헬레스폰트 !

nasica 2009. 10. 11. 15:22



(실제로도 저렇게 웅장했을까요 ?  아니라고 봅니다.)


고대 그리스 병사들의 식사 모습을 가장 잘 표현해 놓은 곳은 일리아드와 오딧세이입니다. 그러나 이 서사시들은 청동기 시대의 이야기로서, 도리아인들의 도래 이전, 그러니까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아테네와 스파르타로 양분되는 그리스 시대보다 훨씬 이전 시대의 이야기입니다.


일리아드와 오딧세이에 나오는 병사들의 식사는 주로 육류입니다. 생선에 대해서는 일언반구 나오지 않고, 주로 돼지나 소를 통구이 형식으로 먹는데, 솥단지 같은 것이 운동경기의 상품으로 언급되기는 하지만 실제로 솥을 이용해서 요리를 하는 장면은 전혀 나오지 않고, 끝이 갈라진 쇠꼬챙이 같은 것을 이용하여 모닥불에서 구워먹는 장면만 열심히 묘사됩니다. 또, 곡식에 대해서 언급되는 부분도 거의 없는데, 기껏해야 구운 고기 위에 보릿가루를 뿌려 먹는 (식성도 참 이상하다!) 장면이 묘사될 뿐입니다.




(의외로 육류를 꼬챙이에 꿰어 굽는 이미지를 찾기가 어렵네요...)


호머의 일리아드나 오딧세이만을 읽은 분들께서는 고전적인 그리스 시대의 생활상이나 전쟁의 양상에 대해 매우 그릇된 인상을 받았을 것입니다. 그 점에 대해서는 헤로도투스의 역사 앞부분에 자세히 언급이 되어있는데, 그 점에 대해서는 나중에 더 언급하기로 하고, 여기서는 음식 부분에 대해서만 말하도록 하지요.


먼 저, 그리스는 먹을 것 부분에 있어서는 그다지 풍요로운 동네가 아니었습니다. 애초부터, 지형이 대규모의 밀 농사에 적합하지도 않았고, 바다에서 엄청난 어획량이 있었던 것도 아니었습니다. 흔히 그리스는 해안선이 길기 때문에 수산물이 많았을 것이라고 생각들 하지만, 실제로는 어획량이 그다지 많은 편은 아니었습니다. "바다의 밀"로 알려졌던 중세의 북해산 청어에 비하면, 무척 보잘 것 없는 양의 생선만을 얻을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특히 펠로폰네소스 반도 이외의 지역에서는 애초부터 식량을 자급자족하겠다는 생각을 포기하고, 주로 수입 곡물에 의존하게 되었습니다.


이런저런 이유로 인해, 고대 그리스인들은 먹는 것이 신통치 않았는데, 주로 밀과 보리 등으로 만든 maza라는 이름의 납작한, 부풀리지 않은 빵같은 것을 먹었습니다. 이는 빵만드는 방법이 아직 그리스에 전해지지 않았기 때문이 아니고, 빵을 만들기에 적합한 밀가루가 비쌌기 때문이었습니다.  Maza는 대개 보리 같은 것으로 만들었거든요.  이걸 구워놓으면 곧 굳어서 딱딱해졌는데, 식사를 할 때는 이걸 포도주나 물 같은 것에 적셔서 거의 죽 비슷한 형태로 만들어 먹었다고 합니다.   뭐 일종의 시리얼이나 패스트푸드 같은 거라고 생각해도 괜찮을 것 같지요 ?  축제 때는 특식으로 밀가루로 만든 부푼 흰빵을 먹는 정도였으니, 그리스 아저씨들도 먹는 낙은 별로 없었나 봅니다.  아, 이 장면에서 알프스의 소녀 하이디가 고향 할머니에게 가져다드릴 흰빵을 모으는 장면이 생각나지 않으십니까 ?


