  자, 금의 가치로 볼 때 당시 병사들의 연봉이 어느 정도였는지 보시지요.

 

 

 

 

 

(여러분 지갑 속에 든 종이는 진짜 돈이 아닙니다.   돈이란 바로 이거죠.  금 !!!)

 

 

요즘의 금융위기로 인해 금값이 워낙 변동이 심하긴 하지만, 2009년 3월 현재 금 1g의 기준 가격은 약 4만2천원입니다.  나폴레옹 전쟁 당시 영국의 표준 금화였던 1기니(guinea) 금화의 가치는 21실링이었는데, 그 금화를 이루는 금의 무게는 8.39g이었습니다.  하지만 실제로는 당시 전쟁 통에 금값이 많이 올라서, 1기니 금화는 실제 가치보다 더 많은, 27실링에 거래가 되었습니다.  물론 병사들이나 장교들이나 봉급을 금화로 받지 못하고 지폐로 받았습니다. 그러니까 당시 금 1g에 3.218 실링이었던 셈입니다.

 

 

 

(1792년 조지 3세의 기니 금화... 지금의 가치는 무려 250파운드나 나갑니다.) 

 

그러니까 당시 영국군 병사들은 하루 0.31g의 금을 받고 싸웠던 셈입니다.  이는 요즘 가치로 13,051원 정도입니다.  대략 월급 39만원 정도인데요 ?   영국군 대위의 경우 약 4.195g의 금을 일당으로 받았고, 이는 현재 원화 가치로 대략 월급 411만원 정도에 해당합니다.  와, 이 글을 혹시 읽고 계신 현역 육군 대위님들의 함성 소리가 들리는 듯 합니다.  "국내 도입이 시급합니다 !"   하지만 잊지 마십시요.  그 영국군 대위들은 그 계급 돈 주고 산 겁니다. ㅋ   당시 대위 계급의 가격은 대략 1800 파운드였는데, 이를 금으로 환산하면 약 11.18kg이고, 이를 원화로 환산하면 대략 4억7천만원입니다.  대한민국 대위 여러분, 여러분은 4억7천만원을 국가에 헌납하고 군 생활하고 싶으십니까 ?  투자금 뽑는데만도 10년 정도 걸립니다 !!!

 

 

 

(간지좔좔 나폴레옹 근위대, 월급은 얼마일까 ?)

 

 

반면에 프랑스군의 일반 사병은 약 25만원 정도, 대위는 약 377만원 정도의 월급을 받았습니다.  흠... 요즘 우리나라 대위들의 봉급을 평균잡아 180만원이라고 하면, 당시 프랑스 대위가 2배 정도 더 많이 받는군요.  게다가 우연인지 필연인지, 당시 프랑스군 사병의 봉급과 대위의 봉급 비율은 약 15배 차이인데, 우리나라 병장의 봉급을 9만7천원이라고 하고 대위들의 봉급 180만원과 비교하면 역시 비슷하게 18배 정도의 차이가 됩니다.  반면에 모병제였던 영국의 경우, 그 비율은 더 작아져서 약 10.5배 정도지요.

 

혹시 돈을 더 받고 싶으십니까 ?  그러자면 일선 보병부대보다는, 기병대에 입대하시는 것이 좋습니다.  장교나 사병이나, 그런 쪽이 약간 더 많은 봉급을 받았습니다.  또 기병대보다는 포병이 더 높은 보수를 받았습니다.  뭐 큰 차이는 아니고요.

 

 

 

(고액 연봉자들의 충돌 - 니들이 왜 우리보다 더 많이 받아 ?  - 꼬우면 너도 포병 해 !) 

 

아무튼 이렇게 번 돈을 장교들이나 병사들이나 다 고스란히 자기 주머니에 집어넣을 수 있었을까요 ?  물론 아니지요.  요즘 월급장이 못지 않게 이것저것 공제되는 것이 많았습니다.  최소한 영국군은 그랬습니다.  (프랑스군도 이렇게 각종 공제가 많았는지 여부는 아직 잘 모르겠습니다.)

 

먼저, 급식 비용이 있습니다. 급식 비용이 1년에 8 파운드나 되었습니다.  하루에 대략 6펜스 씩, 즉 하루 일당의 절반을 식비로 냈던 셈입니다.  당시 영국군은 잘 먹었느냐가 문제인데, 하루 배급 식량은 대략 다음과 같았습니다.

