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폴레옹의 시대

nasica 2011. 6. 3. 21:02

에필로그...




(실제로 넬슨이 이렇게 일반 수병들과 잔치를 벌일 수는 없었습니다.  승전 후에도 워낙 할 일이 많았거든요.)



영국측 사상자는 전사 218명에 부상 677명이 기록되었습니다.  아마 부상자 중 상당수는 결국 사망했을 것으로 추정됩니다.  가장 많은 사상자를 낸 전함은, 역시 오리앙을 혼자서 상대해야 했던 벨레로폰이었지요.  총 201명, 전체 승무원의 거의 1/3이 죽거나 다쳤습니다.  머제스틱도 193명의 사상자를 냈고요.  반면에 가장 적게 희생자를 낸 쪽은 젤러스였습니다.  겨우 1명이 죽고 7명이 부상당했지요.  물론 전투 개시와 함께 좌초되었던 컬로덴은 전투에 인한 사상자는 단 한 명도 없다는, 묘하게 불명예스러운 기록을 남겼습니다.  선체에 심각한 파손을 입은 전함들 목록에는 당연히 벨레로폰과 머제스틱이 들어가 있었고, 그 밖에는 아퀼론으로부터 raking 포격을 당한 뱅가드가 들어 있었지요.  불행히도 컬로덴은 포격도 받지 않았으면서도 선체가 매우 심각하게 파손되는 불명예를 다시 안았습니다.

프랑스측 사상자는 그 수자가 불확실합니다만, 대략 2,000명이 사망 (그 중 절반은 폭발한 오리앙에서...) 하고, 2,000명이 부상을 입거나 포로가 된 것으로 추정됩니다.  13척의 전함 중 2척만 살아돌아간 것은 이미 보셨습니다만, 폭발한 오리앙과 티몰레온 외에, 나포된 3척의 전함은 너무 심한 파손을 입어서 재활용이 불가능할 정도였습니다.  나머지 6척 중 3척도 손상이 너무 심해서 영국 해군의 현역 전함으로서는 취역이 불가능했고, 고작 3척의 전함만 나중에 영국 해군에 편입됩니다. 

전에 나포 포상금 이야기를 했습니다만 (1804년, 스페인 보물선 함대를 둘러싼 모험 참조), 이 나포 포상금(prize money)라는 것은 어디까지나 나포한 선박이나 그 화물을 영국 해군성(Admiralty)가 구매해 줄 때의 이야기입니다.  즉, 해군성에서 평가하가에 너무 심하게 부서져서 재활용 가치가 떨어진다 싶은 나포선은 구매를 거부하거나 값을 확 깎아버렸습니다.  결국 제대로 평가를 받아 해군성에서 제값을 주고 구매한 프랑스 나포 전함은 토낭과 스파르시아트, 그리고 프랭클린 뿐이었습니다.  이들은 아드리아 해의 최고급 떡갈나무를 사용해 만들어졌고, 또 진수된지 10년도 되지 않은 최신예 전함이었거든요.  토낭과 스파르시아트는 원래 이름 그대로, 즉 토넌트(Tonnant)와 스파르시에트(Spartiate)로 영국 해군에 편입되어, 나중에 트라팔가 해전에서 활약했고, 정작 영국식 이름을 가지고 있던 프랭클린은 HMS 캐노퍼스(Canopus)로 개명되었는데, 세계에서 가장 뛰어난 2열 포문 전함(two-decker)으로 호평을 받았지만 정작 트라팔가 같은 주요 해전에는 참전하지 못했습니다.  




