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리카 여행

상운 2016. 8. 12. 10:02
리만자로(Kilimanjaro) 산 트래킹(trekking) 세렝게티에서 사파리 게임 드라이브를 마치고 만야라(Manyara)에서 1박을 하고 아루샤(Arusha)를 경유하여 모시(Moshi)로 왔다. 모시(스와힐리어:Moshi)는 탄자니아 북동부 킬리만자로 산 남쪽 기슭 해발고도 약 800m의 고지에 위치한 도시이다. 예로부터 이 지역은 차가(Chagga)족(族)이 농사에 종사하고 있는 곳으로 주산물은 커피. 사이잘삼(麻). 사탕. 옥수수. 바나나로 야채의 집산지이다. 버스를 타고 달리느라면 탄자니아의 커피생산지로 유명한 곳이어서 그런지 차창 밖으로 커피나무가 눈에 들어 왔고 옥수수 밭도 간간이 스쳐 지나갔다.
바오밥 나무(Baobab tree) 바오밥 나무는 열대 아프리카 지역에서 가장 크고 오래 사는 나무이다. 6000년 전부터 생겼다는 이 나무는 튼튼한 뿌리를 가져 물이 부족한 건조한 기후에 적응을 잘 한 것 같다. 이는 생장하는데 필요한 물을 최대한 아껴 쓰고 기공을 열어 천천히 식생 하는 특징이 있기 때문인데 아라비아 전설에 “악마가 바오밥을 뽑아서 그 가지를 땅으로 밀어 넣고 뿌리는 공중으로 향하게 했다”하는 말이 이를 의미 하는 것 같다. 형체는 큰 북 모양으로 비대하여 높이 20m. 둘레 10m 에 이르며 수령은 대략 1000년이 넘는다고 한다. 술통처럼 생겼다 하여 이 나무를 아프리카에서는 영혼을 다스리는 나무로 여기고 구멍을 뚫고 사람이 살거나 시체를 매장하기도 했단다. 열매는 수세미외처럼 생기고 길이 2~30cm이며 털이 있고 딱딱하며 긴 과경(果梗)이 있다. 열매가 달려 있는 모양이 쥐가 달린 것 같다 하여 죽은 쥐나무(Dead rat tree)라고도 하는데 열매 안에는 조그만 종자가 많이 들어 있다. 종자는 빻아서 끓여 죽을 쑤거나 기름을 짜는데 노란색이며 풍미가 있어 비누 원료로도 이용한다. 아프리카 사람들에게 바오밥 나무는 아낌없이 주는 나무다. 넉넉한 그늘은 쉼터가 되고 껍질은 밧줄과 낚싯줄로 쓰이며 우기엔 몸통 가득 빗물을 품어 두었다가 갈증을 풀어 주기도 한다. 현지 마사이족들은 잎을 채소로 먹기도 하고 씨에서 기름을 내 해열진통 및 지사제로도 사용한다. 세계 최고 수령의 바오밥 나무는 5000년에 달한다고 하는데 높이가 22m 밑 둘레가 47m에 이른다고 하며 남아공 한 농장에 있다고 한다. 바오밥 나무의 학명은 “Adansonia digitata”이고 이 나무를 발견한 프랑스의 식물학자 “미첼 아당송(Michel Adanson)”의 이름에서 비롯되었다고 한다.
