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폴레옹의 시대

nasica 2014. 5. 31. 23:28

나폴레옹은 1815년 세인트 헬레나 섬으로 유배된 뒤 그의 열정과 분노, 아쉬움 등을 삭일 겸 회고록을 집필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런 대인물이 직접 구술한 회고록이니 정말 소중한 역사적 가치가 있는 사료이겠습니다만, 사실 그 회고록의 진실성에 대해서는 당대는 물론 현대에도 그닥 높은 점수가 주어지지 않습니다.  나폴레옹은 소싯적부터 자신에게 유리하도록 거짓말을 하도 많이 했기 때문에, 인생 노년기에 자신의 행동을 정당화하기 위해 쓴 회고록의 모든 부분을 액면 그대로 받아들일 수가 없었던 것이지요.




(구텐베르크 프로젝트 사이트 등에서 공짜로 다운로드 받아볼 수 있는 '나폴레옹 회고록'은 사실 그의 친구이자 비서였다가 개인 비리가 적발되어 쫓겨난 부리엔의 회고록입니다.  이 회고록도, 부리엔 개인의 이해 관계에 따라 매우 왜곡된 부분이 많다는 것이 중론입니다.)



그의 회고록 부분 중에는 이런 주장도 있습니다.  나폴레옹의 집권 기간 중 프랑스의 문맹률이 무려 96%에 달했다는 것입니다.  이 부분 역시 많은 역사가들이 고개를 갸우뚱하는 부분입니다.  이미 1680년 대에, 프랑스 인구 중 20% 정도는 자신의 이름을 쓰고 읽을 줄 알았습니다.  그리고 1780년 정도가 되면 그 비율은 37% 정도에 달했지요.  특히 프랑스는 워낙 큰 나라이다 보니, 나폴레옹 시대에 프랑스 전체의 정치 판도는 비교적 부유한 프랑스 북부 지방의 인구가 좌우하다시피 했는데, 그 프랑스 북부 지방에서는 전체 성인 남자의 2/3 정도가 글을 읽고 쓸 줄 알았다고 합니다. 

왜 나폴레옹은 이렇게 자기가 다스린 위대한 나라 프랑스의 국민들을 글도 못 읽는 미개한 국민으로 깎아내렸던 것일까요 ?  한마디로 '이런 미개인들을 이끌고 위대한 업적을 남기려면 나 정도의 독재 행위는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라는 것을 정당화하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정말로 그랬을까요 ?






일단 프랑스 국민의 96%가 문맹이었다는 것은 나폴레옹 본인도 믿지 않는 수치임이 분명해 보입니다.  그가 1797년 7월 15일 북부 이탈리아에서 작전 중에 파리의 총재 정부에 보낸 편지를 보면 이런 내용이 있습니다.  밀라노를 점령한 그의 부대 병사들 사이에 회람되던 프랑스 신문 내용이 나폴레옹 자신에 대한 중상모략으로 가득한 것을 보면 그 프랑스 신문사는 영국에게서 뒷돈을 받고 있는 것이 틀림없으니 그 신문사의 윤전기를 끌어내어 박살을 내야 한다는 것입니다.  아울러 참모장 베르티에 (Berthier)에게 병사들 사이에서 회람되는 신문이나 책자들에 대해 엄격한 검열을 실시하도록 지시했습니다.  애초에 전국민의 96%가 문맹이라면, 당연히 그의 부대원들 대부분도 문맹이었을테니, 그런 신문이 돌아다닌다고 그가 신경쓸 필요가 없었겠지요.


뿐만 아닙니다.  그는 1797년 캄포 포르미오(Campo Formio) 조약으로 제2차 동맹전쟁이 끝나기도 전에, 이미 새로운 작전에 들어갔는데, 그건 바로 언론과의 전쟁이었습니다.  그는 1797년~1798년 사이에  자비로 무려 6개의 신문사를 만들어 자신의 정치적 입장을 옹호하는 신문을 찍어냈습니다.  물론 그 신문사들의 기사는 사실상 나폴레옹 자신이 구술한 것들이었지요.  역시 국민 전체의 96%가 글도 못 읽는 미개인이라면 구태여 그렇게 돈을 들여가며 어용 신문사를 만들지는 않았겠지요. 





(르 모니퇴르 지도 그런 나폴레옹의 어용 신문 중 하나였습니다.  사진은 워털루 전투 약 10일 후인 1815년 6월 27일자 신문입니다.  패전 직후에도 황제 폐하라고 지칭하더니, 이제 즈음 되서는 불경스럽게도 황제 폐하라고 하지 않고 나폴레옹이라고 부르네요.)



