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상운 2013. 10. 2. 19:21

천태산을 다녀와서

 

 

                                                                                                     상 운.    이          은          천

 

 

 

청명이 지난지라 해가 많이 길어진 것 같다.

몇 일전만 하더라도 새벽 6시면 깜깜 했었는데 오늘은 제법 날이 훤하다.

동녘하늘엔 여명이 밝게 퍼지고 점점 온 하늘을 하얗게 표백 식히면서 세상을 역사 속으로 밀어 넣는다.

 

어제 저녁 일기예보에 남해안 지방엔 20미리 충청도 이남엔 5미리 내외의 비가 온다고

하였기에 좀 개운치는 안했으나 그래도 햇볕이 따갑게 내려 쪼여 무덥고 땀을 흘리는 것

보다는 나을 성 싶어 나는 아내와 함께 산행에 나서기로 하였다.

 

물론 비옷을 배낭에 준비하고 약간의 비 맞을 각오도 하고 말이다.

하늘은 회색빛으로 찌푸렸지만 그래도 새벽공기는 상쾌하기만 하였다.

나들이 한다는 약간의 설렘과 기대에 부푼 마음으로 우린 일행과 함께 버스에 몸을 실었다.

 

회원은 가이드 2명을 합쳐 모두 28명. 많지 않은 식구기에 회사에서는 우등 고속버스를

배차시켜 한결 편안하고 쾌적한 여행을 할 수 있게 세심한 배려를 해주었다.

 

젊은 층이 아닌 중년층으로 이루어진 월요 산행이므로 그러한 특별한 조치를 취해 마음을

달래 주었는지 모르겠다.

 

 

 

-----영국사 마을를 드러서며-----

 

7시 정각에 인천 주안역을 출발하여 부평을 경유 경부고속도로를 지나 영동 영국사가 있는

천태산 주차장에 도착 한 것은 11시40분. 월요일이고 출근 시간이므로 차가 정체되어

4시간 반이나 걸렸다.

 

애초에 4시간 정도는 소요되리라 마음먹었기에 모두 짜증이나 불평은 전혀 없었다. 마냥

동심의 세계로 돌아가 조금은 들떠 있는 상태였기 때문이다.

 

산행은 잠시의 쉴 틈도 없이 곧바로 시작되었다.

영국사까지 가는 길은 계곡을 끼고 숲이 욱어진 오솔길로 올라가게 되여 있었는데

“신선대(神仙臺)” 라는 교묘하고 웅장한 바위들과 물의 흐름이 삼단으로 나뉘는 펑퍼짐하게

내리꽂는 수려한 경사진 폭포가 있었다.

 

 

 

-----삼단 폭포-----

 

겨울과 봄 가뭄이 극심해 많은 물은 흐르지 않았으나 마르지 않고 시원하게 흘러내려

주위의 경관과 잘 어우러져 신비감을 자아내었고 카메라 셔터를 누르기에도 손색없는

피사체였다.

 

예쁘게 돋아 오르는 신록의 나뭇가지 사이를 한가롭게 넘나드는 이름 모를 작은 산새가

이 모퉁이 저 덤불을 넘나들어 한결 봄기운을 더해 주었다.

금세라도 건너편에서 뻐꾹새가 울어 줄 것만 같은 봄 냄새 가득한 오솔길을 우리는

걸으면서 묘한 감정에 젖었다.

 

콘크리트 구조물속에서 콱콱 막히는 탁한 매연을 마시며 답답하게 도시에서 가쳐 살다가

이렇게 싱그런 자연의 품속에 안기니 어찌 이 상큼한 계절의 감각에 취하지 않을쏘냐?

오염 없는 신선한 풀 냄새 가득한 대기를 가슴속깊이 들이마시면서 모두들 흡족해하고

행복해했다.

 

찔레나무 파란 예쁜 싻이 뾰족이 나오는 징검다리 개울을 건너고 솔 냄새 물씬 나는 소나무

가지로 엉킨 모퉁이를 도르니 영국사가 저위로 눈에 들어오면서 600년의 수령을 자랑하는

웅장한 은행나무가 우리를 반겼다

 

 

 

-----600년의 수령을 자랑하는 은행나무-----

 

군데군데 시멘트로 때운 흔적은 보였지만 엄청나게 큰 밑 둘레와 하늘을 찌를 듯이 뻗어난

힘찬 가지가 보통 나무와는 비교가 되지 않았다.

안내 표지판에는 양쪽으로 흐르는 계곡의 수분을 끊임없이 공급받아 건강하고 울창하게

장수할 수 있었다고 적혀 있었다.

 

 

 

-----은행나무와 영국사-----

 

나무의 관리도 비교적 잘되어 쇠 난간으로 사방을 막아 뭇사람의 마구잡이 접근을 금지

식혔고 주위도 깨끗이 정돈되어 고장에서 지대한 관심을 갖고 보호하고 있음을 말해 주었다.