탄자니아는 동아프리카에서 면적이 비교적 큰 나라다. 국토의 대부분은 산지로 분포되어 있으나 광활한 평야와 고원이 많고 울창한 산림지역도 고루 산재해 있어 평원과 호수 그리고 산맥 등이 해안선과 함께 잘 어우러진 나라다. 여기에 점점이 흩어진 관목 숲속에 다양한 종류의 동물들이 서식하고 평원엔 농산물이 풍요롭게 생산된다. 북부에는 유명한 킬리만자로 산(5,895m)을 비롯하여 해발고도 4,000m 이상의 고봉이 많고 서부는 동아프리카 대지구대(大地溝帶)의 빅토리아. 탕가니카. 니아사의 세 호수가 국경선에 접하고 있다. 이곳 모시가 유명하게 된 것은 탄자니아 커피의 생산지이기 때문도 있지만 킬리만자로 산의 등산기지로 마랑구 르트(Marangu Route)라는 게이트(Gate)가 있기 때문이다. 우리 일행은 이 마랑구 르트를 통해 키리만자로 산 정상이 아닌 가벼운 트래킹으로 산행이 예정되어 있다. 어느 만치 달렸을까 멀리 킬리만자로 산이 보였다. 아프리카의 최고봉 만년설을 간직한 킬리만자로 산을 저렇게 보니 생애 최고의 선물인 것 같아 마음이 설렜다. 현지가이드는 가까이 가면 저 모습을 볼 수 없기 때문에 킬리만자로 산 입구까지 가는 도중에 우리 일행을 차에서 내리게 하여 관목 숲 사이 평원 멀리 바라보이는 설봉을 가리켰다. 조망타임을 주고 기념 촬영을 위해서다. 광활한 평원 멀리 하늘과 맞닿은 듯한 설봉은 유난이도 하야케 빛나 보였다. 키리만자로의 뜻이 스와힐리어로 “하얀 산(白山)” 혹은 “빛나는 산”이라고 불리는 이유를 저 멀리 만년설에 덮여 있는 설봉을 보고 알 것 같다. 구름이 봉우리와 허리를 길게 감싸 안고 위용을 드러내 보인 설산의 비경은 정말 우람하고 신비로운 자태였다. 이렇게 킬리만자로 산을 바라보고 있으려니 감격이 몰아 쳤다. 내 생애에 이곳 아프리카 땅 모시에서 아프리카 최고봉 킬리만자로 산을 직접 육안으로 바라보고 있다는 것이 꿈만 같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킬리만자로(Kilimanjaro) 산은 탄자니아 북동부 케냐와의 국경지대에 있다. 세계에서 가장 규모가 큰 최대의 휴화산이며 아프리카 대륙에서 풍경이 가장 웅장하고 아름다운 최고봉의 산이다. 킬리만자로는 적도에 위치하면서도 만년설(萬年雪)과 빙하(氷河)가 덮여 있는 신비한 백산(白山)으로서 오랫동안 문인(文人)과 예술가들에게 이상향(理想鄕)의 자유의 상징(象徵)으로 인식돼 왔다. 또한 킬리만자로는 “대상(隊商)들의 산“으로 불리기도 하였는데 만년설과 빙하는 마치 번쩍이는 하얀 등대와도 같아서 어느 방향에서 던지 수백 킬로미터 떨어진 곳에서도 볼 수 있었다. 과거 여러 세기 동안 대상들은 상아와 금과 노예를 싣고 아프리카의 황량한 내륙지방을 빠져나올 때 흔히 킬리만자로의 눈 덮인 정상을 지표로 삼았기 때문이다. 원주민들에게는 “신의 집”이라고 숭배를 받기도 하였는데 킬리만자로는 스와힐리어로 “빛나는 언덕”이라는 뜻이다. 쉽게 자신의 모습을 사람들에게 허락하지 않는 면모를 지녔기 때문이다. 대부분이 현무암(玄武巖)으로 형성되어 있는 킬리만자로는 주봉인 키보(Kibo 5.895m)를 비롯하여 마웬지(Mawenzi 5.149m). 쉬라(Shira 3778m)의 3개의 장대한 성충(成層) 원추형(圓錐形) 화산으로 구성되어 있다. 그중 키보는 분화구의 형태로 최고봉을 우르피크(Uhure Peak)라 부른다. 칼데라(caldera) 중심부에는 유항을 함유한 화산재로 덥힌 작은 분화구가 있고 안부(鞍部)를 따라 동쪽으로 11km 떨어져 있는 곳에는 이 보다 먼저 형성된 마웬지 화산이 있다. 키보(Kibo)봉의 사면이 완만한 경사를 이루고 있는 것과는 대조적으로 마웬지(Mawenzi)는 아름답게 조각을 해 놓은 듯 한 험준한 봉우리로서 사면이 들쭉날쭉한 가파른 암벽으로 이루어져 있다. 해발 4000m 지점에서부턴 둥근 돌을 흩뿌려 놓은 듯 한 넓고 비탈진 평원으로 연결되면서 오랫동안 비바람에 침식되어 대단히 아름다운 황야고원을 이루고 있다. 