나폴레옹은 위대한 군사적 천재이자 황제이니까, 그가 지배한 국민들을 이렇게 '미개하다'며 경멸하는 것이 당연했을까요 ?  실은 나폴레옹은 그의 국민들을 경멸함과 동시에 무척 두려워하는 편이었습니다.  자신의 눈으로 미개한 국민들이 우르르 몰려와 유서 깊은 부르봉 왕조의 루이 16세를 끌어내다 목을 치는 것을 목격했는데 두려워하지 않을 수가 없지요.  그는 국민들에 대한 두려움을 이런 말로 표현한 적이 있었습니다.

"리옹에서 성난 노동자들 2천명과 상대하는 것보다는 전장에서 외국군대 2만명과 싸우는 것이 더 쉽다."

그는 이렇게 두려운 미개 국민들을 통제하는 수단으로 총칼이 아닌 언론과 예술을 택했습니다.  그는 항상 언론을 검열하고 통제하며 자신에 대한 반대 여론이 퍼지지 않도록 끊임없이 애를 썼을 뿐만 아니라, 더 나아가 자신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언론 기사가 나가도록 어용 신문을 만드는데도 노력을 기울였습니다.  가령 1799년 나폴레옹의 쿠데타 직전에는 73개사였던 파리의 정치 신문사가 1800년에는 13개사로, 다시 1811년에는 고작 4개로 줄었는데, 이렇게 남은 신문사들은 물론 100% 어용 신문들이었습니다.  따라서 프랑스 내부에서는 나폴레옹의 끊임없는 전쟁과 여성 추문, 어려워지는 국민의 삶에 대해 비난하는 기사는 찾아볼 수가 없었지요.  이런 언론 통제에 대한 나폴레옹의 굳은 의지는 1805년 그가 비밀 경찰 책임자인 푸셰 (Joseph Fouche)에게 보낸 편지의 다음 구절에서 분명히 드러납니다.

"나는 내 이익에 반하는 것은 어떤 것이라도 인쇄되는 것을 허락하지 않을 것이다"




(사진은 푸셰의 모습입니다.  나폴레옹의 권력은 사실 탈레랑, 푸셰, 그리고 캉바세레스의 뒷받침이 없었다면 불가능한 것이었지요.)



그러나 이렇게 자신이 듣고 싶은 소리만 언론에서 나오는 것이 과연 나폴레옹 자신에게 유리한 것이었는지에 대해서는 의구심이 들 수 밖에 없습니다.  나폴레옹도 사람인지라 그가 내리는 모든 결단이 다 옳은 것은 아니었으므로, 그의 정책에 대해 비판하고 견제를 할 세력이 필요했는데, 그럴 수 있는 세력을 나폴레옹이 다 없애 버렸으므로 나폴레옹의 정책은 한번 잘못 되면 걷잡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 결과 사실 그렇게 좋은 판단이 아니었던 대륙 봉쇄령이나 스페인 전쟁, 그리고 결정타였던 러시아 침공 등이 그대로 이루어졌고, 결국 이는 나폴레옹 자신의 폐위와 프랑스의 굴욕으로 이어졌던 것입니다.  프랑스에 건전한 언론이 살아 있어서 나폴레옹에 대한 견제가 있었다면 오히려 나폴레옹의 왕조가 더 이어질 수 있었을지도 모르지요.  이런 비판 세력에 대한 필요성은 나폴레옹의 밀수 품목을 봐도 알 수 있었습니다.  나폴레옹은 자신이 대륙 봉쇄령을 내려 영국과의 교역을 금지시켜 놓고도, 일부는 영란은행의 황금을 유출시키기 위해, 일부는 자기 자신의 필요성에 의해 영국과의 밀수 거래를 용인하거나 적극적으로 조장하기도 했습니다.  대개는 영국에 비단이나 고급 와인 같은 프랑스 제품을 팔고 그 댓가로 황금을 받아오는 형태였으나, 일부 품목은 영국제 상품을 받아왔는데,  그 품목 중 하나가 바로 영국 신문들이었습니다.  나폴레옹 자신도 자신과 그의 현황에 대한 객관적인 평가가 궁금했던 것이지요.

