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폴레옹의 시대

nasica 2010. 6. 30. 19:48

동국아, 수고했다.  당분간 인터넷은 끊고 지내라.  훃은 그래도 널 응원할거다.  넌 딱 한번 기회를 놓쳤을 뿐이야.  괜찮아.




(저는 개인적으로 K2 소총 안 좋아합니다.  논산훈련소에 있을 때 K2 소총이 막 배치되기 시작했는데, 세워 쥐고 있던 총을 실수로 놓쳤더니, 땅에 부딪히면서 장전 손잡이가 부러졌거든요.  그 부분이 너무 약한 것 같아요.)



요즘 한국군의 주력 보병 소총인 K2 소총의 가격을 보니, 대략 30만원 정도인 것 같습니다.  비싼 것 같은가요 ?  대략 제 1달 용돈 정도니까, 그렇게까지 비싼 것 같지는 않습니다.  100kg짜리 어른 돼지 1마리의 가격이 대략 23만원 정도니까, 돼지 1마리보다는 좀 비싼 정도네요.  하지만 원래 무기라는 것은 상당히 비싼 물건이었습니다.  적어도 산업 혁명 이전까지는 말이지요. 

그렇다면 산업혁명이 막 일어나던 시점인 나폴레옹 전쟁 당시의 일반 머스켓 소총 가격은 어땠을까요 ?




(제 눈엔 무척 비싸 보입니다만....)



여기 영수증이 하나 있습니다.  1814년, 미국 필라델피아에서 3정의 머스켓 소총을 조셉 헨리( Joseph Henry)라는 업자로부터 도시(Dr. Dorsey)와 그라프(Mr. Graff)라는 양반들(어쩌면 Dr. Dorsey & Mr. Graff가 사람이 아니라 가게 이름일지도...)이 사들이면서 받은 영수증입니다.  여기에는 부품을 완전히 다 갖춘 머스켓 3정의 가격이 한정에 15달러, 총 45달러라고 되어 있습니다.




(맙소사... 경매에 나온 이 영수증 가격이 무려 450달러입니다.  여러분도 영수증 챙겨뒀다 후손에게 물려주시길...)



1814년 기준이니까, 당연히 15달러라는 가격은 지금의 15달러, 즉 1만8천원은 아닐 겁니다.  이리저리 알아보니, 필라델피아가 위치한 지역인 펜실베니아 주에서는, 당시 1달러의 가치가 영국돈 90펜스, 즉 7실링 6펜스 (1실링=12펜스) 였다고 하네요.  전에 한번 계산해드렸듯이, 당시 영국돈 1실링으로는 금을 0.31g 정도 살 수 있었습니다.  금의 가치는 불변이라고 가정하면, 당시 영국돈 1실링은 현재 우리나라 원화로는 (1g의 금에 4만2천원라고 하면) 약 1만3천원 정도가 됩니다. 

자, 다시 계산하면, 1814년 미국에서 머스켓 1정을 사는데는 15달러가 들었고, 이를 당시 영국돈으로 계산하면 1350펜스 (112실링 6펜스)이며, 다시 현재의 우리나라 원화로 계산하면 약 146만2천5백원이 됩니다.   현재의 K2 소총과 비슷할 때 약 5배 차이가 나는군요.  그렇지만 이런 가격 해석은 꼭 옳은 것은 아닙니다.  지금 146만원이야 소득 수준 대비 그렇게까지 큰 돈은 아닙니다만, 당시 영국에서는 왠만한 노동자 하루 일당이 1실링에 불과했고, 빵 1파운드에 3.75 펜스 (0.3125 실링) 정도의 가격이었기 때문에, 머스켓 한정에 112.5 실링이라면 엄청나게 큰 돈이었지요.  참고로 당시 빵 1파운드 (453g)에 3.75펜스라는 가격은 금의 가격으로 환산하면 4천원 정도입니다.  요즘 빠리 바게뜨의 식빵 1봉지가 약 390g에 1천8백원 정도하니까, 확실히 당시 물가가 요즘보다는 많이 비쌌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19세기 초의 빵에 비해 요즘 식빵은 우유와 계란, 설탕이 많이 들어가서 사실 더 비싸야 할지도 모릅니다... 물론 건강에는 더 나쁘게지만요.)



게다가, 이런 가격은 영국이나 미국의 공업화된 지역에서나 통용되던 가격이었습니다.  머스켓 소총이 바다넘고 산을 건너 당시 유럽 문명이 미치지 않은 곳에 도착할 때면 그 가격은 훨씬 비싸졌겠지요.  하기사 당시의 목조 범선으로 화물을 수송하려면 그 수송비며 보험료 등만 해도 엄청났을 것입니다.  이런 예를 보여주는 장소가 있습니다.  남태평양 피지 군도에 속해있는 마마누카(Mamanuka) 섬에는 머스켓총 만 (Musket Cove)라는 멋진 해안이 있습니다.  이 곳에 이런 이름이 붙은 것은 이 땅의 원주민이, 유럽인에게 실제로 머스켓 소총 한자루를 받고 이 해변가를 팔았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그 원주민은 이웃한 다른 원주민과 싸우기 위해 총이 필요했다고 하네요.  참고로 지금은 이 해변가는 어떤 돈많은 호주인 사업가의 소유지라고 합니다.




(피지의 머스켓 코브... 총 한자루와 맞바꾼 경치입니다.)