산 밑에서 정상까지는 다양한 식물대가 분포하고 있는데 고원은 관목지대와 울창한 숲이 탁 트인 황야 지의류 군서지가 형성되어 있고 낮은 산비탈은 코끼리 떼와 물소 떼가 돌아다니는 원시 열대림으로 덮여 있다. 열대림의 나무 꼭대기에는 여러 종의 원숭이가 살고 있으며 오랫동안 모진 바람에 시달려 뒤틀린 옹이투성이 고목들엔 이끼가 끼어 있다. 울창한 히스(Heath)나무 풀숲엔 간간이 밝은 색 꽃이 무리지어 피어 있어 아름다운 경관을 더해 주기도 한다. 해발고도 1000m 이하의 산기슭은 대부분 불모지이나 원주민이 커피나 바나나 등을 재배하고 있다. 1848년에 독일인 선교사 요한 레프만 (Johann Rebman)과 루트비히 크라프(Ludwig Krap)가 최초로 선교활동을 하다 킬리만자로 산을 발견 했으나 남위 3도의 적도지방에 만년설이 덮인 산이 있다는 사실이 믿겨지기까지는 오랜 시일이 걸렸다. 1889년 독일의 지리학자 한스 마이어(Hans Mayer)와 오스트리아의 산악인 루드비히 푸르첼러(Ludwig Purtscheller) 그리고 지역 가이드 요나스 로우와(Jonas Louwa)가 키보(Kibo)산 정상에 최초로 등정 하였고 한국인으로는 1981년 전명철씨가 처음으로 킬리만자로 산을 정복하는데 성공했다. 마웬지(Mawenzi)산은 1912년 독일의 지리학자 프리츠 클루테(Fritz Klute)가 최초로 정복하였다. 교역 중심지이자 등반기지 역할을 하는 남쪽 기슭에 위치한 모시(Moshi)는 아프리카 한가운데 있으면서도 만년설과 다양한 기온 분포에 따른 다양한 생물군이 서식 하고 있다. 킬리만자로(Kilimanjaro) 산은 1987년 세계유산 목록에 등록된바 있다.
드디어 우리 일행을 태운 버스는 킬리만자로 산 등산입구인 마랑구 루트(Marangu Route)에 도착 했다. “Kilimanjaro National Park”라는 공원 입구의 큰 간판이 눈에 들어 왔다. 공원 입구 근처엔 등산하는데 필요한 수속을 하는 사무실을 비롯하여 키리만자로 산의 여러 가지 안내와 사진들을 전시하는 건물들이 있었다. 그리고 길가에는 아주 허름한 가게들이 몇 개 늘어서 있었는데 물론 주인은 흑인들이었고 주위엔 물건을 든 상인들이 따라다니며 사라고 했다. 이곳저곳에서 세계에서 온 각국 등산객들이 국립공원에 입장하여 킬리만자로 산을 등정하기 위한 준비를 하고 있는 모습도 보였다. 현지 가이드가 결정되고 우리는 그의 안내에 따라 입산 신고를 하고 키리만자로 산 마랑구루트(Marangu Route) 게이트(Gate)를 통과하여 트래킹을 시작했다. 앞과 뒤에서 둘이서 가이드를 했는데 편도 4km의 산책로를 따라 왕복 8km를 2시간 동안 트래킹 하는 일정이다. 울창한 숲길로 들어서니 상큼한 공기가 가슴을 상쾌하게 해 주고 마음을 깨끗이 씻어 주는 것 같았다. 가이드는 우리에게 천천히 발걸음을 디디라고 하면서 절대 빨리 오르면 안 된다고 강조했다. 너무 무리하게 빨리 걸으면 중간에 포기하거나 사고를 당할 염려가 있기 때문이란다. 가이드는 앞장서 가면서 “뽈레“ ”뽈레” 를 외치면서 걸었는데 “뽈레”란 이곳 말로 천천히 천천히 이란 뜻이란다. 우리들은 가이드가 가르쳐 준 “뽈레“를 다 같이 소리 내면서 웃으면서 걸어 올랐다. 급격한 고도의 차이는 없었지만 그래도 서두르지 않고 서서히 올라 무사히 완주 하는 것만이 최선의 트래킹의 목적이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가이드는 “하쿠나 마타타”(Don't worry, it will be good)에 대해서도 이야기를 해 주었다. 높은 산을 오르려면 산소가 희박해 빨리 걸을 수 가 없다고 한다. 일행이 조금이라도 빨라지면 “뽈레“를 외치고 힘들어 하면 ”하쿠나 마타타(Hakunamatata)“를 소리 높인다고 했다. 지금은 힘들겠지만 잘될 것이니 걱정 말라는 의미인데 참으로 긍정적이고 낙천적인 말이다. 물론 어려운 여건이 이들의 삶의 자세를 이렇게 만들었는지는 모르지만 우리 시각에서 보면 그들이 불쌍해 보일지라도 그들의 시각에선 자연에 순응하며 긍정적 삶을 사는 것이 행복의 원천일 것이라는 것이다.

