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폴레옹의 시대

nasica 2009. 5. 1. 23:50

 

 

(그래도 정말 나폴레옹의 사랑을 받았고, 또 국민들로부터도 호감을 샀던 서민적 황후 조세핀) 

 

 

1803년 6월의 어느날, 아미앵 조약에 의한 영국과의 휴전 상태였을 때, 당시 제1통령이었던 나폴레옹은 영국과의 다가오는 전쟁에 대비하여 불로뉴 지방으로의 순찰을 가기로 합니다.  이 여행을 떠나는 날, 그는 부인인 조세핀과 심한 말다툼을 했습니다.  함께 여행을 떠나기로 한 조세핀의 옷차림 때문이었습니다.  조세핀은 당시 파리의 멋쟁이 여자들 사이에서 유행하던 모슬린(muslin) 천으로 된 옷을 입으려 했던 것입니다.  나폴레옹은 제1통령의 부인이 리옹(Lyon)산 새틴(satin)이나 타프타(taffeta, 비단 계통의 천)로 된 옷을 입을 것을 강요했고, 이 둘은 언성을 높이며 싸웠습니다.  조세핀은 늘 그렇듯이 소파 위에 쓰러져 크게 울었고, 나폴레옹은 '파리의 여자들에게 모슬린 금지령을 내려버리겠다'고 흥분했습니다.  결국 조세핀은 푸른색 타프타로 된 옷을 입고 길을 떠나야 했습니다.

 

 

 

 

 

(이들 부부 사이에서는 아주 흔했던 장면... 나폴레옹 앞에서 울고짜는 조세핀) 

 

 

이날 왜 나폴레옹은 조세핀의 옷차림을 가지고 시비를 걸었을까요 ?  나폴레옹이 여자들의 옷은 여자들에게 맡겨두어야 한다는 간단한 진리를 몰라서였을까요 ?

 

나폴레옹은 코르시카 출신의 전형적인 지중해성 남자로서, 남성 권위주의자였던 것은 맞습니다.  이는 오늘날에도 그 뜻이 거의 그대로 이어지는 나폴레옹 법전에서 유일하게, 여성 인권에 대한 부분만큼은 완전히 뜯어고쳐야 했다는 것만 봐도 알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날 조세핀과의 부부 싸움은 그런 사소한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이는 바로 3년 후 베를린 칙령으로 공표되는 대륙 봉쇄령과도 상관있는 이야기였습니다.

 

1805년 넬슨의 영국 함대가 프랑스-스페인 연합함대를 완전히 '담궈버린' 트라팔가 해전 이후, 나폴레옹은 영국을 물리적으로 침공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나폴레옹의 야심은 결국 도버 해협을 넘을 수 없었던 것일까요 ?  그게 가능하냐 여부를 따지기 전에, 나폴레옹의 야심이 대체 무엇이었는가를 먼저 생각해봐야 합니다.

 

 

 

(대체 이 남자가 원하는게 뭐야 ?) 

 

 

사실 나폴레옹이 꿈꿨던 것은 세계 정복이나 유럽 정복 같은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는 아우스테를리츠 전투 이후 비엔나를 두 번이나 점령했고, 또 예나 전투 이후 베를린을 점령했으면서도 오스트리아의 합스부르크 가문이나 프러시아의 호엔촐레른 왕가를 전복시키려는 노력은 하지 않았습니다.  러시아를 침공했을 때도, 나폴레옹은 끝까지 러시아의 농노제 폐지를 선언하지는 않았는데, 이는 러시아의 로마노프 왕가와 끝까지 협상하려는 마음이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결국 나폴레옹이 원했던 것은 전 유럽이 하나의 연방체가 되어 전쟁 없이, 평화로운 번영을 누리는 것이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물론 그 중심 국가는 프랑스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했던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겠지요.

 

 

 

(나폴레옹의 구상은 약 150년 뒤에 EU로 결실을 보게 됩니다.) 

