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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asica 2009. 5. 17. 18:17

 

바로 전의 글인 나폴레옹 시대의 기갑부대 - 흉갑 기병 http://blog.daum.net/nasica/6862374 )편에서 나폴레옹 시대의 기병에 대해서 어느 정도 다루었습니다.  이 시대의 기병들 중 특징적인 두 집단이 있었는데, 하나는 바로 전에 다룬 흉갑 기병이고, 다른 하나는 바로 이번에 다룰 창기병입니다.  다른 모든 종류의 기병들은 그저 상식적으로 운용되었던 경기병(즉 후자르, hussar)이나 총기병 (즉 드라군, dragoon)이었습니다.  이름은 비록 달랐지만서도요.

 

 

 

(창기병들의 복장은 폴란드 Uhlan들의 것을 많이 모방했습니다.  가장 큰 특징은 바지 옆의 줄무늬(아디다스 스타일 -.-)와   챠프카(czapka 또는 chapka)라고 하는 독특한 모자입니다.)

 

 

흉갑 기병의 특징이 가슴받이 갑옷이라면, 창기병의 특징은 당연히 창입니다.  창은 검보다도 훨씬 더 오래전부터 사용된 무기로 알려져 왔습니다.  긴 검보다는 튼튼한 나무 막대에 짧고 뾰족한 쇠촉만 박으면 되는 창이 더 만들기 쉬웠기 때문일 것입니다.  게다가, 긴 창은 사냥에서든 전쟁에서든 맹수나 적병을 멀리서 찌를 수 있기 때문에 더욱 유리했습니다.  이 점은 창기병들에게도 그대로 통했습니다.  등자와 안장이 도입되어 안정적인 승마가 가능해진 이후, 기병들의 주무기는 당연히 창이었습니다.  긴 창을 들고 있으면 짧은 칼을 든 상대방보다 먼저 공격을 할 수 있었으니까요. 

 

그러나 총기가 도입되면서부터, 창은 장군들로부터 외면받기 시작합니다.  원거리에서의 공격이라면 차라리 권총을 쏘는 편이 창보다 더 나았으니까요.  그리고 근거리에서의 난투극이 벌어질 때면, 창보다는 칼이 더 효율적이었습니다.  대표적인 경우가 1587년 프랑스 쿠트라에서 있었던 카톨릭 기사들과 위그노 기병들과의 전투였습니다.  여기서 카톨릭 동맹의 조이스 공작이 이끄는 귀족 기사들은 약간은 시대에 뒤떨어진 것이 아닐까 싶을 정도의 면갑, 넓적다리 보호대, 흉갑, 어깨받이 등 중무장을 하고 있었고 또 작은 삼각 깃발을 매단 긴 창으로 무장하고 있었습니다.  그에 비해 나바르의 왕 앙리 부르봉(후에 앙리 4세가 됩니다)이 이끄는 위그노 기병대는 흉갑과 권총, 무딘 칼로만 무장하고 있었습니다.  결과는 위그노의 대승이었습니다.  아무래도 무거운 갑옷과 긴 창은, 포격으로 어지러워진 난투극 속에서는 별로 위력이 없었던 것이지요.  이후로, 기병들이 창을 들고 다니는 경우는 그리 많지 않게 되었고, 나폴레옹 전쟁이 막 시작되던 때만 하더라도, 기병은 모두 가벼운 기병용 군도(sabre)와 권총 정도를 휴대한 경기병(hussar) 형태였습니다.

 

그러나 정작 나폴레옹 전쟁이 진행되자, 모든 국가들이 마치 갑자기 창에 대한 존경과 애정을 갖게 된 듯, 모두들 창기병 연대를 새로 창설하거나 증강시키기 시작했습니다.  가령 러시아군은 창기병 연대를 5개에서 12개로 늘렸고, 프러시아군은 1개의 창기병 연대를 8개로 늘렸습니다.  심지어는 자존심 강한 영국군조차도 창기병 연대를 새로 창설했고, 이탈리아와 스페인에서도 창기병 부대들이 새로 편성되었습니다.  갑자기 왜들 이랬을까요 ?  나폴레옹도 당연히 9개의 프랑스 창기병 연대를 새로 편성했습니다.

 

 

 

 

나폴레옹 시대의 갑작스런 창기병 사랑은 바로 폴란드의 창기병 부대인 울란(Uhlan) 부대때문이었습니다.  나폴레옹이 예나-아우어슈타트 전투에서 프러시아를 제압하면서 폴란드의 수도 바르샤바에 입성한 뒤로, 폴란드인들은 나폴레옹을 구원의 영웅으로 떠받들기 시작합니다.  원래 강력한 왕국이었던 폴란드는 18세기 들어 쇠락을 거듭하다 1795년 제3차 '폴란드 분할'에 의해 프러시아, 오스트리아, 러시아에게 분할 흡수되어 국가로서의 존재를 상실한 상태였습니다.  폴란드인들, 특히 귀족층과 지식인층은 프랑스 대혁명에 대해 잘 알고 있었고, 나폴레옹이 그 혁명 정신에 따라 폴란드를 다시 세워줄 것으로 굳게 믿었습니다.  그런 믿음과 함께, 나폴레옹의 대군단(Grande Armee) 속에 폴란드군이 들어가게 된 것입니다. 

