헬레스폰트 !

nasica 2009. 10. 25. 09:36


고대 그리스 병사들의 급료에 대해서는 설이 몇가지 있는데, 조금씩 주장하는 바가 다른 것 같습니다.




(내 월급이 궁금해 ?)



설#1. 시민 병사들은 따로 급료를 받지 않았을 뿐 아니라, 자신과 자신의 노예가 필요로 하는 식량도 스스로 비용을 대야 했다.
설#2. 시민 병사들도 국가로부터 일정액의 급료를 받았으나, 대개 이 돈은 병사 자신과 노예의 식량 구입에 쓰였다.
설#3. 용병들은 분명히 따로 급료를 받았으나, 액수가 적은 편이었고, 대개 숙련공의 절반 정도였다. 용병들이 돈을 벌 기회는 대개 적 도시를 약탈할 때 뿐이었다.
설#4. 방어전에 고용되는 용병들에게는 급료가 지급되었으나, 적 영토를 침공하기 위해 고용된 용병들에게는 급료가 지급되지 않았으며, 용병들은 순수하게 약탈을 목적으로 전쟁에 참여했다.

이 주장 모두가 맞을 수도 있습니다. 펠로폰네소스 전쟁이 장기화되면서, 전쟁의 양상이 다양한 형태로 전개되었기 때문입니다. 펠로폰네소스 전쟁 이전에는 위의 설#1이 일반적이었던 듯 합니다. 그러다가 전쟁이 장기화되면서, 일반 시민병들의 가세가 몰락했고, 그러면서 일반 시민들도 일종의 용병처럼 변질되어 전쟁에 참여하게 된 모양입니다.  일반 시민들이 용병처럼 변질되었다는 말은 얼마되지도 않는 급료를 노리고 병역에 자원했다는 이야기입니다.  심지어 굳이 국가에서 전쟁을 하지 않아도, 먹고 살기 위해 다른 도시국가의 전쟁에 병사로 참전하는 경우도 많았나 봅니다.


투키디데스가 쓴 펠로폰네소스 전쟁사를 보면 재미있는 기록이 있습니다. 





펠로폰네소스 전쟁이 막바지에 이르렀던 아에고스포타미의 전투를 보면, 아테네 측이나 라케다에몬(스파르타) 측이나 병사들의 급료를 마련하기에 급급하였던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라케다에몬이 페르시아의 재정지원에 힘입어 선원 일당을 평소의 2오볼에서 3오볼로 올리자, 상당수의 아테네 측 선원들이 라케다에몬 측으로 넘어왔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설마 아테네 시민들이 급료 문제로 적국으로 투항할 리는 없으므로 그 선원들은 용병들이었을 가능성이 큽니다. 그러나, 아테네 시민이라고 해도, 선원들은 대개 빈곤층 출신이 많았으므로, 그런 장기간의 전쟁에서 급료없이는 스스로 먹고 살 길이 막막했을 것입니다. 따라서 적어도 자신의 식량을 살 수 있을 정도의 급료는 받았을 것으로 생각됩니다. 



(저 좁은 배 안에 빽빽히 앉아서 노젓는 수병들의 급료를 생각하면... 저건 군함이 아닙니다 돈먹는 하마입니다)



위에서 언급한 일당 2, 3오볼이라는 액수가 당시 병사들의 절박함을 반증해줍니다.  평상시 그리스 숙련공의 하루 일당이 약 1드라크마, 즉 6오볼이었습니다.  즉 평상시 일당의 1/2, 1/3 정도의 일당만으로도 죽음을 무릅쓰고 전쟁에 참여했고, 더 심각한 것은 평상시 일당의 1/6에 해당하는 돈에도 어제까지 같이 싸우던 아군을 배신할 정도였다는 이야기지요.  당시 사람들이 먹고 살기가 무척 어려웠다는 것을 보여주는 일화입니다.

용병하면 만화책이나 뭐 만화책 수준의 헐리웃 영화때문에, 흔히들 상당한 보수를 받는 전투의 귀재들이라는 생각이 들겠지만, 원래가 용병이라는 직업은 정말 먹고 살기가 힘들어서 위험한 일에 몸을 던지는 직업이기 때문에, 급료가 상당히 낮은 편이었습니다. 이는 우리가 살고 있는 현 시대도 마찬가지입니다.  최근 몇년간 이라크에 파견되어 나가는 민간 무장 경비업체들 직원들을 보면, 미국 내에서 제대로 된 직장을 구하지 못하여 어쩔 수 없이 가족과 눈물로 작별하며 삶과 죽음이 교차하는 이라크로 떠나는 사람들이 상당수인 모양이더군요.




