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상

nasica 2014. 7. 30. 21:49

저는 몇번 언급드렸다시피, 기독교에 관심이 많고 실제로 매주 교회에도 나가지만 그다지 믿음이 깊지 않은 반쪽짜리 신자입니다.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신앙심을 가진 분들을 이해도 하고 또 예수님의 가르침이 옳다고 느끼고 세상에는 신이 존재한다고 믿습니다만, 과연 그 신의 이름이 여호와이고 아브라함의 하나님인지에 대한 결정적인 확신이 없어요.  그 점을 먼저 말씀드리고 시작해야 이번에 쓰는 글에 대해 오해가 없겠습니다.

저는 고등학생 때부터 성경에 관심을 가지고 나름 열심히 성경을 읽었습니다.  물론 정식 신학 공부를 하신 신부님들이나 목사님에 비하면 어림도 없겠습니다만, 믿음을 중시하는 일반적인 개신교 신자보다는 성경을 더 많이 읽었다고 자부합니다.  그런데 그렇게 성경을 읽을 때마다 드는 의문점이 한두가지가 아니었습니다.  가령 한가지 예만 들면 이렇습니다.

누가복음 23장 39절부터의 내용은 예수님과 함께 골고다 언덕에서 십자가 형에 처해진 두 강도의 이야기입니다.  둘다 십자가 형에 처해지는 것이 당연한 악당인데, 그 중 하나는 죽어가는 순간에 예수님을 받아들임으로써 오로지 믿음으로 구원을 받는 대표적인 사례입니다.  이것이 이른바 'deathbed conversion'인데, 그래서 불신자들은 '마지막 죽는 순간에만 참회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받아들이면 그 이전에는 아무리 악당으로 살아도 천국행 티켓 걱정은 없다' 라고 빈정대기도 하지요.  아무튼 성서에서 매우 중요한 장면 중 하나입니다.

    달린 행악자 중 하나는 비방하여 가로되 네가 그리스도가 아니냐 너와 우리를 구원하라 하되
    하나는 그 사람을 꾸짖어 가로되 네가 동일한 정죄를 받고서도 하나님을 두려워 아니하느냐
    우리는 우리의 행한 일에 상당한 보응을 받는 것이니 이에 당연하거니와 이 사람의 행한 것은 옳지 않은 것이 없느니라 하고
    가로되 예수여 당신의 나라에 임하실 때에 나를 생각하소서 하니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오늘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 하시니라


그러나 같은 장면을 그린 마태복음 27장 38절부터의 부분을 보면 골고다 언덕에 매달리신 예수님 양편에 함께 십자가형에 처해진 두 강도가 예수님을 함께 욕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분명히 두 강도가 모두 예수님을 욕합니다.  왜 같은 성서에 서로가 모순되는 사실이 적혀 있을까요 ?  (참고로 이런 점에 대해 여쭈어 보면, 대부분의 열혈 신자들은 '너의 믿음이 약해서 그렇다' 라고 답합니다.  감히 목사님과 붙잡고 이런 이야기를 해본 적은 없습니다.  일단 무릎 꿇고 기도부터 하자고 하실 것이 겁나서 그랬어요.)

    이때에 예수와 함께 강도 둘이 십자가에 못 박히니 하나는 우편에, 하나는 좌편에 있더라
    지나가는 자들은 자기 머리를 흔들며 예수를 모욕하여
    가로되 성전을 헐고 사흘에 짓는 자여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자기를 구원하고 십자가에서 내려오라 하며
    그와 같이 대제사장들도 서기관들과 장로들과 함께 희롱하여 가로되
    저가 남은 구원하였으되 자기는 구원할 수 없도다 저가 이스라엘의 왕이로다 지금 십자가에서 내려올찌어다 그러면 우리가 믿겠노라
    저가 하나님을 신뢰하니 하나님이 저를 기뻐하시면 이제 구원하실찌라 제 말이 나는 하나님의 아들이라 하였도다 하며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힌 강도들도 이와 같이 욕하더라

 






신앙심이 전혀 없을 때 제가 받은 느낌은 이런 것이었습니다.  '마태복음은 초기에 그냥 사실 그대로 쓰였는데, 누가복음은 더 뒤에 쓰여져 이런저런 픽션(?)이 많이 들어간 모양이다' 라는 것이었지요.  실은 이번에 읽은 책 레자 아슬란의 '젤롯 (Zealot)'에서도 같은 결론을 얻을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제3자 입장에서 보면 이런 결론을 얻는 것이 너무나 당연합니다.  

제 주변의 일부 열혈 개신교 신자분들은 이런 제 나름대로의 해석에 펄쩍 뛰십니다.  성서는 사람이 제 마음대로 쓴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보내신 성령에 따라 쓰여진 것이므로 어느 글자 하나도 잘못된 것이 있을 수 없다는 것이지요.  어느 정도 기독교 신앙을 인정하게 된 지금도, 저는 그런 말은 믿지 않습니다.  그래서 저는 여전히 반쪽짜리 신자인가 봐요.  그래도 지금의 저는, 모세가 홍해를 둘로 갈랐다는 것이 사실이건 사실이 아니건, 또 골고다 언덕의 강도 중 한 명이 예수님을 찬양했건 욕했건 그런 역사적 사실이 진정한 기독교 신앙에게는 별로 중요하지 않다라는 사실을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저도 들은 이야기입니다만, 우리나라의 어느 독실한 신학생이 유럽 어디론가 신학 유학을 가서 겪은 이야기가 있습니다.  장차 목사가 될 독실한 신학생들로 가득찬 그 강의실에서 신학 교수님이 '모세가 홍해를 갈랐다고 실제로 믿는 사람 손들어봐라' 라고 하니 유럽 출신 백인 학생들은 아무도 손을 안드는데, 자기만 손을 들더랍니다.  그러니까 그 신학 교수님이 웃으며 '너는 정말 그게 역사적 사실이라고 믿고, 또 만약에 그것이 역사적 사실이 아니라고 하면 너의 신앙심이 흔들리느냐?' 라고 묻더랍니다.  저도 뭐라고 말로 설명은 잘 못하겠는데, 그 의미를 이제는 알 것 같아요.