 

애초에 프랑스군은 망해버린 나라의 구식 기병들을 대단찮게 생각했다고 합니다.  그러나 막상 전투에 투입시켜보니, 폴란드 창기병들의 효용성은 상상을 초월한 것이었습니다.  이 사실은 앞서 소개해드린 흉갑 기병편에서도 언급한 바 있었지요.  나폴레옹의 기병부대 중 가장 뛰어난 전과를 보여준 부대는 바로 창기병들이었다고요.

 

 

 

(나폴레옹 휘하에서 가장 뛰어난 기병부대는 바로 이 폴란드 창기병들이었습니다.) 

 

 

프랑스 육군 원수 마르몽(Marmont)도 창기병의 빅 팬이었습니다.  그에 따르면 '모든 기병은 창으로 무장해야 하고, 군도는 보조 무기 정도로 여겨야' 했습니다.   프러시아군의 폰 마르비츠(von Marwitz)는 한술 더 떴습니다.  그는 이런 언급까지 남겼습니다.

 

"창기병에 맞서서 군도를 든 경기병이 맞부딪힌다면, 경기병들이 군도를 들었건 먼저털이개를 들었건 별로 큰 차이가 없다."

 

이렇게 위력적인 창기병들이 그 전에는 왜 그렇게 괄시받았을까요 ?  그 이유에 대해서는 위에 쿠트라 전투 이야기를 하면서 간략하게 썼습니다.   창기병에는 장점도 있었지만 단점도 많았습니다.  나폴레옹 전쟁 당시 프랑스군과 러시아군 양쪽에서 봉사했던 (그렇다고 박쥐는 아니었습니다) 당대 최고의 전략가 조미니(Antoine Henri Jomini)의 글에는 그 모든 점이 녹아있습니다.

 

 

 

(베르티에 원수의 시기심만 아니었어도, 조미니가 프랑스군에게 칼을 돌리지는 않았을지도...)

 

 

"기병대의 무장에 대해서는 많은 토론이 있었다. 기병들이 횡대를 이루어 집단으로 공격할 때는 창이 가장 훌륭한 공격 무기임에 틀림없다.  적보다 먼 거리에서 공격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공격의 제2열은 군도로 무장시키는 것이 좋다.  대열이 흐트러진 뒤에 난투극이 벌어질 경우 창보다는 군도가 훨씬 다루기 쉬운 무기이기 때문이다.  창기병들의 돌격에 일단의 경기병들을 동행시켜 지원을 하게 하는 것이 좋을지도 모른다.  사실 창기병들의 유용성은 그들의 대열을 얼마나 잘 유지하느냐에 달려있다."

 

조미니의 말에서 암시되듯이, 정면에서 맞부딪힐 때는 창기병을 당해낼 경기병 용자가 그리 많지는 않았습니다.  하지만 어떻게든 그 창끝을 피해내거나 쳐내는데 성공한다면, 그 창기병은 이제 죽었구나라고 생각해야 했습니다. 

 

다음은 제가 좋아하는 나폴레옹 시대의 무협 소설인 Sharpe 시리즈 중 Sharpe's Gold 편의 한 장면입니다.  여기서는 허허벌판에서 프랑스 창기병들에게 노출된 샤프 대위의 영국군 보병들이 절대절명의 위기에 처한 상태에서, 바람처럼 나타난 샤프의 친구인 로소프 대위가 이끄는 하노버(Hanover) 출신 독일 경기병대가 프랑스 창기병들을 상대하는 장면이 그려집니다.

 

 

 

(BBC 드라마 Sharpe's Gold 중 한 장면.  이 드라마는 알메이다 요새의 파괴를 그린 원작과는 전혀 다른 줄거리로 나가서 보는 이들을 황당하게 했다는...)

 

 

Sharpe's Gold by Bernard Cornwell (배경: 1810년 스페인) ------------------------

 

로소프 대위에게는 딱 2분이 주어졌고, 그 시간을 잘 썼다.  그가 이끄는 KGL(King's German Legion : 영국왕의 지배를 받는 Hanover 지방에서 모집된 독일군) 경기병 중대 앞에는 프랑스군의 창기병이 있었고, 저 멀리 계곡 왼쪽 편에서는 프랑스 보병 대대가 싸움에 가세하기 위해 무질서하게 몰려오고 있었다.  물론 로소프는 그 보병들이 올 때까지 기다리지 않을 것이다.  그는 자기의 나팔수에게 명령을 내렸고, 그 전진 나팔 소리를 들었고, 그 소리의 음표 하나하나를 즐겼다.  그리고는 군도를 높이 쳐들고 자신의 애마 쏘르(Thor)가 내닫도록 했다.  쏘르라는 이름은, 적병의 얼굴을 물어 뜯고 말발굽으로 짓밟아버릴 수 있는 이런 말에게 무척이나 잘 어울리는 이름이었다.