육 류는 정말 부족한 편이었습니다. 육류라는 것은 정말 귀한 것으로, 일반 서민부터 부유층까지, 일상적으로 먹는 음식이 아니었고, 축제 때에나 한번 먹어볼까 하는 음식이었습니다. 최근에 많이 읽혔던 시오노 나나미의 로마인 이야기를 보면, 갈리아 인들은 멧돼지 다리를 뜯는 동안 로마인들은 밀가루로 만든 빵과 죽을 선호했다고 씌여있었는데, 사실은 로마인들이 고기를 싫어했다기 보다는 없어서 먹을 수가 없었던 것이었습니다. 대신 생선 종류는 그래도 좀 나은 편으로, 일상적으로 소비가 되었던 것 같습니다. 고대 그리스어로 '맛있는 것, 고기'라고 하면 생선을 말할 정도였습니다. 이 전통은 로마시대까지 그대로 이어져서, 로마인들도 육류는 별로 맛보지 못했고, 생선류를 대신 즐겨 먹었습니다. 케사르가 갈리아 원정의 성공을 축하하며 로마 시민들에게 베푼 연회에서 제공된 음식도 주로 빵과 뱀장어 구이였다고 합니다.




(사진 속의 설명대로 입니다.  쇠고기나 돼지고기, 양고기 같은 것은 오딧세이에 나오는 것과는 달리, 일반 그리스인들에게는 정말 먹기 어려운, 1년에 한두번 먹는 진미였고, 대개는 물고기로 만족해야 했습니다.)



그리스인들이 비교적 풍부하게 먹을 수 있었던 것은 올리브와 포도였습니다. 기후 및 지형상, 그 두가지 농사가 잘 되었던 것입니다. 더더구나, 이 두가지는 기름과 포도주의 형태로 가공되어 장기 보존이 가능했기 때문에, 해외로 수출이 가능하여, 가난한 도시 국가들이 외국의 곡물을 사들일 수 있는 돈줄이 되어 주었습니다. 

(하지만 웃기는 일은 현대에 와서는 올리브 오일이나 포도주 모두 그리스산이 유명하다는 이야기 못들어봤다는 것이지요.)




(저기 올리브 가운데는 뭘 박아넣은 거지요 ?  생각해보니 통조림 올리브 외에는 본 적이 없네요.)


특 이할 만한 점으로, 그리스인들은 포도주에 항상 물을 타서 마셨습니다.  사실 이렇게 포도주에 물을 타마시는 풍습은 특이한 것은 아니고, 중세에도 이렇게 물탄 포도주를 많이 마셨습니다. 물과 포도주의 비율은 사람마다 틀렸지만 대략 50:50의 비율이었습니다. 일부 프랑스 학자들은 그리스의 포도주는 너무 진득진득할 정도로 진했기 때문에 물로 희석시켜 마셨다고 하지만, 그건 프랑스인들의 포도주에 대한 집착을 합리화하기 위한 이야기같고, 실제로는 아껴마시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실제로, 이렇게 포도주를 물로 희석시켜 마시는 풍습은 로마시대는 물론이고, 중세 시대까지 이어졌으며, 포도주에 물을 너무 많이 타면, 손님들은 주인이 너무 인색하다고 비웃곤 했습니다. 또한, 그리스인들은 물로 희석한 포도주를 마시는 이유로, 원래 포도주를 그대로 마시면 취해버리기 때문에 그를 방지하기 위한 것이기도 했습니다. 실제로 스파르타의 어떤 왕은 스키티아인들과 교류하면서 그들의 풍습대로 물로 희석하지 않은 포도주를 그대로 마시곤 했는데, 결국 미쳐버렸다고 합니다. 그리스인들은 오늘날 우리들이 커피나 차를 마시는 것보다 더 포도주를 자주 마셨기 때문에, 실제로 이렇게 묽게 하지 않으면 모두가 알코올 중독까지는 아니더라도, 건강을 상당히 해쳤겠지요.




(물탄 거라도 좋으니 좀만 더 줘.... 그리스의 술잔은 워낙 납작해서 한번에 많이 마시지도 못했습니다.)



그렇다면 구체적으로 병사들은 무엇을 먹고 마셨을까요 ?


가 장 구체적인 묘사는 크세노폰의 페르시아 원정기(Anabasis)에 나옵니다. 1만명에 달하는 그리스 용병들이 페르시아 제국에서 빠져나와 그리스 접경 지역까지 왔을 때, 당장 먹을 식량이 부족했습니다. 이때, 용병 중의 한명이 스스로 전술가이며 장군의 능력을 갖추고 있다고 설명하며, 장군직에 임명해달라고 하였습니다. 이때, 병사들은 당장 먹을 것을 마련해준다면 그렇게 하겠다고 했는데, 이때 이 '장군직 희망자'가 마련해온 식량의 목록은 다음과 같습니다.