만약 저 피지섬 원주민이 이웃 주민과 사이가 나쁘지 않았다면 어땠을까요 ?  뭐 햇빛 쬐고 쉬는 것 이외에는 별로 쓸모 없는 땅이긴 하지만, 그래도 부동산을 이상한 천둥 막대기 한개를 받고 팔아넘겼을까요 ?  글쎄요, 그건 잘 모르겠습니다만, 확실히 모든 상품의 가치는 그 수요에 따라서 변하는 것이 당연합니다.  머스켓 소총의 가격도 전쟁이나 분쟁이 일어날 경우 높아졌고, 평화로운 시기에는 떨어졌습니다.




(뉴질랜드의 마오리족은 혓바닥 길게 내빼는 재주만 있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들은 영국인들을 당혹케 할 정도의 육체적 강인함과 호전성을 띤 용맹한 부족이었습니다.)



뉴질랜드의 용감하고 호전적인 마오리족도 유럽인들과 접하면서 머스켓 소총의 위력에 일찍 눈을 떴습니다.  이들도 머스켓 소총을 구입하기 위해서 애를 많이 썼는데, 이들은 백인들에게 주로 감자와 돼지를 팔고 머스켓 소총을 얻었습니다.  원래 마오리족의 주식은 쿠마라(kumara)라는 일종의 고구마였는데, 유럽인들이 전해준 감자가 훨씬 재배에 쉬웠고 재배량도 많았기 때문에, '용감하고 호전적인' 마오리족 남자들이 농사일에서 해방되는 결과를 낳았습니다.  즉, 이들은 노예들에게 경작을 시키고 자신들은 다른 노예를 잡으러 나가는 것이 더 수지맞는 장사였던 것이지요.  그런데 노예를 잡자면 머스켓 소총이 필요했습니다.  그러자면 감자를 더 많이 키워야 했고, 그러자면 더 많은 노예들이 필요하게 되는, 일종의 악순환이 반복되었던 것이지요.  이로 인해 발생한 약 500회 정도의 분쟁을 뉴질랜드 역사에서는 '머스켓 전쟁' (일부에서는 '감자 전쟁')이라고 부릅니다.  이 전쟁은 1818년~1820년대 초반까지 계속 되었는데요, 이 기간 동안 머스켓 소총의 수요가 폭발하면서 그 가격도 껑충 뛰었습니다.  아래 그림을 보시지요.   머스켓 전쟁 직전에는 돼지 8 마리 또는 감자 150 바구니에 살 수 있던 머스켓 소총 가격이 전쟁이 격화되면서 3배 넘게 뛰었다가, 결국 다시 원래 가격을 되찾습니다.


(K2 소총 한정 가격이 돼지 한마리보다 약간 더 비싸다는 거, 이 그림을 보면 대단히 저렴한 가격입니다...)



마오리족 뿐만 아니라 나폴레옹도 머스켓 소총을 충분히 공급받지 못해 골치를 썩혔습니다.  나폴레옹은 자칭 100만이라는 그랑다르메 (Grand Armee)를 충분히 무장, 재보급하기 위해서는 적어도 3백만정의 머스켓 비축분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만, 이는 결코 실현되지 못했습니다.  나폴레옹의 병력은 1812년 러시아를 침공할 때도 70만이 넘지 않았고, 아우스테를리츠에 참전할 때도 약 7만명 정도에 불과했는데, 왜 이렇게 많은 머스켓 비축분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을까요 ?

글쎄요, 3백만정이라는 숫자는 확실히 너무 지나친 감이 있다고 생각이 됩니다만, 당시 현실적으로 나폴레옹은 식량 뿐만 아니라 병사들의 개인 화기 면에서도 병참이 많이 부족했었습니다.  그의 군대가 가장 절정의 컨디션을 자랑했던 1805년 아우스테를리츠 전투 직전에도, 제1선 부대들은 물론 완전한 무장을 갖추고 있었으나, 프랑스 국내의 예비대들은 제대로 된 무장을 갖추고 있지 못했습니다.  게다가 제1선 부대들도, 전투를 거치면서 계속 무기를 상실했습니다.  소위 말해서 전투 손실이 발생했던 것이지요.  그나마 압도적으로 승전했다고 하는 아우스테를리츠 전투에서만도 무려 1만2천정의 머스켓 소총이 파손되거나 분실되어, 새로 보충을 해야 했습니다. 

이런 기본 화기 부족은 적국, 그러니까 프러시아나 오스트리아의 무기고를 점령하고 압수함으로써 어느 정도 해결할 수 있었습니다.  실제로 나폴레옹은 이들 국가로부터 노획한 대포들로 보병대대에도 자체 포병대를 신설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1808년부터 시작된 스페인 전쟁은 그야말로 군수품의 블랙홀로 작용했습니다.  병력 뿐만 아니라, 무수한 군수물자가 피레네 산맥을 넘어 스페인과 포르투갈에 투입되었고, 거기서 아무 소득 없이 스러져 버렸습니다.  그로 인해 1809년 전쟁성 장관인 클라르크(Clarke)에게 1810년 7월초까지 20만정의 머스켓을 신규로 장만하도록 명령을 내려야 했습니다.  하지만 당시 산업 능력으로, 1년도 안되어 20만정이라는 머스켓 생산량을 맞출 수는 없었지요.