빌어먹을 토끼굴 하나 없는 평평한 계곡 바닥이었으므로, 지형은 아주 좋았다.  로소프 대위는 이런 기회를 주십사하고 늘상 기도하고 있던 터였다.  창기병들은 적의 공격을 어떻게 젖혀내는지도 모르는, 그저 긴 막대기를 든 멍청이들에 불과했다.  창기병과 상대할 때면 그저 그 창끝만 피해서 그 안쪽 공간으로 파고 들기만 하면 상대방의 목숨은 이미 자기 수중에 있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로소프 대위는 뒤에서 함께 달리고 있는 부하들의 말발굽 소리를 들을 수 있었고, 그 멋진 광경을 보려고 일부러 안장 위에서 몸을 비틀어 뒤를 보았다. 말들이 어깨를 나란히 한채, 튀어오르는 잔디 덩어리를 말발굽 뒤로 하고, 뽑아든 칼날과 병사들의 이빨이 빛나고... 이런 기회를 갖을 수 있게 해주다니, 지금 영국 왕좌에 앉아있는 저 독일인 왕이 너무나도 고맙지 않은가 ?
(조지 3세, 그러니까 나폴레옹 전쟁 당시의 영국 왕은 원래 하노버 출신입니다: 역주)


프랑스 창기병들은 대응 동작이 느린 편이어서, 로소프 대위는 저들이 아마 새로운 말을 지급받은 신병일 것이라고 추측했다.  창기병이라는 것들은 적과 맞닥뜨릴 때 항상 최대 속도로 달리고 있어야 위력을 발휘하는 것인데, 저런 상태로 있으면 이미 볼장 다 본 것이나 다름없었다.  그는 쏘르를 오른쪽으로 틀었다.  이 순간을 여러번 연습했었고, 나팔수는 그에 따라 신호 나팔을 불었다.  이번의 나팔 소리는 좀 숨이 찬 듯 했는데, 말이 급회전을 하는 순간이었으므로 이해가 가는 일이었다.  평생 단 한번도 박차로 말을 다루지 않는 로소프 대위가 발꿈치로 말의 왼쪽 옆구리를 건드리자, 그 거대한 말은 마치 춤을 추는 것처럼 왼쪽으로 급회전을 했다.  군도는 이제 로소프의 쭉 뻗은 팔에서 튀어나온 스파이크처럼 아래를 향하고 있었고, 로소프는 함박웃음을 지으며 적의 얼굴을 따라 달려나가면서 적의 창들을 쳐냈다.  이 순간이 계속 되지는 않았다.  한 똑똑한 적병이 그를 상대하려 몸을 돌렸지만, 이미 그가 대여섯명의 프랑스군에게 일으킨 혼란의 틈 속으로  그의 부하들이 뛰어들었고, 그 순간 로소프는 이제 일이 끝났다는 것을 알았다. 

 
그는 이제 그저 쏘르를 뒤로 돌려 아까 자기를 대적하려 했던 그 프랑스 창기병을 상대했다. 
아직 1분이 남았고, 쏘르에게는 운동이 필요했으므로, 그는 말을 내달렸다. 달려오는 상대의 창을 군도로 가볍게 젖히고는... 아, 이 순간을 죽는 순간까지도 (가능하면 고향인 독일에서 죽고 싶었지만) 기억하고 싶다고 로소프는 생각했다.  클링겐탈제의 굽은 기병용 군도가 거의 척추에 닿을 정도로 프랑스 창기병의 목을 따버렸고, 로소프 대위는 매 순간 순간이 이 정도까지 좋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좋은 말, 좋은 잔디밭, 난장이들이 만든 칼날, 그리고 아침식사 꺼리의 적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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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소 뻥이 심한 이 소설 구절에서 보여지듯이, 창기병이 위력적이기 위해서는 두가지 조건이 갖추어져야 했습니다. 

 

 

첫째, 측면이 보호되어야 했습니다.

 

긴 창은 다루기가 힘든 물건이었습니다.  당시 창기병들이 사용하던 창의 길이는 대략 2.5m 정도였고 무게가 약 3kg 정도였는데, 이런 물건을 자유자재로 휙휙 돌려가며 사용할 수는 없었습니다.  속담에 '조자룡 헌창쓰듯' 이란 표현도 있지만 모든 기병이 조자룡은 아니니까요.  따라서 창끝이 향하는 쪽 말고, 뒤나 옆에서 적의 기병이 공격을 해올 경우 창기병은 몹시 곤란한 지경에 빠졌습니다.  그래서 조미니도, 창기병의 돌격 때 반드시 경기병들을 함께 보내서 측면을 보호할 것을 권고한 것입니다.