(HMS Canopus가 된 프랑스의 프랭클린 호.  HMS 캐노퍼스는 트라팔가 전투 직전 넬슨이 보급을 위해 지브랄타로 보낸 몇척의 전함 중 하나였기 때문에, 트라팔가의 영광에는 함께 하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이 아부키르 해전은 승리를 갈구하던 영국 국민들에게 너무나 큰 갈채를 받았기 때문에, 비정한 영국 해군성에서도 모른 척 할 수가 없었습니다.  사실 수고했던 장교들과 수병들에게 가장 큰 도움이 되는 것은 (속물스럽긴 합니다만) 무엇보다 돈이었는데, 그들이 금전적으로 보상을 받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 바로 나포 포상금이었던 것입니다.  따라서 해군성은 아무짝에도 쓸모 없는 다 부서진 프랑스 전함들을 꽤 높은 가격에 사들이는 아량을 베풉니다.  가령 콩퀘랑과 아퀼론을 각각 무려 2만 파운드의 가격으로 사들여서 항구에 헐크선으로 그냥 썩혔고, 심지어 도저히 수리가 불가능해 아부키르 현장에서 불질러 태워버린 게리에, 메르퀴르, 외르와, 지브랄타에서 역시 헐크선이 되어버린 푀프 수브랭조차도 비슷한 가격으로 사들였습니다.  당시 74문짜리 1척을 완전히 새로 건조하는데 드는 비용이 약 5만 파운드였으니, 다 부서져 쓸 모도 없어진 폐전함을 2만 파운드에 사들인 것은 정말 파격적인 조치였지요.  2만 파운드면, 금의 가치로 환산하면 현재 원화로 약 62억원에 해당하는 돈입니다.  이 2만 파운드에 매입된 상처투성이 6척과 함께, 정식으로 영국 해군에 편입된 토넌트와 스파르시에트 및 캐노푸스가 약 3만 파운드에 사들여졌다고 가정하면, 총 21만 파운드입니다.  즉 총 나포 포상금은 무려 620억원입니다.  그 중 1/4이 선원들의 몫이었습니다.   전체 함대 인원이 7,800명 정도였는데, 이중 장교, 하사관 등을 제외하고 약 6천명이 말단 선원이라고 하면, 1인당 돌아가는 포상금은 약 270만원 정도가 됩니다.  반대로 함장들의 몫은 약 전체 포상금의 1/8을 15명의 함장들(4급함 리앤더와 브릭 뮤틴도 포함하면)이 나눠가진다고 하면, 현재 가치로 약 5억4천만원 정도네요.  참고로, 이렇게 함장 1인당 몫인 1,750 파운드의 가치를 판단하시려면, 당시 영국의 대표적 중산층이라고 할 수 있는 시골 목사의 연봉이 대략 200 파운드였고, 역시 중산층인 육군 대위의 연봉이 대략 190 파운드 정도라는 것을 감안하시면 될 겁니다.  이들의 약 9년치 연봉이지요.




(이 그림에서, 전투를 앞두고 수병이 기도를 하자, 장교가 겁장이라고 욕을 합니다.  그러자 수병 왈, '아닙니다, 저는 그저 prize money를 나눠 받는 비율대로만 적의 포탄도 나눠 받게 해달라고 기도하는 겁니다' 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잠깐, 좌초라는 불명예스러운 전적을 안고 전투에서는 대포 한방도 못 쏘아본 컬로덴 호의 승무원들이나 함장도 저 상금 잔치에 낄 수 있었을까요 ?  원래 영국 해군의 규정에 따르면 나포가 일어나는 순간 시야 안에 들어있는 모든 군함의 승무원들은 나포 포상금 분배에 동등한 자격으로 지분을 가질 수 있도록 되어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건 나포에 눈이 멀어 전과 확대에 방해가 될 까봐 만든 규정이었고, 컬로덴 호처럼 좌초되어 아무 역할을 하지 못한 군함에게도 적용되는 규정은 아니었습니다.  결국 이들은 포상금 분배에서 제외될 운명이었으나, 넬슨이 해군성에 청원을 넣어 이들도 동등한 몫을 받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아부키르 해전 직후, 넬슨은 완전히 국가적 영웅이 되었으므로, 그가 한마디 하는 것은 상원의원들 10명의 청원보다 더 위력이 있었지요.

