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폴레옹의 시대

nasica 2009. 7. 1. 00:35

 현대 사회를 움직이는 에너지원은 바로 석유입니다.  석유를 에너지원으로 하는 경제는 장기적인 측면에서는 사실 매우 좋지 않습니다.  석유는 많은 오염 물질을 발생시킬 뿐 아니라, 재생이 불가능하고, 게다가 자원의 분포도 지역마다 고르지 않습니다.  일단 우리나라에 석유가 안나지 않습니까 ?  석유 기반의 경제는 이런 문제점들 때문에, 빠른 속도로 파멸을 향해 치닫게 됩니다.  석유 자원의 고갈이나 온실 가스 효과 뿐만 아니라, 석유를 수출하는 나라와 수입하는 나라 사이의 갈등이 경제적/군사적 갈등을 불러일으키기 때문입니다.

 

 

 

(저 삭막한 광경이 우리나라 전역에 가득하다면...  온국민이 기뻐 날뛰겠지... 응 ?) 

 

 

그에 비해, 나폴레옹 시대 직전까지의 경제는 매우 소박한 에너지원을 사용했습니다.  바로 나무입니다.  나무를 태워서 얻는 열로 난방을 하고, 음식을 만들고, 금속 제품을 만들었습니다.  직접적인 열 에너지 외에, 운송용으로는 황소나 말 같은 가축의 힘을 이용했습니다.  이렇게 나무와 가축을 에너지원으로 하면 좋은 점이 많습니다.  건조 지역을 제외한 세계 어디서나 쉽게 구할 수 있고, 복잡한 처리 공정을 거치지 않고도 곧장 땔감으로 사용할 수 있을 뿐 아니라, 무엇보다 베어낸 뒤 그 자리에 나무를 또 심는 등 관리만 잘 하면 지구 최후의 그 날까지 에너지원이 고갈되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세상 사람 모두가 좋아하는 풍경일 뿐만 아니라 경제적 가치도 대단하지요) 

 

 

하지만 실제로는 나무를 연료로 하는 경제는 발전의 가능성이 매우 제한되어 있었습니다.  바로 원하는 만큼 땔감을 구하기 어렵다는 것이지요. (오늘날 대량생산 대량소비 사회의 폐해를 보면, 이 제한점은 오히려 장점처럼 느껴지기도 합니다.)  농업이 발달하면서 인구가 늘어나자, 당장 숲이 망가지기 시작했습니다.  이는 일단 농사를 지으려면 숲을 베어내고 농토나 목초지를 넓혀야 하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그렇게 수가 늘어난 사람들이 식사를 하고 추위를 피하려면 당장 땔감이 필요하기 때문이었습니다.  이 때문에 동서양을 막론하고, 경제 문제에 있어 식량 문제 못지 않게 중요한 것이 연료의 확보였습니다. 

 

 

 

(인구 증가는 바로 이런 광경을 낳습니다) 

 

 

레이 황이라는 사람이 지은 "1587 아무일도 없었던 해" (가지않은 길 출판)라는 책은 명나라 시대의 정치/사회를 그리고 있는데, 여기에 어떤 유학자의 편지가 소개됩니다.  많은 친척들이 모일 때가 되자 이 유학자는 방문할 친척들에게 편지를 보내어 "쌀과 땔감을 가능한한 많이 지참하고 오라"고 부탁합니다.  또, 19세기 아일랜드에서 총각이 장가를 가기 위한 경제적 조건은 두가지였답니다. 감자밭이 있냐는 것과, 이탄(peat, 지표면에서 생성된 일종의 석탄)을 캘 수 있는 권리를 가지고 있느냐 하는 것이었습니다.  이 두가지 사례만 봐도, 식량 못지 않게 땔감이 중요했다는 것을 아실 수 있습니다.

 

요즘도 그렇습니다만, 대개의 숲은 그 소유권이 국가 또는 대지주에게 있었습니다.  그리고 역시 요즘도 그렇지만, 국가든 대지주이건 숲 주변 주민들이 숲에서 땔감을 채취하는 것을 그리 좋아하지 않았습니다.  특히 유럽에서는 귀족들의 사냥을 위해 숲을 보호해야 했기 때문에, 숲지기는 밀렵꾼들 뿐만 아니라 땔감으로 나뭇가지를 꺾거나 주워가는 농부들을 무자비하게 단속했습니다.  19세기 초 영국의 경우, 어떤 남자는 동네에 사는 가난한 노파에게 주려고 숲에서 마른 나무가지를 한다발 줍다가 체포되어 재판에서 유죄 판결을 받을 정도였습니다. 

 

 

 

(이 정도 땔감이면 요즘 가격으로는 얼마나 할까요 ?)