 

비슷한 운명을 맞이했던 것은 알렉산드로스 대왕의 마케도니아 밀집 보병부대(팔랑스, phalanx)였습니다.  이들은 비록 보병이었지만, 사리사(sarissa)라고 하는 엄청난 길이의 보병창을 무기로 하는 부대였습니다.  알렉산드로스 대왕은 이들을 이용해 페르시아를 정복했지만, 이들의 후예가 나중에 피드나(Pydna) 전투에서 로마 군단을 상대했을 때, 벌어진 팔랑스 사이의 틈으로 짧은 칼을 들고 밀고들어오는 로마군을 막지 못해서 일방적인 학살로 전투가 끝나게 되었습니다.

 

그러다보니, 창기병 돌격을 할 때는 항상 일열 횡대로 정확한 대오를 유지하며 달리는 것이 중요했습니다.  1km에 가까운 울퉁불퉁한 장애물 투성이의 전장을, 적의 포격과 먼지, 천둥같은 말발굽 소리 속에서 처음 시작했던 그 대오를 그대로 유지하며 400~800명이 일열 횡대를 유지한다는 것은 정말 어려운 일이었습니다.  그러자면 당연히 두번째 조건이 떠오릅니다.

 

 

 

(이딴 식으로 밖에 돌격을 못한다면 말입니다, 얘들처럼 창말고 차라리 칼을 들고 돌격하시라 이 말입니다.) 

 

 

둘째, 창기병은 고도의 훈련이 필요했습니다.

 

특히, 창술에 별로 익숙하지 않은 기병에게 창을 쥐어 주면, 그건 창기병이 아니라 저 위 소설 속에서 언급되었듯이 그저 '긴 막대기를 든 멍청이'에 불과했습니다.  사실 기병들의 군도(sabre)는 검이라기 보다는 도에 가깝습니다.  찌르는 것보다는 베는 것이 더 많으니까요.  마상에서 달리면서 쓰기 좋게 적당히 굽은 모습만 봐도 그렇습니다.  전에 The point always beats the edge ( http://blog.daum.net/nasica/5486189 ) 편에서 인용했듯이, 중국 무술에서도 '백일도 천일창 만일검' (百日刀 千日創 萬日劍)이라고 했습니다.  즉, 기병 군도보다는 기병창이 훨씬 더 쓰기 어려웠습니다.

 

영국이 자랑하는 최정예 기병부대 스캇츠 그레이(Scots Grey)들은 군도를 든 전형적인 경기병이었습니다만, 이들은 잘 알려진대로, 워털루 전투 때 프랑스군의 창기병들에게 그야말로 몰살을 당합니다.  이후 영국군도 창기병들의 중요성을 깨닫고 창기병 훈련 매뉴얼을 몇년 뒤 만들게 되는데, 여기에 따르면 창기병이 익혀야 하는 창술은 무려 55가지나 됩니다.  그 중 22개 동작은 적 기병을 상대하기 위해, 18개는 보병, 나머지 15개는 일반적인 동작이라고 하네요.

독일군 장교였던 빌헬름 발크(Wilhelm Balck)에 따르면, 창기병이 되기 위해서는 말과 창에 대해 강도높은 훈련을 오랜 기간 쌓아야 하므로, 훈련이 덜 된 기병들은 창말고 군도만으로 무장시켜 전투에 내보내는 것이 좋다고 할 정도였습니다.

 

 

 

(이렇게 마상에서 창을 거꾸로 들고 공격하는 거 아무나 할 수 있는 거 아닙니다.) 

 

 

창에 대해서 뿐만 아니라, 창기병은 당연히 말에 대해서도 완벽하게 훈련이 되어 있어야 했습니다.  앞에서도 언급했듯이, 성공적인 창기병 돌격을 위해서는 전체 기병대가 1줄 또는 2줄 횡대를 수백미터의 전력 질주 동안 완벽하게 유지했어야 하는데, 그건 정말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원래 창기병을 뜻하는 폴란드어 Ulani는 '능숙한 전사'를 뜻하는 타타르(Tartar)어 oglan에서 유래된 말이라고 합니다.  즉, 창기병의 기원은 역시 몽골 및 중앙 아시아 쪽이었던 것이지요.  실제로 폴란드의 창기병 연대는 폴란드에 정착한 타타르인들로부터 시작되었다고 합니다.  이들이야 뭐 당연히 말과 함께 한 한평생이었을테니 기마술에 있어서는 귀신이었겠지요.  