나폴레옹은 신문 뿐만 아니라 책이나 팜플렛 등 모든 인쇄물에 대해서도 가혹한 검열 조치를 시행했습니다.  1810년, 이미 탄탄하던 '비공식 검열'을 공식화한데 이어서, 1811년 10월 14일에는 아예 배포해도 좋은 모든 서적의 목록을 공표하기 시작했습니다.  일종의 서적 출판 허가제를 도입한 셈이었지요.  이렇게 그의 광활한 제국 내에서 문필가들은 나폴레옹의 비밀 경찰들의 감시에 위축될 수 밖에 없었습니다.  하지만 그런 나폴레옹의 비밀 경찰들도 바다 건너 영국의 풍자 만화가들은 어쩔 수가 없었습니다.  나폴레옹은 주로 영국에서 나오는 그에 대한 만평을 매우 혐오했고, 그것들이 주로 프랑스 망명 귀족의 재정 지원으로 이루어지고 있다며 평가 절하하면서도 분노했습니다.  심지어 영국과의 평화 협정이었던 1802년 아미엥 조약에서, 나폴레옹은 영국 언론과 만화가들이 만들어내는 자신이나 자신의 정책에 대한 조롱을 살인이나 사기와 동일한 범죄로 다루어 추방으로 다루어져야 한다는 조항을 평화의 전제 조건으로 삽입하려고 했을 정도였지요.




(당시 영국의 만화입니다.  저렇게 방구 세례를 받는 초상화는 당시 영국 국왕이던 조지 3세입니다.  당시의 영국 언론의 자유분방함을 엿볼 수 있습니다.)



여기서 잠깐 딴 이야기를 해보지요.  예전에 제가 고등학교 때인가... 일요일 밤에 라디오에서 세계 명작 소설 등을 50분 정도로 각색하여 성우들이 라디오 드라마 형태로 연기하는 프로그램이 있었습니다.  그때 들었던 작품 중에 '바다의 침묵'이라는 작품이 있었습니다.  지금 찾아보니 그 소설의 원제는 'Le Silence de la mer', 즉 글자 그대로 바다의 침묵으로서, 독일군이 프랑스를 점령한 1941년에 레지스탕스로 활약한 장 브륄러 ( Jean Bruller)가 쓴 소설입니다.  줄거리를 한줄로 요약하면, 제2차 세계대전 당시 프랑스 어떤 마을에 주둔한 독일군 장교과, 그 장교가 숙사 할당을 받은 어느 프랑스 가족의 이야기입니다.  평소 프랑스를 동경하고 사랑할 뿐만 아니라 인품도 훌륭한 신사였던 그 독일군 장교가 그 집의 노인 및 그 조카딸과 대화를 하려고 노력하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많이 하는데, 거기서 그 독일군 장교가 이런 말을 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문학하면 프랑스지요.  독일에 대단한 문필가가 누가 있던가요 ?  괴테 ? 쉴러 ?  하지만 프랑스는 라신느, 모파상, 발자크, 뒤마, 위고 등등 너무나 대단한 문학가들이 너무나 많습니다.  그래도 음악하면 반대로 독일이 최고지요."




('바다의 침묵'은 1949년 프랑스에서 영화로도 만들어졌습니다.)



이렇게 유럽 대륙의 문학을 주도하던 프랑스에서, 유독 암흑기가 있었으니 바로 나폴레옹 집권기였습니다.  나폴레옹의 문학 탄압으로 인해, 결과적으로 나폴레옹 시대에는 뛰어난 작가가 전혀 배출되지 않았습니다.  반대로 영국에서는 이 시기에 제인 오스틴, 키츠, 셸리, 바이런 등 유명 작가들이 많이 배출되었지요.

원래 나폴레옹은 나름 문학에 대해 취미가 있는 사람이어서, 책도 많이 읽었을 뿐만 아니라 심지어 연애 소설을 쓰기도 했습니다.  나폴레옹과 거의 결혼할 뻔 했으나 결국 베르나도트의 와이프가 된 데지레 클라리 (Desiree Clary)와의 연애 이후인 1795년 펜을 잡은 그는 일필휘지로 9페이지짜리 클리송과 유제니 (Clisson et Eugenie)라는 연애 소설을 썼는데, 사실 그 내용은 다소 손발이 오그라드는 정도였다고 합니다.  하지만 그의 글 솜씨는 이런 연애 소설보다는 그의 전과 보고서에서 훨씬 더 빛났습니다.   전에 머나먼 다리 (http://blog.daum.net/nasica/6862462) 편에서 언급했듯이, 나폴레옹의 로디 (Lodi) 전투는 사실상 전술적 목표 달성에 실패한 초라한 전투였습니다.  그러나 나폴레옹은 먼저 전투 보고서를 통해, 그리고 나중에는 르죈 (Lejeune)의 멋진 그림을 통해 이 전투를 대단한 의미를 가진 역사적 전투로 승화시켰지요.  이렇게 과장된 전투 보고서와 거장들을 동원해 그린 미화된 전투 묘사화 등을 통해, 나폴레옹은 국민들에게 프랑스의 영광이라는 환상을 불어 넣었습니다.




(아르콜레 다리에서의 전설적인 돌격을 선두 지휘하는 나폴레옹의 모습입니다.  이 그림의 실제 사연에 대해서는 아르콜레의 용자 http://blog.daum.net/nasica/6862468 편을 참조하세요.)