 

 

연료 문제는 사람들의 난방 및 취사에만 해당되는 것이 아닙니다.  사회가 산업 사회로 발전하기 위해서는 대량의 연료가 반드시 필요했습니다.  자동차도 없고 화학 공업도 없던 시절에 그런 대량의 연료가 어디에 필요했을까요 ?  바로 제철소 및 대장간이었습니다.  생각해보면 우리가 잘 알지 못하는 것이 많습니다. (저만 모르는 것인가요 ?)  고구려 시대나 로마 시대, 또는 유럽 중세 시대에는 제철 제련을 할 때 어떤 연료를 썼을까요 ?  요즘처럼 석탄을 썼을까요 ?

 

 

 

(17세기 명나라 때의 석탄 채굴 모습) 

 

 

영국에서는 2세기 경부터 로마인들이 석탄 채굴에 나설 정도로, 석탄은 일찍부터 인류에게 알려진 연료였지만, 깊은 땅 속에서 캐내기도 힘들 뿐더러 그 무게 때문에 수송비가 너무 비싼데다 연소 시에 발생하는 유독 가스 때문에 그렇게 많이 사용되지는 않았습니다.  특히, 석탄 속에 함유된 황은 사람보다도 철광석에 더 안좋은 영향을 주었기 때문에, 철광석에서 무쇠를 뽑아내는 용광로(blast furnace)에서는 석탄을 사용하지 못했습니다.  석탄이 철물 제조에 사용되는 것은 용광로에서 만들어진 선철(pig-iron)을 가열/가공하기 위해 대장간 등에서 사용하는 단조로(forge)의 연료 정도였습니다. 그렇다면 무엇을 썼을까요 ?  바로 숯이었습니다.  사실 철광석이라는 것은 돌 사이에 산화된 철이 박혀 있는 것이거든요.  높은 온도로 돌과 산화철을 녹이는 것도 필요하지만, 산소와 결합된 철을 분리해내려면 산소가 철보다 더 좋아하는 것을 제공해주어야 했습니다.  바로 탄소지요.  숯이나 석탄이나 사실 주성분은 탄소니까요.  (그 과정에서 대량의 일산화탄소나 이산화탄소가 쏟아져 나오는 것은 비극이지요.)

 

 

 

(야, 이 그림은 무단 전재하기 미안할 정도로 좋은 그림이네요.  어차피 이 친구도 책에 나온 그림 scan한 것 같긴 한데... 출저는 http://explorepahistory.com/displayimage.php?imgId=4266 입니다) 

 

 

여기서 잠깐, 그 많은 쇠를 다 숯으로 만든 것이라는 것이 믿어지십니까 ?  사람이 먹을 죽을 끓일 연료도 부족한 판에 그 많은 쇠를 만들어내려면 숲을 다 베어내도 부족할 것 같은데요 ?  여기서 두가지 사실을 생각하셔야 합니다.  먼저, 강철왕 카네기가 나오기 전인 19세기 후반까지도, 철은 주요 산업 재료가 아니었습니다.  그때까지 철이 가장 많이 사용되었던 곳은 무기류였는데, 총이나 대포나 모두 주요 부분만 철로 되어 있었고 나머지 부분은 모두 나무로 되어 있었습니다.  건축물에도 철근같은 것은 사용할 수 없었고요, 마차같은 것도 모두 나무로 만든 것이었습니다.  즉, 주 원료는 나무였다는 것이지요.  (여전히 숲은 베어지겠군요. T.T) 

 

두번째 사실은 좀더 뜻 밖인데, 18세기 초반에 영국 제철 산업은 꾸준히 쇠퇴하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이는 철물류의 인기가 시들해져서가 아니었습니다. 철물류의 사용은 오히려 늘고 있었습니다.  생산은 줄어드는데 사용량은 늘어났으므로, 당연히 수입량이 많아져서 당시 영국에서 사용되는 철봉의 2/3는 수입품일 정도였습니다.  영국의 경우 왜 제철 산업이 쇠퇴하고 있었을까요 ?  그 원인은 다름아닌 연료 부족 때문이었습니다.  즉, 숲을 베어내어 제철용 숯을 만들던 것이 이제 한계에 달하여, 숯 공급량이 떨어졌던 것입니다.  당시 영국 숲은 (귀족들의 사냥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한) 법률적 보호에도 불구하고 빠르게 줄어들고 있던 상태였습니다.  그렇다면 영국은 어디서 철을 수입했을까요 ?  바로 영국의 제철 산업이 쇠퇴한 원인이 그대로 반영되어, 스웨덴처럼 철광석 뿐만 아니라 숲이 풍부한 나라들에서였습니다. 

