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상

nasica 2009. 6. 7. 21:05

  

이건 몇달 전에 썼던 글입니다만, 최근에 미국 오바마 대통령이 중동 지방을 순방하면서, 그동안 이란이 줄기차게 요구해왔던 사과, 즉 1953년 이란 쿠데타에 미국이 관여했던 사실에 대한 사과를 실질적으로 했다는 뉴스를 본 김에 다시 띄웁니다.  이전에 보신 분들은 그냥 패스--

 

 

 

(내 이름은 워스파이트.  내 이야기 좀 들어볼래 ?)

 

위 사진 속의 전함은 20세기들어 가장 유명한 영국 해군 전함 중 하나인 워스파이트 (HMS Warspite) 호입니다.  영국 해군 전함 중 가장 유명한 전함은 아마도 후드 (HMS Hood) 호일 것입니다만, 그건 비스마르크 호에게 한방에 당했다는 불명예 때문이니, 그건 빼고 이야기하지요.

 

워스파이트 (Warspite) 호는 다음 두가지 점에서 20세기 초반 영국 해군을 상징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1. 제1차, 2차 세계대전을 모두 몸으로 겪어낸 역사의 산 증인

2. 정점에 달했다가 몰락하는 영국 해군의 모습을 단면적으로 보여주는 상징성

 

워스파이트 호는 제1차 세계대전의 가장 큰 해전인 유틀란트 해전에 참전하여 독일 대양함대의 집중 포격 대상이 되기도 했고, 제2차 세계대전 때 지중해와 태평양 작전에도 모두 참여하여 독일 공군의 유도 폭탄인 FritzX를 3방이나 얻어맞기도 했지만 끝끝내 침몰하지 않은 역전의 용사입니다.  (참고로 이탈리아 전함 로마 호는 단 두방의 FritzX에 침몰...) 

 

 

(코드네임 FritzX, 정식 명칭 FX1400)

 

워스파이트 호는 얻어맞기만 한 것은 물론 아니고, 노르웨이 연안 해전에서는 독일군 구축함들을 말아드셨고, 지중해에서는 이탈리아 해군 일소에 혁혁한 전과를 세웠습니다.  노르망디 상륙 작전 때는 그야말로 포신이 닳아 못쓰게 될 때까지 지원 포격을 하기도 했습니다.  특히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지중해 칼리브리아 해전에서, 이탈리아의 지울리오 케사레 호를 26,000 야드 거리에서의 명중시킨 것은, 움직이는 함정에서 움직이는 함정을 명중시킨 것으로는 역사상 가장 먼 거리의 명중탄 기록으로 남아있습니다.

 

워스파이트 호는 퀸 엘리자베스급 전함입니다. 한마디로, 영국 해군을 위해 만들어진 전함 중 당대 기준으로 가장 우수한 전함 클래스라고 할 수 있습니다.  (덕택에 디스커버리 채널의 Top10 수상 함정에도 올랐다는...) 배수량이 대략 3만톤인 이 퀸 엘리자베스급 전함들의 특징을 한줄로 요약하면 이렇습니다.  '기존의 아이언 듀크 클래스급 전함보다 더 뛰어난 화력과 스피드에도 불구하고, 기존 장갑 능력을 그대로 유지했다는 것'입니다. 

 

 

 

 

그 이유는 2가지입니다.  먼저, 새로 개발된 15인치 주포를 장착하여, 기존의 13.5인치 포보다 포탑 수를 줄이고도 더 우월한 화력을 갖출 수 있었습니다.  이렇게 무게를 줄여서 기존의 18개보다 더 많은, 24개의 보일러를 장착하여 기존 아이언 듀크 클래스의 21노트보다 더 빠른 25노트로 스피드도 늘릴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단순히 보일러 수자를 늘렸다는 것만으로는 이렇게 고속 순양함에 해당하는 속도를 낼 수는 없었습니다. 

 

그 비밀은 바로 중유(Fuel Oil) 보일러였습니다.  당시 전함들의 보일러는 석탄을 연료로 움직였습니다.  중유도 사용했습니다만, 그건 어디까지나 석탄을 보조하는 역할을 했을 뿐이었지요.  중유 보일러는 석탄 보일러에 비해 보일러의 무게 및 연료 무게도 더 가벼왔고, 출력도 훨씬 뛰어났습니다.  그래서 기존 아이언 듀크급 전함의 총 출력이 29,000 마력인데 비해, 퀸 엘리자베스급 전함은 무려 56,000 마력을 낼 수 있었습니다.