'스무명이 보리가루를, 스무명이 포도주를, 세명이 올리브를, 한명은 마늘, 나머지 한명은 양파를 각기 들 수 있는 만큼씩 들고 왔다'




(크세노폰 일행이 도착한 뒤 감격하고 있는 이곳은 지금의 터키령인, 흑해 연안의 소아시아 북부 해안입니다.)



뭔 가 상당히 빈약한 느낌이 들지 않습니까 ? 실제로 이 '장군직 희망자'가 가지고 온 식량은 약 8,000 ~ 9,000에 이르는 병사들에게 각각 1일치 식량도 되지 못했기 때문에, 장군직은 얻지 못했다고 합니다. 문제는 그 양이 아니고, 목록입니다. 이 병사들은 행군 중에 빵을 구울 화덕을 만들지도 못했을 것이므로, 이 보릿가루로 maza라는 부풀리지 않은 빵을 만들어 먹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양념으로 올리브와 마늘과 양파를 넣었겠지요. 현대적인 식단에서 보자면 채소가 많이 부족하다는 것을 금방 느낄 것입니다. 실제로, 그리이스 사람들 뿐만 아니라, 유럽에서는 19세기까지도 채소는 별로 먹지 않았다고 합니다 ! 채소는 어쩔 수 없이 먹어야만 하는 가난한 사람들만 먹었으며, 여유가 있는 사람들은 채소를 싫어했고, 별로 재배하지도 않았다고 하네요. 주로 지방과 전분 위주의 식사를 했던 것입니다. 로마군의 식량 목록을 보더라도, 주로 밀과 콩, 포도주, 그리고 양념으로 양파와 식초 이야기만 나오고, 채소 이야기는 전혀 나오지 않습니다. 심지어, 최근에 인기를 끌었던, 2차 세계대전을 배경으로 한 HBO의 미니시리즈 'Band of Brothers'를 보더라도, 미군 장교들이 장교 식당에서 식사를 할 때, menu가 고기국물(gravy)를 잔뜩 끼얹은 고기 한덩어리 (아마도 meat loaf였던 듯) 외에는 아무 것도 없던 것이 기억나십니까 ?

 

참조서적 :

 

Iliad by Homeros (Penguin books)

Anabasis by Xenophon (Penguin books)

빵의 역사 (하인리히 야콥, 우물이 있는 집)

먹거리의 역사 (마귈론 투생-사마, 까치글방)

새로운 카테고리가 생겼네요.. 어떻게 보면 옛날 사람들은 균형잡힌 식사를 하지못해서 수명이 길지

않은것 같기도 합니다.
고고학자들이 유골과 유적을 조사해 보니, 오히려 농경이 시작되면서 인류의 영양섭취가 심히 불균형해졌다고 하더군요.

하지만 저 목록은 일반 식량이라기보다는 군용이라는 점도 고려해야 할 것 같습니다. 현대도 군용식량은 웰빙과 맛보다는 고칼로리와 신속성(요리, 취식 모두)을 주로 따지니까요.
아무래도 일반적인 야채는 쉽게 상하고 그 무게에 비한다면 열량도 얼마 되지 못하니 군량으로선 환영받지 못했겠지요. 그나저나 그리스의 항해술과 대외무역이 발달하게 된 것도 다 먹고살고자 한 것이었군요. 저리 먹을게 없으니...
올리브사이에 껴있는건 터닙으로 알고 있습니다. 씨앗대신 껴넣어서 뭉계지지 말라고 하는거라 들었습니다. ㅇㅇ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그나저나 그리스인들은 해산물과 신선한 야채와 양고기를 배불리 먹었을 줄 알았는데 실상은 그게 아니었군요ㅇㅂㅇ 잘
그리스인들만 못 먹고 산 것이 아니라 전근대 시대 때는 삼시 새끼 먹는다는 거 자체가 '사치'로 여겨질 정도로 힘들게 살았습니다. 그러니 평균 수명이 서른 살 정도밖에 못 되었지요 -전염병 및 기타이유도 있지만 기본적인 영양공급이 안 되었으니 말이죠 -
항상 잘 읽고 있습니다.
일리아스와 오딧세아아 식단은
오늘날로 치면 철갑상어 알에 고급 송아지 고기에 제비집 스프를
자주 먹었다고 뻥친거였군요. ㅎ
인류가 먹고 살만한 것을 넘어, 비만이란 병이 보편화된 시기가 바로 1950년대 이후, 대규모 화학공업의 발전으로 인하여 비료와 농약의 대량생산이 가능해지고, 이를 통해 대규모 곡물생산이 가능해진 이후라고 합니다.
곡물의 대량생산이 가능하니, 이 곡물을 이용해 가축의 대량생산이 가능해지고, 육류가 흔해지니까 바로 영양과다와 비만이 심해지게 되었다고 하더군요.
이들 연유로 인하여 유기농 농산물을 선호하는 일부 유기농 애호가 및 초식주의자들은, 비료와 농약이 일류의 적인 것처럼 홍보하고 있기도 합니다.
그러나 미국의 영양학적 조사결과에 따르면, 유기농과 일반 비료와 농약을 사용한 농산물을 비교하면 양자의 영양학적 차이는 거의 없답니다.(1%차이도 없다네요.) 그리고 농약의 무서움을 많이 언급하지만, 아직까지 농약의 남발로 인해 인류의 건강이나 보건이 큰 위험에 처했다는 어떠한 결론도 난적이 없었다고 합니다.(저도 되게 놀랐습니다. ^^;)
실제로 비료와 농약이 발명되기 전과 비교해, 인류의 평균수명은 무려 2배나 증가했고, 인구는 19세기와 비교해 무려 5배나 증가하였습니다.
결국 저와 여러분 모두가 과식으로 통통해진 배를 만질 수 있게된 것은 <화학공업의 발전>이 가장 큰 영향을 미쳤다고 할 수 있습니다.