 

 

 

(스웨덴은 오늘날도 제철제강 분야가 발달한 나라입니다.)

 

 

이렇게 공급도 부족하고, 따라서 비싼 숯 대신, 16세기부터 석탄을 이용한 제철법이 많이 연구되었으나, 역시 석탄 속의 황 성분이 철광석에 악영향을 끼치는 문제때문에 계속 실패해왔습니다.  그러나 필요는 발명의 어머니라고, 결국 18세기 초 영국의 에이브러엄 다비(Abraham Darby)가 석탄을 가열 처리하여 탄소 함량을 높여 코크스로 만드는 법과, 이를 이용하여 숯을 사용하지 않는, 코크스 제철법을 최초로 성공시켰습니다.  그 결과, 영국의 제철 산업은 비약적으로 발전을 거듭하여, 마침내 1787년 영국 해군성에서는 여태까지 스웨덴에서 수입해서 쓰던 군함의 닻을 영국산 닻으로 교체했습니다. 

 

 

 

(이게 어느 나라 말이냐... 구글에서 막 찾다보니... 독일어 같은데... 암튼 코크스를 이용한 용선로입니다)

 

 

이렇듯 영국 제철 산업의 발달은 국가의 주에너지원이 어떤 것이냐에 따라 그 산업 발전이 얼마나 좌지우지되는가를 보여주는 좋은 예입니다.  하지만 영국이 주에너지원을 나무에서 석탄으로 바꾸면서 일어난 변화는 제철 산업 뿐만이 아니었습니다.  영국의 국내 수송 수단이 크게 발달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요즘 2MB 정권에서 대운하를 파내 안파내 4대강을 살리네 죽이네 말이 많습니다만, 18세기 영국의 국내 주요 수송 수단은 바로 운하였습니다.  이 운하들은 곡물도 아니고, 목재도 아닌, 바로 석탄을 수송하기 위해 건설된 것들입니다. 

 

방금 설명했듯이, 18세기 영국에서는 기존의 숯 대신 석탄을 이용해서 철을 만드는 공정이 도입되면서 제철 생산량도 많아지고, 덩달아 석탄 채광량도 부쩍 늘어났습니다.   문제는 영국이라고 동네마다 땅만 파면 석탄이 뭉텅이로 나오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었지요.  결국 석탄 광산이 있는 지방에서 제철소가 있는 공업 지역으로의 석탄 수송이 문제가 되었습니다.  요즘도 그렇습니다만, 당시 영국도 주요 에너지원은 특권층이 장악하고 있었습니다.  주요 탄광지역은 대귀족이 소유권을 가지고 있었는데요, 그 중의 한명이 브릿지워터(Bridgewater) 공작이었습니다.  이 양반은 월시(Worlsey) 부근에 있는 자신의 석탄 광산에서 캐낸 석탄을 맨체스터(Manchester)로 수송하여 이익을 챙겼습니다만, 이 석탄을 말을 이용하여 육로로 실어보내면 1톤에 9~10 실링이 드는 것이 큰 골치거리였습니다.  결국 이 양반은 많은 자본을 투자하여 그 구간에 운하를 건설했습니다.  이 운하의 경제성이 그럴싸한 것으로 증명이 되자, 이 양반은 석탄 광산보다도 운하 사업에 재미를 붙여, 나중에는 맨체스터에서 리버풀까지의 대운하를 구축하는데 자금을 댔습니다.  이렇게 18세기 영국의 최첨단 사회간접자본인 운하 건설이 활성화되어, 그 18세기가 끝나기 전에 영국에는 3천마일에 해당하는 운하가 건설되었습니다. 

 

 

 

(국민 여러분, 흥분하지 마십시요.  이건 2MB와는 전혀 무관한, 18세기 영국 이야기입니다.  브릿지워터 공작이 1767년 만든 브릿지워터 운하의 모습입니다.)

 

 

이 운하를 오가는 배의 에너지원은 무엇이었을까요 ?  말이었습니다.  아무래도 좁은 운하에서 범선을 쓸 수는 없었고, 화물선에서 나온 긴 밧줄을 운하 옆의 둑을 따라 걷는 말이 끄는 형태로 배가 움직였습니다.  속도는 시속 8~9마일 (12~14km) 정도였다고 합니다.  이런 운하의 모습은 C.S.Forester의 소설 혼블로워 시리즈 중 "Hornblower and the Atropos"에 잘 묘사되어 있습니다.  (2MB도 어쩌면 이 소설을 읽었는지 모르겠습니다.)

 

 

 

(이 표지의 그림은 운하 장면이 아니라, 플리머스에서의 넬슨 제독 장례식 모습입니다.)