(18세기 초기부터 프랑스 육군의 표준 소총이자 미국 독립전쟁 당시 미군들에게 대량으로 보급되었던 머스켓의 걸작, 샤를비유(Charleville) 머스켓)



이런 군수품 부족은 1812년 러시아 원정의 참담한 실패로 파국을 맞이합니다.  나폴레옹은 라이프치히 전투에서 거의 20만명의 병력을 동원했는데, 이때 긁어모은 신병들에게 쥐어준 머스켓 소총은 프랑스 육군의 표준 지급품인 0.69 인치 구경의 샤를비유(Charleville) 머스켓 소총이 아니라 급히 긁어모은 온갖 비표준 구경의 독일제 및 민간용, 구식 머스켓 소총들이었습니다.  특히, 라이프치히 전투에서 패배한 이후, 전선이 프랑스 국내로 급격히 후퇴하는 바람에, 주요 보급창이었던 비스툴라(Vistula) 및 엘베(Elbe) 강가의 요새들을 상실했고, 그 결과 더더욱 무기 보급 사정이 열악해졌습니다. 



(나폴레옹의 패망을 사실상 결정지은 당대 최고 규모의 대전투, 라이프치히 전투)



1813년 11월, 나폴레옹은 프랑스 국내 방어전을 위해 의회에 새로 30만명의 신병을 요청했지만 (물론 이 정도의 병력은 결코 모을 수 없었습니다), 그의 무기고는 거의 텅 비어있어 이들에게 쥐여줄 머스켓 소총이 절대적으로 부족했습니다.  당시 상황이 어느 정도였냐 하면, 전쟁성 장관인 클라르크에세 보낸 편지에서, 나폴레옹은 프랑스 포병대가 (별 쓸모도 없이) 많이 보유하고 있던 창(pike)을 회수하여 파리 인근의 민병대에게 나누어 주라고 명령을 내릴 정도였습니다.  어쩔 수 없었던 나폴레옹은 1813년 11월, 마침내 모든 독일 및 이탈리아 동맹국 병사들의 무장 해제를 지시하게 됩니다.  이 믿을 수 없는 외국 병사들의 손에서 무기를 빼앗아, 좀 더 믿을 수 있는 프랑스인 신병들을 무장시키자는 것이었지요.  다만, 이때 폴란드군은 무장 해제에서 제외시켰습니다.  폴란드인들의 충성심 (또는 러시아와 오스트리아에 대한 증오심)은 믿을만 했었던 것이지요.




(우리 폴란드인들은 우리의 생명과 잃어버린 조국 폴란드의 운명을 나폴레옹에게 걸었다 !)



나폴레옹 전쟁 당시, 병사들은 언제나 약탈을 했습니다.  적의 도시나 마을을 점령했을 때는 물론, 전투가 끝난 뒤 쓰러진 적군 병사들의 시체가 주요 약탈 대상이었지요.  (때로는 쓰러진 아군 병사들도 약탈의 대상이었습니다.)  가장 인기있는 품목은 물론 금화나 은화같은 돈이었고, 그 외에는 적의 장교들이 가진 권총이나 검이 인기 품목이었습니다.  그에 비해서, 적의 머스켓 소총은 전혀 인기 품목이 아니었습니다.  일단 수요와 공급의 원칙에 따라, 전투가 끝난 자리에는 수많은 머스켓 소총이 널려 있었으니까, 당연히 공급 과잉으로 값어치가 별로 없었지요.  그 외에도, 머스켓 소총은 무거운 것에 비해, 위에서 보았듯이 별로 비싼 물건이 아니었기 때문이지요.  한정에 6파운드도 하지 않는 머스켓 소총에 비해, 장교들의 검은 무척이나 인기가 있었습니다.  전에 인용했던 글이지만 다시 한번 보시지요. 





Sharpe's Triumph by Bernard Cornwell  (배경: 1803년, 인도) -------------------------

"장교가 되는데는 2가지 방법이 있다네, 샤프."  맥캔들리스 대령이 말했다.

"첫번째 방법은 장교직을 돈주고 살 수 있지.  소위 계급의 가격은 400파운드야.  하지만 소위로서 복장과 장비를 갖추는데 또 150파운드가 들지.  하지만 그 정도 돈으로는 겨우 쓸만한 말과 4기니짜리 검, 그리고 중고품 제복을 살 수 있을 뿐이야.  게다가 장교 식당의 식대를 대려면 따로 사적인 수입이 있어야 하네.  소위의 연봉은 약 95파운드 정도인데, 거기서 비용으로 일부를 떼가고 소득세라는 명목으로 더 많이 얼마를 떼가지.  자네 소득세라고 들어보았나, 샤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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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위에 나오는 품목은 장교가 되기 위해 갖추어야 하는 최소한의 물품 목록입니다.  즉 싸구려 검일지라도, 장교가 들고 다닐만 한 검은 최소 4기니 (4기니는 84실링 = 약 100만원) 정도는 한다는 것이지요.  물론 돈 많은 장교가 들고다니는 명검은 몇백 기니짜리였습니다. 




A Ship of the Line by C.S. Forester (배경: 1810년, 영국) -------------------------------

(혼블로워는 자신이 짝사랑하는 유부녀 바바라와 그 남편이자 자기 상관인 레이튼 제독의 저녁 식사 초대를 받고 몸단장에 신경을 쓰지만 가난한 자신의 처지에 좌절합니다.)