 

당시 폴란드 창기병 울란의 성공은 사실 창이라는 요소보다도 당시 폴란드인들의 기마술에 기인한 바가 더 클지도 모릅니다.  그 대표적인 사례는 다소 극적입니다.  1809년 비엔나에서, 나폴레옹이 지켜보는 가운데 폴란드 근위 경기병대의 요르단이라는 부사관이 프랑스 기병들의 정예라고 할 수 있는 황실 고참 근위대 (Old Guards)의 총기병(dragoon)들에게 1대2의 마상 시합을 제안합니다.  두명의 베테랑 총기병들이 이에 응해서 시합이 시작되었는데, 이 폴란드 기병은 순식간에 이 두명의 프랑스 근위병을 낙마시키고 맙니다.  이때 나폴레옹이 받은 폴란드 창기병에 대한 깊은 인상은 말할 것도 없었을 것입니다.

 

 

 

(폴란드 촌놈에게 둘이서 덤볐는데...이런 젠장, 황제 폐하가 지켜보시는데 X팔리게시리... ) 

 

 

그렇다면 잘 훈련된 폴란드 창기병들을 앞세우면 천하무적이었을까요 ?  당연히 아닙니다.  일단 다른 나라들에도 uhlan이라는 폴란드 스타일의 창기병 부대들이 있었고, 진짜 폴란드인들로 구성된 진짜 uhlan 부대들이 오스트리아나 러시아군에도 존재했습니다.  그래서 폴란드인들끼리 같은 스타일로 피를 흘려야 하기도 했습니다.  조각난 폴란드의 현실이 만들어낸 슬픈 광경이었지요. 

이렇게 창기병들의 앞을 가로막는 것은 적의 창기병 뿐만이 아니었습니다.  적의 흉갑 기병들도 곤란한 상대였습니다.  창기병들의 창끝으로는 흉갑을 뚫지 못하는 것이 일반적이었거든요.  그래도 창기병들은 뚫리든 뚫리지 않든 적의 가슴팍이나 얼굴, 목 등을 노리고 창을 찔러넣었습니다.  힘차게 부딪힌 창끝은 갑옷을 뚫지는 못하더라도 적의 흉갑 기병을 낙마시킬 정도의 위력이 있었거든요.  또 측면에서 들어오는 적의 경기병들도 창기병들의 성가신 적이었습니다.

 

그렇다면 적의 보병들은 어땠을까요 ?  보병 방진(square)은 거의 100이면 100 모든 적 기병들의 돌격을 막아낼 수 있다고 1812년, 기병대 영광의 순간http://blog.daum.net/nasica/5880589 ) 편에서 말했었지요.  보병들이 들이대는 긴 총검은 기병들의 군도보다 훨씬 길었으니까요.  하지만 2.5m 길이의 창을 가진 창기병들은 보병들의 총검보다 길었으므로, 보병 방진을 깨뜨리는 최상의 무기 아니었을까요 ?

 

 

 

(너 지금 말타고 창든 내게 소총따위로 개기는 거냐 ?) 

 

 

애석하게도 창기병들도 보병 방진에는 어쩔 수가 없었다고 합니다.  위에서 언급한 예전 글에 자세히 계산되어있듯이, 창이 좀더 길다고 하더라도 한자루의 창으로 8발의 총알과 8개의 총검을 당해낼 수는 없었으니까요.  그래도 경기병들에 비해서는 창기병들이 좀더 보병 방진에 유리했던 것은 사실입니다.

 

1812년의 보로디노 전투와 1813년 라이프치히 전투에서, 창기병들은 단 한개의 보병 방진도 깨뜨리지 못하는 초라한 전과를 세웁니다.  그렇다면 창기병들이 짱이라는 말이 과연 실적으로 증명이 되기는 하는 것일까요 ?

 

증명이 됩니다.  1813년 드레스덴에서, 오스트리아 보병 방진은 프랑스 흉갑 기병들의 돌격을 간단히 물리치지만, 막상 창기병들이 돌격해들어오자, 싸워보지도 않고 항복해버립니다.  이때 다른 오스트리아 보병 방진도 흉갑 기병들의 돌격은 막아내지만, 겨우 50여명의 프랑스 창기병들의 공격에는 산산이 부서져 버립니다.  뻘쯤했던 흉갑 기병들은 창기병들의 뒤를 쫓아 오스트리아 보병들을 학살했다고 합니다.

1813년 카츠바흐(Katzbach)에서도 비슷한 일이 있었습니다.  프랑스 엽기병(chasseur)들이 프러시아 보병 방진을 깨뜨리는데 실패하자, 창기병들이 소환되어 옵니다.  이들은 엽기병들에게 보란듯이 보병 방진을 깨뜨립니다.  1813년 데네비츠(Dennewitz)에서도 폴란드 제2 울란(Uhlan) 연대는 프러시아 보병 방진을 무려 3개나 깨뜨리는 기염을 토합니다.