 

빵 또는 밀가루      1.5 파운드
쇠고기                    1 파운드

완두콩                 0.25 파인트

버터 또는 치즈         1 온스

쌀                          1 온스

럼주                     0.3 파인트  (또는 포도주 1 파인트)

 

뭐 나쁘지는 않지요 ?  하루에 쇠고기를 453g씩 먹는다면요.  그러나 실제로는 이보다 훨씬 형편없는 질과 양의 식사가 나왔습니다.  전투가 벌어지던가 식량이 떨어지던가 해서 실제로는 배급이 아예 없었다고 해도, 그래도 여전히 식대는 꼬박꼬박 공제가 되었습니다. 

 

거기에 세탁비 및 바느질 비용으로 일주일에 4펜스 씩 내야 했습니다.  이 세탁비는 누가 갖냐고요 ?  당시에는 대대마다 부대를 따라다니는 부대 공식 부인들이 있었습니다.  이들은 부대 하사관이나 상병들의 부인들이었는데, 이 부인네들이 부대원들의 세탁과 바느질을 해주고 약간의 수고비를 벌었습니다.

 

 

 

(빨래 해줘서 고맙다고 ?  고맙긴 뭘... 돈이나 내.) 

 

 

그 외에도 구두약이니 뭐니하는 각종 소모품과 정작 병사 본인은 평생 가 볼 기회가 없는 첼시 또는 킬맨햄의 육군 병원에 내야 하는 비용 등도 다 공제가 되었습니다.  거기서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사람은 생활하다보면 구두도 닳고 옷도 떨어지고 혁대도 망가지는 것이 상식입니다.  그렇게 닳고 망가지는 물건 값도 병사들의 봉급에서 공제했습니다.  유일하게 봉급에서 공제하지 않는 것은 장교가 인정한 '전투 중 파손' 뿐이었습니다.  가령 전투에서 부상을 입고 후퇴했는데 그 와중에 머스켓 소총을 잃어버렸다 ?  부대 지휘관이 인정해주지 않는다면, 얄짤없이 월급에서 공제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아마도 뭔가 망가뜨렸거나 한 병사가 있다면 검열 이전에 하루라도 빨리 전투에 임하고 싶어 안절부절하는 병사들이 많았을 것 같습니다.

보통 그렇게 다 제하고나면 1년에 '777', 즉 7파운드 7실링 7펜스만 남았다고 하네요.  결국 원래 연봉의 무려 60% 정도를 각종 공제로 떼였던 것입니다.  강도가 따로 없지요 ? 

 

장교들도 사정은 비슷했습니다.  대위의 하루 급료는 10실링 6펜스였는데, 이 돈의 절반 이상이 장교 식당의 비용으로 공제되었고, 거기에 추가로 와인 및 식당 하인 비용으로 2실링 8펜스를 매일 내야했습니다. 

 

 

 

(장교 식당엔 웨이터도 있고 아주 좋다고요 ?  세상에 공짜는 없답니다.) 

 

 

문제는 불쌍한 소위들이었습니다.  급료로 받는 돈보다 장교 식당에 내야 하는 식대 및 회비가 더 많았던 것입니다 !  게다가 나폴레옹 전쟁 비용을 마련하기 위해 당시 영국에 새로 도입된 새로운 세금인, 소득세도 내야 했습니다.  (소득세에 대해서는 인쇄술, 통계, 그리고 세금  http://blog.daum.net/nasica/6604521 참조)  그럼 어떻게 살았냐고요 ?  별 수 없이 집에다 손을 벌려야 했습니다. 

 

이렇게 초급 장교들의 생활비보다 더 적은 액수의 급료가 나오도록 책정한 것도 이유가 있다고 합니다.  이건 저 위에 말씀드린 당시의 전통인 매관매직과도 상관있는 것인데, 바로 있는 집 자식, 즉 당시 기준으로 보았을 때 '점잖은 신사 집안의 자식들'만 장교로 임관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한 의도가 있었다고 하네요.  신사 중의 신사인 '국왕의 장교'가 벌지 않으면 먹고 살 수가 없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라는 것이 당시 영국 중산층 사회의 상식이었다고 합니다.  즉 역시 돈 = 사회적 지위라는 분위기가 팽배했던 것이지요.