(꼭 이렇게 해야만 신앙심이 생깁니까 ?)



하지만 아직도 깊게 가지고 있는 가장 큰 의문점이 있습니다.  짧고 굵게 이야기하면 이렇습니다.

"왜 예수님은 좌파인데, 목사님들은 우파인가 ?"


너무 짧게 써서 질문 자체가 무척 잘못된 점이 많습니다.  가령 좌파와 우파의 개념부터 시작해서, 모든 목사님들이 우파 성향을 가진 것이 아니다 등등 문제가 많은 질문이지요.  그러나 핵심적인 내용은 충분히 수긍이 가는 질문일 거라고 생각합니다.  




(예수님 말씀인지 마르크스의 말인지 잘 모르겠는데...   

"각자의 능력에 따라 걷어" 사도행전 11장 29절 

"각자의 필요에 따라 나누어" 사도행전 4장 35절)



예수님은 부자나 재물을 적대시하지는 않으셨지만, 분명히 부자와 권력자보다는 가난하고 힘없는 사람들을 위하여 이 땅에 오셨습니다.  굳이 '부자가 천국에 가는 것은 낙타가..' 라는 유명한 구절이 아니더라도, 공관복음서를 통해 예수님의 언행을 읽으신 분이라면 이 점에 대해서는 동의하실 것입니다.  예수님은 항상 가난한 자들과 창녀들, 그리고 현재로 따지면 일본군 헌병 보조에 해당하는 민족적 배신자인 세리들처럼 점잖은 사회에서 멸시받는 사람들을 가까이 하셨습니다.  




(미국 공화당과 정치적 제휴를 맺은 예수님...  미국에서도 대형 교회들은 주로 보수적인 공화당 편이지요.)




그런데 제가 개인적으로 겪은 바에 따르면 (거의 매주 빠지지 않고 교회에 나간지가 벌써 만 16년입니다) 적어도 한국 개신교 목사님들은 상당수가 보수 우익이십니다.  제가 직접 보고 들은 몇가지 사례들을 나열하자면... 그건 교회 목사님들의 너무 안 좋은 면을 내비치는 것 같아 관두겠습니다.  아무튼 특히 선거철만 되면 특히 목사님들의 설교 내용이 선관위 처벌 대상이 될 노골적인 수준까지 올라간다는 점만 말씀드리겠습니다.  (실제로 제가 다니던 어느 대형 교회 목사님의 경우 듣다 못한 어느 신도에게 실제로 그렇게 고발을 당하시고는 어떻게 신자가 목사를 고발하냐, 교회가 무너졌다고 통탄하시기도 하셨습니다.)  물론 목사님들의 설교 내용은 거의 언제나 보수파를 옹호하고 진보파를 공격하는 내용이었습니다.  노무현 시절 때에는 노무현과 유시민에 대한 노골적인 비판을 자주들 하셨고, MB와 박근혜 대통령 때에는 '우리가 우리 손으로 선출한 대통령인데 지켜야 하지 않겠는가' 라는 말씀을 많이 하셨습니다.  최근에는 '세월호 사태를 보고 슬퍼하는 것은 좋으나, 그로 인해 분노해서는 안된다.  참된 기독교인은 순종해야지 분노하고 저항하는 것은 부적절하다.  특히 방송에서 국민들을 선동하는 내용이 나오는데, 그런 것에 흔들려서는 안된다' 라는 말씀을 설교 중에 하시더군요.  저는 매우 황당했습니다.  애초에 개신교가 부패한 카톨릭에 분노해서 저항하느라 생겨난 종파이고, 영어 명칭도 protestant인데 분노하지도 저항하지도 말라니요 ?




(Here I stand.  I can do no other.  God help me. Amen !)




저는 대형 교회 두 곳을 다녀 보았고, 지금은 작은 동네 교회를 다니고 있습니다만, 그런 경향은 대형이나 작은 교회나 크게 다르지는 않았습니다.  다만, 대형 교회에서는 좀더 재물 이야기를 많이 하기는 했습니다.  심지어 예배 시작할 때 장로님이 앞에 나와 기도를 올리시면서 "불신자들이 저희를 비웃지 않도록 저희에게 재물을 내려주소서" 라고 큰 소리로 외치시는 경우까지 보았습니다.  (거짓말 같지만, 정말입니다.)  특히 십일조를 강조하셨는데, 정말 여러번 반복하신 설교 내용이 미국의 록펠러나 포드 같은 재벌들이 십일조를 꾸준히 낸 덕분에 그렇게 큰 부자가 될 수 있었다, 여러분 중에서도 그런 큰 부자가 나와서 우리 교회를 크게 흥하게 해달라는 내용이었습니다.  어떻게 보면 매우 좋은 축복 내용입니다만, 저는 뭔가 잘못 되어도 단단히 잘못 되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건 한국 전통의 구복 신앙과 크게 다를 바가 없다고 느껴졌기 때문이었습니다.



(이 분이 소싯적 가난할 때부터 십일조를 낸 덕분에 당시 뉴욕타임즈가 "the most cruel, impudent, pitiless, and grasping monopoly that ever fastened upon a country" 이라고 평가한 Standard Oil 사를 창립한 록펠러이십니다.  제가 다녔던 교회에서만 이 분에 대해 듣는다면 세상에 이렇게 착하신 분이 없습니다.  그러나 그가 이 세상에 행했던 그 모든 악... 에이 아닙니다.)