혼블로워의 구두 버클은 금이 아닌 그저 모조품으로써, 다른 사람들이 신고 올 진짜 금으로 된 버클과 대조되어 자신의 버클이 놋쇠로 된 것이라는 것이 두드러져 보일까 봐 걱정이 되었다.  그가 이 물건을 살 때는 금전 사정이 안 좋을 때였고, 감히 금으로 된 구두 버클에 20기니를 쓸 엄두를 낼 수가 없었다.  그는 자신의 구두 쪽에 이목을 끌 만한 어떤 행동도 해서는 안되겠다고 다짐을 했다.  애국자 기금이 자신이 나티비다드 호를 격침한 공로를 인정하여 그에게 수여하기로 한 100기니 짜리 검이 아직 오지 않은 것이 무척이나 아쉬웠다.  그는 그가 아직 중위 계급이었을 때 카스틸라 호를 나포한 공로로 그에게 수여되었던 50기니 짜리 검을 차고 가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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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검이라는 것은, 머스켓보다도 위력은 약했을지 몰라도 훨씬 더 비싼 물건이었습니다.  따라서 병사들에게 약탈품으로서 아주 인기가 높았던 것이지요. 




(아무리 나폴레옹의 척탄 근위대라고 해도, 머스켓을 든 일개 병사가 장교의 상징인 검을 차고 있네요 ?  어찌된 일일까요 ?)



그런 점 때문이었을까요 ?  검은 약탈 대상으로서 뿐만 아니라, 병사들의 보조 무장으로서도 인기 만점이었습니다.  사실 머스켓 소총으로 무장한 병사들의 보조 무장은 당연히 총검이였으므로, 병사들이 검을 패용하고 다닌다고 해도 괜한 장비 무게만 더 늘어날 뿐 전투력에는 별로 도움이 되지 않았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검은 일종의 신분의 상징으로 통했습니다.  영국군 일반 보병들에게는 검이 지급되지 않았지만, 프랑스군은 엘리트 부대인 척탄병(grenadier, 영국 근위대가 곰가죽 모자를 쓰게 된 사연  http://blog.daum.net/nasica/5561874 참조) 중대에게는 짧은 검 (short saber)을 지급했습니다.  하지만 병사들 사이의 경쟁심으로 인해, 실질적으로는 유격병 (voltigeur) 부대와 엽병 (chasseur) 부대에게도 이런 검이 지급되어야 했습니다.  이런 검은 특히 사열을 할 때나 주둔지 근처 마을에서 어슬렁거릴 때는 으스대기 위해서 꼭 패용을 했습니다.  하지만 앞서 말했듯이, 실제 전투에는 별 도움이 되지 않았기 때문에, 정작 전투를 하기 위해 나갈 때는 이 짧은 검은 주둔지에 남겨 두고 갔다고 합니다.  이런 비효율성 때문에, 나폴레옹은 1807년에 유격병이나 엽병들은 검을 휴대하지 말라는 훈령을 내렸습니다.  그러나 아무도 이 명령을 귀담아 듣지 않았기 때문에, 1815년 워털루 전투를 앞두고 다시 한번 이 명령을 내려야 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이때도 그 명령이 제대로 지켜졌는지는 의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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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 오랜만에 와봤더니 이게 무슨 날벼락이야!



암튼 나시카형님 이동국케이스는 좀 안됬더군요. 저두 그양반이 혼자 원톱뛰는거 보고 좀 답답하던데. 이동국을까자면 허감독도 같이 까야되니 그러느니 차라리 16강 올라간게 어디냐 라고 편하게 생각해버리면 만사형통~


어찌됬건 리플이 되게 어지럽네요. 제성격같았으면 확 지워버리겠는데 나시카좌는 그러지도 못할거같아서. 적당히 중간쯤 읽다 안읽었지만. 말투만 정중하다고 그사람의 개념이 포장되는건 아니지요. 욕이 난무하지 않아 다행이라 편하게 생각하면 만사 형통이지만 저 T-Rex라는 양반의 이야기는 도저히 안깔수가 없네요. 제대로 알지도 못하면서, 자기의견을 제대로 뒷받침하지도. 그렇다고 자신의 주장이 분명 타 개념들에대해 자극적일거란 생각도 안한체 엎친데 덮친격으로 장문으로 갈겨놨네요. 휴......



어찌됬건 머스켓 총이 저렇게 비싸다니 -_- 집에서 하는 전략시뮬레이션 게임에도 총병이 가장싸게 치이는데. 저건 뭐 총값이 저래서야 전쟁이 원만하게 수행됬을까요??? 사실 나라의 돈이란게 끌어모으자면 진짜 예상도 못하게 크게 모이는듯도 합니다만 총도 저렇게 구비하기 빡센데 대포,식량 군복 오만거 다장만한다 생각하면 정말 끔찍하네요 -_- 전쟁이 내수경제를 살릴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지만 저건 뭐 돈이 돌고 하기이전에 나라가 짊어질게 너무 많은데 진짜 이기면 몰라도 지면 완전 내려앉는 도박이 전쟁인거 같습니다. 후우.... 그리고 k2가 30만원인건 의외로 싼거같습니다?? 개량궁도 30만원이나 하는세상인데.


ps: 왜 남자가 군대 나와야 한다 하는가 했는데. 과연 어른들말 하나 틀린거 없네요.
헤헷 그리고 몇가지더. 윗 댓글이 너무 장문이 될까봐 안썻더니 좀 허전해서요.