 

 

하지만 유럽 대륙에 강력한 연방체가 나타나는 것을 원치 않는 세력이 있었으니 바로 영국이었습니다.  섬나라 영국은 믿을 수 없는 유럽 대륙의 정치 체계에 편입되기 보다는, 유럽 대륙이 서로를 견제하는 여러 세력으로 나누어져 있는 상태를 원했습니다.  (이 전통은 지금도 이어져서, 영국은 지금도 유로화 체제에 편입되는 것을 강하게 거부하고 있습니다.) 

 

 

 

(요즘 파운드화 가치를 보면, 그냥 영국도 유로화 쓰는 게 좋지 않았을런지...) 

 

 

영국은 당연히 나폴레옹과 프랑스의 세력을 꺾어놓기를 바랬고, 자신들만의 무력으로는 프랑스와 전쟁을 하기 힘드니까, 대륙의 힘깨나 쓰는 나라들의 정치가들에게 뒷돈을 대주며 프랑스와의 전쟁을 꼬드겼습니다.  나폴레옹의 목숨을 노렸던 두어 번의 암살 시도도 영국의 자금 지원으로 이루어졌다는 것이 정설입니다.

나폴레옹이 설마 영국의 땅덩어리가 탐나서 영국 침공을 계획했겠습니까 ?  나폴레옹은 끝없는 전쟁에서 빠져나오기 위해서는 그의 적들의 전쟁 자금 원천인 영국을 무력화시켜야 한다고 생각했던 것입니다.  또한 영국이 사실상 독차지하고 있는 해외 무역에 프랑스도 숟가락을 얹어야 한다는 생각도 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의 대포와 보병으로는 영국 해군을 넘어설 수 없었으므로, 나폴레옹은 '애초에 돈 문제로 시작된 전쟁, 돈으로 끝을 보자'라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즉, 영국이라고 기니 금화가 나무에서 열리는 것은 아니었으므로, 영국놈들이 돈을 버는 상거래 경로를 차단하자는 계획이었습니다.  바로 영국산 상품을 거부하는 것이었습니다.

 

 

 

(발명자 제임스 하그리브스의 딸 제니의 이름을 붙였다는 제니 방적기... 정작 그에게는 제니라는 딸은 없었다고...)

 

당시 영국은 이제 막 산업혁명이 일어나고 있는 시기였습니다.  원래 백년전쟁 때부터도, 영국의 산업은 플랑드르, 즉 네덜란드 지방의 양모를 수입해서 모직물을 만들어 다시 대륙으로 수출하는 섬유 산업이 가장 컸습니다.  이러한 전통 위에, 제임스 와트의 증기 기관이나, 제임스 하그리브스의 제니 방적기 (spinning jenny) 등의 신기술이 도입된데다, 또 인도와 카리브 해 식민지에서 들여오는 값싼 목화가 있었기 때문에, 나폴레옹 전쟁 당시 영국 섬유 산업의 경쟁력은 가히 세계 최고였습니다.  서두에서 언급한 조세핀의 모슬린 천만 하더라도, 영국이 자랑하는 면 제품 중의 하나였습니다.  인도산 수입 면 제품인 캘리코(calico) 때문에 영국의 모직물 산업이 망한다며 난리를 치던 것이 불과 100년 전이었다는 점을 생각해보면, 영국의 산업 발전은 정말 대단하다고 밖에 할 수 없었지요.  그래서 나폴레옹은 국민들에게 모범을 보이고자 조세핀에게 영국의 모슬린을 입지 못하게 했던 것입니다.

 

 

 

(애국심이냐 패션이냐 그것이 문제로다...) 