여기서 잠깐, 나폴레옹의 주장과는 달리 국민들의 절반 정도가 읽고 쓸 줄 알았다고 해도, 그렇다는 것은 국민들의 절반 정도는 정말 문맹이라는 뜻이 됩니다.  사실 그런 문맹 국민들에게는 인쇄물과 서적에 대한 검열은 별반 효과가 없었겠지요.  이런 '정말 미개한' 국민들에게도 나폴레옹의 여론 통제는 마수를 뻗쳤습니다.  바로 극장을 통해서였습니다.  사실 프랑스는 루이 14세 이후 몰리에르와 라신 등 대문호들 덕택에 연극에 대한 애호가 대단한 나라였습니다.  프랑스 대혁명이 한창이던 시기에도 이런 연극 열풍은 계속 이어져 단두대를 피해 지하실에 숨어있던 귀족들까지 체포의 위험을 무릅쓰고 극장 관람석을 몰래 찾을 정도였으니까요.  나폴레옹 자신도 연극 공연의 광팬으로서, 1800년 당시 제1통령이던 나폴레옹에 대한 폭탄 암살 시도 때도, 사실 나폴레옹은 극장에 가던 중이었지요. 




(이 그림은 1800년 나폴레옹에 대한 암살 기도가 아니라, 1858년 그의 조카인 나폴레옹 3세에 대한 암살 시도였던 Orsini 사건을 그린 것입니다.   아이러니컬하게도, 이때도 나폴레옹 3세는 극장에 가는 길이었습니다.  생각해보니 링컨 대통령도 극장에서 암살 당했네요.)



이런 연극 공연은 책에 비해 이해하기 쉽고 대중의 감성에 직접 호소하는 경향이 있었으므로, 나폴레옹은 연극 내용의 통제에 직접 펜을 들 정도로 세심하게 관심을 가졌습니다.  가령 1805년 나폴레옹은 밀라노에서 푸셰에게 편지를 써서 프랑스의 성군인 앙리 4세를 주제로 한 새로운 연극을 취소하라고 지시했는데,   이유는 너무 근대의 일이라서 관객들에게 '필요없는 열정'을 불러 일으킬 수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었습니다.   또 예나-아우어슈테트 전투에서 프로이센을 격파하고 바르샤바 입성 직전이던 1806년 말, 당시 매우 바쁘고 긴박한 상황이었음에도 푸셰에게 또 편지를 써서 레이니에르 (Reynier)의 연극 '성전 기사단'에 대해 비평하며 '성전 기사단'을 화형에 처한 프랑스 왕 필립이 독재자가 아닌 '국가의 구원자'로 그려져야 한다고 타박하는 세심함을 보여주기도 했습니다.   이렇게 연극 공연을 세밀하게 통제하기 위해서는 배우들 개인에 대한 통제가 필수적이었습니다.  나폴레옹은 당시의 대배우 탈마 (François-Joseph Talma)의 개인적인 친구로서, 공연 불과 12시간 전에 편지를 써보내며 '그 연극 말고 이 연극으로 하는 것이 어떻겠소'라고 요구할 정도였고, 푸셰의 비밀 경찰들은 각 배우며 여배우들의 일거수일수족을 감시하며 그들의 사생활까지 모두 파악하여 개인적인 약점을 확보해두기도 했습니다.   가령 어떤 여배우에 대한 사찰 보고서에는 이런 내용이 들어가 있었지요.

'마담 슈비니는 자신의 전원 주택에 24세의 젊은 남자와 함께 있었는데 그 남자는 세상에 별로 알려지지 않은 인물로..."




(당대의 대배우 탈마입니다.  이 그림은 라신느의 희곡 부르투스에 출연하던 모습인데, 이렇게 정말 토가 같은 제대로 된 로마 의상을 입고 나온 것은 탈마가 거의 최초라고 합니다.  그 이전에는 연극 배우들이, 로마 시대 사람을 연기하는데도 비교적 현대적인 옷차림을 하고 나왔던 모양입니다.)



하지만 이런 연극 공연은 사실 관람료가 꽤 비싼 것으로서, 중산층 이상에게나 주어지는 문화 혜택이었습니다.  이를 잘 알고 있던 나폴레옹은 정작 연극 공연이 가장 큰 영향력을 줄 수 있는 대상이던 문맹의 서민들에게도 이 연극 공연이라는 도구를 활용하고자, 집권 초기이던 1802년 8월 15일 그의 생일 축하일 때부터 시작하여, 특별한 기념일이나 행사에서 자주 공짜 극장 공연을 베풀었습니다.  이런 특별 무료 극장 공연은 그가 1814년 권좌에서 내려올 때까지 12년 간 무려 28번이나 펼쳐졌습니다. 