영국이나 미국이 태평양을 항해하면서 하와이를 비롯, 많은 폴리네시아 섬들을 방문했어요. 공통적인건 우리가 윗옷벗고 덩치만 뒤룩뒤룩크고 돼지나 구워먹는 야만인(...)일거라 생각한 폴리네시아 인들은 의외로 진취적이었습니다.
하와이의 카메하메하?라는 족장의 일화를 히스토리채널 다큐에서 본적이있는데. 어느정도 구매한 머스켓에 대포까지 소수 구입해서 대규모 카누에 나눠싣고 하와이 제도를 정복하러 원정을 떠났다 하더라구요. 다만 문제는 상대방또한 대포를 언덕위에 배치해두고있었다는 점.
사실 위에 나시카형이 쓴 이야기가 선뜻 낯설지 않았던게 그때문인거 같습니다.

게다가 정말 호전적이기론 저 마오리족이 정말 호전적이어서 시도때도 없이 들리는 하카소리에 영국군은 몸살을 앓을 지경이었다 하네요. 다른 섬들에선 간단한? 교역정도만 하고 지나갔지만 뉴질랜드는 영국군이 요새를 세워야 할 지경이었다는 말을 들은바가 있습니다.


그리고 읽으셨는가 모르겠지만. 저 위에 T-Rex가 쓴글에 나오는 루이스 프로이스 선교사의 임진왜란 관련글은 본인이 직접 보고 듣고 쓴게 아니라 종군한 친구에게서 전해들은 이야기를 바탕으로 썻다고 하네요. 대표적으로 부산성 싸움 이에 대하여는 굉장히 자세한 묘사가 이루어져있고요. 그리고 '조선군은 성에서는 사자요 필드에서는 양이다' 라는 이야기등이 대표적이지요. 뭐 어차피 위에 댓글에도 그렇듯 사람이 하는이야기는 보는놈 듣는놈 겪는놈 마다 다 다른데 게다가 전해들은 이야기를 쓴 글이니 100%는 신뢰 할 수 없겠지요.


음 그리고 저 T-Rex라는 분 글 성향이 전형적인 국내 좌파...후 나쁘게 말하면 종북주의자 들의 발언과 일치하는 모습을 좀 보이는것같은데. 나시카형도 굳이 제가 구분하자면 정치성향이 좌파가 아니라 현재 좌익여론쪽에 조금 가까운 모습을 이 블로그 글에서 몇개 읽은바가 있어서 제가 확 나서질 못하겠네요. 분명히 이념이란건 마다 차이가 있으니까 뭐라고는 못하겠지요.


참 그리고 맨위 K2바로 밑짤에 머스켓 시리즈 붙어있는 그림요. N에 해당하는 저 작은 머스켓이 서양의 아퀘버스 인가요? 아니면 일본의 조총의 모습일까요?? 그둘의 차이점에 대해 예전에 역갤에 물어본적 있지만 딱히 구분할수는 없고 일본과 유럽에서 부르기 나름이었다고 하네요. 그 질문에 저는 '모노노케 히메'라는 애니메이션에 특이한 발사장치의 총이 등장하길래 발사장치로 구분하는가 했더니 그건 아니고 구분하는 큰 기준은 그저 크기였을거다..라는 리플만. 저 N의 정체에 대해 알려주시겠어요!?


웬 좌익 타령... 이왕 말 뜻도 잘 모르고 쓰실 요량이면 차라리 그냥 빨갱이라고 하시지 그러세요.
T-Rex란 분은 조선 수군의 전술과 일본 수군의 전술도 모르고 원균과 이순신의 차이도 모르고... 애초에 이길 싸움이란 헛소리까지 난무하는데... 그럼 원균은 왜 패했고 임란 5년전인 정해왜변에서 벌어진 일도 모르고... 비트겐슈타인의 말을 인용하죠 "말할 수 없는 것에 대해선 침묵하라" 어린이용 책 두어권 읽고 남의 블로그에서 깽판은 이젠 그만....
와 이건 뭐 ㅋㅋㅋ 여기가 나시카님 블로그 맞나요? 난 순간 디시에 온줄알았음 ㅋㅋㅋ
이런것도 일종의 유명세 (?) 인듯.
글 잘 읽었습니다.
현재K-2는 70-90만원대라고 합니다.
30만원은 초기 생산년도 물가 가격에 당시 생산량이 많아서 가격이 떨어진 결과라고 하네요
개인적으로 K2는 무게 중심이 총구쪽으로 몰려있어 다루기가 불편하더군요
그게 반동억제같은데 도움이 되는지는 몰라도...
총검술시 찔러한 자세에서 왼손 놓고 있으면 M16은 할만한데 K2는 완전 얼차려죠 ㅋ

군수품 가격은 일반적인 경제 논리보다는 정치적인 면이 더 큰거 같아요
어떨땐 돈주고도 못구하고 어떨땐 꽁짜로도 쫙 뿌리고하니 말이에요~
일단 T-Rex님의 착각을 깨우쳐 드리겠습니다. 이순신 장군은 성웅으로 생각하셔도 무방하고요.

잠깐 설명 드릴께요.