전에도 한번 쓴 적이 있었습니다만, 제게 가장 큰 영향을 준 성경 구절은 바로 다음 구절입니다.  저는 전에 어느 분의 장례 미사에 갔다가, 신부님이 읽어주시는 이 글귀를 듣고... 감동도 좀 먹었지만 사실 좀 무섭기도 했습니다.  저는 정말 지옥에 갈 죄인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서 그랬지요.  세상에 어려운 처지에 빠진 사람들이 이렇게 많다는 것을 뻔히 알면서도 제 가족의 행복과 안녕이 더 급하고 더 귀하기 때문에 기부도 많이 안 하는 편이거든요.  아마 그때부터였나... 저는 복지를 위한 중과세에 적극 찬성하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복지를 구현하여 세상에 굶주린 사람이 없게 되면, 저의 가련한 영혼의 죄가 조금이라도 가벼워질 것이라는 생각에서였지요.  지금도 그 생각에는 변함이 없습니다.     

마태복음 25장 41~45절

또 왼편에 있는 자들에게 이르시되 저주를 받은 자들아 나를 떠나 마귀와 그 사자들을 위하여 예비된 영영한 불에 들어가라
내가 주릴 때에 너희가 먹을 것을 주지 아니하였고 목마를 때에 마시게 하지 아니하였고
나그네 되었을 때에 영접하지 아니하였고 벗었을 때에 옷 입히지 아니하였고 병들었을 때와 옥에 갇혔을 때에 돌아보지 아니하였느니라 하시니
저희도 대답하여 가로되 주여 우리가 어느 때에 주의 주리신 것이나 목마르신 것이나 나그네 되신 것이나 벗으신 것이나 병드신 것이나 옥에 갇히신 것을 보고 공양치 아니하더이까
이에 임금이 대답하여 가라사대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하지 아니한 것이 곧 내게 하지 아니한 것이니라 하시리니



우리 모두는 매일매일 굶주리고 병들고 옥에 갇힌 사람들을 만나고 있습니다.  부자 동네에 살아서 직접 마주칠 일이 없더라도, 수많은 매체를 통해 매일 그런 사연을 접하고 있기 때문에 세상에는 그렇게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이 수없이 많다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그들의 비참한 삶에 대해 외면하고 자신의 이익만을 추구하는 것은, 정말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이라면,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했고, 지금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제가 다녔던 대형 교회에서는 그런 모습은 거의 볼 수가 없었습니다.  최소한 목사님들이 가난한 자들을 도와야 한다는 말씀하시는 것을 정말 들은 적이 없어요.  그에 비해 록펠러 이야기는 정말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었고, 심지어 '일반 신도 수백명보다, 그렇게 거액의 십일조를 낼 수 있는 신도 한 명을 얻는 것이 더 좋을 수도 있다' 라는 말씀을 하는 것까지 들었습니다.  (거짓말 같은데, 정말입니다.)  정말 개신교는 자본주의에 맞게 진화한 것 같았습니다.  하긴, 신년맞이 예배에서 목사님이 엄숙하게 '올해의 목표, 1. 교육관 건립  2....' 하는 식으로 그 해의 목표를 정해주시는 교회였으니, 제가 '대체 여기가 교회냐 회사냐 ? 잘하면 올해의 목표 헌금액까지 정해져 나오겠네' 라고 생각했던 것이 무리도 아니었지요.  (참고로 그 교회는 결국 교회 본당만큼 커다란 교육관을 세웠습니다.  할렐루야 !)

저는 한국 교회의 이러한 변질이 꼭 한국 개신교에만 해당한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잘은 모르지만 불교계도 변질되고 부패하기는 마찬가지일 것 같고, 카톨릭도 내부에는 많은 갈등과 부조리가 있겠지요.  생각해보면 모든 종교는 시작은 가난하고 핍박받는 사람들을 위해 창시되었으나, 종교 권력으로 성장하면서 결국은 부와 권력 편에 서는 것이 역사적 현실이니까요.  하지만 제가 직접 보고 느낀 한국 교회의 모습은 정말 좀 심각하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이런 모든 것이 결국은 돈 때문이라고 생각해요.  교회도 사람들의 모임인지라, 결국 무슨 일이든 벌이려면 돈이 필요하고, 돈에는 당연히 권력이 따라 붙습니다.  제 개인적인 소견입니다만, 카톨릭이 그런 경향에서 비교적 자유로울 수 있는 것은, 이미 카톨릭은 전세계적으로 탄탄한 조직과 재원이 마련되어 있고 개인적인 가정이 없으므로, 그런 돈 문제에 있어서 비교적 자유로운 것이 아닐까 합니다.  




이번에 읽은 레자 아슬란의 '젤롯'이라는 책 내용은 매우 방대합니다만, 그것을 감히 3줄로 요약하자면 이렇습니다.

1. 예수님은 당시 로마와 그에 협력하는 예루살렘 대제사장 계급의 통치에 의해 날로 어려워지던 유대 하층민에게 새로운 질서를 제시했던 혁명가였다.
2. 그런 예수님의 가르침은 그의 사후 그의 동생 야곱과 베드로에 의해 계승되었으나 결국 야곱이 살해되고 예루살렘이 멸망하면서 그 맥이 끊어졌다.    
3. 예루살렘의 파괴를 목격한 해외 거주 유대인들은 야곱과 갈등 관계에 있던 바울의 가르침을 따라 로마의 질서에 순응하는 모습을 취하게 되었다.