(막간을 이용한 자랑질...  작년 파리 여행 때 제가 직접 찍은 오페라 가르니에 내외부의 모습입니다.  이 아름다운 극장은 나폴레옹 3세가 지은 것으로서, 나폴레옹 가문과 극장의 인연은 참 질긴 것 같습니다.   당시 이 극장의 설계가 자신이 지원하던 건축가에게 맡겨지지 않은 것에 대해 삐져 있던 황후 유제니가 개관식에서 '이건 뭐 루이 14세 스타일도 아니고 루이 15세 스타일도 아니고...' 라며 투덜거리자, 건축가인 샤를 가르니에가 '황후 마마, 이건 나폴레옹 3세 스타일입니다.  그런데도 불평을 하십니까 ?' 라고 맞받아친 것이 유명한 일화입니다.)



사실 나폴레옹이 국민들은 미개인이라고 비웃고 깔보았다면 굳이 그럴 이유가 없었습니다.  나폴레옹은 그의 권력이 근본을 따지고 들면 총칼이 아닌 프랑스 국민들의 지지로부터 나온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국민들의 눈을 가리고 존경을 쥐어 짜내려고 무척이나 노력했던 것입니다.  가령, 저 위에서 언급한 '앙리 4세' 연극의 취소를 지시하는 편지에서, 나폴레옹은 푸셰에서 '정부가 간섭한다는 티를 내지 않으면서 막아야 한다' 라고 신신당부를 했습니다.  국민이 두렵지 않았다면 그냥 '미개한 국민들은 황제의 칙령을 받으라~ 연극 취소하랍신다~' 라고 일방적으로 선포를 했겠지요.

미개하든 미개하지 않든, 국가의 주권과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오는 것입니다.  그런 국민 여론이 방송이나 일부 신문사의 선동질이나 여론 조작에 휘말리는 것도 문제이지만, 특히 공영 방송이 정권의 의향에 좌우되지 않고 독립성을 유지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제대로 된 민주국가의 핵심 요건 중 하나라고 생각합니다.  그건 보수나 진보 양쪽 모두에 해당되는 이야기입니다.  뉴스 보도에 있어 중립과 공정이라는 것의 정의 자체가 매우 모호하므로, 이에 대해서는 양측 모두에게 할 말이 많은 것이 사실이겠지요.  하지만 공영 방송이 정권의 입김으로부터 자유로와야 한다는 사실 자체는 양측 다 동의하리라 믿습니다.

일단 선댓글 후감상 1빠라니요 ㅎㄷㄷ
부러워요.
항상 좋은 글 감사드립니다 ^^
저도 감솨요
나폴레옹은 또한 그림을 통해서도 언론조작을 펼쳤습니다. 대표적인게 안 온 사람도 등장시킨 대관식이라던가, 당나귀 타고 넘어간 알프스를 마치 말타고 넘어간냥 거짓으로 그려논 그림, 또 이집트 원정 당시 페스트 발병자들을 위로해준척 그림 등등...... 지금도 정권이 바뀌면 제일 먼저 장악해야하는 것이 정보력과 언론이 아닐까 싶네요, 그러니 정권의 입김이 들어갈 수 있는 방송국에 자기 사람을 심는 것이겠지요. 그렇다고 해도 저는 언론의 공정성? 그것에 대해서는 의문을 품는 사람입니다. 당장 역사만해도 집필한 사람의 의도가 잔뜩 잔뜩 숨어져 있죠. 기사나 뉴스 또한 제작한 사람의 의도가 듬뿍 듬뿍 들어있습니다. 오히려 이런 정보의 홍수 속에서 스스로가 그 정보에 파묻혀 휩쓸려 다니지 않고 스스로의 기준을 세워서 판별 할수 있는 능력이 필요합니다. 조중동은 무조건 OUT도 이상한것이고 한경오 ㅉㅉㅉ 이것도 웃긴 이야기지요. 외신이라고 다 공정한 것도 아니고-최대한 공정성을 유지하려 하겠습니다만??-종편이니 공중파니 난 MBC는 안봐 KBS는 안봐 하는 사람들도 그냥 웃길 따름이에요. 저는 그래서 그냥 같은 사안이라도 최대한 많이 찾아서 봅니다. 속보로 뜨는 뉴스는 일단 판단 유보하고요. 뉴스가 잔뜩 뜨고 난 뒤에는 언론사 끼리 비교해서 봅니다. 그러면 어느정도 진실은 나오고, 거를 수 있는 건 걸러내는거죠. 그러면 이쪽에선 안보이던 뉴스가 저쪽선 보이고 마찬가지로 저쪽서 안보이는 뉴스가 이쪽서 보이는 일도 비일비재합니다. 그러다 보면 스스로가 공정한 사람이 되는 느낌이에요 ㅋㅋ
저도 공감이요. 진보측은 자꾸 선거를 선악의 심판장 정도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는데, 사실 선거란 국민 개개인이 자신의 이익을 가장 잘 대변해줄 대리인을 뽑는 행사지요. 그러니까 부유층이나 상류층은 보수당을 뽑는 것이 맞습니다. 서민들은... 올바로 판단 해야지요. 그러자면 언론. 특히 요즘처럼 활자의 황혼기에는 공중파 방송의 공정성이 매우 중요합니다.