정작 넬슨 본인은 어느 정도의 보상을 받았을까요 ?  그가 전투 직전 식사 때 한 말처럼, 그는 정말 남작이라는 귀족 작위(peerage)를 받았습니다.  또한 저 위에 언급된 포상금 중 제독의 몫인 1/8을 챙겼으니, 26,000 파운드, 현재 가치로 81억원을 받았습니다.  그건 원래 규정에 따른 보상이었고, 그 외에 영국 의회로부터 연간 2천 파운드의 연금(6억2천만원)을 평생 받게 되었지요.  (영국 의회에게는 다행히도, 아시다시피 넬슨은 1805년 트라팔가 전투에서 전사합니다...)  그 휘하 함장들은 의회에서 특별히 주조한 금메달을 감사의 표시로 받았습니다.  하지만 원래 이런 큰 승전을 거둘 때 가장 큰 보상을 받는 것은 바로 각 함정의 선임사관(first lieutenant)이었습니다.  원래 큰 승전이 있으면, 함장이야 그저 좋은 경력 한줄이 더 씌어지거나 감사의 메달이나 좋은 검 한자루 정도를 받는 것이 보통이었으나, 선임사관은 가장 중요한 것, 즉 임시 함장(commander)로 승진을 시켜주는 것이 관례였던 것입니다.  당연히 아부키르 해전에서도 전체 함정의 선임사관들은 모두 임시 함장으로 승진하는 기쁨을 누릴 수 있었습니다. 

이렇게 보면 넬슨의 휘하 함장들은 상대적으로 별 보상을 못받은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이 해전에 참전했던 함장들은 넬슨으로부터 다음과 같은 공개적인 찬사를 받습니다.

"We few, we happy few, we band of brothers"  (몇 안되는 우리는, 행복한 우리는, 진정한 형제들이다)




(나는 너의~ 영원한 ~ 형제~야~)



이건 아시다시피 몇년전 제작된 2차세계대전 배경의 "Band of Brothers"라는 미니시리즈 제목의 원본인 세익스피어의 희곡 헨리 5세에 나온 대사지요.  이렇게 넬슨으로부터 '형제'로 지목된 함장들은 모두 영국 해군 내에서 대단한 명예를 누렸고 모두 출세의 기반을 잡은 셈이었지요.  넬슨은 그야말로 거의 군신으로 추앙받았거든요.

이렇게 돈 벼락을 맞은 영국 해군 사정 말고, 포로가 된 프랑스 해군의 사정을 보시지요.  워낙 많은 수가 포로로 잡혔고, 그들 중 상당수는 중상자였기 때문에, 영국 해군은 골치가 아팠습니다.  결국 수용 가능한 200명 정도를 제외한 나머지 포로들은 모두 '향후 적절한 포로 교환을 정산하기 전에는 전투에 참여해서는 안된다'라는 조건하에 이집트 해안에 상륙시켜 석방해줍니다.  그러나 사정이 급했던 나폴레옹은 이들을 모두 자신의 육군에 편입시켜 버렸지요.

아부키르 만에서의 치열한 전투가 부족했는지 추가로 전투를 치른 영국 군함도 하나 있습니다.  74문짜리 전함들의 싸움에서 주도적인 역할은 하지 못했지만 나름 열심히 활약했던 50문짜리 4급함 리앤더(Leander) 호입니다.  톰슨 (Thomas Thompsom) 함장이 지휘하는 리앤더 호는 카디즈 (Cardiz) 앞바다에 있던 넬슨의 상관 세인트 빈센트(St. Vincent) 백작의 지중해 함대 본부에 승전보를 전하기 위해 8월 5일 파견됩니다.  그러나 출발한지 2주 정도 된 8월 18일, 하필 아부키르에서 탈출했던 2척의 프랑스 전열함 중 하나인 제네로(Genereaux)에게 딱 걸려들게 됩니다.  워낙 체중 차이가 있는 상대이다보니, 리앤더는 안간힘을 써서 도주하려 했으나 결국 따라잡혀 크레테 서해안 쪽에서 치열한 전투를 벌이게 됩니다.  어떻게 되었을까요 ?





Flying Colors by C.S. Forester (배경 : 1811년 영국 해군 전함 HMS Victory 함상) ----------------------------

(프랑스 함대와의 전투 중 항복한 뒤, 탈출하여 영국 해협 함대에 도착한 혼블로워 함장이 해협 함대 사령관인 갬비어 제독에게 보고하는 자리입니다.)

"당장은 구두로 보고 해도 좋네."  제독이 말했다.

혼블로워는 깊은 숨을 들이쉬고는 이야기를 시작했다.  그는 자신의 전함 서덜랜드 호를 로자스 앞바다의 프랑스 함대와의 교전시켰던 순간의 전략적 상황에 대해 대략 설명했다.  전투 그 자체에 대해서는 1~2 문장 만이 필요했다.  이 이야기를 듣고 있는 갬비어 제독이나 캘린더 함장 등은 모두 해전 경험이 풍부하므로 자신이 굳이 말하지 않아도 알아들을 것이기 때문이었다.  그는 로자스 만에서 돛대를 잃고 힘없이 떠다니던 전함들의 모습과, 그들을 기다리던 육상 요새의 대포들, 그리고 항구에서 노를 저어 나오던 포함들에 대해 이야기했다. 