(알고보면 이 아저씨들도 처자식 먹여살리려고 목숨을 건 불쌍한 가장들...)



특히 용병은 정예병과는 거리가 좀 있었습니다. 그리스 도시 국가들의 주력부대는 중장보병(重裝步兵, hoplites)이었는데, 적어도 전쟁 초기에는 이들은 모두 100% 시민병으로 이루어져 있었습니다. 그것도 어느 정도 재산이 되는 시민들만이 중장보병이 될 수 있었는데, 이는 그 갑주와 방패가 상당히 비싼 물건이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애초에 이런 무장을 갖출 수 있을 정도의 재산이 있다면, 굳이 목숨을 걸고 남의 나라 전쟁에 끼여들 필요가 없었을 것입니다.




(용병들 중에서는 이렇게 영웅적인 무장을 갖춘 호걸을 찾아보기 힘들었지요)



대개 용병은 중장보병을 보조하는 역할, 즉 경장보병(peltast)나 궁수, 돌팔매꾼 등으로 참전했습니다. 원래 그리스인들은 도리아인의 도래 이후로는, 활에 대해서 '야만족들의 주무기'라는 그리 좋은 생각을 가지고 있지 않았기 때문에, 그리스 본토인들 중에는 솜씨있는 궁수들이 많지 않았습니다.  대개 크레테 섬 출신의 궁수들을 많이 고용했습니다. 그리고 트라키아의 경장보병들과 로데스 섬의 돌팔매꾼이 유명했습니다. 그러나 나중에 가면 이런 지역 출신 말고도, 가난한 지역 주민들이 대거 용병으로 참전하기 시작했습니다. 대표적인 지역이 아르카디아 지역으로, 이 지역은 내륙 지방이라 교역도 어렵고, 또 대부분이 산악지형인 관계로 농사도 잘 안되어서, 주민들 생활 수준이 매우 낮고, 큰 도시도 없던 지역이었습니다.




(처음에는 진짜 트라키아인들을 불러서 펠타스트로 썼지만, 나중에는 트라키아식으로 무장한 그리스인들이 펠타스트 역할을 수행했습니다.)



용병 중에 예외적인 경우가 있다고 하면, 페르시아의 왕자 키루스(Cyrus)를 따라 페르시아 내륙지방으로 행군했던 1만명의 그리이스 용병단, 세칭 키루스의 1만명이 있습니다. 이들은 대부분 중장보병으로 이루어진, 비교적 정예부대로서, 펠로폰네소스 전쟁이 끝나서 당장 먹고 살 길이 막막해진 병사들이었습니다. 이들 중 일부는 고향에 어느 정도 재산이 있는 자들도 있었으나, 이들 역시 대부분은 가진 갑주와 무기를 빼면 남은 재산이 거의 없는 자들로서, 이들이 키루스의 소환에 응한 것도 대부분 급료와 약탈물에 대한 희망 때문이었습니다. 실제로, 이들은 갖은 고생 끝에 그리이스 변경 지대로 돌아온 다음에도, 종군 중에 떠들던 바와는 달리 고향으로 가지 않고, 다시 스파르타의 왕 아게실라우스에게 고용되어 다시 소아시아 지방에서 용병 생활을 계속 했습니다. 고향으로 돌아가도 먹고 살기가 힘들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극히 일부 병사들은 고향으로 돌아갔습니다만, 이들도 그 여비 마련을 위해서 가지고 있던 갑주와 방패를 팔아야 했다고 하니까, 사실 '키루스의 거지들'이란 말도 그다지 틀린 말이 아니었던 것이지요.



(키루스가 전사한 쿠낙사 전투에서의 그리스 용병들... 몇푼이나 벌어보겠다고... ㅉㅉ)


이렇듯 용병들의 가장 큰 관심은 약탈물과 급료였으나, 전쟁 결과가 신통치 않았을 때는 물론, 심지어는 이기고 있는 측에 가담했다더라도, 급료가 체불되기 일쑤였습니다.  심지어 그토록 통이 크고 부자였던 키루스에게 고용되었던 1만명의 그리이스 용병들도 잠시 급료가 체불되기도 했었습니다.