 

 

영국이 18세기 내내 이렇게 석탄을 이용하여 산업 혁명을 일구어내고 있을 때, 영국의 영원한 라이벌이라는 프랑스는 무엇을 하고 있었을까요 ?  놀랍게도, 그냥 예전 방식을 거의 고수하고 있었습니다.  프랑스 사람들이 어리석어서였을까요 ?  물론 아닙니다.  문제는 프랑스에는 영국처럼 석탄이 많이 나지 않았다는 것에 있었습니다.  제가 전에 브리오슈, 혁명의 과자 ( http://blog.daum.net/nasica/5328379 ) 편에서 소개한 에밀 졸라의 제르미날(Germinal)이라는 소설에 나오는 그레그와르 부부는 그 증조부가 서기일을 하며 아끼고 아껴서 모아둔 돈으로 1760년 경 결성된 석탄 광산 개발 회사의 주식에 투자를 한 덕분에 유복한 중산층이 된 사람들입니다.  이 그레그와르 부부의 증조부가 투자한 석탄 광산은 처음에는 돈만 잡아먹고 결실을 전혀 내지 못하다가, 무려 60~70년이 지난 1820년대에 들어서야, 즉 나폴레옹이 폐위된 이후에야 번영을 가져오기 시작합니다. 

 

 

 

(초판본인가 ?  응 ?) 

 

 

이는 두가지 사정을 반영합니다.  프랑스의 느린 산업화와, 프랑스 영토에서는 석탄 매장량이 많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확실히, 프랑스에서는 석탄을 이용한 산업 발전이 영국에 비하면 매우 더디게 진행되었습니다.  그 이유의 일부는 기술 혁신에 대해 프랑스인들이 그다지 적극적이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이미 영국에서 석탄을 이용한 제철업이 활황을 띄고 있다는 것을 뻔히 알면서도 프랑스인들은 선뜻 그런 기술적 변화에 대해 돈을 투자하기를 꺼려했습니다.  하지만 더 큰 이유는 아무래도 프랑스에는 영국만큼 석탄이 많이 나지 않았다는 것에 있었습니다.  람부르(Rambourg)라는 프랑스 기업가가 1814년 적은 메모를 보면 이런 사정들이 잘 표현되어 있습니다.  이 메모에서, 람부르는 제철 과정에 사용되는 숯을 석탄으로 대체하자고 쉽게 말하는 사람들의 무식함을 개탄하면서, 그렇게 하자면 용광로나 제련로 등의 기계류 설계를 모두 바꾸어야 하는 것은 물론, 제철소의 위치까지도 탄광 근처로 옮겨야 하고, 그 철광석과 연료를 수송해야 하며, 공장 노동자들을 다 새로 훈련시켜야 하는데 그 어려움을 간과하고 있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사실 어느 정도 맞는 말입니다.  그렇게 하자면 많은 자본이 필요할 뿐더러, 무엇보다 석탄이 많이 나서 석탄 가격이 충분히 낮아야 했는데, 프랑스에서는 사정이 그렇지가 못했습니다. 

 

 

 

(내가 요즘 영국을 보니까 말이야, 산업 혁명을 하려면 석탄이 조낸 많아야 하더라고.  근데 우리 프랑스에는 석탄이 없쟎아 ?  우린 안될거야 아마...) 

 

 

나폴레옹 당시 프랑스의 탄광 지역은 다름아닌 벨기에였습니다.  사실 벨기에는 원래 프랑스 땅이 아니었습니다만, 나폴레옹이 프랑스 제국의 일부로 아예 합병을 해버렸습니다.  어차피 그 지역 주민들의 상당수는 프랑스어를 사용했지요.  나폴레옹의 정복 전쟁 중 가장 짭짤했던 정복지가 바로 벨기에였습니다.  벨기에 지역의 아이노(Hainault)와 리에쥬(Liege) 지역의 풍부한 석탄 광산이 프랑스 자본에 의해 개발되었는데, 이는 역시 제철업을 위한 것이었습니다.  중세시대부터 플랑드르, 즉 벨기에 지방은 영국과 깊은 관계를 맺고 있어서 영국으로부터의 기술 이전이 빨랐고, 벨기에의 노동자들도 그런 신기술에 익숙했기 때문에, 벨기에의 당시 산업화 속도는 거의 영국 수준이었습니다.  그랬기 때문에 아미앵 평화 조약을 맺을 때, 프랑스는 벨기에를 프랑스 제국의 일부로 둘 것을 강력히 주장했고, 결국 관철시켰습니다.  또 벨기에의 기업인들로서도, 프랑스와의 합병이 그리 나쁜 것만은 아니었습니다.  프랑스라는 커다란 시장과 하나로 합쳐지면서, 국경이나 관세 장벽이 없어져서 상대적으로 기업 활동에 유리해졌거든요. 