 

 

 

(난 쓰러진 보병을 찌를 때 허리조차 굽히지 않는다네)

 

 

이렇게 폴란드 창기병, 울란의 명성은 나폴레옹 전쟁 내내 계속 되었고, 그 이후로도 이어집니다.  그러나 화무십일홍이라고, 창기병의 영광이 언제까지나 계속되지는 않았습니다.  영국군은 워털루 이후 창기병 연대를 애지중지했습니다만, 기관총과 후장식 라이플 소총이 광범위하게 사용된 남아프리카 보어 전쟁에서, 창기병은 한낱 움직이는 표적지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창기병 역사의 마지막을 장식하는 것은 제2차 대전 초기, 유명한 폴란드 창기병대의 독일군 탱크에 대한 돌격입니다.  어떤 책에서는 창기병들이 기관총탄을 뚫고 말을 달려, 일부는 탱크에 창끝을 부러뜨리기까지 했다고 장엄하게 썼습니다만, 사실은 전혀 그와 다르다고 하네요.

 

 

 

(세상에 이렇게 유서깊은 부대 찾기 힘듭니다... 폴란드 창기병 Ulani 제35 연대) 

 

일단 1939년 당시, 폴란드 창기병들은 여전히 Uhlan이라는 명칭을 쓰고는 있었지만, 주무장은 라이플과 경포였던 기마 보병에 가까웠습니다.  또한 창을 든 것도 사실이었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병사들이 선택했을때만 주어지는 무기였다고 합니다. 1939년 독일군이 폴란드를 침공했을 때, 폴란드의 울란 부대가 독일 보병 부대에 대해 기마 돌격을 했던 것은 16차례 정도였는데, 놀랍게도 대부분의 경우 성공적이었다고 합니다.  폴란드 기병 부대를 본 독일군들은 거미새끼처럼 겁에 질려 흩어졌다고 하네요.  문제가 되었던 탱크에 대한 돌격에 대한 이야기는 이렇습니다.  바로 이 16차례 돌격 중 한 곳에서도, 숲 속에서 휴식 중이던 독일 보병들에 대해 기마 돌격이 감행되었고, 독일 보병들은 뿔뿔히 흩어졌다고 합니다.  물론 일부 폴란드 기병들도 총에 맞아 쓰러졌지요.  전투가 있던 그 날, 2명의 이탈리아 종군 기자가 현장을 방문했는데, 이때 현장에는 뒤늦게 독일군 탱크도 와있었고, 옆에 폴란드 병사들과 말의 시체도 몇몇 있었다고 합니다.  그때 그 이탈리아 기자 중 한명이 그 광경을 보고 마치 자기 눈으로 본 것처럼 상상의 나래를 펼친 기사를 썼는데, 뭔가 멋진 이야기를 좋아하는 사람들은 그 기사를 사실로 받아들인 것이 그 전설의 실체라고 합니다.  다른 이야기로는 구데리안 원수의 비망록에 그런 거짓 전설이 비롯되었다고도 합니다.  어쩌면 구데리안 원수도 나중에 그 이탈리아 신문 기사를 읽고 비망록을 썼을 수도 있지요.

 

 

 

 

(탱크가 날뛰는 시대에도, 저 줄무늬 바지와 차프카 모자, 그리고 창을 드는 전통은 포기할 수 없지요.) 

 