무엇이 공정한 보도이냐에 대해서는 이견이 많겠으나 최소한 국가 권력의 입김이 공영 방송 보도 내용을 통제하는 것은 확실히 나쁜 일입니다.
미개라... 최근 서울시장후보님의 효자아들이 떠오르는 대목이군요^^
그나저나 왠지 나폴레옹의 원쑤(?)베르나도트에 대해서 리뷰글을 써주시면 어떠하올지? 이양반이 나폴레옹이 원쑤지만 의외로 스웨덴의 복지정책을 확립하는등 꽤 괜찮은 왕이더군요 게다가 나폴레옹한테 NTR당한 와이프까지 ㅠㅠ
베르나도트가 복지왕인줄은 몰랐는데요? 아무튼 그 양반 차례는 아직 한참 남았어요.
로마시대 황제 혹은 권력자들 역시 빵과 서커스로 빈민들의 환심을 사려고 노력해었지요. 좋은글 잘 보고 갑니다.
코르시카의 악마 유형지를 탈출! 로 시작해서 황제 폐하 튈르리로 드시다! 로 끝난 기사를 보면 언론이 알아서 기는 탓도 있겠지요..
나시카님 덕분(?)에 열혈 프랑스 팬이 되어서 결국 신혼여행을 파리 배낭여행으로 선택한 독자입니다. 파리에서 직접 나시카 님의 글을 읽게 되니 기분이 정말 묘하네요 미리 미리 개선문과 보쥬광장 판테옹 등 예습(?)을 철저히 한 덕분에 아내에게 열심이 설명해 주니 엄청 좋아하더군요 거기다 르브루 박물관에서 아부키르 전투의 뮈라를 설명해주니 옆에 있던 한국분들도 다들 한번 쳐다봐 주시더라구요 나시카님의 글을 읽어주기만 해도 웬만한 가이드들 찜쪄먹을것 같습니다 ㅎㅎ 오늘의 글도 정말 재밌게 잘 읽었습니다
비밀댓글입니다
저도 중년이고 미개한 국민중 하나입니다만, 미개인들이 자신의 힘을 깨달으면 무서운 법이지요.
JTBC는 착한 종편이니까요 그런데 그 JTBC는 그들이 증오해 마지 않는 삼성돈으로 그 험한 적자 헤쳐나가고

있다는 사실은 알까 모르겠어요 ㅋㅋ
손석희 파워
저도 오유 자주 보는 편인데, 변희재라는 사람이 손석희를 고소했다고 하니까 거기 댓글 중 하나가 삼성이 김앤장 동원해서 변희재를 박살낼거라고 든든해하더군요. 참 희한한 일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오유가 재밌는게 분명 1년전 작고기사 떳을때는 박태준은 박정희의 수족이었다, 비리로 김영삼한테 두들겨맞은 낙하산새끼, 이런 평이었는데 며칠전 고승덕후보 딸 기사나오고 나서는 평판이 180도 바뀌더라구요.

코르시카의 악마가 1년 걸려서 폐하가 되는 걸 보는것 같았는데... 정작 본인들은 자기들이 그 짓거리를 하고있다는것을 모르는 게 참 ㅎㅎ
예전에 읽은 무라카미 하루키 소설에 KGB장교가 소련에서 가장 크게 성공한 자는 마르크스-레닌 이론을 가장 좁게

,가장 자기 입맛에 맞게 이해한 자라고 한게 생각나는군요 그러니까 정치는 일관성이 없는 자가 승리를 한다는 말씀

그러고 보니 학생 때 운동권으로 이름 날리던 친구가 늘 토론할 때마다 '난 중립적이지만, 난 중도지만...'