"117명이 전사했습니다."  혼블로워가 말했다.  "147명이 부상당했고요.  제가 로사스에서 이송되기 전에 그 중 44명이 추가로 사망했습니다."

"세상에 !" 캘린더 함장이 외쳤다.  이 탄성은 병원에서 죽은 부상자들의 수자 때문이 아니었다.  그 정도면 정상적인 비율이었다.  놀란 이유는 전체 사상자 수자 때문이었다.  서덜랜드 호는 승무원의 절반 이상이 죽거나 부상당한 이후에야 항복했던 것이었다. 

"리앤더의 톰슨은 300명의 승무원 중 92명을 잃었습니다, 남작님."  그가 말했다.  톰슨은 크레테 섬 인근에서 프랑스 전함에 맞서 배를 지키다가 결국 항복했었는데, 그 처절한 항전은 영국 전체의 경탄을 받았었다.

"나도 알고 있소."  갬비어 제독이 말했다.  "계속 하시오, 함장."

--------------------------------------------------------------------------------------------------------

이 소설 시리즈의 주인공 혼블로워는 전편인 "A Ship of the Line"에서 서덜랜드 호를 타고 2대1의 불리한 조건 하에서 프랑스 전함과 싸우다가 항복해야 했습니다.  그러다 탈출한 이후, 혼블로워는 서덜랜드에서의 그 영웅적인 (부하를 얼마나 많이 죽였느냐 하는 것이 과연 영웅의 척도로서 적절한지 고개가 갸우뚱...) 항전이 알려지면서, 일약 국가적 영웅이 됩니다.  분명히 적에게 항복하는 것은 그리 자랑스러운 경력은 아닌 것 같습니다만, 당시 사회적 분위기는 어떤 상황에서 항복했는지가 매우 중요했습니다.  즉, 부하들이 거의 죽거나 다쳐서, 더 이상 저항의 의미가 없다고 판단되어 최후의 순간에 항복을 한다면, 오히려 그 전에 얼마나 처절하게 싸웠느냐가 높이 평가되어 영웅 대접을 받기도 했던 것입니다. 




(리앤더와 제네로의 대결은 워낙 유명해져서, 이렇게 그림까지 그려졌습니다.)



저 소설 속에 인용되었듯이, 실제로 리앤더 호의 함장 톰슨은 300명 승무원 중에 35명이 죽고 57명이 부상을 당한 뒤, 제네로에게 항복합니다.  전체 승무원 중 1/3을 잃은 뒤 항복한 것이지요.  나중에 포로 교환 형태로 본국에 돌아온 톰슨은 배를 잃은 함장이면 무조건 거쳐야 하는 군법 회의에서, 명예로운 무죄를 선고 받았을 뿐만 아니라, 제독 및 고참 함장들로 구성된 재판부로부터 그의 용기에 대한 찬사를 받습니다.  군법 회의가 열렸던 HMS 알렉산더 호에서 보트를 타고 멀어져가는 톰슨을 향해, 항구에 정박해 있던 다른 전함들의 모든 수병들이 일제히 3번의 환성을 질러 그에게 경의를 표했다고 합니다.  또한 그는 이 공로를 인정받아 기사 작위도 받고 1년에 200 파운드 씩 연금도 받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톰슨이 받은 영예는 위에서 인용된 소설인 Flying Colors에 아주 생생하게 묘사되어 있습니다.  (국내에서는 연경사에서 '용사의 귀환'이라는 제목으로 출판되었습니다.)  소설 속 주인공인 혼블로워는 톰슨의 10배인 2천 파운드의 연금을 받게 되는데, 그에 대해서는 나폴레옹 시대의 채권 투자 편을 참조하시기 바랍니다.




(그냥 톰슨이 아닙니다.  영웅 톰슨이자, 연 200 파운드짜리 톰슨입니다.)