참, 다큐멘터리를 보니 야채이야기도 있더군요. 야채 역시 도시민이 대량섭취가 가능해진 이유는 바로 자동차와 냉동기술의 발전이 가장 큰 영향을 미쳤답니다.
야채는 2~3일만 지나도 신선도가 떨어지므로 그것을 도시에서 소비하기 위해서는 운송과 보관혁명이 요구되었는데, 그것이 가능해진 시기가 바로 1950년대 이후라고 하네요. 그 전까지 농촌을 제외하고는 야채를 먹는 일은 매우 드물었다고 합니다.
이외에도 19세기 중반까지 미국인들은 새롭게 상륙한 이탈리아 이민자들에게 이렇게 말했답니다.

" 너희 지중해(해산물과 야채가 풍부한)식 식사는 건강에 좋지 않으니, 영국식(고기에 감자뿐인) 식사로 바뀌라..."

허겁이죠. ^^; 더욱이 19세기 후반까지, 미국에서는 토마토가 악마의 열매, 그러니까 성경에 나오지 않은 것이므로 먹어서는 안된다고 가르쳤다고 합니다. 이건 엽기입니당...
이렇게 야채를 기피하는 문화를 가진 미국이나 영국의 야채 소비량은 아시아 국가와 비교해 턱없이 부족하고, 이런 연유로 건강을 해칠까바 미국에서는 통조림 등에 비타민B를 비롯한 여러 무기질을 의무적으로 넣게하고 있답니다.
또한, 아시아 국가들과 비교하여 해산물 섭취가 부족해 요오드(미역에 많지요.)부족으로 인하여 과거 미국이나 유럽국가들은 많은 갑상선 질환과 병에 시달렸답니다. 그래서 미국이나 유럽의 많은 국가에서는 식염(먹는 소금)에 의무적으로 요오드를 집어넣게 하고 있고, 현재 중국에서도 요오드 집어넣기 정책을 시작하고 있답니다.
쓸때없는 말이 많았습니다. 요는 야채와 해산물은 유기농이던 일반인던 간에 좋은 것이므로 많이 많이 드시라는 것입니다. ^ ^
올리브 씨를 빼내고 그 구멍을 메우기 위해 박은것은 빨간피망, 파프리카조각입니다
서울을 기준으로 볼 때 도시에도 텃밭이 많이 있었기 때문에 교통이 안 좋은 시기(조선 내내)에도 야채 섭취는 많이 했을 껄요.... 다른 도시도 마찬가지 아니까요?
크세노폰은 저때의 경험이 득이 되었는지 경제관념이 투철해져서 나중에 그리스에서 집에서 포도주와 식량 관리하고 노예 관리하는 등의 얘기를 써낸 책을 발간했지요
그 책 제목 좀 알려주세요.
크세노폰의 오에코니미쿠스 (Oeconomicus)라는 책입니다. 영어 단어 중 경제학을 뜻하는 economics의 어원이기도 한 책이죠.
올리브 오일->이탈리아
포도주->프랑스

그리스인들도 참 배가 아플 듯 싶습니다.