 

 

 

(누가 퀸 엘리자베스급 전함을 만든지 알아 ?  바로 나야 나) 

 

하지만 퀸 엘리자베스급이 도면에서 그려지고 있던 1912년 당시 영국 해군성의 수장인 윈스턴 처칠 경은 선뜻 중유 보일러를 채택할 수가 없었습니다.  이유는 간단했습니다.  당시 영국에서 석탄은 많이 났습니다만 석유는 나지 않았던 것이지요.

 

아시다시피 19세기 후반부터 영국을 비롯한 유럽에서는 많은 가정에서 조명용으로 등유(kerosIne)를 사용했습니다.  이 등유는 처음에는 석유에서 정제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당시 유럽에서 풍부하게 채굴되었던 석탄을 정제하여 만든 것이었습니다.  2차 세계대전 때, 독일도 석탄을 정제하여 가솔린과 디젤을 뽑아내었지요.  그러다가 1850년대 들어서서 오늘날 루마니아 지역 및 미국 펜실바니아 쪽에서 유전이 발견되면서 석유를 증류하여 등유 및 중유를 얻게 되었습니다.  1860년대에는 세계 석유 생산량의 90%가 카스피 해 연안, 오늘날 아제르바이잔의 수도인 바쿠 인근에서 채굴되었습니다.  즉, 당시 유럽 세계에서, 석유의 주공급원은 러시아의 영향권에 있던 동유럽 쪽이었습니다.

 

 

 

(1891년 바쿠의 유정들...) 

 

석유는 중동에서 나는 거 아니냐고요 ?  맞습니다.  고대 바빌로니아의 성벽을 쌓는데도 천연 타르가 사용될 정도로, 중동에는 석유가 많이 났습니다.  하지만 의외로, 산업용으로 사용될 만한 진짜 유전이 터진 것은 20세기 들어서서 입니다.  가령 쿠웨이트에서 유전이 발견된 것은 1938년이었습니다.  중동에서 가장 먼저 산업용 유전이 발견된 곳은 페르시아, 즉 이란이었습니다.  바로 1908년이었지요. 

 

 

 

(이란에서의 석유 시추 성공을 알리는 1908년 6월 3일자 편지) 

 

타이밍이 기가 막혔습니다.  바로 3년 뒤, 퀸 엘리자베스급 전함의 설계도가 그려질 때, 영국 해군에게 갑자기 페르시아가 매우 중요한 지역이 되었던 것입니다.  해군성 장관 윈스턴 처칠 경은 의회를 설득하여 영국-페르시아 석유회사(Anglo-Persian Oil Company)의 지분 51%를 사들입니다.  이때부터 페르시아의 비극이 시작됩니다.

 

원래 페르시아 지역은 19세기 초까지도 영국의 관심 밖이었습니다.  그러다가 나폴레옹이 이집트를 침공하면서, 금쪽같은 인도 식민지를 지키기 위한 전초 기지로서 관심을 가지기 시작합니다.  반면 러시아는 부동항을 얻기 위해 끊임없이 남하하며 페르시아를 계속 건드렸는데, 러시아가 나폴레옹에 굴복하여 프랑스 편에 서느냐 영국과 연합하느냐에 따라 페르시아는 영국과 러시아 사이에서 눈치를 봐야 했습니다.  그러나 여전히, 영국에게 있어 페르시아는 인도로 가는 길목일 뿐이었습니다.  그러나, 퀸 엘리자베스급 전함이 취역하게 되면서, 페르시아는 영국 해군에게 있어, 더 나아가 대영제국의 안보에 있어 매우 중요한 전략 요충지가 되어버린 것입니다.  덕분에 1, 2차 세계대전 내내 페르시아는 영국과 소련의 간섭에 시달리며 반점령 상태가 되어 버립니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자체 유전을 가지고 있던 소련보다는 영국의 간섭이 훨씬 심했습니다. 

 

신이 페르시아, 즉 이란에게 준 선물인 석유는 페르시아 사람들에게는 정작 별 혜택을 주지 못하고, 영국-페르시아(이란) 석유회사를 통해 서방 세계로 빨려나갔습니다.  과거에 처칠이 투자한 영국 자본 때문이었지요.  요즘 이라크 석유는 미국의 핼리버턴 사가 다 빨아간다면서요 ?  그러다가, 마침내 이란에도 똑똑한 (혹은 멍청한) 정치가가 나타납니다.  바로 무하마드 모사데크 (Muhammad Mosaddeq) 였습니다.

 

 

 

(오해하지 마십시요.  전 저 책 안 읽었습니다.) 