적의 헛점이나 패주하는 적을 공격하기에는 창기병이 적격이었을것 같네요.. 유럽은 창기병 덕후.. ㅎㅎ
오오 만년 떡밥인 '폴란드 창기병의 닥돌사건'의 전모가 드디어 밝혀졌군요
폴란드 창기병이 나와서 그런데 언제 기회되시면 나폴레옹 시대의 스위스 용병에 대한 이야기도 올려주세요...
어디서 듣기로는 폴란드 기병대가 이동중에 진격중인 독일 전차부대와 우연히 맞딱뜨렸는데 이양반들이 도망치지 않고 그대로 자살공격에 가까운 용감한 돌격을 한걸로 들었습니다. 우린 상대가 당연히 안되지만 어떻게든 너힐 막고야 말겠다!! 라는 용감한 자살공격이었는데 희화화의 대상이 된건 폴란드사람들의 입장에선 많이 억울하고 짜증나는 일일것 같네요 ^ ^
그리고 보병 상대로 효과를 봤다는게 또 놀랍습니다. ^ ^ 생각해보니 전차와 비행기가 없고 1차대전 같은 참호방어선에 대한 돌격이 아니라면 보병부대에겐 상당한 위협이었을것 같네요. ^ ^
반지의 제왕의 로한왕국과 기병대의 모델이면서 대장부리바에도 나오는 폴란드 기병에 대해 더 많은걸 알수 있었네요 ^ ^ 감사합니다. ^ ^
그런데 갑자기 생각났는데 유럽의 전통적인 또다른 기병 강국 헝가리의 기병은 어찌됐는지 궁금해지네요 ^ ^
윙드 훗사르의 전통이 이어져내로온 것일까요? 나폴레옹 시절에도 폴란드 기병의 활약은 대단했나보군요. 좋은 글들을 계속해서 올려주셔서 감사합니다. 재미있게 보고 있어요. ^^
워우~ 이번글은 아주 장문이네요. 고생하셨습니다.
너무 재미있게봤습니다. 근데 샤프TV시리즈 어디서 구해볼수 없을 까요? 아시는분?
제가 창기병 로망이 있어서 그런지, 아주 재밌게 봤네요. 근세시대만 다루시나요?
2차대전때 기병돌격의 대미는 미국의 기병대가 필리핀에서 일본군에게 한적이 있다내요. 이때도 결과적으로 성공적이었다고 합니다. 중국군은 한국전때도 사단 규모의 기병대를 운영했다고 합니다...물론 적진을 향한 돌격을 하는게 아니라 말을타고 기동력을 발휘하는게 주목적이긴 해도 말입니다.
그리고 저 폴란드 기병 이야기는 제가 듣기로는 미국기자들이 퍼트렸다고 들었습니다만 정확한 떡밥 투척자들이 누구였을까요?
"말타고 창으로 탱크에 돌격" 스토리는 이탈리아 유명신문 기자가 사실과 다르게 처음 만들어낸 얘기라는군요. 이 기자는 폴란드 병사들의 용기를 칭송하는 것이 의도였답니다. 그런데 그 다음 이 이야기를 보도한 독일 선전매체는 폴란드인들의 무모함을 강조하려고 이같은 허위사실을 반복했고, 심지어 나중에 2차대전 이후 소련 매체에서도 폴란드 전시 지도자들을 깍아내리려는 의도로 이 얘기를 기정사실화 했다는군요. 전쟁에 패하고 한참동안 위성국가 신세로 전락했다고 지들 맘대로 너무 가지고 놀았군요...
창기병 돌격사건에 관심있으신 분들은 여기 링크 따라가서 읽어보시면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폴란드 창기병의 대전차 돌격사건"
http://user.chol.com/~skidrow6/nondan/cavalry.htm

군사관련으로 이 블로그 글들을 제가 상당히 좋아하는데, 폴란드 기병의 돌격사건에 대한 분석이 아주 잘 되어있고, 다른 글들 중에서도 굉장히 좋은 게 많습니다. 글들을 보면 전술 차원을 넘어서 전략과 전사, 큰 판을 보는 눈과 통찰력을 강조하는 분이신지라...

1939년 9월 1일 저녁에 있었던 폴란드 18울란연대 vs. 독일 20차량화사단 예하 보병 대대의 충돌 부분은 정확한 편입니다만 9월 3일의 독일 3기갑사단 부분은 인용한 소스의 사소하지만 중대한 오독으로 근거없는 추측이 되버렸더군요. 9월 1일에 벌어진 일이라고 외국 포럼에 올려진 글을 9월 3일 거로 잘 못 인용했으니까요.... 공들여 쓴 글이 사소한 실수로 절반은 낭설이 된 격이라 조금 안타까웠습니다.

폴란드 처럼 숲도 제법 많은 지형에서는 2차대전 때도 기병이 꽤 위력적이었습니다. 스텔스하게 이동해서 적 후방을 교란하는 게 가능했으니까요. 문제의 포모르스카 여단 소속 18연대도 개전 첫날 상부의 후퇴 금지령을 받자 '기왕 이렇게 된거 전투의 주도권이라도...'라는 판단 아래 후퇴대신 적 후방의 교란을 선택한 경웁니다.

여기서 블로그 주인장님의 서술과 조금 다른 점은 폴란드 기병들이 거의 피해 없이 독일 보병들을 제압한 시점에서 아군을 구원하려 달려온 독일장갑차들이 등장했다는 겁니다. 자꾸 탱크라고 하는 얘기들이 많은데 39년 당시 독일 차량화 보병사단 편제에는 42년식 편제와 달리 탱크가 한대도 없습니다. 단, 정찰대대에 차륜식 장갑차들은 있었죠. 따라서 다분히 kfdz 222 정도로 추측되는 독일 장갑차와 맞부딪친 폴란드 기병들은 이들 장갑차에게 당한 20명 정도의 전사자를 남기며 철수하게 되고, 이게 다음날 현장에 불려온 이탈리아 기자들을 통해 왜곡 보도됩니다.