위 내용에 제가 다 공감하지는 않습니다.  누구나 그렇겠습니다만 확실히 아슬란은 자기 마음에 맞는 대로 성서를 해석한 부분도 꽤 있더라고요.  젤롯의 내용 중 제가 인상적으로 본 부분은 유대교의 예루살렘 대제사장의 권력에 대한 부분이었습니다.  유대교는 아무데서나 하나님께 제사를 올릴 수 있는 것이 아니라, 반드시 예루살렘 지성소 바로 밖에 있는 정해진 장소에서, 대제사장의 집전 하에서만 제물을 바칠 수 있다는 부분이었지요.  그렇게 바쳐지는 제물로 인한 경제적 이익, 특히 성전에 봉헌되기 위해서 반드시 로마 화폐인 데나리온을 성전세 지불용 화폐인 셰켈로 환전해야 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환전 이익은 예루살렘 성전과 그를 관장하는 대제사장이 독차지하는 독점 제도에 대한 것이 인상적이었습니다.  그 부분을 읽으니, 다들 아실만 한 어느 유명 복음 교회에서 발간하는 신문집에서 읽은 문답이 기억났습니다.  





(이것이 성전세 납부용으로 사용된, 예루살렘에서 주조된 화폐 shekel 은화입니다.  이 은화는 반 (half) 셰켈짜리입니다.  당시 성전세는 당시 성인 남자 일인당 반 셰켈로 정해져 있었으므로, 좋든 싫든 일반적인 화폐 데나리온을 반드시 반 셰켈 또는 셰켈로 환전해야 했는데, 그 과정에서 상당한 차익이 대제사장의 손으로 흘러 들어갔습니다.)




그 문답에서, 어느 신자가 '가난하고 어려운 이들을 돕고 싶은데, 교회에 십일조를 바치는 대신 직접 그 사람들 또는 단체에 기부를 하면 안될까요 ?' 하고 물으니, 그 교회의 단호한 답변은 이랬습니다.  '안된다.  교회를 거치지 않고 직접 돕겠다는 것은 개인의 오만이다.  반드시 교회에 바쳐라.'

성서에 따르면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돌아가실 때 지성소에 쳐진 장막이 찢어졌고, 그것이 뜻하는 바는 더 이상 예루살렘 성전을 통해서만 하나님과 소통해야 한다는 제약이 사라진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여전히 한국 교회에서는 교회를 통하지 않고 빈민을 돕는 것이 '개인의 오만'이니 허락할 수 없다는 모습에서, 저는 예수님이 '독사의 자식들아' 라고 비난하시던 유대교 제사장들의 모습을 보았습니다.  예수님은 폭력에 의존하지 않는 혁명을 추구하셨지만, 성전에서 대제사장의 돈벌이판이 벌어지는 모습을 보시고는 희생 제물용으로 판매되던 가축들을 쫓아내고 환전상의 가판대를 힘으로 뒤엎으셨습니다.




(제가 알기로는 예수님이 물리적인 폭력을 사용하신 것은 권력을 이용하여 성전에서 경제적 독점권을 취하던 이들을 내쫓을 때 뿐이었습니다.)


저는 성서를 글귀 한글자한글자에 교조주의적인 맹신을 가지고 해석해야 한다고 보지는 않습니다.  전에 다녔던 대형 교회에서는 어느 복음서의 시작 부분이 '너희가 강녕하기를 바라노라' 라는 당시의 평범한 인사말로 시작하는 것을, '봐라, 주님께서는 우리가 돈 많이 벌고 풍요롭게 살기를 바라신다' 라며 자본주의를 찬양하는 내용으로 해석하시더군요.  특히 말라기에 나오는 십일조를 꼭 바치라는 부분은 글귀 하나하나를 정말 너무나 애용하는 부분입니다.  그러면서도 '부자가 천국에 가는 것보다 낙타가...' 부분은 그렇게 글귀만 보고 해석해서는 안된다고 선을 그으시지요.







그렇게 글귀 하나하나를 그대로 해석하는 사람들이 바로 현재의 이스라엘 유대인들입니다.  가령 출애굽기 23장 19절에 이런 부분이 나오지요.

너의 토지에서 처음 익은 열매의 첫것을 가져다가 너의 하나님 여호와의 전에 드릴찌니라 너는 염소 새끼를 그 어미의 젖으로 삶지 말찌니라




여기서 새끼 염소를 그 어미의 젖으로 삶지 말라는 구절 때문에, 지금도 유대인들은 절대 고기 요리에 유제품을 쓰지 않습니다.  식기도 유제품용과 육류용을 철저하게 구분하고, 심지어 고기를 먹은 뒤 소화가 다 될 때까지 일정 시간 동안은 치즈나 우유 등의 유제품을 먹지 않을 정도라고 합니다.  하지만 상식적으로, 이건 고기와 유제품을 섞어 먹지 말라는 뜻이 아니라, 짐승이나 가축에게라도 지나치게 잔인한 짓, 즉 어미의 젖에 새끼를 삶는 일 따위는 하지 말라는 뜻으로 보입니다.  가령 비슷한 구절로, 신명기 22장 6절만 봐도 이런 구절이 나오지요.

노중에서 나무에나 땅에 있는 새의 보금자리에 새 새끼나 알이 있고 어미새가 그 새끼나 알을 품은 것을 만나거든 그 어미새와 새끼를 아울러 취하지 말고

그런데 정작 식기도 유제품용과 육류용을 철저하게 구분하는 현대의 이스라엘 사람들이 지금 어린이와 여자들이 가득 들어차 있는 가자 지구에 대해 무지막지한 폭격을 가해대고 있지요.  저는 정말 하나님의 정의는 현세가 아니더라도, 내세에서라도 반드시 단죄를 하실 것이라고 믿습니다.




저는 현재의 한국 교회에 대해서는 큰 믿음을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  개인적인 사정이 아니면 사실 카톨릭으로 개종하고 싶은 생각이 강합니다.  특히 현 교황이신 프란치스코 교황의 모습에서, 기독교의 참된 모습을 발견할 수 있다고 믿습니다.  하지만 언젠가는 한국 교회에서도 프란치스코 교황 같은 분이 나오실 수도 있고, 또 이미 나오셨는데 제가 모르고 있을 수도 있겠지요.   확실히, 성서 문제는 저 같은 일반인 따위가 옳다 그르다 논할 성격의 것이 아닙니다만, 제 개인적인 생각은 그렇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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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같은 경우고 초등학교 때(5학년때였나....) 친구따라서 교회갔다가 성경 얻어서 읽고, 왜 복음서마다 내용이 다르냐고 물어봤다가 의심하는 태도는 안좋다고 면박만 당하고 안나갔던 기억이 있네요. 결국 그 이유를 알게 된 것은 30줄이 다 되어서 신의 가면이란 책을 읽은 후였죠. 여담이지만 60년대 미국에서 쓰여진 이 책에서도 저자는 성경을 있는 그대로의 역사로 가르치는 당시 미국 교회를 비난하는 글을 볼 수 있습니다.