 

대한민국 현역 장교 여러분, 혹시 아직도 나폴레옹 전쟁 당시 영국군에 복무해 보고 싶으십니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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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이 그래서 금에 환장하는구나
최곱니다. 최고 ! ^ㅇ^
정말 즐겁게 잃었습니다. 인생의 도움과 즐거움을 함께 주시네요.
으윽... 추가할 만한 재미있는 이야기는 없나... 하나 있네요.
고대 그리스 아테네 해군의 3단 노선(트라이림) 노잡이 월급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아테네 정부가 책정한 트라이림 노잡이의 월급은 원래 1드라크마로 말씀하신대로 솜씨 좋은 숙련 노동자의 하루 일당에 해당했습니다.
하지만 원칙은 원칙이고 실제 그렇게 지급하지 않았고 nasica님의 말씀하신대로 3오볼(반 드라크마)를 지불하고, 그것도 정기적으로 주지 않았습니다.
그 이유는 망명한 아테네 제독이 적군인 펠레폰네소스 함대에 충고하는 이야기를 통해 알 수 있습니다.

" 1드라크마의 임금을 3오볼(반 드라크마)로 깍고, 그것도 정기적으로 주지 말아야 합니다.... 그런 일에 풍부한 경험을 지닌 아테네 사람들은 돈이 모자라서가 아니라, 뱃사람들이 너무 많은 돈이 생기는 바람에 타락하는 것을 막으려고 3오볼만 지불해줍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일부 사람들은 건강을 해칠만한 짓거리(술과 매X)에 번 돈을 탕진해버리고, 또 돈을 다 받았기 때문에 그들을 인질처럼 붙잡아둘 만한 장치가 없어 어떤 사람들은 배에서 도망치기도 합니다. "

라는 기록이 투키데스를 통해 전해지고 있습니다. 사실 이러한 전통(악습이죠 ㅠ.ㅠ)은 나폴레옹 시대 영국해군에게도 똑같이 적용되어, 선원들은 제대로 월급을 받는 일은 거의 없었다고 합니다.
그 이유는 재정적인 문제도 있었지만, 위에서 언급한 타락 및 도망의 문제가 가장 컸다고 합니다.
그나마 월급을 받아도 군표로 받아 현금화 가정에서 수수료가 날아갔고, 그것도 전부 지급하는 것도 아니었으며, 역시 여러 경비상의 명목으로 날아가는 비용도 상당했다고 하네요. ㅠ.ㅠ
뭐 우리 부모님 세대만 해도 하두 중간에서 보급물자를 해먹어서 언제나 굶었다는 이야기가 전해지는 것을 보면, 군인들에게 제대로 월급과 보급물자를 받은 것은 정말 얼마전의 이야기 같습니다. ^ ^
고된 해군에서 합법적으로 탈영과 도망을 막는 길은 '빚'이 었습니다.애국심(충성심은 별도)에 호소한다는 것은 정말 18 후반19세기나 들어서야...약속한 대로 월급도 나오지 않았고..;'애국심''군기강'등의 강력한 동기유발을 갖춘 군대는 언제부터 나오는 것인가?
<img src="http://cafeimg.daum-img.net/pie2/texticon/texticon13.gif" value="헉" /> , 그럼 의료보험, 국민연금도 인질<img src="http://cafeimg.daum-img.net/pie2/texticon/texticon28.gif" value="~" /><img src="http://cafeimg.daum-img.net/pie2/texticon/texticon28.gif" value="~" />`...<img src="http://cafeimg.daum-img.net/pie2/texticon/ttc0724/texticon_74.gif" value="안습" />
오옷 !! 오늘 갑자기 웬일로 방문자가 급증했나 했더니... 블로거 뉴스에 떳군요.
유럽군대의 사병들에겐 도박이 남성미의 상징 같은 것이었다는데,,,월급으로 도박하고, 도박으로 잃은돈을 군대에서 고리로 빌려주고 이 빚때문에 제대를 못하고.. 월급도 못받고.월급으로 자기 구두사고 구두약사고 등등... 사병이 가난에서 벗어나는 길은 전투에서 공명을 올리거나 약탈로 재산을 불리는 길 뿐...
'테메레르'라는 나폴레옹 시대를 배경으로 한 소설(환타지이지만 거의 역사소설임)을 보면 영국 해군의 경우는 적의 배를 나포하면 그걸 나눠 먹더라구요.