임진왜란의 주력 화포인 현자총통은.... 전체 길이 80센티에 입구 지름도 7~8센티 정도로 길이 2미터에 무게 4~5키로 정도의 통나무 화살을 발사해 적이 배를 공격하며 사정거리는 최대 1600미터라고 보심 됩니다.

과거 머스킷 소총의 발사 속도가 상당한 훈련을 거쳐야 분당 3발 정도쐈다고 하고 이마저도 상대측과 거리가 50미터도 안 돼는 거리라 제대로 된 조준도 아닌 상태로 쐈다고 합니다. 그냥 상대의 허벅지를 쏴라 정도(?) 강선이 없고 납탄이 총강에서 탁탁 튕기며 날아가던 시대였다고 하니 사실 조준이라고 해봐야 카우보이 영화에서 허리에 찬 권총을 총집에서 빼지도 않고 그냥 발사하는 것과 그리 큰 차이가 없을 것이라 생각 되네요.

대형 화포의 속도가 이보다 빠르지는 않았을 것이고 우리도 흔들리는 배, 저쪽은 노를 저어 최대한 달려오는 배... 이상황에서 조준했다고 해도 1키로 이상 거리에서 상대 배를 맞춘다는 것은 그냥 뻥이 당연한 거고요. 제가 보기엔 대략 2.300미터 정도의 거리에서부터 조준하여 명중탄을 내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그것도 숙련된 화포수가 조준해서 말이죠. 사실 조준경도 없는데다 강선 따윈 당연히 없는데 그나마 배라는 존재가 몸집이 커서 맞는 거지 아니면 어림도 없는 소리입니다. [물론, 조선이 화약이 엄청 많아서 평소에도 줄창 실탄 사격하고, 실제 왜군과의 해전에서도 최대 사거리가 되자마자 줄창 실탄을 쏴댔다면 모를까...]

1노트는 시속 1.8키로정도... 갤리선의 충각을 이용하기 위한 최대 속도가 8노트까지 나온다고 하니깐... 당시 일본군의 배 또한 조선군의 포격을 그대로 얻어 맞느니 부서지더라도 붙는 것을 선택하는 것은 당연지사... 대충 노 젓고 해류 타고 그렇게 접근한다면 최소한 시속 15킬로정도 나오는 것은 기본이겠죠. 그러면 일본군의 배는분당 250미터는 움직인다는 이야기입니다. 조선군 화포가 멈춰있는 일본 배를 쏘는 것도 아니고... 파도로 넘실 거리는 바다 위에서 분당 250미터의 속도로 달려드는 배를 강선도 조준경도 없는 화포로 분당 1발 정도의 속도로 쐈습니다. {판타지 영화가 아닌 이상 맞을 확률이 얼마나 될까요?}




이에 반해 조총의 위력은...

약 47미터 이내에서는 새의 몸통이나 깃털이 완전히 산산조각이 나고, 약 78미터 거리에서는 몸통은 남아나며, 약 155미터 거리에서는 위력이 없어진다. 목표물이 기병인 경우, 50미터 거리 이내에서 치명적. 유효 사거리: 100미터

제가 위에 명중탄 거리를 대략 내봤죠? 현대 국군의 무기인 k-2 소총도 가늠자를 이용한 표적 사거리가 250미터입니다. 유효사거리가 길어도 사람이 보고 쏘는 거리엔 한계가 있죠. 배와 사람의 크기 차이가 있으니 대략 3배 거리인 750미터부터 쏜다고 칩시다.

750미터 거리.... 안택선 같은 큰 배라면 몰라도 세끼부네나 고바야부네는 잘 보이지도 않겠네요. 조준해서 명중탄을 낸다는 것은 더더욱 불가능하겠네요. 하지만 세끼부네나 고바야부네에 조총병이나 궁병을 태워서 접근시킨다면... 어차피 안택선 같은 큰 배가 오는 것과 별반 다를바 없습니다. 큰 배에서 쏜 총탄에는 죽고 작은 배에서 쏘는 총탄에는 안 죽는게 아니라... 동일한 위험을 보이니깐요. 게다가 혹여 가까이 딱 붙어서 사다리라도 타고 올라온다면... 멀리 있는 거 보다가 뒷통수 털리기 딱 좋죠. 물론 세끼부네나 고바야부네가 명중탄을 낼 만큼 근접했을 때, 화포로 하나씩 확실히 해치울 순 있습니다만... 그 사이에 다른 왜군 배는 가만히 보고 있을까요? 세끼부네 한척을 확실히 해치우는 동안... 일본 최고의 전투함인 안택선은 아무런 손상 없이 250미터를 전진해 옵니다.

해전 초기 이순신이 거느린 배의 숫자는 25척 내외라고 합니다. 후일 삼도 수군 통제사가 되었다지만... 경상도는 이미 왜군의 손에 넘어갔고... 갖고 있던 전라도 배와 충청도 수군의 배만 운용할 수 있었을 뿐... 나머지 전 지역의 배를 합친 것보다 더 많은 배와 병력을 갖고 있던 경상도의 해군 자원은 아예 손도 못 댔죠. 경기 수군은 한강 방어를 위해 근왕군으로 편성되었고요.

