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르웨이

상운 2006. 7. 2. 17:06

 

 

〔2〕노르웨이 (비켈란 조각공원과 전통 교회)



 

비켈란 공원 


 

세계적인 조각가 구스타브 비켈란(Vigeland Adolf Gustav)의

작품이 전시되여 있는 조각공원이다.


프로그네르 공원(Frognnerparken) 이라고도 불리우는

이 곳은 40여년간의 긴 공정 끝에 총면적 8만평에 200여점에 이르는

비켈란의 심혈을 기울인 작품들이 광활하게 조성되여 있는 세계적으로 자랑하는

오슬로의 조각공원이기도 하다.


 


 

우선 문에 들어서면 보리수길이 넓게 펼처진 푸른 잔디와

아름다운 꽃들이 피어 있는 가운데 곳곳에 조각품이 배치되여 조화를 이루면서

시원스럽게 관광객을 맞아 준다.


동물을 투조한 철제정문에서부터 중앙에 이르기까지

그의 작품세계는 인간의 생로병사와 희로애락이 다양하고 세밀하게 표현돼

탄생과 죽음에 관련된 동양의 오랜 전통사상인 윤회 사상과도 매개되여

삶의 심연에 의미를 더 하여 준다. 




 

먼저 인공 호수의 돌다리 양쪽 난간위에

벌거벗은 어린이의 다양한 청동상 표정들을 만나게 되는데 엄마 뱃속에서부터

자라나는 천진난만한 과정을 재미있게 그려 담았다.  


중앙의 분수에는

인간의 고뇌와 갈등 사랑과 증오의 과정을 순서대로 나열식혀

인생의 몸부림치는 애환의 내면을 펼쳐 보였다.


 

 

특히 제일 안쪽 가장 높은 곳

공원의 끝 부분엔 비켈란의 최고 걸작인 모노리스(Monolith)라는 조각 작품이

우뚝 서 있는데 이는 하나의 커다란 화강암에 121명의 남녀노소가

뒤엉킨 채 나선형으로 조각 되여 발버둥치며 서로 위로 올라가려는

인간의 참 모습을 표현한 대 화강암탑이 있다.

 

 



모노리스란 원래“통돌”이란 뜻인데

17미터 높이의 돌 하나를 길게 다듬어 기둥처럼 만든 다음

인간이 살아가는 다양한 모습들을 잔뜩 빼곡히

새긴 작품을 말한다.


조각의 내용을 자세히 드려다 보면

꼭대기의 작고 수직의 인간의 자세로부터 시작해서

아래로 내려오면서 몸집은 커지고 자세 또한 수평으로 바뀌는데

수직에서 수평으로 전환을 통해 갓난아이에서 죽음을 맞이한 노인까지

섬세하게 시간의 경과를 인간의 일생으로 풀이하여

삶의 수레바퀴가 남긴 자국들을 그려냈다.




 

인간의 무한한 욕망과 투쟁.희망과 슲음을

화강암 돌하나에 그대로 농축식혀 인생에서 낙오되지 않고

안깐힘을 다 하여 정상을 찾이할려는 원초적인 감정상태를 역동적으로

표현하여 예술적 감각을 보여주는 작품인것이다.

 

이 모노리스는 비켈란에 의해 디자인된 석고 모델을

숙련된 3명의 석공이 14년에 걸쳐 공들여 돌을 쪼아 완성식힌 대작인데

이 탑은 비켈란이 땀과 꿈과 열정이 모두 서려 있는

이공원의 하이라이트라고 한다.  

   

 


 

 

비켈란은 그의 작품속에서

아이들에게는 무한한 사랑을

소년들에게는 드높은 꿈과 희망을 불어넣는 반면

성인들에겐 생의 본질적인 문제인 사랑과 증오 고독과 죽음 등에 대한 켤코

가볍지 않은 화두를 끊임없이 던져주고 있다.


 




비켈란은 1869년

노르웨이 남부 해안지방에서 목수의 아들로 태어났다.


그는 아버지의 재능을 이어 받아 어린시절부터

조각에 대한 취미와 흥미를 느껴 프랑스와 이탈리아 유학을 하면서

조각의 아버지라 불리우는 “로댕”에게 많은

조각을 배우면서 영향을 받았다.


고국인 오슬로에 돌아와

그는 40년간을 프로그네르 공원에서 생을 마감하는 날까지

오로지 조각예술을 위해 공원을 조성하면서

로뎅의“미술의 기본은 정확한 공간을 설정하는데 있다”는 가르침을 색이면서

미술의 기본 이념을 위해 전력을 다하였다.

 



 

조각 하나만을 위해 전 생애를 바쳐

자신을 외길로 내몬 그는 공원을 위해 조각을 제작하는 것이 아니고

 “조각을 위한 공원을 건설하겠다”는 신념으로

그는 끝까지 임했다.


당시로서는 무모한 획기적인 계획이였으나

혁명적이란 평가를 받을 만하다.

 




비켈란은 유언에서 항상 조각공원은 열어 둘 것이며

모든 사람에게 무료로 입장식힐 것을 주문하였다고 한다.


그래서 누구든지 언제나 자유스럽게 드나들 수 있는

세계인의 해방공간이 되였으며 많은 사람들의 발길이 생동감 있게 열려

사시사철 끊이지 않는다고 한다.


한해동안 이곳을 들르는 관광객이 무려 500만명이 넘처 난단다.

 

 


   



비켈란은 원래 가난하여 정상적인 작품 활동을 할수 없었다고 한다.


그래서 결심한 것이 시의 지원을 받기로 하고

대신 비켈란의 모든 작품은 시의 소유로 계약을 체결하고

오직 작품활동에만 몰두하였다고 한다.


그후 온 힘을 다하여 이 조각공원에 정열을 쏟았는데

안타깝게도 공원완성 1년을 앞두고 숨을 거두었다고 한다.


그가 창작한 모노리스의 인생의 윤회 수뢰바퀴속에서

그의 삶도 어쩔수 없이 파묻히게 되였나 보다.




 

오슬로가 세계적인 문화도시로 거듭나는 데에는

비켈란과 같은 천재 조각가가 존재함은 물론 시민과 당국의 사려 깊은 배려와

철저한 뒷받침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을 것이다.

 



 

자유스러우면서도 가볍지 않고 그렇다고 결코 무겁지도 않은

이공원의 분위기는 절제된 차분함속에서 순간 순간의 삶을 마음속에

조각하면서 의미 있게 돌아 본 소중한 시간이었던것 같다.    




 

전통 바이킹 양식의 목조 교회 (Lom Stavechurch)

 



 

롬에 있는 이 교회는 12세기에 지어진 목조교회로서

지금까지 실제로 사용되는 교회란다.

 

 


 

노르웨이에 기독교가 전파된 것은 10-11세기경이였다고 하는데

이시기에 약 750-1200개소의 목조 교회가 지어졌다고 한다.