말하는게 너무 가식적이어서 운동권에 대해서 별로 좋은 생각은 안 들더군요

궤변류에 가깝지만.... 일관성없는 모습이 바로 그...사람의 일관성이... 아닐까 ㅋㅋㅋ 싶네요 ^^: 웃어보아요
전 정권과 현 정부의 언론탄압이 떠오르네요. 몇 년 사이에 자유언론국에서 부분적 언론 통제국으로 순위가 엄청 떨어졌지요.. 보수든 진보든 건실한 비판과 민주주의의 발전을 위해 언론통제를 하면 안되는데, 이나라 보수는 언론통제 상당히 많이 하지요?
제대로 된 보수라면 그리고 종북세력과 맞서는 자유의 투사라면 언론 지유를 위해 싸워야지요.
볼테르 왈 나는 당신의 말에 찬성하지 않는다 하지만 당신의 말할 권리에 대해선 적극 지지한다.. 라고 하죠 ㅎㅎ
정말 공감되는 말입니다.

현 정부의 언론탄압 정말 심각하죠. 절대 그냥 넘어갈 문제가 아닙니다. 트위터에 대놓고 '가카새끼짬뽕'이라고 써놓는 판사는 별다른 징계가 없고, 일베회원이라는 판사는 외압에 못이겨 옷을 벗고....

'남이 하면 악플/정치적발언 내가하면 표현의 자유/소신있는 발언'

이러한 좌파들의 오만함과 이중잣대, '표현의 자유 탄압'에 맞서서 싸워야만 합니다!

흠흠, 나폴레옹의 시대 -엘리스테어 혼-의 느낌이 나는군요. 얇은 책 치고는 꽤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루이지애나 매각 당시의 xyz 사건이나 푸셰나 탈레랑이 언제 나올지 궁금합니다. 개인적으로는 삼국지의 가후나 탈레랑, 푸셰처럼 끝까지 살아남아서 한자리 하는 책사들이 대단하다고 생각합니다.
이거 쓸라고 도서관에 가서 그 책 다시 빌려왔었어요.
우파(를 자칭하는 자)가 집권하나 좌파(를 자칭하는 자)가 집권하나, 전반적으로 언론이 자기들 맘대로 떠들게 냅두던 시절이 과연 있었을지 궁금하긴 합니다. 경중의 차이야 있었겠지만요. 뭐, 언론이 쓸데가리없이 기고만장해서 알 권리 운운하며 개인 사생활이나 침해해 대고 악의적인 왜곡을 일삼는 꼴을 보면서, 시민들이 언론들 정부한테 얻어 터지는 거 보고 꼴시다고 말할 정도가 된 거 보면 언론이 마냥 자유롭게 된다고 해도 이상이 마냥 실현되진 않는 것 같아 안타깝습니다.
그저께 밤에 EBS에서 "All the president's men" 을 해줬는데, 재미있기도 했지만 국정원 댓글 사건 때문에 씁쓸하기도 했습니다.
시스템의 문제는 여기서도 여실하죠. 결국 그 어떤 정권이 집권한들 언론은 나팔수가 될 수 밖에 없습니다.
특히 보수 세력은 면면히 이어져온 경험칙이 있어 이를 활용하는데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습니다.
그 효용에 대해서도 확실히 알고 있고요. 안타깝지만 당장 획기적인 개선이 이루어질 리는 없을 듯 합니다.
대한민국이 이루어온 언론의 자유라는게 다 형식적인 측면에서 진일보 했을 뿐입니다.
정치 조직에서도 그렇듯 언론사들도 결국 진영에 올라타면 그 어떤 구성원도 반대 목소리를 내기 어렵고
조직의 위계에 맞추어 입을 모으게 될 수 밖에 없습니다.
직업화 되면 모두 다 이해집단일 뿐이고 신성한 언론의 사명이라는 것도 그저 허울이 될 뿐입니다.
푸셰는 장*동이처럼 워털루 이후로도 잘먹고 잘살았을까요
참나무 독제자는 사실 인민같은것 무서워 하지않는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그러는척하고 엄살떨지요.그들은 인민을 이미 다를줄 알고 쉽게상각합니다.무서워한다는것은 진정한 자유민주주의에서나 있을법한 생각이지요 .인민이란 사실 후라이판에 넣고 달달 볶으면 잘 볶아질줄아는 것으로 여길겁니다.,,,,,,,잠간동안,,,얼마나 장기간 인가?,그것이 ????? 이고 후에 역사에 도움이 되였는지 않인지는 인민이나 독재자 또는 독재그릅 들도 잘 모르고 지나 갈때가 많은줄로 생각됩니다.우리가사는 세상은 간단하면서도 참 어렵습니다Yooo
독재자 나름입니다만, 독재자 대다수는 결국 인민을 두려워하게 되어 있습니다. 십만 단위 우습게 죽이는 인간들도 결국 사람 무서울 게 없어서 그런 게 아니라, 언제 시민들이 들고 일어나 대통령궁에서 끌려나와 맞아 죽을지 몰라 무서우니 정기적으로 죽여대서 저항할 생각을 못 하게 하는 것일 뿐이죠.
구라펜 씨 말씀 맞습니다 ,그들의 말로는 많은사람들은 알고 또 기대합니다. 그러나 영악한자들은 자기는 [거기의 해당사항] 않이라는 생각에 인류역사에서 항상 독재 에대한 토론 ? 평가가 있다고생각합니다 [나는 절대 독재자 가않이다] [나는 조국을 구하는 희생자다][누가 나만큼 할수있나][나 이외의 인간들은 다 도둑놈이다][나는 인민들의 절대적인 지지를 받고있다]등등 ,,,나는보아서 압니다 사람은 죽임을 얼마나 무서워하는지! ,,,왜 세월이 지나가는것을 모르는지???? Yooo
요즘은 댓글란이 정화되어서 참 읽기가 좋습니다.
이런걸 보면 약간의 통제는 필요악이 아닌가.. 싶은 마음도 듭니다.
존대말 아닌 댓글 삭제요.
nasica씨 인터넷 이전의 언론은 two-step-flow라는 이론대로 움직여 왔다면 궁금증이 풀리시는지요. 물론 인터넷 이후로도 이 이론이 적용되지 않는것은 아니라 잡음이 더 많아져 관리가 어려워진 측면이 있는것 뿐이지요.
저렇게 정말 세상에 빛을 가져다 주는 진짜 진보들이 한국에도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한국진보의 현실=소위 말하는 '수꼴' 보다 훨씬 효율적으로 국민을 등쳐먹는 신종 사기꾼