[유럽의 탐험가 "한스 메이어"가 1889년 키리만자로 산 정상을 정복 했다는 얼굴 부조(浮彫)와 글이 또렸하다] 등반하는 사람들이 많다. 따라서 짐을 지고 가는 포터들도 많이 보인다. 물론 일당을 계산하여 받는 직업적인 포터들 같은데 그냥 맨팔 치고 오르는 것도 힘이 드는데 저렇게 무거운 짐을 메고 이고 가는 것을 보니 안쓰럽게 느껴진다. 킬리만자로 산을 등정하는 데에는 6개의 루트가 있다고 한다. 산장의 수용시설이 좋고 정상까지의 코스가 평이하다는 마랑구 루트(Marangu Route) 이외에 빙벽과 암벽 등반을 해야 하는 가장 힘들지만 경치 하나는 끝내주는 음부웨 루트(Umbwe Route)와 빠른 고도 상승으로 고소 적응이 힘든 쉬라(shira)고원 루트(Route). 그리고 마차메 루트(Machame Route). 로이토키톡 루트(Loitokitok Route). 므웨카 루트(Mweka Route)등이 있다고 하는데 그 중 5일짜리 노선인 해발 1980m의 마랑구 게이트를 세계인이 가장 선호하는 코스란다. 킬리만자로 산 등반은 포터와 가이드 고용이 의무사항이며 깊은 산에서 음식점도 없으니 요리사도 고용해야 한다. 그래서 우리 일행도 짧은 코스지만 가이드를 고용한 것이다. 마랑구 게이트를 지나니 원시림이 울창한 숲을 이루어 정글형태의 삼림이 세상으로부터 격리해 주는 것 같이 무성하게 휘 덮었다. 원래 키리만자로는 케냐의 땅이었다고 한다. 당시 케냐는 아프리카 최고봉인 킬리만자로와 두 번째인 케냐 산을 모두 소유하고 있었는데 케냐는 영국 여왕이 다스리고 있었고 탕가니카(지금의 탄자니아)는 그녀의 조카인 독일 황제가 지배하고 있었다고 한다. 산을 좋아하는 조카는 숙모에게 두 산중 중 하나만 달라고 졸랐다. 조카를 사랑하는 영국 여왕은 킬리만자로가 탕가니카로 들어가도록 지도에 자를 대고 일직선으로 국경을 죽 그었다. 이로서 아프리카의 왕관 킬리만자로는 조카의 생일 선물로 탕가니카에 넘어가게 되고 또한 케냐와 탄자니아의 국경도 이로서 결정지어졌다고 한다. 그리고 킬리만자로 3개의 봉우리에는 전설이 있다. 아득한 옛날에 키보(Kibo)와 마웬지(Mawenzi)라는 형제가 있었는데 게으른 마웬지는 늘 불을 꺼뜨리고 형인 키보에게 와서 불씨를 빌려 달라고 했단다. 어느 날 마웬지가 하루에 세 번씩이나 불을 꺼뜨리고 불씨를 빌려 달라고 하자 화가 난 키보가 마웬지의 머리를 후려쳤다고 한다. 그 사연으로 지금처럼 마웬지의 정상이 저렇게 찌그러졌다는 이야기다. 그렇게 가파른 코스는 아니지만 하늘이 보이지 않는 산길을 힘겹게 걸은 것 같다. 오를 때도 멀다고 느꼈지만 하산할 때도 멀다고 느낀 것으로 보아 우리가 다녀 온 코스도 결코 짧은 거리는 아닌 성 싶다. 킬리만자로 산의 한 구간을 걸었다는 뿌듯함이 가슴을 흐뭇하게 해 주었다. 정상까지의 등산은 아니었지만 2시간 동안의 힘겨운 트래킹의 추억을 오래 동안 간직하고 “하쿠나 마타타”의 긍정적 삶의 자세를 가지고 느긋한 마음으로 즐겁게 살아갈 것을 기약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