 

 

 

(영국 말고 유럽 대륙에서는 최초로 증기기관이 운영된 것이 1720년 벨기에의 리에쥬였다는거 아셨어요 ?) 

 

 

덕분에 벨기에 지방의 석탄 채굴업과 제철업은 절정의 호황을 맞이합니다.  나폴레옹 재위 기간 중, 벨기에 지방에서 생산된 석탄은 프랑스 제국 전체 생산량의 절반에 해당되었고, 벨기에 지방의 제철 생산량도 연간 17382톤에서 27925톤으로 증가했습니다.   고용도 활발해서, 프랑스 제국 전체 석탄 광부 수는 7만 명 정도였는데, 그 중 절반은 벨기에의 4개 행정구에서 고용되어 있을 정도였습니다.  당시 벨기에 리에쥬 지역의 무기 공장은 프랑스 제국 전체에서 4번째 크기였습니다.

 

하지만 나폴레옹 재위 시절 동안, 벨기에 이외의 지역에서는 산업상의 큰 발전은 없었습니다.  다만 대륙 봉쇄령에 따라 일부 산업이 보호 무역의 혜택을 어느 정도 보았을 뿐이었습니다.  그 중 대표적인 것이 바로 섬유업이었습니다.  나폴레옹 당시 프랑스의 주력 산업은 리옹의 견직물로 대표되는 섬유업이었거든요.  (조세핀의 옷과 대륙 봉쇄령 http://blog.daum.net/nasica/6862372 참조)  석탄의 부족으로 인해, 주로 숲이 많은 지역에 세워진 제철소에서 숯을 이용한 기존 제철법을 그대로 유지했던 프랑스의 제철 산업도 사실 대륙 봉쇄령이 없었다면 코크스를 이용한 신공법으로 제조된 영국산 철물 제품에 비해 큰 피해를 입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에너지 문제는 보호 무역이란 장벽으로 언제까지고 가리고 있을 수만은 없는 것이었습니다.  특히, 나폴레옹이 몰락하면서 프랑스의 에너지원에 크나큰 재앙이 닥쳐옵니다.  1814년 비엔나 조약으로 벨기에가 프랑스에서 떨어져 나가 버린 것입니다 ! 

 

 

 

(1814년 비엔나 회의의 모습. 누가 메테르니히인지 찾아 BoA요.)

 

 

1807년 벨기에가 프랑스의 일부였을 때 프랑스의 석탄 생산량은 5백만 톤에 달했습니다. 그러나 비엔나 조약 이후에는 겨우 1백만 톤 남짓한 정도였습니다.  안정적인 석탄 공급처를 구할 수 없었던 프랑스는 점점 산업화에 있어 영국에 뒤지게 되었고, 이는 제철업 뿐만 아니라 프랑스의 주력 산업이었던 섬유업까지 영향을 끼치게 됩니다.  즉, 영국에서는 석탄을 연료로 하는 증기 기관으로 방적기를 돌리게 되어 면포 생산량이 1935년 15만 톤에 이르게 되지만, 같은 해 프랑스의 생산량은 고작 4만 톤에 불과했습니다.  이는 증기기관의 위력, 즉 결과적으로 석탄 에너지의 위력이었습니다.

 

이렇게 안정적인 에너지원을 확보한 나라와 그렇지 못한 나라의 차이는 커질 수 밖에 없습니다.  영국에서 산업 혁명이 가장 먼저 일어난 이유 중 하나가 영국의 풍부한 석탄 매장량이라는 이야기는 결코 가벼운 이야기는 아닌 것입니다.  20세기 초반에 들어와서 세계의 에너지원이 석탄에서 석유로 바뀌게 되는데요, 그런 에너지원의 변화에 대해 영국이 얼마나 신중하면서도 발빠르게 대응했는지에 대해서는 영국 해군 퀸 엘리자베스급 전함, 그리고 페르시아의 비극 ( http://blog.daum.net/nasica/6862343 ) 편에서 다룬 바 있습니다. 

 

현재 전 세계를 지배하는 나라는 의심할 여지없이 미국입니다만, 러시아나 중국도 그 패권에 대해 조금씩 계속 도전하고 있습니다.  러시아에서 우크라이나를 거쳐 서유럽에 공급되는 가스관이나, 그 남쪽 및 북쪽으로 건설 중인 가스관 (Nord Stream과 South Stream), 그리고 중앙 아시아 지방에 중국이나 미국이 건설하려는 송유관 계획을 보면, 정말 우리가 잘 모르는 사이에 강대국들이 에너지원의 통제를 둘러싸고 얼마나 팽팽한 경쟁을 벌이고 있는지 엿볼 수 있습니다. 