 

우리는 은행나무를 왼쪽으로 하고 약간 오르막 들길을 지나 본격적인 산행을 시작하였다.

곳곳에 안내판이 잘 지시해 주어 식수도 깨끗한 곳에서 용이하게 준비할 수 있었고 등산길도

주저 없이 A코스로 방향을 잡아 아무 의견 갈림 없이 산을 올을 수가 있었다.

 

산행 하는데 에는 여러 가지 코스가 있었는데 코스마다 특색이 있어 위험과 묘미가 교차 되였고

거기에 마쳐 우리 중년층이 적합한 가장 안전하면서도 스릴 있는 코스를 선택하였기 때문이다.

 

잘 닦아진 넓지 않은 가파른 오솔길은 바위와 자갈 모래가 섞여 미끄럽고 힘은 들었으나

모두들 단련된 체력을 가지고 있는 회원들이기에 용케도 잘들 올랐다.

 

 

 

-----나무로 다듬어 만든 계단-----

 

지나치게 경사가 험준한 곳에서는 나무를 잘 다듬어 층계를 놓아 오를 때의 위험을 없애주었다.

어느 만치 올랐을까? 숨이 차면서 바위산이 앞을 가로 막았다.

 

고도계를 보니 550미터. 이제부터 암벽 등반이 시작되는 것이다.

튼튼한 로프로 군데군데 매듭을 지어 길게 늘여 뜨려 다리사이에 끼고 뒤로 몸을 젖히고

손과 발에 힘을 모아 당기며 깎아지른 암벽을 오르는 것이다.

5 6 미터 오르려 해도 온정신과 힘을 집중시켜야 하는 고된 운동이었다.

 

 

 

 

-----밧줄을 타고 오르는 암벽-----

 

처음은 무척 힘이 빠져 허덕였지만 한참씩 쉬고 호흡을 조절하면서 가이드의 요령을 익혀 가며

마지막까지 할 수 있다는 자신감과 의지로 별 탈 없이 해 낼 수가 있었다.

일행 중 백발이 성성한 고희 넘은 노회원이 있었는데 젊은이에게 질세라 다른 회원 못지않은 용기와

오기로 돌아가는 안전 코스를 마다하고 암벽등반을 굳이 고집하여 모든 회원들의 시선을 집중 식혔다.

 

안면에 벌겋게 심줄을 세우면서 아슬아슬하게 매달려 힘겨히 오르는 용감스런 모습을 지켜보면서

우리는 초조한 마음을 졸이면서 박수를 치며 격려했고 놀라워들 했다.

 

 

 

-----힘겹게 올라야 하는 바위마루 고개-----

 

온 체중을 두 팔로만 매달려 오르기란 생각보다는 그리 쉽지가 않아 모두들 해내고선 깊은

의미 있는 웃음을 서로 나누며 눈을 마주했다.

위험한 암벽을 평균 5. 60대의 중년들이 오르기란 일종의 모험 이였으니 말이다.

 

더구나 체중이 있는 여자들에겐........

 

 

 

 

-----나무로 시야가 막힌 답답한 정상-----

 

1시 30분경. 우리는 한사람의 낙오자도 없이 1시간 50분 정도 걸려 전부 정상에 설수가 있었다.

정상은 넓지도 않고 신비스럽지도 않아 보잘것없이 초라하게 느껴졌다. 널찍한 바위도 교묘하게

자란 분재 같은 나무도 없었다.

그저 평편한 보통 올라올 수 있는 산등성이였고 수령이 얼마 안 된 잡목들로 하여금 전망을

가려 확 트여 마음이 열리는 시원한 감격 같은 것도 못 느끼었다.

 

그러나 특이하게 방명록이 보관된 쇠로 만든 네모난 상자가 비치되어 있었고 나무로 길게 깎아

세워진 흰 팻말이 유독히 눈에 들어 왔다.

고장에서는 천태산을 찾아오는 전국의 등산객을 위하여 헷갈리게 하는 곳곳에 자세하게

안내를 해주어 불안감을 말끔히 씻어주었다.

얼마나 고마운 알차고 속 깊은 환영의 메시지인가?

 

우리는 방명록에 이름 석 자를 기록하고 곧게 자란 나무들을 비켜 멀리 보이는 산봉우리들을

배경삼아 기념 촬영을 하였다.

그리고 물을 마시고 땀을 식히면서 잠시 정상에 올라온 희열을 만끽하며 휴식을 취할 때였다.

 

갑자기 검은 구름이 머리 위를 지나면서 제법 굵은 빗방울이 쏟아지기 시작 하였다

걱정 했던 간밤의 기상 예보가 은근히 빗나가기를 기대해 보았는데 적중한 것이다.

사방은 희뿌연 안개에 휩싸여 시야를 흐리게 하고 소리 높여 “야-호” 소리 한마디 못하고

모두들 아쉽게 서둘러 내려오지 않으면 안 되었다.