'민족끼리' '자주국방' '진보' '평등'



뭐 이런 그냥 얼핏 듣기에도 '왠지 좋아보이는' 단어들을 선점하고, 그대로 자신들의 이미지로 굳혀 버린뒤 해먹을 건 다 해먹으면서도 '수꼴'에 비해 욕은 훨씬 덜 얻어먹으니 실로 '이미지 메이킹'의 위력이 잘 드러나는 예가 바로 한국 진보인듯합니다.



니 자식은 길바닥에서 촛불시위하며 인생허비

내 자식은 미국 명문대에서 스펙만들기

니 자식은 sns에 선동글 퍼나르며 내 지지율에 도움

내 자식은 내가 해먹은 돈으로 금수저 받아서 호의호식



좌파들이 기생충처럼 국민들의 고혈을 빨고, 국민들이 분노하면 이미지 메이킹과 선전선동으로 그 분노를 '수꼴'과 '미군'에게 화풀이 하게 만들며 지금까지 대한민국을 시퍼렇게 멍들게 하는 이상, 이 나라에 미래는 없죠.
특히나 최고의 작품은 바로 국민들을 '잘사는 자'와 '못사는 자'의 2가지로 나누어 흑백대결구도를 만들어 놓은것이지요.

잘사는 자는 무조건 못사는 자를 등쳐먹고 고혈을 빨아서 잘살게 된 것이고, 못사는 자는 무조건 잘사는 자에게 착취를 당해서 못살게 된거고...

요새 코피 터져라 알바하고 공부하는 학생들이 많지만, LOL등의 온라인게임과 당구장, 여색질로 인생과 부모등골을 낭비하는 젋은이들도 못지않게 많지요.

그렇다면 SNS와 게임/쇼핑에 술주정 등으로 인생을 허비한 젊은이들이 훗날 그 대가를 치르게 될떄, 순순히 스스로의 노력없음과 시간낭비를 인정하고 망가진 인생을 받아들일까요?

실제론 전혀 그렇지 않죠.

노력한자가 노력한만큼의 대가를 바라는건 너무 당연한 얘기지만, 웃기게도 혹은 슬프게도 노력하지 않은 자조차 노력한자와 똑같은 대가를 얻고 싶어하는게 사람 심리입니다. 흔히 말하는 도둑놈 심보라고 하죠.

좌파들은 이러한 '노력하지 않았고 앞으로도 할 생각 없지만 노력한 자만큼 가지고 싶어하는' 심리를 교묘히 파고드는데 있어서 타의추종을 불허하죠.

"니가 취직을 못한건 고등학교 시절 만화책이나 보며 히히덕거려서가 아니라 정부탓이야"

"니가 돈이 없는건 남들 눈의식해서 분수에 안맞는 중대형차를 사서가 아니라 정부탓이야"

이런식으로 자기합리화와 변명을 대신 해주며 원래대로라면 노력하지 않고서는 얻을수 없는 '공짜떡'을 보장해주니, 사람들이 '좌향우'가 안될래야 안될수가 없죠.
요즘 인간값이 똥값이다. 걸핏하면 사건사고로 수십명이 죽어 나자빠지는데 그게 인간이 보고 넘어갈 일인가.. 정말 정치권이 반성해야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