 

 

(우크라이나와 폴란드를 거치지 않고 러시아의 천연가스를 독일로 수송하려는 원대한 계획, Nord Stream) 

 

 

 

(아프간과 이란을 경우하는 송유관 계획을 보면 저 동네는 정말 전쟁이 날 수 밖에 없는 그림입니다.)

 

 

역시 세계를 지배하려면 그 에너지원을 지배해야 하는 것이 맞는 모양입니다.

 

영국 다음으로 산업혁명이 일어난 곳이 1814년 벨기에라는 걸 듣고 좀 이상하다 생각했는데 저런 이유가 있었던 거군요...훌륭한 글 잘 읽었습니다. 그런데 나시카님은 과학에 대해서 상당히 많이 알고 계시나보죠?
그래도 대학에서 전공이 금속공학이었다는...

전략시뮬레이션 게임의 명가 패러독스 사 에서 만든 Victoria 나 HOI(Heart of Iron) 1 탄에서 주요 자원 중 1번이었던 Coal 이 왜 Coal 인지 잘 알게 되는 것 같습니다.

잘 읽고 갑니다.

플랑드르 지역의 산업 발전에 대해서 죽도록 수업시간에 배웠던 기억이 날듯말듯하군요.
nasica님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 ^
영국 친구들이 산업혁명의 성공으로 초창기에 큰 이익을 보았지만, 차후에는 프랑스도 영국에 대해 복수했다고 합니다. 사실 프랑스의 기술 공업수준은 영국보다 계속 떨어졌지만, 지금도 이름을 떨치는 <프랑스 명품산업>이 막강한 위력을 발휘했습니다.
나폴레옹 전쟁 이후, 영국과의 무역이 제기되자 프랑스 친구들은 오랜 궁중문화가 낳은 사치품들, 즉 화려한 비단제품과 가죽, 악세사리 제품을 이용하여 영국 귀부인들의 마음을 사로 잡았습니다.
사실 빅토리아 시대까지만 해도 영국의 상류계층에서는 궁중 교양언어로 <프랑스어>를 주로 사용하고 있었고, 귀족과 젠틀맨 집단에 포함되기 위해서는 지금 대한민국이 영어를 요구한 것 이상으로 프랑스어가 교양필수 과목이었다고 합니다.
그렇게 프랑스와 매일 싸웠음에도 프랑스어를 고급 궁중언어로 사용했다는 점은 조금 이해가 되질 않지만, 당시 영국은 물론, 거의 모든 유럽국가 상류층은 기본적으로 프랑스어를 할 수 있었습니다.
이를 반영하는 흥미로운 사실이 있는데, 영국군이 나폴레옹군과 스페인에서 반도전쟁을 수행할 당시, 동맹국인 포르투갈과 스페인 친구들 사이의 의사소통에 주로 사용된 언어는 영어, 스페인어, 포르투갈어가 아니었습니다.
"저 망할 프랑스 놈들을 쓸어버리자!" 라는 말을 프랑스어로 교환하는 웃기지 않은 사태가 일어나고 있었던 것입니다.
이렇게 프랑스의 이미지와 언어가 강력한 힘을 발휘한 결과, 영국 귀족부인들의 명품패션을, 영국의 젠틀맨들은 포도주와 브랜디를 너무 선호하여, 1870년대 이후가 되면 양국의 무역환경은 영국의 대규모 무역적자로 돌아서게 됩니다.
실제 영국애들이 얼마나 브랜디를 선호했는가는, 브랜디의 등급을 표시하는 단위인 V.O(Very Old) V.S.O.P(Very Superior Old Pale) X.O(Extra Old), Napoleon(최고 등급입죠)에서 알 수 있습니다.
즉, 주 고객이 프랑스인이 아닌 영국애들이었으므로 친절히 영어로 등급을 설명했던 것이었고, 영국애들이 예나 지금이나 가장 선호하고 좋아하는 브랜디는 바로 <Napoleon>이란 이름이 들어간 브랜디라고 하네요. ^ ^
당시는 금본위시대였으므로 영국애들이 프랑스 물품을 좋아하는 만큼 막대한 금이 프랑스로 유출되게 됩니다.
덕분에 영국이 1914년 금본위제를 포기한 이면에는 1차 세계대전이 가장 큰 영향을 미쳤지만, 실상 장기간 계속되었던 프랑스에 대한 막대한 무역적자, 즉 금의 대량 유실이 큰 영향을 미쳤다고 합니다.
지금도 대 프랑스 무역적자의 상당수를 프랑스 명품이 차지하고 있음을 생각하면 여성분들의 허영심은 참 무섭습니당. 아니, 여성분들의 패션
딴지는 아니고..
영국인들은 상류층에서도 불어를 그리 많이 사용한 것 같지 않습니다.
그 시기 상류층이라면 외국어 실력이 뛰어났고,
실제로 영국 귀족 자제들이 몇 년간 프랑스 등 대륙을 여행하며 공부하는 것은 흔했습니다.
(Grand Tour라던라요. 아담 스미스도 교수하다 그만두고 공작의 아들 가정교사로 프랑스에 갔었죠)
그런데 메테르니히가 영국을 방문하여 당시 영국인들이 유럽 상류층의 공용어인 프랑스어를 못 하는 것은 보고 경악했더랍니다. 그러자 안내하던 사람이 "빈에는 나폴레옹이 2(?)이나 갔지만 영국에는 한 번도 못왔죠."라고 했다나요. 불어를 안 배운 자부심인지 불어를 못하는 자존심인지, 어쨌던 영국 상류층의 불어 사용이 러시아나 오스트리아 등에 비견될 정도는 아니었던 것 같습니다.
늘 좋은 댓글 고맙습니다.
저도 이런저런 책을 읽다보니까, 영국인들도 외국어에는 다소 약한 듯 하다는 생각은 들더군요. 어떤 영국 장교가 총검을 들이대는 프랑스 군에게 항복할 때 "Je me rend" 라고 이야기를 해야 하는데 평소에 "Jemmy Round"라고 외웠기 때문에 그 긴박한 순간에서도 그 단어가 기억이 났다고 썼더군요. 집에서 불어 말고 러시아어로 이야기를 하면 벌을 받았던 러시아 중산층에 비해서는 불어가 많이 약한 편 같았습니다.
너무 잼있는 글 잘봤어요~^^
우리 남자들도 독일차에 대한 갈망은 무시무시하지 않습니까? ㅎㅎㅎㅎ

