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동

상운 2014. 5. 26. 10:22
요르단(Jordan)의 제라쉬(Jerash)
제라쉬는 암만에서 50km 북쪽에 있는 로마시절 데카폴리스(Decapolis) 가운데 두 번째로 번성했다고 하는 일명 “거라사(Garasa)”라는 도시를 말한다. 제라쉬는 “황금의 강”이라는 뜻으로 선사시대 때부터 사람들이 살았다고 하며 성경에는 “이방인들이 사는 곳”이라고 적혀 있고 주민들을 거라사인이라고 불렀다고 한다. 학자들은 이 유적지 안에서 6500년이 넘는 신석기 시대의 유적을 발견했다고 하는데 이는 이 지역이 600m 고도에 위치해 있지만 기온이 온화하고 일 년 내내 물을 공급받을 수 있는 지역으로서 사람이 거주하기에는 이상적이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예수께서 마귀 들린 사람(레기온)을 고치시고 그 귀신을 돼지 떼에 들어가게 하시어 돼지들이 갈릴리 바다로 뛰어 들어 몰살하게 한 곳이 호수 건너편의 게사라(마르꼬 5-2)와 게르게사(루가 8-26)와 가다라(마태오 9-28)라는 지명이 성경에 나오는 것으로 보아 이 성인 모두가 같은 이야기를 같은 지명으로 거라사(Garasa)를 말한 모양이다. 고대 제라쉬는 헬라어로 가르쇼(Garsho)라고 불렸던 것을 로마가 점령한 후 거라사(Garasa)라고 그리스화 해 불렸고 그 후 아랍인이 제라쉬(Jerash)로 바꿔 불렀다. 이는 페트라(Petra)의 유적지에서 나온 비문에 거라사(Garasa)라고 쓰여 있어 확인된바 있다. 제라쉬는 기원전 332년 알렉산더 대왕이 이곳을 정복하고서는 동서양의 다른 두문화가 그리스 식으로 통일되었는데 대왕의 사후에도 프톨레미 2세(BC 285-245) 치하에서도 주위의 비옥한 토지와 교통의 요충지라는 이점을 배경으로 무역의 중심지가 되어 대도시로 발전하였다. 한때 시리아 셀레우시드왕 안티오쿠스 3세(BC 215-164)에게 다스림을 받게 되기도 하지만 BC 63년 로마 장군 폼페이에게 정복되어 통상과 정치와 문명의 지배력에 의해 맺어진 데카폴리스(Decapolis)동맹의 하나로 만들어 지면서 커다란 경제적 이익을 가져 왔다. AD106년에 트리야누스(Trajan) 황제가 나바티안(Nanbatean) 왕국의 위협을 막으려고 페트라를 점령하면서 제라쉬에 건축 활동이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커다란 무역의 부(富)가 흘러들어 오게 되었다. AD129년에 하드리안(Hadrian) 황제가 예루살렘을 정복하고 방문을 기념하여 입구 남쪽 끝에 13m높이의 웅장한 개선문을 세웠는데 이 문을 승리의 문(Triumphal Arch) 또는 하드리안의 아취(Hadrian's Arch)라 부른다. 그 위에는 “이 나라의 국부이시고 위대한 성직자(Priest)이신 하드리안 황제를 기념하여 그의 행복과 가족의 구원을 위하여”라고 쓰여 있다. 제라쉬의 번영은 4-7세기 콘스탄틴 대제가 기독교를 공인하면서부터 문화의 꽃을 피우고 전성기가 펼쳐졌는데 이 기간에 제라쉬의 인구는 2만명이나 되었다. 제라쉬는 AD614년에 페르시아(Persia)의 침공을 받았고, AD636년에는 아랍의 침략을 받아 많은 문화재들이 파괴되는가 하면 AD749년에는 연속하여 일어난 큰 지진으로 대부분의 웅장한 석조건물이 파괴되어 찬란한 문화가 흙더미 속에 파묻히게 되었다. 인구도 4천명으로 감소되어 십자군이 제라쉬에 침공해 왔을 때는 사람이 살고 있지 않다고 기술하였을 정도였다고 하니 페허로 인한 상흔이 심각하였다는 것은 짐작이 간다. 제라쉬는 1806년 독일 유적 탐험가 Seetzer에 의해 발견되면서 세계 고고학계에서 앞 다퉈 발굴에 참가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는데 폐허로만 여겼던 이 옛 도시는 놀랄 만큼 모래 속에 잘 보존되어 있어 세상에 이목을 끌면서 자취를 나타나게 되었다. 그러나 발굴된 유적은 전체의 20%에 불과하다고 하며 현재 제라쉬에는 20만평이 넘는 넓은 언덕에 웅장한 석조건물 유적이 펼쳐져 화려한 옛 문화가 2천년 전의 투영된 그림자처럼 재현해 보이고 있다. 성안에는 모두 101개의 석주가 20여 미터의 간격으로 설치되어 있고 3m의 성벽에는 모두 6개의 성문이 있는데 성문은 남북에 각1개 동서에 각2개가 설계되어 있다. 남문을 통해 성안으로 들어가면 왼쪽 언덕에 제우스 신전(Zeus Temple)과 원형 야외극장이 높이 자리 잡고 있다. 오른쪽 아래로는 움푹하게 낮아진 지형을 이용하여 타원형으로 세워진 이오니아식 열주가 아름다운 포럼(Oval Plaza)을 이루고 있었는데 이는 아마도 타원형의 광장에서 제우스신과의 연관된 제례의식을 거행하지 안했나 추측되었다. 특히 이곳 제라쉬의 유적을 들러보면서 인상에 남은 것은 남문에서 북문을 연결하는 중앙을 가로지르는 남북대로였는데 양측으로 카르도(Cardo)라고 불리는 열주(Collonade)가 장대하게 둘러 세워져 있어 참으로 경관이 웅장하였다. 바닥이 돌로 포장되어 있는 전형적인 로마양식의 이 열주대로(列柱大路)는 길이가 800m에 이른다고 하며 폼페이에서처럼 양쪽이 패인 마차바퀴자국이 나 있었고 대로 밑으로 하수도 시설이 완벽하게 설치되어 있었다.