그래서인지 성경을 곧이곧대로 믿고 진화론 같은 과학 이론에도 아는 체를 하는 우리나라 교회들이 그렇게 좋아보이지는 않습니다.

저 염소 새끼를 염소 젖에 삶지 말라는 건 사실 인도적인 차원에서 나온 이야기는 아닙니다. 정복지의 남녀노소, 사람짐승 가리지 말고 죽이라고 말했던 신이 잘도 그런 착한 생각을.
그게 가나안 지방 이교도들의 액막이 의식이었기 때문이죠. 중동 신화(사무엘 헨리 후크)에서 해당 내용이 있어 써 봅니다.

새벽과 황혼의 탄생(샤하르와 샤림)
이 문헌은 제의 신화의 전형적인 요소를 반영하고 있다. 신화는 두 개의 에피소드로 이루어져 있는데, 각각의 에피소드에는 제의 의식을 거행하는 방법을 알려 주는 주석이 첨가되어 있다. 송가는 몇 차례에 걸쳐 반복적으로 자비로운 신들을 향해 기도하는 내용으로 시작한다. 그 신이 바로 쌍둥이 신, 샤하르와 샤림이다.
시의 내용은 그들의 탄생과 관련된 것이다. 탄생의 순간 사악한 기운이 미치지 못하도록 하기 위해 액막이 제의가 거행된다. 죽음의 신, 모트의 형상을 만들고, 이것을 때리고 모욕을 주어 내던진다. 그리고 예비 의식의 첫 단계는 염소 새끼를 그 어미의 염소젖으로 삶는 것이었다.
Nasica 님 ! 종교는 아편이라는 주장하는 사람들에 대한 생각? 을 듣고 싶으데요
십자가든 무당..하느님 믿으면 건강해지고 부자되고 출세한다. 이런 기복신앙으로 바뀌어버리고 이를 행한 인간이 대한민국에서 대접받고 있는 모습을 보면 갈때까지 가고있구나로 밖에 말이죠
잘읽었습니당~저는항상예수님을만나긴가민가하는맘이아닌경험으로서확신을갖고싶은데요그래도저멀리서안보이는에서항상지켜보고계시는아버지라들었습니다~이번한국에오시는분은가난한자병든.자를먼저생각하시는훌륭한분이시라하셨는데한국교회에서도안보이는곳에서훌륭하신분들이많습니다~손양원목사님처럼요~^^개종하지마시구또좋은글마니올려주세요~~~
전 외국이민교회에서 믿음생활을 해서인지 한국 교회시스템을 이해할수없네요. 왜 목사라고 잘못한것을 지적받으면 안되는거죠? 코스타 강사로 오신 목사님이 그러시더군요. 교회의 주인은 목사도 아니고 신도도 아닌 하나님이며 하나님의 교회에서 제일높은사람은 새신자들이라구요.
잘못을 앎에도 그것을 변화시키려 하지않으니 한국사회에서 개신교가 욕을먹는거라고 생각합니다.
본문에서 일부개신교신자들이 성경에는 오류가 있을수없다라고 주장한다 하셨는데, 전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아무리 성령감화로 썼다한들 하나님이 직접 돌판에 새기신 십계명이 아닌 사람이 쓴 종이책이라면 수천년동안 심지어 다른 언어로 번역되어 내려오면서 본문 그대로 우리가 접할수있다고는 생각하지않습니다. 그렇기에 그 성경을 우리 스스로 그대로 읽고 받아들이는것이 아닌 성령님의 도우심으로 읽고 하나님을 더욱더 알아가야한다고 하는것 아닐까요?
또한 죽기직전에 회개하면 천국갈수있다면 세상에서 개짓거리하다가 막판에 잠깐만 나 예수믿습니다 하면 천국가는것아니냐라고 비난하시는분들 계시는데. 전 언제죽을지 모르는 인생 확실히 영생얻을 기회가 바로 눈앞에 있음에도 잡지않고 최후의순간까지 기다릴만큼 멍청하지 않기에 지금 이순간에 예수믿고있는다고 말하고싶네요.
사도행전에 보면 바울도 끝끝내 설득하지 못한 유대인들을 보며 발에 티끌을 털어냈습니다. 글쓴이분이 한낱 마귀에 휩쓸려 원래 믿음을 잃어버린 목사라 부를수도 없는사람들에 의해 본인의 믿음을 잃지않으셨으면 좋겠습니다.
주님은 높으신분이십니다. 사람이 세운 성전에 거하지 않으신다 했습니다. 교회는 성도들이 만나 교제하며 더욱더 큰 믿음을 위해 가는곳이지 스트레스 받고 믿음을 의심하는 자리가 된다면 차라리 안가는것이 낫다고 생각합니다. 세사람만 모여 예배드려도 내가 그곳에 있겠다 하신 주님이시니까요.
한국교회 목사님들의 설교동영상을 간혹 접하는데 기가 차서 말이 안나올정도더군요. 말도 안되는 기복신앙에 아멘으로 화답하는 신자들. 무슨 이단 신천지동영상 보는줄알았네요. 성도들은 하나님을 알고 그분을 닮아가기 원하는 사람들입니다. 하지만 우리가 닮아가고 가져야하는것은 하나님의 전능하신능력이 아닌 그의 인품과 성격입니다. 복을 내려주시고 기적을 행하시는것은 온전히 주님의 영역입니다. 그의 나라와 의를 위해 필요하다면 쓰시는것이지요. 피조물인 인간이 넘볼영역이 아닙니다.