 

 

당시 영국의 상품이 유럽 대륙에 어느 정도의 규모로 유통되고 있었는지 보여주는 한 예가 있습니다.  예나(Jena)-아우어슈타트(Auerstadt) 전투에서 프러시아군을 글자 그대로 박살을 내버린 나폴레옹은 빛나는 영광과 함께 막대한 물질적 이득을 누립니다.  피비린내나는 전장에서 거두어들인 100여개의 프러시아 군기들 외에도, 600여대의 대포, 안장이 딸린 수천마리의 군마, 그리고 몇백만 프랑 상당의 식량, 와인, 맥주 등의 주류, 탄약을 비롯한 각종 보급품들을 프러시아 군으로부터 빼앗았습니다.  특히 라이프치히(Leipzig)에서 대박이 터졌습니다.  여기에는 영국산 상품이 잔뜩 저장되어 있었는데, 이는 적국의 상품으로서 프랑스군에게 몰수되었습니다.  이를 현지의 독일 상인들에게 되판 결과, 그 판매액만 6천만 프랑에 달했습니다.  아우스테를리츠에서 패한 이후 오스트리아가 프랑스에게 지불해야 했던 배상금이 1억 프랑 정도였으니, 한 도시에서 빼앗은 물자치고는 엄청난 양이었던 것입니다.  또한 여기서 몰수한 영국산 직물이 너무나도 많아서, 나폴레옹은 이를 재료로 20만명에 달하는 독일 원정군 전체의 군복을 새로 만들도록 지시할 정도였습니다.  이 사례는 짧게 보면 나폴레옹의 위대한 승리지만, 좀더 들여다보면, 웅후한 영국의 산업 및 상업의 힘이 이미 유럽을 지배하고 있었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어차피 프랑스 본국의 해외 무역은 전쟁 발발 이래로 영국 해군에 의해 초토화되었기 때문에 어쩌면 나폴레옹은 잃을 것이 별로 없었을지도 모릅니다.  전쟁 전에는 많은 프랑스 항구가 카리브 해의 식민지와의 무역으로 흥청거렸습니다.  여기서는 주로 설탕, 커피, 담배 등이 거래되었습니다.  하지만 영국 해군이 항구를 봉쇄하면서, 그런 이국적인 상품은 유입이 뚝 끊겼고, 연안을 항해하는 화물선으로부터 목화솜, 석탄, 철물류 등이나 거래를 하게 되면서 프랑스 항구들은 쇠락의 길을 걷습니다.  특히 스페인을 통해 신대륙으로부터 유입되던 황금이 끊기면서, 프랑스는 재정 문제를 심각하게 겪습니다.  이런 문제를 나폴레옹은 아우스테를리츠 및 예나 전투로 해결합니다.  전쟁 보상금으로요. 

 

 

 

(전쟁에 졌으면 돈을 내야지, 응 ?  1억 프랑만 내놔)

 

 

나폴레옹의 대륙 봉쇄령은 1806년의 베를린 칙령과 1807년의 밀란 칙령으로 구체화되는데, 이는 확실히 영국에게 피해를 줍니다.  무엇보다도 식량 수입국이었던 영국의 곡물 가격을 크게 뛰게 만들었습니다.  하지만 유럽 대륙은 훨씬 더 큰 고통을 당합니다.  특히, 목화솜과 같은 필수적인 원재료의 수입이 크게 감소되면서, 많은 프랑스 공장들이 어려움을 겪습니다.  프랑스는 중립국이었던 포르투갈을 통해 그나마 약간의 목화솜을 들여오지만, 결국 포르투갈이 대륙 봉쇄령에 저항하면서 프랑스와 전쟁에 돌입하게 되자, 그마저도 솜 공급이 끊기며 프랑스의 맨체스터라고 불리던 루앙(Rouen)의 많은 사업체들이 아예 파산하게 됩니다.  이런 해외 무역 문제에 대한 돌파구로, 프랑스는 미국 선박에 의존하게 되는데, 이를 영국 해군이 방해하면서 결국 1812년 영미 전쟁이 발발하게 됩니다.  아무래도 돈과 전쟁은 뗄래야 뗄 수 없는 관계인 모양입니다.

 

 

 

(미해군과 영국해군이 처음부터 사이가 좋지는 않았답니다.) 