자, 아부키르 해전에 대해서는 스위프트슈어의 함장인 할로웰(Benjamin Hallowell)의 선물 이야기로 마치기로 하지요.  이 할로웰이라는 양반은 사실 영국 태생이 아니라 미국 태생이었습니다.  보통은 캐나다인으로 소개가 되는데, 미국 독립 전쟁이 일어나기 전에 메사추세츠 주에서 태어났고, 아버지는 세무원이었다고 합니다.  직업이 직업인지라 그 가족은 미국 독립 전쟁 때 박해를 받고 영국령인 캐나다로 튀었다가 결국 영국에 자리를 잡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10대 중반까지 미대륙에서 자라난 이 할로웰 함장은 아무래도 영국 출신보다는 상당히 통통 튀는 성격의 사람이었나 봅니다.  그의 튀는 언행은 이미 언급된 세인트 빈센트 곶 해전에서도 드러납니다.




(나중에 제독까지 올라간 할로웰의 모습입니다.  "나 미국물 먹고 자란 사람이야 !")



당시 전함 15척으로 구성된 영국 함대를 지휘하던 저비스 제독은 스페인 함대의 규모가 어느 정도인지 전혀 모르고 있었습니다.  스페인 함대의 규모는 전함만 무려 27척이었고, 이 정도면 사실 교전을 포기하는 것이 옳았지요.  그러나 스페인 함대가 약간 분산되어 있다 보니, 전체 규모는 이미 전투 태세에 들어간 뒤에야 알게 되었습니다.  처음에는 8척인 줄 알았으나, 적함의 수는 곧 12척, 또다시 20척으로 늘었지요.  그때까지만 해도 적함의 수를 보고하던 사관에게, "Very well, sir"  (very well은 좋다는 뜻이 아니라, 알았다 정도로 해석되는 것이 맞습니다) 라고 대답하던 저비스 함장도, "전함만 27척입니다" 라는 추가 보고가 오자, 좀 질렸는지 이렇게 말합니다.

"Enough, sir, no more of that; the die is cast, and if there are fifty sail I will go through them" 
"이제 그만, 그 정도면 충분하네.  이미 주사위는 던져졌고, 설령 50척이라고 해도 난 그 전열을 뚫고 지나갈 걸세."

그때 저비스의 뒤쪽에는 당시 폭풍으로 배를 잃고 군법회의 대기 중이던 할로웰 함장이 백의종군 형태로 함께 하고 있었는데, 그 말을 듣고는 너무 흥분한 나머지 감히 하늘같은 제독의 등을 두들기며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That's right Sir John, and, by God, we'll give them a damn good licking!"
"바로 그겁니다, 존 경 !  그리고 젠장, 우리는 저놈들을 우라지게 화끈하게 핥아줄거에요 !"




(저비스 제독은 이 승리로 "세인트 빈센트 백작"의 작위를 받습니다.)



거기가 미국 해군 함상이라면 모를까, 부하들에게도 말끝마다 'Sir' 자를 붙이는 것이 관례이던 영국 해군에서 감히 제독의 등을 두들기다니요 !  거기다가 damn ?  licking ?  그날 전투가 영국 해군의 대승으로 끝났기에 망정이지, 하마트면 할로웰의 해군 생활은 그것으로 끝날 뻔 했습니다.

그런데 이 엉뚱한 할로웰은 마침 오리앙 호가 폭발할 때 가장 가까이 있던 스위프트슈어의 함장이어서인지, 오리앙 호의 큼직한 중앙 돛대를 물에서 건졌습니다.  그는 이걸로 존경하는 넬슨 제독에게 뭔가 선물을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했는데, 그 만든 선물이라는 것이 (아무리 모양새가 딱 들어맞는다고는 해도) 그만 관을 만들어버렸습니다 !  그리고는 그걸 또 자랑스럽게 넬슨에게 다음과 같은 편지와 함께 선물합니다.




(저렇게 오리앙이 폭발할 때 바로 저 옆에서 폭발의 바람을 타고 있는 가운데 전함이 바로 스위프트슈어입니다.)



"제독님, 제 임의대로 오리앙 호의 주돛대로 제독님을 위한 관을 만들어 선물로 드립니다. 이 세상에서 군인으로서의 삶을 마치시면, 자신의 승전비 속에 매장되는 것도 보람찰 것입니다.  하지만 저는 그 날이 아주 먼 훗날이 되기를 바랍니다.  제독님의 신실한 친구, 벤자민 할로웰."