작정하고 썼습니다만 길어졌네요. 믿음생활 오래하시고 바리새인들의 물에 휩쓸리지않으시고 본인의 신념이 확고하신분이라고 생각합니다. 코스타 강사님으로 오시는분들보면 한국교회도 완전히 썩은건 아니라고봅니다. 개인적으로 제대로 하나님 경외하는 목사님만나셔서 그 믿음 지켜나가시기 소원합니다.
글 잘 읽고 갑니다. 좋은 글 감사합니다.^-^♥
교회를 운영하려면 헌금이 필요하다. 그러나 그것은 천국으로 가는 보증수표는 아니라고 본다. 그보다는 불쌍한 이웃에게 보내는 진심이 깃든 한푼의 동전이
천국에 갈 수 있는 가능성을 더 높여줄 것이다.
좋은 글이 많아 친구신청했습니다
글 잘 읽습니다
종교는 종교지요
신앙이 깊은 분이 되시길 빕니다
항상 주님의 평화가 함께 하시길 빕니다
좌파가 가진것이 많아지고 기득권이 되면 보수 우파가 되는것입니다.
구소련의 예를 보더라도 좌파혁명으로 정권을 쟁취한 후 그들의
기득권을 지키기 위해서 얼마든지 보수주의가 될수 있습니다.
흥미롭습니다.
퍼갑니다,
감사합니다.
격하게 공감하고 가만 있을 수 없어 댓글을 남깁니다. 저는 모태신앙인으로 큰 아버님이 목회하시고, 친척이 모두 출석하는 교회에서 신앙생활을 하다가, 지적하신 부분들에 대한 반발심이 억누를 수 없을 정도로 커져서 지금은 신앙생활을 접은 상태입니다. 기독교 자체를 부정하는 것은 아니지만, 예전에 있었던 확신은 더 이상 없네요. 이 글을 보란 듯이 페이스북에 공유하고 싶었으나, 사촌 중에 목회자의 길을 걷고 있는 이들이 있어 괜한 화를 부를까 싶어 자제했습니다.
어렸을 적 가정 예배를 드리다가 아빠에게 가롯유다는 죽어서 지옥에 갔는지, 가롯유다가 아니였더라도 누군가는 그를 대신해서 예수님을 팔도록 정해져 있었다면, 그게 하나님의 계획인데 가롯유다가 지옥에 가는 것은 불공평하지 않느냐고 물었더니 얼굴이 빨갛게 되시더니 이런 질문을 하면 시험에 든다고 저를 크게 나무라셨던 기억이 생생합니다. 수십년 교회를 다녔어도 이런 의구심을 풀어주는 설교는 들어본 적도 없고, 한국교회 내에서는 이런 질문을 할 수 있을만한 분위기도 존재하지 않는 것 같습니다. 그냥 매주 목사님이 하달해주시는 말씀을 무조건 복종하고 믿으라니...
좌파니, 우파니 하는 말은 18세기 프랑스 혁명 이후로 나온 용어로 알고 있습니다만... 16세기 독일에서 루터 신부 통해 시작된 종교개혁은 나라마다 지역마다 분리되어 분열했고 그런 경향 속에서 프로테스탄트(라틴어가 원어로 "항의하다" 가톨릭에 항의한거죠) 개신교는 자본주의와 함께 성장해 갔다고 들었습니다만... 루터처럼 결국 가톨릭에 저항하기 위해 왕정파보다는 귀족들과 손을 잡아야 했고 그러다보니 나중엔 시장 경제 자본주의로 가장 이익을 얻는 가진 자들의 편에서 같이 성장되어 가다 보니 가난한 사람들에겐 현재의 부보다는 내세의 축복을 기대하라고 설교하며 아무리 열심히 일해도 부자가 될 수 없는 경제 시스템을 욕하지 말고 그냥 온순하게 받아들이도록 만족하도록 조장하고 부축이는 설교들을 들으면 누구라도 종교를 마약이라고 표현할 수 있을 듯 싶습니다만...사실이지 예수님께서 가난한 사람들은 행복하다고 하셨으니 맞는 구석도 있지만 가장 무서운 거짓말은 진리에 탈을 쓰고 진리에 가깝게 거짓말을 하는게 가장 무서운 거짓 아니겠습니까? 가난한 사람들에겐 그런 설교하면서 자신은 호의호식한다면... 또 그렇게 부자로 편히 살려면 기존 권력 옹호하셔야죠! 시스템 바뀌는거 늘 기득권자들에겐 위험하다는거 공산주의 역사 통해 배웠으니까요!

더불어 구원은 인간적인 방식이나, 수학적인 계산으로 내가 얼마만큼 선을 행하고 누구누구 돕고 십일조 내고 자선했으니까 나는 당연히 천국 갈 수 있다고 장담할 수 있는 그런게 아닙니다. 그 또한 자본주의 사고방식 구원론이겠죠! 진실한 사랑과 겸손이 뿌리가 되어 실제 삶으로 표현된 믿음이 우리를 구원하는 것 아닐까요!

예수님께서는 우리 모든 사람들이 최후의 죽음의 그 순간에 사랑으로 심판 받을 것이라고 하신겁니다. 자선이나 십일조가 아니라, 가난한 사람들을 돕게 만드는 내 심장에 흐르는 진실된 사랑과 자비로 깊이로 우린 모두 심판 받겠죠! 내 마음 안에 얼마만큼의 신과 이웃에 대한 사랑이 있는지? 그 사랑의 깊이로 우리는 구원 받거니와, 더불어 본질적으로 우리의 구원은 예수님의 한없으신 자비로 이루어지기에, 십자가 상의 우도가 말 한마디로 천국을 흠친 인류 역사의 최고 도둑이 된 것을 가지고 예수님의 자비하신 마음을 인간적인 마음으로 쫀쫀하게 만들 필요는 없을 듯 싶습니다.