미국의 아성에 도전해보려고 발버둥치는 중국애들도 영어배우기에 미친듯이 몰두하는걸 보면
강대국의 힘이란 경제나 군사력만이 다가 아님 새삼 실감하게 되네요.
예전 사이월드 시절부터 nasica님의 글 정말 감사하게 생각하며 읽고 있습니다.
제가 많이 아는 분야도 아니지만, 그래도 제 생각을 좀 붙였으면 합니다.

프랑스의 산업화가 영국에 비해 "지체된", "후진적"이었다고 하는 견해가 20세기 중반까지 주류 견해였습니다만 20세기 후반 영국 경제의 몰락과 프랑스 경제의 약진에 따라 시각이 많이 바뀌었습니다.
즉 영국 산업 "혁명"의 혁명성을 부정하고, 점진적인 현상으로 보게 된 반면, 프랑스의 경우 위에서 밀리터리 리뷰님께서 지적하신 것처럼, 끝마무리 공정에 특화된 사치품 산업을 중심으로 한 산업 생산량의 증가에 초점을 맞추게 되었습니다. 즉 영국 산업 혁명의 "구조적 변동"에 회의를 갖게 된 이상, 양적인 산업 성장(부가가치의 창출)을 중시하고 프랑스의 산업화를 긍정적으로 보게 됐습니다.
이러한 변화는 사실 근대사에서 영국 중심적인 시각을 극복하고 근대사를 다양하게 보는 시각 - 동아시아의 역사를 서구(사실상 영국) 중심적 시각에서 탈피해 보려는 움직임 - 의 등장과도 맥을 같이 합니다. 프랑스 산업화에 대한 이해의 추이는 정말로 역사학 연구가 그것을 둘러싼 실제 역사적 변화에 얼마나 영향을 받는가를 보여주는 좋은 예인 것 같습니다.
좀 됐지만, 1988년 역사학보(죄송합니다, 호수를 잊었습니다)에 실린 프랑스 산업화에 대한 수정주의적 논문과 1996년 한국 서양사학회의 <<근대 세계체제론의 역사적 이해>>가 이러한 주제를 잘 다루고 있습니다.