그러니깐 포획한 적의 배를 싯가로 메겨 함장이 1/3 장교들 1/3 기타 등등 1/3 이런 식으로 인센티브를 주더라구요.

프랑스는 잘 모르겠는데 아무튼 전쟁 중이라면 한 몫 크게 챙길 수 있는 것이 영국해군인 것 같습니다.
영국이나 프랑스군과 비교하시는것보다 고려나 조선군과 비교해보시면 ......하긴 조선은 후기까지 정규 군대도 없었던 실정이라 사료를 참고하기 어렵겠군요......쌍에다 모래나 섞어주고.......서양 인심이 아무리 박하다지만 동양을 주무른 이유가 다 있네요
누군가 언젠가는 해주시리라 믿습니다.
비하의 달인이시군...
조선 역사를 얼마나 아는지 모르지만 후기까지 정규군대도 없었다? ㅎㅎ 참.
서양식 정규군만 군대라고 생각하시오?
조선을 아주 우습게 아는 사람들이 많은데 500년을 이어온 나라요.

군 봉급 쌀에 모래 섞어주고 하는 부패 혼란상은 19세기 한말에 세도정치의 폐해와 흉년이 겹쳐서 나타난 일시적인 현상.
문덕님말처럼 그렇게 초기부터 군기가 없엇다면 500년을 갈수있는 나라는 없을거라고 보는데요 ㅋㅋ 서양의 생각있는 역사학자들은 말하죠 오리엔탈리즘은 동양을 서양의시각에서 깍을려고 보는 관점이라고 그리고 아이러니하게 동양의 문명이 서양화될때 서양사람들은 동양의 문화에 푹빠지고 있는 실정인 아이러니가 펼처지니깐요 한쪽역사에 틀에 박혀서 아무말이나 뱉으시면 답없으시죠 ㅋㅋ..님 의 사고로 보자면 옜훈족이 서양을 정벌하고 몽고가 대제국을 세운건 서양사람들이 약해서 그렇게 학살당했던거 일지 모르죠..
"아이리스"학생이 적은 글은 도무지 의도를 모르겠군요.내용도 없고..
요즘 공부안하면 옳은 직장 구하기 힘드니깐 좀더 분발했으면 좋겠습니다.
상식적으로 생각해도 말이 안 될 것 같지 않나?
정규군도 없는 국가? 그것도 옆에 지나족 개떼와 밑에 눈돌아간 왜구가 있는데?
그럼 우리나라는 외적이 쳐들어올 때마다 의병들만 나서서 싸웠나?
건국초기부터 병역제 정비하고 국방에 온힘을 쏟아부었던 나라가 조선인데 이거 왜이래~
혹시 제작비후달리는 사극드라마에서 현대의전투복같이 천쪼가리하나 입고 나온 애들 때문?
조선시대에는 정규군도 있었고, 그 정규군은 갑옷도 입고 다니는 제대로된 정규군이었음.
500년이나 이어지면서 병역제도도 몇번 바뀌긴 했지만,
아무튼 생각 좀 하고 올려요.
고등학교 다니면서 국사책 조금만 읽어봤어도 알만한 내용이네.
조선시대 군 편제 체제는 중앙군과 지방군으로 나뉘는데,중앙군은 엄연히 직업 군인으로(갑사,정병)이있고, 한때 조선에서는 갑사가 5만명 이나 있었습니다.또한 고려때도 정벌,전란이나 난등을 진압할때 중앙에서 보낸 군사들이 있는 것으로 보아 흔히 서양 에서 정규군이라 불리는 군사들이 있다고 볼수 도 있죠.
더 거슬러 올라가면 고구려 광개토호태왕이 신라를 신민 삼을때,고구려병사들을 신라에 주둔 시켰는데,그들이 본국으로 종종 휴가를 갔다 왔다는 말이 있으니 (일시적인 것이 아닌 장기적 군사 주둔인 셈이죠)고구려때도 정규군이 있었다고 추측해 볼수도 있죠.
조선시대 군 편제 체제는 중앙군과 지방군으로 나뉘는데,중앙군은 엄연히 직업 군인으로(갑사,정병)이있고, 한때 조선에서는 갑사가 5만명 이나 있었습니다.또한 고려때도 정벌,전란이나 난등을 진압할때 중앙에서 보낸 군사들이 있는 것으로 보아 흔히 서양 에서 정규군이라 불리는 군사들이 있다고 볼수 도 있죠.
더 거슬러 올라가면 고구려 광개토호태왕이 신라를 신민 삼을때,고구려병사들을 신라에 주둔 시켰는데,그들이 본국으로 종종 휴가를 갔다 왔다는 말이 있으니 (일시적인 것이 아닌 장기적 군사 주둔인 셈이죠)고구려때도 정규군이 있었다고 추측해 볼수도 있죠.
ㅋ 긴글 재밌게 읽었습니다. 이런 자료들이랑 내공은 어떻게 얻으셨는지 정말 대단하시네요~-_-b
감사합니다. 자료는 위키나 이런저런 웹을 뒤지면 다 나옵니다.
비교 하신거 너무 재밌습니다 ㅋㅋ 잘봤습니다!
출처 명시하고 국방부 인트라넷에 올려도 될까요? 다들 재미있어 하실 것 같아서...^^
오, 저야 영광이지요. 근데 진짜 국방부 근무하세요 ?
넵~ 감사히 퍼가겠습니다^^
대명국 황제폐하가 조선을 지켜주시는데 군대가 필요있었을라나 ㅋ 못난 조선임금들 쯧쯧
지나친 국수주의도 좋지않지만 쓸데없는 자기비하는 더 안좋습니다.
짱개신가?
이런 말 듣고 싶어서 쓴 글이라 사료됨.
조선은 거의 제후국 취급을 받기도 했지만 그거야 살아남으려면 어쩔 수가 없었고.
괜히 건드렸다가 나라 망하는건 순식간인데 그러고 싶었겠음?
물론 명이 강해서 그랬다기 보다는 내부가 썩어빠져서 그랬던거지.
조선의 신하란 것들이 자기들 나라보다 상국이랍시고 지나(명)를 더 떠받들었거든.