마지막으로 유다도 베드로처럼 예수님의 사랑을 믿고 회개했다면 구원 받았겠죠! 자신을 스승을 배신한 자신의 죄가 얼마나 수치스럽고 부끄러웠으면 자살을 했겠습니까? 문제는 그 자살이 절망에서 나온 것이고, 그 절망은 스스로 예수님의 용서를 거부한 결과라는 것이죠! 예수님께서는 세 번 당신을 거부하고 배신한 배드로 사도를 사도들의 으뜸으로 1대 교황으로 선포하신 분이신건만...그 사랑을 거부한거죠...절망과 교만이 가장 큰 죄악입니다. 한없는 예수님의 자비와 용서를 스스로 거부하게 만드는 것들이기에

우연히 들어와 보고 처음 이런 훌륭한 분들이 계심에 희망을 갖습니다
Nasica님에 지혜에 감탄하고 생명나무님에 옳바른 신학관에찬사드립니다
저는 개혁교단목사로서 안수 받고 목회 하다가. 총회 노회싸움. 교회들의 바벨탑 경쟁. 종들의 간음 재산 축적. 교회매매. 세습. 등 등. 이세상에서 가장 타락한 곳이 교회내부임을 알고. 제자신 인생의 가장 실패는 목사 안수 받음을 시인하는 사람입니다
마틴루터 신부는 종교 개혁이 아니고. 종교분열이며. 종교 타락의 빌미를 제공한 사람이라 결론 지었습니다. (제자신 많은 논문을 통한 결론. 신. 구교 논문을 종합해본 결과임)
동시대에 프란치스코는. 자신을 불살라 타락한 교회를 세운 영성이 훌륭한 영성임을알고 우리가 프란체스코의 영성을 따르면 개신교회의 길이 보일것같습니다
솔직히 카톨릭은 개신교회의 모체이며 큰 집입니다. 교부들의 신앙을 연구해보면 개신교는 아이들 수준입니다. 카톨릭의 가지만 붙들고 논하지 말기를 바랍니다.
많은 개신교 목사가 천주교회로 가고 있습니다. 가지 못하는 이유는 생활비 보장이 안되어서 가지 못합니다. 왜냐면 카토릭에서는 개신교 목사를 평신도로 인정합니다
개신교 성도들 영적으로 성장하려면 천주교에도 다녀 보시고. 불교 금강경 정도는 잃어 보셔야해요. 유교 대학 논어도 잃어 보시고. 코란도. 잃어 보세요. 그러면. 어떤 목사가 설교해도 사꾼인지 아닌지 분별할수 있고. 옳바른 교회 성도들이 만들수 있습니다
저는 어떤 교회가 좋습니까. 초보자가 물으면 천주교로 가세요 권합니다. 왜냐면 저는 목회하지않고있으니. 사꾼 목사한테 영 육을 유린 당할까 우려해서 입니다
개신교 성도님들 오해와 편견으로 제 글 잃지 마세요. 여기까지 오는데 60년 걸렸습니다
좁은 공간에 생애 처음 이런 글 올립니다. 오늘 처음 daum에 등록했습니다
훌륭하신 댓글들에 너무 감사합니다
nasica 님이 올리신 글과 댓글을 보니..아직은 우리 나라 기독교에 희망이 있네요..
감사합니다
안녕하세요...
블로그 포스팅 잘보았습니다.

좋은 글 많이 올리셔서 정말 재미있었습니다.
덕분에 좋은 정보도 많이 얻고갑니다.

좋은 글 더 많이 올려주세요.
자주 방문드리겠습니다.
시간나실때 제 블로그도 방문해주세요.
소통하며 정보교환했으면 좋겠습니다.