보통 2,3백척을 거느리던 일본 수군의 배와 적게는 25척 많아야 50척 내외를 거느리던 이순신의 수군... 해전 초기 만 안에 정박한 일본 군선을 격파한 것은... 일본이 조선 수군은 완전히 전멸이라고 생각하고 맘 놓고 편하게 육지 올라서 약탈을 했다가 뒷통수 맞을 것이죠. 즉, 원균이 말아먹은 경상도 수군의 존재가 그만큼 일본 수군에 준 영향이 크다는 거였죠. "조선 수군 완죤 좆밥이네... 이미 전멸해서 암 것도 안 남았어!!!" 수준의 영향을 줬다는 거죠. 하지만 이렇게 일본 수군 무장들이 이순신에게 뒷통수 털리고 조선 화포에 꽁무니가 빠져라 원균 마냥 도망치고 나서, 이번에야 말로 조선 수군을 완전히 아작을 내기 위해서 벌인 해전이 아마... 와키자카 야스하루의 한산도 해전일 겁니다. 이때는 쌍방 숫자가 비슷했다고 합니다만... 작살나고
이후로 거의 해전다운 해전이 없다가... 정유재란 때 원균이 수군 통채로 말아먹고... 12척 배로 명량해전에서 전투선 330척... 보급 수송선까지 쳐서 500척 이상이라는 일본의 수군의 공세를 막아냅니다. 이때 이순신이 올린 적선 격침 31척은... 일본 수군이 기록한 자신들의 패전 기록에서 격침된 숫자에도 훨씬 못 미칩니다.[ 이순신이 선조를 위해 거짓말을 한 것이죠. 선조는 이미 이순신의 영웅화와 그로인한 왕조의 교체를 무척 두려워했고 고문해서 죽이려 했는데... 원균의 미친 짓 덕분에 다시 이순신을 삼도수군통제사로 내려보낸 거죠.]

이순신이 성웅이 된 건... 바로 노량해전부터입니다. 그러니 착각하지 마세요. 어느 누구도 일본 수군 몇 척 뒷통수 친 걸로 성웅으로 받들지 않았습니다. 12척과 330척...

일본군 선박 접근 속도 분당 250미터

화포 조준해서 명중탄 기대할 수 있는 거리 500미터

화포 발사 속도 1분당 1발....

요즘의 화포처럼 화약 가득에 파편도 들어서 한방 맞으면 그 일대가 완전 쑥대밭이 되는 포탄도 아니고, 배에 물이 들어오는 구멍 뚫게 수면 아래를 겨냥해 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말 그대로 적의 뱃전에 틀어박히면서 끝나는 통나무 화살... 뭐 배 자체가 충격은 받겠지만, 그 충격 받아서 배가 격침될 정도라면... 애초에 사람이 잔뜩 올라가서 해류에 노 젓는 것만으로도 배의 뼈와 살이 분리되는 결과를 맞이할 걸요?

아무리 대포가 좋다지만... 저거... 이길 수 있나요?

그런데... 유일하게 이순신만이 이겼습니다. 마치 판타지 영화처럼 말이죠. 그래서 성웅이 된 겁니다.
진짜 T-Rex님, 기초적인 역사적인 사실부터 잊고 있으신가보네요. 명량해전 바로 전에 조정에서 이순신에게 무슨 말을 했었죠? 해군 다 포기하라고 명령 했죠. 일본군은 어떻게 했죠? 이전에는 완전히 포기했던 정면대결을 펼쳤습니다. 누가 봐도 해전에서 승산이 없었던 겁니다. 전투선 13척밖에 안남은 상황까지 발생했는데 어떻게 해야지 당연히 이길 수 있었던 거죠? 물론 13척 남은 건 원균의 치명적 실책 때문이었지만 "단 한번의 참패로 누가 봐도 희망이 없는 상황"이 될 군대가 어떻게 당연히 이길 수 있던 군대라는 건가요?

이건 마치 "웰링턴이 반도전쟁에서 프랑스군을 무너트리고 승리를 거두는 건 너무나 당연했다."라고 하거나 "1805년 나폴레옹이 오스트리아, 러시아는 물론 프로이센까지 완벽하게 박살내서 유럽의 지배자가 되는 건 너무나 당연했다."라고 하는 것과 똑같다고 생각되네요. 결과만 보면 그렇지 실제 과정을 보면 양쪽 다 진짜 고생해서 이긴 거죠. (웰링턴이 앞에 있는 건 제 취향 ^^;)
조선수군은 수군에 복무하는 장정이 대대로 군호로 지정되어 세습되는 체젭니다. 물론 수군 복무가 고되고 돈 되는 일도 아니니 당연히 돈 좀 있는 양인집안의 경우 대리복무를 시키던지 아님 돈을 찔러주던지 하려고 들었지만, 그렇다고 임란 직전에 을묘왜변 등을 겪은 조선이 수군 군호를 그렇게 개판으로 관리했단 근거는 없습니다. 오히려 목선인 판옥선 등은 조금만 관리 안해주면 썩기 때문에 관리도 신경써서 해야하고, 그러려면 당연히 수군 복무 역시 제대로 상번(평소 생업에 종사하던 수군 군호가 수군으로 복무하러 수군 군영에 응소하여 번을 서는 것)하도록 철저히 관리해야 했습니다. 무슨 범죄자들을 모아서 어쩌구 하는 헛소린 대체 근거가 뭡니까?
늘 감탄하면서 지나갑니다. nasica님 혹시 남아프리카 월드컵 끝나기전에 특집으로 보어전쟁 다뤄주실순 없으신가요? 나폴레옹전쟁과 1차대전사이에 영국군이 벌인 가장 큰 전쟁이라죠. 옛날에 윈스턴 처칠 전기 읽을때, 영국군이 패해서 포로가 되기도 하고 탈출해서 도망다니던 얘기도 나오곤 했던 기억이 납니다. 근데 상대가 강대국도 아니고 소수의 네덜란드계 이민자들이 세운 자치국의 게릴라부대였다는데... 보어전쟁은 월드컵개최국인 남아프리카공화국(보어전쟁의 무대), 결승에 오른 네덜란드(네덜란드말로 농부라는 뜻의 이민자들 보어인), 축구종주국 영국(대군을 투입해서 가까스로 자존심을 지켰던 대영제국)... 이번 월드컵에 딱 맞는 주제가 아닌가요?
이건 무슨 충공깽인가요.....