(이것이 페르시아를 침공했던 스파르타의 왕 아게실라우스를 물리친 영웅입니다.  페르시아는 전투에서 아게실라우스를 당해내지 못하자, 그리스 본국에 이 다릭 금화를 잔뜩 뇌물로 뿌려, 군대를 소환하도록 합니다.  결국 아게실라우스는 '나는 페르시아의 궁수들에게 쫓겨난다'라고 말하고는 철수했는데, 그 궁수라는 것은 바로 저 금화 속에 새겨진 궁수를 뜻합니다.)



급료가 체불되는 이유는 간단했습니다.  당장 돈이 없었기 때문이었지요.  원래 전쟁이라는 것은 대의와 정의를 위해서 한다지만, 실제로는 경제적인 문제가 주된 원인이거든요.  더 노골적으로 말해서, 돈이 없어서 전쟁을 하는 것인데, 애초에 용병들에게 뿌려댈 만큼 많은 돈이 있었다면 전쟁을 할 이유가 없었겠지요.  더군다나 당시 지중해 세계처럼 은화 위주로 운용되던 화폐 경제 체제에서, 페르시아 제국처럼 부유한 강국이 아니라면 대개 국고에 충분한 양의 은화가 비축되어 있지 않았습니다.  요즘처럼, 또는 제1,2차 세계대전 때처럼 지폐를 찍어낼 수도 없었으니, 당연히 만만한 용병들의 급료는 체불될 수 밖에 없었지요.


용병들은 이런 사실들을 잘 알고도 크게 개의치는 않았습니다.  일단 전투에 승리하게 되면, 거의 반드시 돈이 생긴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전투에 이겼다고 왜 돈이 생길까요 ?  이는 당시의 빈약한 생산력과 관계가 깊습니다.  요즘 전투에서는 적의 무기나 적의 군복, 군화, 식기류 같은 것은 전혀 돈이 되지 않지요. 하지만 당시에는 큰 돈이 되었습니다.  생각해보십시요.  예수 그리스도의 남루한 외투조차도 서로 갖겠다고 로마 병사들이 주사위 놀음을 할 정도였쟎습니까 ?  그러니 적의 방패나 투구, 갑옷, 식기류, 심지어는 셔츠조차도 일단 내다 팔 수 있는 노획물이 되었습니다.  특히 페르시아인들의 수놓은 겉옷 등은 가난한 그리스인들에게는 엄청난 사치품이었으므로 큰 돈이 되었습니다. 




(알렉산더 대왕 사후, 후계자 전쟁이 한창이던 헬레니즘 세계에서의 병사들의 장비를 묘사한 조각입니다)



가장 큰 돈이 되는 것은 적의 포로 그 자체였습니다.  당시는 물품 뿐만 아니라 사람도 부족했거든요.  사로잡은 적의 건장한 병사는 아주 훌륭한 노예 상품이었습니다.  원래 같은 그리스인들끼리는 포로를 노예로 팔아버리는 일은 없었으나, 펠로폰네소스 전쟁이 장기화되면서, 그런 구분도 없어졌습니다.  심지어는 플라톤도 (비록 전쟁 포로는 아니었지만) 노예로 팔린 적이 있을 정도였으니까요.  이런 그리스인 노예들은 본국의 가족이나 친구들이 몸값을 내고 다시 자유인으로 풀어주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하지만 어쨌거나 위와 같은 상황은 용병이 공격군으로 참전할 때의 일이었고, 농성하는 성의 수비병으로 용병을 불러모으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특히 상대해야 하는 적이 알렉산더의 마케도니아군처럼 막강한 상대였다면 더더욱 그랬습니다.  이런 경우 수비병으로 용병을 불러모으려면 정말 금이나 은으로 된 경화(硬貨)를 급료로 지불해야만 했습니다.  하지만 사정이 안좋아서 농성하게 된 주제에 그런 금화나 은화가 많을 수는 없었습니다.  아래 사진의 금화는 그런 아픈 사정을 가진 금화입니다.




(금화 앞면은 아테네 여신을, 뒷면은 아테네 여신의 상징인 올빼미를 넣었습니다)


위 금화는 아테네가 기원전 296~294년 사이에 주조한 것으로, 이때 아테네는 마케도니아 왕조로부터 위협을 받는 상황이었습니다.  그 방어전의 비용을 위해 이 금화를 주조했습니다만, 원래부터 은화 위주의 화폐 제도를 펼치던 아테네가 갑자기 금을 어디서 구했을까요 ?  바로 파르테논 신전의 거대한 아테네 여신상에 입혀놓았던 금박을 벗겨내어 만든 것입니다.  그야말로 눈물의 금화인 셈이지요.