오히려 조선 왕들이 죽을 맛이었지. 아 분명 조선은 내가 다스리는 나란데 자꾸 간섭하잖아?
사대부 십사쿠들이야 어차피 조선이 고개를 조아리든 말든 직접적 피해가 없으니까 상관안했고.
조선 왕들 보면 지나에 원한 가진 왕들이 심심찮게 나와.
당연하지. 조선에선 내가 왕인데 지나족들이 대우를 안해주거든. 열 받을 만하잖아?
자기 집안 조상들도, 자기 어렸을때도, 자기 커서도 계속 수모를 안겨주는 지나국.
열이 안받으면 그게 사람이냐?

대부분은 지나(랑 지나국 고정간첩 수준의 사대부 신하들)가 무서워서 걍 살았지
물론 가끔가다가 한성깔하는 애들이나 원한이 아주 뼈에 사무친 애들이 등장해.
얘들은 왕이 되어서 대놓고~보다는 몰래몰래 숨어서 지나국에 대항할 힘을 기르...려고하다가!
사대부 십사쿠들이 알아내서는 지나족 애들한테 가서 일러서 개박살. 혹은 포기하지.

그래도 포기 안하고 '난 지나국이 싫어요! 조선독립 만세!'를 외치던 왕은?
지나국이 나설 필요도 없어. 사대부 십사쿠들이 알아서 왕의 모가지를 잘라다 바치거든.

근데 이 사대부 십사쿠들의 매국 만행과 조선왕들의 자기권리찾기노력에 대해 잘 모르는 애들있어
왜 모를까? 일제강점기때 왜놈들이 조선놈들한테 가르친 역사가 그런거야.

'니네 조선은 원래 개찌질이다. 옛날부터 강자의 보호하에 살았다. 조선은 쓰레기다.'
이렇게 세뇌를 시켰지.
이게 식민사관이라는거고 이 식민사관에 찌들어서 신사대주의자가 된 쓰레기들이 참 많아.
그래...바로 너, 너 같은 놈 말이지.