아 참, 그리고 그리스인들은 보통 서유럽인들은 선호하지 않는
문어같은 해산물도 즐겨먹는다고 합니다. 올리브 오일 팍팍 쳐서요.
단지 균형잡힌 식습관만으로 인해서 평균수명이 '무지막지하게' 길어진것은 아니라고 봅니다.

http://en.wikipedia.org/wiki/Life_expectancy

위키백과를 참조해보아도 말입니다. "(평균수명이 짧은) 20세기 이전 시대에 살던 사람들도 10대때까지 생존할 경우에는 '기대수명'이 지금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A pre-20th century individual who lived past the teenage years could expect to live to an age comparable to the life expectancy of today.)"고 하네요.
하기야 솔로몬 왕 조차 그의 글 전도서를 통해 기원전 1000년경 수명이 70이요, 길면 80이라는 비교적 현대와 별 차이 안나는 기대 수명을 쓴바 있죠.
시오노 나나미도 말했듯 평균수명은 영유아 사망율의 급격한 감소에 기인한바가 제일 큰 것 같습니다. 하지만 영유아 사망율에 영향준것이 질병과 대기근이 모두 포함되니 풍부한 식단, 영양학적 개선의 효과가 수명연장에 상당한 영향을 미친 것은 분명할듯 합니다.
올리브 사이의 저 붉은 열매같은건 스페인어로 Pimiento라고하고 영어로는 cherry pepper 부르는 겁니다. 대부분의 그린 올리브에는 Pimiento를 채워넣어서 팔지만 가끔은 원래의 씨가 들어있는걸 팔기도하더군요. 이 블로그는 너무 재밋어서 몇번을 일게되나 모릅니다~ 감사합니다~
와, 성서에 나오는 묘사가 정확한 것이었네요! 당시 지중해 일대 국가들은 대체로 올리브 기름과 거친 가루(아마 보리 등이 해당 될 듯 합니다.) 국내 번역된 '떡'이라는 표현도 당시 만들어 먹던 빵을 생각하면 상당히 적절한 의역이라고 생각합니다. 프랑스 혁명 때에도 "우리에게 빵을 달라!"라는 표현에서 '빵'이란 다름 아닌 당시 귀족들이 먹던 발효빵을 가리킨 것이라고 프랑스 문화사 교수님이 밝혀주신 기억도 나고요.

신구약을 합쳐서 왜 곡물에 관해서 고운 가루와 거친 가루를 따라 분류했고, 발교병과 무교병을 나누어 예수가 "누룩을 조심하라"는 비유를 하신 것, 식사하는 장면에서 고기를 먹는 장면은 거의 없고, 거의 말린 생선과 떡을 먹는 묘사가 많은 것도 정확한 풍속을 담은 것이었네요. (예수가 부활하신 후에 제일 먼저 드신 것도 구운 생선이었고..)

서구인들이 식탁에 고기를 주찬으로 올리게 된 것은 지극히 근대에 이루어진 것이라는 것을 재확인하게 되고, 이것은 기존 전통 양식들을 빠르게 파괴하고 이성적 합리주의에 기초한 신문화를 이룩하려던 당시 사회분위기와, 그것을 공고하게 지탱하게 한 1860년 이후의 제국주의 침탈상황과 맞물려 있군요.

여담이지만 간디의 자서전에서 육식을 금하는 집안에서 자란 간디에게 그의 친구들이 고기를 먹을 것을 권할 때, 우리를 침탈한 서양인들의 강한 힘도 알고보면 고기를 먹는 식문화에서 비롯한 것이라고 설득했다는 구절이 있었더라고요.

참 서양에게 있어 '근대'라는 것은 마치 무슨 '괴물'과도 같게 느껴집니다.. 이전의 가치가 전혀 없지 않는 것 같으면서도, 실상은 전통적 가치들을 무차별적으로 파괴하고 전혀 이형의 세계를 만드는 결과를 초래하는...

왜 데리다나 리오타르같은 후기 구조주의자들이 그렇게 무섭게 근대성을 공격한 이유도 조금은 납득이 되네요.