그런데 정작 넬슨은 그 괴이한 선물을 좋다고 받고는, 무척 마음에 들었는지 자신의 선실에 갖다 놓고 식사를 할 때 등 뒤에 꼭 세워놓았을 뿐만 아니라, 다른 배로 기함을 옮길 때면 그 관을 항상 가지고 옮겼다고 합니다.  잘 아시는 바와 같이, 1805년 트라팔가 전투에서 전사한 넬슨은 정말 그 할로웰의 관 속에 들어가 매장됩니다.  할로웰의 바램과는 달리 고작 7년 후의 이야기지요.


이전 댓글 더보기
에필로그라서 짧은 포스팅일줄 알았는데 재미있는 이야기로 가득차 있네요. 즐겁게 잘 읽고 갑니다.
서머셋님의 댓글을 보고 이름이 바뀐 이유도 알았네요.
역시 양키들은 ...

관을 선물하는 센스는 정말 아연실색하게 만들군요... 우리나라같으면 "빨리 죽으라"는 이야기가 될텐데 배짱이 큰건지 넬슨공은 그걸 오히려 좋아했다니..
우리의 많은 어르신들도 자신의 수의와 묫자리를 미리미리 준비해놓곤 하셨지요. 장례라는게 급하게 준비할수밖에 없고 그러다보면 얼마나 엉망으로 처리되는지 잘 아시다보니 현명하게도 미리미리 자신이 쓸 양질의 제구를 준비하셨던 것이지요.
양키 센스라 하긴하지만....그래도 웬지 납득이 가는 선물이라는....관은....

항상 글을 잘 읽고 갑니다...
양키센스는 정말...

양키들과 영국 아그들이 괜히 세계를 정복한 것이 아니군요. 언제나 쫌스런 생활을 하고 있는 자신에 대해 반성하면서도, 우리 사회에서 저 짓거리 했다가는 매장당한다는 사실을 다시금 느끼고 있는 독자 x였습니다. ㅠ.ㅠ
이 해전에서 탈출한 빌뇌브는 7년후 트라팔카에서 패장에 되고 말죠.
똑같은 남자한테 똑같은 방식으로 또 털리는 불쌍한 남자 빌뇌브...

실제로도 포로교환으로 프랑스로 돌아오는 길에 자살합니다. 아내에게 이런 편지를 남기고 말이죠.
"나에게 자식이 없는게 정말 다행이라오"(빌뇌브라는 우울한 이름을 물려줄 필요가 없는)

사실 트라팔카에서도 넬슨의 해전에 임하는 원칙은 간단했죠.

나일 해전
"적 함대가 몇척이건 간에, 전열의 후미는 내버려두고 선두와 중앙부까지만 두들겨 팬다 !"
트라팔카 해전
"적 함대가 몇척이건 간에, 전열의 선두는 내버려두고 후미와 중앙부까지만 두들겨 팬다 !"

빌뇌브 나일해전에서 도데체 뭘 배운거냐? 로열네이비를 이기는건 불가능하다???인가...