 

 

또 대륙 봉쇄령이 효과적으로 이루어진 것도 아니었습니다.  나폴레옹의 무력 앞에서 눈치를 보던 많은 유럽 국가들은 몰래 영국과의 거래를 계속할 수 밖에 없었고, 프랑스 내에도 영국의 밀수품이 끊임없이 유통되었습니다.  아무래도 육지의 고정 사무소에 앉아있는 프랑스 세관원들이 바다를 횡행하는 밀수선들을 효과적으로 막을 수 없엇던 것이지요.  무엇보다, 너무나도 가격 경쟁력이 뛰어난 영국 상품은 밀수꾼들에게 목숨을 걸 만한 이윤을 안겨다 주었습니다.  가령 1809년, 프랑스에서는 고운 면 1파운드에 11프랑 25상팀 정도를 내야 했습니다.  이 중 8파운드가 원재료인 목화솜 가격이었지요.  들어간 제조 비용은 3프랑 25상팀이었습니다.  (당시 프랑스 노동자의 하루 일당은 1~2 프랑이었습니다.)  그에 비해, 같은 양의 면에 대해 영국산 제품은 겨우 4프랑이었습니다.  이 중 2프랑 50상팀이 원재료 목화솜의 가격이었고, 제조비는 1프랑 50상팀에 불과했습니다. 

 

심지어 나폴레옹도 영국 밀수선과 거래를 했습니다.  당시 영국도 프랑스와의 모든 무역을 법으로 금지하고 있었는데, 나폴레옹은 덩케르크(Dinkirk)와 그라블린(Gravelines)의 두 항구에서 영국 밀수선에게 숙식과 짭짤한 이윤을 제공했습니다.  영국 밀수선이 싣고 온 것은 영국에서 탈출한 프랑스군 포로와, 영국 기니 금화, 그리고 영국 신문이었고, 프랑스에서 싣고 가는 것은 브랜디와 프랑스산 비단 제품이었습니다.  바로 나폴레옹이 조세핀에게 입으라고 권한 새틴이나 타프타였지요. 

 

 

 

(저 위에 모슬린 드레스보다는 이 타프타 드레스가  더 비싸보이는데요 ?)

 

 

위에서 영국산 제품은 밀수꾼들에게 목숨을 걸 만한 이윤을 안겨주었다고 했는데요, 문제는 이윤 앞에서는 밀수꾼 뿐만 아니라 황제도 혹했다는 것입니다.  1812년 러시아는 마침내 경제적 어려움을 이기지 못하고 대륙 봉쇄령에서 탈퇴하게 되는데, 영국은 이를 축하라도 하듯 무려 700여척의 대상선단을 발트해에 띄워 나폴레옹을 격노케 합니다.  결국 이는 나폴레옹의 운명을 결정짓는 1812년 러시아 원정으로 이어집니다. 

 

요즘 제 글의 결론은 '결국 돈이 쵝오'라는 결론을 자꾸 내리게 되는데요, 글쎄요, 읽으시는 분은 좀 식상하실 것 같습니다만, 아무리 강조해도 부족한 주제라고 생각됩니다. 

역시 예나 지금이나 전쟁의 가장 큰 원인중 하나는 돈이군요
나폴레옹은 트라팔가르 해전에서 프랑스-스페인 연합해군이 패배한후 현재 영국을 굴복시키는건 무리라고 생각했겠지만 영국을 굴복시키는걸 아예 포기한건 아닌듯합니다. 나폴레옹은 영국을 굴복시키기 위해 다시 해군을 건설하게 되는데, 1814년 까지 건조된 전열함이 100여척이고, 프리깃함이 60여척이 되었답니다.

그나저나 나폴레옹 자신도 영국 밀수선과 거래를 했다니...;;;;;;;
나폴레옹은 국익을 위해 영국 밀수선과 거래를 한 거니까 뭐 놀랄 일은 아닙니다. 저렇게 영국 밀수꾼들이 황금을 주고 프랑스산 견직물을 사오는 것은 프랑스에게는 득이 되고 영국에게는 해가 되는 일이니까요.
돈 덕분에 그 X만한 베네치아가 몇백년이나 버티고 있었던 거지요....