여담이지만 한 가지 재미난 사실은 독일군 기계화 부대의 정찰대대가 기병을 자기들의 모태로 여겼으며 실제로 군복의 파이핑(상의의 컬러를 감싼 장식이라고 보면됩니다)까지 기병과 같은 분홍색을 썼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폴란드 기병들은 현대화에 적응한 새시대의 기병들에게 당한 셈이죠. 단, 여기서 우리가 알고 넘어가야 될 점은 그래도 1939년 시점에서 폴란드군을 통틀어 가장 기계화되고 현대화된 부대는 바로 이들 10개 기병여단들이라는 점입니다. 돈만 있었다면 이들을 1940년의 프랑스 육군 기병 사단들처럼 트럭과 탱크로 무장시켰을 마인드 정도는 폴란드군 수뇌에게도 있었습니다. 안타깝게도 공업화 정도와 국력이 독일과 비교가 안됐던거죠...

그나저나 국내에 이런 훌륭한 나폴레옹전쟁 관련 블로그가 있다는 게 상당히 놀랍군요. 경의를 표하고 싶습니다.
저 시대라면 조선식 기마궁수도 제법 쓸만한 존재였을것 같다는 생각이 드네요. 말탄 상태에서 머스킷 총을 장전하여 쏜다는것 자체도 힘든일이고...
여담이지만 폴란드기병의 몰락은 독일군 보병의 마우저소총도 한몫했답니다.

너른 들판에서 독일군 보병들이 딩가딩가 할때 폴란드기병이 만만한 먹이감으로 보고 어택땅 닥돌을 감행했지만 독일군보병들의 마우저소총의 무지막지한 사거리 때문에 오다가 다 죽었답니다;;
안녕하세요..싸이시절부터 애독자 입니다..

샤푸씨리즈를 다 받았는데요...

무려 18G나 되네요..



자막이 없어요...ㅠㅠ

혹시 자막 가지신 분 없으신가요??

대충은 알아듣겠는데..역시 실력이 딸리는지라...

옛날 용어들도 그렇고 사투리 비수뮤레 발음들도 그렇고..



tonpark@hanafos.com 입니다..
저 혹시 어디서 받으셨는지 출처를 좀 알수 없을까요; 저도 구하고 싶은데 말이죠.
저도 여러번 찾아봤는데 없는 듯 합니다. 그건 히스토리 채널에서 방영을 해서 그런지, 아니면 인기가 없는지 자막을 한 번도 본적이 없네요. 우리모두 보다 열심히 공부하죠..ㅠ.ㅠ
'백일도 천일창 만일검' (百日刀 千日創 萬日劍)이라고 했습니다. 즉, 기병 군도보다는 기병창이 훨씬 더 쓰기 어려웠습니다
여기서 '백일도 천일창 만일검' (百日刀 千日創 萬日劍)이 말은 도,창,검 을 능숙하게 사용하는데 도는 백일, 창은 천일, 검은 만일이란 말을 뜻합니다. 표현이 잘못된거 같군요
팔랑크스가 레기온에게 패배한 것은 레기온이 창을 쳐내고 들어갔기 때문이 아닙니다. -_-
팔랑크스 최전열에는 각기 튀어나온 정도가 다른 창들이 한줄에 대여섯개씩은 튀어나와 있어서 끝까지 파고들려면 창을 대여섯개씩은 쳐내야 하는데 사람에게 가능한 일이 아닙니다.
실제로 레기온은 팔랑크스 사리사를 상대로 '검/방패를 든 병사가 창을 든 병사를 상대로 할수 있는 모든 것ㅡ쳐내고 들어가기, 기어서 들어가기, 찔러들어오는 창 잡기, 방패로 막기 등등ㅡ'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압도적으로 패배합니다.
레기온이 승리한 것은 승리에 취한 팔랑크스들이 진격을 하다가 대열이 흐트러졌고, 측면을 노출시켰기 때문에 측면에서 파고든 레기온에게 줄줄이 썰린 것이 원인입니다.
실제로 '검/방패' 를 주력으로 한 보병이 활약한 것은 스페인 산악지방 등 극히 일부에 불과합니다.
검과 방패를 든 군대가 장창을 든 군대를 정면에서 이기는 것은 거의 불가능이나 다름 없습니다. 방진을 짰을 경우 더욱 그러합니다.
그리고 무슨 무협지도 아니고 '백일도 천일창 만일검' 같은 소리 하는 분들은 보면 걍 웃음만 나오네요. ㅋㅋㅋ
무협지 이야기 맞는데요
기병창이 몹시 다루기 어려운 것은 사실이고 군도보다 기병창 쓰기가 어려운 것도 사실입니다만 '도가 창보다 다루기 쉽고, 창이 검보다 다루기 쉽다' 따위의 헛소리는 참... 창은 인류가 사용한 병기 중 가장 다루기 쉬운 병기입니다. -_-
길이 4m~6m의 '랜스(기병창)' 와 '보병용 장창(파이크)' 이 다루기 어려울 뿐이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