우와 에필로그도 정말 흥미롭네요 톰슨 함장처럼 명예로운 항복도 참 합리적인 반응이고요. 누구처럼 무조건 항복한다그래서 배가르고 돌아온 포로들을 시베리아에 처넣는 나라하곤 다르네요
나폴레옹도 해군 관련해서 막장은 막장이군요. 가뜩이나 부족한 해군 인력난의 프랑스 해군에서 그것도 그나마 나은 함대에서 비록 패전을 하긴 했지만 실전을 겪은 소중한 생존병들을 육군으로 소비 해버리다니요.
안녕하세요 한차럐 비가 오고는 따가운 햇살 만이 세상을 만난듯 대지를 달굽니다.초원은 제 세상 만난듯이 마음껏 자태를 뽐네는군요, 좋은 시간 아름답게 보내세요^^
안녕하세요 한차럐 비가 오고는 따가운 햇살 만이 세상을 만난듯 대지를 달굽니다.초원은 제 세상 만난듯이 마음껏 자태를 뽐네는군요, 좋은 시간 아름답게 보내세요^^
안녕하세요 한차럐 비가 오고는 따가운 햇살 만이 세상을 만난듯 대지를 달굽니다.초원은 제 세상 만난듯이 마음껏 자태를 뽐네는군요, 좋은 시간 아름답게 보내세요^^
안녕하세요 한차럐 비가 오고는 따가운 햇살 만이 세상을 만난듯 대지를 달굽니다.초원은 제 세상 만난듯이 마음껏 자태를 뽐네는군요, 좋은 시간 아름답게 보내세요^^
이번 해전 편은 정말 걸작입니다. 4편을 시간가는 줄 모르고 정독했네요. 항상 nasica님께 감사드립니다.
안녕하세요 한차럐 비가 오고는 따가운 햇살 만이 세상을 만난듯 대지를 달굽니다.초원은 제 세상 만난듯이 마음껏 자태를 뽐네는군요, 좋은 시간 아름답게 보내세요^^
아부키르 해전 글 읽어보고 드는 생각 '어른이 애 모가지 비틀어서 제압한 것과 똑같잖아' 프랑스 혁명 때문에 지휘관들 모가지가 죄다 날아가버려 별볼일 없는 양반이 해군 총사령관 차지하고 있던 오합지졸과 싸우면 당연히 이길 싸움이었는데 너무 오바하는 거 같군요.
당연히 이길 싸움이라는 것은 없습니다. 부뚜막 위 소금이라도 집어 넣어야 짜듯이, 어쨌든 싸워야 이기는 거니까, 어떻게 싸우는지는 여전히 중요하죠.
그에 관한 공신력 있는 정보들이 남아 있으니 이렇게 종합하여 내놓게 되는 것입니다. 영국 쪽의 소스가 많다 보니 그쪽을 띄우는 것처럼 보일 수는 있지만, 오바라는 건 좀 부당하지 않을까요? 프랑스의 분전도 같이 소개되었는데.
호랑이도 토끼를 잡을 땐 전력을 다한다는 말씀은 알겠는데, 객관적으로 봤을 때 누가 봐도 영국이 압도적 우위인데 안 그래도 오합지졸인 병력이 나폴레옹 가카께서 식량까지 들고 가 버리는 바람에 굶어 죽을 순 없고 해서 보급차 상당수가 상륙해 있었던 상황이었으니 넬슨이 아니라 평범한 사령관이라도 이겼을 싸움이니 오바라는 것이 지나치다라는 생각이 안 드네요^^
뭐 프랑스해군도 분전했다는 건 인정하지만요.
.... 이순신이 만든 무적 조선 수군을 한타에 말아먹은 원균의 케이스가 말해주죠... 당연히 이길 싸움 같은것 없습니다.
곰트림// 아니 객관적으로 봤을 때 프랑스군이 절대 열세였다는 건 명백한 사실이었고 예상대로 됬을 뿐인데 뭐가 당연히 이길 싸움은 없다는 겁니까? 명량해전 같은 케이스가 어디 흔한 줄 아십니까? 100은 못 되더라도 99퍼센트 뻔한 싸움이었습니다.
안녕하세요 한차럐 비가 오고는 따가운 햇살 만이 세상을 만난듯 대지를 달굽니다.초원은 제 세상 만난듯이 마음껏 자태를 뽐네는군요, 좋은 시간 아름답게 보내세요^^
현대의 첨단 무기가 전략상 압도적이데 반해, 그 시대에는 지휘관의 판단과 역량, 병사들의 항해술과 전투력. 무엇보다 사기와 같은 정신력이 중요했겠네요.하드웨어보다는 소프트웨어의 조합과 활용이 중요한 것이였죠. 아부키르 해전. 길이길이 역사에 남을 전투네요^^ 잘 읽었습니다. 추천누르고 갑니다. 좋은 글 감사합니다.
안녕하세요 한차럐 비가 오고는 따가운 햇살 만이 세상을 만난듯 대지를 달굽니다.초원은 제 세상 만난듯이 마음껏 자태를 뽐네는군요, 좋은 시간 아름답게 보내세요^^
당시 미국함선과 영국함선의 분위기가 상당히 달랐나요? : )

물론 같진 않았겠지만.. 그 차이가 있었다면 그것도 충분히 흥미로웠을거같네요

미국함선이 좀더 스스럼 없었다던가(?)
(즐)감하고 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