-----하드리안 아취(Hadrian's Arch) 개선문-----


-----전차 경기장(Hippodrome)----- 길이 245m 폭 52m로 1-3세기에 걸쳐 U자 모양으로 건설되었는데 수용인원은 1만 5천명이다.


-----전차 경기장의 관람석-----


-----남문((South Gate)----- 제라쉬의 출입문으로 AD 130년에 건설되었다. 이 남문을 중심으로 3.456m에 달하는 성벽이 둘러 처져 있다.



-----타원형 광장(Forum 또는 Oval plaza)----- 76개의 돌 기둥으로 둥굴게 만들어진 이 거대한 타원형 광장은 90m 80m로 장대한 감을 준다.



-----원형 야외극장----- AD 90년에 만들어 졌으며 32게 열에 3천명 정도가 앉아 관람할 수 있다. 최대 수용 인원은 5천명으로 중앙 무대는 화려하게 조각으로 장식되어 있고 2층 구조로 되어 있다.





-----제라쉬 유적 전경-----






-----아르테미스 신전----- 아르테미스는 제우스의 딸이면서 아폴로의 여동생으로 사냥과 풍요의 여신이다. 12개의 석주중 11개가 지금껏 남아 있다.



-----님프(Nymph)의 신전-----



-----석주 기둥길(Colonades street) 카르도 막시무스(Cardo Maximus)----- 800m에 이르는 도시 남북을 축으로 건설된 도로인데 500개의 석주가 길 양옆으로 늘어서 있다.


-----석주 기둥길의 돌로 깔린 밑 바닥-----

제라쉬 유적이 참 볼만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