그리고 자본주의 세계 경제체제의 등장 과정에서 석탄의 역할을 강조하는 입장은 십여년 전까지 국내에서는 크게 환영받지 못했던 것 같습니다. 계급투쟁이랄까, 민중의 힘을 강조하는 입장에서는 서유럽 산업혁명이 석탄의 유무에 좌우되었다는 해석이 왠지 지리 결정론을 떠올리게 했던 것 같습니다. 한 10년 전 Kenneth Pomeranz가 The Great Divergence에서 19세기 초까지는 영국과 중국 강남 지방의 경제적 수준이 사실상 같았다는 주장을 하면서, 양자간의 분기를 초래한 것이, (제가 이해한 범위에서 간단하게 말하면,) 석탄과 식민지라고 했는데, 저는 그 주장을 보면서 이 역시 지리 결정론적 시각 아닌가.. 했던 것 역시 저도 위와 같은 분위기에서 공부했기 때문이었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최근 한 10년 특히 부시 행정부에서 에너지 확보를 위해 그 XX을 한 것을 보면, 확실히 에너지의 역사적 역할을 그동한 과소평가했던 것은 아닌가도 싶습니다. 앞으로는 부시의 전쟁들 덕분에 에너지에 상당한 비중을 두고 전근대사를 재조명하는 연구들이 나오지 않을까도 싶습니다.
좋은 댓글 고맙습니다. 저도 님처럼 책을 좀 많이 읽어야 하는데...
나시카님은 역사적 물질주의를 지지하시나요?
역사적 물질주의가 뭔지 잘 모릅니다. 그냥 사람은 물질없이는 살 수 없다는 생각은 합니다.
역시 에너지가 있어야 산업을 움직일 수 있죠.. ^^;; 미네랄 얻으려고 멀티를 해야하는 것 처럼.. ^^

그런데, 석유/석탄은 정말 공짜 에너지라 할 수 있습니다. 수억년전 생물들이 이미 태양에너지를 탄화수소 덩어리에 봉인해 놓은 것이잖아요. 사람은 그져 에너지를 꺼내쓰기만 하면 될 뿐.

반면에 나무 같은 것은 매년 키워야 하고, 전기도 다른 에너지를 변환해야 하고...

어딘가 지하에 충전된 배터리가 무궁무진하게 매장되어 있다면 다음 번 산업 혁명은 그 지역에서 나타나지 않을까요? ^^
일찌감치 산업화를 한 덕에, 1차 세계대전 당시 벨기에의 경제규모가 세계 6위였다죠. 그 조그만 나라가....(물론 나라가 작기 때문에 1,2차 세계대전 모두 독일에게 털립니다만)

저도 요즘 누구때문에 운하는 치가 떨리게 싫어합니다만, 18, 19세기 영국의 운하 건설은 예상치 않은 학문적 성취를 가져옵니다. 근대 지질학과 고생물학의 바탕이 된 지식이 축적된 과정이 바로 운하 건설이었거든요.
조금 뚱딴지같은 소리겠지만 맨 처음 사진처럼 대규모 유전같은게 발견되는게 반드시 좋은것만은 아닙니다. 과거 네덜란드 해역에서 천연가스광이 발견되었고 즉시 개발에 착수 수출하기 시작했지요. 그런데 문제는... 뜻하지 않은 대규모의 외채가 들어오면서 환율이 대폭 하락했고 다른 교역재의 수출에 심각한 악영향을 주었습니다. 일명 화란병(Dutch disease)이라 불리게 되었는데, 일부 산업의 호황이 다른산업에 악영향을 미치게되는 패러독스입니다. 참 경제학이 이래서 오묘함.
프랑스것들은 잘나지도 않으면서 같잖은 자존심 때문에 남의 나라 잘되고 남의 나라 앞서나가는 꼴을 죽어도 못보지. 무조건 자기들 과거에 잘 나갔다는 것만 생각하는데, 진짜 잘 나갔던 나라는 영국 아니었던가? 영국이 80년대에 몰락한 것도 우연이라는 생각만 든다. 진짜 인간 됨됨이로 따진다면 영국애들만한 애들이 없다. 프랑스것들은 무조건 나만, 나만... 아우, 지겨워!
먼소리인지...
세계를 놀라게한 강남스타일, 또하나의 세계를 놀라게할 지구촌의 에너지 세기적인 원천기술, 수문변경조력발전소를 소개 합니다.

지구촌의 에너지 세기적 원천기술, 수문변경조력발전소가 한국에서 개발 되었읍니다. 해양에너지를 잠에서 깨운 이기술은 에너지대혁명을 이룰수 있을지....검색어 : 수문변경(다음,네이버)지구촌의 에너지 세기적인 원천기술인, 수문변경조력발전소는 친환경적인 조력발전방식입니다. 지구상에 유일한 복류방식이며 환경, 생태, 해수유통, 녹조, 적조, 염도구배, 그리고 경제성에서 가장 우수한 원천기술이며 1년 중 하루평균 발전가동률이(발전이용률) 40~50%로 단류식조력, 태양광, 풍력발전의 (15~25%) 2배이상 가동 되며 지구촌의 에너지대혁명를 이룰 최대의 원천기술 입니다.현재 지구상에 계획된 조력발전소는 모두 단류방식으로 발전계획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