젭라 쌈질은 그만쩜;

그러고보니 영국군이 쓰던 머스켓이 상당히 대구경인걸로 알고 있습니다. 레 미제라블에서 보면 영국군 머스켓이 3cm였던가 2cm였던가.... 여튼 거진 무식한 구경을 가지고 있는데 이게 정확한지 모르겠네요.
헐. 정말요?
소형고속탄이 제식화되기 시작한게 M16이고 그 전까지는 대구경 저속탄이죠. m1소총도 7.65mm짜리 저속탄환이니까요. 그것도 그나마 탄자모양을 공기역학 생각하면서 유선형으로 만들어서 지름이 가는편이니까 그 한참 이전인 머스켓시대의 둥근탄환 생각하면 2~3cm짜리도 새삼스러울 것도 없지만 총기역사에 관심없으면 잘 모를수도 있지요.
티렉스 님 정말 무슨 병 인가요?
차라리 욕을하세요 진짜...
덧글 가지고 책 한권 내셔도 되겠네

왜 자꾸 글 이랑 전혀 관련없는 덧글만 늘여놓으시는 건가요?
정신이 오락가락 하는건지 원....
간만에 들렀다가 깜놀했습니다. 이런 난장판이 벌어졌을 줄은...

저기 위의 T-Rex란 분은 군대가면 조심하셔야 할 듯하네요. 군대는 튀는걸 용납하지 못하는 경직된 조직인데...-- 사실을 말하는 것조차도 싫어하는 분위기인데 저런식으로 엉뚱한 장소에서 저런식으로 튀는 발언한다면 아마 본인뿐 아니라 주변 모두 피곤해질 확률이 높을텐데, 그럼 군생활 꼬이는건 순식간이라서요...
티렉스는 좀 좆잡고 반성좀 하길
킁... k-2 의 장전손잡이에대해서 들은얘기입니다만은 k-2의 장전손잡이가 잘부러지는것은 일부로그리한거라더라구요. 어설프게 휘어지면 노리쇠의 움직임에 방해를줄까 우려되어 부러질지언정 휘지는 아니하게 만들었다고합니다 ^^
1814년 기준이니까, 당연히 15달러라는 가격은 지금의 15달러, 즉 1만8천원은 아닐 겁니다. 이리저리 알아보니, 필라델피아가 위치한 지역인 펜실베니아 주에서는, 당시 1달러의 가치가 영국돈 90펜스, 즉 7실링 6펜스 (1실링=12펜스) 였다고 하네요. 전에 한번 계산해드렸듯이, 당시 영국돈 1실링으로는 금을 0.31g 정도 살 수 있었습니다. 금의 가치는 불변이라고 가정하면, 당시 영국돈 1실링은 현재 우리나라 원화로는 (1g의 금에 4만2천원라고 하면) 약 1만3천원 정도가 됩니다.

이부분에서 1814년기준이라고 하셨는데 1800년대 후반 기준은 어떤가요? 그리고 어떤 자료를 찾아보면 알 수 있을까요?

1실링이 달러와 비교해서 얼마나되는지 궁금합니다.
재미잇내요 이런글 보기도 힘든대 쓰기까지햇으니 전문가인지 모르겟는대 대단합니다.
좋은글 잘 보고 갑니다 혹 퍼갈수 있는지 양해 부탁드립니다

원문 주소 및 무단 회손은 없습니다
물론 퍼가셔도 됩니다.
정말 좋은 글입니다. 출처 남기고 퍼갈께요.^^
제가 예전에 2012년도였나? 그때쯤 학교에서 국가지원받아서 외국 가는 프로그램에 지원해서 가게 된 적이 있는데
원래 갈때 이미 머스킷 모형 있으면 사고싶다... 라는 생각하고 갔는데 거기서 진짜 찾긴 했었거든요 모형이고 발사안되는 정말 장식용 머스킷을요.... 그런데 보니까 발사형식은 부싯돌이면 더더욱 좋겠지만 뇌관식이었어요
예전에 본 영화인가? 어디 영상중에..... 아무튼 그게 거기까지 가서 살만한건가.. 싶은게 우리나라에서도 팔긴 하거든요 머스킷을.. 그런데 그건 권총밖에 못 찾겠더라고요 그래서 일반 사병용 길다란 라이플을 사고싶어서 보니까 아무리 길어도 기병용 단포신? 뭐... 그런 짧은거라서 가서 구매하는데 보니까 185파운드였거든요 그때 시세가 1파운드에
1800원정도? 였으니까 저는 비싸다고 생각했는데 정말 모형에 맞는 가격이었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