 

이 양반은 팔레비 왕조 하에서 민족주의 세력으로 가득찬 의회를 등에 업고 총리가 되었는데, 당연히 대단한 민족주의자였습니다.  이 양반이 정말 똑똑하다고 (혹은 멍청하다고) 했던 것은 퀸 엘리자베스급 전함을 위해 만들어진 영-이란 석유회사를 1951년 일방적으로 국유화 해버렸기 때문이었습니다.  당시 2차 세계대전의 폐허에서 비틀거리느라 노쇠함이 역력했던 영국을 물로 봤던 것이었지요.  사실 제대로 봤습니다.  영국은 일단 헤이그의 국제 사법 재판소에 이 사건에 대한 소송을 올렸다가 기각당했습니다.  대단한 떡을 빼앗긴 영국은 그 정당성 여부와 상관없이 격노했습니다.  결국 영국 정부가 '천조국' 미국에게 이란을 침공하자고 길길이 뛰었지만, 당시 세계의 제왕이었던 미국 트루먼 대통령은 '세계 경찰 미국이 그걸 허용할 수는 없다'며 영국을 말렸습니다.  당시 트루먼은 한국 전쟁으로 가뜩이나 골치아팠는데, 소련을 자극할 여력이 없었지요.  더군다나 영국만 좋은 일을 그렇게 해주겠습니까 ?

 

 

 

(미국 대통령 트루먼.  이 사람은 자선사업가가 아닙니다.) 

 

하지만 강대국들이 약소국을 칠 때는 군대로만 치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일단 영국은 미국에게 모사데크가 소련을 끌어들이려 한다고 모함을 했습니다.  그러다가 1953년, 이란의 영웅이 된 모사데크는 내친 김에 서방의 푸들이나 다름없던 국왕을 강요하여 나라 밖으로 쫓아내는 사건까지 터집니다.  여기까지는 좋았으나, 정말 이란이 소련 쪽으로 넘어갈 것을 두려워한 아이젠하워 대통령 당선자는, CIA 작전명 에이잭스(Ajax)를 승인합니다.  이 CIA 작전에 따라 이란 왕당파가 쿠데타를 일으켜 무함마드 레자 국왕이 복귀했고, 모사데크는 감옥 신세를 지게 되었습니다.  이때 CIA가 벌인 공작은 유치하다면 유치하고 무섭다면 무서운 것이었습니다.  바로 알바생 동원 !  국왕 만세를 외치며 폭력 시위를 벌인 알바생들을 거리에 풀어댔던 것입니다.  이렇게 알바생을 동원하여 분위기를 조성한 뒤, 미리 매수해둔 일부 군 병력으로 모사데크를 체포한 것이지요.  당시 길거리 소요에서 희생된 알바생들의 주머니에는 동일한 액수의 지폐가 많이 발견되었다고 합니다.  CIA 요원들이 현장에서 알바생들에게 봉투를 나눠줬던 모양이더라구요.

 

아무튼 이렇게 영-이란 석유회사를 되찾은 영국은 미국에게, 이란 석유의 40%를 떼주는 것으로 댓가를 치뤄줍니다.  결국 모든 것은 돈으로 연결되는 거지요.

 

 

 

(이때 영국-이란 석유회사는 British Petroleum Company로 이름을 바꿉니다.  이름이 낯설다고요 ? 

BP라고 하면 아마 좀더 익숙하실 겁니다.)

 

 

 

 

이후 이야기는 여러분도 잘 아시는 것입니다.  결국 호메이니에 의한 이슬람 혁명, 이란 미 대사관의 인질 사태, 이란-이라크 전쟁, 9.11 사태, 아프간 전쟁, 이라크 전쟁...

 

 

 

 

자, 요즘 이란과 미국 사이가 다시 좋지 않습니다.  저는 이란에 핵무기가 있냐 없냐보다는, 이란에 석유가 많다는 사실이 더 걱정스럽습니다.  북한에서는 '내래 핵무기 만들었서라우'하며 아무리 떠들어봐야, 미국은 별로 신경을 안쓰쟎습니까 ?  북한과 미국 사이에는 전쟁이 날 것 같지는 않습니다만, 이란과 미국 사이는 정말 걱정스럽습니다.  특히 이렇게 세계적 경제 위기가 닥쳤을 때는 더욱 그렇습니다.

 

잘 보고 있읍니다..아랍의 서방세계에 대한 거부감의 연원이 ...단순히 종교차이에만 기인한게 아니라 이런 경제적인 수탈의 역사 때문이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