잘 보고 갑니다 ^^
그 당시에 풍족하게 먹은 인류가 어느 민족이 있겠습니까? 글의 뉘앙스로 보면 그리스인들은 늘 먹을꺼에 허덕인 집단으로 보일지경입니다.
당시 유목민 만이 고기와 젖을 어느정도 먹었고, 이집트 조차도 고기는 귀했습니다. 그리스보다 500년후 전성기를 맞이한 한나라, 고구려 백제 조차도 농경국가라는 타이틀과는 다르게, 곡류와 고기는 1년에 고례행사때나 맛볼 만한 진귀한 음식이었습니다. 즉 전세계 어느 민족은 그 당시에 고기를 보편적으로 먹을 수 있었던게 아닙니다.

고대 그리스 도시지역에서는 고기가 비싸지만, 돼지고기는 싼편이었습니다. 그래서 쏘세지와 같은 육류는 가난뱅이나 부자에게나 흔한 음식이었죠. 또 돈있는 귀족들은 염소, 양, 소, 돼지, 오리 따위를 키울 수 있었으며, 심지어 농사꾼조차도 땅만 있다면 어느 동물이든 키워냈습니다. 즉 부자, 귀족까지도 고기에 허덕인 나라가 아니라는 거죠.

지금이야 유제품류가 웰빙식품중 하나이지만 당시 그리스 인들에게는 요거트, 암양젖으로 만든 치즈, 계란, 메추라기알은 보다 일상적인 데일리용 식품이었으며, 그리스 연안지방에서는 문어, 오징어, 조개, 갑각류등은 매우 흔한 것이어서 올리브유에 구워먹거나 기름에 튀겨 먹었습니다.
문제는 내륙지방으로 후송하는데에 보관이 되지 않기 때문에, 본토 그리스에서는 해산물이 진귀한 것이었습니다. 이는 조선시대에도 마찬가지입니다. 1950년 이전 냉동기술과 운송기술이 보편화 되기 전까지 전세계 내륙인들에게 해산물은 진미 입니다.

위에 언급하신 빵에 대한 것은 잘못 되었습니다. 그리스인들은 주로 보리와 밀을 이용하여 만들 수 있는 모든 걸 만들어 먹었는데, 건조시켜 끓인 물에 풀어 죽처럼 쑤어 먹기도 하였고, 동시에 빵과 플렛브레드로도 모두 만들어 소비했지 빵은 년중 행사처럼 먹고 죽만 풀어먹은게 아닙니다.
연중 행사처럼 먹은 빵은 밀을 이용한 것으로 기원전 5세기 이전 이야기 이고, 6세기 부터는 일반 시민들도 사고 팔고 먹을 수 있도록 대중화 되었습니다. 보리빵은 까다로운 제조법을 제외하고는 훨씬 대중화된 요리였습니다.

문명국 중 중국, 이집트, 인도를 제외하고는 대개 나라가 곡물에 대한 부담이 컸지만, 그렇다고 문명국 사람들이 배불리 풍족히 먹은 것은 아닙니다. 문명국들의 최대 약점은 육류에 대한 부재였으며, 해산물은 그리스와 같이 연안인들 외에는 구경조차 하기 힘들었던게 대부분입니다. 사람의 체력의 생산과 유지에 있어서 육류는 필수적이며, 이는 현대 50-50년전 이전까지는 모든 인류의 공통적 난제 였습니다.
내용 추가합니다.
조사해보니 고대시대에 보편적인 주식의 종류는 벽화나, 도자기, 문서와 같은 것에서 취급하는데, 문서의 주류인 공문서에 나올리는 만무하고(통상목적 외), 나머지 문서는 대개 문학과 관련되어 신빙성을 얻을 수 없기에 벽화에서 주로 찾아낸다고 합니다. 근데 이집트 벽화에는 생선 그림이 많은 반면 그리스 벽화에는 생선에 대한 벽화가 거의 없기 때문에 일부에선 고대그리스의 해산물 섭취에 대해 부정적이나, 아테네를 비롯한 내륙 도시국가에서 참치, 정어리, 숭어, 청어, 멸치가 절임이나, 날것 형태로 매우 흔하게 섭취되었던 것은 사실입니다.
반면에 이집트는 나일어류 외에는 해산물 수급이 어려웠구요. 나일어류 같은경우는 전계층이 손쉽게 싸게 풍족히 먹을 수 있었다고 하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