우리나라 역사를 무슨 먼치킨판타지소설속전설의국가로 미화하는 환빠도 참 문제긴하거든?
근데 우리나라 역사는 무조건 쓰레기 취급하고 얕잡아보는 사대부같은 십사쿠들은 훨씬 더 문제야
아마 조선시대에 지나국에 절대 충성을 맹세한 사대부들만 없었어도 조선은 더 잘살았을거다.
그리고 지금 대한민국에서도 신사대부들이 없으면 대한민국은 조금 더 살기 좋은 나라가 될거야.

그러니까 패배주의와 식민사관에 젖어서 비아냥거리기 이전에 네 과거나 돌아봐라.
아마 네 과거야 말로 패배주의가 넘쳐흐르는 찌글찌글한 찌질이 인생이 아니었을까 싶다.
진짜로 나라 말아먹고 일본황실의 일원으로 자격을 받은 인간은 고종이지만, 그 고종을 괴롭힌 사람들은 일본황실이 아니라 (어차피 일본황실로 들어가도 한 계급 강등될 뿐이었지 황실가족대우는 일본인들에게도 받을 거 다 받았다네요.) 맨날 돈 없으니 달라고 징징댄 조선귀족들이었답니다.
좋은 글 감사드립니다.^^
그런데 짜증나는건 영내하사애들 ㅉㅉ 나이도 어리고 가방끈도 짧은 놈들한테 경례해야 하고 사병들은
jot 뺑이 까고 돈도 얼마 못 받는데 영내 하사애들은 군생활 하면서 돈도 받아가면서 나이나 학벌에서 사병보다 훨씬 밀리는 놈들이 돈도 더 받고 대접도 더 받는다는게 엿같은 사실 ㅉㅉㅉ 최소한 영국군 프랑스군은 그런건 없어서 좋네
찌질대지 말고 부사관으로 군대 가시던지...ㅉㅉ 글구 부사관들도 열심히 사는사람들 많습니다.
군대 다녀오셨다면 좆뺑이 많이 당하셨나본데... 당신이 뭔가를 잘못했겠지...ㅉㅉ 불쌍하긴...
위엣 분은 병 안 거치고 부사관이 되는 게 가능한 나라가 몇 군데나 되나부터 찾아보셔야 할 듯. 영내하사가 괜히 무시당하는 게 아님.
위에 꼬우면 부사관 가던가 라는 댓글 남긴 사람은 인성이 완전 쓰레기 임에 틀림없다
한 마디만 할게 역시 헬조선 사람이야
재밌는 글 잘 읽었습니다. 요즘 엠파이어 토탈워를 하는데... 시대가 같아서 더 재밌게 읽었네요.. 출처 밝히고 토탈워 카페에 퍼가도 될까요?
물론 그러셔도 됩니다.
영어강사입니다. 파운드의 기원이 궁금했는데 아주 속쉬원하게 해소되었습니다. 학생들에게 배경지식삼아 설명해 주어야겠네요 감사^^
재미있게 잘 읽었습니다. 유익한 정보가 많네요. 종종 들리겠습니다~
매번 재미있게 읽고 있습니다.
내용적으론 예전에 올리셨던 글에 다 나온 것이라 새삼스러울것도 없는데, 워낙에 글을 잘 쓰셔서 즐겨찾기에서 빼놓을 수가 없네요 ^_^

글은 재밌는데. 역시 사람이 많아지면 이런저런 사람이 오는것도 당연한 건가요? 댓글이 참...
여기 자주오시는 분들은 서로 안 싸우는뎅...^^; 잘 봤습니다! 아훙.
그래도 아무 이유없이 쌍욕하는 댓글 두개는 그냥 지웠어요.
그런데 어쨌든 한국군은 안습이라는 거(이럴수가!)
그리고 운영자님이 요즘엔 "국내 도입 시급!!" ->이 멘트에 재미를 붙이셨군요.
좋은글 감사합니다 ^^
톰클랜시 옹의 소설 베어앤드래곤을 검색하다가 군인들의 월급에 대해 있기에 재미읽게 읽었습니다....그리고 퍼가겠습니다....
단순히 월급 문제 뿐만이 아니라, 의료(전투 중 부상 당하면 절단이 최고의 치료법)에서 시작해 전쟁이 줄곳 이루어 질거라는 점을 생각하면 지금이 훨씬 좋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