(예전에 파르테논 신전 내에 있었다는 거대한 아테네 여신상... 얼마나 궁했으면 여신의 옷을 벗겨 금화를 만들었겠습니까 ?)



제가 알기론 현대의 용병들은 미국의 유명한 용병회사인 블랙워터 같은경우 급료도 굉장하고 대부분

특수부대 출신들 이라더군요.. 그나저나 고대시대때 갑옷같은경우는 값이 상당하다고 하던데 잘세공된

갑옷이나 투구하나만 노획해도 꽤 짭잘 했을거 같네요.. ㅎㅎ
블랙워터(현재는 Xe지지지지~)의 경우는 미국 정부가 '미군이 하면 문제가 되는 일을 맡기기 위한' 외주업체이기 때문에 순수(?)한 PMC라고 보기는 힘듭니다. CIA나 DOD와 같은 곳과 깊은 관계를 가지고 있죠. MPRI나 다인코프 같은 미국계 PMC는 흔히 요즘 CNN이나 일부 국내 미디어를 통해서 알려진 '돈 많이 버는 용병'입니다.

하지만 Xe를 제외한 미국계 PMC 내부에서도 특수부대 자원들로 이루어진 부대는 그다지 많지 않습니다. 플래툰에 연재된 태상호 기자님의 기사를 봐도 바그다드 그린존을 경비 서는 인원들은 동남아시아계, 남미계, 아프리카계 등등 외화 벌이가 궁한 나라 출신들로 많이 채워집니다.

그리고 선진국 정부처럼 돈을 팍팍 쓸 수 있는 나라들하고만 계약을 맺는 것도 아니고 방위 인프라가 부족한 빈국들이 주로 PMC를 고용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언제나 특수부대 출신과 같은 '고가치 자원'들을 아무때나 함부로 고용할 수는 없죵..

현대 PMC의 기틀(...)을 세운 이그제큐티브 아웃컴즈가 남아공 32대대 출신들로 이루어져 정예 특수부대라는 이미지가 강한거 같은데 대부분은 그렇지 않다죠..

관심 있으시면 '전쟁대행주식회사' 읽어보시길 권합니다.
그냥 써본 리플에 좋은글 감사합니다. 오래전 이탈리아에 고용되었던 스위스 용병 (지금도 보초를

서고있는..) 들이나 영국에 고용되었던 네팔의 구르카용병들도 나라가 살기어려워서 용병들로

많이 갔다고 하더군요 뭐 그들이 용맹하게 잘싸운사실도 크지만요.. 역시나 기본적으론 사정이

여의치 않아서 가는 경우가 크겠지요..
PMC들의 봉급이 많은 편이 아닙니다. 일당 약 600불 정도이며 90일 일하고 30일 쉬는 시스탬이라 쉴때는 또 그 일당 안나옵니다.
licensed to Kill이라는 책을 참고하시길

용병이라는 것도 무언중에 우리도 많이 사용합니다.
free lancer 라는 말의 lancer란 lance라는 기마병용 장창을 쓰는 기마 장창수(기사 와는 약간 다른) 를 뜻하는 것으로 돈에 왔다갔다하고 소속이 자유로와서 Free lancer 라고 한다고하죠

블랙워터사 말고도. 트리플 캐노피, 다인코프 등의 회사들이 많습니다.
흥미로운 얘기네요. 예나지금이나 결론은 먹고 사는거로군요.
역시 세상을 지배하는 것은 예산이군요. 그나저나 아테나 여신상에서 금박을 벗겨냈다는 내용을 들으니 왠지 어릴 때 읽었던 <행복한 왕자>라는 동화(어느 도시에 몸이 금박으로 덮여 있는 왕자 동상이 있었는데,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 자기 몸의 금박을 조금씩 떼어주었다는)가 생각나네요.^^;;
자기 이름이 붙은 도시(올리브를 만들었다는 이유로 제우스가 넘겨준)를 지키기 위해 자신의 옷을 벗은 셈이니...
그러고 보니 포에니 전쟁을 비롯한 큰 전쟁 때마다 귀부인들이 보석이나 금은 장신구를 내놓았다는 이야기는 늘 있지요. 물론 대한민국에는 강남 귀부인들이 금 모으기 운동에 참가했다는 말은 없지만(그 아줌마들은 나시카 님이 다른 글에서 소개하신 그 목사 부인 같아서리)...
앜~ 잼있네요! 저 금화,.. 우왕~ 너무 이뻐요~ 아놔,.내용은 안보고,.
병사들이 약탈이 아닌 급료로 먹고사는 시스템이 정착된건 공식적(?)으로는 국민개병제가 정착되던 프랑스 나폴레옹 전쟁 시대로 보는 학자들도 있습니다만..