뭐 결국은 돈 없는 시절의 보나파르트한테 밀려버렸지만....
Nasica님의 글을 읽다보면 '천조국'이라고 불리는 국가들의 힘이 결코 군사력에서 나오는게 아니라 시장 시스템을 쥐고 흔들 수 있는 능력에서 나온다는 것을 거듭 확인하게 됩니다.. 그런 점에서 러시아나 중국은 아직도 한참 멀었지요,
미국은 군사력 (절대 금액 뿐만 아니라 GDP 대비 4% 정도나 되는 비중에서도...), 내수 시장 크기 (우리나라를 비롯한 동아시아 거의 전체가 미국 시장만 바라보고 삽니다), 금 보유량 (절대 강자)에 있어서 아직 절대, 울트라, 궁극적 강국입니다. 특히 기축 통화를 제 마음대로 찍어낸다는 점에서 정말 무시무시한 존재지요. 나폴레옹 전쟁 당시 영국 애들도 기니 금화의 위력으로 유럽 각국의 고관대작들을 매수한 것이지 종이 파운드화로 한 건 아니거든요. 그러나 미국 애들은 맘만 먹으면 찍어내는 달러화가 세계 공용화폐이니... 그야말로 미국 나무에서는 달러가 열리는 셈입니다.
영국이 현재 유로화 체제를 거부하는 이유가 하나 더 있는데... 영국의 주력 산업이 금융, 관광, 문화사업이기 때문입니다.

특히 금융업과 관광의 경우엔, 파운드와 유로 사이의 환전을 통한 차익으로 영국이 이윤을 더 남겨먹는 약은 시스템입니다. ( 이번에 금융위기로 파산한 아이슬랜드의 경우도, 자국 고유의 화폐단위 환전을 통해 차액을 남기며 이자놀이를 하고 있었죠, )

그런데 이번 금융위기로 영국 금융업이 휘청휘청 하는 통에, 영국도 유로화로 편입할까 말까 하는 논란이 일어나려는 분위기입니다만... 아이슬랜드가 유로화 도입을 적극 찬성하는 것과 달리, 영국이 파운드화를 쉽게 포기할 것 같지는 않군요,


현실적으로 영국이 유로화를 도입할 경우 문제를 지적해 보자면,

파운드화 포기 = 금융과 관광에서 환전통한 차액과 특권 포기 + 파운드에서 유로로 바꾸는 비용 + 금융업의 영국 내 독점적 지위 침해+ 영국 전통과 자존심 포기문제

등이 다각적으로 결합된 문제인지라... 유로화와 파운드화가 1:1로 교환되는 수준으로 떨어진다 해도 유로화가 영국에 도입되긴 힘드리라 봅니다. 뭐 아이슬랜드처럼 금융업과 모든 경제가 다 박살나는 수준이 된다면 영국도 항복할 거 같습니다만... 아직은 그 수준까진 아닙니다.

하지만, 앞으로 연속적으로 터져나올 범지구적 금융위기가 끝이 안 보이는지라... 파운드화가 앞으로도 지금처럼 어거지로 버틴다고 무조건적으로 낙관하긴 힘드네요.

늘 좋은 댓글 고맙습니다.
면보단 비단이 더 고급품인데..한때 나일론이 유행이었던 때같은건가보네요..물론 '폴리에스테르'보단 면이 훨씬 좋은거지만요...요즘 옷도 면제품이면 어찌나 비싸든지..감촉이 좋고 더 오래가긴해요..

저 죠세핀황후도 바람을 엄청 많이 피웠다는데..나중에 죠세핀말고 오스트리아에서 데려온 황후와 나폴레옹과의 사이에 낳은 아들이 정말 미남이더군요..폐결핵으로 요절했지만 명석한데다 미남이라 왕인 외할아버지의 사랑을 받았다고..하지만 친어머니는 다른 남자(백작)과 결혼해 아이를 낳고 끝까지 사랑을 주거나하진않고 외면했다고하더군요..
좋은글 감사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