 

삽시간에 등산로에 흙먼지가 검은 잿빛으로 변하면서 비는 계속 내렸다.

한편으로는 좀 겁도 났지만 5미리 안팎의 강우량이라는 예보 때문인지 모두들 시원하다며

이마의 흐르는 빗물을 즐거운 눈빛으로 웃으며 닦아 내렸다.

 

하산코스는 D코스. 안내문에 A코스로 올라 D코스로 내려와야 주위의 경관과 아기자기한

산행의 묘미를 만끽할 수 있다 하여 택한 것이다.

과연 능선을 타고 영국사를 멀리 내려다보며 큰 바위로 된 사이 길을 요리 저리 빗기면서

내려가니 등산의 참맛을 감지 할 수 있었다.

 

 

 

 

 

-----괴암 괴석으로 이어진 암벽 능선-----

 

더욱이 옆 산 비탈진 산자락엔 연분홍빛 산 벚꽃들이 군데군데 만발하여 수채화를 그려

놓은 듯 한 아름다움을 연출하여 한층 기분을 돋워 주었다.

엷은 운무에 살짝 가려진 기암괴석과 나이 먹은 소나무 샛길을 한참 내려 오다보니 어느새 비도 그치고

우리는 깎아지른 절벽위에 잘 모셔진 봉분 앞에 서서 풍수지리에 관한 얘기를 하고 있었다.

 

좌청룡. 우백호. 북현무. 남주작. 등의 방향을 가리키며 주산과 안산이 어떻다는 등 서로 자신의

산세를 점치면서 지견을 피력 하였다.

잔디도 가지런히 잘 다듬어지고 주위의 풍광도 수려하니 어느 자손인지 선영에 대한 지성이

대단한 것 같아 보였다.

 

어느새 하얀 구름들이 뭉게뭉게 보이면서 드문드문 파란 하늘이 나타났다.

앞산의 높은 봉우리가 한결 선명하게 그려졌고 파랗게 피어나는 갈나무 잎은 한층 물기를

머금은 듯 싱그럽게 보였다.

 

이렇게 거짓말 같게 비가 멎고 상큼하게 개일줄이야!

옷은 젖었지만 기분은 좋았다.

 

 

 

-----영국사 부도탑-----

 

우리는 원각대사를 비롯하여 여러 고승들이 모셔진 부도 탑들을 왼쪽으로 올려다보며 건너

들길로 천천히 걸어 영국사에 도착했다.

 

고려 때 공민왕이 홍건적의 난을 피하여 이곳 에와 나라의 태평함과 백성의 편안함을

기원하였다는 이영국사는 신라 문무왕 8년에 원각대사가 만월사라는 이름으로 창건하였다는

설명이 안내판에 적혀 있었다.

 

우리는 불자는 아니지만 대웅전의 부처님께 두 손 모아 합장하고 뜰에 있는 삼층석탑을

감상하였다.

 

통일신라시대에 세워진 이탑은 보물 533호로 지정되어 있으며 경주 불국사에 있는

석가탑과 비슷한 형태를 가지고 있었다.

그다지 정교 하지 않으면서 힘이 있어 보이고 위용이 있어 보임은 신라시대의 독특한 탑신의

신비가 아니고서는 형용하기 어려운 것이었다.

 

 

 

-----영국사 삼층석탑-----

 

나라가 부강하고 불교가 융성할 때 종교에 대한 바람이 예술로 승화 되여 이러한 아름다운

작품이 태어나지 않았을까 상상해 보았다.

규모는 작지만 아담하고 아늑한 이 영국사를 돌아보며 좀 더 보수하고 주변을 정화하여

사찰의 고유한 정적과 엄숙함을 간직하길 빌었다.

 

600년 세월을 담은 은행나무와 함께 길이 웅장하게 번창하여 복을 받으라!

 

 

 

-----영국사와 주위 풍광-----

 

 

주차장에 내려오니 2시 50분. 비교적 짧은 산행이어서 고달프지 않았다.

아기자기한 산세가 계속 이어져 지루하지 않았고 재미있고 유익한 산행이었다.

 

자연의 어우러짐 속에서 호홉을 같이 하고 고색창연한 사찰을 답사하며 등산을 한다는 것이

얼마나 마음에 여유와 양식인가?

삶이란 평범한 주위의 흔한 곳에서 약간의 노력과 취미로서 흐뭇하고 뿌듯한 만족을

찾아야 할 것이다.

 

지나친 욕심과 시기는 스스로 불행을 자초하는 원인이 되기에 사람은 언제나 주워진 위치에서

자연을 사랑 하면서 자연과 더불어 삶을 영위하며 분수에 맞게 살아야 되겠다는 생각을 새삼

하면서 자연에 고마움을 한층 느낀 보람된 하루였다.

 

 

 

 

 

 

1994.   4.   16.

 

월간 《사람과 산》 1994년 6월호에 계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