많은 정보교류한다면 정말 즐거울것같네요.
오늘 하루도 좋은일만 가득하시고,,,
공감, 이웃 남기고 갑니다.
그럼 건강하세요
안녕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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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하루도 좋은일만 가득하시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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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건강하세요
저랑 아주아주 비슷한 생각을 하고 계시네요... 근처시라면 정말 차 한잔 하면서 이런저런 얘기해보고 싶네요 ㅎㅎ
한국 포탈에 답글을 달 수 있을 지...
한국 포탈에 답글이 달리네요. 그럼 감사한 맘으로 몇 자 적어봅니다.
생각도 많으시고 나름 여러 책들도 읽으시면서 궁금증들을 풀고자 애써오셨네요. 감사드립니다. 사도행전에 신사적인 뵈뢰아인 언급이 나옵니다. 바울이 이 사림들을 칭찬ㄴ하면서 신사적이라고 평가하죠. 바울이 하는 설교를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고 실제 바울의 설교가 하나님 밀씀 , 그때는 구약, 에 있는 지 확인하는 모습을 바울이 칭찬하면서 신사적이라고 합니다. 여기서 권위의 질서가 드러나는 데 바울이 설교한 것은 하나님 말씀에 일치 되어야 함을 나타냅니다. 또 바울의 설교는 하나님의 말씀과 맞지 않을 수도 있을 가능성이 있음을 나타냅니다. 듣는 이는 이런 구별하는 마음자세와 하나님 말씀을 열심히 살펴야 할 것을 권장하고 있죠. 제가 겪어왔고 지금도 일부는 아직 미해결인 여러 성경과 우리 삶에 관한 질문들이 떠오르네요. 저도 님처럼 참 많은 의문이 있어서 열심히 성경말씀 보고 목사님들께 뭏고 유명하신 설교가들도 듣고 여러 책들도 보아왔었죠. 감사하게도 어떤 것들은 아주 깨끗하게 답을 얻었습니다. 어떤 질문들은 이십여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물음표입니다. 궁금하고 의문이 드는 것은 어떤 것을 배우는 데 아주 좋은 출발점입니다. 이사야에서 여호와 하나님은 그 백성을 부르시죠. 나와 변론하자! 동방의 의인이라고 하나님이 칭찬하셨던 욥은 사탄의 혹독한 시험을 견딥니다. 욥은 왜 자기가 그런 시험 당하는 지 의문입니다. 아내는 하나님을 저주하고 죽으라고 하고 가장 친하다는 친구들은 욥이 뭔가 잘못했기 때문이라고 회개하라고 하죠. 욥은 이 두 요구가 다 그에게 정당하지 않음을 알고 하나님을 저주하지도 않고 그렇다고 친구들의 말에 굴복해서 거짓회개도 않하죠. 그리고 자기 억울함을 토로합니다. 그리고나서 하나님이 욥에게 직접 변론하십니다. 욥이 하나님의 변론을 다 듣고 이제는 하나님을 눈으로 본다고 고백하게 되죠. 또 하나님은 욥의 용서없이는 이 세 친구를 용서하지 않겠다고 하십니다. 예수는 무식한 갈릴리 어부들과 3년을 함께 생활하시면서 계속 하나님의 말씀, 당시에는 구약을 가르치십니다. 그 유명한 산상수훈이 하나님이 직접 가르치시는 구약 율법들의 참된 의미였지요. 시장에서 성전에서 강가에서 언덕에서 올리브 숲네서 길가면서 동네 사람ㅁ의 집에서 예수는 계속 하나님 나라 그의 말씀을 가르치십니다. 부홭해서도 엠마오로 실망해 가는 두 제자들에게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의 의미를 그 당시 말씀, 구약을 풀어 가르치십니다.
찾고 찾는 자에게 하나님은 발견되어 주십니다. 잠언을 보십시오 지혜를 사랑하라 찾고 찾으라 금보다 더 은보다 더 보석보다 더 소중히 여기고 찾으라 그러면 지혜가 만나 줄 것이다 라고 말하고 또 말하고 또 말합니다.

글 쓰신 분께 제 유쾌한 맘을 알려 드리고 싶네요. 한 10년 즘 전에 미국에 산 지 얼마 안 되서
어느 미국 교회에 갔는 데 한국 교회들에게서는 들어보지 못한 성경말씀에 근거한 명쾌한 설교를 듣고 마음이 아파서 울면서 그 교회 장로에게 하소연한 적이 있습니다. 한국교회들 목사들에게서 성경에 근거한 말씀 설교를 들어본 적이 거의 없고 이들은 성경을 가르치지 않는다고요. 그 장로하시는 말씀이 하나님이 한국에 있는 교들과 목사들 사이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모르시겠냐고 하시면서 기도하면서 기다리자고 했었어요.
한국에도 매우 드물지만 글 쓴이가 생각하고 고민하는 것을 하나님앞에 기뻐하며 하나님 말씀안에서 그 답들을 찾도록 도와 줄 수 있는 참 믿음으로 사시는 분들이 있습니다.
기분이 좋네요! ^_^
저 역시 성경이 궁금해서 성경을 10번 이상 읽으셨다는 목사 사모되시는 분의 전도를 받아 그 교회를 3년 넘게 다녔습니다.
지금은 다른 교회에 다니는데요,이곳에서 배우는 바로는 종교와 세상일은 별개의 세계더라구요.
그러니까 예를 들어 초림 때 세례요한은 제가 알았던 것처럼 하나님 일 하다 죽은 순교자가 아니었고 세상 일에 관여하다 어린 여자 아이의 요구에 목이 잘려 쟁반에 놓이게 됩니다.
물론 불의한 왕에게 일갈 하는 정의로운 마음을 가진 사람임에는 틀림없지만 세례요한은 하나님으로부터 사명을 가지고 이 땅에 온 사람이었거든요.
'광야에서 외치는 자'-이것이었습니다.
광야는 어디인가요? 물이 없는 척박한 곳이죠.
그 때의 유대인들은 율법을 지키며 신앙을 하고 있었지만 그 율법은 맨 처음 하나님께서 주셨을 때보다 양이 엄청나게 많아져서 사람이 지키기에 불가능하게 되었죠.그들은 그렇게 사람들에게 두려움을 갖게 하여 신앙이 아닌 정치를 한것이죠. 광야는 하나님 말씀이 없는 그때의 세상이었고 세례요한은 예수님 오시기 전에 예수님의 길을 예비하라는 사명을 받았지만 그것을 저버리고 자기 교회가 커지니까 교만해져서 세상 왕과 싸우다 죽었습니다.
우리는 육체와 영과 혼을 가진 사람입니다. 그리고 신앙의 기본은 영은 육을 들어 육체를 지배한다는 것입니다. 물론 육도 아주아주 중요합니다.
하지만 지금 목사님들이 교회 강단에세 하나님에 관한 말씀이 아닌 세상일을 한다면 그 목사님 안에 누가 들어 있을까요?
마4장 특히 9절에 보면 마귀가 '이 모든 것을 네게 주리라'라고 하지요? 자기 것이 아니면 어찌 이런 말을 쓸 수 있을까요? 결론은 세상은 우리가 벗어날 수 없지만 적어도 하나님을 믿는 신앙인이라면 세상일보다 하나님 말씀을 우선하여 배우고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를 아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씀드리고 싶네요. 그러면 그들이 왜 그러는지 확실하게 아실 수 있게 되리라 저는 확신합니다.

교회는 모여서 성경을 배우는 곳입니다.
요한복음 1절1절에 하나님은 말씀(=성경)이시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을 알게 되면 왜 세상이 이렇게 돌아가는지를 확실하고도 명확하게 알게 되실 겁니당.
혹 맘에 걸리는 내용이라면 잠18:13절을 상고하시면서 읽어주셔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