실제로는 현대까지도 병사들은 약탈로 한몫 잡는 경우가 많죠.

이라크 다녀오신 분들 말을 들어보면 아직도 공공연하게 승자가 패자의 물건을 이것저것 집어오는 모양입니다.

고급 시계나 보석붙이등... 생각해보면 털어올건 많은거죠.

그리고 블랙워터 이야기를 윗분이 해주셔서 역시 이것도 권총 사격장에서 사격을 오래하다보니 어찌어찌 용병을 하던 당사자에게 들은 이야긴데..

꼭 전쟁이 아니라 자원회사등에 취직되어서 현주민과 자원분쟁들을 아주 전통적인 방법으로 처리해주는용병들도 있다는군요. 세르비아나 보스니아에서 인종청소같은데도 관여하고...

용병이 꼭 적 군인들과 싸우는 종류만 있는건 아닌거죠. 뭐 암흑의 세계라고 해야하나..
샐러리라는 단어의 어원을 생각해 보면 나폴레옹보다는 훨씬 이전이라고 생각합니다...
로마 제국의 전성기엔 국가가 충분히 그럴 힘도 있었고요.
(물론 마리우스의 군제개혁 이후를 말합니다.)
용병에 대한 환상은 예나 지금이나 다름없는것 같고

용병들이 벌이는 폐해 역시 그런것 같습니다. 결국 세상이 사랑과 평화로 가득 차지 않는 이상 없어지지 않겠죠. 인간은 이제 너무 전쟁에 익숙해져버린것 같습니다.
흥미로운 글 잘 읽었습니다.
고맙습니다.
안녕하세요? “저탄소 녹색성장 칭찬운동 릴레이”입니다.
저탄소 녹색성장, 서로서로의 칭찬으로 만들어가요!
(사)환경실천연합회에서는 시민들이 직접 찾아내고 칭찬하는 릴레이 운동을 통해
“저탄소 녹색성장”의 긍정적인 이미지를 확산시키고, 저탄소 녹색성장의 방향과
실현계획을 모은 자료집 제작으로 데이터베이스를 구축하고자 합니다.

환경과 인간이 공존하기 위해 개인의 생활속에서 또는 학교, 기업, 공공기관, 단체 등에서
실천하고 있는 저탄소 녹색성장의 실천들을 칭찬해 주세요.

*칭찬대상: 전국민
*칭찬기간: 2009년8월 ~ 2009년 11월
*칭찬방법: 온라인클릭 http://ecolink.or.kr/2009_new/02_active/02_field13.html
*주최/주관: (사)환경실천연합회
*후원: 서울특별시
저위의 PMC사진은 아마 2004년도인가 이라크 지방 행정청에 시아파 민병대 반군이 기습할때 사진일겁니다. 당시 안에 있던 소수의 군인과 PMC들 그리고 미군 식당 계약 민간업체직원들 있었는데 이 공격에 미군당국이 지원해줄수없는 상황이라 모두가 총들고 방어 했었다고 하더군요
헐, 진짜 생계형 가장들이였군요. 웃자고 한 소리가 아니라..
잘 보았습니다.
잘 보고 갑니다 ^^
얼마전에 아테네에 대한 책을 봤는데 저 아테네 여신의 금박옷은 처음부터 비상용 자금을 목적으로 건립한 거라고 하더군요... 부유할때 금박 옷을 입혀놓고 비상시에 벗겨서 쓴다음 다시 사정이 나아지면 금박옷을 입혀준다라고....

근데 09년 글에 14년에 댓글을 달고 있다니....
ㅋㅋㅋ
신에 대한 존경심과 경외심은 쫌 약하네요..
언제나 인간들에게 신은 인간보다 아래에 있어 왔으니 그럴만도 하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